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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선언 - 탈핵부터 프레카리아트까지, 녹색당이 필요한 7가지 이유
녹색당 기획, 김종철.하승수.이보아 외 지음 / 이매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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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어린이집에 들렀다 갈 때와 초등학교에 들렀다 갈 때의 출근길 느낌이 많이 다르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큰아이가 이젠 초등학교에 다닌다. 가방도 달라졌고, 안에 들어있는 책들도 다르다. 실내화 주머니도 하나 더 들어야 한다. 게다가 집에서 꽤 멀어졌다. 어린이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끝이지만, 학교는 교문을 들어서서 운동장 한쪽 곁으로 걸어서 건물까지 한참 더 걸어가야 한다. 그뿐인가 등원시간에 비해 등교시간은 더 빨라졌다. 혹 늦게 들어가서 선생님께 야단맞게 될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끌어당기며 걸음이 빨라진다.

 

 

 

아이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데,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서너 명이 기호와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후보 이름을 부르면서 학교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선거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아직 3월 초인데 벌써 학생회장 선거를 하나 싶었다. 운동장을 거의 다 빠져나올 무렵 그 여자아이들의 진행방향에서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또 다른 팻말을 들고 후보 이름을 외치면서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경쟁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교문을 나서기 직전 게시판을 보니, 후보로 나선 아이들 숫자가 상당히 많다. 내 어릴 때 기억에는 두 팀(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이상 나온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얼핏 살폈는데 기호 5번이란 글씨를 본 듯하다. 아이들도 새 학기를 맞아 선거를 치르는구나. 전철역 근처에도 슬슬 정당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하는데,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선거의 계절, 정치의 계절을 맞게 되는구나 싶다.

 

 

 

3월 초에 창당한 녹색당에서도 뒤늦게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명망가가 없고, 재력가도 없고, 유명한 정치인도 없는 갓 창당한 신생정당이라서 선거비용을 마련할 방법도 쉽지 않다. 십시일반 당원들의 특별당비를 추가로 걷어서 선거운동비용에 조금이라도 보태기로 했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녹색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할 녹색당이 요즘 창당과 동시에 총선을 치루기 위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간다. 지역구 후보 2명과 비례대표 후보 3명을 만들어냈다.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기장에 출마한 구자상 후보는 2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온 믿음이 가는 선배이다. 탈핵 후보로서, 환경후보로서, 시민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영양, 영덕, 봉화, 울진 지역에 출마한 박혜령 후보는 현재 신규원전부지로 선정된 지역의 여성농민이자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대책위 위원장이다. 여성으로서, 농민으로서 탈핵의 기치를 이끌어나가는 멋진 후보라고 생각된다.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모도 대단하다. 첫번째 후보는 환경단체 활동가 출신으로 미군기지 문제나 에너지 문제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이유진 후보이다. 아주 성실한 분으로, 그 성실함으로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서 지금과 같은 전문가의 영역에 오른 사람이다. 두번재 후보는 현재 팔당 유기농단지를 지켜오고 계신 대책위 위원장 유영훈 님이다. 오랫동안 유기농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자, 4대강 개발에 맞서 유일하게 개발을 막아낸 분이다. 그 분의 삶의 궤적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잠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대단히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세번째 장정화 후보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를 결합한 에코 페미니스트로서, 생명 감수성이 예민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후보이다. 비록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정치인은 없지만,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니,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 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성실하며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진정한 풀뿌리 정치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솔직히 살면서 단 한 번도 선거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반장 선거 같은 것도 한 번도 안 나가봤고, 대학 때도 학년 대표나 학생회 일은 해봤지만 학생회장에 나가는 것은 늘 거절했다. 골치 아프게 앞에 나서는 것이 싫었던 탓이다. 선배들이 귀찮게 등 떠밀어도 죄다 거절해왔고, 나중에는 후배들이 선거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모두 다 거절해버렸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선거 운동이란 걸 하게 되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돈이 생겨서도 아니다. 지금 출마한 내 동료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해 열심히 뛰어주고 싶다. 또 그렇게 하는 일이 나와 내 아이들과 가족 모두, 친구들 모두를 위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조리 있게 잘 전달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요즘처럼 절실하게 말과 글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소 나는 말도 잘 하는 편이고, 글도 조금 쓴다고 생각해왔으나, 요즘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아직 한참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잘난 척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하고, 그 부족함을 부지런히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글 솜씨와 말주변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일은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말씀 드리겠다. 정당 투표는 꼭 녹색당을 찍어주시기를 바란다! 이 척박한 땅에 어렵게 피어난 녹색 새싹을 잘 키워주시길 바란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여러분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서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작은 희망 하나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

 

 

 

때마침 이 땅에 왜 녹색당이 필요한 지, 잘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사실 이 책이 총선 전에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느라고 뒤에서 조금 애를 썼다. 내 글은 정말 부족하기만 한 짧은 글 하나가 들어가 있을 뿐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마치 내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것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더 부끄럽기도 하다. 녹색당을 설명하는 백 마디 말보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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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1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내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애쓴 보람은 결코 헛됨이 없는 법이니

정녕 인간을 위한 사람들이
정치 하기를 바라는 마음 입니다.

감은빛 2012-03-19 12:42   좋아요 0 | URL
애쓴 보람이 결코 헛됨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2-03-1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례대표는 '녹색당' 꼭 투표하겠습니다~ ^^
우리 독서회원들에게도 홍보할게요~ 아자아자!!

감은빛 2012-03-19 12:4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이 댓글 읽고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당투표는 꼭 녹색당을! ^^
고맙습니다!

cyrus 2012-03-1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말씀하신 책이 드디어 나오게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
책의 부제목을 봐서는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언급이 있을거 같은데
저도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홍보해야겠습니다. ^^

감은빛 2012-03-19 12:45   좋아요 0 | URL
프레카리아트 라는 용어는 한 차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 참여한 청소년이 한 명 있고,
20대 필자가 대여섯명정도 있습니다.
20대 필자들이 대부분 이 땅의 청년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요.
시루스님께서도 청년이시니, 당연히 관심이 있을 듯 합니다.
아주 감동적인 글들이 몇 있으니, 강추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카스피 2012-03-1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나온것 같습니다.축하드려용^^

감은빛 2012-03-19 12:45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

잘잘라 2012-03-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매니아인 저에게 이 책은 으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표지디자인입니다!^^

감은빛 2012-03-19 12:46   좋아요 0 | URL
아! 메리포핀스님 연두색을 좋아하셨죠!
거부할 수 없다면 어서 읽고 주위에 추천을 해주세요! ^^
 
나는 꽃이 아니다 - 세계사 속 여인들의 당당한 외침
신금자 지음 / 멘토프레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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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학생운동이나 조직운동 경험이 비교적 짧다. 같은 세대의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알만한 조직이나 사건들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친구들은 그런 이유를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운동 내부에서의 세력다툼과 경직된 면들이 싫었고, 운동권 내부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들을 깨닫고 경멸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운동과 조직운동에서 발을 뺐다. 그래서 친구들이 대부분 알만한 경험들에 나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때 몸담았던 학생회 내부에서 보았던 것들은 우리가 비판해왔던 기득권들과 별반 차이없는 태도들이었다. 말로만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말로만 자본주의를 비판하면 끝인가? 그 자신의 태도는 어느 누구보다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적어도 스스로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 등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은 없지만, 대개 나는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남녀의 실제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고 그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생활속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작은 차별들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부당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가. 말로서 그런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나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나도 조금만 방심하면 다른 이들에게(특히 나보다 어린 여성에게) 그런 인상을 주지 않을까 늘 생각하고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늘 반성하고 더 많은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를 불편해한다. 당연하게 육아휴직을 요구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이렇게 중요한 시국에 개인의 입장만 생각한다는 불만이었다. 아이들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야근을 할 수 없다거나,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하면, "와이프는 뭐하냐?"는 질문만 되돌아 왔다. 남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사노동과 육아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 인물 이야기라고 해서 좀 더 참신하고 재밌는 내용일거라고 기대했지만, 책 내용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았고,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썩 참신하다고 느껴지지지 않았다. 그래도 복습하는 기분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차근차근 읽어가는 재미는 있었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기록된 역사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만 다로 모아놓았다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사를 남성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여성들도 바라보자는 취지는 좋은데, 역사를 왕과 위인들만의 역사로 바라보는 듯한 태도는 아쉬웠다. 왕들과 위인들만의 역사로 기록된 내용은 거짓 역사이다. 모든 역사의 주인들은 묵묵히 자신의 삶은 살아온 대다수 민중들이다. 성평등을 이라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보려한 저자라면, 권력관계와 참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에 대해서도 모를 리 없을 듯 한데, 전체적으로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업어 아쉬었고, 몇몇 인물에 대한 기술에서는 우려할만한 왜곡이 담겨 있어 안타까웠다.

 

가장 좋았던 점은 뒤로 갈수록 잘 몰랐던 근대 이후의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점이었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고, 차분하게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이야기를 주욱 따라가다보면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거나, 알고 있던 지식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기에서 짧게 많은 인물들을 다루었지만 나중에 소수의 인물들을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여러가지 시각에서 살펴보는 시도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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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와 다르게, 감은빛님의 리뷰는 아주 리뷰다운걸요.
특히 아래에서 세번째 문단의 힘있는 자의 역사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평,
참 좋습니다. 그러게요, 사실이란게 얼마나 왜곡되고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겠지요.

균형잡힌 시각이라는게, 날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

감은빛 2012-03-09 15:16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언제나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는 마녀고양이님, 고맙습니다! ^^
저는 마녀고양이님 특유의 글이 참 좋아요!
느낌이 좋다고 해야할까요?
그에 비하면 제 글은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고......

균형잡힌 시각! 정말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cyrus 2012-02-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S***님도 읽으셨던데 감은빛님도 이 책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셨네요. 역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는데 있어서
균형적인 시선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게 아닌거 같아요.

감은빛 2012-03-09 15:18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렇죠. 어느 분야에나 마찬가지일수 있지만,
특히 역사 분야에서는 훨씬 더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한 쪽으로(여성의 시각) 공정한 듯 하지만,
다른 쪽으로(민중의 시각) 불공정한 면을 보이고 있어서,
읽기에 불편했습니다.
 

두번째 책

 

공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된 두번째 단행본이 곧 나온다. 첫번째 단행본은 (알라딘에서는 여러 이웃분들이 아시겠지만) <100인의 책마을>이었다. 솔직히 이 첫 책에 필자로 참여했던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무척 부끄럽기도 하다. 책이 나오고 나서, 다른 분들의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고 느꼈다. 다른 분들의 글은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뭔가 의미를 전하고 있는데, 내 글은 그닥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별로 의미도 없는 듯 했다. 그동안 글 공부 좀 했다고 생각해왔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아직 한참 내공이 부족하구나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또 두번째로 단행본에 짧은 원고 하나를 보탰다. 이번에는 단순히 공저자 중 한명으로만 참여한 게 아니라, 기획단계에서부터 필자들 연락하고 책 진행 전반적인 부분을 챙기는 준비팀에 참여했다. 작년 10월 말에 기획을 시작해서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했고, 12월에 필자들에게 원고 청탁하고, 취합하고, 독촉하고, 수정요청하고, 직접 수정하기도 하는 등 한창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도 여러가지 진행을 해오다가 2월 초부터는 또 책의 서문을 쓰느라고 꽤 오랜 시간 고생을 했다. 처음에 글의 컨셉을 잘못 잡았다가 두 차례나 수정을 해야했고, 결국에는 첫 원고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글을 다시 써야했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웠다. 역시 나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많이 느꼈다.

 

 

어제 최종적으로 전체 필자들에게 수정사항을 받아서 취합하고, 표지에 들어갈 필자 소개를 확인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오늘 원고가 우리 손을 떠났다. 인쇄 작업으로 들어갔고 다음주 금요일쯤에 출간된다. 그러면 서점에서 볼 수 있는 건 그 다음주가 될 듯하다.

 

이번 책의 제목은 <녹색당 선언>이다. 작년 10월 말에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해서 이번 3월 4일에 '창당대회'를 여는 '녹색당' 당원들의 글을 모았다. 참여 필자가 무려 29명이나 되고 인터뷰를 한 <일다>의 조이여울 기자까지 포함하면 글쓴이는 30명이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책이 나오면 다시 해야겠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우선 그동안 원고 취합하고 검토하거나, 여러가지 챙길 것들을 살펴보거나, 서문을 쓰기 위해 괴로워하면서 하얗게 지새웠던 밤들에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두고 싶다.

 

 

인연

 

흔히 "세상 참 좁다!"는 말들을 한다. 나 역시 "한 두 사람만 건너면 다 만난다"는 말을 가끔 한다. 그건 내가 일반적인 사회생활의 범위보다 좀 더 폭이 좁은 곳에 속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해 운동판이라고 불리는 이 바닥에서는 정말 한 두 사람 건너면 죄다 아는 사람들이다.

 

일주일 전인 토요일 정동에서 연달아 두 가지 행사에 참여했다. <조영관 시인 문학창작기금 수상식>과 예전에 함께 일했던 활동가의 결혼식이었다. 두 곳에서 아주 오랫만에 여러 선배들과 동료들, 후배들을 만났다. 반가운 얼굴들이 정말 한 둘이 아니었다. 문동만 선배와 임성용 선배 그리고 박일환 선생님과 이시백 선생님 모두 무척 오랫만에 뵈었다. 게다가 그 날은 '희망버스' 때문에 갇혀있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송경동 선배와 정진우 실장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최근에는 아내와 더 가까워진 박수정 선배와 그날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희정 씨 역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터라 반가웠다.

 

결혼식에서 만난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랫만에 얼굴을 보게 된 이들이다. 예전에 일했던 단체의 운영위원 선생님들을 거의 대부분 뵐 수 있었고, 함께 고생했던 선배, 후배 활동가들과도 오랫만에 힘찬 악수를 나누었다. 다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처음의 반가움 외에는 이 사람들과 함께 나눌 공동의 관심사가 그닥 없었고, 오랫만에 친한 척 하려니 무척 어색한 듯한 태도가 스스로도 확실히 느껴졌다. 마음으로는 반가웠지만 그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다소 무뚝뚝했으리라.

 

이날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반가운 이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민중 가수 이수진씨였다. 처음 만난 건 바로 앞서 언급한 그 단체에서 활동할 때였다. 그는 자원활동가였고, 나는 자원활동가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상근활동가였다. 당시에는 아쉽게도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몇 번 만나지 못한채 업무상의 관계가 끊겼다. 다시 만난 건 아마도 FTA반대 집회에서였다. 수진씨의 풍부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 덕분에 대번에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가운 마음에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반가워하고 그새 바뀐 서로의 상황들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그 후로도 아주 가끔 거리에서(즉 집회에서) 그와 마주치곤 했다가 최근 몇 해동안 한번도 보질 못했고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조영관 시인 문학창작기금 수상삭>의 식순을 살펴보다가 그 이름을 발견했다. 작은 무대였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혼자 흐뭇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스피커와 앰프 등의 장비 옮기는 일에 조금 손을 보태면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조금 생각한 후에 내 이름을 기억해 냈다. 우리는 또 한번 어색하게 서로의 변한 상황을 조금 이야기했다. 알고보니 그는 얼마전 아내가 참석했던 지인의 결혼식에서도 노래를 불렀었다고 한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언니(그날의 신부) 동생의 절친이라고 했다. 우린 서로 신기하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정말 한 두 사람 건너면 다 만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정말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예전에 자신에게 너무 친절하게 잘 대해주셨던게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때 내가 그랬었나? 싶었지만 그냥 웃었다. 또 언제 그와 마주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좁은 바닥에서 움직이다보면 또 언젠가는 마주칠 것이다. 그럼 또 반갑게 웃으며 안부를 물어야겠다. 반가운 마음이 어색한 태도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 아래는 위에 언급한 작가들의 책들

 

 

 

 

 제 2회 조영관 시인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희정씨의 책.

 삼성이라는 절대 권력에 맞선 사람들

 책의 주제도 의미있지만,

 희정씨 특유의 섬세하고 탁월한 문장의 힘이 느껴진다.

 

 

 

 

 

 

 

 평택 대추리 농민들, 기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콜트 콜텍 해고 노동자들,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낸 거리의 시인.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로

 구속되었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기륭 집회현장에서 추락사고로 다친 발목에는

 아직 철심이 박혀있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차디찬 감옥에서 보낸

 추운 겨울을 생각해본다.

 

 

 

 

 문동만 선배의 매력포인트는 웃음이다.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

 

 앞에 나서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묵묵히 그를 받쳐주는 사람이 있다.

 문동만 선배는 그런 사람이다.

 작가회의에서나, 리얼리스트 100에서나

 늘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해주는 사람.

 

 

 

 

 

 

 

 임성용 선배는 정말 재밌다.

 그의 걸쭉한 사투리와 입심은 웃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그의 해학 코드를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가끔 시인들이 산문을 더 잘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송경동 선배도, 임성용 선배도.

 박일환 선생님 역시 시도 좋지만, 산문도 참 좋다.

 

 물론 이 책은 글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저 위의 희정씨의 책과 함께 소개하기 위해 올려놓는다.

 

 

 

 

 

 

 

 

 

 언젠가 꼭 권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 한 적이 있다.

 이시백 선생님의 글은 설명이 불필요하다.

 그냥 한번 읽어보면 이해할 것이다.

 

 흔히 성석제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한 수 위다.

 

 

 

 

 

 

 

 

 

 박수정 선배의 남미 여행 이야기

 출판 기념회 때 구입해서 싸인을 받아왔지만,

 정작 나는 읽지 못했다.

 대신 아내가 열심히 읽었다.

 

 가끔 아내를 통해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는

 선배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그 따뜻하고 넓은 마음으로 더 많은 이들을 품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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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2-2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인의 책마을> 님의 글에 동그라미도 치고 밑줄 그어가며 읽었고, 며칠 전에도 환경도서 확인하느라 다시 펴 보았는걸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저도 읽어보려고 TTB광고에도 올려두었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두번째 나오는 책도 기대하고요~ ^^

감은빛 2012-03-09 15:10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제 글을 열심히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네, 삼성을 다룬 책들은 죄다 사다놓긴 했는데, 저도 꼼꼼히 읽지는 못했어요.
소개를 했으니,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2-02-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또 나오는군요, 멋지네요.
감은빛님, 이거 축하드려야 하는거 맞요? ^^

감은빛 2012-03-09 15:10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12-02-2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감은빛 2012-03-09 15:11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의 축하는 특히 더 반갑네요! ^^

숲노래 2012-02-2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당선언 미리 축하해요~

감은빛 2012-03-09 15:11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cyrus 2012-02-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책 내시는거 축하합니다. 그동안의 노고가 책이라는 결실이 맺게 되었군요.
책이 출간하시는대로 서재에 바로 알려주는 것,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

감은빛 2012-03-09 15:12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이 출간되었는데, 바쁜 일정때문에 알리지 못하고 있네요.
곧 글하나 올릴게요! ^^
 
폭풍의 언덕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주의! 이 글에는 책의 주요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책을 읽을 생각이시라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의 영혼 캐시에게

 

세상 그 어떤 말로도 도저히 표현 할 수 없는 나의 영혼, 캐시. 너는 지금 어디있니?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니? 보고 싶구나. 그래 나도 이제 곧 너를 만나러 가게 될 거야. 너도 어디선가 보았겠지. 나를 계속 보고 있었겠지? 비록 살아서는 우리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우리 사랑을 방해한 인간들 모두에게 복수했어. 그 잘난 힌들리와 보잘것없는 에드거와 이사벨라까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어. 아니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 차라리 죽음은 축복이었을지도 몰라. 그뿐 아냐. 힌들리의 아들과 이사벨라와 나 사이의 아들 그리고 캐시 너와 에드거 사이의 딸까지 모두 내 뜻대로 만들었어. 헤어턴은 글자도 모르고, 입만 열면 거친 욕설 밖에 모르는 촌놈이 되어버렸어. 크크 나를 하인 취급했던 힌들 리에겐 하나 밖에 없는 아들 헤어턴이 자신에게 지껄이는 욕이 가장 큰 복수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야 늘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에게는 사실 내가 복수 한 것이 아니야. 그 스스로가 그렇게 된 것 뿐. 오히려 내가 한 복수는 재산을 뺏은 것 밖에 없지. 이사벨라의 아들. 음 그러니까 내 아들. 그 못난 놈은 이름이 린턴이었어. 크크 이름조차 비실거리는 린턴이었으니, 평생 빌빌거리다가 가버렸지. 아니 됐어. 그 자식에 대한 얘기는 관둘래. 내 마음으로 그 놈을 아들로서 인정한 적도 없지만, 그 못난 놈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멍청한 놈! 캐시. 네 딸은 내 아들과 결혼했어. 흐흐 못난 놈에게는 과분한 결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에드거 린턴을 파멸로 몰아넣고, 그 재산을 모두 뺏어야만 했거든. 설마 내가 너와 나의 못다한 사랑을 자식 대에서 이뤄주기 위해 둘을 결혼 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지?

 

캐시. 나는 하루에도 몇 십번, 아니 몇 천번씩 그날을 후회해! 23년 전 바로 그날을. 너와의 말다툼이 있었던 날. 그리고 얼떨결에 몰래 너의 속마음을 들어버린 그 날 말야. 만약 내가 그날 네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너는 과연 그 보잘것없는 에드거 린턴에게 가버렸을까?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너는 나를 버리고 떠나지 않았을거야! 그래 너를 떠난 것은 나였어! 나는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어떻게 네가 나를! 우리의 영혼은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던 그 입으로, 어떻게 네가 나를 두고 에드거 자식을 사랑한다고, 그와의 결혼을 입에 올릴 수가 있어! 어떻게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네 곁을 지킬 수가 있었겠어!

 

아니 모든일의 시작은 26년 전이었어. 우리 둘이 몰래 집을 빠져나가 습지를 쏘다니다가 린턴가의 ‘티티새 지나는 농원’으로 들어간 날 밤. 그날이 없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아마도 달랐을거야. 그 비실대는 에드거 놈을 만나지도 않았겠지. 아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제발 돌이킬 수만 있다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우린 그날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되돌아 왔어야 했어. 그 빌어먹을 망할 집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캐시, 나의 영혼 캐시. 네가 죽은 후로 단 하루도 아니 단 한순간도 널 잊지 못했어. 하루라도 더 빨리 널 만나고 싶었어. 이 강인한 육체는 절대 아플 일이 없지만, 내 마음은 늘 병들어 있었지. 하지만 이제까지 내게는 할 일이 있었어. 내 사랑을 방해했던 모든 인간들에게 파멸을, 복수를 돌려주는 일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어. 남은 인간들. 헤어턴과 캐서린을 더 이상 조정하고 싶지 않아. 이제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졌어. 그저 네가 보고 싶어. 캐시, 조금만 더 기다려. 지금 곧 갈거야! 26년 전 습지를 함께 쏘다녔던 그날 밤 이전의 시간으로. 제발 다시 한 번 더 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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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2-20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독 후댓글입니다. 편지글 형식의 리뷰를 읽고 싶지만 아직 읽지 않아서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민음사판이 있는데 그거라도 읽어봐야겠어요.
그리고,, 시간 되신다면,, 샬럿의 제인에어도 읽어주세요 ^^

감은빛 2012-02-22 16:0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아고 죄송합니다!
<제인에어>를 선물 받고 당연히 리뷰를 써야 했는데,
그때 3분의 1정도 읽다가 말고, 여태 미뤄두고 있었네요.
안그래도 이번에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그 생각했습니다.
빨리 다 읽고 <제인에어>도 마저 읽어야지 하고 말이죠.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차트랑 2012-02-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풍의 언덕에 대한 리뷰를 다시 만나는군요.
반갑습니다~

감은빛 2012-02-22 16:09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폭풍의 언덕> 리뷰를 다른 서재에서도 만나셨나봐요. ^^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1. 1986년 체르노빌

1986년 4월 26일 금요일 오전 1시 30분,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트에서 3km 떨어진 블라디미르 리치 레닌 핵발전소 4호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후 크레믈린의 고르바초프는 핵발전소의 사고에 대한 보고는 받았지만, 폭발이나 방사능 오염 등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고르바초프는 원자로가 안전하다고 보고 받았다. 곧 아침이 되자, 프리피야트의 4만3천여 명의 주민들 역시 평소처럼 생활했다. 그들 역시 3km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폭발과 방사능 오염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26일 오후가 되어서야 프리피야트에 소문이 돌았다. 발전소에 화재가 났고, 사망자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거리에 마스크를 쓴 군인들이 나타났다. 당시 군인들을 통제했던 그레베뉴크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입안에서 금속성 신맛을 느꼈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은 맛이 없다고 들었는데, 신맛이 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나중에서야 그것이 방사성 요오드의 맛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고 있었던 그때 군인들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방사선을 측정했다. 26일 오후 프리피야트의 방사선은 평소의 15,000배나 높게 나타났으며, 저녁이 되자 600,000배까지 올라갔다. 군인들은 원자로가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계고장이거나 누군가의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사성 물질은 계속 유출되고 있었지만, 그 다음날인 27일 아침에도 공식 발표는 없었다. 당시 5살이었던 유리 마첸코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떤 예방조치도 없었고 평소처럼 탁아소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폭발 후 30시간이 지나서야 프리피야트에 1,000대가 넘는 버스가 도착했고, 27일 오후 2시에서야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체르노빌 전투> 캡쳐 이미지

 

이상은 체르노빌 사고 20년 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된 <체르노빌 전투>라는 다큐멘터리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보면서도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 자꾸만 되돌려서 여러 번을 보았다. 설마! 그렇게 심각한 핵폭발이 벌어졌는데, 소방관들은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어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선에 노출되고, 바로 옆 도시의 주민들은 하루 반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처럼 생활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2. 2011년 후쿠시마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 노심냉각장치의 비상전원이 고장 나면서 원자로의 압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3월 12일 오후 3시 36분 후쿠시마 제 1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 건물 외벽이 뼈대만 남고 날아갔다. 이틀 뒤인 14일 오전 11시 3호기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15일에는 2호기와 4호기에서도 폭발음이 나고 화재가 났다. 체르노빌 사고로부터 25년. 안전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원전에서 차례로 수소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2012년 2월, 후쿠시마의 사고로부터 약 11개월이 지났다. 사고는 전혀 수습되지 않았다. 지난 1월 27일 일본 환경성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원전사고 직접 피해지역의 약 3분의 1인 92㎢지역에 대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는 여의도의 11배에 해당하며, 해당 지역의 방사선량이 50mSv가 넘어 현재의 오염 제거 기술로는 방사선량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준치인 20mSv 이하로 낮출 수 없다고 한다. 사고 이후 거의 1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방사성 물질은 계속 방출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온갖 정보들을 통제하고 감추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사태의 심각성은 이미 체르노빌의 상황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 두 경우를 보면,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인간은 핵에너지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지만, 막상 한순간에 닥친 무시무시한 사고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멍청하고 나약하기만 했다. 원전 사고의 가장 무서운 점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방사능 물질로 인한 피해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점이다. 체르노빌의 경우 25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반감기가 각각 29년과 30년인 스트론튬이나 세슘 등은 아직 많이 남아있고, 그 피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러시아에 비해 좁은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3. 2012년 대한민국

만약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후쿠시마 원전에서 도쿄까지 거리는 대략 240km이다. 도쿄 시내 곳곳에서 이른바 초고농도 방사능 오염지역인 핫스팟이 발견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러 차례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해보자. 굴비로 유명한 영광 원전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대략 250km이고, 울진 원전에서 서울까지는 대략 210km이다. 남한에서는 어디 하나라도 사고가 난다면 도망갈 곳조차 없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1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7개를 건설 중이며, 앞으로 6개 이상의 신규원전을 더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시점 원전 숫자로는 세계 5위이며, 원전 밀집도로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보다 원전이 많은 나라 중에서 미국(쓰리마일), 러시아(체르노빌), 일본(후쿠시마) 핵폭발을 경험했다. 두렵지 않은가? 언제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수명 30년 남짓의 원전을 폐쇄하면 대략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격리 보관해야 할 사용 후 핵연료가 나온다. 10만년이라니! 그 오랜 시간동안 자연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할 수 있는 기술이 현재 우리에게 있을까? 고작 30년을 쓰기 위해 10만년동안 남을 위험한 쓰레기를 자손들에게 남겨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한 번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깨닫는다.

작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이 탈핵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녹색당이 필요하다. 그런 인식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현재 진행 중이다. 작년 10월 30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치른 이후 꾸준히 당원을 모집 중이며, 2월 5일 경기녹색당이 창당대회를 치렀고, 12일에는 서울녹색당이 그리고 14일 부산녹색당이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다양한 소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대안적인 정치를 꿈꾸고 있다면 지금 바로 녹색당 창당의 주역이 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녹색당 가입은 http://kgreens.org 에서 할 수 있다. 녹색당은 현재 정부의 방사능 무대책에 대한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며 1,191명의 국민 원고단을 모아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 노원자치신문 엔미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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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0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녹색당에 한 표 보태도록 도울게요~

감은빛 2012-02-09 17:21   좋아요 0 | URL
된장님! 고맙습니다! ^^

진주 2012-02-0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제가 '전기요금 얼마나~~'라는 페이퍼 썼는데
제가 전기를 아끼는 이유도 원전 때문입니다^^

감은빛 2012-02-09 17:21   좋아요 0 | URL
곧바로 찾아봤습니다!
좋은 글,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좋은날 2012-02-0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면 삼척에 살고싶다 생각했는데 원전이 생긴다니 참 속상해요.
감은빛님의 글 좋아서 읽기만 하고 갔는데 오늘도 좋은 글에 고마움글 남깁니다.
원전반대시위하러 삼척에 가고싶을만큼 속상해요.
자식들이 살곳이라 생각하면 원전을 반대해야 하는데 이기적인 어른들이 원망스러워요.

감은빛 2012-02-20 06:59   좋아요 0 | URL
댓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삼척 뿐만이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추가 원전은 짓지 말아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꼭 탈핵운동에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후보가 핵발전을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꼭 살펴보시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12-02-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은빛님 소개로, 녹색당 가입도 했어요.ㅎㅎ

감은빛 2012-02-20 07: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섬님!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
좋은 글이라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녹색당 가입!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함께 녹색 세상을 만들어 갈 동지가 되어 주셨네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마녀고양이 2012-02-1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2-02-20 07:0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고맙습니다!

차트랑 2012-02-12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본이 쩔어버린 방사능 물질을
바다로 고스란히 흘려보냈다는 기사를 접하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익한 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진주님,
저 전기 아껴쓸게요^^

감은빛 2012-02-20 07:05   좋아요 0 | URL
일본이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 냉각수를 바다로 흘려보냈지요.
이미 일본산 명태와 대구 등 세슘과 요오드에 오염된 생선들이 수입되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대형 어류들도 안먹는게 좋을 듯 합니다.

유익한 글이라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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