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을 생각하게 되자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료와 촛대를 요구할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나는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며 한시도 잊지 않고 있구나 하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 역시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른 점이라면 그의 희망은 절박한 것인데 비해 나의 희망은 막연하고 아득한 것이라는 점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눈앞에는 해변의 푸르른 모래밭이 떠올랐다. 짙은 남색 하늘에 바퀴처럼 둥근 황금의 보름달이 떠 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 루쉰 <고향>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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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12-1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계신 책인가 봅니다. 저도 루쉰 좋아해요!

icaru 2006-12-1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밑줄 그은 것은~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이라는 책에서도 인용되었었는데... 음~ 여러번 새길만한 명구여라우~

잉크냄새 2006-12-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저도요.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에서 가장 감명깊던 글귀가 그의 다른 소설속에 등장했다는 반가움에 올린겁니다.
이카루님 / 아, 그 책에도 나와있군요. 그러지라...한참을 되새김하면 그 맛이 더욱 깊어지는 글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