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자에 대하여 

 

옥편을 뒤지면 

비롯할 창이다. 

옥편풀이와는 달리 

創자에는 상처란 뜻도 있다. 

創傷이라는 의학 용어로도 쓰인다. 

창조와 상처가 

한 글자 안에 동거하고 있다. 

창조하는 정신은 언제나 상처입는다. 

한자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날개를 다친 새는 

더 멀리 날기 위하여 

다시 어둠의 벼랑을 탄다.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그친 다음날 

섬의 벼랑 아래 떨어져 있는 

수많은 바다새의 흰 주검들를 보라. 

 

고호의 해바라기가 내뿜는 불꽃의 

눈부신 암흑을 보라. 

기원전 십수세기 

은나라 유적에서 발굴되는 

뼈에 새겨진 최초의 기호가 

태어날 때의 아픔을 

글자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창조하는 정신은 언제나 

피를 흘린다. 

 

-허만하詩人 

 

*********** 

잉끼님, 나 목 아픈거 무릎쓰고 시를 베끼오. 아끼고 고이 간직하던 이 시를 베끼오. 

20110115ㅌㅂㅊ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11-01-2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카테고리에 시가 실리는 것이 얼마만이지요?
저도 목 아프도록 낭독해보도록 하지요.

2011-01-23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굴뚝 청소부의 꿈, 한 장 사진에 이끌리다"

길 가다 만난 어느 여행자가 한국에서 추천할만한 것을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세 가지를 말할 것이다. 하나는 끊어질 듯 아스라히 이어진, 달리는 버스 창으로 손을 들어 그 곡선을 따라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시골의 산 능선이고, 둘은 느끼함으로 범벅이 된 그들의 속을 달래줄 고추 가루 흠뻑 묻은 김치와 반찬수 헤아리기 곤란한 전통밥상이고, 셋은 신발 벗고 누워 잠이 들어도 좋을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다. 여행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대부분의 나라가 화장실 사용이 무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는 화장실 옆에 사용료 수급원이 앉아 지키면 대부분 그 옆에서부터 길게 줄을 지워 노상방뇨 하는지라 나도 그 옆에서 동참하곤 했다. 터키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데 한국 문화에 익숙한데다 배낭여행자 특유의 경제 관념에 익숙해지면 그 돈이 그리 아까울 수가 없다. 비싼 곳은 무려 1유로나 하는 곳을 보았으니. 또한 여행이 길어질수록 10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자연스레 생리작용에 대한 통제력이 향상되곤 한다. 1유로의 건방진 유혹을 뿌리치고 샤프란볼루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올라탔다. 경험상 다음날 새벽 도착하여 찾아들 숙소까지 문제없을 듯 싶었다. 얼핏 잠이 들었다 깨어난 곳은 고속도로 중간이었다. 차는 잠시 정차한 상태였고 잠결에 바라보니 훈련소로 향하던 청년들이 도로변 산기슭에 올라 일렬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게 왠 횡재냐 싶어 허겁지겁 기어올라 그들 옆에 일렬횡대를 유지하며 의식에 참여하였다. 잠시 후 왠지 나를 의식하는 눈초리가 느껴져 바라보니 터키 청년들이 전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져 먼저 내려오니 한 청년이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노상방뇨를 하나요?”
너희들이 하니 나도 하지. 이걸 자업자득이라 하니라
잠시 말문이 막힌 청년이 다시 조심스레 이야기를 걸었다.
저기, 우린 내일 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이고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고향 앞으로 쏴! 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나름의 의식이죠
자업자득이란 말로 그의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반격에 다소 주춤하였다.
나도 한때 군인이었느니라
불쑥 이 말을 던지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잠든 척 하고 있으려니 성스러운 의식을 마친 젊은이들이 차에 오르며 조심스레 한마디씩 했다.
, 저 사람 예전에 군인이었대

<샤프란볼루 마을 풍경 - 반대편 언덕의 나무 한그루와 그네>

한때 굴뚝 청소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시절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주인공 꼬마가 검댕을 잔뜩 묻히고 굴뚝 청소를 하다 바라본 북유럽 어느 마을의 지붕 풍경에 사로잡힌 시점이었음은 분명하다. 굴뚝 옆에 주저앉아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어른스러운,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 지붕들의 끝없는 이어짐은 나에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고 이스탄불의 한 숙소에서 집어든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샤프란볼루로 이끈 것이었다. 그곳은 터키가 아닌 북유럽의 어느 마을인 듯 싶었다버스가 정차한 곳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고 언덕을 따라 쭈욱 이어진 길은 아직 여명이 다 밝아오지 못한 새벽이었다. 거미줄의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골목길은 오래되어서 낯설지 않은 숨결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1층은 다소 투박한 석조 건물이었고 2층부터는 목조 건물의 형태였는데, 2층 건물은 1층보다 넓어 밖으로 튀어나온 건물의 아랫부분을 큰 나무 기둥을 사선으로 석조 건물에 박아 지탱해 놓은 형태였다. 그리하여 내가 걸어가는 좁은 골목의 윗부분은 이웃집의 창문이 상당히 가깝게 위치하여 서로 손을 뻗는다면 연서 한 장을 전달할 수도 있는 거리였다. 2층 목조건물은 사방이 직접 나무를 깍아 만든 유리창틀로 온통 채워져 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살을 받기 시작한 동네는 가볍게 반짝였고 창과 창 사이로 겨우 들어선 햇살은 골목길을 서서히 은은하게 물들였다. 누군가 창을 열고 아침을 맞으면 창틀은 나무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을 골목길에 흘리고 있었다




<샤프란볼루 지붕 풍경 -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샤프란볼루에서의 일상은 단조롭고도 평화로웠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창 옆에서 주인 아저씨가 가져온 아침 식사를 마치면 신발끈을 묶고 부지런히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저 창 너머의 누군가는 내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햇살의 은은함과 창틀이 들려주는 경쾌함 울림이 일상의 분주함으로 사라질 즈음이면 가볍게 점심을 먹고 언덕에 올랐다. 그곳은 푸른 초원이 멀리 눈 덮힌 산을 배경으로 아득히 펼쳐져 있었는데 그 배경에 방점처럼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와 그네 하나가 소설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본 나무 옆의 비꺽거리는 그네에 앉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바라보곤 했다.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검댕 묻은 소년의 어깨 위로 지나가던 바람과도 같았다. 내 어깨 어딘가에 내려앉았던 삶의 찌꺼기들은 살며시 바람에 실려 마을의 지붕위로 살며시 내려앉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안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하나 둘 사라질 운명이었다. 언덕의 그림자가 지붕위로 번질 즈음이면 언덕을 내려왔다. 골목의 오래된 가로등이 하나 둘 불 밝히기 시작할 즈음 또 다시 창문의 경쾌한 울림이 들린다. 저 창을 만든 오래 전의 목공은 알고 있었을까. 그가 조심스레 깍아 만든 창틀의 가벼운 울림이 홀로 길 떠난 나그네의 마음을 이리도 어루만질 것을.  




<아침 산책길 찻집에서 - 차 한잔 얻어마시며>

중동 지역이 배낭여행자에게 각광받는 이유중의 하나가 이방인에게 베푸는 그들의 친절함이라 한다. 특히, 그들은 낯선 이방인을 집으로 초대하여 차를 대접하는 것으로 그들의 호의를 보여준다. 이방인 접대를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긴다는 유목민 특유의 핏줄이 아직 흐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러한 율법을 담고 있는 이슬람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 외곽을 따라 길게 움푹 파인 계곡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기 보다는 방향을 알되 돌아오기 곤란한 지점에 놓인 것이다. 두 시간 가량 숲을 헤치고서야 가시넝쿨을 온몸 가득 붙이고 올라오다 한 청년을 만났다. 약 한 시간 전부터 계곡 위쪽에서 나와 방향을 같이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 청년이다. 그는 샤프란볼루의 한 호텔에 근무하는데 그도 산책을 나왔다 계곡 아래서 허둥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를 따라 찾아간 그의 집은 소박했다. 담장 밖 건초 더미에는 흰 망아지가 홀로 풀을 뜯고 있었고 낮은 담장 작게 놓인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인 거실엔 난로 위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소박한 소파와 아래 깔린 거친 양탄자는 난로의 열기를 품어 아늑했다. 그의 동생과 약혼녀를 포함한 네 명은 난로 옆 양탄자에 둘러앉아 어설픈 영어나마 가능한 모든 말들을 쏟아냈다그들의 사진을 몇 장 담고 돌아오던 어느 다리 위에서 그는 하얀 볼펜을 건넸다. 골목길을 돌아서며 바라보니 그는 아직 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나의 뒷모습을 저리 오래 바라보아 주었던 적이 언제런가. 외로움은 같은 크기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움큼의 관심과 애정이 이리도 마음을 감싸 안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는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그 다리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샤프란볼루 골목의 구두가게>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중전 2010-07-1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맨 아래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뭅니다.
좋은 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잉크냄새 2010-07-13 17: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BRINY 2010-07-1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제 기억 그대로의 사진이라 더 반갑습니다.

잉크냄새 2010-07-14 09: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 마을의 저 풍경은 8년이 더 지난다 해도 그 모습을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디 2010-07-13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긴 휴가를 받아놓고 여행을 떠날지에 대해 살짝 망설이고 있었는데 올려주신 글에 마음이 벌써 날아갔습니다. 작년에 터키에서 줄창 이스탄불에만 머물지 말고 흑해지역으로 올라가볼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__)(^^)

잉크냄새 2010-07-14 09:22   좋아요 0 | URL
아무 정보도 없이 찾아간 터키인지라, 그저 이스탄불,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방명록에 붙어있던 한장의 사진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님도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2010-07-14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5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7-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마음이 분주해 져요~
(항상 시간이 부족한 거 같아요~ㅠ.ㅠ)
그냥 한번 읽고 지나가는 걸론 왠지 부족한 거 같고,
붙들고 앉아 있다보면 빨려들어 넋을 놓고 앉아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저는 오늘,
'누군가 창을 열고 아침을 맞으면 창틀은 나무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을 골목길에 흘리고 있었다.'
요기까지예요~

아직 채 못읽어 추천은 누를 수가 없어요~
어느날 추천의 숫자가 하나 업그레이드 돼 있으면 제가 다녀갔구나 하세요~^^


잉크냄새 2010-07-14 09:21   좋아요 0 | URL
그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글을 읽으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벌써 기록했어야할 여행기를 1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하나둘 올리고 있고 그것도 한달에 한두번 밖에 못올리고 있네요.

님이 방문하실때 저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이 서재에 흐르리라 생각합니다.ㅎㅎ

2010-07-14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5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7-15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장실이 유료가 많다니...그저 으슥한 언덕에서 실례하는 수밖에 없군요.

잉크냄새 2010-07-15 16:26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도 군대를 갔다 오셨으니 터키에서는 슬쩍 실례하셔도 무방할 겁니다.ㅎㅎ
특히, 터미널에서 화장실이 유료일때는 참 할말이 없더군요. 그것도 비싼 곳은 1유로 가까이 하더군요.

양철나무꾼 2010-07-17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서재 이름을 제 맘대로 '시간도둑'으로 정했어요~
자꾸 넋을 놓게 돼,시간이 쪼개져 있을 땐 들어올 수가 없어요.
오늘도 페이퍼 하나를 제것으로 만들지 못하네요~
눈꺼풀이 방바닥이랑 뽀뽀하자네요~^^

잉크냄새 2010-07-17 09:53   좋아요 0 | URL
시간도둑...좋네요. 갑자기 밥도둑이 생각나며 게장이 묻어있는 밥 한그릇이 떠오릅니다.ㅎㅎ
지금 돌아보면 뭔 글을 그리도 주저리 주저리 많이 썼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옛날의 일이지만...

2010-08-06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9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0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9월1일 오후 4시에...9월 문안 인사 여쭐려고 왔다갑니다.
저 위의 그네가 숨어있다는 사진도 한참 보고 가구요~

저 사진을 대문사진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여?
(그럼 다른 사진들이 서운해 하려나~)
저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09-19 23:07   좋아요 0 | URL
덧.추석 문안 인사 여쭐려구요~^^

잉크냄새 2010-11-06 14:56   좋아요 0 | URL
아, 오랜 시간이 흘렀군요.
추석 문안인사에 이제야 답글을 답니다.
양철나무꾼님도 잘 지내시길...

風流男兒 2010-11-2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터키에 다녀오셨군요. 언젠가 꼭 가봤으면 하는 도시였는데 ^^
정말 좋으셨겠어요!!

잉크냄새 2010-11-26 15:21   좋아요 0 | URL
네, 터키도 워낙 많은 여행지가 있는지라 시간 여유되시면 오랜시간 걸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2010-12-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3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오스의 손길을 피해 달아나다 "  


밤은 끝없이 이어졌다. 벌써 훤히 동이 틀 시간이었지만 밤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손길을 외면하고 자꾸만 달아나고 있었다. 비행기 꼬리에 살짝 얹혀질 아침 햇살을 피해 어둠은 서쪽으로 줄행랑치고 있었다. 벌써 깨어난 몸의 감각기관들은 기지개를 켜고 있었지만 어둠을 응시하는 마음 한구석은 아직 꿈이었다. 아니 진짜 꿈이었을지 모른다. 비행기 날개를 따라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고개 들어 바라보던 전설마냥 아득한 별의 속삭임이 아니라 내 귓가에 살며시 잦아드는 그런 속삭임이었다. 어깨 높이에 매달린 별은 그 눈높이 만큼이나 정겨웠다.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히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풀꽃처럼 손에 잡힐 듯 어깨에 내려앉는 별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바라보던 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인도 델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별을 보지 못했다. 첫 여행의 가벼운 흥분으로 저 아래 반짝이는 인간의 꿈을 보았다. 저 곳이 캘커타일까? 바라나시일까? 내가 곧 발디딜 땅에 대한 호기심에 하늘을 보지 못했다. 지금의 밤은 우편을 싣고 밤하늘을 비행하던 생떽쥐베리가 바라본 하늘이 그대로 펼쳐진 듯 싶었다. 그 별들 사이를 유영하던 그를 살며시 품어버린 지중해를 떠올리곤 그가 불시착한 별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후 도착한 이스탄불은 아직 어두웠다. 밤은 한참이나 더 계속되었다.  



<술탄 아흐멧의 블루 모스크>

비 오는 새벽 거리는 을씬년스러웠다. 술탄 아흐멧의 고풍스런 건물 사이 골목을 돌아 나온 택시가 공원의 어느 한 곳에 멈추어 섰을 때도 그곳의 풍경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숙소를 찾아 한 바퀴 빙 돌았지만 허탕을 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비 내리는 벤치에 앉아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 새벽녘의 푸르름을 배경삼아 환영처럼 떠오르는 블루 모스크가 보였다. 아! 짧은 감탄 속에 담배마저 떨어뜨리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저 푸르름, 어딘가 낯익다 싶더니 모든 세상의 새벽의 푸르름이 떠올랐다. 각각의 지역마다 그 채색을 달리하지만 그가 품어 안는 세상의 빛은 똑 같은 것이었다. 맥그로드 간즈의 안개빛 새벽도, 바라나시의 주황빛 새벽도, 포카라의 황금빛 새벽도 그 푸르름이 나를 감싸고 돌 때 깊은 바다 속으로 침전하는 아늑함에 빠져들곤 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술탄 아흐멧의 한쪽 편은 아야소피아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벽, 비에 젖은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 새벽을 맞이한 그 곳은 묘하게도 블루 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성당의 중간쯤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번 여행은 이슬람과 천주교 두 신의 축복 속에 시작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술탄 아흐멧의 아야소피아 성당>

윗통을 벗어 제끼고 트럭에 올라타 터키 국기를 휘날리며 큰 소리를 외치던 젊은이들을 보았을때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줄 알았다. 가슴속 깊은 울분을 토해내듯 터져 나오는 함성과 그것에 화답하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는 분명 시위였다. 이스탄불의 버스 정류장은 온통 그런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잠시 후 사람들로 빙 둘러 만들어진 원 속에서 젊은이들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나와 춤을 추었다. 나도 낯선 손에 이끌려 원 안으로 끌려가 잠시 몸을 흔들다 뻘쯤하게 나왔버렸다. 이 시위 같기도 하고 축제 같기도 한 행위가 무엇인지를 안 것은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였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버스에 올라타던,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젊은이들의 촉촉히 젖어드는 눈빛, 까치발을 세워 겨우 버스 창문에 손바닥을 보이며 유리창 두께만큼의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어버린 어머니의 눈물, 그 어머니의 눈물 뒤로 말없이 울음을 삼키던 아버지의 서먹한 눈동자. 굳이 한국의 군입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부모 자식의 이별을 대변하던 눈들이었다. ‘그래, 터키도 징병제였지.’ 다음 목적지인 샤프란볼루로 떠나는 버스에는 훈련소로 향하던 수많은 젊은이와 이미 그 눈물을 경험한 여행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울컥해버린 슬픔의 전이, 서로 맞잡지 못한 어머니와 아들의 유리창 두께만큼의 그리움이 오늘 만큼은 그 어느 그리움보다 아득했다.  



<돌마바르체궁 내부>

여행지에는 아쉬운 그 무언가를 남겨두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한다. 특히 그 여행지가 다시 돌아와야 할 길 위에 있을 때에는 더욱 간절하다. 갈라타 타워에 올라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볼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저 해협을 유람선으로 건너 아시아를 밟는 것은 여행의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었다. 어차피 다음 목적지가 터키 북부인지라 아시아 지역이었지만 해협을 직접 건너는 일만은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었다. 지중해 해변을 거쳐 올라오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이집트에서 비행기로 지중해를 통과하여 돌아온 다음 날 보스포러스를 건넜다. 터키는 떠날 때처럼 여전히 우기인지라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문득 인도-네팔 소나울리 국경을 넘던 일이 생각났다. 국경에 양발을 걸치고 대지의 어머니에게 인위적으로 그어버린 선을 쓱쓱 문지르며 느꼈던 아쉬움, 인간의 오만함이 인위적으로 만든 틀이 그 땅에 살아가는 이들을 규정한다는 씁쓸함. 가깝게 마주보는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서양의 문명이 얼마나 많은 반목과 충돌을 거듭하였을까. 빗방울이 굵어지는 사이 유람선은 어느덧 아시아 선착장을 찍고 유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맞은편이 아시아>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10-06-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 잘 읽고, 보고 내려오다가 맨 아래에서 열불!!!

잉크냄새 2010-06-24 18:40   좋아요 0 | URL
저 연인의 모습 때문인가요?
그리 부러운 모습이 아니거늘...ㅎㅎ

털짱 2010-07-14 22:0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언니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잉크냄새 2010-07-15 09:48   좋아요 0 | URL
두 분 사이에 그런 협약이 있었군요.

blanca 2010-06-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터키에 가셨군요...저한테 터키에서 온 파란 눈동자(행운을 준다고 했던가?)가 있는데...똑같은 곳을 가도 잉크냄새님은 더 크고 깊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가 보지 못했지만 사진이랑 글이랑 보며 마치 가 본 듯한 느낌을 가져 봅니다. 이젠 유럽인가요?

잉크냄새 2010-06-24 18:41   좋아요 0 | URL
네, 그 행운의 터키석. 터키 곳곳에 팔고 있죠. 하지만 터키뿐 아니라 중동 모든 나라에 팔고 있더군요.
유람선을 타고 아시아 대륙을 찍고 유럽 대륙으로 넘어오는 길입니다. 실제 여행은 아시아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2010-06-24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4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6-2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여행서를 내신 적이 있나요? 글이며 사진이며 예사롭지 않네요. 다들 알고 있는데 혹시 저만 엉뚱한 소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담 용서하세요.

"어깨 높이에 매달린 별은 그 눈높이 만큼이나 정겨웠다."

이런 문장을 보면 누구든 잉크님이 다녀오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어질 겁니다^^

잉크냄새 2010-06-25 11:05   좋아요 0 | URL
전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일반 직장인입니다. 벌써 시간이 지난 여행이지만 그때의 기록과 사진과 기억을 추스려 저만의 여행기를 하나하나 적어나가는 중입니다.
다행이네요. 제 글을 읽고 누군가 제가 걸어간 그 길을 떠올려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6-3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잉크냄새님.
현대인들님 블로그에서 꼬리 잡고 들어왔어요~^^
글이 참 정겹네요.

시간을 두고 쬐금씩 아껴 읽어야 겠어요~

잉크냄새 2010-06-30 11:54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저도 현대인들님 서재에서 뵈었었는데 인사를 못드렸네요.
제 서재는 그저 넋두리나 푸는 서재인지라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저도 종종 뵙지요.

전호인 2010-06-3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때쯤 옆지기와 아이들을 문화체험 삼아 터키를 보냈었습니다.
동서양과의 문화(문명?)이 교차되는 지점, 터키.
여러가지 체험을 하고 온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각인시킨 듯 하여 기분도 좋았어요.

잉크냄새 2010-06-30 18:51   좋아요 0 | URL
작년 이맘때쯤이면 제가 귀국하고나서군요.
인도에서 어린 두 아들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제 나이 또래의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대학때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한 그 분은 지금도 아이들의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더불어 여행을 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여행이 그 아이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리라 느꼈던 것이 문득 떠오릅니다.
참, 반갑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이라는 장르소설을 읽느라고 한동안 터키에 대해서 엄청 공부하며 머리 아파했던 게 떠올라요.

이 글을 3년쯤 전에 봤음...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돼서,좀 수월했을텐데...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경험을 앞지를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잉크냄새 2010-07-23 13:08   좋아요 0 | URL
네, 경험이 지식보다 오래 남죠.
책을 통한 지식과 경험의 획득은 한계가 있죠. 지금은 중국에서 중국인을 경험중인데...어렵네요...ㅎㅎ
 

광대뼈가 주는 정겨움 중국 홍콩 -

홍콩은 실제 여행계획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환율상승에 따른 엄청난 비행기표 값에 대한 보상 심리로 1 2일의 스탑 오버를 신청한 곳이 홍콩이었다. 새벽 5시경의 홍콩은 아직 어두웠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 무간도의 배경이 되었다는 침사추이는 아직 어둠에 휩싸여 황량했다. 몇몇 24시 편의점과 거리 청소를 시작한 청소부들의 부산함 사이로 골목을 거닐다 문득 이번 여행 중 여명도 밝지 않은 새벽 골목길을 걸어본 일이 처음임을 느꼈다. 도망치듯 빠져나간 델리 공항의 새벽과는 비교도 안되는 여유로움이라니. 인도인들이 종종 파키스탄인이나 네팔인이 아니냐고 묻곤 했다. 그 즈음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떠난 뒤라 얼굴이 검게 탄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파키스탄인 이냐고 묻는 그들의 저의는 아주 저열하고 비겁한 행위였다. 인도에서 가장 치욕적인 욕이 짤루 파키스탄(꺼져, 파키스탄 놈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웃으며 파키스탄인이냐고 묻던 그들의 엷은 미소 뒤에 깔려있던 비굴한 저의와 입가로 흐르던 저열한 히죽거림이 다시금 느껴져 서글펐다. 인종과 국적과 정치적 견해로 한 인간을 판단하고 모욕하는 비열한 행위라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다시 한번 그 입을 놀리는 놈을 만나면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후로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네팔인이냐고 묻던 물음, 인도-네팔의 소나울리 국경을 넘으면서 , 그렇구나 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입국 사무소로 안내하여 하나 하나 꼼꼼히 알려주던 작은 키의 나이든 직원의 친절함은 인도에서 겪지 못한 행동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호기심으로 그를 한참 바라보다 발견한 것은 넓은 얼굴과 광대뼈였다. 그 얼굴이, 그 광대뼈가 주는 평안함과 정겨움이라니. 네팔 곳곳에서 마주치는 광대뼈들은 그 누구보다 정겨웠다. 비슷한 얼굴이 비슷한 마음을 가졌으리라는 알수없는 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여명이 다가오지 않은 홍콩의 황량한 골목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홍콩 야경 >

첫날 홍콩의 야경은 환성적이라 할만했다. 소리와 빛의 향연은 30분 정도 진행된 걸로 기억한다. 침사추이와 반대편 선착장을 왕복하는 유람선에 몸을 싣고 물결의 일렁임에 몸을 맡겼다. 건물 사이를 흐르는 빛의 순간적인 소멸 뒤로 살며시 떠오르는 지난 여행의 추억은 여행 막바지의 감흥을 정리하기에 충분했다. 흔들리는 배 난간에서 마시는 한잔의 맥주는 다소 아쉬워지는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둘째 날은 공항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금 찾아 든 길이었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물길을 거스르다 거대한 장벽에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빛의 향연 한쪽에 자리잡은 SAMSUNG이라는 거대한 간판은 그 감흥을 완전히 깨뜨렸다. 인도 다람살라의 산골 마을에 자리잡은 핸드폰 대리점을 보고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면 홍콩 야경의 한쪽을 차지한 거대한 간판 앞에서는 막막한 서글픔이 느껴졌다. 자본주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홍콩의 당연한 모습이라 여겨지면서도 저 부도덕한 기업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릴 이곳의 많은 이들의 모습이 서글펐다. 첫날의 풍경만 담고 떠났어야 했거늘, 홍콩의 야경은 그렇게 씁쓸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있다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서>

홍콩이 명품 쇼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약간의 발품을 팔면 정겨운 재래식 시장 풍경을 만나게 된다. 특히, 관상어들이 비닐 봉지 한 움큼의 물에 담겨 가게 문마다 걸려있던 관상어 시장, 길 모르는 이방인을 인도하는 향기로움과 회색빛 도시를 감싸고 도는 색감의 다채로움이 거리를 수놓던 꽃 시장, 그 꽃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길에 아무도 살지 않는 숲에 누워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저귀던 새 시장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시장은 시장 골목 양 옆을 차지한 난전 형태의 골동품 시장인데 옛 것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꽤나 값어치 있는 골동품을 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물건들이 많다. 그 시장에서 19세기 후반대의 1달러짜리 동전을 구했는데 안목은 없지만 꽤나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보관 중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 것은 범선 시절에나 사용했을 법한 나침반이었다. 그저 북극성만으로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열망을 마구 헤집어 놓았지만 왠지 여행 막바지의 여흥과는 맞지 않아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마도 그 길이 떠나는 길이였다면 나침반을 샀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은 길이었다



<유람선 선상에서>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춤추는인생. 2010-06-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북극성만으로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열망을 마구 헤집어 놓았지만 왠지 여행 막바지의 여흥과는 맞지 않아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마도 그 길이 떠나는 길이였다면 나침반을 샀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은 길이었다.]
홍콩다녀오셨군요. 전 홍콩하면 쇼핑과 아경 이 둘뿐인데.. 역시 잉작가님의 눈으로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남다르네요.
건강하고 좋아보이시네요.^^

잉크냄새 2010-06-05 11:05   좋아요 0 | URL
어차피 다시 떠날 길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때 살걸 하는 후회를 종종 하곤 한답니다. 범선의 선장실에 가끔 등장하는 그런 류의 나침반이었는데 영화에서 볼때마다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때 쭈그리고 앉아 나침반을 바라볼때는 왠지 이걸 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것만 같더군요.

비로그인 2010-06-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스텔에서 지난 주 한 뉴욕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젊은 브라질 출신의 아가씨와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브라질인의 생김새의 편견을 보기 좋게 벗어나 지극히 미국적인 모습의 친구였는데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는 다시 미국으로 가기전에 잠깐 독일에 여행을 온 친구였어요.

아시아인인 제가 여행을 다니며 겪게 되는 난감한 인종편견의 일들 몇가지를 이야기 했더니 원래 자신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으면 더 그런 경우가 많은거라고, 그리고 불어를 잘 못해 프랑스인들에게서 무시당했던 이야기들도 해주더라구요.

저는 지난주 우체국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과 싸웠었어요. 여자였는데 아주 기본이 안된 여자였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한국남자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참 많은데 그 여자도 상대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기본됨을 상실한 사람이어서 "너 독일인 맞니?" 그랬더니 "그래 "라고 그러길래 "대부분 독일인 들은 너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다들 예의를 갖출줄 알고 겸손하지..너같은 행동을 하지 않거든"이라며 따졌더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급 공손하고 친절해지더라구요..
아주 뭐 같은 경우였는데 브라질 친구와의 대화에서 제가 그랬죠.. 한국을 와본 적이 없는 이들이 꼭 한국을 무시하더라. 아시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긴 아시아안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좀 잘사는 국가가 못사는 국가를 무시하지요-여자는 무시하면서 유럽인이 아시아인인자기를 무시했다고 열내는 적지않은수의 한국남자들 보면 좀 웃겨요>>

개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고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까봐요..이부분 아주 할이야기가 많아요.. 저도..

잉크냄새 2010-06-05 11:20   좋아요 0 | URL
개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입니다. 스스로 뒤돌아보고 넓게 보지 않으면 그 틀을 깨고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인도 맥그로드간즈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가 초대해서 10명 정도의 서양인들이 참석한 술자리에 잠시 동행했었는데 유독 미국과 영국 출신들이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더군요. 아마 그들의 역사적 배경이 무의식중에 유전처럼 전해져온 것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근데 왜 우리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으로 서로 연대하고 아파하고 역사와 미래를 고민해야할 동남아를 그렇게 비하하는지... 1세기만에 식민지,동족간 전쟁,독재,산업화,무늬만 민주화,자칭 선진국 등 유래를 찾을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어 진정한 문화를, 우리를 돌아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군요.

비로그인 2010-06-06 10:09   좋아요 0 | URL
엄밀히 말하면 같은 피해자는 아니죠. 아시와와 유럽이라는 카테고리로만 따지자면 그럴지 모르지만 그 안에 또 여성과 남성이 있지요. 아시아인이면서 여성.. 그건 굉장한 의미를 함축한다는 걸 여행을 다니면서 저는 더 배운 것 같아요. 그나마의 같은 피해자 선이 아닌 엄밀히 말하면 여성은 그 더 아래에 있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는 한국의 남성적 문화가 있지요.

여행오면 한국남자들이 꼭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있어요. 유럽여자들이 아시아 남자들은 남자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고.. 그나마 아시아 여자에게는 환상이라도 있다고.. <그 환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저에게는 이런말 또한 실실 웃으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내뱉는 한국남자들이 황당할따름이지요>-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망을 보아요. 너희는 머리만 빈게 아니라 가슴도 비었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지요

잉크냄새 2010-06-06 16:27   좋아요 0 | URL
전 여행중에 특별하게 차별받은 경험은 없었던것 같아요.남성인 영향이 크겠죠. 여행중 만난 몇몇 여성 여행자에게서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들은 적은 있어요. 한국의 남성적 문화...한국 근대 교육과 군사문화의 잔재.저도 그 때가 아직 상당부분 습성처럼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한가지 위안이 되는건 그것이 그릇된 것임을, 벗어던져야할 잔재임을 알고 의식적으로 변하고자 하는 의지라 생각됩니다.

yamoo 2010-06-0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가을에 홍콩을 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여행 많이 다니는 후배 따라가는 건데, 가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네요..포스팅보니 가고싶은 마음이 무럭무럭~~ㅎ

잉크냄새 2010-06-10 10:35   좋아요 0 | URL
네, 여행으로 가볼만한 곳입니다.
재래식 시장쪽으로 한번 가보세요. 홍콩 야경이나 쇼핑보다 더 기억에 남을듯 합니다.
좋은 여행되시길...

비로그인 2010-06-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서재에서 가끔 뵈었는데 처음 인사드립니다. 여행작가이신가요?
글이 읽기 유연하십니다. 홍콩사진을 보니까 출장으로 몇 번 갔던 기억이 나서 아는체를 해 봅니다. 지금은 중국에 계신가봐요?

잉크냄새 2010-06-21 09: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이 늦어버렸네요.
이곳 중국은 단오절이 휴무랍니다.
여행작가는 아니고요, 그냥 일반 직장인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하기야 두 나라로 갈라질 때 엄청난 유혈충돌이 있었지요.

잉크냄새 2010-06-24 10:1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여행할 즈음에 발생한 뭄바이 테러로 인하여 인도-파키스탄의 암리챠르 구간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카슈미르 지방에는 총격이 공공연히 발생한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4 17:07   좋아요 0 | URL
인도는 중국과도 국경분쟁이 있고 또 타밀족 문제도 있고...굉장히 유혈충돌이 많은 나라지요.

잉크냄새 2010-06-24 18:39   좋아요 1 | URL
국경문제와 관련된 그런 사항을 접하면 인도는 또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5 16:23   좋아요 1 | URL
하하하...두 얼굴이야 인간이 사는 곳이면 다 있다고 봐야죠.우리는 일본이 이중적인 나라라고 하는데 주한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이중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잉크냄새 2010-06-25 17:20   좋아요 1 | URL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이중성은 일반 여행자들이 느끼는, 혹은 책을 통하여 소개된 인도인 특유의 가치관과 달리 저런 국경분쟁이 일어나는 부분이 더 큰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부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5 18:53   좋아요 1 | URL
맞아요.우리나라에도 인도에 대해서 류시화같은 분이 소개한 것만 생각하면 갠지스 강의 구도자가 어쩌구...하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좀 살벌한 것 같아요.저는 민족분쟁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인도에서 무서운 일이 많이 일어난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잉크냄새 2010-06-26 10:06   좋아요 1 | URL
네, 한국에 소개된 바와 같이 인도인의 가치관은 특이합니다. 일반 대중의 가치관은 분명 다른 문화와 비교할수 없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분쟁을 일삼는 정치인은 세계 어디나 똑같나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5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가 고파서 그런가요~
소동파가 생각난다고 하려고 했는데,동파육이 생각난다고 할 뻔했어요~^^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이 구절,가슴에 담아가요.

잉크냄새 2010-07-26 17:08   좋아요 1 | URL
동파육이 뭐죠? 전 못먹어본 음식 같네요.
어설픈 넋두리가 님의 가슴속에서 더 옹글고 아름다운 의미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8 02:14   좋아요 1 | URL
일종의 돼지고기 장조림인데 뜨겁게 먹는 음식이예요~
동파육과 짝을 이뤄 얘기되는게,오향장육이구요.
떠남과 돌아옴,얘기를 해서 동파육과 오향장육의 대(댓)구를 떠올렸었어요~
(Hot dish&cold dish)
입장의 다양함에서 인종의 다양함으로 생각이 뻗어나갔고,
그 어디 쯤에서 님의 말랑말랑한 영혼(마리여사 마냥~^^)을 엿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10-07-28 12:52   좋아요 1 | URL
그런 음식이 있었군요.
말랑말랑한 영혼이라는 단어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항조우에서 개최되는 기업 투자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원래 내가 참석할 자리는 아니었으나 사장님이 급한 사정이 생겨 대타로 참석하게 되었다. 장소는 항조우였으나 실질적인 주관은 안휘성 정부 주관이었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도착하니 아직 참석자는 몇 보이지 않았다. 기배정된 자리를 옮겨 제일 졸기 편한 위치로 이동하였다. 잠시후 정부관료인듯한 사람이 도착하였고 각 자리에 배정된 대표이사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다가왔다. 대타 참석이니 내 명함도 아닌 사장님의 명함을 주며 명함을 건네 받았다. 흰 바탕에 빨간색 명칭이 다소 촌스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듯한 표시이다. 붉은 낫에 붉은 망치, 중국 공산당 이라고 붉게, 선명히 찍힌 명함이었고 그의 직책은 당서기였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지만 공산당원이 차지하는 위치를 볼때 상당한 권력가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70명 가량 참석한 대표이사중 한국인이 한명 있다는 것이 자신의 지역으로 기업을 유치하는데 나름 홍보거리라 생각했는지 연설을 할때마다 한국인을 언급하곤 했다. 또 하나의 악재는 어차피 잘 안들리는 중국어, 잠이나 자자 하고 옮긴 자리가 그의 뒷자리(자리 배정이 한국과 좀 다르다) 였다. 졸지도 못하고 당서기 사진의 뒷배경으로 사진만 무수하게 찍혔다. 설명회가 끝난후 오찬 자리에서도 그는 나름의 홍보거리인 가짜 사장에게 다가와 건배를 제의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당서기가 인사하니 대표이사들이야 가만 있겠는가. 줄줄이 사탕으로 딸려 들어오는 사장들과 건배하느라 비싼 음식은 제대로 못먹고 쥬스로만 배를 채웠다. 아까워. 오찬이 끝난 후 "짜이찌엔"하고 악수를 하고 떠나려니 한국어로 헤어질때의 인사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어늘한 말투로 "안녕히 가세요"하고 말하는 그와 악수 대신 가벼운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규정하는 일 ( 한때 대한민국의 위대한 교육은 그들을 뿔 달린 악마로 인식시키지 않았던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싶다. 

설명회가 개최된 장소는 시후 옆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오찬이 끝난후 통역으로 동행한 부장과 시후 호수를 걸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항조우로 가는 것이 귀찮아 투덜거리던 나와 달리 그가 콧노래에 흥겨웠던 이유는 항조우에 깊이 남아 있는 추억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유학한 그가 대학 졸업후 중국 내륙 배낭여행을 할때 항조우에서 만난 여인과의 추억이다. 그들이 만난 장소가 시후 호수의 "똰챠오찬쉐(短桥残雪)"였다. <백사전>의 주인공인 빠이냥즈와 쉬씨엔이 갖은 고난 끝에 다시 상봉한 다리로 유명하며 눈이 내린후 잔설이 녹을때 마치 다리가 끊어진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도 그녀를 그 다리 입구에서 만났다고 한다. 저녁 일몰을 품고 자전거를 타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전설속의 여인을 보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한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지만 당시만 해도 같이 할수 없는 그들의 운명을 안 여인이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有因但是没有缘分)"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약 두달을 그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앓았다고 했다. 그 다리를 건너다 가슴이 좀 두근거리냐고 물으니 씨익 웃으며 그저 덤덤하단다. 그가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기를 빌었지만 다리를 다 건널때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추억은 오늘 하루 그를 아주 행복하게 했으리라 믿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0-06-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 는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영화 '호우시절'처럼 혹여나 그 인연들에게도 또 한번의 연이 올지 모를 일이지만은요...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는데 다들 재미없다는 영화를 저는 잘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다리 어디쯤 잉크냄새님만의 또 다른 멋진 로맨스도 기대해봅니다. 사람일은 모르니까요..^^

잉크냄새 2010-06-02 19:27   좋아요 0 | URL
그 다리 말고 시후 호수에 또 하나의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소동파가 만들었다고 하는 "쑤띠" 라는 다리입니다.
호수 한쪽을 관통하는 엄청나게 긴 다리이니까 오히려 그 다리가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겠죠.ㅎㅎ
이제는 늙어가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그 뭐시기 다리가 문득 생각납니다.

털짱 2010-07-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신문 기사에서 사진을 찾아 올리셔야지요!!!!

잉크냄새 2010-07-15 09:47   좋아요 0 | URL
안후이성 지역 신문이라도 찾아봐야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