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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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덩어리로 뭉쳐진 기억이다. 몇 년 전의 12월과 1월을 도대체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겠는가. 12월 겨울과 1월 겨울의 차이점은 거의 없다. 12월과 1월은 나의 손바닥과 같다. 두 개의 손바닥은 분명 다르게 생겼지만 손을 맞대어보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왼손에는 흉터가 있고 오른 손에는 없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고 1월에는 없고... 그 차이다. -12쪽

살다보면 기억의 줄기 한가운데 검은 테이프를 붙여놓은 것처럼 깜깜한 시기가 있는데 내게는 그때가 그랬다. 무너져버린 제방을 밟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 빨라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의 삶 역시 가속도가 붙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스무 살 무렵은 더디고 더디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기 시작하면 도무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언덕 아래로 사정없이 미끄러지다가 쾅, 하고 박살나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선 어쨌거나 조금은 가벼워야 할 필요가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36~7쪽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어머니의 실체가 갑자기 생생해졌다. 어머니의 살가죽을 닮은 표면을 만지고서야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한심했다. 어째서 기억이라는 것은 매개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온전하게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무 조각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머니 손득의 감촉조차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78쪽

오차와 오류는 어디에나 있다. 지도에도 있고, 자동차에도 있고, 사전에도 있고, 전화기에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다. 없다면 그건, 뭐랄까, 인간적이지 않은 것이다. -80쪽

인간들의 믿음이란 정보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의사는 돈이 많을 것이라는 이미지, 변호사는 말을 잘할 것이라는 이미지, 소설가는 담배를 많이 피울 것이라는 이미지, 해커는 지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 인간들은 그런 이미지를 자신의 머리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이 모여 정보가 된다. 나는 그런 잘못을 정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그 이미지를 이용할 뿐이다. -116쪽

의사는 언제나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의학 공부를 해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의과대학 1학년 첫 시간의 교재 첫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을 것 같다. '언제나 얼버무려라. 만약 계속 질문을 던지는 환자가 있다면 마취시켜라'-181쪽

자전거란 인생을 닮아있었다. 뒤로 갈 수 없는, 뭐랄까 전진할 수밖에 없는 삶의 비애랄까. 뭐 그런 게 닮지 않았나싶다. 물론 이런 얘기를 B에게 했더라면 "웃기지마. 그냥 뒤로 가지 못하는 게 좋을 뿐이야. 인생이나 뭐 그런 것과 비교하진 말라고"라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하긴, 인생이나 뭐 그런 구차한 것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한쪽 방향으로밖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긴 한다. 페달을 뒤로 밟는다고 해서 자전거가 뒤로 가는 것은 아니다. 뒤로 갈 필요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런게 인생이 아닌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20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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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절판


한 여성이 남성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에 평생 동안 몇 년을 허비하는지 알아내는 일에 누군가가 한번쯤은, 수고해볼 만하다. 분명히 오 년은 될 거다. 혹은 십 년. 그러면서 여자들은 점점 늙어간다. 인상을 쓰게 되고, 그러면 양미간에 보기 싫은 주름이 생기게 된다. -7~8쪽

남자와 여자의 중요한 차이는, '남자들은 여자들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기다리는 대신에 다른 어떤 일인가를 한다. <란>(ran, 축구 전문 프로그램)을 보고, 에이즈 퇴치제를 개발하고, 금발 여자와 약속을 하고 <파츠>(Faz,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의 약자)에 난 주식 시세를 읽고, 근육 트레이닝을 한다. 아니면 그 비슷한 일들을 한다. 그런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그런 일을 기다림으로부터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런 일을 그냥 하고 싶어서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그래서 남자들은 절대로 첫번째 벨이 울릴 때 전화를 받지 않으며, 목소리는 항상 마치 어떤 일을 하고 있는 데 방해를 받은 것처럼 들린다. -8~9쪽

나는 집이란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 대단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기를 읽는 것처럼 집을 살펴본다. -30쪽

남자들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여성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기 말에 귀기울이는 여성은 모두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음과 같은 두 문장만을 말하면 된다.
1) 그 점에 대해서 계속 설명해봐요. 아주 재미있거든요.
2) 아, 그건 모르고 있었어요. -34쪽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에게 매혹적으로 보여야 하는 일은, 일종의 마케팅이다. 당신이 앞으로 언젠가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실제의 당신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일정한 게임 규칙을 준수해서 2회전을 위한 자격을 얻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게임 규칙 중 하나는 아주 분명하다. 첫번째 섹스 후에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절대로 전화를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 된다. 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 -76쪽

빅 짐과 나는 독특한 관계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걸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남게 되는 걸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싱글로 지내는 일은, 함께 독신생활에 관한 전문적인 지리한 수다를 떨고 함께 한탄하고 환호할 수 있는 싱글 친구들이 있는 한, 절대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싱글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어쩌면 언젠가는 혼자만 남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진짜 더 이상 재미가 없다. -79~80쪽

나는 아이들을 어쨌든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너무 직설적이다. 그들은 몹시 뻔뻔스럽게 말을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제대로 대처를 할 수가 없다. -121쪽

만약 사람들에게 서른 살이 넘은 여자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마치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막 고백한 사람을 쳐다보기라도 하듯이 짠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러곤 "아, 맞는 사람을 또 다시 찾을 거야"라고 말한다. 아니면 "세상에 널린 게 남자지!"라고 하거나, "너 같은 여자라면 그렇게 오래 혼자 있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은 약간 다르게 한다. -122~3쪽

한 여성의 삶에서 가장 흥분된 시간들을 잠정적인 은밀한 마무리에 대한 기대를 동반하고 있는 데이트를 준비하는 시간들이다. 섹스 자체에는 정말로 그와 반대로 종종 긴장이 사라져 있다. -130쪽

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이미 며칠 전에 요한나와 함께 여러 번 옷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한 후 마침내 해결을 해놓은 상태다. 섹시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워서는 안 된다. 우아해야 하지만 과도한 치장은 안 된다. 몇 번의 손놀림으로 벗을 수 있어야 하지만 너무 달라붙어서는 안 된다. 최고로 고조된 황홀한 순간에 청바지가 벗겨지지 않거나, 아니면 옷을 벗었을 때 마치 며칠 전에 상대방 첩보원에게 고문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더 고약한 경우는 없다. 꽉 조이는 옷, 너무 붙는 속옷은 몸 전체에 흉하게 피멍 든 줄무늬 자국을 남긴다. 바지 단추가 배꼽 아래에 뚜렷한 눌림 자국을 남겨도 분위기가 역시 식는다. -132쪽

내 경험에 따르면, 고정 장치가 없는 스타킹은 역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거처가 불안하게 움직인다. 가자기 발목으로 흘러내리든지, 아니면 혈액 순환을 막을 정도로, 그렇지 않아도 문제 영역인 허벅지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곤 한다. -133쪽

대부분의 커플들은 더 나은 사람에 대한 발견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냥 같이 있는거야. 아니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더 나은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의 시간을 둘이서 메우고 있거나. -19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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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구리 슌과 나리미야 히로키가 등장하는지라 선택하게 된 드라마. 이 외에 야마삐나 얼마 전 본 김전일에서 미유키로 나왔던 스즈키 안, 아라시의 멤버인 니노미야 카즈나리 등 젊은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어서 풋풋함이 느껴졌던 드라마.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봤던 드라마인데 고등학생의 동정 탈출기라는 자칫 선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소재를 잘 풀어가고 있는 듯. 

 

 수줍음이 많고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있는 쇼헤이.(일명 쇼군) 유일하게 여자친구가 있으나 진도는 영 지지부진한 철도매니아 켄고(일명 켄켄), 어린시절부터 여자들의 팬티를 보는 것을 즐겨서 변태 취급을 받았던 우다가와(일명 우다양), 축구선수로 제법 멋지지만 여자 앞에만 가면 마음과 다르게 헛소리만 지껄이는 코지(일명 코-군) 어린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 뿐만 아니라 전교에서 아직 동정딱지를 떼지 못한 4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때문에 LAST4라고 놀림받는 그들. 여름방학동안 기필코 섹스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때부터 어떻게든 한 번 해보려고 기를 쓰는데... 그러던 중 그들 앞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첫사랑인 치에. 공주처럼 떠받들었던 그녀였지만 11년 만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 털털해서 여자다움은 찾아볼 수 없다. 치에와 LAST4의 여름은 어떻게 흘러갈런지...

  일본에서는 연소자관람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로 비춰볼 때 19세 딱지가 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드라마는 솔직하게 고등학생들의 성의식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흔히 일본하면 성에 있어서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의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식이 첫경험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별별 수를 다 써가며 막는다. 물론, 그 와중에 육체적으로 성숙했는데 너무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그들의 행동을 인정(?)해주려는 부모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단순히 누구라도 좋으니 동정만 뗄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가며 진짜 첫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과정이 다소 뻔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우연히 미팅에서 만난 여자와 모텔에 갔지만 도중에 포기한 켄켄의 이야기를 듣고 남친님은 굴러들어온 걸 왜 걷어차냐고 하더라-_-) 전체적으로 청소년들의 성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다루고 있는 듯 싶었다. 다만 일본의 청소년과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사이에 갭이 있는 것 같아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보기엔 다소 공감이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캐스팅때문에 보게 된 드라마인데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드라마가 아니었나싶다. 매 회마다 코믹한 부분이 있어서 그야말로 포복절도하면서 봤던 드라마. 동정보이즈의 아지트가 켄켄네 엄마가 운영하는 러브호텔인지라 다소 민망한(?) 소리도 들리고, 마지막편에서는 수녀님의 슴가노출도 등장해서 어찌보면 밖에서 보기엔 살짝 민망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무난히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건 절대 방송불가가 될 지도 모르겠다만) 배경이 여름인지라 여름방학 때 보면 좋을 것 같은 드라마. 방학이 아니라면 휴가에라도. 독특한 학원물(?) 성장물(?)인지라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시기에 좋을 듯 싶었다. 남자분들이 보시면 자신의 동정 졸업과 관련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고, 여자분들이 보기엔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 알 수 있을 듯. (나야 뭐 왜 그렇게 하고 싶어하나라고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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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제목만 봐서는 크게 끌리지 않는 드라마였는데 어쩌다가 받아놓고는 받아놓은 드라마 중 가장 짧다는 이유로(총 9화) 하드 용량이나 줄여볼까하고 보게 된 드라마였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보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와 감동이 있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10년 전, 402편 비행기가 공중에서 사라져버린다. 한 달이 넘게 수색을 했지만 비행기 잔해도, 유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아 결국 전원 사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본부는 해체된다. 다만 물리학자인 카토만이 이론적으로 볼 때 그들은 시간의 비틀림 때문에 사라진 것이라 모두 살아서 언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모 홈페이지에 카토의 이론이 402편 항공기가 나타날 것이라는 류의 글이 뜨자 유족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판단한 항공사는 조사본부의 유족 담당자였던 야스코를 출장보낸다. 별 의욕없이 살아가던 야스코는 도착하마자마자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카토 교수의 말대로 10년 전 모습 그대로 402편 항공기가 도착해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402편에 타고 있는 절친한 친구였던 객실 승무원 아키와 애인인 테츠야와 재회한 야스코. 402편에 타고 있던 승객들의 적응을 위해 그녀는 발로 뛰기 시작하고, 잃었던 삶의 의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402편 항공기는 열흘남짓 후 다시 사라지게 되는데...

  40대가 다 되어가는 야스코. 10년 전에는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아키와 함께 온갖 유행을 따라했던 그녀지만, 이제는 그저 곧 나올 연금만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별 사건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10년 전 모습 그대로 친구와 애인이 돌아온다. 처음에는 그들을 의욕없이 대했던 그녀지만 승객들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발로 뛰면서 잃었던 자신을 찾아간다. 드라마는 그렇게 승객들의 소원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 '10년 전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0년 전 사랑했던 그 사람을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와 같은 류의 우정, 사랑, 믿음, 열정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 물음을 통해 스스로 나의 10년 전, 그리고 10년 후의 인생,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방영당시 시청률은 썩 좋지 않았던 드라마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소중한 드라마가 아닐까 싶었다. 설정 자체는 다소 공상만화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에 대해 다루고 있어 현실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와 애인을 10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그 행복이 겨우 10일 남짓한 시간 뿐이라면 신은 왜 대체 그들을 다시 되돌려 보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어차피 모두 정해져있는 일을 굳이 주사위를 던져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터. 하지만 우리 인간은 주사위를 던지며 살아간다. 그렇게 작은 선택 하나 하나가 쌓여 10년이라는 세월을, 한 인간의 삶을 움직인다. 모든 일이 정해져있는 신보다 어쩌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인간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봐야 신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다시 돌아갈 날이 다가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오히려 10년 뒤에 나타나서 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그들이 돌아온 것은 신의 장난이 아니라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준 작은 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하면서 코믹하고, 따뜻하고 감동이 있던 드라마.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안겨줬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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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7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이 마음에 드는데요. 소재도 괜찮고. 창의적입니다.^^

이매지 2007-09-27 12:58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한 번 보세요^^
나름대로 괜찮아서 전 저 여배우가 등장하는 다른 드라마도 보려구요^^
일본에서는 나름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은 여배우라고 하던데
이 드라마보니까 저도 막 좋아지더라구요 ㅎㅎㅎ
 

 기무라 타쿠야의 드라마는 뭘 선택해도 중간 이상은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별다른 고민없이 그의 드라마를 고르곤 한다. 이 드라마 역시 썩 재미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기무타쿠를 믿고 보게 됐는데 역시나 재미있었다. 기무타쿠도 좋았지만 여주인공이었던 야마구치 토모코도 인상적이었다. 약 10년 전 드라마라 촌스러운 느낌은 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촌스러움이 더 좋은 인상을 남긴 듯. 

  신부복을 입고 달리는 한 여자(미나미)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드라마. 그 여자는 열심히 달려 한 맨션에 도착한다. 결혼식 날 시간이 다 되도록 약혼자가 오지 않자 직접 찾으러 나온 것. 하지만 맨션에 도착하니 약혼자는 보이지 않고 그의 룸메이트 세나만 있을 뿐.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했지만 나름 미나미를 토닥여 다시 식장으로 돌려 보낸 세나. 그 둘의 인연은 거기서 끝인가 싶었지만, 오갈데 없는 미나미가 세나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하면서(살던 곳에서 방도 뺐고, 돈도 없고, 도망간 약혼자가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얹혀살게 된다.) 이야기는 진행된다. 왈가닥같지만 속은 여린 미나미와 소극적인 성격의 세나. 서로 맞지 않는 듯한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 

  모델 일을 하고 있었던 미나미는 나이가 많아지자 일도 떨어져 반백수상태고,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는 세나는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현재는 피아노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에 대해 그럴싸하게 포장을 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의 현실을 알게 되고, 묘한 동지애(?)도 느낀다. 조급해하는 미나미에게 세나는 "뭘 해도 소용없을 땐 신이 주신 긴 휴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리하게 달릴 필요도 없고, 초조해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때가 되면 좋아진다"라고 토닥여준다. 긴 휴가 중에 만난 두 사람. 그리고 서서히 상승해가는 두 사람의 인생이 느긋하게 그려진 듯 싶다. 

  피아노를 치는 세나의 모습을 보며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중반에 세나와 미나미의 키스신을 보면서 그 어떤 드라마의 키스신보다 더 두근두근했다. 불꽃놀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불꽃놀이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고보면 일드에는 불꽃놀이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듯.) 두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미나미의 동생으로 나온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좋았고(애니멀 신지라 불릴만큼 뭔가 본능적인 느낌으로 등장하는 역할) 세나가 짝사랑하는 후배나 미나미의 모델 후배 등 조연배우들도 좋았다. 일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드라마까지 따져봐도 트렌디 드라마의 원조가 아닐까 싶었다. 트랜디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기무타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드라마, 일드를 이제 갓 시작하는 분들이 봐도 좋을 듯 싶었다. 화면도, ost도 좋았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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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9-2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롱바케는 다시 봐도 좋은 드라마죠. 왠지 기억에 아릿하게 남는. 대사도 좋고 노래도 좋고.

이매지 2007-09-27 12:56   좋아요 0 | URL
나중에 또 보고 싶더군요 ㅎㅎ
내용이야 뭐 뻔한 거지만 그래도 ㅎㅎ
그나저나 기무타쿠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헤어스타일 ㅎㅎ

미미달 2007-09-2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드라마 ㅋㅋㅋㅋ
책도 있었는데 말이죠.

이매지 2007-09-28 22:11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봤던 것 같아요.
롱 버케이션이었나 뭐 그런 책 ㅎ 2권짜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