오전 9시 이전의 외출길조차 벅차 집에 돌아와 사흘이나 꼬박 컨디션 관리를 하다가 정신차려보니 제대로 뒹굴거리는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잘 놀고 있으면 된거다. 그 와중에 동생은 뚜껑 열리는 빨간색 차와 새로나온 갤럭시 노트를 갖고 귀환했다. 이 시대 화려한 청춘은 노예계약과 할부로 꾸려가는 삶을 말하는 거구나. 푸핫. 그러거나말거나 '화차'만 안되면 된다. 어쨌든 너는 황금기를 살고 있는 거구나. 며칠은 토스트와 비빔면, 쫄면 같은 밀가루 음식과 그애가 죽고 못 사는 순대국과 고기류를 달고 살아야 한다. 책은 일 년에 한 권도 안 읽는 애가 안철수의 생각 안 사냐고 꼬드기지만 안 넘어갈 거다. 이분이 아무리 좋은 얘길 해도 내 표는 다른 곳에.. 아주 예전부터 그분이 안 나오시면 좋지만 나오시면 그리로.. 그래서 혼란올까봐 못본다! 혼란 자체가 오지 않을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목표는 투표 아닙니까. 투표만 잘하면 됩니다.. (근데 딱히 정치성향 똑같을 거면서 왜 굳이 책을 사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 

 

쓸 얘기가 없지만 글 게시와 게시 사이의 간격이 길어지는 건 옳지 못하다. 올림픽 개막 이후 내내 결과에 열올리면서 정작 제대로 경기를 본 건 거의 없다. 때론 더위를 때론 잠을 때론 기다림을 나는 이기지 못했고, 수많은 선수들의 피와 땀, 영광의 순간을 놓쳤다. 다시 본 건 몇 개 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분노유발자 올림픽 같으니라고.

 

이 앨범에 대한 얘길 해보자.

 

 

 

 

 

 

 

 

 

 

 

난 요즘 이 드라마 보면서 많이 운다. 때론 억울해서, 때론 기뻐서, 또 슬퍼서, 또 마음 아파서, 어쩔 땐 벅차서, 어쩔 땐 너무 우리들 얘기라서 이유없이 설레고 감동한다. 여기는 서른 셋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존재한다. 쉰, 예순, 일흔에는 미래가 없겠는가. 그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리지 않은 청춘의 솔직한 이야기는 도움이 된다. 어떻게? 그냥.

 

솔직히 일과 사랑 어느 부분에서 공감해야 하는지, 공감하고 있는지 자각이 없지만 매번 울컥 아니 울먹이는 걸 보면 이 시대 사랑, 분명히 마음 속에 기생하고 있다. 쿨하고 진심이 없는 듯해도 다들 얼마나 벅차게 몸과 마음 바쳐 사랑하고 있을까. 세상의 청춘들이 꿈꾸는 혹은 현재진행의 사랑이 합쳐지면 지구는 온통 사랑으로 뒤덮일 것이다. 어제는 치즈케익을 먹었다. 티스푼으로 두 입이면 더이상 못먹을 것처럼 느끼한데 이상하게 다음 한 숟갈, 또 한 입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 조각 뚝딱. 초코, 고구마, 생크림, 모카. 종류도 많은데 하필 그 흔한 데코레이션 하나 없는 치즈케익이라니 멋없이. 그러니까 로맨스는 담백할 수록 좋지 않은 거잖아. 나는 치즈케익 같은 연애는 싫다.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는 많은 사랑의 줄기가 등장하지만 카페 사장 남자친구를 둔 음악감독 주열매가 주인공이다. 남자는 여자의 일률적 빙수 거부에 얼음 한 그릇과 온갖 재료가 '따로' 나가는 '열매빙수'를 개발했다. 카페 메뉴에 여자친구 이름을 붙이는 남자친구라니. 사실 여기 나오는 두 남자는 둘 다 매력이 넘쳐서 진심으로 저런 상황이 안 오기만을 빌면서 본다. 도대체 무슨 복이지. 나이 서른 셋이나 돼서.

 

어쨌든 원하는 것만 덜어 쓱싹쓱싹 비벼먹을 수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빙수는 카페에서 인기만점(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 뜨겁고 때로 차가운, 냉온탕을 번갈아 넘나드는 이들의 청춘을 대변하는 제멋대로식 메뉴가 아닐까. 연애는 아무도 뭐랄 수가 없는 것. 오로지 자기만의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것. 아무도 연애가 삐걱거리거나 좋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아바타 같다.

 

바깥 세상에서는 어른을 강요당하고, 내면으로는 기대만큼 크지 못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살만큼 살았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청춘들의 아바타. 

 

 

 

...

후회하니 미안 했었니
왜 그땐 내 옆에 없었던 거니 어느 날
한번쯤은 물어봐줄래
그때는 내게 무슨 일 있었냐고

그렇게 나보다 너의 기억이 많은
그 시절 그때 그 자리 또 너의 손끝에 남겨진
따뜻한 아직도 따뜻한 기억이 모두 아픈 날들이
...

 

 

 

...

나의 시간 속에 지워진 듯 보인대도

멈춰버린 꿈을 위한 눈부신 우리의 추억들

아름다웠기에 끝없이 펼쳐질 이야기

 

바람을 타고 난 저 멀리

바람을 타고 난 저 멀리

우리의 태양은 가득히

...

 

 

사랑법은 모두 다르다. 강요해서도 안되고 강요할 이유도 없다. 강요가 아니라 마음이었겠지만 상대방에게 마음과 진실은 너무 늦게 당도한다. 닿았을 때는 이미 함께가 아닐 수도 있는데. 열매와 석현은 지금 그런 관계가 아닌데, 뒤늦게 깨달은 일방 당사자로 인해 알콩달콩한 다른 당사자의 행복한 연애가 깨어지려는 참이다. 이제 정말로 짝을 찾았다고 믿는 열매에게 아직은 모르지만 분명 위기다. 사랑은 저울에 올려질 거고 시험당할 것이다. 누가 일처다부가 나쁘다 했나ㅜㅜ

 

그녀가 만든 노래는 모두 그와의 추억 속에서 나온 감정들로 버무려진 비빔밥이다. 과거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헤어짐을 부르는 결혼생활들, 그들은 지금 자신과 마주보고 있는 상대가 자기가 용서할 수 없는 그 '과거'로 인해 성장했다는 사실과 현재의 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왜 잊는 걸까.

 

 

 

 

 

 

 

 

 

 

 

 

 

 

 

 

 

언제나 귀로 듣는 선율은 늘 말이나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속에서 열매의 직업이 음악감독이듯, 좋아하는 영화의 LP판을 찾아다니다 어느 희귀 LP판으로 인해 지훈을 만난 것처럼 영화 <듀엣>의 어린 감성도 그렇게 부딪쳤을 거라 믿는다. 낯선 이와 친구가 되는 것이 낯선 풍경 안에서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부족함과 모자람의 미학을 이국적 풍경으로 승화시킨다.(뭔가 부족할 걸 알면서도 보는 이 자신감은 자연적 휴식이다, 풀어져도 좋다는)

 

 

책은 두 권.

 

 

 

 

 

 

 

 

 

 

 

 

 

 

<토막난 시체의 밤>은 오싹한 표지와 제목에도 별로 무서운 소설은 아니다. 이 비현실 같은 현실이 토막나서 차라리 우스워지는 그런 이중적 매력의 이야기다. 밑바닥 인생들의 사채 돌려막기, 책임전가, 섹스와 협박, 마지막은 죽음이지만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 어떤 사람이 너무 외로워서 옛날에 살았던 작은 다락방으로 기어들어와 그곳에 살고있는 또다른 누군가와 섹스를 한다.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이들은 무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견디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을.

 

둘은 몰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가난했고, 가난하지 않았으나 부모로 인해 가난해진 것. 갈 곳이 없었던 것. 가진 것과 갈 곳이 없을 때 세상이 주는 비릿한 슬픔으로 인해 느끼는 좌절, 견디기 위해 했던 과거의 행동이 하나둘씩 지금의 나를 화롯불로 던져넣을 것 같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누군가를 협박하거나 포기하기. 죽거나 살기. 그러면 된다. 쉽진 않지만.

 

<굿바이 동물원>의 추천사는 엄청나다. 한겨레 수상작을 읽어본 적이 없고, 그 외의 수상작품집을 멀리한 지가 꽤 돼서 사실 이번에도 쿨하게 넘길 자신 있었지만 '동물원'과 엄청난 추천사들 덕분에 걸려들었다. 운이 좋다, 이 책은.('내'가 아니다)

 

아내가 있는 남편이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한다. 집안에 틀어박히지만 여자와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젊고, 돌도 씹을 나인데 할 일이 없다. 그러던 차, 이웃 아주머니가 소개해준 부업으로 봉투 붙이기, 인형 눈깔 붙이기, 동물원 인형탈 쓰기까지 온갖 알바로 연명한다. 인형 눈깔 붙이다가는 본드도 흡입해보고, 인형탈을 쓰고부터는 정말로 고릴라가 된다. 처음에 너무 적나라하게 멋없던 소설로 차츰 빠져들어갔다. 고릴라의 탈을 쓴 그는 점점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고릴라가 된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그런 고릴라. 능숙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차츰 고릴라도 빈틈이 있다. 맞으면 아프고, 넘어지면 창피하고, 비웃음 당하면 부끄럽다. 잘 살고 싶고 잘 먹고 싶고 잘 자고 싶다.

 

사랑을 하고 싶고 이별은 벅차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그럴 것이다.

 

뭘 많이 한 것 같아도 정작 제일 많이 한 일은 샤워 뿐이다. 씻고 돌아서면 또 덥지만 죽을 걸 알면서도 안 살 수가 없는 것처럼 여름을 나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라고는 못하겠다.(더위와 상관이 없잖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 2012>가 있어서 좋다. 늘 자투리로 다운받아 듣던 음반이 발매되어 좋고, 여름날에도 여전히 뜨겁게 혹은 차갑게 살아있는 감수성이 좋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영화 <후궁>과 <방자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혈의 누>를 세트로 역감상했다. 오랜만의 사극세트랄까, 거실에 누워 듣기만 해도 알겠는 우리 영화를 섭렵하는 일은 신났다. 대충 봐서 감상을 쓸 수 없다.

 

 

 

 

 

 

 

 

 

 

아, 대신 이 엄청난.. 이들에 대한('소설'이 아니다) 이야기를 쓸 수도 있을까. 사실 그동안 각각 두 권짜리 소설 <울프 홀>과 <순수 박물관>을 읽느라 시간이 다갔다. 드라마가 줄줄이 결방이어서 밤시간을 잠 아니면 책 한 글자로 끝장냈다. 여름에는 잠이 별로 오지도 않는다. <흑산>은 겨울에 반쯤 읽었지만 여름에 읽는 것도 나름 운치 있다. 칼을 벼리듯 써내려간 날카로운 문장과 아픈 시대 그리고 냉혹하면서도 따뜻한 배경묘사가 띠지 말대로 진짜 축복처럼 벼락친다. 내가 그동안 '문장'에 메말라 있었나 보다. 이럴 땐 김훈 아니면 오정희. 또는 김승옥. 아아아, <무진기행>을 또 읽어야 할까. 이들의 소설을 읽으면 덥지가 않다. 나는 그걸 알고 있고 약발 잘 받게 참다참다 도저히 못참아서 써먹는 중이다. 시작이 노래 시리즈 첫 번째 주자 칼~

 

스물 세 살이었나, 네 살이었나 그때 노래 시리즈 한창 베스트셀러였을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으면서 혹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서 모두들 뒤에 꼭 이 말을 붙였다. 노래 시리즈 말고. 으하하. 그래서 이렇게 재밌고 숭고한 걸 지금껏 못 읽고 있었다. 우린 그때 베스트셀러는 '보통'사람 책이라 읽지 않았다. 지드나 헤세를 들고 철학수업에 몰래 들어가거나 쇼펜하우어나 비트겐슈타인을 과수업 맨 뒷자리에 앉아 책상에 머리 박고 읽을 때였다. 사실 대부분은 토론수업에 읽어가야 할 서로의 작품들을 카페에서 다운받아 출력하는데 온 시간을 다 보냈다고 봐야 맞지만. 그때 그들이 김훈 아니 노래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 그토록 거부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는 안 읽고 거부한 1인. 이제는 본 걸 또 보지 않아서 너무 행복한 1인.

 

윤동주도, 정약전도, 이순신도 만나는 이런 여름이라니!

 

 

 

 

 

 

 

 

 

 

 

 

 

 

 

아무래도 음반 한 장에 데코레이션을 너무 많이 얹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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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8-0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더위 장난 아니네요. 제가 사는 대구도 더운 지역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매일 찾아오는 열대야의 고통을
견뎌내기가 힘들어요. 더워서 잠을 못 자요 ^^:; 시원한 맥주캔 마시면 잠은 잘 오는데 더워서 새벽에 잠깨기 마련이에요. 지금은 태풍 북상해서 그런지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긴한데 그래도 대구의 무더위는 피차일반이네요. ㅠㅠ 게댜가 새벽에 올림픽 경기까지 본방사수하고나면 새벽 4시. 2박 3일 휴가 제외하면 제대로 잠도 못 자는 형편이에요. 불면으로 인해 생긴 잉여 시간은 그냥 독서로 때우고 있어요. ^^

아이리시스 2012-08-03 16:32   좋아요 0 | URL
대구는 밀양과 동급이잖아요. 우리나라 아닌 걸로 하겠어요. @.@
맥주캔은 더워서 아니고 화장실 땜에 깨는 거 아닙니까! 잠자려면 맥주가 최고죠!ㅎㅎ
그래도 저는 수박............( '')

그러면 시루스님에 비해 제가 좀 더 잘 자는 것 같아요. 저는 어제 완전 잘 잤어요. 곰 같아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어떻게 지내시나요? 내일도 36도라는 일기예보에 두렵기까지한 여름이네요ㅠㅠ 전 오늘까지 가열차게 놀았어요. 휘영청 밝은 여름날 밤 산 밑에서 바베큐 해 먹고 두런두런 여름밤 보내고 왔어요. 뭐니뭐니해도 그래도 집이 최고예요!! 남은 여름은 좀 편했음 좋겠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게시글 간격이 너무 길어지면 안 좋다는 말씀에 좀 찔리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ㅎㅎ 너무 더워요~~

아이리시스 2012-08-03 16:29   좋아요 0 | URL
바베큐...!@#$%^&* 저도 해먹고 싶어요! 두런두런 여름밤. 귀신얘기 하고 싶어요. 아님 브루마블.. 잘 놀고 오셔서 집이 최고라니, 뻥 아닙니까! (사실 넘 더우니까 일단 가기가 귀찮아요, 그게 어디든 가면 잘 놀텐데요..)

현맘님은 바쁘시고 저는 한가해서 제 간격은 현맘님 간격과 다릅니다. 게을러서 그런 겁니다!

비로그인 2012-08-02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라니, 선영아. 갑자기 그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영화든 드라마든 사랑 이야기만 나오면 뭉클한 걸 보면 저도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데, 몸과 마음이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냥 아직 사랑에 대해서는 어린이인 듯한 ( '')... 그런 느낌이에요. 아이님은 요새 뒹굴거리며 지내시는군요. 맞아요, 잘 놀고 있으면 된 거에요 ㅎㅎ 저도 요새는 마음에 여유가 넘친답니다. 그래도 알 수 없는 불안은 여전하지만요.

ps. 치즈케익 떠먹는 아이님의 모습, 저랑 닮아있을 거 같아요. 느끼한데? ... 그러면서 계속 떠먹기!

이진 2012-08-03 12:3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워요. 저는 배부른데?... 그러면서 계속 먹어요. 친구들이 그렇대요. 제가 배부르다고 하면 아직 닭 한 마리는 더 먹겠구나, 하는 싸인이라고. ㅋㅋ

비로그인 2012-08-03 15:08   좋아요 0 | URL
^^ 배부른데? 그러면서 닭 한 마리 추가로 뚝딱. < 이게 더 귀여운데요? ㅎㅎ
그나저나 소이진님의 '소설'은 어떻게 된 겁니까 대체!! ㅠㅠ

아이리시스 2012-08-03 16:26   좋아요 0 | URL
제가 그 말을 하고 싶었구나 그랬어요. 수다쟁이님 댓글 보니까 그랬나 보네요. 아무리 쿨해지려고 해도 뭉클하다면 바라거나 원하거나 뭐 그런 것 같아요. 올 거예요, 사랑은. 수다쟁이님에게는 더 특별하게요. 저 요즘 완전 놀아요. 밖에서도 집에서도 완전 놀고, 잘 놀다보면 여름이 가겠지 생각해요. 알 수 없는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요.. 토닥토닥..

치즈케익은 만 하루만에 제가 다 해치워버렸어요! 이제 남은 건 토스트와 엄마가 한 냄비 끓여주신 김치찌개.. 담번엔 모카로 사먹어야겠어요!

소이진님 남쪽나라로 왔어요? :) 닭 한 마리 추가요.
소설은 어떻게 된 겁니까 대체!! 222

꿈꾸는섬 2012-08-0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요새 어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무더위에도 끄덕없이 잘 지내고 계시는군요.^^
이 밤중에 치즈케잌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어요.ㅋㅋ

아이리시스 2012-08-05 22:23   좋아요 0 | URL
꿈섬님 엄청 오랜만인 거 알아요? 한 번씩 오셔도 잠깐 오셨다 가시니까 엄청 오랜만 같아요.
끄떡없어요. 널부러져 있어요.

치즈케잌 원츄. 막 쟁여놔야 할까봐요.ㅋㅋ
 

 

 

 

지금부터 쓰려는 얘기의 주제는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것이 아니지만 어쨌든 그로부터다. 이 추리소설 한 권으로 안중에도 없던 포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한 편씩 읽어오던 포가 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흔히 책 속에 길(답)이 있다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책 속에는 모든 것이 있(을 것 같)지만 길은 없다. 그런 게 진짜로 있다면 책을 무기삼아 타당성을 일축하고 억지쓰는 이들이 많아질 거란 건 불보듯 뻔한 일이지.

 

책을 잘못 읽는 예에 대해 안철수 원장이 힐링캠프에서 얘기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얻을 건 그것 뿐이었다. 나는 그분이 연습장에 빽빽히 분 단위 스케줄을 적어놓고 제 시간에 실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의 이야기도 그렇고, 미국유학 때 세 식구가 매일 도서관에서 머리 맞대고 각자의 공부를 했다는 것도 알았다. 지난해 말인가 한창 꽂혀서 출연하신 모든 프로그램을 싸그리 봤는데 사실 같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자기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힐링캠프에서 한 얘기는 이미 알던 것과 별다를 게 없어 좀 실망했다. 나는 그분이 이룬 팩트보다 하고 계신 생각이 더 궁금했는데 예능이 그렇게 해주진 못했다. 정치얘기를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한 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길을 찾아낼 수 있는 지혜나 지도가 있을 뿐이다. 그 길은 내가 선택해서 시작하고 또 끝낸다. 독서가 지극히 개인적 행위이듯 소설도 대부분 그런데, 그 개인적인 것들이 어느 순간 모두의 것인듯 튀어오를 때가 있다. 개인보다 개인이 속한 사회, 사회를 받치고 있는 더 큰 세계, 그렇게 한 단계씩 늘려가다보면 어느 순간과 마주한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얼마 전에 읽었다. 이 페이퍼를 쓰는 중에는 [도둑맞은 편지]를 읽었다. <우울과 몽상>은 여러모로 좋은 책이다. 받침대로도 좋고 베개로도 좋고 심심풀이로 읽기에도 부담 없는데, 읽고나면 부담이 안긴다. 몇 장의 짧은 단편에도 삶의 철학이 들었다. 사건해결을 통찰로 행한다. 에드거 앨런 포는 소현세자나 사도세자만큼이나 많은 죽음에 대한 '설'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그는 늘 미쳐있었고, 정신착란 상태에서 숨을 거뒀다는 건데 <우아한 제국>은 이 가정으로부터 시작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물론 이 사실은 배경도 아니고 해답도 아니고 그 일부도 아니며 당연히 스포일러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정신착란이 예술가나 살인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다르지 않고, 그것이 촉발되는 양상도 비슷하다는 것.

 

 

[1]

 

 

 

 

 

 

 

 

 

 

 

 

 

 

 

스릴러는 되도록이면 줄거리 설명을 아껴야 한다. 어쩔 때는 책정보를 읽는 것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단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의 제목이 내용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배경은 스웨덴의 한 도서관과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 박물관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국가에서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사체가 발견된다. 누가 봐도 살인이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광경이다. 그리고 1500년대 베네치아의 한 수사와 이발사 그리고 사제에게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발사는 머리카락을 깎는 사람이 아니라 칼잡이였다. 해부학자였고 의사였다. 그의 손끝에서 칼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은 사람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모든 것은 기록되었다.

 

외르켄 브레케는 전통과 문화와 시대를 거스른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지만 살인범이 누구인가 보다 왜 살인을 저질렀나가 중요한 내게는 괜찮았다. '고서(古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살인음모는 당연하게도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그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자기화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금서에는 손대지 말라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만큼 알지만 에코의 것이 사회학적 음모(비극만 남기고 희극을 사라지게 하려는 자들의 음모)라면, <우아한 제국>은 있을 만한 역사 속 사건의 팩션에 불과하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속을 알기 위해 살인하거나 공동묘지의 시체를 훔치려 땅을 파는 일련의 과정들이나 양피지로 만들던 책의 겉가죽을 사람가죽으로 만들어 글을 새긴다는 설정은 있을 수도 있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암흑의 중세가 아무리 살인과 음모의 시기였다고 해도 두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이상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중세인들이 골몰했던 해부학, 당시 원형 해부극장이 만들어질 정도로 암암리에 성행했던 인간에 대한 해부를 인간 스스로 몸에 대한 자각과 궁금증을 품고 시작했던 첫 의학적 기록으로 본다면 충분히 추적해봄직한 일이 된다. 그래도 에코만큼 많은 문학적 장치와 인문학적 사고를 곳곳에 배치하지는 못했으므로 단지 추리파 소설로 분류되겠지만 말이다. 단지 정신착란, 대상에 대한 지독한 갈망과 호기심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옛책의 가치를 역사와 돈으로나 찾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해당사항이 없는 듯하지만 누군가는 살인을 해서라도 얻고 싶은 혹은 재현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이다. 부정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생애는 한 줄로 말해질 수 없다. 여름밤 지구 반대편의 나라 어느 방에서 흥미진진하게 읽기에 좋았다. 깊지는 않았지만 꽤 탄탄했다. 시리고 차가운 느낌의 오싹한 한기의 느낌은 없지만 이 소설은 분명히 스칸디나비아 지방으로부터 왔다. 여기는 추리소설 매니아로 읽을 때마다 제목과 작가, 범인과 범인이 등장하는 페이지를 목록으로 작성하는 어떤 여자가 나온다. 여기는 캐릭터가 많다. 도서관과 박물관 직원들 그리고 경찰들. 모두가 뚜렷한 성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 건 아니지만 범인을 찾기로 맘만 먹으면 압축하기가 쉽다. '왜' 살인을 했는가는 '누가' 살인을 했거나 '어떻게' 살인을 했는가 보다는 중요한데(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아한 제국>은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강하다.

 

 

[2]

 

 

 

 

 

 

 

 

 

 

 

 

 

 

편지로 된 소설 몇 권을 알지만 읽기가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매번 화자와 청자가 달라지고, 시기도 구별해야 하며, 무엇보다 나는 받는 이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력 빈곤을 고스란히 체험하곤 했다. 작가는 영국여행 중 알게된, 채널제도의 일환인 건지 섬을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소생시킨다. 건지 아일랜드라면 이 소설을 만나기 전에 알던 바로는 위고가 망명하여 살았다던 곳 아닌가!(위고는 카뮈 다음으로 좋아하는 몇 안되는 작가다) 루이 나폴레옹 정권을 비판하다 반정부 인사로 찍혀 망명한 그는 이곳에서 <레 미제라블>과 <웃는 남자>를 집필했고,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녹록치 않자 다시 건지로 가서 말년작 <93년>을 집필한다. 건지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중 5년간 독일이 점령했었고, 한 번도 자국영토를 뺏겨본 적 없던 영국으로서는 아픈 손가락일 터, 문학적으로 승격되는 이 섬의 고립과 외로움을 편지라는 매개체로 읽는 순간 그곳에 대한 애틋함이 살아난다. 건지 섬에 있는 한 남자와 런던에 사는 한 여자의 편지가 서로에게 닿게 된 건 책 때문이다. 여자는 작가고, 남자는 그곳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문학회에 참여중이다. 육지 소식이 잘 가닿지 않는 섬에 있는 남자(도시)는 우연히 여자(줄리엣)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을 갖게 되어 그녀에게 편지를 띄운다. 그들을 오가는 편지 속에서 매개체가 된 책 뿐 아니라 뭍과 육지의 소식이 서로 고루 섞인다.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줄리엣과 도시의 편지를 시작으로 대륙과 건지 섬 사이, 줄리엣의 친구 소피의 오빠이자 편집장 시드니, 줄리엣과 소피의 연인들, 하지만 전쟁을 겪고난 이들의 멀쩡한 삶이 주제인 만큼, 건지 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자신들을 지켰는지, 돼지 파티가 북클럽으로 변모한 이유가 뭐였는지, 북클럽에 대한 사연을 줄리엣이 쓰는 칼럼에 싣기로 하면서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나는 정적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추천사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저 그랬다. 전쟁의 절박함을 따뜻하게 회상하고 새롭게 삶을 일궈보려 한 진정성 어린 소설이지만 보통 이상의 감동이 오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 읽었던 <안네의 일기>나 <굿바이, 안네>도 같았다. 절박한 상황의 담담한 서술에는 나도 한 발 빼게 돼서 그런가. 다양한 인물이 자신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점은 귀기울일 만하지만 역시 채널제도를 겪은 역사적 순간을 건지 섬의 누구보다 위고로 기억하겠다.

 

 

[3]

 

 

 

 

 

 

 

 

 

 

 

 

 

 

 

한창 방영중인 주말 사극 [무신]의 주인공이 무신정권에서 막강한 힘과 재산을 가진 두 부자(父子) 최충헌, 최우가 아니라 최충헌가의 노예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최우의 눈에 든 '김준'이듯,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울프 홀>의 주인공은 헨리 8세가 아니라 16세기 튜더 왕조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힘을 얻기 위해 온갖 음모에 휘말리며 목숨을 걸었던 '토머스 크롬웰'이다. 이 원칙은 견고하다. 왕보다는 왕의 주변부를 주인공으로 삼아야 더 많은 이야기를 불러올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소설은 대부분 이 공식을 답습하지만 헨리 8세를 소재로 한 수많은 텍스트가 존재하는 지금은 확신할 수가 없다. 대부분 앤 불린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태반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왕을 유혹하는 여인이 그녀 뿐만은 아니었건만, 유난히 잦은 영화 탄생은 튜더 왕조 전체가 아니라 한 여인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권모술수를 얕게 구경하게 하는 데서 그친다. 유명한 영화 <천일의 앤>을 비롯 <천일의 스캔들>, <엘리자베스>, <골든 에이지>는 모두 1485년부터 1603년 3대 다섯 명에 걸친 118년의 튜더 왕조배경으로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헨리 8세와 두 번째 부인 앤 불린, 그들의 딸 엘리자베스 1세에 초점이 가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으로부터 간통과 근친상간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앤 불린은 단 3여년을 왕가에 있었다. 전 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해 앤 불린과 혼인했는데 역시 아들을 얻지 못하자 헨리는 또다시 왕비를 버린다.

 

어머니가 보낸 천일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엘리자베스는 처녀여왕으로 생을 다해, 처형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피의 메리'할 때 그 메리 아님. 그 메리의 본명은 메리 튜더로 엘리자베스와는 이복자매)의 아들이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공동 왕이 되는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로는 제임스 6세)가 즉위할 때까지 다사다난한 업적을 남긴다. 후사가 없었던 그녀와는 전혀 상관 없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칭호를 받은 사람은 현재 53개국 영국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역사를 단편적 사건으로 훑어보면, 잉글랜드 왕권을 놓고 랭커스터가(家)와 요크가(家)가 싸웠던 장미전쟁이 튜더왕조 시작의 배경이다. 장미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두 가문의 상징이 장미였기 때문이다. 색은 붉은 것, 흰 것으로 각각 달랐지만. 이 전쟁은 자그마치 30년이나 진행됐고, 랭커스터계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는 헨리 7세로 즉위하며 마침내 튜더 왕조의 시대를 연다.

 

주드 로가 영국의 섹시가이라면, 비슷한 눈빛을 지닌 아일랜드 출신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역시 내눈에는 주드 로만큼 섹시하다. 키는 작지만..( '') 배우에게 기대하는 키의 기준치가 어느새 180이 되어버린 이런 눈높이ㅜㅜ 그가 절대군주 헨리 8세로 분한 시리즈 [튜더스]는 앤 불린과의 로맨스 뿐 아니라 그녀를 비롯한 여섯 부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물론 왕가의 음모와 튜더 왕조의 흥망사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 스릴러가 아니라 로맨틱 역사물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많은 영화와 비슷하다. 단숨에 끝내기에는 아쉬운 긴긴 역사 속으로 데려가는 몰입감과 시대물 로맨스로는 확실히 기대하게 만들지만. 반면, <울프 홀>은 헨리 8세에게 다가가는 '토머스 크롬웰'이 주인공이므로 좀 다를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주변부의 시선으로 권력을 말하는 것. 원래 시대와 역사, 사건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사람은 제대로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법이지만 역사소설에 있어 아무도 객관적 시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것 또한 한계인 동시에 장점일 수도 있다.

 

 

 

 

 

 

 

 

 

 

 

 

 

 

 

 

우려먹어도 너무 우려 먹었다는 느낌을 숨길 수 없을 정도의 대형군단이다. 헨리 8세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이어지는 영국 정치사가 더 재밌을 지도 모른다. 왕조의 자리다툼은 늘 권력욕 아니면 지위욕, 치정에 얽힌 것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남편없이 '나는 조국과 결혼했다'던 엘리자베스 1세의 결단은 얼마나 훌륭하면서도 덧없는가. 자기 시대는 곧 가버리고 늙고 병든 나를 대신할 자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권력과 지위에 목매는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다. 후손 하나없이 먼 사촌조카뻘에게 왕위를 물려준 그녀의 슬픔에 비하면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는지 감히 상상할 수 있다.

 

 

[4]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부터 이듬해 2월 18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 결과로 만주 땅에는 일본이 지배하는 괴뢰정부 '만주국'이 들어선다. 중일전쟁은 1937년부터 이듬해까지 계속된다. 이유가 어쨌든 모두 일본국의 침략으로 벌어진 전쟁이다.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태평양 전쟁은 1941년부터 5년간,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로, 역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싹싹 빌었지만, 전쟁 중 모든 문서와 장부를 스스로 소각시킴으로서 본인들의 도발과 패배를 정당화하려 했다. 이 나라 또라이 같다.(나름 순화한 표현이다) 

 

김약연은 북간도 지역의 한인사회 지도자였고, 윤동주는 이 혼란한 틈에 북간도에서 태어난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활발한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피신 겸 개척된 북간도가 만주 땅으로 편입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곳은 지금 연변이라 불리는 조선족 자치주였다.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이 유명한 곳. 이후 북간도의 수난은 만만찮다. 근현대사는 대부분 눈물과 분노로 점철되었지만 특히 근대사(구한말-일제시대)가 심하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가기로 마음 먹은 때(1941년 말)는 민족말살통치가 이뤄지던 시기로, 유학하려면 반드시 창씨개명을 해야했다. 이를 두고 오늘날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죽을 때까지 정식 시인이 아니었던 그가 사후 출판된 시집으로 민족시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유학 후(얼마나 큰 꿈을 품었겠는가) 1943년 귀국길에 오를 무렵 민족항일운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그의 삶은 짧았고, 그래서 더 정리가 쉬워진 건 아니지만 더 큰 의미를 갖는 건 확실하다. 1943년 7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으니 1945년 8월즈음 출소했다면 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2월 16일. 그는 6개월을 참지 못하고 숨을 놓았다. 형무소 의무실에서 주사한 의문의 약 때문에 생체실험의 희생자였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패망한 일본이 전쟁 후 모든 문서와 서류를 소각함으로서 말살하려 했기에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1945년) 구주지방에 불시착한 미국 B29 전투기 조종사 8명을 구주대학에서 생체해부하고 살해한 사건이 조서로 보고되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일본이 전쟁 중 자국 병사들의 혈액을 보충하기 위해 혈장 대용 생리 식염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국인은 물론 윤동주를 비롯한 건강한 수감자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음이 드러났다. 더불어 이들은 조종사 8명에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신장과 폐, 간 같은 장기적출을 시도한 한편, 나중에는 인육파티까지 했다고 보고서는 전하고 있다.

 

 

[5]

 

 

 

 

 

 

 

 

 

 

 

 

 

 

 

올해는 벌써 이만큼이나 되는 아프리카 관련서들을 읽었고, 내용이 살상, 학살, 전쟁, 분쟁과 동떨어지지 않아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또다시 시리아 내전이 국제뉴스를 타고 들려왔다.

 

<제노사이드>는 아프리카 어느 소수민족의 대를 끊어 멸종시키려는 백악관의 음모로부터 시작된다. 이 소설이 너무 정치적으로 보인 이유는 '진행중'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을 미국 뿐 아닌 다양한 국제사회가 시도하고 있고, 그들의 목적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자기 배 불리기라는 점은 명백하다. 노예제도와 식민화 때문에 발전이 더뎠다는 검은 대륙 뒤에는 언제나 살상무기를 가지고 고도의 지력으로 협박에 협박을 거듭하는 선진국(미국)의 음모와 지략이 있고, 이에 맞서는 덜 문명화 된 이들은 장렬하게 싸워보지도 못한 채 전사한다. 아무 연관 없는 마을 전역이 불타 여자와 아이마저 학살 당하고, 수류탄이 터지고 가해자, 피해자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죽어간다.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어느 국가의 수장이나 결정권자다. 정작 싸우는 이들에게는 본인 목숨에 대한 결정권이 없으며, 만약 살아 돌아간다면 알량한 돈 몇 푼(윤리적으로 생명 앞에 돈은 늘 알량하다)으로 보상 받는다.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사실상 아프리카 콩고, 백악관, 일본까지 시공간이 다른 세 곳의 주인공들이 얽힌 인프라를 따라가야 하는 고도의 전략전이다. 콩고 탈출을 시도하는 내전상황을 생생히 그리고, 용병과 초인류를 등장시켜 신과 인간이 만난 듯한 숭고한 긴장을 주고, 의자에 앉아 손만 까딱하면 지구 반대편 평화로운 누군가의 삶을 통째 파괴하고 목숨도 끊을 수 있는 백악관 테이블의 권력에 분노하게 하며, 일본의 철거 아파트 안에 갇혀 아버지 대신 현 인류를 구할 신약 개발에 몰두하는 청년을 응원하게 한다. 끊기도 잘한다. 중요한 순간에 화면전환. 영화가 따로없다. 

 

흡인력 굉장하고 흠 잡을 데 없이 잘 씌어진 근래 보긴 드문 작품인데 문제는 평소 아프리카 역사와 내전에 관심이 많았던 나머지,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보고 듣고 읽어 최대한으로 받아야 했던 충격의 임팩트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온갖 지식을 짬뽕하면 쓸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순간적으로 날 감쌌다. '살기 위해' 신의 저항군에 세뇌당한 소년병의 살육에 영화 <머신 건 프리쳐>가 생각났고, ICC에 제소되어 국제악질범 1위로 인터폴에 수배되어 있다던 그 놈도 누군지 알겠고, 왜 소년병이어야 하는지, 얼마나 더 끔찍하게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나갔는지도 알았다. 그밖에 수많은 국제법 조항들.. 주로 명분에만 머무는 유엔평화유지군 활동.. 거기다 화학융합까지 화학에서 아프리카사, 네안데르탈인에서 초인류까지 건드리고 지나가는 소재의 스펙트럼에 짓눌리며 생각했다. 다 아는 것들인데 이 소설을 쓴 건 내가 아니야. orz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건 E.H.카였다. 미래가 아니다. 우린 역사가 단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일과 저 일 사이에 어떤 구분이 없다. 벽도 없다. 역사는 좌표 속에 존재한다. 카뮈가 살았던 프랑스와 내가 놀러간 프랑스는 완전히 다른 프랑스다. 시간은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라는 이름 앞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씌어지고 있다는 것. 방에 앉아 글을 쓰는 나는 물론, 잠을 자는 이에게도 흔적이 남는다는 것. 역사는 일방향성을 가진 채 시간적으로 앞으로만 향한다는 것. 누구도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타임슬립이 유행한다고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조선시대로 가거나 미래로 가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재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면 역사의 공간을 넓히면 된다. 시간이 수평이라면 공간은 수직. 내 발걸음 닿는 이곳 뿐 아니라 저곳이나 그곳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방법은 여행 아니면 독서. 직접 발품을 팔거나 누군가 발품 팔아 내놓은 경험담을 책이나 영화로 보고 듣거나. 그러면 그곳에 없었지만 생생하게 다가오는 역사의 한 순간을 만날 것이다.

 

지금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인생 전체에서 역사적 사건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역사의 묘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역사에 기록될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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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역사다
    from 너의 의미 2013-06-27 07:02 
    파리에서 루브르 보다 오르세가 사실상 더 인기있는 것처럼 런던에서 대영 박물관보다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들이 더 익숙한 것은 상대적으로 친숙한 작가의 작품들이 많고 시대적으로도 가까워서다. 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광장의 해질녘 풍경과 비에 젖은 연하늘빛 세상을 좋아했던 만큼 오래 그리웠지만 몸통을 나란히 붙이고 있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포트레이트만 걸려있다는 게 그다지 발길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적 모르는 인물의 얼굴만
 
 
2012-07-26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7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2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로하 2012-08-0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렇게 알찬 글을 올려주시다니~ 전 나름 추리소설 매니아인데, <우아한 제국>, <울프홀>은 처음 보네요. 주로 고전적인 것이나 수사물에 가까운 것만 보다보니 추리소설도 요렇게 다양한 결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네요. 이 참에 한번 훑어봐야겠어요!

아이리시스 2012-08-02 19:42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오랜만이에요. <우아한 제국>이 평은 별론데 스웨덴에서 인기가 많았대요. 그런 소식을 저는 잘 모르지만.. 그래요! 전에 우리 <스트로베리 나이트> SP 공감하고 있었잖아요. 이제 그거 끝난지도 어언......... 시간이 총알 같아요!
 
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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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할 것 같은 건 사르트르가 아니라 나였다. 백지연을 좋아해서 샀던 자기계발서(크리티컬 매스)에는 늘 15도까지만 끓어오르라는 얘기가 반복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14.9999999도에서 포기할 때 나만이라도 0.1111111만큼만 더 끓어오를 간절함과 끈기와 몰입을 가지라고. 몰라서 그런 게 아닌 거잖아. 나는 그 책을 던졌지만 의미를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스물 아홉과 서른이 내게는 그다지 벅차지 않았고, 평균수명과 절명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아갈 일이 더 많이 남은 걸 저주했다. 자기만의 세상에 방을 만들고 들어가 끝내 스스로를 죽이는 간절함을 이해했다. 나는 다만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 지금껏 내가 살 수 있었던 건 용기가 조금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 책은 5년 전 영국 드라마 [스킨스]를 보면서 처음 읽으려고 했었다. 거기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존재를 증명해야 할 기로에서 정신착란을 겪고 있었다. 꿈을 찾아야 했고, 세상을 전복시키려 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약과 춤과 자기학대에 골몰했다. 처음에는 퇴폐적이었다. 영국은 무겁지만 어두운 곳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영국 드라마를 배운 나는 BBC 뉴스보다 먼저 그 어린 주인공들이 생각난다. 자기 삶 앞에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 애썼던 어린 영혼들 말이다.

 

대학 졸업 때까지 내가 욕심낸 전집은 카뮈 뿐인데, 내 20대 안에 카뮈의 사유와 게바라의 용기만 있다면 뭐든 할 것 같았는데, 카뮈만 책장에 나란히 있으면 세상 끝까지라도 갈 것 같았는데, 그의 도시 알제와 프랑스면 그토록 황홀한 여행이 또 없을 것 같았는데, 성큼 다가왔다. 내가, 나라는 존재가, 그리고 사르트르가, 사르트르의 사유가, 사상이, 그가 세상에 뱉어논 <구토>가 구원 같았다. 이 책을 보부아르 두 권(위기의 여자, 제2의 성)을 읽고난 이후 다시 읽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이토록 버겁고 무겁고 아픈 내가 존재의 증명인데, 얼만큼 더 실존의 증명을 배워야 하는지 궁금했다. 구토는 구토를 유발할 뿐, 읽어낸다 해서 그 속에 답이 없건만, 어리석은 나는 답을 구하려 했다. 내민 손이 하염없이 부끄러워졌을 때 그때 깨달았다. 내가 타고 있는 롤러코스터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애초부터 사르트르에 답은 없었다. 그는 단지 그 사실을 전했다. 책 안에는 답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자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내가 갖고 싶은 것에는 형체가 없었다. 아니 불분명했다. 그때마다 구토가 일었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끊었다. 술에는 그래, 말하고 싶지 않은, 말하지 못하는 아픈 추억이 많다. 그 시절 나는 외롭지는 않았지만 지독히 무서웠다. 그러나 잘 살고 싶었다. 자존심과 고집과 나르시시즘까지 고수해온 모든 것들이 차례로 구겨지고 접힐 때, 울지 말아야 할 곳에서 주저 앉았다. 책은 멀어졌다. 20대의 절반은 그렇게 책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읽었다고 했지만 충분하지 않은 걸 아는 건 나 뿐이다. 섹스와 마약에 쩔어있지도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시간이 흘러갔다. 대상도 없이 미쳐있었던 모든 찬란했던 순간을 이제와 책에 양보할 수는 없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혼란으로 겨우 덮었는데 올해 맘 먹은 책 네 권(삼십세, 시지프스 신화, 벨자, 구토)을 서른(만으로는 여전히 이십팔세다)이 절반 남은 시점에서 시작하며 나는 좀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다). 바흐만을 가르쳐준 친구가 있다. 20대 내내 오래 파리와 서울을 오간,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안 자고 일큐팔사를 단숨에 읽어내리던, 실비아 플라스 같은 예민함으로 세상을 견딜 듯했던 친구가 있었다. 전공이 불어였고 파리를 사랑했다. 그애 20대의 절반은 파리였다. 어쩌면 절반보다 더 긴 시간을 파리에서 살았다. 한동안 그를 좋아해서 때로 나는 탐정이 됐었다. 그애가 그의 여자라고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탐정놀이는 생각보다 미련하지 않고 집착스럽지도 않고 포기도 빠른 내 덕으로 오래가지 않았다. 내게 파리의 모든 문학과 예술은 그애로 귀결된다. 무엇을 더 알아야 할까. 이 나이에. 더 알아야 할 게 남긴 했나. 마음이 둔탁해지고 못 가진 것만 보이고 닿지도 않을 질투를 시작한다. 5년 전이었다면 '좋아해요'라고 단숨에 고백했을 것이다. 싫은 티를 숨기기 보다 좋은 티를 숨기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스무살에 이미 배웠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 알고 있던 마음보다는 크고 싶었다. 숨기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말할 용기 아니 용기를 가질 거란 욕망조차도 잃었다. 어른이 되려는 것일까. 어느 순간 가는 세월을 더는 붙잡지 못할 걸 알았고, 더는 물을 것도 구할 답도 없으니 제발 이 착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고작 그것만이 아니, 그것조차도 불가능할 거란 걸 알고 있었으면서.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다. 현재의 일이기도 하지만 무시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니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내 맘을 알아채는 일도 없겠지. 그저 왜 이 순간 내쳐야 했는지, 이제 날 잊었는지에 대해서는 혼자만 생각할 것이다. 미지의 공간에는 아무도 들여놓지 않을 것이고, 달래기 위해 바흐의 칸타타 속으로 침잠할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고 아스팔트가 끓어오르는 아픈 여름에는 아무래도 고백할 수가 없다. 가을이나 겨울이었다면 시끄러운 명동 어느 거리에서 네 손을 잡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사르트르는 오래도록 잊고 있던 묘지기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 때문에 모든 여정을 시작했지만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가 안내하는 파리관광을 고스란히 답습했던 그 여정은 돌아와서야 실망스러웠지만 괜찮았다. 가보지 못한 몽파르나스의 묘지, 그곳에 시대를 앞선 결혼생활을 했던 유명한 지식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고 처음 알려준 그녀를 다시 볼 일은 없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이 구토스럽다. 차오르는 말을 삼키는 것이 어른이 됐다고 믿는 이것이, 그저 몸이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자위하는 이것이, 나도 모르게 놓쳐버린 시간들의 반증이다. 지나간 시간은 없다. 다가올 시간도 마찬가지다. 나는 혼자다.

 

하루, 일생, 지구, 우주. 네 가지 테마로 시간(Time)를 설명하는 BBC 다큐를 틀었다. 이토록 그대로인 나를 자꾸만 다른 무엇이 되도록 강요하는 '시간'이란 괴물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해서. 시간에 얽매이는 삶을 살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시간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진 못할 터였다. 아무 것도, 그 무엇도, 나를 해갈시킬 수는 없다. 모든 것이 불안하게 내 머리 위로만 내려앉는 것 같을 때에는 늘 그랬듯 방법이 없다. 쌓인 신문에서는 종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으르릉대며 싸우고, 간혹 감동적인 사연이 살아가는 이유를 챙겨준다. [신의 퀴즈]의 어느 주 에피소드는 환각이었다. 독성을 가진 식물, 서서히 파괴하는 식물, 치유하는 식물 등 식물들의 세상도 인간사와 같다. 도움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필요한 것과 필요악, 쓰잘데기 없는 것, 나의 무엇을 긍정하고 또 무엇을 부정할 수 있을까. 어떤 식물은 그 향에 노출되면 환각을 보여주는데, 환각 속에서 평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본다. 지금 그 향에 중독된다면 나는 또다른 나를 볼 것 같다. 바닥에 가라앉은 절망과 고독과 질투와 시기, 그런 것들과 마주할 것 같다. 처녀귀신 보다 악마보다 사탄보다 강시보다 훨씬 겁날 것 같다. 알제리의 독립을 적극 지지해 드골과 대립각을 빚었던 사람, 나처럼 남쪽 항구도시에서 살았던 사람, 보부아르와의 결혼생활에서 보통(대부분)의 남자들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를 과감히 내려놓고 삶의 동반자이자 지식인으로서 그녀를 인정했던 사람, 그 무엇보다 자유를 우선했으면서도 책임을 잃지는 않던 사람, 누군가로부터 본질을 결정당하는 게 싫어 노벨상 수상마저도 거부했던 그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내'가 구토라고 말했다. 존재 자체가 구토라고. 존재는 구토를 견디며 앞으로 가는 거라고.

 

"우리는 여기에 있고 우리라는 귀중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거나 마시고 있지만, 존재하는 데는 어떠한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p.209)

 

로캉탱이 사르트르의 페르소나란 걸 부정할 수 없다. 철학교사, 역사연구가, 항구도시 르 아브르, 연금자, 구토자, 내면 연구자까지 로캉탱의 내면은 사르트르의 그것과 닮았다. 아무리 남의 의식이라지만 따라가는 입장이 만만찮다. 어려우면 내면에 처박히든지 외부로 시선을 돌리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자. 외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내면으로 끌어안아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어긋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자. 극단을 택하란 말이다. 소멸시키고 다시 쓰자는 말은 과거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당신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네가 그렇듯 너의 옛날에 나는 관심이 없다. 내 이전에 이미 이름 붙여진 것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연애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쉽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물들은 명명된 그들의 이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사물은 그로테스크하고, 고집이 세고, 거인같이 거기에 있다. 그것들을 의자라고 부른다든가, 또는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려는 짓은 바보 짓일 것이다. 나는 이름붙일 수 없는 '사물들'의 한복판에 있다. 혼자서 말없이, 아무 방비 없는 나를 사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밑에서, 뒤에서, 위에서 나를 에워싸고 있다. 사물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강요하지 않는다. 거기에 있을 뿐이다. 의자 쿠션 밑 나무틀에 한 줄기 어두운 선이 닿아 있다. 그것은 신비스럽고 장난꾼 같은 모습으로 거의 미소에 가까운 것을 띠고 의자를 타고 뻗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미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한다. (pp.234-235)

 

환각은 계속된다. 이런 방법으로 사물을 계속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를 부정하지 않은 채 세상을 부정하려 하고, 이해되지 않는 관념을 이미지로 환기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진정성 결여의 체험이다. 사르트르는 로캉탱이 되어 만나는 모든 등장인물을 전복시킨다. 옳다고 생각했던 윤리도덕적 휴머니즘에도 구토한다. 읽는 나는 무력화된다. 무엇이 구원이고 절망이며, 왜 어떤 것은 잠재적인 반면 어떤 것은 발화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 밤 이름이 없고 그러므로 부재한다.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속절없는 미친 짓으로 자각된다. 누구나 두 가지(선과 악) 모습을 가졌으면서 왜 어떤 사람은 선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악이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이 순간에도 나는 내 모습이 어떨지를 걱정하고 있다. <구토>는 서울대 추천 고교 필독서다. '고교'생은 무얼 느껴야 할까. 당시의 내가 아니 내게, 사르트르가 있었다면, 홀든이 있었다면, 나는 내 좁은 방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까. 제도와 관습에 꽁꽁 묶인 학교를 박차고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었을까.

 

혼란이 술주정처럼 발화하다니, 지금 나는 낭패라고 생각하고 있다. 길어지는 건 생각이 많았다는 증거이자 무슨 생각하는지 몰랐다는 반증이다. 나로서는 이 글을 간추려볼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 사르트르는 글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의식과 사상의 흐름이 이토록 멋지게 형상화된 글을 나는 처음 읽어본다. 이 순간에도 나는 진정성을 잃었다. 환각상태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대화가 없다. 고통이 없고 공감이 없고 간절함이 없다. 내 안에 나는 존재하는가. 얼마나 더 서로에게 상쾌한 바람일 수 있을까. 부르고 부르다 지쳐 겨우 들려오는 메아리에도 귀기울이는 법을 알지 못한다. 권태는 만나지 못한다. 내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시대에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 아니, 이 계절에도 사랑할 수 있을까. 난 이렇게 뼛속 깊은 곳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미치도록 화사한 오늘같은 여름날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청춘과 빛과 희망과 행복을 말하는 모든 것들을 불살라야 한다. 아니면 거창한 사랑을 시작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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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7-2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스파게티 잘 만드는데, 마늘 빵 옆에 구색 맞춰서 두고, 또 적포도주도 한 잔 있으면 더 좋겠고, 그래서 같이 밥 먹어요. 말은 안 나누는 게 더 좋겠네.

(아 이 피하고 싶은 첫 댓글을 또 달게 하시는구먼요.)

아이리시스 2012-07-23 22:48   좋아요 0 | URL
첫 댓글이 아니라 유일한 댓글이에요. 댓글이 하나 뿐이야ㅜㅜ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사르트르한테 있긴 하지만요. 저 지금..<공산당 선언> 읽다가 엄청 좌절모드 됐어요. 벼르고 벼르다 자신있게 샀는데.. 마르크스는.. 이 나이에도 안 읽히는 겁니다ㅜㅜ

스파게티는 다이아몬드값을 치러야 먹을 수 있겠어요. 우리의 물리적 장벽이ㅜㅜ 거기다 경제적 장벽도ㅜㅜ 마늘빵도 댈러웨이님이 직접 구워요? 적포도주도 직접 담가요? 그럼 어디 먹어볼까?!ㅋㅋ 저는 늘 말을 해야했어요 :)

하지만 말은 안 나누는 게 더 좋겠어요222

댈러웨이 2012-07-24 14:34   좋아요 0 | URL
아이 참, 미안해요. 또 무플권장 댓글이 되어버렸어요. 또 비글로 돌려야 하나.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7-25 01:03   좋아요 0 | URL
푸핫, 괜찮아요, 댓글이 다섯 개니까요ㅜㅜ

알로하 2012-07-2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름에 도전하기엔 왠지 어려울 것 같아요.ㅠㅠ 사르트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복잡한 당신! 전 계절탓을 하며 추워지면 읽어보렵니다ㅋ

아이리시스 2012-07-25 01:05   좋아요 0 | URL
전에 몇 번 포기하고 또 도전하고 하는데 그..의식의 흐름을 좀 따라가고 싶은 타이밍이 있어요. 타이밍을 잘 잡으면 보부아르도 참 재밌고 그럽니다, 알로하님. 하지만 다른 작품은 당분간 안 읽는 걸로.

진짜 재밌는 것도 짜증나요ㅜㅜ 너무 더워요ㅜㅜ

2012-07-24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5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5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5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태 2020-03-20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언저리에 남긴 주절거림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에게 닿았습니다. 거침 없이 쓰였으나 기어코 끝까지 내려보게 만드는 이유는 선명한 문장 때문인가요, 나도 구역질을 느끼기 때문인가요. 8년이 지난 당신은 어떤 모습인지 묻고 싶습니다. 많은 것을 잊으셨나요, 아니면 저 언저리에 오랫동안 떠돌 운명을 예감하고 계신가요, 말이 필요없나요.

아이리시스 2020-08-28 22:20   좋아요 0 | URL
여전히 거기, 계신가요. 알라딘에 가끔 오나요? 저는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순응했고 많이 가라앉은 일상을 살아요. 다신 서른 언저리에 했던 생각들로, 저로 돌아갈순 없을 것 같아요. 지금도 꽤 괜찮거든요 : )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에 대해 정성껏 혹은 혼을 다해 말하는 일이 어느새 좀 어려워졌다. 쉽게 읽기와 단편적 쓰기만 가능하다. 읽기와 사색, 글쓰기 사이에서 방황하며 줄세우려한지 한 해 두 해도 아니지만 그동안 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왜 읽는지마저도 희미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쳤다. 시간이 멈춘다. 문장과 책으로 쌓인 벽이 허물어진다. 이 바람을 타고 식민지 청년들이 목숨처럼 읽었던 모든 작가와 책들이 불어온다. 어쨌든 작가 이정명이 윤동주를 말한다면 그건 반드시 읽어야한다는 뜻이다. 윤동주의 시(詩)에도 생(生)에도 관심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뜻이며 당장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언젠가 <절정>이라는 특집극을 보고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에 대해 썼었는데 이 삶은 그보다 더 무겁단 말인가. 아는 게 별로 없다. 오히려 다행인가. 시를 읊조려본다. 그는 스물 아홉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다. 두 시인의 삶이 다르지 않다. 시작부터 먹먹하다. 또 이 시대인가.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삶은 더 팍팍하고 더 불꽃 같고 더 짧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하던 그는 이제 없다. 잔혹하고 끔찍한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일제의 만행과 생체실험, 그의 마지막 1년을 그려내는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서 막막하다. 읽을 수 있을까. 그의 삶을 끌어안기에 이 계절과 시대가 가혹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序詩))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형무소, 삶 뒤에 남겨진 것들의 헛헛함과 팍팍함, 무겁고 퀴퀴한 공기가 전부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날선 짐승처럼 고독했던 한 간수(스기야마 도잔)가 1944년 겨울 어느 날 나체로 천장에 목매달린 채 발견된다. 징병되어 형무소로 온지 3개월 된 신참 와타나베 유이치에게 그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라는 은밀한 지시가 내려지고, 아직 스물이 채 되지 않은 앳된 소년의 형무소 구석구석 탐험기가 시작된다. 슬프고 우울하고 고독하고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제3수용동에는 악질 중의 악질로 손꼽히는 조선인 죄수들이 산다. 그들이 대단한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제 나라를 찾겠다는 투쟁이 겁나 제국 스스로가 이름 붙인 것이다. 모든 기록과 서류를 검토하던 와타나베는 거칠고 난폭한 최치수 일당을 스기야마의 살인자로 내정한 다음, 그의 삶과 수감생활을 하나하나 캐지만 전쟁통의 여느 인생이 그렇듯 뭐하나 뚜렷한 게 있을 리 없다. 수용동 내의 모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라 사실로 쓰여진다. 불리한 진실은 소각되고 유리한 진실이 탄생한다. 다만 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차례로 소동을 일으켜, 들어간 지 3일이면 영혼마저 잃어버린다는 독방으로 기어들어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눈여겨본다. 최치수에게 다가간 와타나베는 스기야마와 최치수 본인에 대해 묻고 들으며 전쟁을 나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영혼마저 내놓은 간수 스기야마의 삶과 죽음에 대한 조각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간다. 그러던 중 간사한 기회주의자 소장에 의해 살인자는 최치수로 낙인 찍힌다. 그는 없는 죄를 인정한 채 사형당한다.

 

누구의 삶이 더 가엾고 슬픈지 논하기에는 시대가 어지럽다. 전쟁에서 승리국이 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일본국과 다른 나라들. 가해자가 누구고 피해자가 누구든 전쟁 안에서 영혼을 잃어가기는 매한가지다. 영혼을 잃으면 곧 생명을 잃는 것과 같다. 와타나베는 마흔이 넘은 스기야마의 고독한 생과 마지막을 추적해가는 한편, 최치수를 비롯한 조선인들에 대한 엄청난 소음을 듣는다. 그는 헷갈린다. 혼란스럽다. 시와 문장과 별과 책을 사랑하는 민족, 힘겨운 노역장에서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늘 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미소마저 띄고 있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나중에 모든 것이 꿈과 희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는 걸 안 순간 그는 전율한다. 영혼까지 하얗던 민족, 전쟁의 적국이 아닌 식민국임에도 제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민족, 조선인들의 모든 문장과 시, 책의 중심에는 매순간 히라누마 도주(윤동주)라는 인물이 존재했다.

 

이 이야기는 혹독하게 스러져가는 전쟁중의 어느 형무소에서 스기야마 도잔이라는 한 일본인 간수의 영혼을 구원한 조선인 시인에 대한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뉠 수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문장'과 '시(詩)'라는 빛으로 슬프도록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던 한 남자와 한 남자의 뜨거움에 관한 것이다. 글이 뛰어난 동주는 온 편지가 검열을 당해 자신들처럼 이 형무소 안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소각될 때, 서러움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종이 위에 쓸 줄 알았다. 독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하염없이 두드리던 최치수 일당은 유약한 외모 속 강인한 생명력을 먼저 알아보고는 음모에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동주는 굴복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동조는 목적은 같되, 방법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를 바보라 놀리던 최치수가 어느새 동주를 맹신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모두 인정하고 떠날 만큼 제3수용동의 동주라는 인물은 크고 빛났다. 자기가 가진 모든 빛을 동주에게 얹어주고 떠난 최치수도 마찬가지였다.

 

동주는 수감동 안 모든 죄수들이 눈물로 쓴 편지를 소각되지 않도록 대필했고, 이를 세상으로 내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스기야마였다. 뼛속까지 악마인 줄로 알았던 스기야마는 날마다 날아드는 동주의 편지글 속에서 봐서는 안될 것을 본다. 두 영혼이 통한 것이다. 그것은 금기시 된 영역이자 지양되어야 할 우정이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희미한 문장과 시로서 우정을, 영혼을, 전쟁을, 이를 제외한 수많은 것들을 나누고 이겨왔다. 스기야마는 동주의 천재적인 시적 재능을, 동주는 스기야마의 악마 같은 외면 속에 가려진 전쟁의 상처와 개인적 나약함을 통찰했다.

 

수용동 안에 들어온 제국병원 의료진과 미도리라는 간호사, 간호사가 연주하는 오래된 피아노, 형무소 안의 유일한 꽃과 희망이던 피아노 반주 맞춰 노래하는 성가단은 조선인을 비롯한 모든 수감동에서 '별'처럼 여겨지는 죽지 않은 하나의 인간성이다. 누구도 말살하지 못할 내면 깊은 곳의 순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온갖 고문과 매질로 독방 생활을 자처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무엇 때문에 동주는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그즈음 이전까지는 없던 의료진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잊혀져가는 기억과 가눌 수 없는 육체, 잃어가는 영혼을 두눈으로 확인할 뿐인 일련의 일들로 스기야마는 갈등한다. 소각해야 할 시(글)와 더 깊이 탐구하고픈 시(글) 사이에서 고뇌하는 스기야마는 나중에 와타나베가 그런 것처럼 동주를 감싸고 보호한다. 죽음을 막아주고 시를 쓰길 부탁했으며, 살아남길 희망했다. 하지만 이들의 간절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은 서서히 부서진다. 단 하루라도 조국으로 돌아가 햇살 아래 바람을 맞으며 별을 바라보고 싶었을 이들의 한숨과 눈물과 희망이 행간마다 너울댄다. 꿈처럼 아득하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이, 말살되어간 육체와 영혼과 모국어와 문장들이, 자신이 쓴 시로 단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냉전시대에 희생당한 청년의 꿈이 바스러져 간다. 문장과 단락과 페이지마다 살아숨쉬는 이들의 영혼이 아우성치기라도 하는 듯.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아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시는 감동에 감정을 더한다. 릴케와 고흐와 프랜시스 잠과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 <몬테 크리스토>와 <삼총사>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이 소설을 관통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3수용동에 수감된 이들에게는 단 한 권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영혼마저 팔았을 그들에게 책은, 불꽃처럼 사라져가거나 냉혹한 손길에 소각될 가지지 못할 유일한 희망일 뿐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별이 없었다. 형무소 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도 없었다. 안과 밖이지만 전쟁 속에 갇힌 건 같았다. 동주는 단 2년을 선고받았을 뿐인데도 영영 민족과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짐승같은 타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고 있지 않았다. 그 순간에 별은 어디를 비추고 있었을까.

 

한 권이 아니, 두 권의 문장 전체가 시처럼 반짝인다. 그들은 죽어 시가 된 것인가. 다소 아스라이 그려진 실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하지만 진짜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 끔찍한 이야기를 언급할 자신이 없다. 와타나베가 밝히고자 다가간 진실은 우리(조선인)만이 피해자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망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으니까. 대체 스기야마와 미도리와 와타나베가 이미 벌어진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뭐가 있었겠으며, 있었다한들 가능했을까.

 

살려준다는 의료진 말에 그들은 의무병동으로 옮겨져 주사를 맞았다. 처음에는 약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독인 줄 알았다. 어떤 이는 왜 죽는지 모른 채 죽어갔다. 굵은 주사기가 팔뚝을 뚫고 약물이 몸 속으로 흘러들어갈 때, 그가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짓밟는 거라는 사실과 영혼을 갉아 먹히고 있다는 사실과 곧 모든 시와 기억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매 순간 가늘게 부서져내린 희망이지만 이 순간에도 희망을 찾아 주사와 피아노 반주의 노래소리를 바꾸었을 그의 마지막 희망이 내게는 다급한 절망이란 게 멀쩡한 정신을 좀먹는다. 밤하늘의 별은 당연한 것이 아닌데도 아이들의 연날리기는 일상이 아닌데도 자라는 풀과 웃지 않는 벌레와 다정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던 어머니의 목소리와 쓰다듬는 손길은 일상이 아닌데도 모두가 그런 줄 안다. 단 한권의 책을 갖기 위해 지하로 가는 땅굴을 파고, 자유로운 바람과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보기 위해 즉시 총알이 날아와 박힐 상황을 무릅쓴 채 나가려 했던 이들의 시간을 이제와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먹먹하다. 내 평온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라는 뼈저린 사실을 왜 우린 종종 잊는 걸까. 어째서 더 죽을 힘 다해 살지 못할까. 왜 이루지 못할 일에 매달려 불평하고 왜 바꿀 수 있는 일은 쉽게 포기해버릴까. 암울한 시대도 이용가치는 있다.

 

겨울을 나기만 하면 또 한철을 날 수 있다던 감방 안의 작은 희망, 부스러기를 붙잡고 한마음으로 책과 책을 말했던 민족이 바로 우리다. 이제와서 위기철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잘 써먹는 위기도발, 한국공격(속터지는 독도발언), 내부결집으로 몰아가고 싶진 않다. 피를 갈아채울 순 있어도 그렇다고 출생의 비밀을 가릴 순 없다. 우린 강했고, 타국을 공격하지 않고도 그 누구보다 용기있게 싸워 영혼을 불살라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장렬하게 꺼져간 불꽃 같은 민족이다. 잘못은 글과 말과 조국과 어머니를 가진 민족의 몸과 영혼을 태워 없애기만 하면 깡그리 소각될 거라 믿었던 어리석었던 이들에게 있는 것이고, 비록 수용동 담장벽을 넘지 못했던 초라한 연이지만 연을 만들어 날려보려 했던 이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대서 희망을 탓할 수 없었던 이들은 절망 속에 든 희망을 끌어안고 전사했다. 시는 종이 위에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정신으로 쓰는 것.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다고 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일본이라는 제국은 몰랐고, 하얀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민족은 알았다. 그래서 이겼다.

 

바람은 우리가 바람인 줄 모르는 동안에는 바람이 아닌가. 하물며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말을 건넨다. 말을 건네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없이 바스러져간 조선인들과 담장 밖에서 그들을 지켜주던 쓸쓸한 별과 갇힌 이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모래와 흙을 하염없이 실어나르던 바람은 모두 우리 편이었다. 육체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은 영원히 조국을 비추고 또 지킨다. 시인 윤동주의 짧은 삶과 남겨진 시는 엄청난 풍파를 겪고 살아남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여름밤은 책 한 권을 읽기에 지나치게 짧다. 윤동주의 삶은 여름밤에 삼키기엔 너무나 크고 무겁다. 그리고 벅차다. 시가 반짝인다. 문장의 결이 종이 위에 녹아내린다. 그 날 사라진 별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바람과 별과 시가 보일 것이다. 문장은 더이상 그들을 가두지 못할 것이다. 죽음으로 찾은 자유가 오늘 밤에도 그들을 불러내 평소보다 더 밝은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있다고, 자유롭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으스러져 울어버릴 것이다. 오늘밤은 어젯밤과 다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는 새로 씌어야 하며, 이 소설은 누가 죽고 죽이는 지를 떠나 시대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되새기며 읽어야 한다.

 

그는 만으로 고작 스물 일곱 되던 해 시대를 등지고 조국을 안은 채 수도없이 많은 작가와 책을 탐하고 숨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을 뱉어낸 천재시인이었다. 소설 속에 아름다운 문장이 쏟아지지만 모든 문장은 이 천재시인의 삶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시(詩)는 가슴에 박혀 마음결을 어루만지는 가장 고결한 언어다. 시는 용감하고 잔인하다. 뒷이야기는 훨씬 더 잔혹하지만 그게 바로 그가 속했던 시대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이토록 쓸쓸한 이야기가 당신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다면 이 시대 소설은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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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7-24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의 이 폭탄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 것 같애요.
이정명 그렇게 좋아요? 그렇게 단호할 정도로? 품어야 할 작가가 또 늘어난 거에요?

(근데 서재 왜 이렇게 조용해요? 벌써 피서 시즌이에요?)

아이리시스 2012-07-25 00:56   좋아요 0 | URL
피서시즌도 맞지만(쫌 이른데?!) 더워서 피서를 부르는 날씨예요. 폭염이에요. 해운대 바닷가 마실가면 해변의 여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인파에 깔려서 짜증만 나는데..

폭탄 에너지!(ㅋㅋㅋ) 리뷰랑 페이퍼를 묵혀서 쓰면 이상하게 길어지네요. 요즘은 쓰다만 게 너무 많아요. 이정명보다는 윤동주가 좋아요. 예술혼이 살아있고, 시대에 시가 어떻게 타인의 신념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문학전공자나 문학애호가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에요!

소이진님이 없어서 그래요. 이 더운데 어린이 소이진님은 대구에..( '')

맥거핀 2012-07-2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주였나, 이광수였나, 다른 누군가였나 기억이 잘 안나는데, 왜 친일을 했느냐는 물음에 일본이 그렇게 빨리 패망할 줄 몰랐다,였다죠. 하기는 그 때 많은 지식인들조차도 일본이 그렇게 폭탄 몇 방에 무너질 줄 알 수가 없었겠죠. 그러니 반대로 보면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이 진짜 대단해보이기도 해요. 거의 희망이 없어보이는 일에 모든 것을 걸은 걸테니까요. 글을 읽으면서 시를 읽으니 시가 좀 달라보이네요.

아이리시스 2012-07-25 01:01   좋아요 0 | URL
그렇죠..이광수 작품들을 저는 정말 좋아해요. 카프문학 다음으로요. '시공사'에서 나온 책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입할 때가 있거든요. 이런 이중성. 내가 닥쳐보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네요. 독립운동 했던 분들은 진짜 대단하지만요, 그게 국가적 차원에서지, 개인적 차원으로는 더없이 불행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본지진났을 때 별로 슬퍼하지 않았어요.(응?)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국민들이 고생하듯, 과거책임을 지는 거죠.

이 책이 완성도와 문학성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못하는데요. 정말로 시가 다르게 읽히고, 가슴에 콕 들어와박혀요. 같이 보는데 이 책이 [제노사이드]를 이겼어요. 마음속에서 일본소설을 밀어냈어요!(진짜 주관적인 감상이다..)
 
피렌체에서의 이틀 밤
로마제국, 영광의 날들에 바치는 글

 

 

세상에 단 하나, 혼자 떠나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 소도시가 있다면 그건 베네치아다. 산타루치아역으로 통하는, 들어서자마자 짠 비릿내가 훅 끼쳐오는(나는 부산을 떠나본 적 없는 부산사람이라 다른 지방 사람들이 부산역에 내릴 때 그렇더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정말로 그랬는데 이건 과장이 아니라 그곳은 기차역 바로 앞이 바다니까 당연한 것이다) 리알토 다리와 바포레토와 곤돌라, 산 마르코 성당과 카사노바의 도시. 마지막으로 물의 도시. 그곳은 온 전역의 유럽 배낭여행객들을 쏟아내는 유럽 아니 이탈리아의 심장 같은 곳이다.

 

어쨌거나 피렌체도 쓰고 로마도 썼으니 이번에는 베네치아다. 갑자기 아무 것도 없이, 어떤 방향성도 없이 [이탈리아 3종 세트]를 완성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이 잘 나타나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의 토마스 만의 소설집으로부터 시작한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이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29년 노벨상 수상작) 같은 장편도 훌륭하기로 유명하지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는 우수한 단편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의 문학읽기에 도달했을 때에야 읽는다, 헤세나 괴테처럼 중학교 때 읽는 경우는 잘 없다. 예술과 타락, 순수와 퇴폐를 예술의 본성과 연관시켜 논쟁,회상 형식을 빌어 그리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동경하며 예술에 대한 뜨거운 고민을 시도하는 예리하고 예민한 토니오와 그의 질투와 경멸을 받는 속 편한 한스 한젠의 대립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토니오 크뢰거]는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분량이 짧고 곱씹으며 여러 번 읽을 만한 '예술과 예술가의 고민'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두말 할 필요 없이 풍경과 영상미, 이미지가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압도하는 영화도 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떠올릴 사람이 있다면 단연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다. 카사노바는 1725년 4월 2일 베네치아 출생으로, 17세 때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는 약 1400명의 여인의 체취를 탐했으며, 왕의 딸과 바람을 피운 죄로 두칼레 궁전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방에서 재판을 받고 궁내의 감옥으로 가는 탄식의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넌 죄수 중 단 한 명이 탈출했는데 바로 카사노바다. 유일한 탈출죄수였던 그는 이후 온 유럽을 휘젓고 다닌다. 카사노바가 간 곳을 따라 유럽을 여행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 그는 희대의 천재였으며 온갖 직업을 전전할 정도로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다 그렇듯 죽음마저 화려하지는 않았다.

 

 

 

 

 

 

 

 

 

 

 

 

 

 

슈니츨러의 [카사노바의 귀향]은 카사노바의 노년을 다룬다. 젊은 날이 아무리 화려해도 말년까지 찬란하기 어디 쉽던가. 그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하는 고민과 낙담 같은 것들을 소재로 썼다. 덧붙이자면 저기 표제작 [꿈의 노벨레]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부부로 출연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이다.

 

베네치아에 가보기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신혼여행지를 베네치아로 정했을 것 같다. 신혼여행의 특성상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베네치아의 전망 좋은 방을 물색해두고 거기서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이런 영화 한 편 찍는 건(안되겠지;;) 어떨까. 신혼여행지에서의 갈등이 영원한 이별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영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다.

 

 

 

 

 

 

 

 

 

오랜만에 셰익스피어로 가볼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4대 비극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템페스트>지만 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고전, 맞다, <베니스의 상인>!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동시에 나오던 영화를 심야시간대에 스크린으로 보며 꾸벅꾸벅 졸던 기억이 난다. 장황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잠에는 이길 수가 없던 셰익스피어. 어떻게 옮겨도 그 자체로 훌륭한 시어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럼 이번에는 액션으로 가볼까. 물 위 액션씬이 멋졌던 영화, 미니 쿠퍼로 수상스키를 즐기는 것 같던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던 {이탈리안 잡}은 베네치아 로케와 범죄액션에도 불구하고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액션이 그다지 취향이 아니다.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샤를리즈 테론과 에드워드 노튼은 마음을 좀 움직이게 하긴 하는데.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의 이 재미없는 영화 {투어리스트}는 배경만 맘에 든다. 여행 생각 그것도 비행기 탈 생각 0%일 때가 여름인데, 조금 심장이 뛰기도 하는데. 대체 이 주인공으로 이런 영화는 뭐하러 만드는지 모르겠다. 투어리스트는 관심없고, 이탈리아 일주는 언젠가부터 이루지 못할 듯해서 더 간절한 꿈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써보는 거지. 오로지 자기만족으로. 모든 에세이와 여행에세이는 자기만족적 나르시시즘 80%와 복합의 20%가 더해져 탄생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만 먹고 살 수 없을 때 딸기 아이스크림 한 입은 굉장한 행복이 되기도 한다. 모든 책이 의미있고 어렵고 또 내 마음에 들 필요도 없으니까. 정 맘에 안들면 안 사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내가 대부분의 여행에세이를 항상 좋아한다. 좋아할 만하게 생겼고, 막상 사면 또 좋아서 안고 다니면서 본다. 책이 나온 이유와 경위를 잘 알기 때문에 평범한 기대치가 정해지고 그 기대치만 충족시켜주면 별문제가 없다.

 

 

 

 

 

 

 

 

 

 

 

 

 

 

 

아, 이 아름다운 수상도시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라기엔 뭣한데)도 있다. 베네치아의 명소인 라 페니체 오페라 극장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과 18세기 베네치아의 뒷골목을 재현하며 브래드 피트의 영화 {세븐}과 동일한 구조로 가는 <단테의 신곡 살인>은 유명한 소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썩 재밌다는 평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바흐가 존경하다못해 경전으로 삼았던 비발디는 17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베네치아에서 [사계]를 듣는다면 영원히 해가 뜨지 않거나 빛이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

 

 

 

 

 

 

 

 

 

 

 

클래식 음반은 다 이렇게 앨범 자켓이 예쁜 건가. 사본 적이 거의 없어서 모르겠다. 오랜만에 클래식의 세계로 풍덩 빠지기엔 여름이 너무 덥지;;

 

동양의 이탈리아 역사연구가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에 관한 이런 책들을 썼다. 내가 이탈리아, 그것도 베네치아를 탐한 지는 아주 오래 돼서 이 책들은 예전에 도서관에서 다 읽은 책 같은데 도서관에서 읽은 책을 샀을 리 없으니, 이제 사야 할까. 그런데 이 책들이 그렇게 완성도 높은 인문서들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제대로 긁어주는 베네치아 이야기인 건 분명한데.

 

 

 

 

 

 

 

 

 

 

 

 

 

 

 

최인호의 <상도>와 쌍벽을 이루는 상인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정말 어릴 때 읽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책 대여점이 한창 시작과 동시에 붐이 일던 때, 대부분 만화책을 빌려봤지만 이렇게 당시 나온 소설들을 읽기도 했었다.

 

 

 

 

 

 

 

 

 

작가는 네덜란드의 거장 루벤스가 그린「한복을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을 썼다. 책소개 글은 이렇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이탈리아에 건너가 세계무역을 주름잡은 한국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일대기와 국제 경제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후손 유명훈의 끈질긴 노력을 따라가다 보면 비범한 상재와 진정한 상도를 발휘하며 온갖 역경을 지혜롭게 극복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17세기 거장 피터 폴 루벤스가 조선 사람을 모델로 그린 그림, 이탈리아 사람 프란체스코 카를레티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조선인 청년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는 기록, 남부 이탈리아의 알비라는 작은 마을에 코레아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 팩션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

 

베네치아는 낭만과 꿈 뿐만 아니라 각국의 상인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던 중동 교역의 중심지였다. 13세기 이곳 출신의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는 일찌감치 동방여행을 떠나 <동방견문록>을 내놓았다. 우린 서방을 못 가서 야단인데 그 물 좋고 볕 좋은 곳에서 태어나놓고 왜 동방으로 여행을 왔을까. 그가 동방에 대해 느낀 건 우리의 것과 많이 다를까. 이 책 역사책에서 들을 때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는데 오, 좀 궁금해졌다.

 

 

 

 

 

 

 

 

 

그곳은 멜로와 로맨스, 사랑과도 참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별하기에 좋은 도시는 아니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보면서 어떻게 이별하는가. 아름다운 어떤 장소에 갇힌 것처럼 작고 아담하고 조용한 이미지는 환상을 북돋기에 충분하다. 실제로는 작은 도시로 엄청난 여행객들이 공항과 기차역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늘 본섬의 바포레토 주위가 시끌벅적한데 감수할 만하다. 가로등 불빛만이 밝게 비추던 은은함 속에 드러나던 물 위의 도시를 훔치고 싶었다. 이탈리아 로맨스를 시작하려면 피렌체도 로마도 아닌 베니스에서. 나는 밀라노 로맨스를 꿈꾸고 있지만. 그리고 이 영화.

 

 

 

 

 

 

 

 

 

 

 

 

 

 

데이빗 린 감독의 영국영화. 1955년작. 줄거리는 이렇다.

 

이태리 본토와 베니스를 연결하는 철교 위로 한 열차가 달리고 있다. 열차 안에서 오랫 동안 비서일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혼자서 유럽 여행을 하는 제인(Jane Hudson: 캐서린 헵번 분)은 차창 밖의 풍경을 8밀리의 카메라로 열심히 담아내고 있다.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낮에는 모든 외로움이 사라지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밤거리에서 본 연인들의 모습에 그녀는 외로움에 지쳐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광장 한구석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중년의 이태리 사나이인 레나또(Renato Di Rossi: 로사노 브래지 분)를 만나게 된다. 제인은 외면하지만 골동품점에서 다시 만난다. 만남의 순간이 너무 우연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레나또에게는 별거 중인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의 사랑은 베니스를 뒤로 하여 아름답게 막을 내린다.

 

[출처-네이버 영화]

 

처음 들어보는 영화지만 베니스, 유럽 여행, 기차, 만남, 우연, 사랑, 오오, 외도까지. 아름답게 막 내리는지는 봐야 알겠고,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인도로 가는 길}까지 내가 좋아한 영화만 만든 감독이니, 이 영화도 분명히 좋을 것이다.(오랜만의 장담)

 

 

마지막으로 베네치아 하면 카니발이다. 내년 카니발이 2013년 1월 26일부터 2월 12일까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고,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아니 세계 최대의 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Carne vale : 고기여, 그만'이라는 뜻이다. 내가 베네치아에 갔을 땐 이 축제가 이틀 정도 남은 날이었는데 무식해서(!) 그걸 꼭 봐야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달랑 가면 하나 사서 그냥 갔다. 어디로? 피렌체로. 피렌체에서 로마로.

 

베네치아 카니발(Venezia Carnival)

 

1268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사순절의 2주 전부터 열린다. 카니발 기간에는 민속놀이, 황소 사냥, 곡예사의 가장 무도회가 진행되며 이를 보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과 형형색색의 고깔모자와 가면들로 도시의 좁은 골목마다 가득 찬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가장 오래된 의식은 사순절 전 목요일에 행해졌다. 이날은 일종의 전쟁을 위한 공물인 황소 1마리와 12마리의 돼지가 아퀼레이아 총대주교에 의해 준비되었고 잔인한 의식이 끝난 뒤 대중 앞에서 그 동물들을 죽였다. 이 의식은 12세기에 있었던 베네치아공화국과 아퀼레이아 총대주교 관할국의 대결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고관들 앞에서 행해졌으며 칙명에 의해 1525년 중단되었고 황소 한 마리의 목을 자르는 단순한 행사로 바뀌었다.

카니발 기간 동안에는 아퀼레이아에게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경축 행사 등 많은 행사와 말을 이용한 스포츠, 공중곡예, 민속전시회가 벌어지는데, 이것들은 숙련된 광대와 '콤파니 델라 칼자'라는 단체에 의해 진행된다. 이들은 여러 개의 축제행사를 계획하고 공연하는 활동을 하며, 각 '콤파니아'는 귀족 혈통의 회원 20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베네치아 카니발은 이탈리아 최대 축제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축제에 속한다. 이 기간 동안 시 당국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그중 산마르코 광장에서 펼쳐지는 가면과 의상대회에서는 베네치아의 옛날 가면과 의상, 현재의 가면과 의상이 출품되어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장을 이룬다.

 

출처-네이버 테마백과사전 


 

 

다들 구글링하는데 버릇이 돼서 나도 모르게 자꾸 네이버에;;

 

내가 관심있는 게 바로 이 가면축제였고, 있는 집 아니 높은 집 파티 때 로맨스 소재용으로도 빠지지 않는 이걸 꼭 해보진 않더라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쓰지도 못하고 장식용으로 겨우 한국까지 데려온 검은색과 흰 색이 섞인 석고 가면 하나가 거실 피아노 위에 아직도 놓여있을 뿐이다. 요즘은 베네치아 가면 축제 보다는 스페인 토마토 축제에 더 가보고 싶다. 온 몸에 토마토 칠갑 아니 범벅되면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고, 섹스의 로망 요플레랑 비슷한 기분일지도 궁금(응?)하다. @.@

 

 

예전에 미드에 이런 게 있었다. 다 보지 못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카니발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색적이고 칙칙한 느낌이 이질적이어서 두려웠던 적이 있다. 가면이란 게 생각해보면 되게 무서운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도 가면 쓰고 왔고, 보통 나쁜 짓 할 때 스스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하는 법이니까. 얼굴을 가리면 아무 일이나 나쁜 짓도 막 할 수 있으니 가만보면 로맨스의 소재가 아니라 범죄의 소재로 딱인데, 것도 좀 고리타분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내용은 전혀 낭만과 상관없는 스릴러/공포인데 당시 좀 보다가 시청률 때문에 급하게 시즌이 마감돼서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걸 보고는 뒷전으로 미뤘다. 한창 빠져있는데 마무리도 없이 급하게 끝내니, 욕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놈의 돈이 사람 잡는구나, 했었는데 다음 이야기 궁금하다고 죽을 일도 없겠지만 만약 죽을 것 같아지면 안 죽기 위해 작가라도 찾아가야 하는건지 어쩔 건지는 각자 알아서.

 

 

 

 

 

 

 

 

 

 

일단은, 과거의 찬란함을 뒤로 하고 그 많은 우아한 역사를 지닌 채 늙어가는 이 도시 '베네치아'의 좋은 점만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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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마제국, 영광의 날들에 바치는 글
    from 너의 의미 2013-06-27 06:59 
    시오노 나나미의 <살로메 유모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원래는 읽다만 <로마인 이야기>를 끝까지 보려고 했지만 워낙 스펙타클한데다 길기도 길고 다양한 캐릭터의 복합적이고 연속적인 등장으로 심심할 틈 전혀 안 주는 이 책도 어쩔 수 없는 인문서이다보니, 한 눈 안 팔고 들입다 끝까지 팔 수는 없었다. 20대 초반에 읽으려던 것보다 확실히 편해지고 이해의 폭도 커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읽는대로 꿀꺽꿀꺽 소화가 잘 되는 건 아니었다.
 
 
2012-07-18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3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7-1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니스에서 죽다...토마스 만이 동성연애자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죠.폴란드 출신 미소년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 아! 미소년은 미소녀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사실임을 느낄 수 있죠.또 영화에서 그 폴란드 소년역 맡은 소년도 정말 미남이죠.

아이리시스 2012-07-23 15:24   좋아요 0 | URL
새벽에 막 댓글을 띄엄띄엄 달았나봐요ㅜㅜ 토마스 만이 동성애자였다면 으헉, <메피스토> 쓴 그 작가아들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히히히히. 노이에자이트님이 일깨워주셔서 저도 언뜻 생각나긴 한데 그 아들작가를 알게 되고도 전혀 인지 못했네요. 뭐, 동성애자들에게도 언제나 아들이나 딸이 있지만요^^

비로그인 2012-07-1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의 괴물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저 누구라고 말 안 했어요!) 그런 글이네요. 이번에는 베니스의 세피아빛 풍경화가 연상되는걸요. 저는 언급된 작품들 중에서 토마스 만을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다짐만 몇 달 째 하고 있어요. 토마스 만은 <베니스에서의 죽음> 말고는 다 잘 안 읽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아름다운 소년과 강렬한 욕망이나마 있어서 잘 읽힌 듯. 그나저나 아이리시스님은 정말 '생각하는 어린이' 같아요. 너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으면 딱 잘라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궁무진한 그런 꼬맹이요. 언제 한 번 베니스에 가보고 싶네요. 나룻배 타고 도시를 휘젓고 싶어요.

댈러웨이 2012-07-19 00:34   좋아요 0 | URL
누가 아이님 괴물이라고 그랬어요??? 이쁜 괴물??? 전 아니에요. 전 마르지 않는 샘물같다는 그런 이쁜 말만 했어요.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7-23 03:00   좋아요 0 | URL
열심히 먹어야 돼요, 수다쟁이님은. 아름다운 걸로만 예쁜 걸로만. 다른 거 잘 안 읽힐 거예요. 저 좀 고생했어요. 짧은데 책도 옛날 거고(2005년판 열린책들 페이퍼백) 짱나요! 저는 '생각하는 어린이'가 될 거예요. 저한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봐요.. 저랑 똑같이 생긴 꼬맹이를 보내줄게요. 그래서 한 백가지 정도 대답해줄게요! 나룻배 같이 타면 좋겠어요.

댈러웨이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예쁘지만 괴물도 뭐. 예쁘니까요^^ 나는 글도 잘쓰고 예쁘고, 착해..아하하. 밤되면 잠을 자야 해요ㅋㅋㅋ

맥거핀 2012-07-1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베네치아랑 베니스랑 다른 데인줄 알았어요!(무식) 근데 이상하게 베니스하면 좀 없어보이고, 베네치아하면 왠지 귀족 느낌. 베네치아하면 '씨받이'죠.^^(베니스 영화제 강수연 여우주연상ㅋ)

신혼여행 가시면 뭐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다 가시면 되죠. 저는 이태리하면 피렌체가 좀 친근감..문학 뭐 그런 거 때문이 아니구요. 여기 연고지 축구팀이 AC 피오렌티나 거든요. 축구 게임할 때 유니폼이 이뻐서 주로 선택하던 팀..ㅋ

아이리시스 2012-07-23 02:56   좋아요 0 | URL
제 남자친구는 그때가 스물 세 살이었나, 제가 한창 베네치아를 꿈꿀 때였는데 저더러 거기가 어느 나라에 있냐고 했어요. 베네치아랑 베니스는 이름이 다르니까 다른 도시라고 아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닌 거예요ㅋㅋㅋ 그 씨받이 오랜만에 보고싶네요. 저는 이상하게 강수연이 좋아요.

그쵸.. 축구는 잘 모르지만 피렌체도 연고지구나..뭐 이런 느낌ㅋ 그런데 이탈리아로 신혼여행 가면 진짜 웃기겠어요. 신혼여행 온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요. 너무 더럽고 너무 더울 거예요. 저기 영화 신혼여행 가서 헤어지는 거 이해감. 더럽더라고요, 저 나라가.

그나저나 씨받이.......... 요즘 베니스 영화제 무슨 영화가 좋나요? 하긴 하는지 작품이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맥거핀 2012-07-25 00:17   좋아요 0 | URL
소위 유럽 3대 영화제 중에서 칸 빼고는 베니스나 베를린은 요새 고만고만한 것 같아요. 작년 베니스나 베를린 수상작들을 봐도 크게 화제성을 끌지 못했구요. (뭐 굳이 비교하자면 베를린이 좀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베니스는 베를루스코니 때문에 너무 말아먹어서..) 8월달에 베니스 영화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작품들이 화제를 끌지 궁금하기는 하네요.

아이리시스 2012-07-25 00:43   좋아요 0 | URL
8월ㅜㅜ 아 더워ㅜㅜ 겨우 칸 영화제나 오스카상 찾아보는 걸로 영화 본다고 생각했었는데 베니스랑 베를린 갑자기 확- 다가오네요. 저는 조만간 씨받이..... 그리고 임권택 감독이 찍은 강수연 영화들을 봐야겠어요!

cyrus 2012-07-1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읽어본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 중에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제일 좋았어요. <토니오 크뢰거>가 만의 대표작이지만 위의 말없는수다쟁이님 말씀처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에 다른 작품은 이상하게도 제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 그리고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도 보고 싶어요, 영화 중간에 삽입된 말러의 음악도 좋다던데.. 베니스도 한 번 가보고 싶고요.. 오늘 아이리시스님의 글은 저에게 베니스와 관련된 욕망만 잔뜩 주었네요 ^^;;

아이리시스 2012-07-23 02:51   좋아요 0 | URL
<마의 산>은 제가 아파서 요양가거나 절에 수양하러 들어가야지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읽은 게 많지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저 소설은 베네치아만으로 먹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저 단편 때문에 베네치아 방문한 1인 여기 있어요!^-^

영화가 (냉정히) 좀 지루하지만 뭐, 예술영화니까요 :)
얼른 놀러갑시다! 더워요ㅠ

2012-07-1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는데, 왜 베네치아에서 딸기향이 나는지 모르겠서요..(수정> 왜 나는지 알았습니다!! 이런 바보같은 댓글, 쏘리~. 킁) 그나저나 밀라노 로맨스를 꿈꾸고 계시군요. 구체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꿈입니다.ㅎㅎ
저는 부산이 좋아요. 제가 도시 3종세트를 하면 반드시 넣고 싶은 도시지만, 사실은 부산 경험은 정작 부족하고, 그냥 머릿속의 낭만 도시이지요.^^
언젠가 아이님이 부산 좀 한 번 훑어주세요. 아주 지대로일 듯. (아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이 또 엄청 많지 않나요? ㅎㅎ)

+ 흥! 벌써 베네치아의 아침과 밤과 낮을 경험하셨군요! (질투)

아이리시스 2012-07-23 02:49   좋아요 0 | URL
푸하, 그래서가 아니고 저렇게 쓰면 달콤한 내용인가 싶어 막 클릭해보잖아요.(나꼼수ㅋㅋ)
밀라노나 베로나가 예쁠 것 같아요. 세 도시는 가봤으니까. 원래 잡은 물고기에겐 먹이를 안주는 법.

자, 섬님 도시 3종세트 합시다! 원래요, 경험이 많다고 다 아는 건 아니랍니다. 그곳이 일상이 되고나면 보이는 건 정작 여기나 거기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딱 한 번, 잊혀지기 전 두 번 갔을 때 그 도시에 대해 적당한 낭만과 현실을 섞어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부산.... 해운대,광안리,태종대,자갈치,송정, 이런 거 바래요?ㅋㅋㅋ
(올드보이에 경성대부경대 앞이 나오는 건 알아요. 그 외에는 잘 몰라요ㅠㅠ)

베네치아는 빠져죽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물이 더럽긴 하지만=3333


카스피 2012-07-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베네치와 베니스가 다른 도시줄 알았어요(2)^^

아이리시스 2012-07-23 02:45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ㅎㅎ 근데 베네치아랑 베니스가 이탈리아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뭐 모를 수도 있으니까.. 저는 비엔나=빈 인게 더 놀라웠다고요=333

페크pek0501 2012-07-2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오 크뢰거- 를 여기서 보다니 반갑네요. 글쟁이들은 다 이렇구나, 하면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작품이에요. 그래서 리뷰까지 썼지요.

공부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소설에 비하면 희곡이 빨리 읽기 힘들긴 하지만 명언 같은
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ㅋ

아이리시스 2012-07-23 02:44   좋아요 0 | URL
저는 독일소설이 영 취향에 안 맞는지(그래도 괴테 좋아요! 괴테는 나의 힘) 읽을 때마다 버벅대고 어려워해요. 독일문학에는 제가 바라는 낭만이나 서정이 별로 깃들지 않은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이고 좋아하지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도 다 어려운 작품 같아요.

무슨 공부라 셰익스피어를 다 찾아읽을 정도입니까? 논문 쓰셨어요? 연극무대에 환상이 있어요, 희곡은.. 다가가지 못할 꿈이죠! 희곡 중에 좋은 게 많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7-2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만 아들이 크라우스 만이죠.혹시 가지고 있는 <메피스토>는 몇 년 전 번역된 것입니까.80년대 번역본의 역자해설이 더 자세하고 좋은데...나치잔당들이 크라우스 만이 죽은 후까지 괴롭힌 것을 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수 있죠.

아이리시스 2012-07-23 22:52   좋아요 0 | URL
펭귄판이죠! 얼마 전에 알았거든요. 근데 나치와 연결된 걸 보고는 단순히 악에 대해 다루는 게 아니구나 하고선 휙- 던져버렸어요. 읽은 게 아니랍니다, 노이에자이트님. 자세한 역자해설이 궁금해지네요. 뭔가 어려워서 영화를 준비해뒀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7-2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나치와 연결된 걸 보고 휙 던져버리다니...왜 그러셨어요? 서양엔 나치와 관련한 소설이나 영화가 정말 많은데...

아이리시스 2012-07-25 00:41   좋아요 0 | URL
아..저 혼나는 거예요?(히히히) 알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님 믿고 저 <메피스토> 읽을 겁니다! 불끈! 나치가..너무 더워서요.. 순간 뫼르소 마음가짐으로 던져버렸죠. 총 안쏜 게 다행..(휴..)

노이에자이트 2012-07-25 16:26   좋아요 0 | URL
저는 <이방인> 읽을 때 알제리 사람들이 카뮈를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아무 이유없이 왜 알제리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아이리시스 2012-07-25 23:32   좋아요 0 | URL
카뮈가 프랑스인인데 알제리 독립을 적극 지지했으니 그걸로 용서를..

노이에자이트 2012-07-27 16:42   좋아요 0 | URL
카뮈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지 않고 일종의 자치제나 연방제를 내세워 알제리 독립운동가들과 사르트르 등의 좌익지식인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죠.특히 알제리 해방전선의 무장투쟁을 비판해서 사르트르와 결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그래서 카뮈가 알제리 독립에 대해 애매한 자세를 취했다는 지적이 많죠.

아이리시스 2012-07-27 21:34   좋아요 0 | URL
아..(한숨) 저걸 쓰고 이틀동안 들어오질 않았어.. 노이에자이트님 땡큐. 저 그..사르트르랑 카뮈를 착각..사르트르와 카뮈? 카뮈와 사르트르? 그 책 읽었는데..논쟁이 자세히 나오던데요?으흐흑 (댓글은 생각을 좀 하고 쓰라고-_-)

이상했던게요, 어떤 사람이 비난해야 할 일에 가만있는다고 그걸 욕할 수 있나요? 제 생각에 사르트르는 급진적이었고 카뮈는 현실적이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겠죠. 초창기에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걸 보면 자치제나 연방제 주장이 곧 독립반대로 이어지는 입장은 아닐 듯한데 침묵한 걸 두고 모국인 프랑스편을 든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건 해석하는 사람 마음. 그래서 침묵이나 중립은 언제나 이쪽저쪽으로부터 우유부단하다고 돌팔매질을 당하는 거지만.

대부분은 가만있는 게 편하고 입장을 변명함에 있어 도움이 되죠.

노이에자이트 2012-07-29 19:3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우리는 프랑스 식민지가 아니라서 알제리인들의 아픔을 잘 모르니까요...하지만 알제리에서 카뮈는 별로 좋은 소리를 못듣는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대 때 독립을 주장하지 않고 자치를 추구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별로 안 좋잖아요.한국-알제리 일본-프랑스 이렇게 비교해보면 될 것 같아요.
카뮈 전기가 우리나라에도 꽤 나왔던데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은 반드시 나오더라고요.

아이리시스 2012-08-02 19:47   좋아요 0 | URL
네! 이광수 생각나서 말해놓고 좀 기분이.. 자유로운 입장을 논하기에 전쟁은 너무 복잡해요..

한국-알제리, 일본-프랑스 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