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 타쿠야의 드라마는 뭘 선택해도 중간 이상은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별다른 고민없이 그의 드라마를 고르곤 한다. 이 드라마 역시 썩 재미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기무타쿠를 믿고 보게 됐는데 역시나 재미있었다. 기무타쿠도 좋았지만 여주인공이었던 야마구치 토모코도 인상적이었다. 약 10년 전 드라마라 촌스러운 느낌은 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촌스러움이 더 좋은 인상을 남긴 듯.
신부복을 입고 달리는 한 여자(미나미)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드라마. 그 여자는 열심히 달려 한 맨션에 도착한다. 결혼식 날 시간이 다 되도록 약혼자가 오지 않자 직접 찾으러 나온 것. 하지만 맨션에 도착하니 약혼자는 보이지 않고 그의 룸메이트 세나만 있을 뿐.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했지만 나름 미나미를 토닥여 다시 식장으로 돌려 보낸 세나. 그 둘의 인연은 거기서 끝인가 싶었지만, 오갈데 없는 미나미가 세나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하면서(살던 곳에서 방도 뺐고, 돈도 없고, 도망간 약혼자가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얹혀살게 된다.) 이야기는 진행된다. 왈가닥같지만 속은 여린 미나미와 소극적인 성격의 세나. 서로 맞지 않는 듯한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
모델 일을 하고 있었던 미나미는 나이가 많아지자 일도 떨어져 반백수상태고,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는 세나는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현재는 피아노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에 대해 그럴싸하게 포장을 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의 현실을 알게 되고, 묘한 동지애(?)도 느낀다. 조급해하는 미나미에게 세나는 "뭘 해도 소용없을 땐 신이 주신 긴 휴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리하게 달릴 필요도 없고, 초조해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때가 되면 좋아진다"라고 토닥여준다. 긴 휴가 중에 만난 두 사람. 그리고 서서히 상승해가는 두 사람의 인생이 느긋하게 그려진 듯 싶다.
피아노를 치는 세나의 모습을 보며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중반에 세나와 미나미의 키스신을 보면서 그 어떤 드라마의 키스신보다 더 두근두근했다. 불꽃놀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불꽃놀이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고보면 일드에는 불꽃놀이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듯.) 두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미나미의 동생으로 나온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좋았고(애니멀 신지라 불릴만큼 뭔가 본능적인 느낌으로 등장하는 역할) 세나가 짝사랑하는 후배나 미나미의 모델 후배 등 조연배우들도 좋았다. 일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드라마까지 따져봐도 트렌디 드라마의 원조가 아닐까 싶었다. 트랜디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기무타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드라마, 일드를 이제 갓 시작하는 분들이 봐도 좋을 듯 싶었다. 화면도, ost도 좋았던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