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 강 세환 -

    어머니는 덕장 밑에 있었다.
    시린 손으로 아가미 꺼내고
    명태 뱃속에서
    창난 명란 곤지를 뜯어낸다.
    명태 배때기 가르는 어머니
    머리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값비싼 명란은 주인 몫으로 두고
    밤새도록 꺼내놓은 창난 곤지를
    품삯으로 받아 머리에 이고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온다.
    밤새 쌓인 눈이 환하게 길 밝혀주는
    그 길 따라 노동의 밤 저쪽에서
    새벽 사이 어둠을 밀치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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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명태 할복장으로 가곤했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조그만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 손을 녹여가며 명태 배때기를 가르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나도 명태 배때기를 가르곤 했다. 몇백마리 배때기 가르는 것 도와드릴테니 일찍 들어가시라고 약속하고 서투른 칼질을 해대곤 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비릿한 비린내와 괜한 짜증에 골이 나서 휘두른 칼날에 명태 배때기는 곱게 갈리지 못하고 얼기설기 난도질되곤 했다. 대관령 황태덕장에서 석달 열흘을 얼었다 풀렸다 할 운명인 명태는 얼기설기 찢어진 배를 움켜쥐고 멍한 눈을 들어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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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0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어요.^^

플레져 2005-03-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생의 한 복판을 만나 반갑습니다만...
명태의 운명이 가슴을 쓸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5-03-0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태할복장...
전 그 풍경이 비릿한 것이 구수한 것이 서글픈 것이 참 좋아요.^^

Laika 2005-03-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시도, 잉크님의 글도 한참 쳐다보게 되네요..^^

진주 2005-03-0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부모들이 자식 잘 키운다고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 늘 생각한답니다.
잉크님처럼 자라면서 부모님의 일을 거든다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여물어 지겠지요.
잉크님, 오늘따라 유난히 님이 단단하게 보여요. 어떤 충격이나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을 단아함이랄까요.....

icaru 2005-03-0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글도 시 아닙니까...? 산문시요...
시인은 잉크냄새 님이시고요...
바닷바람이 묻어나는 음...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5-03-0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오랫만이죠.^^ 요즘은 자주 못 들어오네요.
플레져님 / 저의 삶의 한복판이라기보다는 그냥 지나간 시절의 한 단편이랄까요...
로드무비님 / 명태할복장을 아시는군요. 요즘도 고향 냇가 한편에는 그 비릿함과 서글픔이 묻어납니다.
라이카님 / 명태눈을 너무 오래 바라보지 마세요. 그 흐릿함 속에 풍덩 빠져버릴지도 모르거든요.
찬미님 / 단아함이라니 그저 한없이 머리가 조아려집니다. 세상의 유혹에 한없이 약한 그런 보통사람인걸요.
복순이 언니님 / 음...저도 가끔은 시를 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님은 유독 바다내음을, 바다바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파란여우 2005-03-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9년 겨울에 주문진을 거쳐 강릉,속초, 거진, 대진을 여행했었어요.
그 3박 4일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만나는 어촌마을 처마밑에 걸려 있던 명태 몇마리를 보며 저것이 이 세상에 주린 내 배를 채워주기 위해 할복하고 별처럼
빛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성악가 오현명이 부른 '명태'는 부르조아의 냄새가 물씬 묻어 나지만 잉크냄새님의 명태는 눈물과 아쉬움과 추억이 너무나 영롱하게 빛나고 있답니다.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오던 피로에 지친 어머니...그런 어머니가 다시 그리워지며, 또 한편으로는 불효했던 기억에 눈물이 나는군요....

잉크냄새 2005-03-1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 1989년이라면 제가 고등학생일때군요. 그때 버스속에서 서글픈 눈으로 명태를 바라보시던 님이 여우님이었던 모양입니다. 님이 느끼신 눈물과 아쉬움과 추억이 삶을 영롱하게 하는 요소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