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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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면 율 브리너나 소화할수 있는 대머리 스타일이 나름대로 어울리는 작가가 쳐다보고 있다. <총잡이>와 <북경반점>이란 재미없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이력이 눈에 띤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이 소설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작가의 인터뷰가 책 뒷부분에 소개되었는데 영화화되지 않는 시나리오를 접고 소설을 쓰라는 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신인상을 탔고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거만하기도 하고 할랑하기도 한 작가의 그런 면이 일단 독특하다.

소설은 작가만큼이나 독특하고 재미있다. 박색의 국밥집 노파, 여장부 금복, 붉은 벽돌의 여왕 통뼈 춘희로 이어지는 질곡깊은 삶이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삶은 그 연결고리를 엮어가면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대물의 반푼이, 벌을 몰고 다니는 애꾸 여인, 사랑하는 게이샤에게 손가락 여섯개를 바친 칼자국, 존웨인을 질투하는 걱정,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니 동생이 구분되지 않는 쌍둥이 자매, 가학적인 간수 철가면, 그리고 춘희와 소통한 코끼리 점보...그들은 동화속의 인물이기도 하고, 영화속의 인물이기도 하고, 전설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각각의 장르를 달리하는 글속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드니 떠들썩하고 재미있고 독특한 소설이 나올수 밖에,  거기에 작가 특유의 파격적이고 독특한 이야기 전개가 한몫한다.

얼핏 이안 맥그리거의 < 빅 피쉬 >라는 영화와 겹쳐진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한 아버지의 임종을 맞은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이 실은 아버지의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부분들이었음을 알게된다는 내용이다.  아무런 연관이 없고 거짓같던 이야기들이 실타래가 풀리듯 하나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어느 순간 아버지의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듯이 소설 또한 그러하다. 한마디로 퍼즐같은 소설이라고 할까. 하나씩 자리를 잡는 조각으로는 그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가 어느 순간 전체의 윤곽이 들어나면서 순식간에 하나의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소설가에게 만담꾼이라는 표현이 칭찬인지 비하인지는 몰라도 천명관이라는 작가는 타고난 만담꾼이라고 본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슬며시 연관지어 하나의 소설을 만들어낸 기분이다. 이 소설 이후 시나리오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전작의 영화로 미루어볼때 시나리오보다는 소설에 정진하는 것이 작자에게든, 독자에게든, 그리고 문학사에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싶다. 어느날 고래처럼 우뚝 솟은 그의 모습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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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2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추천했어요. 왜냐하면 곧 주문할 책이거든요...만담꾼이라는 표현 아주 적절하십니다.

icaru 2005-03-2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에게 만담꾼이라는 말은 칭찬에 속할 듯 해요... 이도저도 되도않는 소설가들도 많응게... ~ 북경반점...! 앗...그랬군요~!
덩달아 북경반점도 소개받고 간다는...

잉크냄새 2005-03-2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 추천에 너그러우시네요.^^ 이왕이면 땡스투도~~ 흐..님이 만나시는 고래는 어떨까 기대됩니다. 동해바다 고래인지, 서해바다 고래인지...

복순이언니님 / 칭찬이라니 다행이네요. 만담꾼이라하면 왠지 입에 오토바이를 달고 부다다다 정신없이 이야기하는 이미지라서...아, 그리고 북경반점 전화번호 알려드릴께요. 02-띵호야-비단장수.

진주 2005-03-2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까 저도 고래에 푹 빠지고 싶네요. 도서관 가면 얼른 빌려 봐야징...(땡스투는 못해서 죄송해요^^) 대신~

잉크냄새 2005-03-25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 저의 허접한 리뷰말고 진짜 읽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드는 리뷰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없는 이안님의 서재에 등록된 고래 리뷰를 보신다면... 아, 말로 표현못하겠고 직접 한번 보실것을 권유하고 싶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3-2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저 지금에야 이 글 보고 얼른 댓글 남기려 하는데, 아니 위의 글 때문에 쑥스러워서 뭔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네요...
아무튼요, 타고난 만담꾼이라는 님의 의견에는 동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지요. 하지만 문학적 틀을 언급한다면 뭐 거기까지야 완성도가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아무튼 묘하지요? 그런데 빅피쉬, 저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예요. 이안 맥그리거 때문에도 봤지만, 무엇보다도 팀버튼 감독의 영화잖아요. 환상과 현실을 잘도 꿰매는 감독이라 빅피쉬를 언급하신 게 무릎을 치게 하네요. 그런데 북경반점은 좀 별로였는데... ^^

잉크냄새 2005-03-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특히 춘희에 대한 부분에서 절대 공감했답니다. 아 그리고 그 영화가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이었군요. 전 영화를 보면 주로 배우 위주로 보는지라 감독에 대해서는 몰랐네요.

미네르바 2005-04-0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이 책을 안 읽으면 알라딘에 발 붙어있기가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이안님의 리뷰도 그렇고, 님의 리뷰도 그렇고... 먼저 읽고 나서 님의 리뷰를 다시 보아야 될 것 같아요. 언제나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핵심을 꼭 찍어서 쓰는 리뷰... 잘 읽었어요^^

잉크냄새 2005-04-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요즘 이 소설이 인기가 좋죠. 사이다처럼 톡 쏘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분명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맛이 나죠. 특히, 저처럼 소설의 전후좌우를 잘 잡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양반의 설명식 복선이 아주 좋답니다.

포로롱 2005-05-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 피쉬의 동화같은 이야기가 재미났었는데 이 소설은 현실을 담으려 한 것 같네요.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인물들의 이야기로 흥성스러운 소설일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5-05-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로롱님 / 님이 쓰신 흥성거린다는 표현, 이 소설에 딱 어울릴것 같네요. 동화같은 이야기, 전설, 신화같은 이야기라고도 할수 있을것 같아요. 고래 때문에 마르께스의 < 천년의 고독 >도 읽을까 생각중입니다.
 
고기잡이 여행
정기태 지음, 위직량 사진 / 바보새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바다가 온통 회색이었던 적이 있었다. 어릴적 놀이터였던 쪽빛 바다가 무채색으로 다가온 것은 남편을 삼키고 침묵하는 바다 앞에서 오열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이다. 항구 풍경을 한폭의 그림이라 표현하는 시인의 글이 싫기도 했고, 칼날같은 울음을 우는 겨울바다에 빠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가끔은 감상에 젖은 바다가 싫어지곤 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을 키운 팔할이 바람이라면 나를 키운 팔할은 바다임을, 저 회색빛 항구임을 부인할수는 없다. 바다는 삶의 한가운데에 존재할수 밖에 없었다. 

목포 토박이인 저자는 직접 배를 타고 어부들과 부딪히며 어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 강국의 외향적인 모습 뒤에 묻힌 어촌의 실상을 말한다. 강원도 고성의 명태에서 안면도 대하에 이르는 어촌을 들르며 어구와 어법과 어민의 삶을 말한다. 다양한 어구와 어법 용어는 많은 부분이 생소하고 어렵다. 고등학교때 수산업(그 당시 전국 인문계 고등학교중 2개 학교만이 수산업 과목을 배우고 있었고 학력고사장에서도 홀로 수산업 시험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 )을 배운 적이 있으나 여전히 생소하고 기억의 저편에서 유영하는 용어들이다. 덤장, 독살, 개막이, 혀그물, 후릿그물,고데구리,쏙새기,풀치,베도라치 ...    

저자는 생태계의 파괴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수산 자원, 현대식 첨단 기구에 밀리는 구식 어법들을 소개하고,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토박이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가끔 툭툭 던져내듯 뱉은 말 한마디가 바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을 느낄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옹색하거나 초라한 모습을 전면으로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과거 기억속 만선의 꿈을 나비처럼 품고 살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말한다. 어쩌면 옹색하고 초라한 것은 삶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일수도 있다.

김훈이나 곽재구가 포구를 여행하며 쓴 글에서 저자는 언어의 벽을 느낀다고 한다. 비단 필력의 부분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나그네의 심정으로 바라본 바다에서 저자는 한꺼풀을 벗겨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언어의 벽에 부딪힌 것인지도 모른다. 김훈의 말처럼 상처를 통해 재편된 풍경이 그들만의 풍경이 되고 어촌은 재편된 풍경속의 한점에 지나지 않은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풍경을 그리지는 않았다. 나그네의 어설픈 객창감도 아니다. 낭만이나 상처를 벗겨냄으로써 어촌의 본질에 다가간다.그저 싫던 좋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부들에게 바다는 삶의 언저리 풍경이 아니라 삶의 터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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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3-1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험하여 살갗에 돋는 언어를 당해낼 재간은 없지요. 어젯밤 꿈에선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 별 자리가 바로 눈 앞에서 아주 커다란 그물 망처럼 하늘에서 점점이 반짝였어요. 선명하게 그 별자리를 보고 싶어서 안경을 꼈더니 그 별자리는 도시의 불빛이었어요. 한밤중에도 불 켜진 빌딩숲의 점등. 제게는 또 먼 이야기지만 가까이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파란여우 2005-03-17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곽재구의 어부가 어쩌고 하는 이야길 들으면 괜히 실실 웃음이 난다죠...
언어의 공허함을 느껴서 그럴까요...
님은 동해바다, 전 서해바다...고마운 바다입니다. 우리 바다 잘 지켜야 할텐데요.
아참, 얼마전에 고향에 가서 보니까 님의 모교엔 새건물이 쭈욱 들어섰더군요.
연못가에서 밀담을 나누었던 그 때가 기억나 잠시 걸었답니다.
제 모교는 여전히 황랑한 풍경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만 눈물이 날 뻔했어요...
님의 고향 바다에 가시면 제가 먹다가 남기고 온 쐬주 반 병 돌려달라고 전해주시길..^^

sweetmagic 2005-03-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여기 남해바다가 고마운 사람도 있어요 ^^;;;;;;
잉크냄새님께서 고향가셔서 파란여우님 쐬주 반병 받으시구요 요기 남해바다로 한모금만 남겨서 흘려보내주세요 설사 짠물이 들어갔더라도 달게 마시겠습니당 !! ^^

icaru 2005-03-1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옹색하고 초라한 것은 삶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일수도 있겠다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만 느끼는지라... 저는 항상 편견에 빠지곤 합니다...
님이 아시는 바다...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니, 이해하는 척...인가요?

근데...이 리뷰는 플레져 님과 파란여우 님의 댓글들도 멋진 걸요~


icaru 2005-03-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스윗매직 님도...

잉크냄새 2005-03-2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 체험하여 살갗에 돋는 언어...그리하여 저자의 글들이 그리도 정답게 느껴졌나 봅니다. 별이라...은하수가 젖줄처럼 흐르는 곳, 진부령을 넘어가는 고즈넉한 6번 국도를 알려드리고 싶네요.

파란여우님 / 쓰는 사람에 따라,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글이니...예전에 읽을때는 곽재구의 글도 좋았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괜히 비교가 된것이랍니다. 모교라...어언 가보지 않은지 7년이나 된 곳의 풍경을 전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동해 앞바다의 소주병은 이미 용왕님께 진상이 끝났답니다. 소주병에 머리를 얻어터진 용왕이 대노했다는 소문도 있더이다.

스윗매직님 / 전 동해의 명태찜을, 여우님은 연평도 대하 소금구이를, 매직님은 남해안 과메기를 들고 모여 꽃가지 꺽어놓고 한잔 돌려야할것 같습니다. 소주는 떨어졌으니 남해안의 유명한 C1으로 하시죠.

복순이 언니님 / 온전히 이해할수 있는 삶이 어디 존재나 하겠습니까. 이리저리 치우치기도 하고 삐닥하게 보기도 하다 어느날 뒷통수를 띵~ 때리며 이거다 싶은 날이 있기도 하겠지요. 님이 아시는 바다, 충분히 넓고 아름다운 쪽빛 바다이리라 생각합니다.한때 저에게 바다는 애정과 애증의 중간정도에 있었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숱한 추억과 사연을 담은 넉넉한 세계로 보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3-22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이제야 봤어요. 리뷰도 너무 훌륭해서 곱씹어서 읽었구요, 책도 얼른 옆에다 끌어놓아야겠단 생각도 드는걸요. 님은 바닷가에서 자라셨군요. 님을 키운 팔할이 바다니, 님에게선 바다냄새가 먼저겠군요. ^^

잉크냄새 2005-03-2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제가 바다라면 님을 키운 팔할은 아마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그래서 종이책 특유의 포근한 질감과 부드러운 내음이 느껴질 것 같군요. 보잘것없는 리뷰 항상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네르바 2005-03-3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에게 있어서 바다는 그런 곳이군요. 저야,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로서 풍경만을 감상하고 왔을 터이지만, 그 곳이 고향인 사람은 삶의 터전이고, 현장이군요. 곽재구시인이나 김훈이 쓴 글과 이 분이 쓴 글이 어떻게 다른지 꼭 보고 싶네요.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5-04-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아무래도 저에게 느껴지는 바다는 다른 모습이겠죠. 곽재구 시인이나 김훈의 글과는 다른 맛이죠. 작가도 말했다시피 표현력은 떨어지지만 그 진솔함은 훨씬 다가옵니다. 다만, 생소한 용어에 대한 준비는 하셔야 합니다.

포로롱 2005-05-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겪어본 자만이 진실로 말할 수 있는 법이라 생각해요. 설령 바다의 풍경뿐 아니라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바다를 가까이서 체화한 님과 작가의 시선이 부러워요.

잉크냄새 2005-05-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로롱님 / 저도 바다를 떠난지 어언 10년이 넘어서고 말았네요. 지금은 분명 다른 풍경으로 남아있을텐데, 제 기억속의 바다는 어린시절, 철이 들던 학창시절의 이미지로 강하게 남아있는것 같아요.

히나 2005-05-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머리속으로 보글보글 꽃게탕 끓이던 와중에 읽으니까 아, 이 책 너무 궁금해요 고기잡이 여행이라니! 저는 수영도 못 하고 바다 비린내 맡으면 울렁이는 촌스런 육지여자지만 전생은 선원이었다는데..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번 들춰봐야 겠어요 ^^

잉크냄새 2005-05-2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반갑습니다. 꽃게탕과 이책, 왠지 어울릴것 같은데요. 전생이 선원이셨다니...이 책에서 전생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전출처 : 플레져 > 민들레 압정

민들레 압정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詩 : 이문재



* 위 사진은 하도 많이 올려서 민망하기까지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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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3-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일상에서 이리도 아름다운 진리를 찾아내는 시인의 눈이 마냥 부럽다.

파란여우 2005-03-1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망초꽃이 압정처럼 박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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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틱 낫한 스님의 책에 수록된 사진과 같은 풍이군요. 저 얼굴들중 하나가 나의 얼굴이었으면 싶습니다. 아니, 저 얼굴을 비슷하게라고 닮고 싶은 소망입니다.

잉크냄새 2005-03-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편안하고 욕망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그런 평안한 얼굴... 닮고 싶네요.

icaru 2005-03-1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요~

잉크냄새 2005-03-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은 저 얼굴을 닮아가시는것 같습니다.
 



     명태

     - 강 세환 -

    어머니는 덕장 밑에 있었다.
    시린 손으로 아가미 꺼내고
    명태 뱃속에서
    창난 명란 곤지를 뜯어낸다.
    명태 배때기 가르는 어머니
    머리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값비싼 명란은 주인 몫으로 두고
    밤새도록 꺼내놓은 창난 곤지를
    품삯으로 받아 머리에 이고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온다.
    밤새 쌓인 눈이 환하게 길 밝혀주는
    그 길 따라 노동의 밤 저쪽에서
    새벽 사이 어둠을 밀치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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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명태 할복장으로 가곤했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조그만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 손을 녹여가며 명태 배때기를 가르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나도 명태 배때기를 가르곤 했다. 몇백마리 배때기 가르는 것 도와드릴테니 일찍 들어가시라고 약속하고 서투른 칼질을 해대곤 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비릿한 비린내와 괜한 짜증에 골이 나서 휘두른 칼날에 명태 배때기는 곱게 갈리지 못하고 얼기설기 난도질되곤 했다. 대관령 황태덕장에서 석달 열흘을 얼었다 풀렸다 할 운명인 명태는 얼기설기 찢어진 배를 움켜쥐고 멍한 눈을 들어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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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0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어요.^^

플레져 2005-03-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생의 한 복판을 만나 반갑습니다만...
명태의 운명이 가슴을 쓸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5-03-0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태할복장...
전 그 풍경이 비릿한 것이 구수한 것이 서글픈 것이 참 좋아요.^^

Laika 2005-03-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시도, 잉크님의 글도 한참 쳐다보게 되네요..^^

진주 2005-03-0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부모들이 자식 잘 키운다고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 늘 생각한답니다.
잉크님처럼 자라면서 부모님의 일을 거든다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여물어 지겠지요.
잉크님, 오늘따라 유난히 님이 단단하게 보여요. 어떤 충격이나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을 단아함이랄까요.....

icaru 2005-03-0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글도 시 아닙니까...? 산문시요...
시인은 잉크냄새 님이시고요...
바닷바람이 묻어나는 음...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5-03-0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오랫만이죠.^^ 요즘은 자주 못 들어오네요.
플레져님 / 저의 삶의 한복판이라기보다는 그냥 지나간 시절의 한 단편이랄까요...
로드무비님 / 명태할복장을 아시는군요. 요즘도 고향 냇가 한편에는 그 비릿함과 서글픔이 묻어납니다.
라이카님 / 명태눈을 너무 오래 바라보지 마세요. 그 흐릿함 속에 풍덩 빠져버릴지도 모르거든요.
찬미님 / 단아함이라니 그저 한없이 머리가 조아려집니다. 세상의 유혹에 한없이 약한 그런 보통사람인걸요.
복순이 언니님 / 음...저도 가끔은 시를 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님은 유독 바다내음을, 바다바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파란여우 2005-03-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9년 겨울에 주문진을 거쳐 강릉,속초, 거진, 대진을 여행했었어요.
그 3박 4일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만나는 어촌마을 처마밑에 걸려 있던 명태 몇마리를 보며 저것이 이 세상에 주린 내 배를 채워주기 위해 할복하고 별처럼
빛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성악가 오현명이 부른 '명태'는 부르조아의 냄새가 물씬 묻어 나지만 잉크냄새님의 명태는 눈물과 아쉬움과 추억이 너무나 영롱하게 빛나고 있답니다. 새벽길 눈을 밟으며 돌아오던 피로에 지친 어머니...그런 어머니가 다시 그리워지며, 또 한편으로는 불효했던 기억에 눈물이 나는군요....

잉크냄새 2005-03-1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 1989년이라면 제가 고등학생일때군요. 그때 버스속에서 서글픈 눈으로 명태를 바라보시던 님이 여우님이었던 모양입니다. 님이 느끼신 눈물과 아쉬움과 추억이 삶을 영롱하게 하는 요소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