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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바에 있다 ㅣ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1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홋카이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러브레터>다. 첫 장면인 장례식 장면부터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오겡끼데스까"까지 <러브레터>의 배경에는 눈이 하염없이 날린다. 당연히 홋카이도도 여느 도시처럼 사람 사는 곳이건만 <러브레터>의 이미지 때문인지 나에게 홋카이도는 범죄 같은 어둠 없이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순수한 사랑만이 남은 순백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어쩐지 동화 속의 도시 같다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오해를 이 스스키노 시리즈가 유쾌하게 깨부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닌 '알코올 의존증'인 '나'. 여느 날처럼 스스키노의 바 '켈러 오하타'에서 위장약을 털어넣은 뒤 술을 벗삼아 밤에 젖어들려는 차에 누군가 '나'의 성씨에 '선배'라는 "뒷맛 나쁜 단어를 붙여" 불렀다. 평범하게 생긴 대학생인 그는 동거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나'에게 여자친구의 행방을 찾아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별로 흥미가 동하는 의뢰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동정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조사. 하지만 단서를 쫓다 보니 얼마 전 한 모텔에서 있었던 살인사건과의 접점이 떠오른다. 이에 나는 처음의 마음가짐과 달리 진지하게 후배의 여자친구를 찾기 시작하고 살인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실질적인 정의는 차치하고 하드보일드 하면 비정한 도시에서의 사건, 그리고 진지하게 폼잡는 탐정, 건조한 서술방식 같은 키워드가 떠오른다. 하지만 <탐정은 바에 있다>는 여느 하드보일드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떠올리는 하드보일드 키워드에 플러스알파로 '유머'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올해도 스물여덟 늙은이"인, "언뜻 보면 야쿠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주로 바에서 술을 마시고 오셀로게임이 소소한 부수입인 주인공의 캐릭터부터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대놓고 쉴새없이 웃기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볼 때는 너무 진지한 캐릭터인데 알고 보면 허당이라 그 간극에서 오는 매력과 웃음이 있다. 내가 갭모에라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 '나'에 홀딱 반해버렸다. 마음이 드는 사람이 아무리 시덥잖은 농담을 해도 실없이 터지는 것처럼 나는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빵빵 텨저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사건 자체는 우연적이고, 이야기의 얼개도 좀 산만한 면이 있지만 그런 스토리의 아쉬움을 '나'란 캐릭터의 힘으로 모두 커버해낸다. 물론 탄탄한 개별 사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캐릭터가 힘있게 자리매김한 시리즈가 롱런 하는 걸 보면 '스스키노 시리즈'도 꽤 나왔겠구나 싶었는데 2011년까지 총 12편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국내에도 이미 세 권의 책이 출간되었으니 앞으로 몇 번 더 '나'와 스스키노 거리를 누빌 수 있을 듯해 기뻤다. 스토리 외에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을 꼽자면, '나'는 줄창 마시는데 소설 밖에 나는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책을 읽어 힘들었다. 다음 권인 <바에 걸려온 전화>는 맥주를 구비해놓고 함께 마시면서 스스키노 거리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