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띄엄띄엄 읽는 여름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한 권이라도 끝내보겠다는 결심이 다른 책을 쉬게 한다는 것. 무거워서 누워선 꿈도 못 꾸고 그저 책상에 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설렁설렁 넘겨본 지 어언 6년 쯤인가, 그러고 보면 학부 땐 참 좋았다. 도서관의 문학, 철학, 미학 코너를 특히 좋아했다. 미술사와 역사를 좋아한 건 한참 후였다. 온갖 책을 빼들고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마구잡이로 넣긴 했어도 책냄새 가까이에 있었고, 그 무엇보다 책이 고귀하다는 걸 알았다. 책이 좋았지만 책보다 좋은 것들도 많았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학교 밖을 나가 먹는 순대국과 소주라든가, 쉬림프 피자와 과일 에이드의 럭셔리한 런치세트라든가, 토마토, 바나나, 딸기, 오렌지 등등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 인문대 매점 옆 생과일 주스라든가, 통학 1시간 30분 걸리는 버스 안에서 절반은 언니와 도란도란, 절반은 꾸벅꾸벅(차 안에서 절대로 독서 따위는 안해) 졸다 내려 고지대 아파트인 우리 집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걸어오던 별밤들 중 절반은 또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잡은 손도 있었고, 한쪽 어깨가 다 젖도록 우산을 씌워주는 든든한 팔이 있었고, 우릴 비추는 별빛도 있었다. 조금씩 커가기 시작한 어떤 커플은 이제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만 다닌다.  

 



 

 


 







 

2009년 타계한 인류학의 대가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 국적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직을 맡게 되어 건너간 브라질에서 방학기간을 이용해 원주민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슬픈 열대>는 1937-1938년 브라질 거주체험을 토대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 등 원주민 사회의 문화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이 있다. 하지만 처음 가는 땅을 밟을 결심에 찾아가는 곳이 신대륙인 것마냥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아주 어려운 고전 같지만 인문학과 수기가 고루 섞인 전방위적으로 편안한 책이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가 남긴 어떤 저작보다 유명하며, 한 권으로도 그의 사상과 철학, 일생을 바쳐 탐구했던 주제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를 문명, 미개한 사회를 야만으로 재단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반기를 드는 한편, 두 사회는 그저 다른 종류의 모습일 뿐 더 우월한 사회를 가려낼 수 없음을 주장한다.


구조주의 사상/철학인들은 많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 중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도 레비-스트로스다. 그의 업적을 평가절하해 오늘날 <슬픈 열대>를 남아메리카 대륙의 흔한 기행문으로 치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상의 질을 재단하며 우월함을 표식으로 삼는 서구의 지성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식인풍습을 절절히 묘사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에서 절도와 규칙을 잊지 않는 원주민들이 우리의 그것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오직 외부인만을 그것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 동일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해못할 것도 없다. 1937년의 체험을 회상하며 1954-1955년 집필한 책. 누구나 오늘 했던 생각은 내일과는 다른 법이니 구시대적이라거나 기행문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대신 브라질의 원주민들을 보며 왜 그곳을 '슬픈 열대'라고 칭했는지, 지금은 다른지 그것만이라도 의식했으면 한다.

 

 

 

 

 

 

 

 

 

 

그 후 다시 <미션>의 오보에 소리를 듣는다면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흥미나 관심사가 아니라 교육으로 감상해야 느껴진다. 어느 밤, 아주 오랜만에 묵직한 작품을 틀어둔 거실은 쩅쨍하게 울려 이 세상이 아닌 듯했다. 총과 폭탄에 창과 방패로 대응하는 오프닝 장면에 사로잡혀 충격의 대치에 무기력해야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고, <제노사이드>에 묘사되는 문명과 야만의 기막힌 전복은 전율적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어느 대치점에서 반복되는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 우월과 원시 등 이분법적으로 결단내는 인간의 이기심과도 연통되고 있다. 초인류에 의해 전복되는 인류를 다루는 팩션까지 갈 필요도 없이, 동시대 지구를 살면서 밤낮없이 피흘리는 전쟁을 슬픈 지구라 명명한다. 아무리 구시대적이라고 해도 변화가 없다면 여전히 현재의 일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약 80년 전에도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

 

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 중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당시 브라질 영토 자체가 아마존강을 낀 절반이 삼림으로 우거진 무인지대에 가까워서 주로 해안가의 무역지가 개발대상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는 내륙지방의 아마존 원주민들과 강의 생물들까지 수난의 대상이 되는 몹쓸 광경을 본다. 자국의 자원을 흥청망청 써댄 결과, 대체품을 찾기 위해 숨겨진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을 들쑤시는 국가 선두에 단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의 전복을 주장했지만 말처럼 쉬운 전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희망봉이나 킬리만자로의 눈, 아마존의 원시성을 상품화 해온 관광개발청과 여행객의 사상은 쉽고 빠르게 변하는 종류의 것이 아닐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를 읽으며 콩고를 여행하겠다는 다짐은,  K.A.가 아프리카 직항노선을 단독 운행한다고 해도, <미션>을 보며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을 넘어보겠다는 소망은, <슬픈 열대>를 읽으며 브라질 원주민들의 삶과 풍속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얼마나 슬픈 지를 알았다. 손 꼭 잡고 더운 여름밤 좁은 골목길을 걸어 집앞까지 데려다주고선 무슨 일이 날까 들어갈 때까지 현관 계단에서 지켜보고 서 있던 스물 몇 살의 청년은 이제 없다. 대신 아파트 마당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라인 현관에서 집 현관까지 들어가 베란다에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하는 서른 살의 청년이 생겨났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추억할 수는 있는 것처럼, 오래 전 일이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현실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한때 공정무역에 이토록 공들였던 걸까. 커피를 제값 주고 사면 아름다운 거래를 하던 거라던 그 말에 속아 좀 더 지불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며 자위하는 것인가. 세계 4대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은 약탈의 역사라는 진실과도 상통하는, 달콤한 공정무역의 속삭임이 비정열의 위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공정무역의 토대는 결국, 경제우월주의를 인정한 후에 받아들인 대비책에 불과하다. 당연한 걸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라고 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커피와 초콜릿을 끊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 통틀어 별다방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우아떨어본 건 열손가락 이내. 시내를 꽉 채운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이 거리 저 거리 하나둘씩 늘어나면 날 수록 그곳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그건 내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적(지구적), 경제적, 개인적 사정이고 자존심이었다. 자존심과 고집을 지켜야 할 대상이 좀 변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동물보호다. 보호라기 보다는 사랑이고, 고기를 원래보다 덜 먹자는 것일 뿐이지만.

 

책은 광장에서 읽어도, 학교 도서관에서 읽어도, 집 가까운 대학 캠퍼스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읽어도 좋았다. 두 시간의 시급보다 비싼 커피와 디저트를 서구의, 젊음의, 쿨함의 인식인 양 즐기는 게 그때는, 싫었을 뿐이다. 그저 제철과일 주스를 길에서 마시고 되도록이면 먹고 마시는 건 좀 줄이고 절약하는 것. 먹지 않아도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몸상태와는 별개로 세 끼 밥만으로도 딱히 S자 몸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초콜릿은 못 끊었다. 초콜릿은 너무, 그러니까 너무, 여자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의 다소 감상적이고, 스물 일곱 살 먹은 유럽 청년의 남미 방랑기는 신대륙 체험인 동시에, 프로이트 이론과 언어학 그리고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던 영향과 맞물려 문화우월주의를 거부하는 문화상대주의자의 면모로 나타난다. 1930년대 브라질 원주민 시대를 회상하는 1950년대 글이라 대단한 상업주의나 경제주의보다는 문화적 차이와 전통의 서술에 그쳐, 더이상 분노가 치밀지 않는다는 건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슬픈 열대>는 가벼운 수기로 읽어도 좋지만 전공자 아닌 독서가에게는 사상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발단이 된다. 문화 상대주의의 예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이 충만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식인풍습과 형벌제도를 다른 방식의 문화라고 인식하는 점에서는 기발하기까지 하다. 식인풍습이 대상의 힘을 끌어안는 걸로, 형벌제도가 대상의 힘을 꺾어버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모든 현상에 저마다의 이유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거꾸로 가지 않는다. 소중한 이가 죽으면 홀로 땅에 묻어놓은 게(뿌려놓은 게) 미안해 인간은 자연에서 속세로 여행 왔다가 다시 자연으로 가는 거라고 해도, 물이 온도에 따라 얼음이 됐다가 수증기가 될 수는 있는 거여도, 한 번 약탈하고 빼앗은 것을 다시 돌려준다 해서 빼앗기 전 상황으로 완벽히 복귀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다. 하물며 이런 바람 속에 비가 내리면 한 번 가지고 나간 우산 또한 그 이전의 우산과는 다른 법인데, 그런 생각하기 시작하자 어쩐지 좀 슬펐다. 슬픈 젊은 날 같은 것만 슬플 줄 알았는데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져야 할 것들이 그러지 못하는 상황만큼 슬픈 것도 없다. 


누군가는 유명한 사회학자의 인기도서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몰랐을 뿐이다. 법의학과 수사집, 판결문을 읽는다고 내가 검시관이나 형사, 검사가 되는 건 아닌 것처럼 인류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내가 인간, 나아가 인간을 구성하는 사회, 사회의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서부터 왜 이렇게 사는지에 이르기까지 알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직접 체험에서 오는 풍부한 수기는 흥미로웠는데, 식민과 원주민, 문화와 풍습의 진화는 놀라운 것과 이미 알던 것이 혼동되지만 유익했다. 내가 그곳에서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능력이나 진화의 차이가 아니라 습관이나 생각의 차이일 뿐, 어렵게만 보이던 <슬픈 열대>를 아득한 슬픔으로 기억하는 지금, 레비-스트로스의 타계는 3년 전이 아닌 지금 내게 아.프.다. 아.쉽.다. 누군가의 일생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건 아주 어렵고 고귀한 일 같다. 업적이라면 그보다 좀 덜하겠지만 일생 바쳐 이룩하거나 조사하거나 매달린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 부러워지는 날들이다. 내 질투는 주로 추상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으로 구조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소설을 어느 정도 읽으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마냥 눈에 들어왔다. 입문서조차 낑낑거리며 보게 생겼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독서일기는 모조리 다시 씌어야 할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기행에 버금가는 사상철학체험을 총망라한 인문서를 내밀었다. 인문서는 딱딱하다는 편견을 씻어주고, 인문서도 감상적(감성적)으로 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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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2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에 무사하신거죠?^^

2012-08-28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8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9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9-0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조주의..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어요. 푸코, 레비스트로스, 소쉬르..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는지..이거 정말 대단한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그 이후에 구조주의의 문제점, 폐해 등을 다룬 강의를 들으면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그 도식들을 보면 꽤 감탄하게 되요.

근데 요즘에 매일 글을 한개씩 쓰시네요. 허허허..반성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9-06 01:21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 웃기죠? 서구가 비서구를 보는 방식에서 라다크 갔다가 공정무역 찍고 약탈갔다가 유전갔다가 구조주의, 쓰고나서 내가 미쳤었구나..... 뭐 방향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용감했습니다ㅋㅋㅋ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저 크게 넣은 최근 책이 제일 쉬운 책일까요?(전문가 도움이 필요해요)
여느 학문은 서로가 서로를 엎으려고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니까요.

매일 한 개씩이면 좋겠지만, 잘 보면 뜸했을 때 있어요, 그때 써뒀던 글입니다. 하루에 저 긴 글이 뚝딱 완성되지 않..않을 뿐더러.. 요즘은 시간도 없..없어서 하나하나 리뷰써야 하는데 것도 귀찮아서 편법을 쓰는 거예요. 이걸 뭐하러 털어놓는지 모르겠네요. 가만있으면 중간은 갈텐데.(후회중)

맥거핀님, 이삿짐 정리는 끝내셨나요, 이제 극장 가시면 되는 거예요? 피에타 보러?

맥거핀 2012-09-06 22:02   좋아요 0 | URL
어..그니까 그게 대단한 거에요. 뜸했던 때도 사실 뭔가를 쓰고 있었다니..그리고 그것을 바로 올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다니..

아..피에타 개봉했나요.(개봉했는지도 모름..;;) 베를린에서 엄청 호평이라는 소식만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