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은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간만에 토익 시험을 준비하려고 신청한 학원의 강사가 자신이 주례를 선 결혼식 이야기를 하면서 언뜻 말한 신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보다 큰 소리로 놀란 사람은 내 옆자리의 자칭 문학장년이었다. "형님, 저 신부 이름....캬하하" "공부해라" 문학장년은 뭐가 좋은지 강의 시간 내내 나를 곁눈질하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추억은 머리 까진 학원 강사의 입을 빌려서라도 기어코 그 먼 길을 달려오고야 말았다.
입사를 하고 그녀를 처음 만났다. 큰 키에 시원시원한 행동이 맘에 들었다. 호감이 가는 여자였다. 난 연애에 어설펐다. 연애전략은 눈치9단 연애9단인 입사동기의 주도아래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친구의 연애전략 ( 비오는 수요일날 나한테 전화해서 꽃 사서 가라고 난리를 떨곤 했다) 에 충실했고 뭔지 모르지만 신이 난 친구는 진도표까지 설명하며 열중하고 있었다. 진도표의 연애진척도가 80%라고 판단한 친구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은 여행이었다. 자신이 분위기 다 조성할테니 고백만 하면 100% 성공할 것이라는 성공전략에 넘어가고 말았다. 남녀 3명씩으로 이루어진 하조대행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행의 시작은 괜찮았던 걸로 기억한다.
잘 되어가던 여행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바닷가였다. 술이 한잔 두잔 돌고 누가 제안했는지 해변 축구 시합이 진행되었다. ( 남녀 3명씩 놀러가서 축구는 뭔 얼어죽을 축구였는지. 지금 추론해보아도 나나 연애박사 둘중의 한명일 것이다.) 근데 그 키 크고 호감가고 시원시원한 아가씨가 운동 신경이 장난이 아니었다. 육상인지 축구인지 종목은 명확하지 않으나 보통 여자들이 뛰는 폼이 아닌것은 확실했다. 처음에 한두골 재미삼아 먹어주던 골이 회복 불가능한 수치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에게 질수 없다는 마초본능과 쓰잘데기 없는 알코올성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조기 축구의 명예를 걸고 전력질주를 시작했고 골문에 거의 다다른 순간 누군가 깊숙한 태클을 걸어왔다.

아, 그 긴 다리, 그녀의 다리였다. 레드카드를 받을 정도의 백태클에 사정없이 쑤셔박힌 난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었다. 그녀, 알코올 농도도 승부욕도 나보다 훨씬 강했던것 같다. 극심한 통증보다 무안함, 창피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쳤구나! 싶은 허탈함이 몰려왔다. 연애성공전략의 거의 마무리를 보고자했던 동기와 둘이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임마, 종 쳤다." "종 쳤겠지?" "경험상으로 100% 종 쳤다"
여행복귀후 연애박사도 손을 떼고 하여간 얼마지나지 않아 여자의 백태클에 어깨탈골이 있었다는 소문만 남긴채 정말 종쳤다. 때~~~~~~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