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라사와 나오끼의 <몬스터>에 보면 60년 동안 숲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짧게 등장한다. 청년시절의 그는 맑은 사람이었다. 그가 거니는 숲속은 온갖 새들의 천국이었고 누구보다 맑은 심성의 그에게 새들이 몰려들어 앉곤 했다. 2차 대전의 발발로 게슈타포가 된 그는 당국의 명령으로 어느 청년을 쫓게 되었고 그가 거닐던 바로 그 숲에서 도망자를 사살했다. 그 이후, 새들은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 이후 청년은 60년 동안 매일 숲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장영희 교수의 이 책도 그런 용서와 희망의 책이 아닐까 싶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희망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그것이다. 자아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영혼마저 빼앗겨버린 우리들의 용서와 아직 그 끝자락을 놓지않고 있는 희망에 대한 글이다. 숲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인처럼 우리도 저 멀리 절름거리며 뒤쳐지는 삶과 영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문학작품이다. 현실의 문제에서 문학작품의 세계로, 다시 현실의 깨달음과 희망으로 돌아오는 글의 구성은 문학의 가교 역활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맑고 정갈한 글의 장영희 교수가 걸어간 문학의 숲속길을 따라 한번 걸어가볼 일이다. 어느 한곳 웅크리고 있던 나의 영혼이 나의 그림자와 더불어 따라갈 것이다. 새들이 나의 어깨에 다시 앉는 그곳까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8-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못 읽었네요. 선선해지면 읽어야겠어요. 올여름 왜 이리 일에 밀려사는 것 같은지...^^

파란여우 2006-08-1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 속에서 님을 기다리다 잊고 있던 처자 반가워 덥썩 끌어 안습니다.
어맛, 책을 끌어 안았다구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8-2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장만 찍어놓은 책.:)

잉크냄새 2006-08-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폭염이네요. 선선해지는 독서의 계절, 양서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여우님 / 이 책, 기억나시죠? 요즘은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라, 이리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읽었지 뭡니까.
사람님 / 눈도장을 찍으셨다니 이제는 책장을 넘기실 차례군요.^^

2006-08-23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8-2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네, 다시 사진속의 구렛나루를 보고 왔어요. 역시 제가 눈썰미가 떨어져서요. 풍경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전출처 : waits > [펌.하꿈] 지식인은 왜 하중근씨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는가?

 

지식인은 왜 하중근씨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는가?



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건설노동자 하중근씨의 죽음만큼 억울하고, 침묵에 쌓여있는 죽음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하중근씨는 집회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동료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러 갔다가 밀리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들리는 말을 들려주었다. 죽음에 대한 사진도,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가십거리’에 불과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작은 말들부터 알고 싶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찾아볼 수 있는 진실은 너무나 없다.

너무나 선량해 보이는 이 아저씨의 죽음이 마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의 하나일 뿐이라는 듯이 무시하고 일상생활에 빠져드는 지식인들도, 그리고 시민단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신문들이야 늘 그렇다고 하지만, 이 죽음만큼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죽음도 별로 없어 보인다.

 

1. 기원 : 노무현의 서민들

불과 2년 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한국형 뉴딜을 들고 나올 때 많은 시민단체와 심지어 한겨레 신문의 기자들까지 “경제는 어떻게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막노동꾼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 2년 전에 지금 불법파업과 불법점거라고 몰리고 있던 이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을 위해서 도로도 짓고 행정수도도 이전해야 한다고 소위 바른말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얼토당토 않게 건설한국의 구호를 들고 나오고, 이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포항에서 임산부가 유산하는 일이 벌어지는 정도로 오고가는 시민들까지 폭도로 몰리고 있는 이들의 한 가운데에는 바로 노무현의 그 “서민들”이 한 가운데 서 있다. 이 사람들이 행복하고, 이들에게도 얼마간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고 “정부 재정자금 조기지출”을 얘기하던 것이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지금 노무현의 서민들, 바로 그 시절의 서민들이 소위 참여정권이라는 세력의 방패 앞에 외롭게 서 있는 중이다.

그때 바로 나한테까지 “경제를 아느냐”고 몰아붙이던 그 지식인들이 노무현 정권은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반성하는 척을 한다. 내 눈에는 다음 대선놀이에 또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서 이미 기운이 빠진 것으로 판명된 노무현과의 선 긋기에 다름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지금 지식인들과 그 당시 노무현 정부살리기에 앞섰던 시민단체들이 할 얘기는 노무현에게 종조목을 들이대는 일이 아니라...

억울한 죽음인 하중근씨의 죽음의 경위와 사인을 정확하게 해명을 하라는 요구를 해야하고, ‘경제적 죽음’으로 내몰리게 될 이 노동자들에게 손배소를 걸지 말 것을 요구해야 한다.

산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비록 허울만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지식인들의 요구이다.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지금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그리고 단 한 가족이라도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은 지식인의 고해성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다.

 

2. 하중근씨의 죽음은 지식인의 죽음이다

한 사회는 언제나 지식인이라고 이름붙여진 사람들에게 예우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보면서, 그들에게 적절한 경제적 대우를 한다. 머리 좋고 위대하신 분이라서 그렇게 예우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약자들을 대변하거나 그들 앞에 몸을 던질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을 예우하는 것이다.

방패의 패킹마저 던져버리고 생활인이 전투경찰 앞에 맨 몸으로 서 있게 되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지식인들에게 그리고 학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이다.

원래는 정부와 생활인 사이의 갈등에 지식인과 학자라는 하나의 안전선이 그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말 즉 토론으로 해결하고, 몸이 움직이기 전에 머리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일들을 하라고 학자들을 만들어놓고 월급도 주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1년, 끝까지 내몰린 생활인들이 “정의의 방패”임을 자처하는 전투경찰의 방패 앞에 알몸으로 내몰려서 서게 될 일이 더 많아질 것이고, 이미 사라져버린 목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많은 목숨들이 이 정권의 제단에 올려질 것이다. 불 보듯이 뻔하지 않은가?

이 가운데에 지식인들이 안전지대이든 아니면 바리케이드이든, 혹은 ‘고독한 요구자’이든, 그런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한다.

하중근씨의 죽음을 보고도 “저건 절차상 잘못된 폭도에게 벌어진 비극적 사건일 뿐이야”라고 말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짊어질 수많은 “배고프다”는 아우성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달려간 고부의 민중들이 난을 일으키면서 언제 일본 물러가라고 혹은 고종 물러나라고 하였던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 한 마디이다.

“배고프다.”

가깝게는 친구에게 도시락이라도 건네주러 나섰다가 죽었던 고 하중근씨의 사건에서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연말의 농민들이 죽음까지 이들이 외쳤던 소리는 정말 단 한 마디이다.

“배고프다.”

“배고프다”고 민중들이 길거리로 나서기 시작하는 순간이 우리 역사에서 언제나 난의 역사였고, 지금은 고부민란 이후로 백 여년만에 생활인들이 길거리로 나서는 순간이다.

이제 그들이 역사 속에서 이 시기의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너희들은 배부르니? 나는 배고픈데...”

 

3. 역사는 계속된다

연말, 여의도에 모인 농민들은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들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국회와 정부에 할 말이 있던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고픈 사람들이 서울로 자비를 들여서 올라왔다.

이제 더 이상 배고픈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지 않는다. 포항의 건설노동자 사건은 그래서 역사의 전환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서울로 모이지 않고, 밥이라도 줄 능력이 있는 ‘창고’와 ‘관아’로 모여드는 것이다. 포스코에 모였던 건설노동자 사건이 사건인 것은, 정부에 아무리 말해봐야 혹은 국회에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엄청난 변화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배고프다”고 달려간 농민들과 포항에 모였던 건설노동자는 다른 점이 전혀 없다. 본질은 “배고프다”이고 그들이 원한 것은 민주주의나 절차 혹은 정의 같은 고상한 것과는 전혀 차이가 없이 “밥 사먹게 돈 좀 줘라”는 단 한 마디였다.

2006년 8월, 대한민국은 지금 민란 전야이다. 배고프다는 백성들을 왕의 포졸들이 “집에 가라”고 창으로 밀어붙였는데 그 중에 선량한 한 사나이가 맞아 죽고, 안타깝게 구경하던 임산부가 아이를 유산하게 된 사건이 현재의 상황이다. 조선조에서도 배고프다고 하는 백성들을 초기부터 역도로 몰아붙이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러고 있다. 게다가 양반집 정원이 몰상식하게 몰려든 백성들에 의해서 망가졌다고 초가삼간과 전답을 전부 팔아서 양반에게 돈을 물어줘라고 하고 있다. 그것이 다음주부터 시작될 손배소의 본질이다.

그나마 전셋집이나 월세집의 보증금까지 다 뺏기고, 평생을 벌어도 1/10도 채 갚지 못할 수 십억원의 손배소를 등에 엎고 살게 될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걸인이 되거나 산적이 되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그야말로 ‘어린 백성’이 배고프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길이 엎어서 우 몰려간 것이 포항의 포스코 앞마당이다. 그 앞자리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아이가 죽어나갔는데, 민주주의? 현명한 선택, 한미 FTA?

조선조 같았으면 사림의 유생들이 줄상소를 올리고, “어린 백성을 보살펴 살피시옵소서”라고 경희궁 앞에 돗자리를 깔고 목날아갈 각오를 하고 목놓아 울고 있을 순간이다. 정승들이 덕이 없음을 하늘에 목 놓아 고하며 석고대죄를 드려야 할 상황이다.

지금은 가부장제의 수호자로 몰릴대로 몰린 서원들이지만 조선이 나라다왔을 때 백성들이 배고프다고 할 때 서원의 유생들은 “굽여 살피옵소서”라고 줄상소를 올렸었다.

민란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어야 진정 이 땅의 역사는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단 말인가?

 

4. 측은지심과 염치지심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축생과 같다고 했다. 어쩌면 5대째 가난했을지도 모른, 철종 때부터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한 건설노동자가 죽었다. 어찌 이리도 측은지심이 없는가? 하중근씨의 집안도 가난했지만 일제를 버텼고, 6.25도 버텼고, 조국근대화도 버텨서 21세기로 넘어온 집안이다. 그 집안의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40대 자식이 죽었는데, 불법노동자라는 한 마디 낙인으로 딱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사람이 응당 가지게 되는 측은지심이다.

신문사의 칼럼에서 각종 매체에 자기 프로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공헌으로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간만에 집에 월급봉투 좀 가지고 가는 게 노무현 정부 후반기의 소위 민주화 투사들에게 한 자리씩 주는 시대 유행 아닌가?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자칭 지식인 그리고 각 대학에서 옛날식으로 치면 대감 대우 받으면서 교수대감 노릇하는 학자들, 당신들은 지금 행복한가?

옛날로 치면 당상관 자리에서 대감 노릇하는 지식인들이여, 어찌 그리도 염치지심이 없는가! 국민들의 세금과 시민들이 모아준 돈으로 살아가는 당상관들이여, 대감들이여!

부디, 측은지심과 염치지심을 회복하고, 왕에게 상소라도 올려주시라.

포항의 노동자들의 손배소만은 안된다고, 산 사람이라도 살리자고, 상소라도 울려주시라.

백성들은 오래된 경제 가뭄에 전답옥토는 팔아버린지 오래이고, 이미 신용불량자된 지아비를 대신해 지어미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어있고,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저들의 아이들은 아예 취직도 못하고 도탄에 빠진지 오래이다.

그들이 배고프다고 몰려든 것이 측은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집이라도 팔아서 갚으라구해”라는 가혹한 손배소만이라도 막아주어야 하지 않는가?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이런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불쌍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하중근씨의 주검의 피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손배소 소송을 하겠다는 현 상황이 어찌 사람사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조선조에서도 이런 일들은 일찍이 벌어진 적이 없다.

당상관들과 대감들이 왕과 대선놀음 하는 동안에 얼마나 더 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려야 하는가? 대한민국 생활인들의 눈에서 흐르는 이 눈물이 언제나 마르게 될 것인가! 민중이든, 농민이든, 노동자이든, 비정규직이든, 이들도 다 어린 백성들이고, 생활인들이다.

당상관과 대감들, 당신들을 이 사회는 지식인이라고 부른다. 지금 이 사회에 백성들의 피라도 막아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당신들 밖에 없다.

당신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나는 배고파”라고 백성들이 직접 움직이게 된다.

그걸 우리 역사에서는 민란이라고 부른다.



조실  :  초록정치연대의 우석훈 정책실장의 글입니다 (저는 우석훈 실장님 글의 팬입니다. 물론 하소장님은 말할 것도 없구요 ^^;) 2006/08/14
하종강  :  저도 방송에서 이 일에 대해 한 마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이 일을 "노동자들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식의 불법파업에 대한 자업자득 또는 인과응보"라고 냉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이건 결코 정상이라고 볼 수가 없는 현상입니다.

나이가 환갑이 다 된 노동자들 2천여 명이 아흐레 동안이나 회사를 점거했고, 노동자 한 명이 죽고, 임신부가 유산을 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일이 벌어지기 전과 벌어진 다음에 우리 사회에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주의적으로 따져 본다고 해도 노동문제에 대한 이런 대처방식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2006/08/15
답답  :  전 국민을 때려 죽이려나 봅니다. 2006/08/15
하종강  : 

포항 건설 노동자들 천여 명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6/08/15

 

 '하종강의 노동과 꿈'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원출처는 모르겠다. 난 우석훈 실장의 글을 별로 열심히 읽지는 않는 편인데, 이 글은 여러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사소한(?) 사실관계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의 다른 부분들이 있기도 한데, 굳이 그걸 신경 쓰지 않아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점잖고 진보적인' 지식인과 학자들도 이 글을 읽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돌바람 2006-08-1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지뽕! ^^
우아, 비 온다!
안녕, 잉크냄시님~

잉크냄새 2006-08-19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 단 하루만에 완연한 가을날씨를 보이고 있네요. ^^
 

간만에 나타나 뜬금없이 "좋은시 있으면 소개시켜줘"라고 앙탈을 부려봅니다. 친구나 동료들의 생일에 시집을 선물하곤 하는데 반응은 보통 세가지로 나누어집니다.

1. 책 읽으면 밥 나오냐! 밥이나 사 달라!  - 조용히 패버립니다.
2. 너무 어려워요! 쉬운 책으로 사주세요 - 그냥 읽어라. 나도 어렵다
3. 아! 잠자던 감성이 깨어납니다. -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잠자리에 들기전 몇편의 시를 읽고 자려고 노력합니다. 한권의 시집을 온전히 읽어낸다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임을 잘 압니다. 자기 전에 몇편의 시를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 시집에 먼지 쌓일 일이 없더군요.

얼마전 인터넷에서 책을 편집하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아이올리브 (www.iolive.co.kr) 라는 곳인데, 개인이 책을 편집할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시를 소개시켜주시면 1번/2번의 반응을 보이는 어린 양들을 시의 마을로 인도하겠습니다.^^

가끔 회식 소집시 회사 메일로 시를 띄우면 주로 이런 시에 반응이 있더군요.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묵집에서 (장석남)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진 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

알라딘 마을 지나가시다 우연히 들르시면 시 한편 읊조려 주시고 가세요. 꾸벅

참, <좋은시 있으면 소개시켜줘> 카테고리는 열려있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eylontea 2006-08-1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앙탈입니다.. ^^

물만두 2006-08-1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잉크냄새 2006-08-1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 그리 말씀하시니 앙탈도 부려볼만 하군요.^^
물만두님 / 좋은시 기대합니다.^^

파란여우 2006-08-14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너무 더워서 시집을 읽지 못해요. 핑계라고 해도 분위기가 안 난단 말에요.
땀을 흘리며 시집을 어캐 읽어요! 그 대신에 밥이나 사줘요!(팰테면 패봐!봐!봐!)
-더워서 투정부리고 가는 앙탈잉크의 열렬한 지지자 헤롱여우-

Laika 2006-08-1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국수 먹고 싶어집니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 흑~
전, 여우님처럼 밥사달라고 안할께요...그냥 국수 사주세요...ㅎㅎ

잉크냄새 2006-08-1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1번 유형에 해당하시는구려! 퍼퍽!
라이카님 / 1.5번 유형에 해당하시는구려! 또닥! ㅎㅎ
아, 그리고 좋은 시좀 올려주시구랴! 빨리 만들어야할 일이 생겼어요. 믿습니다!!!
 

고향 앞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철조망은 지금껏 해체되지 않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철조망은 그저 장난의 대상이었다. 무장공비를 식별하기 위해 가래로 긁어놓은 모래밭에 몰래 발자국을 찍고 도망가는 대담함과 철조망 사이에 끼워진 흰 돌을 빼내는 용기는 일종의 유희였던것 같다. 철조망을 통해 바라보이는 바다가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것 같다. 반공 교육에 투철했던 시절 철조망 너머의 세상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슬슬 불어닥친 남북 화해 분위기로 철조망은 서서히 해체되어가고 있었다. 관광지구를 필두로 인위적인 해체가 일어나고 있었고 고향앞의 철조망은 세월앞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여기 저기 힘없이 무너져내린 철조망은 그 시절의 나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곤 했다. 소통과 단절의 의미를 대변하는듯 했다. 삭은 철조망을 발로 뭉개며 들어간 바다는 왠지모를 자유로움마저 던져주었다. 녹슬어가던 철조망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95년도의 옥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었다. 반짝반짝 그 서늘함을 한없이 풍기는 날선 철조망이 다시금 세워졌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지금껏 쉬이 녹슬지 않고 있다.

회사주변으로 철조망이 쳐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로 공단 각 출입문마다 검은 양복의 보디가드들이 매서운 눈을 뜨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서있더니 급기야 이전 철조망보다 배나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지기 시작했다.  넝쿨마냥 감아돌린 철조망 안에서 기업가의 양심과 사명을 헌신짝처럼 벗어던진 어느 사장은 그들의 생존권에 조금의 관심도 없을 것이고 그 안으로 출퇴근하는 우리들은 외면과 무관심으로 스스로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있는것 같다. 출퇴근시마다 서슬퍼런 철조망에 가슴이 씁쓸해지곤 한다. 고향앞의 철조망은 10년이 넘도록 녹슬지 않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통을 가로막는 듯한 이 철조망도 그리 수명이 오래갈것인지 안쓰러운 뿐이다. 



보란듯이 이렇게 넘어주는거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누아 2006-07-2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쾌하게 넘을 수 있기를!
넘을 필요가 없다면 더 좋을련만...철조망이 다 걷어져 곧은 길을 그냥 달릴 수 있었으면...

icaru 2006-07-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럴수가... 오늘에사 잉과장님 이미지를 제대로 자세히 보게 되었다는...

잉크냄새 2006-07-2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 세월이 녹슬게 만드리라는 생각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겠죠. 님 말씀처럼 넘을 필요없이 곧은 길이 되는 것이 최상책일텐데요.
이카루님 / 대탈주의 스티브 맥퀸이 철조망을 타넘던 모습이죠. 결국 마지막 철조망을 넘지 못하고 다시 잡히고 말지만요. 폼나게 넘어가는 모습이 저의 이미지랍니다.^^

가시장미 2006-07-2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여? 폼나게 넘어가시는 모습이 잉크님의 이미지인가요? -_-a
아... 제가 잉크님에 대해 아직 많이 모르고 있군요. 으흐흐흐

잉크냄새 2006-07-2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폼이 나기 좀 나나요? ㅎㅎ 이미지가 작아서 의외로 잘 모르시는군요. 그 유명한 배우 스티브 맥퀸인데...
 

어떤 사랑

- 오영해 -

첫눈이 솜뭉치로 내리던 날
소문을 따라 갔다 온
마흔에도 총각인 친구녀석은
골방 어둠 속에서
울었습니다
썩을 년 씨언허다
그러케 갔으먼 잘이나 살지
엄동에 애기 업고 배추 장사가 뭐여
막노동에 갈라진 손등
눈물이 쓰려서
첫사랑은
목이 콱 잠겼습니다
-------------------------------------------------------------------------------------------------

무어 그리 미련이 남는다고 그렇게 떠난 첫사랑이 궁금해 설레이며 갔던가요. 갈라진 손등처럼 누추한 인생 바라보고 돌아서서 허한 마음 달랠길이 "썩을 년 씨언허다"  한마디는 아니겠지요. 애써 감추며 돌아와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울어버린 투박한 사내의 울음소리가 빗물을 타고 흐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연우주 2006-07-1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사랑은, 그럴 것 같아요. 잘 살아주길 바래요. 나쁜 사람이지만.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는 것. 하지만 이젠 그리 슬프진 않아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덤덤하게 기억이 나면 기억을 할 뿐.

쨌든 공감이 되는 시네요.

잉크냄새 2006-07-1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님 / 엇, 이 시는 공감하면 안되는데...^^ 슬프지 않고 무덤덤한 기억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