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민들레 압정

민들레 압정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詩 : 이문재



* 위 사진은 하도 많이 올려서 민망하기까지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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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3-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일상에서 이리도 아름다운 진리를 찾아내는 시인의 눈이 마냥 부럽다.

파란여우 2005-03-1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망초꽃이 압정처럼 박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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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틱 낫한 스님의 책에 수록된 사진과 같은 풍이군요. 저 얼굴들중 하나가 나의 얼굴이었으면 싶습니다. 아니, 저 얼굴을 비슷하게라고 닮고 싶은 소망입니다.

잉크냄새 2005-03-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편안하고 욕망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그런 평안한 얼굴... 닮고 싶네요.

icaru 2005-03-1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요~

잉크냄새 2005-03-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은 저 얼굴을 닮아가시는것 같습니다.
 



     명태

     - 강 세환 -

    어머니는 덕장 밑에 있었다.
    시린 손으로 아가미 꺼내고
    명태 뱃속에서
    창난 명란 곤지를 뜯어낸다.
    명태 배때기 가르는 어머니
    머리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값비싼 명란은 주인 몫으로 두고
    밤새도록 꺼내놓은 창난 곤지를
    품삯으로 받아 머리에 이고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온다.
    밤새 쌓인 눈이 환하게 길 밝혀주는
    그 길 따라 노동의 밤 저쪽에서
    새벽 사이 어둠을 밀치며 온다.

 

 

 

 

----------------------------------------------------------------------------------------------------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명태 할복장으로 가곤했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조그만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 손을 녹여가며 명태 배때기를 가르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나도 명태 배때기를 가르곤 했다. 몇백마리 배때기 가르는 것 도와드릴테니 일찍 들어가시라고 약속하고 서투른 칼질을 해대곤 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비릿한 비린내와 괜한 짜증에 골이 나서 휘두른 칼날에 명태 배때기는 곱게 갈리지 못하고 얼기설기 난도질되곤 했다. 대관령 황태덕장에서 석달 열흘을 얼었다 풀렸다 할 운명인 명태는 얼기설기 찢어진 배를 움켜쥐고 멍한 눈을 들어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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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0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어요.^^

플레져 2005-03-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생의 한 복판을 만나 반갑습니다만...
명태의 운명이 가슴을 쓸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5-03-0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태할복장...
전 그 풍경이 비릿한 것이 구수한 것이 서글픈 것이 참 좋아요.^^

Laika 2005-03-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시도, 잉크님의 글도 한참 쳐다보게 되네요..^^

진주 2005-03-0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부모들이 자식 잘 키운다고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 늘 생각한답니다.
잉크님처럼 자라면서 부모님의 일을 거든다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여물어 지겠지요.
잉크님, 오늘따라 유난히 님이 단단하게 보여요. 어떤 충격이나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을 단아함이랄까요.....

icaru 2005-03-0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글도 시 아닙니까...? 산문시요...
시인은 잉크냄새 님이시고요...
바닷바람이 묻어나는 음...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5-03-0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오랫만이죠.^^ 요즘은 자주 못 들어오네요.
플레져님 / 저의 삶의 한복판이라기보다는 그냥 지나간 시절의 한 단편이랄까요...
로드무비님 / 명태할복장을 아시는군요. 요즘도 고향 냇가 한편에는 그 비릿함과 서글픔이 묻어납니다.
라이카님 / 명태눈을 너무 오래 바라보지 마세요. 그 흐릿함 속에 풍덩 빠져버릴지도 모르거든요.
찬미님 / 단아함이라니 그저 한없이 머리가 조아려집니다. 세상의 유혹에 한없이 약한 그런 보통사람인걸요.
복순이 언니님 / 음...저도 가끔은 시를 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님은 유독 바다내음을, 바다바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파란여우 2005-03-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9년 겨울에 주문진을 거쳐 강릉,속초, 거진, 대진을 여행했었어요.
그 3박 4일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만나는 어촌마을 처마밑에 걸려 있던 명태 몇마리를 보며 저것이 이 세상에 주린 내 배를 채워주기 위해 할복하고 별처럼
빛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성악가 오현명이 부른 '명태'는 부르조아의 냄새가 물씬 묻어 나지만 잉크냄새님의 명태는 눈물과 아쉬움과 추억이 너무나 영롱하게 빛나고 있답니다.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오던 피로에 지친 어머니...그런 어머니가 다시 그리워지며, 또 한편으로는 불효했던 기억에 눈물이 나는군요....

잉크냄새 2005-03-1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 1989년이라면 제가 고등학생일때군요. 그때 버스속에서 서글픈 눈으로 명태를 바라보시던 님이 여우님이었던 모양입니다. 님이 느끼신 눈물과 아쉬움과 추억이 삶을 영롱하게 하는 요소인것 같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달라이 라마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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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수 있을까. 행복이란 말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면서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고 개인마다 행복을 느끼는 감정 또한 다양하다. 세상을 다 가진듯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이가 있고 초라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행복한 이가 있다. 이 다양한 행복의 모습 중에서 구태여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 행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여배우조차도 그 결과가 뒤틀리고 불행한 소망이었을지라도 스스로의 삶에 고통을 가하기보다는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려고 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가 티벳의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를 만나 행복에 관해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심리학자로서 느끼고 경험한 삶의 형태들에 관한 해답과 근거를 달라이 라마의 말 속에서 찾고 있다. 왠지 삶은 이러이러해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명확한 타당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정신적 지주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타당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굳이 과학적, 의학적 논거를 들어서 달라이 라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왠지 군더더기로 보인다. 아마 서양인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행복한 삶은 마음의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의 심성은 본디 선하고, 나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 내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듯이 타인에게도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관용, 자비, 친절, 인내, 겸허와 같은 삶의 긍정적 요소들을 마음의 수행을 통해 확장시켜 삶의 부정적 요소들을 밀어내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방법론을 접하면서도 냉소적이지 않게 읽었던 것은 달라이 라마라는 위대한 정신적 지주의 글이라는 면도 있지만 시각의 전환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수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수긍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 실천의 여부는 어렵고 모호할지라도.

행복론을 접하면서 한편으로 류시화 시인의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된다"  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달라이 라마만큼의 정신적 수양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에서 오히려 시인의 글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미리 한발 물러서는 것도 아니다. 류시화 시인의 저 글귀는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다만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듯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의 행복론은 이 너저분한 욕망들을 삶속에 집어넣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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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3-0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행복의 의미가 그때그때 달라지더라고요~
속이 안 좋아서...몸이 아픈 오늘. 그렇다고 빠질 수 없어 회사에 나왔는데...
동료들이 손을 따 주고, 등을 두들겨 주네요~
이럴 땐 이게 행복이구나...싶어요^^

진주 2005-03-0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잉크님의 리뷰를 읽으면 나도 리뷰 좀 쓰야지하는 마음이 든답니다.
게으런 제게 자극을 주시지만 여전히 농뗑이쳐서 미안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플레져 2005-03-0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실패하지만, 매일 시도해봅니다. 마음의 수양, 마음의 평화...

잉크냄새 2005-03-0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 행복은 바람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이의 가슴에든 어떤 형태로든 살며시 자리잡잖아요.
찬미님 / 가물에 콩나듯이 올라오는 리뷰를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황공무지로소이다.
플레져님 / 저도 매일 조금씩 사고의 전환을 꾀해볼까 합니다. 그런 작은 변화가 결국 큰 흐름을 이루는 날이 올거라고 달라이 라마 아저씨가 그러더라고요.^^

미네르바 2005-03-0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삶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 없는데도 생각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내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의 수양을 쌓아서 늘 행복해지려고 합니다요^^ 한번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싶어지네요. 잘 읽었어요.

잉크냄새 2005-03-0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달라이라마의 글중 변화에 대한 저항 부분이 생각나네요. 사람들은 변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부분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오직 부정적인 면만을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저항한다고 합니다. 삶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켜 변화에 대한 저항을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파란여우 2005-03-0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평을 읽고보니 갑자기 밥벌이의 지겨움이 생각납니다.
직장 생활 다 집어 치우고 욕심을 비우고 살고 싶어지지만
제가 밥을 너무 많이 좋아하잖습니까...음하하하하(무슨 웃음소리가 이렇대?)

잉크냄새 2005-03-0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완전히 비우면 득도할수 있겠지만 현실속에서는 힘든 일인것 같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그저 내 삶속의 욕망이 되도록, 욕망에 휩싸이지 않도록 마음을 수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는 시만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시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쓸쓸해진다. 그것은 거의 생리적인 것이다. 시는 알몸의 시만으로 노출되어야 한다. 시는 일상적인 산문으로 분해될 수 없다. 시는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다. 시는 언어의 의미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고 감싸고 또 그것과 혼연 일체가 되어 있는 향내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시는 벙어리 소녀의 눈빛과 같은 것이다. 시가 전달하는 것은 하나의 침묵이다.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p13~14

언젠가 나는 시가 전달하는 것은 벙어리 소녀의 눈빛과 같은 침묵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논리의 손가락 사이를 새나가는 모래라고 했다. 무력한 언어가 잉태하는 안타까움이라고 했다.
참된 예술작품은 말하지 않는다. 시는 시만으로 직립해야 한다. 하늘의 높이에서 얼어 있는 햇살의 폭포같이 수직으로 혼자서 서야 한다.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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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0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가장 어려운 장르입니다.
시인은 가장 먼저 울며 가장 나중까지 우는 자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침묵의 소리를 읽는 일은 내면을 읽는다는 의미죠?
시는 시 만으로 직립해야 한다는 말에 200% 공감!!!

잉크냄새 2005-03-0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뭔 소린줄 모르고 읽고 있답니다. 시는 시만으로 직립하듯이 제 속의 시로만 살아나는 그런 시들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