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 여행
정기태 지음, 위직량 사진 / 바보새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바다가 온통 회색이었던 적이 있었다. 어릴적 놀이터였던 쪽빛 바다가 무채색으로 다가온 것은 남편을 삼키고 침묵하는 바다 앞에서 오열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이다. 항구 풍경을 한폭의 그림이라 표현하는 시인의 글이 싫기도 했고, 칼날같은 울음을 우는 겨울바다에 빠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가끔은 감상에 젖은 바다가 싫어지곤 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을 키운 팔할이 바람이라면 나를 키운 팔할은 바다임을, 저 회색빛 항구임을 부인할수는 없다. 바다는 삶의 한가운데에 존재할수 밖에 없었다. 

목포 토박이인 저자는 직접 배를 타고 어부들과 부딪히며 어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 강국의 외향적인 모습 뒤에 묻힌 어촌의 실상을 말한다. 강원도 고성의 명태에서 안면도 대하에 이르는 어촌을 들르며 어구와 어법과 어민의 삶을 말한다. 다양한 어구와 어법 용어는 많은 부분이 생소하고 어렵다. 고등학교때 수산업(그 당시 전국 인문계 고등학교중 2개 학교만이 수산업 과목을 배우고 있었고 학력고사장에서도 홀로 수산업 시험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 )을 배운 적이 있으나 여전히 생소하고 기억의 저편에서 유영하는 용어들이다. 덤장, 독살, 개막이, 혀그물, 후릿그물,고데구리,쏙새기,풀치,베도라치 ...    

저자는 생태계의 파괴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수산 자원, 현대식 첨단 기구에 밀리는 구식 어법들을 소개하고,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토박이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가끔 툭툭 던져내듯 뱉은 말 한마디가 바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을 느낄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옹색하거나 초라한 모습을 전면으로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과거 기억속 만선의 꿈을 나비처럼 품고 살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말한다. 어쩌면 옹색하고 초라한 것은 삶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일수도 있다.

김훈이나 곽재구가 포구를 여행하며 쓴 글에서 저자는 언어의 벽을 느낀다고 한다. 비단 필력의 부분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나그네의 심정으로 바라본 바다에서 저자는 한꺼풀을 벗겨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언어의 벽에 부딪힌 것인지도 모른다. 김훈의 말처럼 상처를 통해 재편된 풍경이 그들만의 풍경이 되고 어촌은 재편된 풍경속의 한점에 지나지 않은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풍경을 그리지는 않았다. 나그네의 어설픈 객창감도 아니다. 낭만이나 상처를 벗겨냄으로써 어촌의 본질에 다가간다.그저 싫던 좋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부들에게 바다는 삶의 언저리 풍경이 아니라 삶의 터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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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3-1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험하여 살갗에 돋는 언어를 당해낼 재간은 없지요. 어젯밤 꿈에선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 별 자리가 바로 눈 앞에서 아주 커다란 그물 망처럼 하늘에서 점점이 반짝였어요. 선명하게 그 별자리를 보고 싶어서 안경을 꼈더니 그 별자리는 도시의 불빛이었어요. 한밤중에도 불 켜진 빌딩숲의 점등. 제게는 또 먼 이야기지만 가까이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파란여우 2005-03-17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곽재구의 어부가 어쩌고 하는 이야길 들으면 괜히 실실 웃음이 난다죠...
언어의 공허함을 느껴서 그럴까요...
님은 동해바다, 전 서해바다...고마운 바다입니다. 우리 바다 잘 지켜야 할텐데요.
아참, 얼마전에 고향에 가서 보니까 님의 모교엔 새건물이 쭈욱 들어섰더군요.
연못가에서 밀담을 나누었던 그 때가 기억나 잠시 걸었답니다.
제 모교는 여전히 황랑한 풍경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만 눈물이 날 뻔했어요...
님의 고향 바다에 가시면 제가 먹다가 남기고 온 쐬주 반 병 돌려달라고 전해주시길..^^

sweetmagic 2005-03-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여기 남해바다가 고마운 사람도 있어요 ^^;;;;;;
잉크냄새님께서 고향가셔서 파란여우님 쐬주 반병 받으시구요 요기 남해바다로 한모금만 남겨서 흘려보내주세요 설사 짠물이 들어갔더라도 달게 마시겠습니당 !! ^^

icaru 2005-03-1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옹색하고 초라한 것은 삶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일수도 있겠다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만 느끼는지라... 저는 항상 편견에 빠지곤 합니다...
님이 아시는 바다...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니, 이해하는 척...인가요?

근데...이 리뷰는 플레져 님과 파란여우 님의 댓글들도 멋진 걸요~


icaru 2005-03-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스윗매직 님도...

잉크냄새 2005-03-2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 체험하여 살갗에 돋는 언어...그리하여 저자의 글들이 그리도 정답게 느껴졌나 봅니다. 별이라...은하수가 젖줄처럼 흐르는 곳, 진부령을 넘어가는 고즈넉한 6번 국도를 알려드리고 싶네요.

파란여우님 / 쓰는 사람에 따라,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글이니...예전에 읽을때는 곽재구의 글도 좋았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괜히 비교가 된것이랍니다. 모교라...어언 가보지 않은지 7년이나 된 곳의 풍경을 전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동해 앞바다의 소주병은 이미 용왕님께 진상이 끝났답니다. 소주병에 머리를 얻어터진 용왕이 대노했다는 소문도 있더이다.

스윗매직님 / 전 동해의 명태찜을, 여우님은 연평도 대하 소금구이를, 매직님은 남해안 과메기를 들고 모여 꽃가지 꺽어놓고 한잔 돌려야할것 같습니다. 소주는 떨어졌으니 남해안의 유명한 C1으로 하시죠.

복순이 언니님 / 온전히 이해할수 있는 삶이 어디 존재나 하겠습니까. 이리저리 치우치기도 하고 삐닥하게 보기도 하다 어느날 뒷통수를 띵~ 때리며 이거다 싶은 날이 있기도 하겠지요. 님이 아시는 바다, 충분히 넓고 아름다운 쪽빛 바다이리라 생각합니다.한때 저에게 바다는 애정과 애증의 중간정도에 있었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숱한 추억과 사연을 담은 넉넉한 세계로 보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3-22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이제야 봤어요. 리뷰도 너무 훌륭해서 곱씹어서 읽었구요, 책도 얼른 옆에다 끌어놓아야겠단 생각도 드는걸요. 님은 바닷가에서 자라셨군요. 님을 키운 팔할이 바다니, 님에게선 바다냄새가 먼저겠군요. ^^

잉크냄새 2005-03-2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제가 바다라면 님을 키운 팔할은 아마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그래서 종이책 특유의 포근한 질감과 부드러운 내음이 느껴질 것 같군요. 보잘것없는 리뷰 항상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네르바 2005-03-3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에게 있어서 바다는 그런 곳이군요. 저야,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로서 풍경만을 감상하고 왔을 터이지만, 그 곳이 고향인 사람은 삶의 터전이고, 현장이군요. 곽재구시인이나 김훈이 쓴 글과 이 분이 쓴 글이 어떻게 다른지 꼭 보고 싶네요.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5-04-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아무래도 저에게 느껴지는 바다는 다른 모습이겠죠. 곽재구 시인이나 김훈의 글과는 다른 맛이죠. 작가도 말했다시피 표현력은 떨어지지만 그 진솔함은 훨씬 다가옵니다. 다만, 생소한 용어에 대한 준비는 하셔야 합니다.

포로롱 2005-05-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겪어본 자만이 진실로 말할 수 있는 법이라 생각해요. 설령 바다의 풍경뿐 아니라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바다를 가까이서 체화한 님과 작가의 시선이 부러워요.

잉크냄새 2005-05-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로롱님 / 저도 바다를 떠난지 어언 10년이 넘어서고 말았네요. 지금은 분명 다른 풍경으로 남아있을텐데, 제 기억속의 바다는 어린시절, 철이 들던 학창시절의 이미지로 강하게 남아있는것 같아요.

Phantomlady 2005-05-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머리속으로 보글보글 꽃게탕 끓이던 와중에 읽으니까 아, 이 책 너무 궁금해요 고기잡이 여행이라니! 저는 수영도 못 하고 바다 비린내 맡으면 울렁이는 촌스런 육지여자지만 전생은 선원이었다는데..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번 들춰봐야 겠어요 ^^

잉크냄새 2005-05-2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반갑습니다. 꽃게탕과 이책, 왠지 어울릴것 같은데요. 전생이 선원이셨다니...이 책에서 전생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