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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그럼요. 그녀의 동기는 살인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배신해서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원한 건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 같이 살 수 있는 남자라고 자기 자신에게 계속 말했죠." (p.477)

  

사람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이유에 관해 생각해봤다. 아, 일단 '고통스럽게'는 빼고 말하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남는다. 엄청난 장르소설과 범죄시리즈, 공포,호러,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가 바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이유'에 관한 것인데 이 원초적이고 신랄한 이유를 내가 과연 대답할 수 있을까. 할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다. 그래서 스릴러 소설을 읽는 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인 살인은 보통 단계를 거친다.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서 그 사실이 트라우마가 되고, 상처로 인한 결핍이 타인에 대한 반항이나 광기로 나타나고, 그로인해 당한 만큼 갚아주자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하고, 마침내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죽인 다음 그 행위가 타당하다고 자인하는 것. 그쯤이면 대충 사이코패스의 살인사건 하나가 발생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추측,해결,단죄하기 위해 범인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형사뿐 아니라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할만큼 연쇄 살인범의 수법이 교묘하고 잔인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Wire in the Blood]라는 시리즈로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던 토니 힐 시리즈는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 중 범죄양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범인의 심리상태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통해 사건을 추리해서 범인을 잡는데에 일조하는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이다. 토니는 남자, 동맹자인 형사 캐롤은 여자. 물론 기존 스토리가 보여주는 로맨스를 살짝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경찰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속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소화불량처럼 배가 따끔따끔하게 뭉쳤다. 뭔가 사악하고 극적인 일을, 저들에게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p.391)   
   

 

게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몇 군데 장소에서 잔인하게 고문당한 끔찍한 모습의 사체가 차례로 발견되면서 토니는 사건해결을 위한 특수팀으로 발령받는다. 그는 끔찍한 사건특징들을 통해 연쇄살인범으로 추정하고 캐롤과 함께 수사를 시작한다. 둘의 동맹자적 관계가 아마도 범죄의 단서를 찾고 또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중요한 소통점일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난 전문가라도 혼자서는 비정상적인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기 힘들다. 함께 일하며 그들은 서로의 필요성과 각자 할 일들을 잘 분담해간다.

   
  "그러나 때로 우리 프로파일러는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그리고 그 신선한 시각이 모든 다름을 만들어 내지요. 죽은 사람은 말을 합니다. 우리 프로파일러에게 말을 하는 죽은 사람들은 경찰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p.22)   
   

 

   
  "당신과 저 둘 다, 함께 있으면, 우린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프로파일링에 처음 직접적으로 입문한 건은 연쇄방화범이었습니다. 대여섯 건의 대형 화재 끝에 전 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지르는지, 왜 저지르는지, 그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됐지요. 그라는 미치광이를 정확히 알게 됐지만, 그에게 이름을 붙인다든지 얼굴을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그러나 저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제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건 당신이 할 일이었던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올바른 방향으로 당신을 이끌어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p.98)   
   

 

사방으로 뛰는 경찰들과 토니의 프로파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사체는 다시 발견되고, 토니와 캐롤은 각자의 역할과 직업적 고통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바탕에 깔린 직업적 동맹관계다. 작업중 토니의 방에 함께 있을 때 걸려온 정체불명의 여자 전화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충분히 빠져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캐롤은 그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토니의 비밀은 어쩔 수 없이 캐롤을 밀어내지만 그 또한 캐롤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다. 각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직업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그렇죠. 최고의 도둑을 잡는 형사는 악당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잖아요. 제가 일을 잘 하려면 나쁜 놈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짓을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예요." (p.276)   
   

 

언론으로 흘러드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에 당국은 비상이 걸리고, 토니의 프로파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점점 미궁으로 빠질때즈음, 토니가 사라진다. 캐롤은 불길한 낌새를 눈치채고 사건파일을 들여다보며 더 큰 그림을 그려낸다. 토니의 방에서 비로소 단서를 발견한 그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토니는 엄청난 상황에 처해있었다.  

게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버려졌던, 자신이 게이라는 걸 밝히기 싫었던 이들의 사체는 범인에 대한 충분한 단서였음에도 웬만한 프로파일에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토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가두자, 그 사실을 언론으로 접한 살인마는 자신의 범죄행각이 모욕 받았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토니를 노려온 것으로 판명난다. 자신 또한 끔찍한 고문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 희생자가 될 뻔했지만, 프로파일의 핵심이자 자신의 장기인 차분한 대화를 통해 범인 핸디 앤디를 무장해제 시킨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살아돌아온 그는 핸디 앤디에 대한 마지막 프로파일과 진실에 대한 해명을 준비한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제가 이 시포드 출신의 크리스토퍼 소프를 압니다. 여기 오기 전 시포드에서 성범죄과 소속이었잖아요. 기억나세요? 이 매춘 두 건 다 제가 체포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소프는 당시 성전환 수술을 한창 하던 중이었어요. 젖꼭지랑 이런 게 다 있었고, 수술을 마저 받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매춘할 때 이름이 뭐였는지 아세요? 경위님, 크리스토퍼 소프는 안젤리카 소프랑 결혼한 게 아닙니다. 그가 바로 안젤리카 소프예요." (p.444)   
   

 

이미 벌어진 사건을 두고, 한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가 어떤 생각으로 왜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차곡차곡 따라가보는 일로서 범인을 잡아들이고 죽은 자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토니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직업적 지식을 잘 활용해 사건을 푼 셈이고, 연쇄 살인범의 목표물을 그 분야에서 가장 전문적인 프로파일러로 설정한 점은 긴장과 두려움을 높여주는 장치가 되었다. 토니 힐 시리즈는 연쇄 살인범의 잔인한 고문일지를 빼고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범죄현장이 생생하다. 독자는 경찰과 프로파일러를 따라 좇아가는 한편, 불행한 연쇄 살인범의 범행현장을 목격하듯이 그의 독백을 통해 찬찬히 읽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 끔찍한 경험을 당한 기억이 드문드문 나겠지만 토니는 이 일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한층 벗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때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토니가 당한 납치는 아무리 전문적인 사람이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지는 않다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한다. 핸디 앤디의 끔찍한 고문전략과 범죄일기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을 수 없다. 행여 그가 이 모든 사건들을 한 번쯤 경험해본 피해자였다 해도. 그렇더라도 이 작품의 출발점은 사랑과 존재다. 사랑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한 인간의 광기와 분노가 발생하는 지점은 결국 결핍이고, 그에 대한 가장 큰 영향력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당신은 날 원했고, 이제 날 가졌어."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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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결핍의 반대말은 소통인 듯 하죠.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전, 쫌 힘들었어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3 14:15   좋아요 0 | URL
아아악, 이거 써서 그런가봐요. 체했어요. 아파요.ㅠㅠ
너무 적나라한 고문묘사 땜에요, 아님 지루해서? 제가 프로파일러가 나오는 미드를 종종 봤는데 [멘탈리스트]도 그렇고 [크리미널 마인드]도 그렇고 비슷한 것 같아요. 책은 별로 본 적이 없.. 흑흑. [wire in the blood]는 못 봤지만 프로파일 방식은 다 비슷한 것 같아서 이 시리즈가 쭉 이렇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차별화된 건 고문일지 뿐인 것 같아요.

나무꾼님, 장르소설 리뷰 어쩜 그렇게 잘쓰시는 거예요? 이거 해보니까 정말 장난 아니에요. 결국 줄거리 나열하고 있잖아요, 저. 이번에는 둘 다 장르소설이어서 한 권은 [스틸라이프]인데, 나무꾼님이 벌써 보신 거. 책 다 읽고나면 리뷰 다시 읽어봐야죠. 호호. 오전 아니 점심 때 보니 더 반가워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가 상담 전공이잖아요, 가끔 앞으로 분야를 무엇을 정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프로파일러> 또는 <범죄심리학> 전공은 다들, 수업 한번 듣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요. ㅠㅠ.
책으로 읽는 것과 실전은 영 다른거 같더라구요, 진짜 벌어진 일들을 읽고 있으면 구역질도 나요.
저는 <한국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책을 읽고 아주 기겁했어요... ^^

그럼에도 장르 소설을 엄청 좋아하니 모순이죠, 아마 장르 소설의 경우, 사람이 아닌 목적물, 사물로 치부하나봐요.
그냥 퍼즐만 보는거죠, 내 뒤통수를 치냐 아니냐 등의.

그리고.......... 인정하기 싫고 무섭기도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도 무시못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환경으로 완전하게 바로잡지 못 하고, 꼭 살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지 모른다는. 그런 경우는
환경 열악으로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배웠네요. 무거운 주제예요, 정말. 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4 11:15   좋아요 0 | URL
아까 신창원이 자살기도 전날 어떤 여자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었어요. 죄를 미워해야 할지 사람을 미워해야 할지 그런 딜레마에 빠지는거죠. 내가 피해당사자이거나 유족이라면 그럴 수 없겠지만 아니라고 믿고 사니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나 봐요.

아.... 저 봄에 형소법 강의 듣는데 변사자 검시 부분에서 끔찍한 사체에 관한 예를 여러차례 들었어요. 실제 사건을 대하는 것과 소설을 대하는 것에는 분명 마음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겁이 많은 편이지만, 공포영화나 스릴러,범죄물 보면서 두렵거나 끔찍해하지는 않거든요. 만약 그렇다해도 그냥 소설에 이런 게 있구나 정도지 현실로 연결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두려울 필요가 없는 거겠죠.

마고님 말씀처럼 끔찍한 현장사진만 보여줘도 보통의 일반사람들은 모두 구역질하거나 토하거나 고개를 돌린대요. 호기심과 관심과 실전은 분명 다른 거죠.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도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살인사건이나 범죄자를 대할 때 환경만 가지고 탓하는 일반인들의 시선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에따라 해결방법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마고님 덕분에 저 책 급관심이 가요. 소설은 소설이고 이론은 이론이다,라는 말이 딱 제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나는 밖에서는 배우지만 집에서는 그냥 딸이다,와 같은.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드라마나 장르소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파일러들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중학교 아이들 중에도 장래 희망 직업이 프로파일러인 아이들도 봤구요.

이 사회 모든 문제들, 혹은 역사 속 모든 일들은 결국 소통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도 같구요. 제 생활만 봐도 소통이 잘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그래도 가장 치명적인 건 저렇게 어렸을 적 소통의 부재가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죠. 부모로서, 항상 그런 부분이 신경 쓰여요.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은 이런 소설 읽으면 밤에 잠 잘 주무세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8-24 11:4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소설의 나름 반전인데, 여기서 프로파일러가 잡혀가요.ㅠㅠ

저는 읽고나서 까먹나 봐요. 일단 문단속을 다시 하고 잠은 잘자요. 제가 원래 잠은 되게 잘자요. 실제 일이 아니고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나 봐요.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잠은 잘자고. 하여튼 저 좀 이상한 것 같아요.ㅋㅋㅋㅋㅋ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 보는 거랑은 확실히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걸 며칠동안 헤매고 다녀도 양동이를 못 찾았을 때 느꼈어요.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나뿐일 경우 세상은 별로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범죄자들의 환경 또한 무시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슬픈 걸 대하기 싫은 현맘 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고, 이해하면서도 저는 무서운 걸 즐기고, 밤에는 문단속에 목을 매고 그러나 봐요. 아이러니 해요. 여름 뿐이지 저 또한 가을에도 장르소설을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ㅠㅠ 그냥 트릭 써서 범인 밝혀내는 정도의 가벼움이 좋아요. 학문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적이 저도 몇 번 있지만 그러기에 저는 비위도 약하고, 겁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