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Rumo & Die Wunder im Dunkeln



 

어느 날 젖먹이 루모는 악마바위로 끌려간다. 그 섬의 주인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산 채로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들! 어린 루모는 그들의 식량창고에서 스승 스마이크를 만난다. 스마이크는 루모가 타고난 전사 볼퍼팅어라는 걸 알아보고 그에게 차모니아의 모든 전쟁과 전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루모가 성장하자 외눈박이 거인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는 밤, 루모는 외눈박이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극적으로 악마바위를 탈출한다.

악마바위를 벗어난 루모는 언제나 그의 앞에서 나부끼던 은띠의 냄새를 따라 오랜 방랑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볼퍼팅어들의 고향 볼퍼티에 도착하고, 사랑하는 랄라와 친구들을 만난다. 그러나 지상세계에서의 행복도 잠시. 루모가 볼퍼팅을 비운 사이 볼퍼팅어 모두가 홀연히 사라진다. 루모는 그들이 지하제국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알고는 홀로 말하는 검 하나만을 들고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이 모든 지상의 냄새 위로 저 높은 곳에서 은빛 띠가 하나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얇고 부드러운 띠였다.

 



스마이크는 루모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니 그보다는 루모는 이미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제대로 된 단어를 말할 줄 몰랐다는 것이 맞겠다. 그래서 웅덩이 옆에 떡 하니 앉아서 상어구더기가 하는 말에 귀기울임으로써 단어들을 얻었다. 스마이크는 해 줄 얘기가 많았다.

 



 

"마지막 망치 소리가 멈추고, 용광로의 불이 꺼지고 엘릭시르가 다 떨어졌을 때 누르넨 숲 공터에는 반짝이는 새 용병군단이 서 있었다. 당시에는 무기를 구리로 장식하는 것이 유행이었어. 그래서 이 불그레한 금속은 어디서나 번쩍번쩍 빛을 냈고, 그걸 만든 자들은 그들을 구리병정이라고 불렀지."

 



루모도 이제 아가리를 벌렸다. 턱을 쩍하고 열더니 온 이빨을 다 드러냈다. 처음으로 완변한 이빨 구조를 드러내면서 볼퍼팅어의 주등이에서만 자라는 이빨이 조합을 과시한 것이다. 송곳니, 앞니, 앞어금니, 어금니 등등 여든여덟 개로 하나같이 아주 새것이었고 눈처럼 희고 매끈한 법랑질에는 단 한 점 흠도 없었다.

사위는 꽤나 어두워졌건만 이빨들에서는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볼퍼팅어의 이빨에는 미량의 인 성분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빨은 맨 끝 긴 엄니에서 미세한 연마용 이빨에 이르기까지 한 줄, 두 줄, 또는 세 줄로 겹으로 배열돼 있었다. 송곳니는 낚싯바늘 형태였고, 어금니는 번쩍이는 다이아몬드 가루로 덧씌운 것 같았다. 앞니는 얇고 날카로워서 면도날 같았다. 여기에 바늘처럼 얇고 잘 보이지 않는 이빨들이 다른 이빨들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복장은 똑 같았다. 가죽바지에, 조끼, 가죽상의, 그리고 리넨셔츠. 그러나 어쩐지 훨씬 잘 어울렸다. 그들은 눈이 달랐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은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동거지가 훨신 우아했다. 이 모든 게 루모의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볼퍼팅어들은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특히 검에 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또 우샨 데루카의 눈에서 번뜩이는 불꽃을 보았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통증이 왔다. 그렇게 느닷없고 강렬한 통증은 딱 한 번밖에 겪어본 적이 없었다. 악마바위 동굴에서 외눈박이가 던진 횃불에 얼굴을 맞았을 때였다. 우샨은 칼끝으로 루모의 코를 찔렀다.

 



가우납 아글란 이지다하카 벵 엘렐 아투아 99세는 그 이름이 분명히 말해 주듯이 헬의 아흔하홉 번째 통치자였다. 이것은 여러 가지 권리와 의무 외에도 그의 직계 후손이 붉은 예언을 성취해야 할 지하세계의 100번 째 왕이 된다는 것을 이미했다.

 



프리프타르는 마지막 가우납의 최고 자문관으로 가우납 왕의 궁정에서 오래 일한 외교관 가문 출신의 정치적, 전략적 조언자였다.

가우납은 땅딸막하고 추악한 반면 프라프타르는 인상이 훨씬 우아했다. 날씬하고 창백한 데다 훌쩍 큰 키에 얼굴 표정과 몸짓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가우납의 추악합과 비교한다면 프리프타르는 상이 좋았다. 다른 환경에서라면 데몬 같은 골상에 매부리코, 뻐드렁니로 진짜 허수아비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연금술사와 의사와 엔지니어들은 황급히 실험실과 작업장으로 돌아가서 이 날 이 때까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과제에 매달렸다. 장군의 요구는 미친 짓이었다. 투명인간을 만들거나 금을 만드는 기계를 조립해내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러 달 작업에 몰두했다. 밤낮 없이, 온 힘과 정력을 다해. 누구도 그토록 죽기 살기로 일해 본 적은 없었다.

짹깍짹깍 장군이 정기적으로 작업장과 실험실에 들르는 것도 효과가 있었다.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풀기 위해 사력을 다하도록 하는 데 충분했고, 피로를 지칠 줄 모르는 열성과 바꾸기에 족했다. 반년이 지나자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이루어졌다. 구리처녀가 완성되자 짹깍짹깍 장군은 대만족이엇다.

 



루모는 둘 앞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숨바꼭질하듯이 돌로 된 거대한 줄기 뒤에 숨었다가 살그머니 다가가고 다시 숨었다가 다가가는 식이었다. 그는 칼을 들고 기둥 사이에 튀어나와 두 방랑객의 길을 가로마고 섰다.

그들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하기야 루모도 적잖이 놀랐다. 둘의 생김새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족속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쪽은 키가 루모의 가슴에 오는 정도였다. 호리호리하고 알비노처럼 하얀 피부에 머리에는 뿔이 두 개 달렸다. 야릇한 검은 옷에 앙상한 나무 창을 들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팔린 발터 뫼르스Walter Moers 의 작품들 중에서도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들녘 출간)은 더 특별하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독자들이 확인했듯이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상상력이다. 차모니아 대륙뿐 아니라 수많은 도시들, 족속들은 어느 전설이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작가의 끝없는 상상력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각 도시의 전설과 유래, 각 족속의 독특한 캐릭터까지 완벽하게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안개에 둘러싸인 네벨하임을 묘사한 부분이나, 완전히 우매하지는 않은 계급과 아주 우매한 계급으로 나누는 블루트쉰크들의 계급 구분법, 지하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우납 왕가의 이야기나 어미죽에서 태어나는 호문켈의 탄생 과정을 읽다보면 그 생생함과 세밀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나 족속들만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과학적인 상상력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문학을 상상력의 기반으로 삼았다면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은 과학적인 상상력의 토대 위에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뭇잎을 들추면 작은, 아주 작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도시가 나온다. 콜리브릴 박사는 그곳의 주민들을 비존재의 미세존재라 부르고, 그들의 과학적인 성과물을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한다.

스마이크는 박사의 머릿속으로 공간 이동을 해 비존재의 마이크로머신을 불러낸다. 비존재의 미세존재는 이 마이크로머신을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쓰기 위해 만든 걸까? 마지막 부분에 가면 이 기계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발터 뵈르스 특유의 유머도 한층 돋보인다. 스마이크가 비존재의 미세존재의 마이크로머신을 작동시키기 위해 가르릉 거리고 긁어주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강력한 전사이지만 헤엄을 못 치는 볼퍼팅어들이 헤엄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랄라에게 보내는 경의는 그야말로 커다란 웃음으로만 읽어낼 수 있다. 지하세계의 왕 가우납은 말을 뒤죽박죽해서 그가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말을 알아듣는 자가 그의 총애를 받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상상력과 유머만 돋보이는 건 아니다. 이 책에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다. 강에 뛰어든 랄라를 구하기 위해 헤엄도 못 치면서 무작정 물로 뛰어든 루모의 애틋한 사랑은 지하제국으로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 선 랄라에 대한 복수로까지 이어진다.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 친구 간의 따뜻한 애정도 곳곳에 배어 있다. 그리고 평범한 나무로 자라다가 누르넨 숲 전투에서 사형대가 된 위그드라질이 루모에게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독자들의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네가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걸 내가 부러워한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그건 허무한 거야. 내 철학으로는 모든 생명체는 나무야, 알겠니? 누구나 언젠가는 뿌리를 내리게 되지.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거야. 그러면 너도 나이테가 쌓이고 나이가 들고 퉁퉁해질거야. 나처럼 말이야."

무한한 상상력으로 창조된 루모의 세계가 허황한 판타지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발터 뫼르스의 이런 인생철학 때문이다. 수많은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내면서도 저자는 인간적인 열망과 욕구, 사랑, 그리고 인생에 관한 성찰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발터 뫼르스 Walter Moers









 1957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출생했다. 고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이후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해 만화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그림과 함께 소설, 어린이 책, 시나리오 등을 쓰기 시작했다. 독일 작가 중에서 최근 10여 년간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독일 영국 프랑스 한국 등 14개 국에서 출판돼 1,0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차모니아라는 상상의 대륙을 무대로 해서 쓴 <푸른곰 선장의13과 1/2 인생>, <엔젤과 크레테>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후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잇달아 발표해 세계 독서계를 놀라게 했다.

뫼르스는 인터뷰와 사진 찍기를 극도로 혐오하는 등 괴팍한 성격과 베일에 싸인 사생활로도 유명하다.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기 이전인 1990년대에 만화 <작은 똥구멍>,<아돌프 - 나치새끼> 등으로 선풍을 일으키며 '막스와 모리츠 상' '아돌프 - 그리메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푸른곰>으로 독일 청소년 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푸른곰 선장>에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까지 차모니아를 무대로 한 4부작은 2008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뫼르스도 대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dam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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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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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얼핏 설명만 보고는 다소 무거워보였다. 게다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재교육을 받기 위해 산골 벽지로 떠난 소년이라는 것은 그런 내 걱정에 더 무게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렵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안고 만난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혹, 제목이 마음에 안 들거나 이상스럽게 책에 손이 안가서 미뤄두고 있는 독자라면 주저없이 집어들 것을 권하고 싶었다.

  책의 제목으로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체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서도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보다는 '뤄와 나'라는 똥지게를 메고 산골을 누비는 두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 삶에서 그들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영화를 보고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 뿐. 그들은 너무도 피곤하고,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생활 속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 우연히 이웃마을에 재교육을 받으러 온 '안경잡이'에게 문학서들이 있는 것을 알게된 소년들은 안경잡이가 부모의 곁으로 돌아갈 때 몰래 그 서적꾸러미를 훔치게 되고 문학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발자크, 위고, 스탕달, 뒤마, 롤랑, 루소 등의 작가들. 그들은 문학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바느질 소녀. 그녀와 두 소년의 관계도 시작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느질 소녀'일지도 모른다. 비록 글이라곤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것이 다였지만 그녀는 발자크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해 눈을 뜬다. 애초에 뤄는 발자크 소설을 통해 그녀를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보려했던 것이니 그의 그런 의도는 적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발자크 때문에 깨닫게 된 그녀는 훌쩍 산골마을을 떠나버린다. 새로운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발길을 내딛은 것. 그녀 스스로 그동안의 갇힌 삶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결심을 한 것은 분명 문학이 주는 어떤 힘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이리라.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발상의 혁명. 그 속에서 살아간 인물들의 어떤 비애(혹은 절망)를 약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문학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문학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회의 관계. 그런 것이야 말로 문학의 근본이고 문학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얇고 무겁지 않은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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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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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난 삼아 연애한다는 기분으로 그 책을 대강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그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대개 재치가 넘치고, 때로는 재미있는 사상으로 구성되거나 깜짝 놀랄 정도로 기발해서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단편집들이었다. 나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장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비속함도 없이 철저한 개인주의를 그린 <장크리스토프>는 내게 새롭고 유익한 사실들을 듬뿍 가르쳐주었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개인주의라는 것이 그토록 탁월하고 폭넓은 것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둑질을 해서 <장크리스토프>와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재교육까지 받은 나의 빈약한 머리로는 한 개인이 전세계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장난 삼아 시작한 연애가 위대한 사랑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사용한 과장된 허풍조차 작품의 아름다움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수백 페이지의 거친 강물이 나를 집어삼켰다. 내게 있어서 그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책이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침범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삶도, 세상도 더 이상 이전의 것과 같지 않았다. -152~3쪽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소설의 구조, 복수의 주제를 얽어놓은 짜임새, 확고하고 교묘하면서도 대담한 솜씨로 결론을 끌어내는 복선에 이르기까지 소설가의 기교를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어 내심 몹시 놀랐다. 그것은 유쾌한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멋진 등걸, 무성한 나뭇가지, 굵직한 뿌리를 드러낸 채 땅에 누운 뿌리 뽑힌 거목을 보는 것과 같았다. -172쪽

감옥에 갇히시기 전에 아버지께서, 춤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거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어. 그 말씀이 맞아. 다이빙이나 시를 쓰는 일도 춤처럼 혼자서 터득하는 거야. 아무리 평생 훈련해도 열매처럼 가뿐히 낙하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공중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질 뿐이라구.-193~4쪽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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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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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박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경우에는 모든 게 끝장이리라. 온니 렐로넨의 지금까지 수십 억번에 달하는 심장 박동은 전부 부질없는 짓이 되리라. 죽음은 원래 그런 것이다. 해마다 수천 명의 핀란드 남자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 가운데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12쪽

죽음의 문턱에 서보았던 사람만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진정으로 뭘 의미하는지 깨닫는 법이다. -28쪽

심문받는 사람은 마치 양파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심문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었다. 거짓말의 껍질의 벗기고 나면 순백색의 진실이 드러나고, 양파 껍질을 벗기면 몸에 좋고 맛 좋은 양파 살이 모습을 나타낸다. 두 경우 모두 껍질을 벗기는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삶은 그런 것이다. -3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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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6-1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좋은 책이죠^^

이매지 2006-06-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구요^^ 전 내심 좀 진지하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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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만나보는 핀란드 작가라는 점도 내 관심을 끌었지만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제목도 눈에 띄어서 접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에서 얼핏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이 책은 '자살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우연히 같은 장소를 자살을 위해 찾은 두 남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자신들과 비슷한 고통을 나누고 있는 동지들을 찾아 함께 자살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리고 신문에 자살단 모집 공고를 내게 되고 6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답장을 받고 급기야 그들을 위한 세미나까지 개최하게 된다. 그리고 결성된 자살단 멤버들. 그들의 괴상한 자살여행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헬싱키에서 핀란드 끝에 위치한 노르카프를 거쳐 스위스를 거쳐 포르투갈에 위치한 세인트 빈센트 곶에까지 이른다. 과연 자살단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쉽사리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나라 핀란드. 그나마 우리가 접한 핀란드의 모습은 "휘바휘바"와 같은 말을 하는 자일리톨 껌 선전에서 본 것이 거의 다 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핀란드는 '비애, 한없는 무관심, 우울증이 이 불행한 민족을 짓누른다. 천 년의 세월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굴복당했으며, 그들의 영혼은 음울하고 진지하다. 그 결과는 아주 파괴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생각한다.'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 자일리톨 CF에서 보았던 밝은 이미지는 온데가고 없고 오직 이 책 속의 핀란드는 부족한 햇빛때문인지 어두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렇기때문에 삶의 벼랑 끝으로 몰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그럴법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책 초반에 등장하는 성 요한절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살과 동떨어져보이지만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굳이 핀란드같이 환경의 영향때문이라도 이유를 돌리지 않고도 우리는 요즘들어 부쩍 쉽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도 핀란드에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처럼 저마다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려한다. 요컨대, 인간의 삶의 고통이라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런 공통적인 요소들때문인지 다소 어려운 이름들의 등장인물이 등장했지만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사실 자살이라는 소재는 가볍게 다루기엔 다소 무거운 주제이긴 하다. 하지만 아르토 파실린나라는 이 작가는 이런 주제를 생각보다 가볍게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어차피 남은 것이 죽음밖에 없는 그들이기에 도리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게 되어버린 것.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의 위험을 겪게 되지만 그때마다 '그래봐야 죽는 거 말고는 위험한 게 없잖아'라는 생각으로 밀고 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그저 웃으며 볼 수 밖에. 하지만 또 자신들의 죽음을 알콜 중독으로 죽거나 온 몸에 멍이 든 채로 죽는 것은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택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자살에 대한 나름대로의 굳은 다짐이랄까 그런게 엿보여서 익살스러웠다. 너무 재미있어서 배꼽을 잡고 뒹굴거리는 그런 웃음이 아니라 대화나 상황이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하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30여명의 자살단들은 도리어 서로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삶의 즐거움에 대해 다시금 눈을 뜨게 된다. 결국 자살의 최종장소로 결정된 세인트 빈센트 곶에서 그들은 계속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생기기까지 한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소소한 행복, 삶의 희망을 찾게 된 것. 물론, 그 전에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기에 그들이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자신의 삶을 이해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애초에 자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 홀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한 번쯤 관심의 손길, 이해의 손길을 내밀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 익살스러운 자살단처럼 자살을 위해 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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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6-1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오타 지적하고 갑니다. 둘째 문단 셋째줄, "구볼당했으며"

이매지 2006-06-1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했습니다 :D

프레이야 2006-06-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속엔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고 하죠^^ 멋진 리븁니다~

이매지 2006-06-23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쑥쓰럽사와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정말 죽으려는 마음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그러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세실 2006-06-2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매지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