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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4부와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 나왔던 미즈노 리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순서상으로 본다면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와 이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먼저 <보리의->를 보고 읽으면 좋을 듯싶다. 물론 역자의 경우에는 이 책을 먼저 읽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을 듯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순서대로 읽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자신을 부모처럼 키워준 할머니의 죽음. 할머니는 유언으로 미즈노 리세가 반년 이상 이곳(할머니의 집, 일명 백합장)에 살지 않는 한 집을 처분해서 안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유산을 물려준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집에 와서 반년 이상 살라는 유언은 다소 이상했지만 영국에서 유학중이던 미즈노 리세는 일본 학교로 편입이라는 번거로운 절차가 있음에도 선뜻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 곳에서 할머니의 의붓딸인 리나코와 리야코와 함께 살게 된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들 자매와 함께 살며 리세는 왜 할머니는 자신을 일본으로 불러들인 것인지, 할머니와의 편지에서 주피터라 언급한 것은 과연 무엇인지, 할머니는 정말 사고로 돌아가신 것인지, 마녀의 집은 누가 지은 것인지 등등의 다양한 궁금증을 백합향을 맡으며 풀어가기 시작한다.
동네사람들에겐 '마녀의 집'이라 불리는 집. 한편으론 집 안과 밖에는 백합이 가득 있어 백합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치 마녀처럼 남자들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할머니가 비밀로 한 것은 과연 무엇인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이 책에서는 그려진다. 꽤 다양한 수수께끼를 가진 책이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아 궁금증만 더해가다가 마지막 약 50페이지 정도를 남기고 그 모든 수수께끼는 스스륵 풀린다. 짙은 백합향기, 그리고 감추고 싶었던 비밀. 그 모든 것이 풀리고 난 뒤에는 왠지 모를 허망함이 찾아온다. 겹겹의 복선과 반전이 이어지기 때문에 조금은 복잡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정체를 모르는 것을 접하는 것은 등장인물도, 독자도 같은 입장이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소설이긴 하지만 마치 연극같은 소설이라 인물의 행동에 주목하게 됐다. 왜 그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 행동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인물의 성격은 무엇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이 속고 속이는 스파이 게임처럼 진행된다. 백합장이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이 책도 뭔가 음침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주는 듯 했다. 이 책에 대한 속편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속편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과연 그들은 그 사건 이후 어떻게 생활하게 될까? 리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묘한 궁금증만 더 남긴 채 스르륵 끝나 아쉬웠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