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새해에는 새로운 책으로 시작해야 제맛이지만 어쩌다보니 작년 말부터 읽던 책을 1년이 넘게 읽는 셈이 되어버렸다.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는 다소 독특한 장르에 이끌려 두께의 압박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읽기 시작한 책.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그야말로 압사당할 뻔 했지만 다행히도 중반 이후 이야기의 진행도 빨라져 생각보다 빨리 읽어갈 수 있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처음에는 소매치기들과 함께 자란 수 트린더라는 아이가 젠틀먼이라는 사기꾼의 계획(시골에 삼촌과 사는 모드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여자는 정신병원에 집어넣어서 그녀의 재산을 가로챈다.)을 듣고 큰 거 한 방을 터트리기 위해 하녀로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두번째 장에서는 모드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세번째는 다시 수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간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반전이 일어나기때문에(사실은 반전이 아니고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지만) 나름대로 진실은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속고 속이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리고 증오와 복수 등등 다양한 이야기의 층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레즈비언 '역사' 소설에는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배경만 19세기로 하고 있을 뿐 역사적인 사건은 거의 언급되지 않기때문이다. 책에 언급된 19세기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로 언급되기보다는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사실감을 좀 더 부여해준 정도라고 생각한다. 가끔 책에서 욕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들을 때도 썩 어감이 좋지 않은 말들이지만 문자로 보니까 더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수의 배경으로 볼 때 충분히 나올 법한 말들이지만. (그들이 욕 한 번 안 했으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이상했겠지.) 

  이 책의 반전은 비교적 초반에 등장한다. (1장이 끝날 때니까 초반이라 할 수도 없으려나?!) 하지만 이 반전이 끝이 아니다. 2장에는 더 놀라운 반전, 아니 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반전이 있더라도 역시 700페이지에 빽빽한 글씨를 읽어가는 것은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해도 힘들었다. (행간이 얼마나 좁은지 숨이 턱턱 막혔다)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뭔가 기대치보다는 부족함을 느꼈던 책이었다. 아무래도 높은 평점때문에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은 느낌.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있고 이야기도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추천하고 싶지만 책과의 장기전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고려해봐야할 듯한 책이었다. 물론, 페이지의 압박만 이겨낸다면 나름대로 볼만한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제인에어 납치사건>도 재미있게 봤던지라 후속편인 <카르데니오 납치사건>도 덥썩 집어들었다. 하지만 전작을 읽은지가 워낙 오래되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제인에어 납치사건을 읽은지 어언 2년이 지났다) 다시 전작을 읽을만한 여력이 되지 않아 그냥 읽어가기 시작했다. 혹,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제인에어 납치사건>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서즈데이 넥스트는 문학조사과의 특수작전요원이다. 전작인 <제인에어 납치사건>에서 <제인에어> 속으로 들어가 제인에어를 구해내고 악당인 하데스를 처치한 덕분에 그녀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부각되어 각종 방송에 시달린다. 한편, 랜든과 전작에서 결혼한 뒤,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느날 누군가 랜든을 소거해버리고 그를 돌려준다는 댓가로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 속에 있는 잭 시트를 구해오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책 속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서즈데이는 허구사법부에 들어가 미스 하비샴의 도제가 되어 책 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은 세익스피어의 비발표원고인 <카르데니오>에 대한 것이지만 책의 내용은 '랜든을 구하라'에 더 가깝다. 뱃속에는 랜든의 아이도 있는 서즈데이가 랜든이 소거되고 난 뒤 그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기때문이다. 전작에서처럼 이 책 속에는 많은 작품들이 등장한다. <제인에어>는 물론이고, 서즈데이를 가르치는 하비샴은 디킨즈의 <위대한 유산> 속의 인물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체셔 고양이도 등장한다. 이 외에 수많은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기때문에 기존에 문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언급된 작품을 읽지 않았다하여도 각주를 읽는 것으로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긴 하지만 뭐. 

  제법 두께가 되는 책인데도 지루할 틈없이 이어진다. 뛰어난 상상력, 때로는 다소 무딘 듯한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광범위한 지식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독특한 표지도 책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후속편을 출간할 예정이라면 이 책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나와주기를 바란다. 굳이 다른 책과 비교하자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처럼 괴짜같지만 유쾌한 소설이었다. 일상이 무료하다면 재스퍼 포드의 수다 한 판 즐겨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식물동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식물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평범한 잡초가 아닌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좀 더 만족감높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약초의 성격이 강한 풀들이다. 소위 웰빙 바람을 타고 더욱 가까워진 페퍼민트나 로즈마리, 라벤더와 같이 차나 아로마 오일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도 있고, 바질처럼 음식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렇듯 멀지만 가까워보이는 약초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는 그려진다.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각 식물에 얽힌 사연들뿐만 아니라 그 식물이 어떤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야기에서 이렇게 스쳐간 내용들을 마지막에 조그만한 글씨로 각 약초의 어원을 비롯해 효능, 사용되는 예를 들어 복습과 함께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끔 짜여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첫부분에는 일러스트로 간략하게나마 어떻게 생긴 식물인지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사진이 실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옛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식물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가까운 꽃집에 가서 조그마한 허브를 사서 키워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로마 향을 내 방 가득히 스며들게 한 뒤에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에게 허브 화분과 함께 이 이야기를 들려줘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아이들은 식물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아기자기한 동화와 함께 독특한 일러스트를 만날 수 있어서 잠시 허브 동화나라 속으로 다녀온 기분이 들었던 책이었다.

 
덧) 겉표지를 벗기면 초록빛의 표지가 등장하는데 허브와 잘 어울리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욕심내서 이왕이면 돈은 좀 더 들겠지만 허브향이 나는 표지였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매지 2006-12-2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이 가까운 곳에 사시면 책을 전해드릴 수도 있을텐데... 혹 모르니까 주소 알려주세요^^ 착불로라도 보내드릴께요^^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바다 저 편. 폐허의 도시로부터 온 편지. 이 편지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점점 삶에 대해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망이 절망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 장소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외부 사람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일 뿐.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의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노동의 고통에 대해 너무도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인간다움과는 멀게 살아가고 있다. 도시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외부에서 특파원인 오빠를 찾기 위해 이 곳에 들어왔다가 오빠는 찾지 못하고 점점 더 절망적인 삶에 젖어가는 안나 블룸이라는 이 여성만이 오직 제대로 된 사고를 하고 현실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할 뿐이다.

  단순히 자신의 욕심을 위해,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고, 그들이 잠시라도 틈을 보이면 그들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폐허의 도시 속에서 잠시 한 눈을 팔면 먹고 살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수레마저도 누가 훔쳐가버리는 것처럼.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수레를 허리에 묶고 거리를 다녀야하는 주인공처럼 끊임없이 주위를 경계하고, 내가 가진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삭막한 삶 속에서도 남을 도우려고 하는 일부의 사람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은 남은 상태. 온갖 범죄가 저질러지면서도 한 편에서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도 하는 우리의 삶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과연 폐허의 도시가 디스토피아인가? 혹은 현대사회가 붕괴된다면 이렇게 될 것인가를 떠나서 이 책 속에는 폴 오스터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배고픔이나 추위와 같은 기본적인 조건이 부재한 상황, 고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부정적인 세계를 벗어나려는 주인공의 노력. 이런 점들은 폴 오스터의 여러 작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때문에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왔다갔다 뒤죽박죽 순서대로 읽어서 영 엉망으로 정리되버린 것 같지만)

  여담이지만 이 책은 편지의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 수록 주인공은 편지가 점점 더 작은 글씨로 쓰여진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점을 반영해서 책의 결말 부분에서는 글씨의 크기를 조금 줄여서 독자가 실제로 안나 블룸이라는 여성의 편지를 읽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줬다면 좀 더 생동감있는, 좀 더 센스있는 편집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법한 책이지만 폴 오스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처음을 시작하는 것은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폴 오스터 입문으로는 <달의 궁전>이나 <뉴욕 삼부작>이 제격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왕 이 길고도 절망적인, 하지만 약간의 희망이 섞인 편지를 읽을 참이라면 이 책만을 위한 온전한 시간을 빼놓기를. 중간에 끊어버리기 힘들테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겨울하면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 하얀 눈이 덮인 곳에서 홀로 철도원복을 입고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 그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서 결국 영화 <철도원>의 원작인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을 집어들게 되었고, 읽는 내내 포근함이 나를 감쌌다.

  이 책에는 총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표제작인 <철도원>은 동명의 영화의, <러브레터>는 영화 <파이란>의 원작이기때문에 영화와 비교해보며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영화 모두 보지 않았기에 이번 계기로 영화도 볼 참.) <악마>는 한 아이의 집에 가정교사를 두기 시작하면서 점점 집이 무너져가고, 파괴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져있는 이야기이고, <츠노하츠에서>는 리오데자리우로 좌천을 당한 잘나가던 회사원이 우연히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옛 추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캬라>는 약간 스릴러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이야기로 세일즈맨인 한 남자가 캬라라는 조그마한 옷가게에 납품을 하게 되는데 이에 회사의 사장은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철수하라는 사장답지 않은 발언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묘한 사건. <백중맞이>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될 판인 치에코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치에코가 '누구라도 내 편이 있었으면..'하고 생각할 때 치에코를 부모처럼 돌본 할아버지가 등장하게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에서는 산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매치기의 이야기가,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에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얽혀있는 오리온좌라는 영화관이 문을 닫으며 마지막 상영회를 한다는 소식에 과거로 떠난 두 남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속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다른 사람이 생겨서 자신을 떠나기도 하고, 부부사이가 무너지기도 하고, 부하의 죄까지 모두 자신이 뒤집어쓰고 좌천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일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가족들을 미처 돌보지 못하기도 한다. 이들은 단 하루의 일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 책 속에 나온 이야기는 다시 말해 그들에게 삶의 반환점과 같은 일들이라 할 수 있다. 깡패로 살던 인물이 한 여자를 통해 마음을 바꿔먹기도 하고,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한 남자는 아버지의 혼과 만나 이야기함으로 미련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인물들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들, 혹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공감을 더 끌어낼 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다보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일본의 전통적인 풍습이나 풍경이 담겨져있기때문에 이런 쪽에 더 이해가 있으면 감동이 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