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 만들기 -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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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살았던 이들은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질서, 근대 국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몸을 단련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몸이, 특히 여성의 몸이 왜, 어떠한 방식으로 중요한가에 대한 강조점은 근대화의 진행과 더불어 주기적으로 변화해왔다. 이 변화의 양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육체의 탄생, 그 이후(의 여성)'라는 성격을 띠기도 한다. -8~9쪽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통계'다. 수많은 개체들이 가진 형태들을 간추려 '평균'의 형태를 찾아내고, 거기서 벗어난 좀 더 희귀하고 독특한 형태들에 미美 또는 추醜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일반화할 수 있을 정도의 개별 사례들을 모아 평균치를 내야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떠한 몸이 아름다운 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일단 몸을 많이 봐야 한다. 존 버거의 말대로 '보는 것see'과 '아는 것'은 동격이다. 즉 '보는 만큼 아는 것'이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여성이 지아비에게만 자기 몸을 보여주는 사회 구조, 기껏해야 돈을 주고 기생들의 몸을 본 일부 사대부가 존재하는 사회 구조 내에서는 여성들의 몸매에 대한 평판이 '공론'으로 형성되기 힘들다. 따라서 여성의 가슴과 다리의 모양이 어떠해야 아름답다라는 통념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곧 사람들이 여성의 가슴과 다리를 많이 보고 품평을 할 수 있게끔 환경이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30~31쪽

이전까지의 옷은 유교적, 윤리적 질서를 체현하는 도구 혹은 치장의 요소 중 하나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다. "의복은 신분의 귀천을 구별해 주고, 상황의 길흉을 분별해 주며, 남자를 구별해 주고, 화이를 나누어 정해주는 것이다"라고 할 만큼 유교 사회에서 옷차림은 곧 신분의 등급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여성들의 의복 디자인이 시대, 유행에 따라 변형되기는 했어도 여성들의 몸에 이로운가는 고민되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근대 의학적 지식이 유입되어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옷이 위생 차원에서 평가받게 된 것이다. -60~61쪽

처음에는 '편리'와 '위생'을 위해 여성의 치마 길이를 줄여야 한다던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미적 목적, 즉 '패션', '유행'을 위해 치마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치마의 길이는 유행의 한 부분으로서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 되었다. -64쪽

하지만 1920~30년대에는 이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심미안'을 가진 '세련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듯하다. 그들은 미인이 갖춰야 할 요건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언급함으로써 스스로 근대적인 미의 표준을 '알고' '만들어 가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사실이 있다. 이미 이 시기부터 '몸짱'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미인이라면 얼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물론 그 '아름답다'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생각이야 동서고금을 불구하고 늘 있었지만, 몸매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에 들어 새롭게 형성된 관념이다.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당시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말하는 미인관이다. -88쪽

이광수는 "체격이 팔다리나 몸통이 자로 잰 듯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바로 맞고, 몸 쓰는 것, 걷는 것 등 모든 동작이 날씬하여 남의 눈에 조금도 거슬리게 보이지 않고, 그 말소리가 사근사근하고 시원하면서 부드럽고, 슬플 때 기쁠 때 괴로울 때의 표정이 천진스럽고 자유롭고, 또 취미와 그 정신이 아울러 고상하다면 그야말로 내가 찾는 미인이 될 것이다"라며 체격, 팔다리, 날씬한 동작 등을 미인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물론 "얼굴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윤곽에다가 눈은 어디까지든지 크고 처진 듯하며 코나 귀가 복스럽게 예쁘고 살결이 하얀 분"이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얼굴 생김새에 대한 여러 가지 기준도 빠트리진 않았다. -88~9쪽

1. 키는 머리 부분 전체 길이의 8배, 얼굴 길이의 10배
2. 얼굴은 머리 난 데에서부터 눈썹까지, 눈썹에서 코 밑까지, 코 밑에서 아래턱까지가 같고
3. 안면은 손바닥과 길이가 같고
4. 두 팔을 벌려서 그 길이가 키와 같다
고 한다. 그리고 남성미와 여성미는 다른 점이 있어서 남자의 키는 머리 부분의 8배, 여자의 키는 머리 부분의 7배 반이라니, 여자도 키가 작아 보이면 앙증스러워 보여도 미인은 못 된다.
위에 말한 인체미의 근본인 전형에 맞은 후라야 비로소 미인 격이 되는 것이나, 누구나 저마다 들어맞는 것이 아니니 미인이 되기 바라면, 얼굴의 단점을 가리기 위하여 얼굴 형편을 따라 머리 트는 형태를 바꾸고 몸맵시에 따라 의복 맵시를 연구해 입어야 하되,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육체의 균형이 잡히도록, 다리 동작만 많이 하는 이는 손발을 잘 놀리기에 마음을 써야 하고, 주야로 앉아서만 일을 하는 부인은 하루 한 번씩이라도 일어나서 전신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니, 가정부인보다 여학교 출신의 자태가 더 좋은 것을 보아도 확실한 증거가 되는 일이다. -94~5쪽

문명화는 개항 후 오랜 시간 지속된 조선의 열망이었다. 당시 조선은 사회, 정치, 교육, 제도, 풍속, 예술 등 어느 하나 열등감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어느 하나 '개조'가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래서 근대의 조선 지식인들은 문명 국가, 문명 인종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의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외부세계의 우월한 점들을 모방하려 노력해왔다. 그들이 모방하려 애썼던 외부 세계의 우월한 것들 가운데 오리엔탈리즘과 함께 흘러 들어온 '인종주의'는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아름다운 여성의 몸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집착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아름다운 여성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문명화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122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푼 낮았더라면 역사가 변하였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거니와 과연 코는 그만큼 위대한 사회성을 띠고 있는 비례로 낮은 것보다는 높은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산이 높기만 하다고 명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도 높기만 하다고 명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도 높기만 하다고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얼굴에 비례하여 적당히 높지 아니하면 조화가 되지 아니합니다. 조화가 되지 않는 곳에서 미를 발견할 수는 없는 고로 함부로 코만 높이면 오히려 높이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이는 '코만 조금 높았으면 미인이 될 걸'하는 유감을 품게 된 이도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 대하여는 융비술의 발견이 아무 데도 비하지 못할 큰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미가 제일이라는 말에 대하여 이의를 가질 이는 없겠지마는 융비술을 한다고 마음의 미가 없어질 것은 아닌즉 이상적으로만 할 수 있다면 여기에 반항할 사람도 없을 줄 압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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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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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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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1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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