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활 광고


5월 18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작은 생활광고 하나가 온갖 SNS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1980년 5월 17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가 난입한 공수부대의 체포를 피해 어느 건물 지하 보일러실에 숨어 지독한 공포에 시달리다 18일 자정에 천운으로 함께 탈출한 한 남자를 찾는다는 광고다. 그 날로부터 41년이 지난 지금 60대 중반의 중노인이 되었다는 광고주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그 남자의 안부를 묻고 찾는다고 했다. 단 신촌역 앞 광장에서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를 단서로 내걸었다. 광고주가 그 남자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라고 했다.


광고를 읽는 순간, 왜 많은 이들이 이 광고를 공유하면서 두 분이 꼭 만나기를 바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더 늙기 전에 혹은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연락처를 알 수 없는, 심지어 저 광고에서처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다만공수부대에 쫓겨 몇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과 헤어질 때 어디로 갔다는 방향 밖에 단서가 없는 경우라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광고주는 신문에 생활광고를 냈다. 신문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 작은 생활광고를 당사자가 읽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 역시 사연의 두 사람이 41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아 긴 세월의 여운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바라지만, 한편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그 남자는 이 글을 읽고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헤어진 순간 자신이 어느 방향을 향해 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혹은 자신이 이동한 방향을 설명하고 연락을 했는데, 설명을 잘 못해서 광고주가 이해하지 못 했거나, 그 남자의 기억과 광고주의 기억이 다르다면 어떨까?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 만큼 이 두 분이 실제로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죽기 전에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몇 있다. 이제는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사람, 얼굴이 가물가물한 사람, 그래도 사진이 남아있어서 뒤져보면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흐릿한 오래전의 상황만 기억날 뿐 다른 정보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사람 등 그 몇 사람에 대한 내 기억은 제각각이다. 어쨌거나 공통점은 현재 연락할 수단이 없다는 것. 어떤 경로로든 연락이 닿을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모를 일이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칠 일이 있을지도. 어쩌면 우연히 마주쳐도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지도.


한편 누군가의 SNS 를 통해 이런 소식도 접했다. 어느 날 문득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어느 친구가 궁금해져서 전화를 걸었는데, 잘못된 전화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고 했다. 그는 다시 그 친구의 아내 연락처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 아내가 전한 소식은 충격이었다. 이미 여러해 전에 그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전화 연락을 시도했던 이는 자신이 그 친구와 그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친구의 부고 조차 모른채 긴 시간을 지냈다는 생각에 무척 놀랐다고 했다. 아마 슬픔은 그보다 조금 뒤늦게 찾아왔으리라.


어쩌면 저 위에 소개한 광고주가 찾는 남자가 살아남아 광고주처럼 중노인이 되어있지 않을 수도 있다. 매일 쏟아지는 온갖 사고에 대한 소식들을 생각하면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학창시절 친구들을 포함해 인연을 맺어온 많은 사람들 모두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친분을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인연을 맺어왔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현재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나와 자주 교류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그래도 적은 편은 아니더라. 어쩌면 나 역시 한때 나와 친했던 누군가의 부고 소식도 모른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나는 그 부고의 주인공이 될 뻔 했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았다.


앞서 소개한 광고주처럼 60대 중반의 중노인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국민학교 친구들과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한 분 계시다. 남성 몇 명, 여성 몇 명이 일상을 교류하는 톡방이 있고, 자주 만난다고 한다. 심지어 고향 부산이 아닌 이 낯선 서울 땅에서. 나는 어느 날 홀로 서울로 떠나온 후로 고향 부산에서 맺어왔던 대부분의 인간관계들이 단절되었다. 국민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조차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서울 생활 초기에는 그래도 가끔 연락하고 어쩌다 부산에 내려가면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그런 인연들조차 하나 둘 끊어졌던 것이다. 사실 찾아보면 대학시절 선후배나 친구들 중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이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어쩌면 찾아보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찾아보지 않는다는 건 바쁜 일상에 쫓겨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만큼 절실하게 만나고픈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며칠 전에 대학 동기 한 명과 그 동기의 막내동생을 함께 만났다. 그 친구는 내가 긴 타지 생활하면서 꾸준히 연락하고 지낸 몇 안되는 고향 사람 중 한 명이고, 그 동생 역시 종종 함께 만나고 소식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차를 마시며 한참동안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각자의 일 이야기, 가족 이야기, 최근 관심사 이야기 등등 끊임없이 수다가 이어졌다.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인터뷰 기사


지난 4월에 어느 인터넷 매체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 기자와는 오래전에 어떤 인연으로 만났었지만, 이후 각자의 삶에 바빠 잊고 지냈었다. 아주 우연히 다시 만난 그를 나는 쉽게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잠시 안부를 나누다가 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 기자에게 내 인터뷰 기사를 쓰라고 권했다. 알고보니 그 기자는 활동가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었다. 유명한 활동가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활동가들. 그런 컨셉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 흔쾌히 수락했다. 내 입장에선 그런 인터뷰 요청이 왔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기도 하다.


사실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 인터뷰를 제법 많이 했다. 대부분 어떤 사건 혹은 이슈에 대한 인터뷰였다. 나는 활동가로서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고, 조리있게 말을 잘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우리 단체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내가 맡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로 인터넷 매체의 기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영상 매체의 인터뷰도 있었다. 심지어 몇 해전에는 누구나 제목을 알만한 공중파의 유명한 프로그램에서도 인터뷰 영상을 찍었었다. 당시 그 프로그램 작가의 연락을 받고 내가 많은 내용을 조언해주고, 함께 내용을 채워줄 여러 사람들을 섭외해주고, 촬영 당일 하루종일 서너곳의 장소를 이동하면서 안내하고 연결해주느라 애를 많이 썼다. 그런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내 인터뷰는 통째로 편집되어 단 한 장면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게 1시간 반짜리 방송이었던가? 내가 나오는 장면은 아주 짧게 한 장면. 그것도 한쪽 구석에 잠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들 외에는 알아볼 수도 없는 정도였다. 방송 한참 전부터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하루종일 촬영을 돕고 함께 했던 입장에서 서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인터뷰는 지금까지 했던 사건이나 이슈 중심의 인터뷰와는 달랐다. 오로지 활동가로서 내 삶에 촛점을 맞춘 인터뷰였다. 질문에 답하면서 나로서도 20년 가량의 활동가 경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자는 나중에 좀 당황했다. 내가 계속 쉴새없이 말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나를 질문하면 열을 답한다고 해야하나. 내 답변이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져서 중간에 끊고 다른 질문을 던질수도 없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만큼 떠들었음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과연 이걸 어떻게 정리해서 기사로 만들어낼 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전에 잡지사에 있을 때 인터뷰 기사를 써봤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할 때는 즐거워도, 기사를 쓰려고 자판을 두드리려고 하면 머리가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차라리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일이 쉬웠을 것이다. 당시 내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글이 인터뷰 글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 기자가 기사 초안을 공유해왔다. 와! 읽으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방대한 이야기를 정말 잘 간추려서 정리했다. 역시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자였던 것이다. 내 걱정과 우려처럼 그 역시 내용이 너무 많아서 쳐내느라 어려웠다고 말했다. 기사 초안에 대해 사실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인터뷰 기사가 등록되었다. 기자는 내게 널리 퍼뜨려달라고 기사의 주소를 보내왔다. 기사를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 기자가 찍은 내 사진이 너무 이상하게 나왔던 것이다. 물론 내 얼굴은 어떻게 찍어도 이상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진이 이상하게 나온 일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진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일단 각도가 이상했다. 너무 얼굴을 중심으로 찍었는데, 몸은 작게 나와서 얼굴만 큰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얼굴이 작은 편이라 이런 각도, 이런 구도의 사진은 처음이라 놀란 것이다. 또 너무 비쩍 말라 뼈 밖에 없는 사람처럼 나왔다. 수염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다. 기사에는 총 3장의 사진이 실렸는데, 맨 위의 사진 하나만 그 기자가 찍은 것이고, 나머지 2개는 내가 보내준 예전 활동 사진들이었다. 나는 그에게 대략 십여장의 사진을 보내줬다. 환경운동을 시작했던 초기부터 최근 모습까지 다양하게 맞춰서 보내줬다.


그 기자의 요청과 달리 나는 인터뷰 기사를 친한 사람들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낼 생각이었다.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스스로 그 기사를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권한다는 것이 너무 민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가 속해있는 단톡방에 그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단톡방에 비쩍 말라 뼈 밖에 없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얼굴만 크게 나온 내 사진이 떴다. 기사 링크를 걸어도 사진이 자동으로 뜨는 톡방의 시스템 때문인 것 같았다. 아! 나는 그 사진이 너무 싫었고, 그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단톡방에 내 기사가 공유된 사실이 너무 민망했다. 그 다음은 연쇄반응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그 기사를 다른 곳으로 퍼날랐다. 누군가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었다고 잘 읽었다고 훈훈한 감상을 남겨주셨지만, 나는 너무 민망해서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모르는 척 아무 반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로 기사를 읽은 몇몇 분들이 밥을 사주겠다고 연락해왔다. 그 사진을 보면 막 빨리 밥을 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번은 이사님 한 분이 내게 밥을 사준다고 나갔는데, 오리 백숙을 시켜주시고, 본인은 조금만 드시고는 나머지는 다 먹으라고 했다. 잘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도 함께였다. 나는 매일 원하는 대로 충분히 잘 먹고 있다. 나를 아는 이들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나만큼 많이 먹고 잘 먹는 사람도 드물거라고 자신한다. 그런데 이 왜곡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 기사가 나간 후로 여기저기서 잘 얻어먹고 다닌 덕분에 한동안 걱정없이 살았던 뱃살이 다시 나올 지경이다.


고생해서 기사를 써주신 기자님께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 기사가 더이상 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


몇 해전부터 시간이 빨리 간다는 푸념을 자주 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내 주위 40대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라. 벌써 하루가 다 갔네. 벌써 일주일이 다 갔네. 벌써 한 달이 다 갔네. 마치 겨우 한 마디 말했을 뿐인데 한 달이 다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어쩌다 우연히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았다. 이게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릴 때 뇌의 신경세포가 정보를 매우 빨리 처리한단다. 신경세포가 빠르다는 말은 아주 짧은 순간까지도 인지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뇌 세포의 처리속도는 느려지고 그래서 인지하는 순간이 적어지고, 그래서 듬성듬성 세상을 느끼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했다.


아! 이럴수가! 그냥 기분 탓이려니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 뇌가 그렇게 된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했다. 앞으로 더욱 빨라지겠구나.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오고, 별 이유없이 관절이 자꾸 아프고, 점점 흰머리가 늘고, 또 점점 머리 숱이 적어지며, 열심히 운동해도 별로 효과가 없어지는 것 등등 서럽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자꾸만 생기는데, 그 와중에 뇌 세포마저도 활동이 느려져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라니!


김대식 교수는 대신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도 젊을때처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방법 2가지를 알려줬다.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인데, 이는 겨우 5분 지속된다고 했다. 효과가 너무 짧기도 하지만, 나 처럼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없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집중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데, 그것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고 했다. 당연하겠지만, 하루종일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길어도 한 두시간이겠지. 


김대식 교수 말로는 인간의 뇌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것을 자꾸 지운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한 일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자꾸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집중하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나중에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뇌는 인지적 구두쇠라고 반복되는 정보나 변화가 없는 정보 등은 인지하지 않는다고 한 말과 통한다. 결국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사람은 변화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고, 매너지즘에 빠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바로 내가 그렇다는 얘기다.


이제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푸념을 그만둬야겠다. 대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던가, 별 것 아닌 일에도 집중해본다던가 하면서 반복된는 일상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시도해야겠다. 나중에 이 시기를 떠올렸을 때, 코로나, 집콕 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김경일 교수와 김대식 교수의 글과 영상을 보면서 하나 떠올린 것이 있다. 예전부터 내가 난치병이라고 불렀던, 유난히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현상 역시 나의 뇌가 다른 사람의 얼굴에 집중을 안 하거나 혹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20년 이상 고민했던 문제였는데,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다.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 이야기를 쓰려고 알라딘에 들어왔건만, 다른 이야기만 길게 두드려 놓고 나가게 되었다. 518 이야기, 이상 기후 현상 이야기, 산림청의 미친 벌목 이야기, 5월에 있었던 다양한 일상 이야기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두드릴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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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20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사 링크가 있을까 없을까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없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ㅋㅋㅋㅋ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쏟아낼 이야기 거리가 저에겐 없는데 감은빛님 열심히 살아오신 것 같아요~ 다양한 이야기 읽을 시간이 충분한데, 감은빛님 두드리실 시간이 부족하신게 아쉽네요!ㅎㅎ

감은빛 2021-05-21 15:21   좋아요 1 | URL
아이고! 툐툐님을 아쉽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터뷰 기사를 공유할 생각이 없어요.
부디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평소에는 말이 없는 경상도 남자인데요.
일과 관련해서는 아주 말이 많아지고 또 빨라지는 편이에요.
제가 특별히 열심히 살아서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사람인것 같아요.
저는 툐툐님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해요.
언젠가 툐툐님의 수다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ㅎㅎ

scott 2021-05-20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툐툐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감은빛님은 우리 사회 곳곳에 빛처럼 살아 오신분이 아닐까,,,,ㅎㅎㅎㅎ

인터뷰 기사 궁금한 1인 ^ㅅ^

감은빛 2021-05-21 15:23   좋아요 1 | URL
아유! Scott 님. 아닙니다.
그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평범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여기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좀 복잡해서 설명드리기가 어렵네요.
부디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05-21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사진만 아니었으면 감은빛님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글 잘쓰는 그 기자님은 왜 사진은 못찍어서리 말이죠. ㅎㅎ
나이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가 결국 나의 인지능력의 쇠퇴때문이라니, 쬐끔 슬프네요.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 많은 걸 다 기억해 뭐할까 싶기도 하니 역시 시간이 흐르는대로 그에 맞춰 사는거지 싶기도 하구요. ^^

감은빛 2021-05-21 15:26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꼭 사진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아니구요. ㅎㅎ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그 기자님은 사진을 너무 못 찍어서 미안하다고 제게 사과하기는 했어요.

그에 맞춰 사는 거라는 바람돌이님의 말씀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자꾸만 늙어가는 제 몸이 원망스럽고,
제대로 일하지 않는 뇌가 원망스럽다고 여겼거든요.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 글에도 썼듯이 커피와 집중이라니!
결국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실망할 뿐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바랍돌이님께서는 현명하시네요. 부럽습니다! ^^

레삭매냐 2021-05-21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이야기,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디 신나게 두드려 주시길
기원합니다.

감은빛 2021-06-17 18: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님.
답이 거의 한 달 가량 늦었네요.
게다가 그 한 달 동안 책 이야기를 못 썼네요.
이번 달이 가기 전에 꼭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1-05-2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인 중 몇 명의 부고 소식을 들었거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70살도 안 돼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충격이었죠.오랫동안 연락이 단절되었다가 뜻밖에 부고 소식을 알게 되면 그 순간 좀 멍해지더라고요.

제가 인터뷰 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제가 한 가지를 물으면 몇 가지로 대답하는 이를 참 좋아했죠. 그러면 얻는 정보가 많아 기사를 쓸 때 유리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이는 묻는 말에 딱 한마디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분 만나면 얼마나 힘들던지.ㅋㅋ

여기서 동지를 만나네요. 제가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해서 애먹은 적이 많아요.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되는 가수가 있어요. 보아, 라는 가수요. 볼 때마다 저 얼굴이었나, 해요. 참 이상해요.
동지를 만났습니당~~

감은빛 2021-06-17 18: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동지라고 말씀해주셔서 무척 반가웠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반가워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드네요. ㅠㅠ

인터뷰가 참 힘든 일이죠.
페크님은 내공이 있는 분이시니 잘 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희선 2021-05-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레비전 방송은 그렇다고 하더군요 길게 찍어도 나오는 건 아주 짧다는... 통편집 되는 일도 자주 있는가 봅니다 그런 일을 겪으시다니... 여러 가지 도와줬는데 그래서 좀 섭섭했겠습니다

사람에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있다고 합니다 저는 잘 기억하는 편이에요 새로운 일이나 뜻밖의 일이 있으면 시간이 정말 안 가지요 병원에서... 그렇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 안 되겠네요 그런 일은 싫으니... 어떤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걸 하다고도 하더군요 그것도 힘들 듯한데, 누구였는지 그 사람은 지금도 날마다 새로운 걸 할지... 나이는 먹어도 뇌는 덜 나이들게 하면 좋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1-06-17 18:40   좋아요 0 | URL
네, 저 통편집 당해서 엄청 섭섭했어요.
아니 실은 그 프로그램 준비 과정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입장에서,
좀 화가 나더라구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하시니 부럽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곤란했던 일이 많았어요.
문제는 앞으로도 많을 것 같아요. ㅠㅠ

희선님. 고맙습니다!
 
 전출처 : 감은빛 > 구석기 식단 VS 밥이 보약이다

이글을 썼던 2015년에는 그래도 식당 공기밥 기준 1그릇을 먹을 때였는데, 되도록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려고 밥 먹는 양을 줄이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후로 밥은 섭취량을 줄이긴 했지만, 먹는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밥 대신 반찬이든 안주든 다른 걸로 배를 채웠었다.

작년 사고 이후로는 먹는 양 자체가 확 줄었다. 많이 먹고 싶어도 들어가질 않는다. 억지로 밥 한 그릇을 다 먹고나면 너무 배가 불러서 미칠 지경이다.

이 글에 썼듯이 청소년기부터 20대 후반까지 나는 정말 밥을 좋아했고 엄청 많이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먹고 살았는지 신기하다. 지금은 겨우 라고 표현할만큼 적게 먹는데, 그래도 여전히 내 몸이 소모하는 에너지에 비하면 섭취량이 많은 것 같다.

북플 덕분에 깨닫는다. 탄수화물 줄이기 시작한지 생각보다 오래되었구나. 딱히 저탄고지라고 부를 정도로 식단을 지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단순히 밥과 밀가루 음식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인데, 예전처럼 뱃살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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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0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5-21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점점 밥 먹는 양이 줄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위가 작아지나, 그랬어요.
 

4월을 보내며


누군가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던 4월이 이제 하루 남았다. 내일은 5월 1일, 노동절인데 아쉽게도 토요일이라 휴일이 하루 사라진 기분이다. 예전이었다면 노동절 집회 뿐 아니라 4월 30일의 전야제에도 참여했을텐데, 오늘과 내일은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노동절 집회가 열리는지 그 전야제가 열리는지 조차 관심이 없다.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이유도 조금 있겠지만, 몇 해 전부터 매년 노동절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보다 더 심각한 여러 사안들의 집회에도 바빠서 잘 참여하지 못하는데, 매년 반복하는 그 집회를 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다보니 3월 말에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고 한 달만에, 4월 말에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글의 제목을 이렇게 쓸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마지막 글과 맞추기 위해 또 결국 누군가 댓글에서 써주신 것처럼 되어버린 상황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쓰고 본다.


결국 4월에는 이 글 하나만 쓰는 결과가 되었지만, 4월초부터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글을 하나도 쓰지 못한 이유는 일이 바빠서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시간이 있었어도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탓이 크다. 올해는 글을 쓰는 시간을 좀 더 가지려고 노력하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4월 한 달은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한 편으로 4월은 3일과 16일을 비롯해 유난히 슬픈 기억, 아픈 역사를 품은 달이었고, 나는 나 자신의 상황에 따른 우울감에 더해 4.3 과 4.16 이라는 사건에 자꾸만 몰입해 슬픔에 빠져 지냈다. 드디어 잔인한 달이 가고 새로운 달이 올 시간이다. 5월은 어려서부터 햇살처럼 환한 느낌으로 다가오곤 했다. 과연 그 이미지처럼 환한 한 달이 될지 모르겠다. 


예쁜 몸


흔히 통용되는 속설 중에 남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과도하게 만족하는 것에 반해 여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불만족스럽게 느낀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태어나서 계속 남성으로만 살아왔으니 여성의 입장을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얘기해보자면 대체로 맞는 얘기라고 여겨진다. 대체로 남성들은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더 자신의 외모가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나 뿐 아니라 내 주위 대다수의 남성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속을 비우고 샤워한 후의 내 몸매는 꽤 괜찮다고 느낀다. 그것이 거의 6~7개월 이상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조금, 아주 조금 운동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거울을 보아도 그렇다.


그래 내 눈은 절대 객관적이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결코 자신의 몸이 예쁘다거나 괜찮다거나 하는 평가를 내리지 못했을텐데,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내 몸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판단하며 살아왔다.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긴 하다.


아마 한 5~6년 전부터 아침에 속을 비우고 난 후 샤워하면서 거울에 비춰 본 내 몸이 꽤 예뻐보였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느날 SNS에 내 몸이 너무 예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 글을 읽은 어느 여성은 내게 어떻게 그런 걸 올릴 수 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내 몸이 내가 보기에도 너무 예쁜 걸 어쩌겠냐고 답했다. 궁금하면 보여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무한테나 보여줄 수 없어서 아쉽다는 말도 했다.


그때로부터 다시 시간이 꽤 지났다. 일단 작년 교통사고 이후 긴 시간 근손실로 인해 내 몸은 예전처럼 탄탄한 몸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 실망도 컸고, 좌절도 컸지만 내 무의식 가장 밑 바닥에는 그래도 금방 다시 회복할거라는 근거없는 자존심이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자존심(혹은 자만심)이 펑펑 샘 솟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내 몸이 남들이 보기에도 예뻐보인다고 처음 깨달았던 사건은 고등학교 3학년때였다. 친한 친구를 따라서 보디빌딩 체육관에 따라갔던 나는 몇 가지 아주 간단한 고립운동 기구를 친구가 가르쳐주는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관장은 나를 한동안 지켜보더니 상의를 벗어보라고 요구했고, 내 빈약한 몸을 보면서 의외의 제안을 했다. 내게 자신과 함께 보디빌딩 선수로 성장해볼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 내 몸이 선수로 성장하기에 좋다고 했었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내 몸은 상대적으로 근육이 선명하게 잘 드러나는 몸이라고 했다. 소위 말해 definition 이 좋은 몸. 달리 말해 근 선명도가 좋은 몸이라고 했다. 관장은 내게 보디빌딩 선수로 키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격투기 등 링 위에서 대결하는 스포츠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보디빌딩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보디빌딩 선수처럼 우라부락한 과도한 근육을 원하지는 않았다. 나는 전체적으로는 슬림하면서도 작은 근육들이 발달한 격투가의 몸을 원했다. 당연히 그 관장의 제안은 바로 거절하고 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내게 조금만 노력하면 언제든 내 몸을 예쁘게 만들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만심을 심었다.


그 시절 이후로 나는 가능하면 고립운동을 피하고,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보디빌딩 방식의 운동을 하지 않는 편이다. 온 몸의 협응력을 위주로 전신을 사용하는 운동만 주로 하고 있다. 헬스클럽에 가면 고립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기구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기구들은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이용하는 건 프리웨이트 공간 뿐, 바벨과 덤벨과 케틀벨 그리고 풀업 바 정도가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수많은 헬스장에 내가 원하는 적당한 프리웨이트 공간이 없었다.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운동을 할 수 있겠다 싶은 헬스장은 10곳 중에 1곳이 있을까 말까 했다.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98%를 차지하고 있는 기구들에는 손도 대지 않으면서 2%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순서를 기다려가며 겨우 운동을 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결국 비싼 돈 주고 헬스장을 다니는 것이 내게 전혀 이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다른 결심을 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실내철봉과 바벨을 구입했다. 집이 좁아서 많이 고민했지만, 다른 공간은 몰라도 철봉과 바벨 놓을 공간은 만들어야지 라고 생각을 바꿨다. 이혼하고 혼자 살았기 때문에 그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아마 여전히 함께 살았다면, 애들 엄마는 내게 그만큼의 운동공간을 내주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매달 내는 헬스장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눈 뜨면 바로 풀업을 할 수 있고, 바벨이나 덤벨을 들 수 있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후 케틀벨과 불가리안 백을 구매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식의 운동(보디빌딩 방식이 아닌)을 위해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원판을 더 구매하고, 케틀벨도 무게 별로 더 구매하고, 불가리안 백도 하나 더 구매하고 싶고, 무엇보다 집이 좀 더 넓어지면 벤치프레스 용 벤치와 스쿼트 렉을 구매하고 싶지만, 내가 활동가의 삶을 벗어나 돈을 많이 벌 일은 아마도 없을테니, 그 가능성 역시 거의 없으리라 볼 수 있다. 최근 어쩌다 본 김종국이라는 연예인이 집에 들인 홈짐 설비는 아마 1천만원 이상 들었을거라고 하던데, 그걸 들일만한 공간도 없고, 그만큼의 돈도 없는 내게는 그저 부러워해야 할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암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운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도 교통사고 후 회복기간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의 내 몸은 내게는 꽤 잔혹한 고문 같은 것이었다. 점점 줄어드는 근육. 왜소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몸을 지켜보면서 막상 가벼운 덤벨이라도 들어올리려고 하면 통증이 느껴지고, 맨몸 운동이라도 해보려고 하면 원하는 동작을 수행할 수 없는 이 하찮은 몸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사고 후 6개월 정도 지난 올해 1월부터 아주 가벼운 맨몸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고, 2월부터는 조심스럽게 케틀벨과 덤벨과 철봉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3월에는 본격적으로 바벨과 불가리안 백까지 이용해 운동을 시작했으나 근력과 유연성이 크게 떨어진 내 몸은 예전에 쉽게 했던 동작들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4월에는 조금씩 운동수행능력이 나아지고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조금씩 예전에 쉽게 했던 동작들을 다시 익혀가는 중이다. 


한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괴로웠다. 사고로 다친 얼굴 뿐 아니라 근육이 줄어들어 밋밋해져버린 내 몸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분인지, 최근에는 땀흘려 운동한 후 거울을 보는 일이 예전처럼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운동하는 모습을 찍어 올린 SNS를 본 친구와 지인들의 반응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했냐고 했다. 사실 실제로 예전 기준에서 생각해보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서도 말했든 남성들은 거울을 보면서 실제보다 더 과장해서 괜찮다고 평가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이 정도로 빈약한 몸이 괜찮게 아니 예쁘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사고 이후 먹는 양이 많이 줄어서 허리 라인이 보다 날씬해지긴 했다. 그래서 공복에는 복근이 훨씬 더 선명해졌다. 전체적으로 근육의 크기는 많이 줄었지만, 몸의 라인은 좀 더 살아났다고 해야하나. 어쩌면 "예쁜 몸" 이라는 기준에는 더 어울리는 몸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뭐, 나는 앞으로 계속 운동을 할 것이고, 가능하면 날씬해진 이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예전처럼 근육량을 회복하고도 몸매는 좀 더 날씬해진 상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주위의 평을 들으며,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지 않았던 드라마가 2개 있었다. 하나는 [스카이 캐슬]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의 세계]였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궁금해서 보고 싶은데, 막상 보려고 마음 먹으면 보기가 싫어졌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서 대다수가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두 드라마는 엄청난 부자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삶은 초라하기만 한데, 티비만 켜면 드라마에서 왜 맨날 잘사는 사람들만 나오는지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다 여겨져 티비를 안 보게 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스카이 캐슬]은 친구와 1편만 보았었다. 더 보고 싶지 않아서 중단했었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들이 보기 시작해서 옆에서 같이 보았다. 아마 중간 정도까지는 함께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는 보지 않았다. 그러고 다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별로 결말이 궁금하지 않다. 그냥 언젠가 끝까지 다 봐야지 하는 의무감 때문에 보지 않은 몇 편을 다시 찾아볼지, 아니면 관심 없이 그냥 무시하고 계속 보지 않을지 모르겠다.


[부부의 세계] 라는 드라마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나도 시간 날 때 봐야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호흡이 너무 긴 드라마보다는 짧고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를 훨씬 더 선호하는데, 그래서 유명한 드라마들 중 제대로 본 것이 거의 없긴 하다. 


최근에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영화 [결혼 이야기]와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봤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그 서사 구조와 캐릭터에 대한 호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지 말았어야 했다. 호기심에 굴복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결혼 이야기]와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모두 이혼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걸 지켜본다는 건 당연히 내가 겪었던 결혼 생활과 이혼의 과정 그리고 그 후 혼자 살고 있는 이 하찮은 삶에 대해 돌아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궁금했어도 그 짓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나마 영화는 2시간 남짓이지만, 드라마는 아마 한 회가 1시간 20분 분량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16회만큼을 봐야 했으니 그 시간만큼의 괴로움을 참아야 했다. 왜 이 드라마 시청을 망설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영화는 그 짜임새가 무척 뛰어나 시청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그 여운에 빠져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지만, 드라마는 그 완성도와 개연성이 처참한 수준이라 16화까지 보고 난 후로는 별로 여운을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도 이혼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아이들이었다. 이혼 후인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다. 이 영화와 드라마는 이혼 이야기인 동시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나를 건드리는 지점들이 많았다.

 

드라마는 사람들의 평과는 달리 너무 졸작이라 더 이야기할 것이 없지만, 영화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나면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지난 글 마지막에 원빈 말투를 언급해서 몇몇 알라딘 이웃 분들께 웃음을 드릴 수 있었기에, 이번에는 어떤 말투를 언급해야 하나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생각나는 게 없다. 읽는 분들 입장에서도 억지로 또 다른 연예인을 언급하는 것이 웃음 포인트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내가 즐겨보는 운동 유튜브 채널에서 춤이 운동보다 훨씬 더 두뇌와 신체에 좋다는 내용을 봤다. 평생 춤을 춰본 경험이 거의 없고, 엄청난 몸치인데, 그 영상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춤에 도전해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내게 역주행이란 단어 뜻을 알게 해 준 어느 걸그룹의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따라 추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물론 거의 따라하지 못하고 포기할 확률이 높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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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1-04-30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저랑 남편은 같이 운동하는데, 저는 거울 볼 때마다 뭔가 단점을 찾고, 남편은 생각보다 좋은데? 이러거든요. 물론 안 좋은 날도 있지만 확실히 저보다는 자기 몸에 긍정적이에요. 이상하게도 저는 타인의 몸은 별로 평가 안 하면서 제 몸에는 너무 엄격해서 좀 내려놔야 하는데 어려워요. 저도 좋아지겠지라는 자신감이 팡팡 샘솟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부러워요.

얼른 건강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꾸준히 운동하시니까 얼른 돌아오지 않을까요. 제 동생도 인대 수술 이후 재활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구요. 자기 몸인데 원래 되던 것들이 자기 뜻대로 안 되니 짜증이 나는가 보더라구요. 잘 극복하면 좋겠다고 위로해주지만, 제 맘이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은빛님도 꼭 원하는대로 움직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저는 스카이캐슬을 봤기 때문에 부부의 세계는 아예 생각을 안 한답니다. 후회할 게 당연하달까요. ㅎㅎㅎ 스카이캐슬의 미덕은 저의 사회성이 조금 올라갔다는 정도죠.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를 연발하며 같이 웃을 수 있으니까요.

브레이브걸스는 볼 때마다 뭔가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이 분들은 더 이상 살 안 빼면 좋겠구요. 계속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전 몸치라 춤은 어렵고 그나마 열심히 운동하는 걸로 이번 생은 만족하려구요.

오늘 하루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은빛 2021-05-10 17:05   좋아요 1 | URL
우와! 꼬마요정님. 남편과 함께 운동하시다니. 멋지세요!
제 주위에도 크고 작은 부상 이후에 재활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대개 조급함이 큰 것 같아요.
저 역시 운동하다보면 어이없기도 하고 짜증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정도 무게도 못 들어올리다니! 이 동작도 제대로 못 하다니!
자꾸만 다치기 전 상황을 떠올리다보니 그렇게 되나봐요.

고맙습니다!
꼬마요정님도 편안하고 행복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

붕붕툐툐 2021-04-30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ㅎㅎ 4월을 보내며로 돌아오셔서 기뻐요! 4월은 아무래도 좀 우울하죠~ 5월엔 더 자주 감은빛님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감은빛님, 관장님도 탐낼 몸을 소유하셨군요! 예쁜 몸 인정해 드리겠습니다!ㅎㅎ
전 드라마를 거의 안 보고, 위의 두 드라마 역시 안 봤어요. 너무 인기 많은 드라마는 왠지 안 보고싶더라구요. 아무래도 전 책을 더 좋아하는 인간인 거 같아요~
춤추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 테라피 샘께서 몸치는 없다고 하셨어요! 잘 춘다는 상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못 따라 간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라고요. 몸이 원하는 대로 막 휘저으면 그것이 나만의 멋진 춤이 된다고 합니다. 감은빛님의 운동과 댄스를 격하게 응원합니다!!ㅎㅎ

얄라알라 2021-05-08 15:49   좋아요 1 | URL
툐툐님 춤 테라피도 하셨어요?^^~~~!!! 너무 반가운 걸 자판 두드려서는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춤 명상 하던 시절이 생각나며 흥분되는!!!

붕붕툐툐 2021-05-09 00:52   좋아요 1 | URL
꺄악!!! 북사랑님 우리 한 번 만나서 신나게 춥시다!! (들썩들썩~ 신남신남~~)

감은빛 2021-05-10 17:09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께서 이렇게 반겨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춤이 안 되는 몸치입니다.
막 휘젓는 동작조차도 잘 안되던걸요. ㅎㅎ
운동은 계속 꾸준히 하겠지만, 춤은 글쎄요.
아마 앞으로도 시도하지 않을것 같아요.

북사랑님과 툐툐님께서 만나 신나게 춤추신다면,
저는 옆에서 신나게 구경할게요. ㅎㅎ

희선 2021-05-04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지나 사월은 더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러면서 사월은 왜 이럴까 했네요 앞으로 나아질지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아니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사월은 날씨도 오락가락 하지 않았나 싶네요

어릴 때 들은 말 때문에 자신한테 자신을 갖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춰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요 이제는 더 나아지셨군요 오월에는 지난달보다 더 나아지실 거예요

저는 텔레비전 안 봐서 어떤 드라마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부부의 세계 제목은 들어봤어요 복면가왕은 봐서... 그 드라마에 나온 사람이 나온 적도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드라마가 즐거운 볼거리일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1-05-10 17:25   좋아요 2 | URL
사람은 대개 외부 환경과 조건에 많이 휘둘리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요즘 상황은 절대 개인이 마냥 행복해질 상황은 아니죠.
끝이 보이지않는 불행의 터널이란 생각이 자주 들어요.

저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요.
평소에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편이고,
드라마는 아주 가끔 찾아서 보는데, 주로 서사 구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예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님.

얄라알라 2021-05-08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멜로 드라마와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 [부부의 세계]를 보진 않았지만, 감은빛 님의 후회를 읽으면 굉장히 묘사들이 사실적인 측면이 있나봅니다.

감은빛 님께서 선명한 근섬유가 드러나는 아름다운 몸을 다시 애정으로 만들어가시는 그 과정, 또 자신의 몸과 자신을 무한 아끼시는 그 마음 응원하고 배워가겠습니다!!!

감은빛 2021-05-10 17:30   좋아요 2 | URL
제 기준에서는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를 멜로라고 분류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잘 지내던 부부가 이혼으로 향해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라고 들었었고,
그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는지가 궁금해서 보기로 했어요.
또 이혼이 각 가족 구성원(부부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잘 그려냈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결론은 내용이 생각보다 훨씬 비현실적이었는데,
이혼으로 가는 과정도 그리 잘 담지 못했어요.
다만 특정 캐릭터 기준으로 심리는 잘 담아낸 것 같아요.

응원 고맙습니다!
북사랑님도 얼른 건강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크랜베리스


길을 걷다가 낮익은 음악을 들었다. 초등학교 근처 골목이었는데, 5학년이나 6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어떤 음악을 부르고 있었다.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딱 듣자마자 내 머리속에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더 크랜베리스의 [Ode to my family] 였기 때문이다. 마치 천사처럼 느껴졌던 그 모습을 티비 화면으로 본 것이 그룹 크랜베리스를 처음 접한 것이었고, 돌로레스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이었다. 


한때 우리나라 광고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고, 드라마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잔잔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목소리가 인상적인 곡. 나는 크랜베리스의 음악들 중에 상대적으로 좀 시끄럽고 흥겨운 곡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저 곡은 꽤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도 이  곡이 티비를 통해 가끔 나오는걸까? 저 아이들은 어떻게 저 노래를 알고 길에서 함께 부르는 걸까?


9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알라니스 모리셋, 셰릴 크로우와 함께 가장 좋아했던 가수가 바로 돌로레스 오리어던이었다. 2018년 1월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몇 달 뒤에 접하고 한참 멍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Zombie], [Dreams], [Linger], [I just shot John Lennon], [Fee Fi Fo], [Shattered] 등의 노래를 들었다. 정작 [Ode to my family] 를 다시 찾아듣지는 않았다.



오버 트레이닝


운동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근손실'이라는 건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두번째 두려워하는 것은 뭘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오버 트레이닝'이다. 쉽게 말해 무리하는 것. 내 체력보다 과하게 운동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을 과하게 해버리면 근육이 성장할 기회가 오히려 줄어들고 신체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오히려 떨어져서 역효과만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요일별로 운동하는 부위를 정해놓고 분할 운동을 하곤 한다. 월요일은 상체, 화요일은 하체, 수요일은 코어, 다시 목요일은 상체, 금요일은 하체, 토요일은 코어, 일요일은 휴식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다만 나는 고립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전신 운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이런 분할 운동이 의미가 별로 없다. 운동을 쉬지 않고 하고 싶을 때는 상체와 하체로만 구분해서 나눠하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에도 코어는 늘 운동을 하기 때문에 코어를 따로 뺄 필요는 없고, 수요일에도 휴식을 넣어서, 상체, 하체, 휴식 이런 식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상체를 중심으로 운동한다고 하체가 놀지는 않기 때문에 상체, 하체를 분할하는 것도 의미가 별로 없고, 오히려 오버 트레이닝이 될 확률이 높다.


과거의 나는 차라리 운동, 휴식, 휴식, 운동, 휴식, 휴식 이런 패턴으로 반복하는 것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운동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크게 다친 후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이런 개념이 다 필요가 없다. 일단 일상 생활 자체를 소화하기에도 체력이 딸리는 상황이라 별도로 운동을 할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 주말을 푹 쉬고난 일요일 오후가 일주일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인데, 나는 주로 그때 운동을 하고 일주일을 골골거리다가 가끔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운동을 하고 다시 일요일로 넘어가곤 한다. 그 일요일에는 컨디션이 좋다보니 아무래도 적정한 선에서 멈추지 않고 자꾸 운동을 더 하고 싶어지는데, 이게 가장 나쁜 판단이자 선택이 되곤 한다.


지난 주에는 어쩌다 목요일 저녁에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그날따라 안되던 동작도 잘 되었고, 신기하게 별로 힘이 들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하고 싶었던 다른 동작들을 시도했고, 아주 오랜만에 예전처럼 운동이 된다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간 너무 무기력하게 힘도 잘 못쓰고, 동작도 마음대로 안 되어서 운동을 하고서도 그닥 좋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암튼 그날 한참 운동을 하다가 문득 내가 이미 체력의 한계를 넘어 운동하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그때 멈춰도 이미 늦은 것이었는데, 나는 거기서 몇 가지 동작을 더 했고 다음날 정말 극심한 근육통과 온 몸의 피로감을 느꼈다. 다행히 금요일은 쉬는 날이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은 있었다. 오후에 간신히 몸을 움직여 몇 가지 일을 처리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고, 화요일인 오늘도 아직 다시 운동을 할 정도의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오버 트레이닝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반응들


"예전에 운동한 걸 몸이 기억하고 있나봐. 빨리 몸 만드니까 멋있더라."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다시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보려고 가끔 운동하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고 있다. 가끔 사진 몇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어느날 그걸 본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친구의 반응이라 좀 당황했다. 나로서는 아직 몸 만들기를 시작도 못한 상태인데, 벌써 이런 반응이라는 것도 조금 당황스럽다.


"한 몇 년만 더 지나면 이제 네가 나보다 오빠처럼 보일거야."

나보다 한 열살 정도 많으려나. 암튼 50대인 선배 활동가가 장난처럼 한 말. 예전에도 흰 머리는 많았는데, 오랜만에 봐서 흰머리가 더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살이 빠진 것도 나이들어 보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수염 탓이겠지만.


"어머! 크게 다쳤다는 얘길 들었는데,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살 빠졌다는 얘길 해서 이제 그 얘기는 좀 그만들었으면 싶은데, 계속 피곤하고 지친 상태라서 그런지 살은 계속 더 빠지는 중인 것 같다. 예전이었다면 오히려 듣고 기분이 좋아졌을법한 말인데, 이 말이 이렇게 듣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신기하긴 하다.



3월을 보내며


매 월말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겹긴하지만, 정말 3월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누군가는 이제 늙어서 그런 거라고, 앞으로 점점 더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하는데, 그럼 60대나 70대쯤 되면 얼마나 더 빨라진다는 걸까? 


다시 일을 시작한 2월 1일도 바로 엊그제 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업무 복귀한지 두 달이 다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하루 하루 허무하게 보내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는데, 그것도 하도 반복되는 일이니, 그 서글픔에도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무뎌짐이 아닐까? 슬픔에도, 아픔에도, 외로움에도 무뎌져버려서 외로운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아픈지도, 슬픈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일 것 같다.



제목을 뭐라고 적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3월을 보내며' 라고 두드렸다. 그걸 깨닫자 마자 내 속의 내가 말했다. "아직 하루 남았다." 원빈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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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30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저씨> 대사 일까요?ㅋㅋ저도 그랜베리스 참 좋아하는데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니 놀랍네요! 아 그리고 저는 키가 커서 맨 뒷자리 였지요!ㅋㅋㅋㅋ

감은빛 2021-04-12 16:5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영화 [아저씨]의 대사는 ˝아직 한 발 남았다.˝ 였습니다. ^^

키가 커서 맨 뒷자리를 차지하셨던 거였군요.
저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요즘은 점점 평균키의 기준이 올라가다보니 기가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키 큰 분들 부럽습니다!

바람돌이 2021-03-31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날이 잘가서 이제 진짜 3월 마지막날이네요. 12시 지났어요. ㅎㅎ 뭐든 무리해서 하지 마시고 천천히 천천히 해요. 감은빛님이느 저나 무리하면 탈나는 나이일듯.... ㅎㅎ 3월 마지막 밤 펀안한 밤 되세요

감은빛 2021-04-12 16: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댓글이 좀 늦어서 벌써 또 4월하고도 중순이 다 되었네요. ㅠㅠ

따뜻한 말씀 덕분에 3월의 마지막 날은 편안하게 잘 보냈습니다.
이후로 또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요.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1-03-31 0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저씨‘ 영화 생각나네요^^
저도 3월부터 다시 운동 시작하고 있는데 확실히 몸에 좋은것 같아요. 그런데 뱃살이 빠지지 않아 고민이예요.그래서 오늘부터 유산소 비중을 좀 늘렸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요~~
말씀 들어보면 운동에 대해 많이 아시는것 같아요.~~
한번씩 운동에 대한 팁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은빛 2021-04-12 17:02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페넬로페님.
제가 트레이너는 아니라서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오래했기 때문에 운동 경험이 없는 분들보다는 조금 더 알긴 하죠. ^^

뱃살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저도 조금 방심하면 배가 나오는데, 이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서
원하는 만큼의 몸매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사람의 몸과 체질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 어떤 정답이 있을 수는 없고,
대체로 이러한 방향으로 가면 좋다라는 조언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유산소 운동을 늘릴지 말지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평소 생활 패턴과 어떤 운동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운동을 주로 하시는지 등
정보가 더 있으면 제가 아주 조금 조언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운동 이야기도 자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락방 2021-03-31 08: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빈 말투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1-04-12 17: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 웃음을 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ㅎㅎㅎㅎ

희선 2021-04-1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삼월 다 가고 사월도 여러 날 갔네요 운동하다 다음날 힘드셨다니, 멈춰야 할 때 멈추면 좋겠지만 잘 되는 날은 더 하고 싶을 것도 같습니다 그때 경험하셨으니 이제는 멈출 때 멈추시겠지요 운동하시니 조금씩이라도 나아지실 겁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1-04-12 17: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그렇네요. 4월도 여러날이 지나가버렸네요.
조금씩이라도 운동량이 늘어나면 보람이 있을텐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운동도 몸을 쓰는 것이니, 당일 컨디션에 크게 좌우됩니다.
대체로 제가 원하는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많구요.
정말 어쩌다 간혹 잘 되는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4-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거의 한달째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찾아와봤습니다. 잘 지내시죠? 일주일 후에 4월을 보내며로 돌아오십니까?^^

감은빛 2021-04-24 12:0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좀 바쁘기도 했고, 글 쓸 여유가 없었어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는데 말이죠. 4월을 다 보내기 전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겠죠.

이렇게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 법


친한 후배가 저녁 9시쯤 회의를 마칠 것 같다고, 마치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야근을 하며 기다렸다. 9시가 넘어서 문자가 왔다. 곧 마칠 것 같은데, 안 마치고 자꾸 시간을 끌고 있다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어차피 나도 일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다 마치면 연락하라고 답했다. 조금 배가 고프긴 했지만, 참을만 했다. 9시 40분을 조금 넘겨서 전화가 왔다. 지금 마쳐서 이동 중인데,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저녁을 먹을 곳이 없으니 어쩌면 좋을지 묻는다. 그렇구나. 코로나19 방역수칙 때문에 10시까지 밖에 영업을 못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근처 치킨 집에서 반반 한 마리를 주문하고, 인근 편의점에서 음료와 술을 샀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내가 다치기 전에는 자주 만나서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고, 가끔 심각한 이야기들도 주고 받았던 좋은 후배다. 올해는 특히 서로가 각자의 협동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달라고 청해서, 일종의 거래처럼 나는 그의 조합에서 역할을 하나 맡아주고, 그는 나의 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주었다. 실은 이런 일은 아주 익숙하다.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자주 만나는 이웃 단체 활동가들을 우리 단체 회원으로 가입시키려면 나도 상대방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다. 그렇게 활동비가 최저 생계비에도 한참 못미칠 정도의 활동가 급여에서 꽤 큰 부분이 여러 시민단체의 회비로 나갔다. 그 뿐인가 정당에서도 그랬다. 여타 진보정당과 같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 이웃 정당에서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줘야 우리도 뭔가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약 16년 정도 된 그 후배와의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깊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그 후배를 챙겨준다는 일종의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지금은 그 후배도 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닥 나쁘지 않았음을 생각하며 다행이라고 여긴다.


학부모 총회


큰 아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예술고등학교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얘기한 것은 조금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은 이러저러한 길들이 일찍부터 열려 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그런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한 돈과 노력이 또 얼마나 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실 내가 대학을 갈 무렵에는 문예창작과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나중에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대학에 문창과라는 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국문과 복수전공을 하면서 시와 소설 관련 과목을 열심히 들었지만, 내 개인의 창작에 그닥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물론 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문과 과목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늘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유명한 시인과 소설가가 우리 과 교수님으로 계셨지만, 그 분들의 수업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암튼 큰 아이는 이웃 도시의 예고 문창과에 합격했고 올해 3월 초에 입학했다. 잘은 모르지만 나름 유명한 학교라고 했다. 최근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에 대한 알림이 왔다. 애들 엄마에게 물어보니 내가 가는 것이 좋겠다고 답이 왔다. 아이 학교가 궁금하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내가 가기로 했다. 이웃 도시라고 쓴 것처럼 서울이 아닌 서울에 바로 붙은 외곽 도시인데, 서울 외곽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부터도 꽤 거리가 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만 1시간 20분 이상이 걸리고 걸어가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1시간 40여분이 걸린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렇게 먼 거리의 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고등학교 때는 버스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학교로 다녔다.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으나 바로 가는 버스가 단 하나의 노선 밖에 없었고, 그 노선은 남고와 여고를 포함해서 8개의 고등학교를 지나갔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로 운행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실제로 걸리는 이동시간을 따지면 1시간 반정도 걸리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가 자신의 꿈을 위해 전국에 몇 개 되지 않는 예고 문창과를 가기 위해 등학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도 아이 몫이라 생각했다.  


일부러 그날 일을 쉬고 저녁에 있을 학부모 총회에 느긋하게 갈 생각이었는데, 일정에 쫓기다보니 그날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미리 시간을 체크해서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언제나 예상은 빗나가는 것 같다. 이동 경로 대다수가 대중교통으로도 닿지 않는 공간들이었고, 이래저래 움직이다보니 매번 시간에 쫓기며 간신히 움직였고, 마지막 학교를 향하는 길에서도 어이없는 실수로 한 정거장 먼저 내리는 바람에 겨우 시작 시간 5분 전에야 행사장에 도착했다. 학부모 총회 자체는 단순했다. 대부분이 학교 측의 전달사항들이었고, 그것도 대학입시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원래는 학교 차원의 총회와 각 과별 총회와 각 반별 총회가 각각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 총회는 못하고, 각 과별로 30명 정도의 학부모가 모이도록 분산해서 총회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뻔 했다. 이럴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감사해야 하나?


문창과 전체 학부모가 모이는 총회를 마치고 각 반별로 다시 모였고, 나는 아이의 반으로 이동했다. 아이에게 연락해서 아이 자리가 어딘지 물었다. 창가쪽 맨 뒷자리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놓고 번호를 정하고 번호가 빠른 순서부터 창가쪽 자리부터 세로로 자리를 배치한 거라고 했다. 예전에 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고 번호가 빠른 순서부터 가로로 자리를 배치해서, 키가 작은 아이들이 앞쪽부터 채우는 방식이었다. 나는 중2까지는 키가 작아서 앞에서 둘째줄이나 셋째줄에 앉곤 했지만, 그 이후로는 중간 정도인 너댓째 줄에 앉게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이의 책상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가 예전에는 소위 반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애들이 앉는 자리라는 것이 떠올랐다. 창가쪽 맨 뒷 자리. 이건 영화나 소설에서 일종의 클리셰처럼 쓰이는 장치일 것이다.


수첩을 한 장 찢어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글자를 적어서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아이가 등교해서 교과서를 꺼내다가 발견하고 놀라겠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문창과 1학년 학부모들은 대략 스무명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부부가 모두 참석한 경우도 한 두 쌍 정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외로 아빠들이 몇 명 있어서 놀랐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부모 참관 수업이나 학부모 총회라고 가보면 아빠들은 거의 없어서 나 혼자이거나 겨우 한 두명 정도 더 보았는데, 여기는 나 포함 너댓명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앞서 적었듯이 총회에 오기 전에 일정이 꼬여서 간단히라도 배를 채울 시간이 없어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배가 고팠다. 사람은 누구라도 배가 고프면 기분이 나빠지는 법. 이제 겨우 1학년 학부모일 뿐인데, 학부모들이 계속 대학 입시에 대한 질문만 해대는 걸 보고 짜증도 나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오히려 대학 입시는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아이들이 평소 어떻게 지내는 지, 혹시 뭔가 불편한 것은 없을지 이런 질문을 할텐데. 어쩜 단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 입시에 대한 질문만 해댔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그런 자리에서 입시에 대한 질문만 던지는 부모라면 아이를 아이로서 바로 보지 못하고 그저 대학에 목을 매는 얼빠진 부모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근데 질문을 한 부모는 모두 예외없이 입시 질문이었느니,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부모가 얼빠진 부모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에 빠졌다. 물론 질문을 하지 않은 부모가 더 많았으므로 그건 확실히 착각이며, 입시 질문을 던졌다고 꼭 그렇다는 법은 없으니 더더욱 착각이다.



아이에게 아빠란


아이가 공모전(옛날엔 백일장이라고 불렀는데, 요샌 이렇게 부른다고)에 낼 소설 주제를 고르다가 아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주제를 환경이나 에너지 쪽으로 정하려고 하는데, 이 일을 오래 하고 있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자신이 아는 아빠는 그냥 아빠일 뿐이고,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피상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아마 3년쯤 되었을텐데, 작은 아이가 우리 가족을 캐릭터로 만들면서 엄마는 소띠라 소를 모티브로 해서 '움마'라고 했고, 언니는 토끼를 모델로 해서 '단토끼'라고 했으며, 자신은 다람쥐가 좋다고 '람쥐'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각 동물 모양을 만화 캐릭터로 만들었었다. 그때 아빠는 북극곰을 모델로 해서 '끄곰이'라고 이름을 짓길래, "왜 아빠는 북극곰이야?" 라고 물었더니, "아빠는 북극곰을 살리는 일을 하잖아."라고 답하더라. 그때 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요 꼬마 녀석이 이런 말을 다 할 줄 아는구나. 그때 아이가 그린 캐릭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이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두었다.


그런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가입해서 내 계정의 모든 게시물을 다 찾아보고 좋아요를 누른 아이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아빠. 내가 그때 북극곰 캐릭터 만들었을 때, 진짜 그렇게 말했어?" 그렇게 멋진 말을 해서 아빠를 감격하게 만든 아이는 몇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한 말을 기억도 하지 못했다. 어째 허무한 기분이다.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것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남들만큼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한 점도 그 중 하나다. 다만 나는 어려서부터 워낙 가난하게 자라서 지금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다음으로 미안한 점은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일하는 곳에 많이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큰 아이의 경우 특히 더 그랬다. 작은 아이는 내가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다니면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 받으며 일할 시절에 태어났지만, 큰 아이는 한창 단체 활동가로서 일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에 태어났다.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 육아와 가사노동을 함께 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날에는 모든 일정에 아이를 데리고 움직여야 했다. 저녁에 회의나 토론회나 강좌가 생기기도 하고, 촛불집회가 잡히기도 했다. 주말에도 이런저런 일정들이 많았다. 특히 집회가 잡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는 집회에 참가하는 입장이 아닌 집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입장이어서 집회에 빠질 수도 없었다. 아직 어린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등에는 기저귀와 여벌옷과 분유통이 든 가방을 메고 집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맡아 처리하곤 했다. 


거리 행진을 하다가 아기가 울면 근처 큰 건물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기저귀를 갈아주고 길가에 앉아 분유를 먹이기도 했다. 행진 대오가 멀어지고 나면 아기를 들춰 업고 뛰어서 따라가곤 했다. 어릴 때 내 기억 속에 가장 먼저 외웠던 노래가 동요나 대중가요가 아닌 민중가요였던 것처럼, 큰 아이는 아기 때부터 나를 따라 온갖 집회 현장을 다녀서 이런 저런 구호와 운동가들을 따라하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어릴 때 일이라 지금은 기억을 못하는 듯하다. 


작은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녹색당 활동과 동네의 크고 작은 일들에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이젠 아이들이 좀 자라기도 했고, 아이가 둘이라 서로 놀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큰 아이는 좀 지겨워하고 싫어하기도 했지만, 작은 아이는 반대로 놀러가는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나는 한 편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엄마와 아빠 덕분에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내 경험이 내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아이의 인생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다만 늘 바쁜 삶이라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은 미안한 일이다. 또 아빠를 따라 늦게까지 밖에 머물러 피곤한 아이들을 보면 정말로 미안했다. 언젠가 저녁 회의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한 9시쯤 회의를 다 마치기도 전에 회의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거의 10시가 다 되어 내려야 하는데, 두 녀석이 서로 기댄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한참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나 역시 엄청 피곤하고 힘들었다. 나는 대체 뭘 위해 나와 아이들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잠시 들었지만, 어쨌거나 애들을 데리고 내리지 못하면 훨씬 더 고생이고, 훨씬 더 피곤해진다. 큰 아이의 가방을 앞 쪽으로 메고, 작은 아이의 가방은 한쪽 팔만 걸쳐서 내 가방 위에 얹히게 만든 다음에, 한 팔에 하나씩 아이들을 안고 일어섰다. 좌석에 뒤로 기댄 아이들을 내 몸쪽으로 기대게 만들고, 양 팔을 아이들 엉덩이 밑으로 집어넣어, 균형을 잘 잡으며 일어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소 스쿼트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행이었다.


일단 열차에서 내리는데 성공했고, 계단을 올라갔는데, 두 손에 아이를 안은 채로 지갑을 꺼내 교통카드를 찍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옆에 계신 누군가에게 청바지 뒷 주머니 지갑을 꺼내 찍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정신이 없어서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여성 분이 친절하게 지갑을 꺼내 찍어주고, 다시 내 잠바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거리였다. 집 근처에 다와서는 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아이 둘을 안고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냥 갈 수 밖에.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약 7년쯤 전이었던 것 같은데, 작은 아이는 아직 어려서 가벼웠지만, 큰 아이는 많이 자라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게다가 잠든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걷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 출구 계단을 오르고 나니 찬 바람이 확 불었다. 한참을 더 걷다보니 팔이 후덜거리기 시작했다. 팔에 힘이 빠져서 안긴 자세가 불편해서인지, 찬 바람 때문에 잠이 깬 것인지 몰라도 큰 아이가 잠이 깨서 칭얼거렸다. 쪼그려 앉으면서 큰 아이를 잠시 땅에 내린 상태로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잠시 칭얼대다가 곧 상황을 파악하고 씩씩하게 걸었다. 작은 아이는 깨지도 않고 계속 안겨서 자고 있었다. 한 손에 작은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갔다. 설잠에서 깬 큰 아이가 많이 칭얼대지 않고 대견하게 걸어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두 아이는 각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나에게 어린이를 위한 에너지 강의를 들었었다. 나는 지역의 어린이 도서관이나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 등에서 어린이 에너지 교실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많이 맡아서 진행했고, 이왕이면 내가 맡은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데리고 참여하곤 했으니, 아이들은 내가 하는 일이 대략 이런 분야 일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튼 그래서 큰 아이의 공모전에 도움 될만한 정보들을 찾아줬다. 일단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이니 청소년과 기후위기 활동을 연결해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정리해줬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청소년 에너지 교육을 가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한 두가지 아이디어와 몇 해 전에 애들 엄마가 번역한 어린이, 청소년 기후변화 활동에 대한 내용에 내가 국내 사례를 정리해서 짧은 원고를 보태어 출간한 책을 책장에서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청소년 기후위기 활동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너무나도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레타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청소년 기후위기 대응 활동들. 그 중에서도 정부를 상대로 한 청소년 기후 소송 사례들을 알려줬다. 아이가 접근하기 쉽게 정리된 몇 개의 사이트 정보와 유튜브 동영상 등을 추천해줬다. 아이는 무척 신기해하고 흥미로워했다. 특히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처럼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졌던 희망사항이었다. 한국이라는 환경 분야에 있어서 최악의 조건에서 환경운동을 해온 덕분에 소설로 써먹기 좋은 에피소드들이 꽤 있기도 하고. 잘만 구상하면 흥미로운 소설이 될 것 같지만, 잘 담아내고 싶은 욕심과 글 쓸 시간이 없다는 핑계 때문에 늘 머릿 속으로 구상만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아이가 먼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아이가 이 내용을 잘 숙성시켜 잘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공모전 마감일은 이미 바로 코 앞이었다. 아이에게 이번에는 참여해 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공부하고 고민해서 풀어내어 보라고 했다. 절대 욕심부러지 말고,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것만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아빠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아이가 이런 일로 나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해줘서 고맙다. 아이가 글을 쓰고 싶어 해서, 내 관심사 역시 글쓰는 일이어서 다행히고, 아이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마침 내가 아주 잘 알려줄 수 있는 것이어서 고마운 일이었다.


늘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한 아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빠라서 다행이다. 하루하루 참 힘들고 괴로운 인생이지만, 뭐하러 살아야 하나 싶은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 정도면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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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26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눈물났어요..감은빛님도 꼭 쓰셨으면 해요!! 아버지가 제게 그런 쪽지를 남겨주셨다면 저는 평생 간직했을거예요ㅋㅋㅡ창가쪽 맨뒷자리 선점했던 미미😊

감은빛 2021-03-30 23:25   좋아요 2 | URL
앗! 미미님. 혹시 학창시절에 껌 좀 씹이셨던가요? ㅎㅎ
창가 맨 뒷자리는 아무나 못 앉는 자리 아니던가요? ㅎㅎㅎ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3-26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쪽지를 넣어놓고 오시다니.. 감은빛님은 넘 멋진 아부지~ 제가 바라던 딱 그런 아버지네요~👍👍
따님이 고등학생인데도 글을 쓰고 싶다고 문창과에 입학한 거 넘 멋져요~ 은빛님도 소설 꼭 쓰시고 따님도 작가 데뷰하셔서 제 2의 한승원-한강 부녀가 탄생하길!!🙏(이거 칭찬으로 한 건데, 이 작가를 싫어하시면 어쩌나 살짝 걱정~헤헷~)

감은빛 2021-03-30 23:33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 그래서 아이의 친구들이 저보고 로맨틱한 아버지 라고 말했대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작은 아이는 깔깔 웃으면서
˝누가? 우리 아빠가????˝ 이런 반응을 보였어요. ㅎㅎ

바람으로서는 저도 아이도 원하는대로 글을 쓰면서 살아가면 좋겠지만,
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는 걸 깨닫게 되기 마련이죠.
저도 한때 골방에 갇혀서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평생 글쓰며 살아갈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과분한 칭찬을 하시고는 오히려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다니!
붕붕툐툐님의 태도에 제가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ㅎㅎ

희선 2021-03-27 0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학교에 가서 감은빛 님이 수첩에 적은 걸 보면, 겉으로는 이건 뭐야 해도 마음속으로는 기뻐할 듯합니다 1학년인데 벌써 입시 이야기를 하다니...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나 그런 걸 물어봐야 할 텐데, 부모는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요 감은빛 님이 글을 쓰기도 하셔서 따님이 물어보기도 했군요 그건 감은빛 님이 좋으셨겠습니다 함께 이야기 할 게 있어서 좋을 듯합니다 벌써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다니 부럽네요 따님이 지금은 즐겁게 하면 좋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1-03-30 23:36   좋아요 3 | URL
네, 희선님. 아이가 글쓰는 일을 하고 싶어해서 좋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쓴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해줄 수 있어서 좋고,
함께 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어떤 스킬을 기르는 훈련을 하면 좋은지를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지만 내가 좀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겨우 이 정도 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사람은 언제나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scott 2021-03-3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따님에게 따스한 빛 같은 아부지 ^ㅎ^

감은빛 2021-04-12 16:50   좋아요 0 | URL
scott 님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