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품절


그가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한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7쪽

언제나 물건들, 잊힌 소지품들, <버려진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 그가 찍어 온 사진은 수천 장에 달했다. 나날이 늘어 가는 그의 자료 보관소에는 책과 신발, 유화, 피아노와 토스터, 인형, 다기 세트, 더러운 양말 짝, 텔레비전, 보드게임, 파티복, 테니스 라켓, 소파, 실크 속옷, 코킹 건, 압정, 플라스틱 캐릭터 인형, 립스틱, 라이플 총, 색 바랜 매트리스, 포크와 나이프, 포커 칩, 우표첩, 새장 바닥에 널브러진 죽은 카나리아 시체 따위의 사진이 있었다. 왜 이런 사진들을 굳이 찍으려 하는지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는 헛된 짓인 줄은 알지만,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물건들이 자기를 부르며 이제 그곳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 오고 내다 버려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아 달라고 애원하는 듯이 느껴졌다. -9쪽

그가 필라에게 반한 것은 그녀의 육체 때문도, 정신 때문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뭘까? 모든 것이 그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무엇이 그를 여기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 어쩌면 필라가 그를 바라보는 눈길, 그 강렬한 시선, 그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완전히 넋을 잃고 몰입한 눈빛, 그들이 함께 있을 때면 그녀가 온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느낌, 지구상에서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은 오직 그 하나밖에 없다는 듯한 그런 느낌 때문일지도 몰랐다. -18쪽

빙은 지금 브루클린의 선셋 파크라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했다. 8월 중순 몇몇 사람들과 함께 그린우드 묘지 맞은편 거리의 조그만 버려진 집에 들어가 무단 점거하고 살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전기와 난방은 그대로 쓸 수 있었다. 물론 언제고 상황은 바뀔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뭔가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모양이었다. 가스 회사도 전력 회사도 서비스를 끊으러 온 적이 없었다. 앞일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강제로 쫓겨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일어났지만 시가 경제 불황의 압박을 못 이겨 일자리를 많이 삭감한 덕에 선셋 파크의 작은 무리들은 시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있는 듯했다. 연방 보안관도 집행관도 그들을 쫓아내러 오지 않았다. 빙은 마일스가 변화를 찾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룹의 원래 멤버 중 한 명이 최근에 도시를 떠나게 되어서 그가 원한다면 그 방에 들어와도 좋다고 했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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