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섬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환하게 웃는 흑백사진 속 배경, 거기에 섬이 있었다. 비록 모니터상이었지만 매료되는 건 순간이었다. 섬은 이 세상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공간. 그때부터 여자는 아무도 모르게 마음 속에 섬을 간직했다. 어디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면서. 섬이 왜 좋은지, 섬에 가두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제 안에서 서서히 무너지던 것들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도착을 전할 때, 당연한 그의 자연스런 인사에 상처받던 날처럼 하염없이 서러워졌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여자는 말했다. 아저씨는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 행복한 사람 같아요. 내가 해줄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행복해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듣는 대신 여자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메신저를 끄고나서 섬을 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그러니까 섬은, 하물며 '섬'일까. 여자는 종종 생각한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어느 낯선 곳, 섬은 그 이상이하도 아니란 것을.  

뒤에서 남자가 갑자기 안았을 때 여자는 놀라지 않았다. 베르사유에 다녀온 날이었다. 갑자기 내린 비에 하루종일 젖었다 말랐다 했던 것 같다. 이후 여자는 그를 생각하면 섬이 떠올랐다. 섬 같은 사람. 화이트 초콜릿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첫인상. 그후로도 오랫동안 여자는 남자와의 첫만남 따위를 회상하지는 않았다. 회상될만큼의 이야기가 없었다. 멈춰진 시간, 정지된 화면, 희미한 이미지. 말이 통하지 않는 파리의 작은 지하철역. 드물게 해가 쨍쨍하던 겨울날 오전 아니 오후. 그보다 더 낡은 공중전화. 몇 개의 나라를 거치느라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짐이 든 노랑 캐리어. 베네치아에서 산 가면. 로마의 과일, 음료, 호두. 기다리던 시간. 설렜던 감정. 퐁네프 다리. 콩코르드 광장,,

아저씨, 나 비행기 놓쳤어요. 여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낮에 떠나온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와 여자는 정확히 열 한살 차이였다. 열한살. 남자가 스무살 때 여자는 아홉 살이었고, 여자가 스물 아홉이면 남자는 마흔이 될 터였다. 그래도 띠동갑은 아니네. 이름모를 네덜란드산 맥주를 마시던 남자가 희미한 미소로 말했다. 하루종일 파리시내를 헤매느라 샤를 드 골 공항에서 길을 잃었던 여자에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구원이었다. 늦었는데 돌아올 수 있겠어? 어서 와서 자. 밥은 먹었어? 비행기는 연착되고 있었지만 보딩자체가 늦었던 승객을 배려해주지는 않았다. 같은 처지의 일본여자가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갈 거야?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 여자는 말한다. 늦은밤, 남자는 라면을 끓였고, 탁자 위에 맥주를 한가득 꺼내놓았다. 대체 비행기를 왜 놓친 거야? 어디 갔었던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지도가.. 지도가.. 여자는 울지는 않았다.  

남자의 목을 잡고 매달린 건 여자였다. 왜 울어. 남자가 말했다. 잘 있어요, 아저씨. 우리 부산 아가씨, 울지말고 뚝. 언제 서울에 올 거예요? 데려다줄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올 때보다 가방이 더 무거워졌어.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해. 였다.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전화. 놓고 돌아와야 옳았을 미련. 다시 섬. 그때 여자는 혼자 섬에 갔다. 시차와 국제전화, 쓸쓸함, 그런 것들을 버리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기다려요? 남자는 아니, 하고 대답했다. 나직하고 쓸쓸한 목소리란 걸 여자는 알아챌 수 있었다. 언니는 왜 떠났어요? 춤을 추고 싶어했어. 연극배우였거든. 애기도 있잖아요. 한국에서 부모님이 키우고 있어. 아, 네.. 

기다려요?  

아니.   

그의 진심을 이제와 내가 알 수는 없다. 그건 그때의 욕망이고 열정이었을 뿐. 여전히, 과거형.

가장 못한 것이 오직 다르다는 이유로 널리 쓰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도 없고 가장 못한 것도 없다. 이때에 좋은 것이 있고 저때에 좋은 것이 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나도 잘 알지만 이 세상에 일단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이 세상 속에 일단 얼굴을 내밀기로 작정만 하면, 우리는 더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악마의 유혹을 받게 된다.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 걸 안 골라? 하고 귀에다 속살거리는 악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곧 뜀박질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그러나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p.32)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만큼 그가 나를 기억해주리란 보장이 없어 슬펐다. 지금은 아니지만.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p.33) 

 나는 그냥 나.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p.43)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게 사랑은 아니었을 거란 걸 나도, 당신도, 그때도, 지금도, 잘 알고 있듯.

사실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p.64)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공기를 그저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드물게 작용되는 범우주적인 사랑의 법칙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존재를 사로잡아 그의 겉모습을 다듬고 형상을 굳혀놓았던 그 법칙 말이다. 전에 그는 태양이 뜨겁고 밤이 싸늘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화해한다. 모든 것에서 그는 영접받고 축복받을 것이다. 저를 맞아들이는 장소의 형태와 결합하여 차츰차츰 그 형태와 분간할 수 없도록 하나가 되어버릴 것이다. 완강한 저항이 철저한 복종으로 변했다가 어떤 새로운 생존 속에서 다시 반항으로 소생할 것이니 이 소용돌이와 평화의 교차가 우주적인 삶을 구성한다. (pp.7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의 양면을 모두 보고싶어하는 것이 인간.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p.90) 

 추억은 추억. 추억은 힘이 없어요. 추억은 한 순간의 강렬한 희열일 뿐이죠.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을 맛보았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추억에 남거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아니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인생 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순간들은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어서 어떤 상태를 이루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 그리움을 자아내는 행복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항구적인 어떤 상태이다. 그 상태는 그 자체로서는 강렬한 것이 전혀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는 그 속에서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p.101)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사랑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괴로워해서 무엇하겠는가? 잔혹하게 그리워하면 무엇하겠는가?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두자. (pp.175-176)

하지만, 여전히 여행을 할 겁니다. 추억이 밥먹여주지는 않으니까. 추억을 가둘 수는 없고, 추억 속에서 열망을 훔칠 수는 없으니까.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섬이 될 것 같다. 몇 번의 악수, 몇 번의 포옹, 몇 번의 키스, 몇 번의 눈물, 몇 번의 그리움. 그런 것들이 모조리 몇 번의 '착각'일 뿐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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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10-16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궁금하게 만드는 리뷰에요.
아이리시스님 잘 지내셨죠?

아이리시스 2011-10-16 01:49   좋아요 0 | URL
꿈섬님, 저는 잘 지냈어요.
여전히 바쁘시고, 여전히 열심이셔서,
아까 가서 페이퍼도 보고 댓글도 남기고 왔어요.^^

2011-10-16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10-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 공부할 때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요즘 시험공부할 때 머리 식힐 겸 편안한 내용의 에세이집을
읽으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에세이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공부가 뒷전으로 밀릴까봐 걱정이네요 ^^;;

아이리시스 2011-10-17 17:58   좋아요 0 | URL
시험공부할 때 읽을만큼 편안한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만 시루스님에게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야 할 에세이인 것 같아요. 공부 뒷전으로 밀리면 안되죠! 안돼안돼~~

알로하 2011-10-1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책이죠. 한번씩 답답할 때 꺼내서 아무데나 펼쳐본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기차역에 내리는 상상을 하는 부분이예요.

아이리시스 2011-10-17 18: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기차역에 내리는 상상은 보통때도 많이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좋아요. 요즘은 간이역이 정말로 많이 없어져서(거의 없어져서) 낭만이 사라졌지만, 서울-부산을 한 시간 반만에 잇는다는데,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나란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 봐요. 너무 빠르고 정확한 것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고, 저와 알로하님은 여전히 아날로그적 낭만을 그리워하니까요. 요즘 더 심해진 것 같아요.ㅜㅜ

2011-10-17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0-1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어짜피 혼자만의 섬으로 태어났는데,
굳히 섬까지 찾아갈 필요 있겠어요? 우리의 할 일은, 비슷한 동료 섬에 배타고 왔다갔다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아이리시스님 글이 왜 점점 몽환적으로 느껴지지요,,
치열한 내 삶과 엄청 대비되는 이 페이퍼. ^^

아이리시스 2011-10-18 00:1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요즘 엄청 바빠요?ㅜㅜ 저는 마음이 바쁜데,,-_-^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세상이거든요. 푸하하. 동료 섬에 배타고 왔다갔다 이거 좋다,,, 그런데 섬에 가끔씩 가야 해요. 아무도 없으면 실제로 엄청 무서울테지만,, 섬에 가서 버려야 한다니까!

추억은 몽땅 몽환적인 거예요. 추억은 오로지 꿈속으로 밀어넣고 지금을 살아야 해요. 그게 가끔 슬퍼요. 밤에 배고프면 어떻게 해야 해요?ㅠㅠ
 
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태초 내가 존재한 것은 아니다. 아빠와 엄마는 결혼 8개월 만에 날 낳았지만 난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 잉태된 허니문 베이비였다. 10월의 어느날이 예정일이었으나 그보다 앞서 나온 건 누가 말한 것처럼 엄마 몸이 약해서거나, 초산이어서, 또는 내가 빨리 나오고 싶어해서는 아니었다. 결단코 나는 이 세상에 더 빨리 나오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내가 나올 시점을 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태어나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주어지는 삶은 고통스럽고, 살아가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드므로. 나는 아마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번역 제목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바로 그 지점, 나도 없고 당신도 없는 절대적 시점, 나는 없고 내가 잉태되지도 않은 바로 그 생명의 태초부터 시작한다. 시작줄기를 알 수 없는 폭포수와 원인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 서서히 이루어져온 화산폭발로 우주의 기원, 인간의 태초를 보여준다. 애초에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보여주는 영화다. 색감의 미학과 친절하지 않은 내러티브, 간혹 들어차는 생략과 여백의 아름다움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영화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영화는 분명히 드러냈다.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알고 걸어가는, 본인이 어느 지점에 얹힐지를 아는 영화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왔으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언제부터 해왔는가. 시점에 관한 영화지만, 우주와 지구, 미래와 현재, 생과 사, 현실과 초월 등 이 모든 것들을 짚어내는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것도 불명확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작부터 기이하고 갸우뚱한 초현실학적 화면으로 장면장면을 지루하게 이어져가던 영화가 어느새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성인 잭(숀펜)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후 기억나는 어린시절과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동시에 떠올려 기억의 맨 처음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다. 보는 우리도 동시에 올라탄다. 거기에 의식 강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가 있다. 보통의 가정, 보통의 부모. 보통의 시대. 잭은 본래 자신이 있던 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그들의 첫 아이로 잉태된다. 문을 열어서, 넘지 못할 산을 오르고,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헤쳐 하필이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사람에게로 온다. 그들의 자식이 된다. 이후 평범한 부모는 행복과 사랑으로 잭을 낳아 기른다. 노래를 불러주고, 안아주고, 키스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인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무럭무럭 자라라. 마치 나무가 커가는 것처럼 그도 자라난다. 쌔근쌔근, 아장아장, 뚜벅뚜벅. 동생이 생기고, 동생에게 빼앗긴 사랑을 샘내고, 동생을 주도하여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아버지는 엄격하다. 그는 그가 아는 모든 것에 한해,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두를 아들들에게 가르친다. 식사예절, 싸우는 방법,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 공놀이, 잡초뽑기, 나무 기르기, 말대꾸하지 않는 법. 아버지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어 선택한 방법이지만 잭에게 이 모든 것들은 살아가는 데에 자신감을 잃게 하고, 반항기만 길러주는, 욕망을 누르기만 해야 하는 엄청난 감옥이 된다. 어느새 어린 잭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은, 능가해야 하고 짓밟고 싶은 반항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어느날 그가 직장을 잃고 그 커다란 날개를 꺾어버리기 전까지.  

영화는 줄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들이 커가고 아버지가 늙어가는 동안 갓 심은 작은 나무도 함께 커간다.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심지를 박고 무성한 잎을 뻗어내며 치렁치렁 그늘을 내어줄 때까지 나무는 자란다. 생명도 자란다. 아들은 자라고 아버지는 늙어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잭은 아들의 역할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내내 불안정하지만 한편으로 누구보다 더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로 자란다. 대부분의 이 세상 아들들이 그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가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으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는 이해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아들이 된다.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주와 생명의 빈 공간에 계신 것은 역시 하느님, 신이다. 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내려주며, 생명에 물과 사랑을 주어, 무럭무럭 크게 한다. 생명의 탄생은 나무의 생명과 같은 것.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제는 '생명'이다. 아무도 의미없이, 이유없이, 노력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모두 의미있고, 이유있고, 노력에 의하여 이 세상에 오는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아니,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잉태되기 전부터도 우리는 모두 예정되어 있던 생명이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생명의 귀함을 각자 한 번씩 생각해야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더 좋은 건 역시 작품의 아름다움과 낯섬을 경험하게 하는, 드라마를 SF로 승화시킨 감독이 빚어낸 영상, 즉 촬영기법에 있다.  

p.s.몇 년 안 본 사이 브래드 피트 참 많이 아저씨가 됐구나. 여전히 멋있지만, 그 멋짐도 숀펜의 카리스마에 눌리고, 아역배우의 뛰어난 기와 눈빛에 눌려서, 말이 권위적 아버지지 전혀 권위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사없는 초반 30분과 후반 10분인데,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 평점을 바닥까지 내리고픈 관객들이 많은 걸로 볼 때, 이 영화는 상업영화 범주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고, 2011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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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내용은 완전 그레이트 대박 마음에 드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의 나레이션이 깔려 있는 듯한 영화 소개라 잘 읽고 봤네요. ^^ 이런 내용 전 참 좋아해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이죠.
인간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아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알기도 힘들구요. 매일 현실의 눈 앞만 보이고 그것만 쫓아서 살다보면 언젠가 죽을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이 참 허탈하기는 해요. 하지만 어떤 생사관을 지닌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과연 끝인가? 그럼 나는 왜 태어났는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왜 시작을 했는가 마치 뫼비우스의 끈처럼 생각은 그 끝을 모릅니다. 사실 이것이 제 인생의 연구 주제이기는 하지만 매일 쳐 들어오는 주민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루를 바라보고 사는 하루살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어느 시점에서 아이리시스님의 서재를 알고 아이리시스님과 절친이 되는 이 만남과 인연...아~ 뭔가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이리시스 2011-10-12 22:06   좋아요 0 | URL
루쉰님, 매일 쳐들어오는 주민상대라니, 이거 뭔가 되게 영화틱하잖아요.ㅜㅜ 저는 칸영화제 취향인가 봐요. 칸영화제 출품작들은 다 좋더라고요.ㅋㅋㅋ 제대로 개봉 안하는게 문제지만. 우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는데, 그 중에 우리가 만난 것, 그것도 서재에서 만난 건 더욱 더 신기한 인연이죠! 절친이 된 것도. 매일 전장에 나가는 루쉰님, 화이팅. 그래도 저는 야근하며 떡볶이나 피자 먹고, 커피나 주스도 마시는 생활, 그리워요. 진짜 시키면 무지 싫을 것 같지만요.(이런 이중성, ㅠㅠ)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더 연구해요! 그리고 논문써요, 우리.^____________^

프레이야 2011-10-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주 기대중인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ㅠ
브래드는 숀에게 밀렸군요.^^
전 '나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우주적인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로 미리 보는 영화, 좋으네요.
아주 색다른 화법일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0-13 12:44   좋아요 0 | URL
'나무'가 이렇게 생명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그래서 간혹 나무무덤을 만들어주나 봐요. 정말 나무가 쑥쑥 커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이니까요. 범우주적인 나무. 프레이야님 서재에서 제가 훨씬 더 많이 좋은 영화들 보죠. 좋았어요, 늘. 색다른 화법, 나중에 꼭 보세요.^^

근데 [레스트리스]는 개봉하는데 [멜랑꼴리아]는 개봉 안하나 봐요. 저는 트리에와 커스틴 던스트가 더 기대되는데..^^

stella.K 2011-10-1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제법 거창합니다.
혹시 부산영화제 상영작인가요?
글치 않아도 빵 피트 요즘 뭐하나 했더니 여기 나오는군요.ㅋ
숀펜은 턱이 너무 깍아지른듯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연기는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빵 피트는 숀펜과 같이 출연만 안했어도 나름 빛났을지도 모르는데
선택을 잘못한 걸까요?ㅋ
대사 없는 초반 30분, 후반 10분이라...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견딜만한가 의문이네요.
이런 진지한 영화 나름 관심은 가는데,
실제로 보면 어떨지 살짝...?!^^

아이리시스 2011-10-13 12:39   좋아요 0 | URL
스물두살 때 <21그램>을 보러갔었는데 그때 숀펜을 알아서, 그런데 남은 안늙고 나만 나이 먹어요, 흑흑. 하하, 빵 피트. 제가 오랜만에 영화봐서 그런 줄 알았는데, 피트 정말 오랜만에 나온 건가요?ㅋ
근데 이 영화, 딱 영화제 영화예요. 비중으로 볼 때 피트가 주연이면 숀펜은 조연인데, 영화에서 둘이 만나지도 않고 만날 일도 없고, 맞대결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용 때문인지, 존재감 때문인지, 피트가 밀리는 느낌이예요.

이거 부산영화제 상영작 맞는데, 2주후 27일에 개봉해요.^^

페크pek0501 2011-10-1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 이 표현, 좋고(좋코)~~~

영화 리뷰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저는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잘 보고 갑니다. ^^

아이리시스 2011-10-15 01:40   좋아요 0 | URL
책은 수준인데, 영화는 그야말로 취향 같아요. 대사가 없어도 영상으로만 전해지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서 함부로 추천은 못하겠어요. 그건 제 성격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본 걸 누군가에게 보라고 하고 막 그것에 대해 얘기나누는 취미는 제게 없어요.( '') 저는 항상 제가 모르는 글을 읽고, 모르는 책의 리뷰를 읽고, 모르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얘기해주고, 제가 안읽은 책이나 모르는 분야, 안본 영화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해요. 오스트리아 빈의 빨래방에서 빨래가 돌아가던 한 시간 동안, 제가 유럽가기 직전에 봤던 빨래방을 배경으로 한 일본영화를 얘기하니까 친구가 유심히 들어주는 것 같은 것. 저는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아요. 그래서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요. 공감을 요구하거나 내가 좋은 걸 강요하지 않게 돼요.

제가 보는 리뷰는 대부분 제가 읽지 않는 분야의 리뷰예요. 그래서 저는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하거든요, 언제나. 내가 읽어도 처음 쓴 다른 사람보다 잘쓸 자신 없어서.^^

주말 잘 보내세요, 페크님. 이 얘기하려고 너무 말을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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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 사람들도 아무 잘못 없었어. 작년에 헨리 대위와 버펄로 사냥꾼들은 새파 강가의 남부 샤이엔 족을 급습해서 천막촌을 태우고 그 주민을 남김없이 죽였지. 갓난아기를 갓 불에 던지고. 군은 원하는 짓은 어떤 짓이나 다 해. 신병들을 갓 뽑아다가 겨울에 알지 못하는 적을 상대로 싸우면서 고초를 겪게 해봐. 겁에 질린 자들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특히 명령이 떨어지면." 

"인디언들이 죽이는 사람도 죄 없는 사람들이야. 결론은 늘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인디언과 백인이 함께 살 수 없다는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인들은 물러가지 않은 거라는 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디언들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거지."
(pp.445-446)

 
   

 

 

비로소 빠져나오자, 내가 딪고 서 있는 땅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비정성시(非情城市). 여기는 오색찬란한 슬픔이 깃든 비정하지만 성스러운 대한민국이고, 다녀온 곳은 1800년대 후반의 인디언 본거지다. 인간은 본디 질기디 질겨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땅에도 기어이 뿌리 내리고 만다 했었나. 이미 결론 내어진 싸움을 두고 오래 애를 태웠더니 먹먹해져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 언제였는지, 어느새 휑하다.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차고 나간다. 좋아하지 않는 서부 영화 한 편이 간절해진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대평원의 쨍쨍한 태양 아래 보송보송한 발바닥으로 하염없이 치달린 것마냥 피곤하다. 모두 처연한 꿈결처럼 아련하다. 가만히 인물을 하나씩 입으로 불러내본다. 아, 이런 삶도 있었지. 표면적으로는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속은 한때 거대했던 미국 역사를 아우르는 들장미 같고 들풀 같은 백인 여자들과 강인하고 올곧던 샤이엔 족의 찬란한 일대기. 오랫동안 영광스럽게도 읽었다. 참 먼 길을 걸어왔다. 저절로 고개 숙여질 만큼 앙상하고도 힘찬 길을.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보름달 아래 미친 듯이 휘몰아친 우리 모습은 얼마나 요란했을까. 왈츠와 지그와 폴카, 그리고 예쁜 프랑스 처녀 마리 블랑슈의 캉캉까지, 어떤 춤으로 시작했건 상관없었어. 모든 동작이 점점 빨라져서 마침내 색깔과 동작과 소리가 하나로 뒤엉켜 버렸으니까. 사람들은 번식기 새들 같았어. 깃털을 일으키고, 수컷은 가슴을 부풀리고, 암컷은 뒤집힌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드는. 우리는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또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어. 음악 속에는 뇌조의 북 치는 듯한 울음이 들리고 지구의 규칙적인 박동이 울렸으며, 노래 속에는 천둥, 바람, 비의 소리가 들렸지. 이건 대지의 춤이었어. 하늘의 신들은 자기 창조물들을 보며 아주 즐거웠을 거야. (p.198)

 
   

 

 

샤이엔의 '온화한 주술' 족장 리틀 울프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세상을 뒤흔들 만한 제안을 내놓는다. 천 명의 백인 신부를 선물로 주면 말 천 마리를 주겠다는 것. 철저한 모계사회이던 샤이엔 족은 백인 사회와의 결합을 위해 본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정략결혼. 당황하던 미 행정부의 어이없음도 잠시, 놀랍게도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행정부는 이름하여 '인디언 신부 계획'의 물밑 작전을 시작하며 자원자가 부족할 경우 감옥, 감화원, 채무 감옥, 정신병원의 여자들에게 완전한 사면과 무조건 석방을 약속하며 채우기로 한다. 속셈은 단 하나. 여자들이 인디언족의 삶을 완전히 교화시켜 놓는 것. 리틀 울프의 제안이 있은 지 불과 6개월, 네브래스카 준주에 위치한 캠프 로빈슨으로 떠나는 기차에는 시카고 북쪽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메이 도드가 친구 마사와 함께 타고 있다.    

 

이야기는 메이의 일기로 진행된다. 인디언들을 만나러 가는 길, 만난 이후, 샤이엔의 여자로 사는 삶, 그 이후. 비교적 담담하고 못견디게 자세하여 종종 목이 메일 지경이다. 대자연을 이토록 생생하게 복원한 것도, 저마다의 캐릭터와 얽힌 사연을 이다지도 매끄럽게 연결시킬 줄 아는 작가는 이미 넘버 원. 제안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제안을 수용한 것은 허구이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메이는 시카고 대부호의 딸이지만 별볼 일 없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도덕성 상실'이란 진단을 받고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지옥같은 삶을 살았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란 인디언 신부 계획 뿐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참지 않으며, 때에 따라 지혜롭고 영리한 백인 여자 메이는 이 거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의 존 버커 대위와 사랑에 빠진다. 인디언에게로 인도되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은 싹텄고, 첫날밤은 치뤄졌고,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지만 결코 약혼녀 있는 독실한 가톨릭교 대위를 곤란하게는 하지 않았다. 메이는 존을 사랑하는 만큼 자유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나 백인 신부의 길을 계속 간다. 마침내 샤이엔 족과 조우했을 때에 메이는 첫 눈에 리틀 울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낙점된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전혀 없는 부족 생활, 가족 공간 틈에서 탄탄한 근육에 말수가 적은 진중한 남자 리틀 울프와의 접촉을 간절히 기다리던 차, 백인 여자 메이에게 꿈같고 보석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서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 아니면 꿈같은 일이 일어났어. 꿈이었을 거야. 남편이 나와 함께 천막에 있었으니까. 그는 아직도 소리 없이 춤을 추고 있었어. 모카신을 신은 발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했고, 모닥불을 돌며 조롱박 딸랑이를 흔들었는데 그것도 소리가 나지 않았어. 남편은 그렇게 혼령처럼 춤을 추며 내가 누워 자는 곳을 빙글빙글 돌았어. 나는 점점 몸이 달아올랐어. 그의 춤을 보니 배 속이 짜릿해지고 가랑이 사이에서 욕망이 간지럽게 끓어올랐어. 꿈에서 나는 앞가리개 천 밑에서 그의 남성이 뱀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어. 그는 춤을 추었고 담요에 배를 대고 엎드린 나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릴 것처럼 얕은 숨을 쉬었어. 내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는 비켜나서 내 뒤로 오더니 이제 벌거벗은 내 엉덩이에 깃털을 댄 듯 나를 간지럽혀서 나는 더욱더 흥분했어. 그런 뒤 나는 엎드린 채 엉덩이를 들어올려 나를 바쳤고, 간질거림이 거세어지자 다시 담요에 납작 엎드렸어. 몸속을 채우고 싶은 열망이 고통스러울 만큼 커졌지. 하지만 그는 계속 내 뒤에서 소리 없이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가볍게 춤을 추었어. 꿈 속에서 내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났어. 다른 사람이 내는 것 같은 소리,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고 나는 엉덩이를 더 높이 올려서 천천히 돌렸어. 그건 자연 현상이었어. 다시 깃털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살과 살이 가볍게 닿았고, 이빨이 목을 가볍게 물었어. 따뜻하고 건조한 뱀이 엉덩이에 내려와서 다리 사이에 놓인 채 박동치다가 내 다리를 벌리고 내 몸을 열더니 천천히 고통 없이 들어왔다가 물러났고 다시 들어왔다가 물러나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잡아 삼켜 버릴 듯 몸을 뒤로 밀었어. 그런 뒤 그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나는 목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몸이 덜그럭거렸고, 더 이상 독립적인 의식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무언가 더 오래고 원시적이고 진실한 것의 일부가 되었어. 동물처럼, 이라고 존 버크는 말했지. 그 말뜻을 알았어. 동물 같았어.  

거기서 꿈은 끝났고 새벽에 깨어 보니 머릿속에 다른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나는 여전히 담요에 엎드려 있고, 여전히 사슴 가죽 혼례복 차림이었지. 나는 그것이 꿈,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에로틱한 꿈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마술처럼 내 안에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도 알겠어. (pp.200-201) 

 
   

 

인디언 남자든 백인 여자든 흑인 여자든 상관없이 결합은 진정 아름다운 것. 꿈결 같은 기억처럼 몸안에 남아있는 느낌. 

 

미개인 사회의 규칙. 여자와 남자의 역할 분리. 남녀차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수없이 많은 것들 사이에서 메이는 아주 쉽고 빠르게 인내하고 변화시킨다. 메이 뿐 아니라 백인 신부 계획에 참여한 수많은 여자들 역시, 시행착오와 부딪침 속에서 깊은 평화와 만족감을 느끼며 샤이엔 족의 삶에 적응하려 애쓴다. 이들의 삶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부조리한 단어 하나로 이들을 묶어둘 수 없다.

   
 

'나는 얼마나 기이할 정도로 행운아인가.' 

그렇다, 미개인 사회의 그 모든 낯섦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새 세상은 오늘 아침 말할 수 없이 달콤해 보였다. 나는 원주민들이 대지와 전원에 묻혀 사는, 교묘하고도 완벽한 방법에 감탄했다. 그들은 봄풀처럼 이 평원 정경의 일부인 것 같다. 그림의 뗄 수 없는 일부로 여기 속해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p.210) 

 
   

시간과 사랑. 그들을 가까워지게 하고 한 가족으로 묶는 끈은 단 두 가지 뿐이었다. 진심으로 두 가지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리틀 울프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존 버크에 대한 감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버크와의 일은 내가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열정, 지성과 육체, 몸과 마음, 영혼의 결합이었다. 나는 세 번의 사랑으로 벌써 세 번의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이다. 첫 사랑 해리 에임스와 나눈 불꽃같은 육체적 사랑은 정신병원 독방 생활의 어둠 속에 꺼져 버렸다. 그런 뒤 별똥별처럼 환상적인 새 사랑이 그것을 다시 점화시키고 지나갔다. 그렇다, 해리 에임스가 내 여성성을 끌어낸 예측 불허의 밝은 불꽃이었다면, 존 버크는 강렬하게 타오른 나의 별똥별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 리틀 울프는 내게 온기와 안전을 주는 오두막 모닥불이다. 그는 나의 남편이고 나는 그의 착하고 충실한 아내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p.223) 

 
   

 

사람과 사람, 남과 여, 어른과 아이, 어머니와 아이, 친구와 친구. 모든 관계들이 아름답지만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으로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메이는 따뜻한 마음과 충실한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모두를 진정시킬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백인 여자와 인디언 남자의 오붓한 동거는 샤이엔 족에게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이때까지는. 마시는 알코올. 술. 술이 들어오기 전날까지는. 술만 마시면 미쳐버린다 했다. 신도 주술사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했다. 버펄로를 잡기 위해 늑대를 죽일 수 있는 약을 놓던 샤이엔 족이 되려 약을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이 알아차리는 사실과도 같다. 샤이엔 족을 샤이엔 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술, 백인 사회 또는 문명 사회가 유통시킨 바로 그 문명의 알코올이었음을. 늑대는 샤이엔 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그들은 당장 늑대잡는 약 사용을 중단한다. 그들에 의하면 자연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대한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사이만큼이나 백인과 샤이엔 족의 사이 역시 멀었지만.  

   
 

"망할 놈의 술만 빼면,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야. 처음에 이 사람들한테 납치당했을 때는 죽을 만큼 괴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 본래 인종은 거의 잊었어. 꼭 동화 속을 사는 것 같았지. 그리고 그 동화를 깨뜨리는 건 백인의 세계야. 어젯밤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 경우는 샌드 크릭에서 그랬고." (중략) 

"여기 생활이 그렇게 좋았다면 왜 백인 세상으로 돌아갔니, 거티?" (중략) 

"하지만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기도 했어.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p.276) 

 
   

동화 속 세계를 깨뜨리는 건 역시 백인의 세계. 그건 분명한 말이기도 했다. 미국 지질학자들이 인디언들의 땅인 블랙 힐스의 금광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채굴꾼들은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인디언 몰아내기 요구가 먹혀 들어갔다. 백인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해 블랙 힐스에서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것. 그 작전은 은밀하고도 어김없이 진행된다. 마치 본래 자신들의 땅인 듯. 약속도, 대화도, 설득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위 또는 마구잡이 식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려는 존 버크 대위와 반항하는 메이의 다툼은 이미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감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했다. 인디언들의 일상적 터전과 소소한 행복이 유지 되기를. 순진한 바람은 소설 속에서조차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비참하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도망하거나 배반하거나 죽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살아남아 미래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화해를 청할 것이고, 소통을 원할 것이고, 수용하는 법과 거래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메이의 일기는 반 세기 동안 오래된 빛에 갇혀 있었다. 메이의 딸이 아들을 낳고, 아들이 또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녀가 증조 할머니라고 불릴 때까지. 메이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용기있고 당차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백인 여자는 우둔하고 잘난 척만 하면서 남자 밝히고 쇼핑중독자일 거라는 편견을 단번에 날려주는 오래된 신 백인여자라고 해도 좋겠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적응하고,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생활문화에 살며시 내려앉는 것. 더불어 후회와 원망조차 하지 않는 것. 그녀는 예뻤다. 총명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웠다. 지금 내 인생에서 그녀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나 또한 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차가운 바람 속을 달리면서 이들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내 가슴속에서 뛰는 심장에 의해 봉인되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원했다 해도 내가 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79) 

 
   

그래, 맞다. 심장 속에 봉인되어 있는 각인 같은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웬만하면 자발적, 순종적, 점진적인 게 낫다. 모두 안고 갈 수 있어야 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에 의하면 의지여야 하고, 나에 의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행위'여야 한다. 즉, 녹아들어감 또는 흡수. 흡수라는 단어 참 좋다. 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인디언들의 세계는 내게조차 정말로 동화 속 같았다.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과 한없이 바다 속으로 침잠하는 기운이 동시에 들곤 했다. 광활한 땅에 자신들만의 뿌리를 세우고 싶었던 인디언들에게 평화를 선물하노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대장정의. 아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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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9-2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나는 절대로 ( 정말 절대적으로 ) 완독하지 못할 듯 한 책이예요 . 헤 .
 굿모닝 !
 

아이리시스 2011-09-27 12:50   좋아요 0 | URL
두 번은 읽고 싶지 않은 책이고, 500페이지나 되고 또, 피하고 싶은 역사죠. 헤.
굿 에프터눈 !

알로하 2011-09-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와봤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마음이 따뜻했어요!ㅋㅋ 블로그 관리 전혀 안하니까 혼자하는 느낌으로 하거든요. 이 책은 리뷰만 봐도 압도적이네요. 인디언과 관련된 내용은 항상 맘이 아픈데 이 책은 좀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을까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9-27 18: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주 안오신 거군요. 소설 리뷰가 계속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에 혼자 들락날락 했는데 이제야 나타나시고, 알로하님. 이름도 예쁜 알로하님. 자주 와요, 알았죠?^^

혼자하는 느낌으로도 좋아요. 인디언의 역사는 슬프지만 이 책은 멸망이 아니라 녹아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슬프지만 아프지 않아요. 출판사에서 더 예쁜 표지로 본격 마케팅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서사가 살아있고 마음도 건드리는, 다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근사는 영화 한 편 본 것 같거든요.^^

2011-09-27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천 명의 백인 신부라니.
왠지 묵직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메이는 정말 지혜롭고 사랑스럽네요.
그리고 어쩌면 인디안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 <한없이 바다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옛날에 고등학교 때인가. 러시아 무슨 제국의 드라마인지 영화를 본 적이 있었어요.
광활한 땅을 배경으로 하는 그 몇 부작의 이야기가 저로 하여금 몇 장의 일기를 쓰게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그리고 펄벅의 <대지>를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8:47   좋아요 0 | URL
<대지>랑 비슷한 느낌일 거란 거 알 것 같아요. 영화로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같은 느낌이고 음.. 잘 기억나지 않아요.ㅜㅜ 예전에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들이 좋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가 이 소설은 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별 다섯 개예요. 메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고작 스물 다섯 살이었을 뿐인데도!

인디언 멸망사 인문학책 한 권 있는데 그거 읽을까 하다가 제 관심은 언제나 단편적이니까 그냥 또 휙- 하고 날려버렸어요, 현맘님. 하하.

2011-09-27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9-2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정성스런 리뷰네요. 읽으면서 밑줄 긋기까지 일일이 하시는 거에요? 저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밑줄 긋기 같은 거 안 하고 휘리릭 넘어가게 되는데 ㅎㅎ... 저 책 표지 보고 파울로 코엘료의 표르토벨로의 마녀인가요? 그 책이 생각났어요. 읽다 말았지만... ( '')~ 아참, 아이리시스님, 저 신간평가단 합격했어요! 호호호, 뭔가 책임감이 불끈 솟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은 지원 안 하셨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9:54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쓸 책은 포스트잇 좀 붙여놔요, 수다쟁이님. 게으르고 귀찮아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행위거든요. 그래도 이제 좀 자연스러워졌어요. 사실 이렇게 쓰면 뭔가 많이 쓴 것 같지만 내용이 많이 띄엄띄엄해져요. 이게 더 정성스러워 보이지만 더 쓰기 쉬운 거예요.

신간평가단 소설분야 됐어요? 축하해요! 나는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ㅋㅋㅋ 이따 보면 알겠죠.^-^

참, 수다쟁이님한테 보여줄 사진! 이게 여기랑 똑같은 블로그인데, 사진이 안 퍼와져가지고. 선물이에요.ㅎㅎㅎ (진짜 실망하지 말기!)

http://blog.naver.com/nmk0827/130070408438

비로그인 2011-09-27 21:57   좋아요 0 | URL
음..... 저 실망 안 했...어.. 요... ㅋㅋㅋㅋ ( '')~
가장 큰 용기는 진실과 직면하는 거에요. 정말 맞는 말이네요. 어렵게 들리는 말이고.
수잔 서랜든이 탭댄스 추는 장면이랑 마지막 미치와의 여행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
오늘은 할 일도 많고, 일찍 자야겠네요. 행복한 꿈나라 여행 되세요,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아........... 실망했구나. 그래서 일찍 자는구나. 미안( '') 담에 좋은 선물 줄게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1-09-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 흡인력이 높다니 읽고싶어지네요. 리뷰를 봐서도요. 그런데 500쪽이라...

오늘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 세 권이 배달되었는데, 그중 한 권이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에요. 이게 700쪽이 넘네요. 난 요즘 게으름뱅이인데... 이걸 얼마 만에 읽을지, 내가 궁금해져요. ^^^ 그래도 책이 배달되어 오늘 엄청 행복했어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도덕감정론>을 리뷰도서로 받을 뻔 하다가 다른 조라서 안 받은 적 있는데 그때 저한테 온 책도 제게는 충분히 버거웠지만, 굉장히 유익할 것 같고 또 버거워 보여요. 하지만 좋은 책 같아요. 언급되는 걸 많이 봤는데 내용에 혹했어요. 이야, 부지런히 읽으시고 저 가르쳐주세요.^-^

아메리칸 인디언을 다루는 영화 많잖아요. 그래도 백인 여자의 인디언 문화체험 일대기는 생소해서 재밌어요. 전체 틀이나 줄거리는 새로울 게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자연묘사가 워낙 뛰어나요. 행복한 페크님, 굿나잇!

페크pek0501 2011-09-2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추천을 눌렀는데 왜 10에서 12가 될까요? 두 개가 추가되는 게 신기하다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5   좋아요 0 | URL
다른 분이랑 동시에 눌렀거나, 카운트가 늦게 뜨는 걸까요? 추천버튼은 아이피가 같으면 두 번 안 되는 것 같던데.. 어쨌거나 페크님이 두 번 추천해주신 거^^ 하하.

2011-09-28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9-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완전 저를 위한 리뷰예요. 혼자만의 착각이라해도 할 수 없어요.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클릭했다가 걸으면서 계속 읽었다는!! 제가 원래 이동 중에는 뭘 안 읽는데(멀미나서요) 이 리뷰는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꼭 책을 읽어보겠다는 약속은 아니라는거~^^;;

아이리시스 2011-09-28 19:17   좋아요 0 | URL
제가 포핀스님 위해 쓴 거예요, 이제 알았구나. 아하하.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어떤 책 대출해왔어요? 책 사고 싶은데 집에 책 많아서 그냥 있는 거 읽을래요. 가을 도서관은 청량할 것 같아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이라서. 거기 열람실은 일반인이 들락날락 거려도 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어요. 대출 가능한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는 너무 멀거든요. 저는 너무나 게으르고. 책은 무겁고.

포핀스님도 메이의 매력과 광활한 자연에 푹 빠진 거예요. 어떡하지.. 아아, 이 리뷰는 도저히 끊을 수 없었구나, 포핀스님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lazydevil 2011-09-2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없습니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이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30 02:13   좋아요 0 | URL
제가 좀 호들갑일 수도 있겠어요. <늑대와 춤을>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를 못 봤어요. 서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왜 그 영화들이 나와야 되는지도 몰랐구요. 어쩌면 이 영화들이 제가 말한 이 광활한 자연, 인디언 문명사, 인간과 인간의 소통. 이런 것들을 두 시간 만에 아주 잘 보여줄 것 같기도 해요, 레이지데빌님. 그럼 저는 완전 호들갑에 뒷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이 책은 정말 좋았어요. 추천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게는 너무 좋았어요.^^
 
[스틸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의 마을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터미널에서 아빠의 오토바이(스쿠터는 아니다. 자동차에 대해 도통 몰라서 스쿠터와 오토바이의 차이를 모르겠지만 차도 있는데 굳이 오토바이에 셋이 구겨져 타는 이유도 모르겠다. 무서운데ㅠㅠ) 뒤에 올라타고 산고개 하나를 넘으면(좀 길고 구불구불하다) 아주 작은 마을에 들어서는데, 우물가 옆 샛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빨간 지붕의 파란 대문집이 나온다. 오토바이로 산길을 넘는 일이 그렇게 신나는 일인지 몰랐었다. 모두들 왜 그렇게 타지 말라는 오토바이를 타다 죽어가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양동이 포함(가보기도 전에 양동이는 사라졌지만) 여섯 마리의 애기들이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마중 나오고, 앞집은 옛집인데 오래도록 비어있어 들풀이 허리까지 자랐다. 덕분에 풀벌레들도 많다.  

뒷집에는 아주아주 마음씨 좋고 인자하신 할아버지,할머니와 소가 산다. 할아버지,할머니의 뒷집도 비었지만 거긴 주인이 종종 와서 정리하는 것 같다. 아빠는 마을의 외딴 집을 선호했지만 당시 주어진 돈으로 그렇게 되진 않았다. 부동산에 나와있는 농가주택은 가격이 낮다 싶으면 리모델링을 해야 했고, 가격이 높은 매물은 차라리 그 돈으로 원하는 장소에 새 집을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갈 수 있는 동네의 부동산을 모조리 훑었지만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시골집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허물어져 금방 스러져갈 듯한 집이라도 집은 집이었다. 어쨌든 아빠는 잠시 쉬어갈 집으로 빨간 지붕의 파란 대문집을 택했고, 전원주택을 향한 꿈은 시작되었다.  

 

읽는 내내 캐나다 퀘백 주의 작은 외딴 마을 스리 파인스가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골에 친가와 외가를 모두 두고있어, 시골마을과 동떨어지지 않은 인생을 산 도시사람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평생 몇백 번 왔다갔다 했을 친가와 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친가와 외가는 도시사람인 내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라 전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한 아빠의 마을 할머니 몇몇은 친절하고 따스했으며, 옆집에는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었지만 정신이상 증세로 부모와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부인은 제 나라로 도망치고 할아버지가 아들의 아이를 키우며 다른 곳에 산다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혼자 산다. 대화 나누면 멀쩡해 보이는데 멀쩡하지가 않단다. 자식을 안되게 여긴 아버지가 집, 밭, 논을 어느 정도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데 남자는 온전치 못해 밭과 논을 하염없이 놀리다보니 잡초와 풀이 키만큼 자라있다. 이 동네 땅값이 다른 곳에 비해 비쌌으면 비쌌지 농가치고 싼 게 아니라서 아빠가 안타까워 하실 정도다. 집에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헛소리와 욕을 해댄다. 궁시렁궁시렁. 아빠가 이사온 첫날, 뒷집 할머니는 동네 토박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 하셨다. 어느새 아빠뿐 아니라 엄마와 동생과 나까지 그렇게 되었다. 그럼,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니까.  

지금은 아빠가 계시고, 훗날 양동이가 빨간 지붕과 파란 대문집을 나섰다 실종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만 빼면 인생에서 별 의미없는 집일지도 모르겠다. [스틸 라이프] 속에 등장하는 스리 파인스를 만나면서 아빠의 마을이 자꾸만 생각났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쓸쓸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답고 왁자지껄하기도 한 마을이. 이 소설은 들여다보기의 지존이다. 조각퍼즐을 맞춰가는 생생한 방식은 마을을 두렵게 느끼기 보다는 마을 사람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충동에 다가가게 한다.

 

아빠가 들은 바에 의하면 마을에는 언제부턴가 토박이보다 외지인이 많아졌다고 한다. 양동이를 찾을 때 작은 마을을 모두 훑다시피 했는데 비어있는 집이 훨씬 많았다. 번듯하게 지어놓은 전원주택은 어김없이 사람이 없거나 진돗개 한 마리가 지켰다. 외지인 중에서도 더 외지인이랄 수 있는 내 눈엔 그 광경이 스리 파인스와 겹쳐 보인다. 알고 싶고, 캐묻고 싶고, 녹아들고 싶고, 상관하고 싶다.  

이처럼 짙은 낙엽향과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평온한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가장 다정하고 친절한 심성을 지닌 제인 할머니가 숲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가마슈 경감은 사건해결을 위해 후배형사 보부아르와 니콜을 데리고 마을로 온다. 사인을 가늠할 수 없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을 사람들을 신문하지만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에게 선량했던 제인이 살해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빛이 들지 않아 마약류 열매가 재배되고, 야생동물 사냥꾼들이 소리소문 없이 드나들기도 하는 스리 파인스에서 누군가 죽었다면, 그건 실수로 쏜 사냥용 활이나 총에 맞는 것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의 깊은 갈색 눈에 그녀의 적갈색 점이 있는 갈색 손에 머물렀다. 정원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서 거칠고 햇볕에 탄 손. 손가락에는 반지도 없었고, 반지를 낀 흔적도 없었다. 그는 갓 죽은 사람의 손을 볼 때면 언제나 아픔을 느꼈다. 그 손이 잡았을 온갖 사물과 사람들이 상상이 되는 것이다. 음식, 얼굴들, 문손잡이들, 기쁨이나 슬픔을 표하기 위해 취했을 온갖 손짓. 그리고 마지막 손짓은 틀림없이 자신을 죽인 그 타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자기 눈을 가리는 흰머리를 무심결에 쓸어내 본 적이 없을 젊은이들의 손이었다. (p.54)   
   

  

마을을 둘러싼 신비롭고 쓸쓸한 공기는 의도되었다. 죽음을 두고 분노 대신 애처로움을 쓰는 것 또한 작가의 필력이다. 화가 부부 클라라와 피터, 피터의 친한 친구 벤,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는 크로프트 가족 등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면서도 범인이 마을 안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노련미와 세련미를 두루 갖춘 가마슈 경감은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조심스럽게 마을로 녹아드는 방법을 선택한다. 수사의 기본적 핵심인 신문과 마을회의를 통해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과 행동을 살핀다. 오랜 관찰은 마침내 숨겨져 있던 사실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마침 제인은 미술 전시회에 그림 한 점을 출품할 예정이었고, 그림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제인의 의중과, 집안에 사람을 초대하더라도 일정공간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어 집문제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조카의 태도와 벤의 어머니이자 오랫동안 병상에 있다 세상을 떠난 티머 해들리의 죽음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삶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그들에게 온갖 변명거리를 제공해주잖아요?" (p.205)  
   

 

   
  "제가 알기로는 스리 파인스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 사슴길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 곪고 있음을 뜻해요. 제인을 쏜 사람은 자기가 사람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걸 사냥 사고로 보이게 하고 싶어했어요. 사슴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제인을 실수로 쏜 것인 양. 그런데 문제는 활을 쏘려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겨누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요." (pp.224-225)   
   

 

마을 사람들은 각자 최대한 자신의 비밀과 싸운다. 들키기 싫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나 그것들 중 단서로 집어낼 만 한 게 거의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문제다. 정황에 의해 살인사건으로 밝혀진 제인의 죽음이 고요한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수사는 다시 원점에서, 제인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어째서 집을 숨겨야 했을까. 왜 그림을 이제서야 보여주려고 했을까. 집과 그림. 제인이 추수감사절 박람회 날에 그렸다는 그림 <박람의 날>로 시선을 옮기자 쓸만한 단서들이 우루루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아주아주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먼저 클라라가 그림의 비밀을 눈치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싸워온 진실을 향한 열망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살인의 방식과 이유가 궁금한 거라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보다 덜 자극적이면서도 내밀한 그림 한 편을 영상처럼 감상하는 방법으론 안성맞춤이다.  

퍼즐은 내가 맞추는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퍼즐이 되어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어주는 것. 그게 바로 열쇠다. 제인이 죽어간 이유. 제인이 죽은 이유. 제인을 죽인 이유는 사소하다. 범인에게는 필사적이었지만 당사자로서는 아주 미묘한 이유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죽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범인은 진실을 가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 일이 오히려 또렷하게 진실을 엿보여주는 꼴이 되었다. 진실을 뒤집으면 거짓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을 뒤집어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마치 하트 퀸 카드처럼.  

   
  "아무것도요. 어쩌면 제가 바뀌었겠죠. 그게 가능할까요? 제인의 하트 퀸 카드 트릭처럼 그림도 변하는 게 가능할까요? 사실 저도 작품이 끝난 날 밤에 보면 그게 위대한 작품 같아 보이지만 다음 날 아침에 보면 쓰레기 같거든요. 작품은 그대로인데 제가 변한 거죠. 어쩌면 제인의 죽음 때문에 제가 너무 변해서 전에 이 그림에서 보았던 뭔가를 지금은 보지 못하는 거겠죠. (pp.401-402) 
 
   


 
사실 이 작품이 가르친 건 살인과 광기, 탐욕과 도덕 같은 것이 아니라 인내와 관찰이다. 1000피스짜리 그림퍼즐을 맞추는 데에 드는 노력과 시간을 인내와 관찰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하면 꽤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 따를 것이고, 패배를 맛볼 수도 있듯이. 가마슈 경감이 가르친 것 또한,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한사코 숨기려 한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 드러내 보인 것이 중요한 것을 감추어줄 수도 있고, 숨기려고 애쓰다 결국 숨기려 한 것만 들통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인내와 관찰 앞에 모두 무너진다는 것. 하지만 사람들은 나아가려고만 하지 인내와 관찰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결말을 향해 치닫는 건 영화에서나 멋지면 그만이다. 실제 삶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이상이다.  

   
 

"그때 한 가지 인성 유형에 대해 설명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체된' 삶을 사는 사람들 말이죠. 기억나십니까?" 

"예, 기억나요. 성장하지 않는, 발전하지 않는 사람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사람들이죠. 좀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  

"예, 바로 그거였습니다." 가마슈가 말했다.   

"그들은 자기 인생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구원해 주길 기다려요. 치유해 주길 기다리지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 (p.445) 

 
   

 

뭔가 해야겠다. 여름과 잘 이별하고 다가올 가을을 잘 맞이하는 일이라도 해야겠다. '정체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우린 이다지도 힘겹게 움직이는 것일까. 신나게 칠하던 그림을 완성한 후 붓을 내려놓으니 시원함보다 허탈감이 먼저 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때면 언제나 쓸쓸해진다. 이 소설처럼. 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로 인해 이 모든 것을 배웠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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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자그마치 다섯 개!! 가마슈 경감 시리즈가 있다는 건 어디서 들었는데, 읽어본 적은 없어요. 이 참에 한 번 빌려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저는 뭔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방학 다 보낸 것 같아요. 이제 개강하면 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죠. 시간표를 아주 꽉꽉 채웠거든요. 좀 걱정되긴 하네요. ( '')~

아이리시스 2011-08-24 21:44   좋아요 0 | URL
자극적인 거 싫어하잖아요, 모두들. 저는 자극적인 걸 좋아하긴 하는 편인데 취향이 좀 변했나봐요. 잔잔하고 잔혹하지 않은 [스틸 라이프]가 괜찮았어요. 예쁜 색칠을 하고 났으니 기지개 켜고 공부 좀 할까요, 이제? 수다쟁이님. 눈 코 뜰새 없이 바빠지는 거 그리워요. 대학 때 저는 그렇게 치열하진 않았던 것 같거든요. 학교가 멀었는데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 지쳐서 쓰러지곤 했어요. 맘은 늘 밤새 책을 읽고 고민하고 세상을 보고 싶었는데요. 글도 쓰면서. 저는 늘 제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을 지도 몰라요. 치열한 건 예쁘고 소중한 거예요. 해야 하는데 하면서 보내는 방학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다른 것도 해봐요, 더 늦기 전에요. 알았죠?^^

2011-08-24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8-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에 의하면 이 소설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아이리시스님도 별이 다섯 개군요.
근데 전 왠지 읽을 자신이 없네요.
아, 나라는 인간은 기계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그 좋다는 소설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5 19:46   좋아요 0 | URL
네, 스텔라님 별 다섯 개예요. 그런데 저는 별점에 후한 편이고 사실 최근 읽는 책 중에서 제 기준으로 평가해요. 또 꼭 읽고 싶은 것만 읽다보면 엄청 실망하는 적이 없어요. 누구나 한 번씩 소설에 대한 정체기가 있잖아요. 뭘 읽어도 재미없고 싱겁게 느껴지는..... 지금 스텔라님이 그런 건지도 몰라요.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막상 읽으면 감흥 안가는 단계를 몇 번 겪고나면 읽고싶은 마음마저 사라져요. 기계는 얼른 적응하시고, 소설 대신 영화 보시는 건 어때요? 스텔라님 영화리뷰 좋은데............^^

stella.K 2011-08-25 21:15   좋아요 0 | URL
헙, 정말요!
저 귀가 얇아서 그말 믿습니다.룰루라라~!ㅎ

아이리시스 2011-08-25 22:22   좋아요 0 | URL
그럼 많이 써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어의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그럼요. 그녀의 동기는 살인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배신해서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원한 건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 같이 살 수 있는 남자라고 자기 자신에게 계속 말했죠." (p.477)

  

사람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이유에 관해 생각해봤다. 아, 일단 '고통스럽게'는 빼고 말하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남는다. 엄청난 장르소설과 범죄시리즈, 공포,호러,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가 바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이유'에 관한 것인데 이 원초적이고 신랄한 이유를 내가 과연 대답할 수 있을까. 할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다. 그래서 스릴러 소설을 읽는 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인 살인은 보통 단계를 거친다.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서 그 사실이 트라우마가 되고, 상처로 인한 결핍이 타인에 대한 반항이나 광기로 나타나고, 그로인해 당한 만큼 갚아주자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하고, 마침내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죽인 다음 그 행위가 타당하다고 자인하는 것. 그쯤이면 대충 사이코패스의 살인사건 하나가 발생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추측,해결,단죄하기 위해 범인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형사뿐 아니라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할만큼 연쇄 살인범의 수법이 교묘하고 잔인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Wire in the Blood]라는 시리즈로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던 토니 힐 시리즈는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 중 범죄양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범인의 심리상태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통해 사건을 추리해서 범인을 잡는데에 일조하는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이다. 토니는 남자, 동맹자인 형사 캐롤은 여자. 물론 기존 스토리가 보여주는 로맨스를 살짝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경찰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속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소화불량처럼 배가 따끔따끔하게 뭉쳤다. 뭔가 사악하고 극적인 일을, 저들에게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p.391)   
   

 

게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몇 군데 장소에서 잔인하게 고문당한 끔찍한 모습의 사체가 차례로 발견되면서 토니는 사건해결을 위한 특수팀으로 발령받는다. 그는 끔찍한 사건특징들을 통해 연쇄살인범으로 추정하고 캐롤과 함께 수사를 시작한다. 둘의 동맹자적 관계가 아마도 범죄의 단서를 찾고 또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중요한 소통점일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난 전문가라도 혼자서는 비정상적인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기 힘들다. 함께 일하며 그들은 서로의 필요성과 각자 할 일들을 잘 분담해간다.

   
  "그러나 때로 우리 프로파일러는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그리고 그 신선한 시각이 모든 다름을 만들어 내지요. 죽은 사람은 말을 합니다. 우리 프로파일러에게 말을 하는 죽은 사람들은 경찰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p.22)   
   

 

   
  "당신과 저 둘 다, 함께 있으면, 우린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프로파일링에 처음 직접적으로 입문한 건은 연쇄방화범이었습니다. 대여섯 건의 대형 화재 끝에 전 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지르는지, 왜 저지르는지, 그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됐지요. 그라는 미치광이를 정확히 알게 됐지만, 그에게 이름을 붙인다든지 얼굴을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그러나 저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제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건 당신이 할 일이었던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올바른 방향으로 당신을 이끌어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p.98)   
   

 

사방으로 뛰는 경찰들과 토니의 프로파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사체는 다시 발견되고, 토니와 캐롤은 각자의 역할과 직업적 고통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바탕에 깔린 직업적 동맹관계다. 작업중 토니의 방에 함께 있을 때 걸려온 정체불명의 여자 전화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충분히 빠져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캐롤은 그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토니의 비밀은 어쩔 수 없이 캐롤을 밀어내지만 그 또한 캐롤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다. 각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직업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그렇죠. 최고의 도둑을 잡는 형사는 악당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잖아요. 제가 일을 잘 하려면 나쁜 놈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짓을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예요." (p.276)   
   

 

언론으로 흘러드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에 당국은 비상이 걸리고, 토니의 프로파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점점 미궁으로 빠질때즈음, 토니가 사라진다. 캐롤은 불길한 낌새를 눈치채고 사건파일을 들여다보며 더 큰 그림을 그려낸다. 토니의 방에서 비로소 단서를 발견한 그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토니는 엄청난 상황에 처해있었다.  

게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버려졌던, 자신이 게이라는 걸 밝히기 싫었던 이들의 사체는 범인에 대한 충분한 단서였음에도 웬만한 프로파일에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토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가두자, 그 사실을 언론으로 접한 살인마는 자신의 범죄행각이 모욕 받았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토니를 노려온 것으로 판명난다. 자신 또한 끔찍한 고문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 희생자가 될 뻔했지만, 프로파일의 핵심이자 자신의 장기인 차분한 대화를 통해 범인 핸디 앤디를 무장해제 시킨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살아돌아온 그는 핸디 앤디에 대한 마지막 프로파일과 진실에 대한 해명을 준비한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제가 이 시포드 출신의 크리스토퍼 소프를 압니다. 여기 오기 전 시포드에서 성범죄과 소속이었잖아요. 기억나세요? 이 매춘 두 건 다 제가 체포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소프는 당시 성전환 수술을 한창 하던 중이었어요. 젖꼭지랑 이런 게 다 있었고, 수술을 마저 받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매춘할 때 이름이 뭐였는지 아세요? 경위님, 크리스토퍼 소프는 안젤리카 소프랑 결혼한 게 아닙니다. 그가 바로 안젤리카 소프예요." (p.444)   
   

 

이미 벌어진 사건을 두고, 한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가 어떤 생각으로 왜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차곡차곡 따라가보는 일로서 범인을 잡아들이고 죽은 자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토니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직업적 지식을 잘 활용해 사건을 푼 셈이고, 연쇄 살인범의 목표물을 그 분야에서 가장 전문적인 프로파일러로 설정한 점은 긴장과 두려움을 높여주는 장치가 되었다. 토니 힐 시리즈는 연쇄 살인범의 잔인한 고문일지를 빼고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범죄현장이 생생하다. 독자는 경찰과 프로파일러를 따라 좇아가는 한편, 불행한 연쇄 살인범의 범행현장을 목격하듯이 그의 독백을 통해 찬찬히 읽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 끔찍한 경험을 당한 기억이 드문드문 나겠지만 토니는 이 일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한층 벗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때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토니가 당한 납치는 아무리 전문적인 사람이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지는 않다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한다. 핸디 앤디의 끔찍한 고문전략과 범죄일기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을 수 없다. 행여 그가 이 모든 사건들을 한 번쯤 경험해본 피해자였다 해도. 그렇더라도 이 작품의 출발점은 사랑과 존재다. 사랑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한 인간의 광기와 분노가 발생하는 지점은 결국 결핍이고, 그에 대한 가장 큰 영향력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당신은 날 원했고, 이제 날 가졌어."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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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결핍의 반대말은 소통인 듯 하죠.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전, 쫌 힘들었어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3 14:15   좋아요 0 | URL
아아악, 이거 써서 그런가봐요. 체했어요. 아파요.ㅠㅠ
너무 적나라한 고문묘사 땜에요, 아님 지루해서? 제가 프로파일러가 나오는 미드를 종종 봤는데 [멘탈리스트]도 그렇고 [크리미널 마인드]도 그렇고 비슷한 것 같아요. 책은 별로 본 적이 없.. 흑흑. [wire in the blood]는 못 봤지만 프로파일 방식은 다 비슷한 것 같아서 이 시리즈가 쭉 이렇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차별화된 건 고문일지 뿐인 것 같아요.

나무꾼님, 장르소설 리뷰 어쩜 그렇게 잘쓰시는 거예요? 이거 해보니까 정말 장난 아니에요. 결국 줄거리 나열하고 있잖아요, 저. 이번에는 둘 다 장르소설이어서 한 권은 [스틸라이프]인데, 나무꾼님이 벌써 보신 거. 책 다 읽고나면 리뷰 다시 읽어봐야죠. 호호. 오전 아니 점심 때 보니 더 반가워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가 상담 전공이잖아요, 가끔 앞으로 분야를 무엇을 정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프로파일러> 또는 <범죄심리학> 전공은 다들, 수업 한번 듣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요. ㅠㅠ.
책으로 읽는 것과 실전은 영 다른거 같더라구요, 진짜 벌어진 일들을 읽고 있으면 구역질도 나요.
저는 <한국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책을 읽고 아주 기겁했어요... ^^

그럼에도 장르 소설을 엄청 좋아하니 모순이죠, 아마 장르 소설의 경우, 사람이 아닌 목적물, 사물로 치부하나봐요.
그냥 퍼즐만 보는거죠, 내 뒤통수를 치냐 아니냐 등의.

그리고.......... 인정하기 싫고 무섭기도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도 무시못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환경으로 완전하게 바로잡지 못 하고, 꼭 살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지 모른다는. 그런 경우는
환경 열악으로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배웠네요. 무거운 주제예요, 정말. 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4 11:15   좋아요 0 | URL
아까 신창원이 자살기도 전날 어떤 여자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었어요. 죄를 미워해야 할지 사람을 미워해야 할지 그런 딜레마에 빠지는거죠. 내가 피해당사자이거나 유족이라면 그럴 수 없겠지만 아니라고 믿고 사니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나 봐요.

아.... 저 봄에 형소법 강의 듣는데 변사자 검시 부분에서 끔찍한 사체에 관한 예를 여러차례 들었어요. 실제 사건을 대하는 것과 소설을 대하는 것에는 분명 마음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겁이 많은 편이지만, 공포영화나 스릴러,범죄물 보면서 두렵거나 끔찍해하지는 않거든요. 만약 그렇다해도 그냥 소설에 이런 게 있구나 정도지 현실로 연결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두려울 필요가 없는 거겠죠.

마고님 말씀처럼 끔찍한 현장사진만 보여줘도 보통의 일반사람들은 모두 구역질하거나 토하거나 고개를 돌린대요. 호기심과 관심과 실전은 분명 다른 거죠.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도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살인사건이나 범죄자를 대할 때 환경만 가지고 탓하는 일반인들의 시선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에따라 해결방법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마고님 덕분에 저 책 급관심이 가요. 소설은 소설이고 이론은 이론이다,라는 말이 딱 제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나는 밖에서는 배우지만 집에서는 그냥 딸이다,와 같은.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드라마나 장르소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파일러들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중학교 아이들 중에도 장래 희망 직업이 프로파일러인 아이들도 봤구요.

이 사회 모든 문제들, 혹은 역사 속 모든 일들은 결국 소통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도 같구요. 제 생활만 봐도 소통이 잘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그래도 가장 치명적인 건 저렇게 어렸을 적 소통의 부재가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죠. 부모로서, 항상 그런 부분이 신경 쓰여요.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은 이런 소설 읽으면 밤에 잠 잘 주무세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8-24 11:4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소설의 나름 반전인데, 여기서 프로파일러가 잡혀가요.ㅠㅠ

저는 읽고나서 까먹나 봐요. 일단 문단속을 다시 하고 잠은 잘자요. 제가 원래 잠은 되게 잘자요. 실제 일이 아니고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나 봐요.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잠은 잘자고. 하여튼 저 좀 이상한 것 같아요.ㅋㅋㅋㅋㅋ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 보는 거랑은 확실히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걸 며칠동안 헤매고 다녀도 양동이를 못 찾았을 때 느꼈어요.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나뿐일 경우 세상은 별로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범죄자들의 환경 또한 무시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슬픈 걸 대하기 싫은 현맘 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고, 이해하면서도 저는 무서운 걸 즐기고, 밤에는 문단속에 목을 매고 그러나 봐요. 아이러니 해요. 여름 뿐이지 저 또한 가을에도 장르소설을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ㅠㅠ 그냥 트릭 써서 범인 밝혀내는 정도의 가벼움이 좋아요. 학문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적이 저도 몇 번 있지만 그러기에 저는 비위도 약하고, 겁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