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조르주 심농-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라는 버즈북을 통해 4월 론칭을 알렸던 매그레 반장 시리즈. 4월부터 매달 두 권씩 출간된다는 소식에 오매불망 기다렸거늘 소식이 없어 실망하던 차에 드.디.어.예판이 시작됐다.  


















어떤 표지 디자인으로 나올까 궁금했는데,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느낌. 판형은 기존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 판형과 동일하고 페이지는 300페이지 미만이니 책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열린책들의 조판에도 가볍게(?) 볼 수 있을 듯하다.

책 한 권을 만들 때도 온갖 우여곡절이 생기는데, 하물며 시리즈 론칭이야! 두 번이나 시리즈 론칭하느라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본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3년이라는 대장정을 시작한 매그레 반장 시리즈, 무조건 응원한다. 모쪼록 75권이 무사히 완간되었으면 하는 바람. 4월 출간을 미루며 5월에 4월 출간분까지 몰아서 출간하느니만큼 좀더 알찬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둑은둑은.

덧) 버즈북 포토리뷰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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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5-07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인가요? 전 처음에 책이 아닌 줄 알았어요.
책 표지가 너무 멋집니다^^
헉~ 시리즈가 75권이라니... 정말 놀라워요.
잘 지내시죠?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이매지 2011-05-07 11:48   좋아요 0 | URL
75권 언제 다 읽나 독자 입장에서 까마득하네요 ㅎㅎㅎ
표지가 공개되니 더 기대가 되네요 :)
후애님 잘 지내고 계시죠?^^

BRINY 2011-05-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시리즈가 많았나요? 그동안 한권 두권 읽어본 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군요!

이매지 2011-05-07 11:49   좋아요 0 | URL
버즈북을 읽어보니 조르주 심농 이 양반이 거의 요즘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공장형 작가더군요 ㅎㅎ
매그레 경감을 계기로 추리 독자 저변이 좀 확대되었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11-05-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드디어 나오는군요.근데 매그레 경감은 뭐랄까 좀 묵직한 맛이 있어서 솔직히 잘 팔릴지 궁금해 집니다.본격을 좋아하는 국내 독자들의 성향상 차라리 앨러리 퀸이 좀더 낫지 않나 싶더군요.

이매지 2011-05-08 00:01   좋아요 0 | URL
일전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글을 보니 엘러리 퀸 관련한 프로젝트도 진행중인 것 같더군요. 저 역시 엘러리 퀸은 시그마북스로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소장하지는 못해서 다시 만나고 싶어요^^ 안 팔려서 시리즈 중단이 되지 않게 열심히 사봐야죠^^

카스피 2011-05-13 00:20   좋아요 0 | URL
ㅎㅎ 그거 만우절 농담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정말로 진행되면 좋겠습니당 ㅜ.ㅜ

이매지 2011-05-13 00:44   좋아요 0 | URL
엇, 그 다음에 데카님이 거짓말 아니라고 다시 올리셨어요^^

pjy 2011-05-0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가 너무 길어서 엄두가 안납니다~~ 일단 님의 멋진 리뷰를 기대하면서 간 좀 봐야겠습니다^^;

이매지 2011-05-08 12:00   좋아요 0 | URL
한 달에 두 권씩 나오니까 잘만 따라가면 될 것 같아요 ㅎㅎㅎ
멋진 리뷰는 아니지만 책 나오면 열심히 해볼께요 ㅎㅎ
 
예쁜 여자 만들기 -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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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을 추앙하고 아름다움을 권하는 사회.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할 것을 종용하고,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이는 게으르다고 치부하는 사회. 외모가 돋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여신'이라는 호칭을 붙여 떠받는 사회.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한국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가 극도로 팽배한 '미인 권하는' 이런 풍토는 대체 언제부터 있어온 것일까? <예쁜 여자 만들기>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시대에 따른 옷차림은 변한다. 옷차림의 변화는 곧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시대에 따라 저고리의 길이나 치마의 모양 등 같은 한복이라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라짐에 따라 변해간다. 하지만 한복이 어느 정도 제한된 선에서의 변화였다면 양복의 유입 이후에는 이런 변화가 가속화된다. 한국사회에서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유행에 민감하게 된 것은 서양문명의 유입과 언론매체가 탄생 이후부터였다.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남편을 살해한 여자를 미인으로 만들어 내서 사람들의 관심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서양 여인의 몸매 등을 언론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그려내면서 '예쁜 여자=서구적인 매력 있는 여자'라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근대 국가, 자본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순히 유교적, 윤리적 질서를 체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적인 목적을 위해 옷에 신경을 쓰게 되고, 기능상의 문제가 아닌 미관상의 문제 때문에 성형수술이 이뤄지게 된다. 

  <예쁜 여자 만들기>에서 저자는 결국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광이 일종의 '개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 말한다. '예뻐져야 한다'는 여성의 강박은 '개화가 되어야 한다'는 문명화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신문에서 노골적으로 유명 인사들의 외모에 대한 품평이 이뤄지고, S라인을 위해 각종 체조법이나 수술이 행해지는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애초에 책을 읽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다양한 자료를 통해 20세기 초반의 미의식과 시대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20세기 초보다 오히려 더 여성의 외모가 권력이 되는 사회. 미인 추앙에 대한 시발점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미의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사회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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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만들기 -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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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살았던 이들은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질서, 근대 국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몸을 단련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몸이, 특히 여성의 몸이 왜, 어떠한 방식으로 중요한가에 대한 강조점은 근대화의 진행과 더불어 주기적으로 변화해왔다. 이 변화의 양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육체의 탄생, 그 이후(의 여성)'라는 성격을 띠기도 한다. -8~9쪽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통계'다. 수많은 개체들이 가진 형태들을 간추려 '평균'의 형태를 찾아내고, 거기서 벗어난 좀 더 희귀하고 독특한 형태들에 미美 또는 추醜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일반화할 수 있을 정도의 개별 사례들을 모아 평균치를 내야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떠한 몸이 아름다운 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일단 몸을 많이 봐야 한다. 존 버거의 말대로 '보는 것see'과 '아는 것'은 동격이다. 즉 '보는 만큼 아는 것'이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여성이 지아비에게만 자기 몸을 보여주는 사회 구조, 기껏해야 돈을 주고 기생들의 몸을 본 일부 사대부가 존재하는 사회 구조 내에서는 여성들의 몸매에 대한 평판이 '공론'으로 형성되기 힘들다. 따라서 여성의 가슴과 다리의 모양이 어떠해야 아름답다라는 통념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곧 사람들이 여성의 가슴과 다리를 많이 보고 품평을 할 수 있게끔 환경이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30~31쪽

이전까지의 옷은 유교적, 윤리적 질서를 체현하는 도구 혹은 치장의 요소 중 하나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다. "의복은 신분의 귀천을 구별해 주고, 상황의 길흉을 분별해 주며, 남자를 구별해 주고, 화이를 나누어 정해주는 것이다"라고 할 만큼 유교 사회에서 옷차림은 곧 신분의 등급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여성들의 의복 디자인이 시대, 유행에 따라 변형되기는 했어도 여성들의 몸에 이로운가는 고민되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근대 의학적 지식이 유입되어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옷이 위생 차원에서 평가받게 된 것이다. -60~61쪽

처음에는 '편리'와 '위생'을 위해 여성의 치마 길이를 줄여야 한다던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미적 목적, 즉 '패션', '유행'을 위해 치마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치마의 길이는 유행의 한 부분으로서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 되었다. -64쪽

하지만 1920~30년대에는 이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심미안'을 가진 '세련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듯하다. 그들은 미인이 갖춰야 할 요건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언급함으로써 스스로 근대적인 미의 표준을 '알고' '만들어 가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사실이 있다. 이미 이 시기부터 '몸짱'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미인이라면 얼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물론 그 '아름답다'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생각이야 동서고금을 불구하고 늘 있었지만, 몸매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에 들어 새롭게 형성된 관념이다.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당시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말하는 미인관이다. -88쪽

이광수는 "체격이 팔다리나 몸통이 자로 잰 듯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바로 맞고, 몸 쓰는 것, 걷는 것 등 모든 동작이 날씬하여 남의 눈에 조금도 거슬리게 보이지 않고, 그 말소리가 사근사근하고 시원하면서 부드럽고, 슬플 때 기쁠 때 괴로울 때의 표정이 천진스럽고 자유롭고, 또 취미와 그 정신이 아울러 고상하다면 그야말로 내가 찾는 미인이 될 것이다"라며 체격, 팔다리, 날씬한 동작 등을 미인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물론 "얼굴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윤곽에다가 눈은 어디까지든지 크고 처진 듯하며 코나 귀가 복스럽게 예쁘고 살결이 하얀 분"이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얼굴 생김새에 대한 여러 가지 기준도 빠트리진 않았다. -88~9쪽

1. 키는 머리 부분 전체 길이의 8배, 얼굴 길이의 10배
2. 얼굴은 머리 난 데에서부터 눈썹까지, 눈썹에서 코 밑까지, 코 밑에서 아래턱까지가 같고
3. 안면은 손바닥과 길이가 같고
4. 두 팔을 벌려서 그 길이가 키와 같다
고 한다. 그리고 남성미와 여성미는 다른 점이 있어서 남자의 키는 머리 부분의 8배, 여자의 키는 머리 부분의 7배 반이라니, 여자도 키가 작아 보이면 앙증스러워 보여도 미인은 못 된다.
위에 말한 인체미의 근본인 전형에 맞은 후라야 비로소 미인 격이 되는 것이나, 누구나 저마다 들어맞는 것이 아니니 미인이 되기 바라면, 얼굴의 단점을 가리기 위하여 얼굴 형편을 따라 머리 트는 형태를 바꾸고 몸맵시에 따라 의복 맵시를 연구해 입어야 하되,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육체의 균형이 잡히도록, 다리 동작만 많이 하는 이는 손발을 잘 놀리기에 마음을 써야 하고, 주야로 앉아서만 일을 하는 부인은 하루 한 번씩이라도 일어나서 전신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니, 가정부인보다 여학교 출신의 자태가 더 좋은 것을 보아도 확실한 증거가 되는 일이다. -94~5쪽

문명화는 개항 후 오랜 시간 지속된 조선의 열망이었다. 당시 조선은 사회, 정치, 교육, 제도, 풍속, 예술 등 어느 하나 열등감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어느 하나 '개조'가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래서 근대의 조선 지식인들은 문명 국가, 문명 인종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의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외부세계의 우월한 점들을 모방하려 노력해왔다. 그들이 모방하려 애썼던 외부 세계의 우월한 것들 가운데 오리엔탈리즘과 함께 흘러 들어온 '인종주의'는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아름다운 여성의 몸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집착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아름다운 여성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문명화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122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푼 낮았더라면 역사가 변하였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거니와 과연 코는 그만큼 위대한 사회성을 띠고 있는 비례로 낮은 것보다는 높은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산이 높기만 하다고 명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도 높기만 하다고 명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도 높기만 하다고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얼굴에 비례하여 적당히 높지 아니하면 조화가 되지 아니합니다. 조화가 되지 않는 곳에서 미를 발견할 수는 없는 고로 함부로 코만 높이면 오히려 높이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이는 '코만 조금 높았으면 미인이 될 걸'하는 유감을 품게 된 이도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 대하여는 융비술의 발견이 아무 데도 비하지 못할 큰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미가 제일이라는 말에 대하여 이의를 가질 이는 없겠지마는 융비술을 한다고 마음의 미가 없어질 것은 아닌즉 이상적으로만 할 수 있다면 여기에 반항할 사람도 없을 줄 압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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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4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소설을 선택할 때 (적어도 내게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게다가 <경관의 피>로 나를 사로잡은 사사키 조라니.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마음에 담아둔 책. 분위기도, 주제도 무겁디 무거운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를 끝낸 후유증인지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짤막한 단편을 기웃거리던 내게 너무나 휴식같았던 책. 바로 <폐허에 바라다>이다.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입고 현재 휴직중인 형사 센도 타카시. 의사는 그에게 절대 경찰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고 엄포를 내리며 쉽사리 복직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의사의 말에 따라 고분고분 요양을 하는 것도 잠시. 요양생활에 지루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휴직중이라 자신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이유로 거절하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센도를 찾는 사람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럼 사정만 들어보는 것으로, 그럼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이라는 식으로 센도는 (겉으로는)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여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떠나 수사에 착수한다.

  <폐허에 바라다>에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잔혹하지 않다. 정신적 충격으로 요양중인 경찰에게 어울릴 법한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적당히 자극적인 수준의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사건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인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 <폐허에 바라다>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짤막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묘사다. 첫번째 이야기인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에서는 자신과 다른 타지인에 대한 혐오를, 표제작인 '폐허에 바라다'에서는 과거라는 굴레에 대해, 세번째 이야기인 '오빠 마음'에서는 인간의 탐욕을, '바쿠로가와의 살인'에서는 증오를, '복귀하는 아침'에서는 악의를 어쩐지 쓸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경관의 피>가 본격적인 느낌이라면 <폐허에 바라다>는 어깨에 힘을 빼고 한 편 한 편의 맛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최근 읽어온 일본미스터리 가운데 가장 담백한 단편집이 아닐까 싶었던 작품. 큰 기교도, 큰 사건도 없지만 이야기 속에 담긴 메시지는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딘가 하드보일드 소설 같으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사사키 조의 베테랑다운 면모가 잘 담겨 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소설. 가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쓸쓸한 느낌인 훗카이도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그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은근하고 담백한 맛. 자꾸만 떠오르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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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4-2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있죠. 왜 나오키상 수상작인지 납득이 가요.

이매지 2011-04-25 20:23   좋아요 0 | URL
트릭이나 미스터리적인 분위기는 덜해서 분명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분위기와 그 속에 담긴 통찰만으로도 충분히 나오키상 수상감인 것 같아요! :)
이 작품 덕분에 사사키 조에 다시 관심이 가네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1-04-26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사키 조의 작품을 듣기만 하고 한번도 못 읽었어요.
그런데 오늘 <경관의 피>에 대한 언급을 벌써 두번째 듣네요.
아..... 저두 어깨 힘빼야 하는데, 그럼 도전을. ^^

이매지 2011-04-26 08:58   좋아요 0 | URL
<경관의 피>는 꽤 본격적이구요,
어깨에 힘을 빼셔야 한다면 <폐허에 바라다> 추천요! ㅎㅎㅎ
편안하게 요양하듯이 읽으실 수 있을 꺼예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구판절판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리라는 것은, 내 성장기에 더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그러나 당시에 곰스크에 걸었던 희망을 나는 거의 잊어버렸다. 곰스크로 가려 했던 이유조차도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져 더이상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곰스크를 향한 열망이 식은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는 그 도시에 도착한다는 명백한 확신이 시들해진 것뿐이다.
하지만 내 자신과 내가 소유한 것들에 끊임없는 불안을 던져주는 탈출의 욕망을 뿌리뽑고 가족의 품에 머무는 고요하고 만족스러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할 때도 있다. 마치 곰스크란 말에서 평범한 지명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다른 이웃들처럼 말이다.
-10~11쪽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이런 생각들과 싸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싸움을 할 권리가 없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선택한 바로 그 궤도를 달리는 게 인생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인간에겐 허용되지 않는 교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11쪽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는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 거죠? -57쪽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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