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스티브 잡스가 어떤 사람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저 그가 '맥'과 '아이폰' 등의 기계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고,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외에는 아는 것도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내 관심분야가 아니기에 알고 싶지도 않았다. 최근 그의 전기가 전세계 여러국가에서 동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번역이 엉망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여기까지 들었을때만해도 나는 이 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 이후 들었던 두 가지 소식 때문에 새삼 이 책을 검색해보게 되었다.  

하나는 선인세에 대한 소문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다빈치 코드' 그리고 '1Q84'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선인세에 대해 무성한 소문이 돌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인세 규모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말그대로 상상을 초월했다. 대채 어떤 책인지 이제서야 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이 책의 번역논란에서 아는 형의 이름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글을 클릭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몇 개의 글을 주욱 읽었다.

대충 파악한 바로는 처음 이덕하라는 번역가가 오역 의혹을 제기하고 이것이 이슈가 되자 각종 언론이 이를 보도하고 민음사와 이 책의 번역자 안진환씨가 해명을 한 것 같다. 여기에 다시 이덕하씨가 또 다른 오역 의혹을 제기하고 여기에 노승영 번역가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덕하씨와 노승영씨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거칠게 이해한 바로는 이덕하씨는 최대한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노승영씨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자연스러운 번역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두 사람의 번역에 대한 견해 차이는 좁혀질 수 없는 부분이기에 비생산적인 토론을 이어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노승영씨가 이덕하씨에 번역비교를 제안했다. 일정분량의 같은 글을 번역해서 서로의 번역을 비교해고, 이를 통해 서로의 입장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해보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인 이덕하씨가 이것을 일종의 '번역 배틀'처럼 포장해서 다음 아고라에 올린 것이다. 제목도 아주 그럴듯하게 '나는 번역가다'라고 붙여 놓았다. 

이덕하라는 분은 처음부터 오역을 지적했을 때부터 이런 태도였던 것 같다. 그가 유명세를 타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일을 벌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그는 예전부터 꾸준히 다양한 책들의 오역을 지적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에서 단정적인 말투와 자신과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 등을 통해 마치 고의적으로 유명한 책을 공격하여, 자신이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인 것 처럼 보인다.(그렇게 오해할만한 소지가 충분히 있다!) 그에 반해 노승영씨의 차분한 글은 확실히 예의를 갖추고 있고, 다른 사람의 견해도 인정하며, 설득력도 있다. 두 사람의 번역이 나오고 나서 실제로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번역의 방식은 정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의 장단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을 마치 승과 패가 존재하고,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이 두 사람의 글들을 주욱 읽으면서 번역이란 작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때 나도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주위에 전업 번역가가 몇 분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봤다. 결국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그리고 부족한 외국어 실력 때문에 시도도 안해보고 포기했지만, 어쨌거나 지금도 번역이란 일에 관심은 많다. 저 위에 언급한 해외에서 이미 유명했던 책들(그래서 출간되기 전부터 이슈가 되고,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은 거의 대부분 번역 논란에 휘말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도 '해리포터' 시리즈와 '다빈치 코드'의 경우 출간되었던 당시에 오역을 여러개 찾아내고 번역자와 출판사를 욕했던 기억이 난다. 누가 하더라도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번역자가 스스로의 능력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역할을 해준다면, 그를 더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대리 번역(마시멜로 이야기 건은 애교에 가깝다.)이나 자질 미달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그런 납득하기 어려운 성질의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번 논란에 대한 글들을 주욱 읽으면서 이 책의 경우 번역 자체에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따라서 리콜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일부 독자들의 요구는 이해하기 어렵고 실현될 가능성도 없어보인다. 원문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 번역가의 태도가 재미있는 현상을 낳았다. 덕분에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지인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덕하씨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아래는 이번 번역 논란에 대한 글들

<『스티브 잡스』 오역 논란을 촉발한 초보 번역가 이덕하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4910 

 
<번역가 노승영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5073 


<번역가 노승영 씨는 원저자와 독자 위에 군림하려고 하십니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5801&RIGHT_DEBATE=R10 


<번역 비교를 제안합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417  

 

 <『스티브 잡스』번역 관련 민음사의 공식입장입니다.>
http://cafe.naver.com/minumsa/18955 


<『스티브 잡스』번역자 안진환입니다.>
http://cafe.naver.com/minumsa/18956  

 

나는 번역가다: 노승영 vs. 이덕하 --- 예고편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6715&RIGHT_DEBATE=R9 


 


댓글(8) 먼댓글(1)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말 많고 탈 많은 <스티브 잡스> 전기 : 선인세 그리고 번역 오류
    from 행간을 노닐다 2011-11-04 19:04 
    를 주문 했다. 열풍(?)이 지나면 구매하려 하였는데 과 같이 주문했다. 독서일기가 며칠 걸려 다음주 초에나 올 것이다. 독서일기6은 절판이다. 반디에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같이 주문했다. 독서일기 때문에 잡스를 주문 한 것이다. 책이 좀 팔리니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배가 안픈 사람이 많은가 보다. 책에 대한 선인세도 논란이 되고 있다.(스티브 잡스에 대해 비판적인 나) 선인세는 금액의 액수가..
 
 
귀를기울이면 2011-11-04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있던 주제입니다. 이덕하씨 글을 보고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아직 저 책을 도입부까지밖에 읽지 못해서 참견은 못했죠. 사실 이덕하씨가 지적한 대로 다시 번역해 보니 저에게는 '읽고 이해하기 힘든' 번역이 나오더군요. 어쨌거나 말씀하신대로 책의 번역이 납득하기 어려운 큰 수준은 아닌듯 합니다. 민음사 카페에 가보니 성경에 준하는 책이라며 단어 하나하나 그대로 번역 해야한다는 분도 있던데 성경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같기도 한데다가, 그 정도 열정이면 (모르면 배워서라도) 원서를 봐야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은빛 2011-11-07 15:42   좋아요 0 | URL
이덕하씨의 주장이 일리있는 부분도 없지않지만,
대개는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음사 카페 댓글들 저도 읽었어요.
특히 그 성경 어쩌고 하는 댓글들 너무 웃겨서 읽기 힘들었습니다. ^^

노승영 2011-11-0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은빛… 트위터에서도 보기는 했는데 내 후배였어? 누군지도 모른 채 맞팔하고 있었는데. 쪽지 한번 보내주라.

감은빛 2011-11-07 15:43   좋아요 0 | URL
형! 어떻게 여길 들어왔죠? 신기하네요. ^^

yamoo 2011-11-0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헌책방에서 아주 싼 가격에 나오지 않는 이상 안 살 확률 100%에요..
대형서점마다 엄청 쌓아 놓고 팔더라구요~ 그니까 더 사기 싫은 거 있죠..--;;
서점에서도 한 몫 단단히 챙길 모양입니다. 최고 가판대에다가 쌓아 놓고 선전 열라 하면서 파니~ 몰루던 사람도 시선이 갈 정도입니다..ㅎ
김난도 선생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좀 그렇게 팔면 어디가 덧나는지...입소문으로 베스트1위 됐죠~

잡스 전기는 너무 띄워주기 하는 거 같아 좀 거시기해요~

감은빛 2011-11-13 23:51   좋아요 0 | URL
네. 서점가보니까 완전히 탑을 쌓아놓았더라구요.
예전에도 큰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로 띄우려는 책들의 경우,
탑을 쌓아놓은 걸 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저도 야무님과 비슷한 성향이어서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렇게 파는 걸 보면 더 사기 싫어집니다.

이 책은 제 취향이 아니어서 아마 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11-1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처음 원본이 쪽으로 건네져, 쪽 번역을 했다고 해서도 문제가 되었었죠.
저는 이번 일이 번역가들의 처우에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 발전을 하고 진일보 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싶습니다~^^

감은빛 2011-11-15 17:47   좋아요 0 | URL
네, 원고가 파일형태가 아닌 페이퍼로 몇 십쪽씩 여러차례 전해졌다고 들었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번역 오류를 지적한 이덕하씨의 지적은 그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거죠. 초보번역가를 자처하는 그 분은 매우 심각하게 읽기 어려운 지경의 직역만을 제대로된 번역이라고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입장에서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몇몇 유명한 분들을 제외하고 무척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앞으로 차차 좋아져야겠지요.

양철님, 오랫만에 뵈어서 무척 반갑습니다! ^^
 

 

하나. 체력 고갈 

요즘 유난히 모기가 많은 것 같다. 여름에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모기가 많은 걸까? 모기를 잡으려고 손을 휘두르면 10번에 9번은 헛손질이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역시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란 말인가. 시신경과 팔 근육이 예전만 못하단 뜻일까? 페이스북에 이 얘기를 올렸더니, 고맙게도 한 이웃분이 '모기가 더 빨라졌을수도 있다' 고 말씀하셨다. 내 눈에도 요즘 모기는 유난히 느리게 보이는데,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이런 위로의 말씀이 무척 고맙고 힘이 된다. 

여하튼 요즘 체력이 딸리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지난 주 평창으로 출장을 갔다가 같이 간 동료랑 함께 술을 마시는데,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나를 보고 그 친구가 '너 체력 좋다. 아직도 쌩쌩하다!'고 그랬지만, 그건 술마실때만 해당되는 얘기다. 게다가 술마시는 체력도 이젠 정말 예전만 못하다. 예전에는 며칠씩 연속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만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연속으로 마시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할 정도다. 아무리 피곤해도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집안일이 안되어 있으면(예를들어 설겆이나 분유병 삶기 등) 해놓고 잠들었는데, 그것도 요즘은 도저히 못하겠다. 이건 환절기라서 겪는 일시적인 현상일까? 노화에 따른 영구적인 현상일까? 궁금하다. 

 

둘. 상상력 고갈 

요즘 '너무 진부하다.', '판에 박힌 얘기를 한다', '그런 뻔한 얘기를 뭐하러 하냐' 등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 이것도 예전에는 절대 이렇지 않았는데!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독창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요즘은 그런 말을 통 듣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남의 얘기만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다. 뭔가 글을 하나 쓰려고 해도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좀 더 새롭고, 좀 더 신선한 글감이나 주제를 찾고 싶은데 늘 뻔한 이야기만 생각난다. 상상력이 딸린다. 저절로 의기소침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나란 인간에게 상상력이란 게 있기나 한가 싶을 정도로 상상력이 고갈되었다. 이것도 나이 탓으로 돌릴 것인가? 모르겠다. 

 

셋. 열정 고갈 

이건 앞의 두개와 연결되는 현상인 것 같은데, 체력도 안되고, 상상력도 딸리니까 자연스레 어떤 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졌다. 뭔가 하나를 붙잡고 늘어지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고, 끈질기게 그 일을 추진해나가던 예전의 내 모습은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맨날 여유가 없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가며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할 일들을 자꾸만 피하려고 든다. 지금의 내 모습은 예전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뭔가 하고싶은 일도 못하고, 뭔가 새로운 자극이 되는 일도 없고, 그저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보내는 모습. 

이렇게 생각이 드니, 무척 우울해진다. 딱히 뭔가 기분 나쁜 일도 없고, 기분 좋은 일도 없다. 어떤 변화의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게 어떤 일이 될지는 모르겠다.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기를 기대해본다. 

 

갖고 싶은 책은 늘 많지만(보관함에는 벌써 수백권의 책이 쌓여있다.) 책상위에 쌓여있는 산더미 같은 책들을 떠올리며 늘 책 구매를 자제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말 꼭! 갖고 싶은 책이 생겼다. 그런데 책값이 엄청나다! 그야말로 후덜덜이다. 일단은 보관함에 담아둔다. 아내의 눈치를 봐가며 적당한 시기에 질러야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1-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 영구적 현상이요
2번, 나이 탓이염
3번, 그것두 세월 탓이요

라고 대답한다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방금 책 확인하고 왔는데, 책 가격이 정말 후덜덜하군요.
아흑, 나아쁜 감은빛님, 저도 저 책 가지고 싶어졌단 말입니다!

감은빛 2011-11-07 15:37   좋아요 0 | URL
모두 다 세월 탓이고 나이 탓이군요. 흑흑 ㅠ.ㅠ
책 값이 정말 후덜덜이죠! ^^
죄송합니다!

잘잘라 2011-11-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나아쁜 감은빛님, 저두 ... 말입니다!!! ㅎㅎ

감은빛 2011-11-07 15:37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

yamoo 2011-11-0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직 모기는 안보입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요.ㅎ
운동을 해 보심이...체력 고갈에는 잘 먹고 운동하는 것이 장땡이더군요~ㅎ
2. 상상력 사전 같은 걸 보심이...
3. 충전이 필요할 듯 싶어요.

아, 저도 방금 책 값 확인하고 후덜덜 했습니다...ㅎㅎ 넘 비싸서 전 패쑤~~

감은빛 2011-11-07 15:38   좋아요 0 | URL
와! 모기가 없다니 엄청 부럽습니다.
어느 동네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엄청 높은 고층 아파트 사시나요?
높은 층에 사는 분들 얘기를 들으니
거기까지 모기가 올라오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간혹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모기가 전부라고 하던데요.

yamoo 2011-11-07 22:11   좋아요 0 | URL
그냥, 단독주택인데요, 지대가 높다보니 모기가 별로 안보여요~
특히 올해는 별로 못봤어요. 저, 모기 날라댕기면 환장하거든요~ 약 뿌리고 별 난리를 다쳐요~..근데, 아직까지 안보이니, 살거 같아요..ㅎ
 
코끼리는 아프다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에 대한 친밀한 관찰
G. A. 브래드쇼 지음, 구계원 옮김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왜 코끼리가 아픈 걸까? 궁금했다. 육중한 몸과 두터워보이는 피부 덕분에 코끼리와 아프다는 단어는 쉽게 연결 되지 않는 이미지다. 제일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는 책의 제목이 <코끼리는 슬프다>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이 제목이 기획과 편집과정 내내 불린 제목이고, 마지막에 제목을 바꾼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책의 원제는 무얼까 궁금했다. 찾아보니 <Elephants on the edge>라고 되어있다. ‘on the edge’를 뭐라고 해석해야 매끄러울지 잘 모르겠지만, ‘위기의 코끼리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코끼리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몇 번쯤 동물원이란 곳을 가본 적이 있다. 호랑이나 악어를 본 기억은 선명하게 난다. 아마 거기에 코끼리도 있었을 법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끼리를 실제로 본 유일한 기억은 신혼여행에서였다. 아내와 나는 제주도에서 버스관광을 했는데, 이 버스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만 데려가는 게 아니라 종종 무슨 공연장이나 쇼핑시설 같은 곳으로도 데려갔다. 그 중 한 곳에서 코끼리 쇼를 보여줬다. 그때는 거대한 덩치의 코끼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묘기에 눈이 팔려 웃고 즐겼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코끼리들이 무대 밖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진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도시와 관광지에서 코끼리들은 감금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코끼리도 인간처럼 자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간의 폭력에 노출되었던 코끼리들이 보이는 다양한 이상행동을 모두 정신질환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코끼리들은 자연 상태에서 가족과 무리와 함께 작은 사회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들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이유 없이 다른 동물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코뿔소들이 젊은 수코끼리들에게 공격당해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단다. 왜 코끼리가 코뿔소를 공격해서 죽였을까? 한편 한 중년의 암코끼리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될 자해행위를 반복하고 다양한 이상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한다.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를 피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해행위를 지속하는 코끼리라니!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 설명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말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 이번에 찾아봤다. 말그대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후에 받게된 스트레스 덕분에 다양한 정신적 장애가 생기는 증상이었다. 그럼 코끼리들은 어떤 심각한 외상을 입었을까? 이 책의 5장에는 다른 책에서 인용한 코끼리 도태작업(코끼리의 수를 일정하게 조절하기 위해 죽이는 작업)모습이 아주 끔찍할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들은 3명이 1분 안에 98마리의 코끼리를 죽인다고 한다. 이런 학살의 과정에서 어른 코끼리들은 모두 죽고, 겨우 살아남은 어린 코끼리들은 다른 동물원이나 다른 나라로 팔린다. 여기서 살아남은 어린 코끼리들은 평생 그 상처와 충격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제나'라는 이름의 중년 암코끼리의 증상을 'E. M.'이라는 가명으로(코끼리라는 사실을 숨기고) 5명의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의뢰했다. 그 결과 5명 모두 'E. M.'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했으며, 치료계획도 비슷했다고 한다. 놀랍다! 인간만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고 사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도 역시 그런 정신질환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디 코끼리뿐이겠는가? 동물원에 갇힌 다양한 동물들. 자신의 고향에서 강제로 옮겨진 수많은 동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코끼리는 아프다. 바로 인간이 저지른 무자비한 폭력과 감금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바쁜 맞벌이 부부에게 동물원 나들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걸까? 만약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갈 일이 생긴다면 저 동물들이 저기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꼭 설명해줘야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1-10-2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렵으로 죽은 엄마고릴라 옆에서 발견된 어린 고릴라를 동물학자가 길렀는데 나중에 그림을 지적하며 수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어릴 때 엄마가 총에 맞아 죽은 장면을 재현했다고 하네요.

감은빛 2011-10-24 15:19   좋아요 0 | URL
저런! 그 고릴라가 받았을 충격이 엄청났을 거예요.
영장류에 대해서는 그래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지능이나 감성적인 면에 대해 많이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하면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그런 시도가 없는 것 같구요.

yamoo 2011-10-2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코끼리가 넘 불쌍하네요~

근데, 코뿔소도 코끼리한테는 지는군요~ 첨 알았습니다..ㅎㅎ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감은빛 2011-10-24 15:2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코뿔소가 코끼리보다 더 쎌 것 같은데.
책에 보면 10년동안 100마리 이상의 코뿔소가 코끼리에 의해 죽었다는 군요.
게다가 이 글에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수코끼리가 코뿔소와 교미하는 장면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죠.

마녀고양이 2011-10-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뿐 아니라, 인간으로 인해 힘든 동물들로 인해 마음이 짠합니다. ㅠㅠ

하지만, 동물원에서 우리 속에 갇혀있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가르쳐주시면
아이들은 동물원을 즐기기는 어렵겠네요. 그럼 동물원에 놀러갈 필요가....
아하하, 이거 어려운 문제인데요.

감은빛 2011-10-24 15:28   좋아요 0 | URL
동물원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린이집에서 다녀온 얘길 듣긴 했어요.
동물원을 통해 거대한 야생동물들을 실제로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 동물들이 갇혀있기 때문에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네요. 어려운 문제이긴 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10-2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들도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이 있더군요.코끼리가 죽은 동료를 사이에 두고 무리지어 모여서 무슨 의식같은 걸 하는 장면도 관찰되었고, 늑대나 원숭이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감은빛 2011-11-07 15:36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왜 이 댓글을 놓쳤을까요? 죄송합니다!
그렇죠. 동물들도 분명히 감정이 있어요.
동물들의 심리와 감정에 대해 더 다양한 사례들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12-22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3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략 10년쯤 된 것 같다.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 와중에, 왜 우리나라에는 녹색당이 없을까? 지금이라도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아무도 만들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2003년 독일의 '햇빛전도사'로 유명한 환경운동가 프란츠 알트씨가 오셨을 때, 내게 '한국에 녹색당이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없다고 답했고, 왜 없느냐고 묻는 질문에 뭐라 답을 하지 못하고 떠듬거리기만 했다. 알트씨는 자신이 대만 총통과 독대한 자리에서 대만이 태양광발전을 위주로 하는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을 채택하도록 설득했던 사례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직접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나서 설득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당시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사안들 '새만금 간척사업'과 '경부고속철도 사업'등을 설명하면서 대통령(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초기)이 그렇게 쉽게 설득될 사람이 아니고,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정치권과 원자력 기득권 세력들이 워낙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거라고 떠듬떠듬 설명했었다. 알트씨는 당시 독일의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원전 수명을 32년으로 정하고, 하나씩 원전을 폐기해나가서 결국 탈핵을 이루고, 장기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80%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결국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독일은 원자력 에너지를 완전히 벗어나기로 선언했다! 바로 오랜시간 활동해온 녹색당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녹색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참 오랫동안 많이 해왔던 생각이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녹색당이 생긴다. 지금 한창 창당준비 작업을 하고 있으며, 10월 30일(일)에는 녹색당 발기인 대회가 열린다. 한 두세달쯤전부터 창당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진짜? 이번에는 드디어 되는거야? 예전처럼 움직임이 있었다가 다시 그만두는건 아닐까? 마치 양치기소년을 대하듯 반쯤 믿고, 반쯤은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만큼이나 일이 진척되는 걸 보고나니 더이상 방관할 게 아니라 함께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녹색당과 함께 하고 싶다!

 

 

  

 

 

 

 

 

 

 

 

 

 

 

 

 

녹색당 창당 움직임과 함께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역시 '탈핵'이다. 일본 현지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정말 이상한 상황이다.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조용한 거야 충분히 이해할만하지만, 언론이 이처럼 조용한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미 그 악명 높은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하고 끔찍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이를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언론은 단 한 곳도 없다.

 <방사능 상식 사전>이란 책이 나왔다. 우리 아이들을 무시무시한 핵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는 원자력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주에 건설되고 있는 방폐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익중 교수님의 동영상을 소개한다. 이 동영상을 보고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교수님의 주장은 모두 방폐장관리공단측의 답변을 통해 확인을 받았고, 그 주장에 따르면 핵폐기물의 방사능이 모두 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 세상에! 방폐장에서 방사능이 모두 유출될거라면 뭐하러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서 방폐장을 건설하나?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이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는 아래 동영상을 꼭 시청하시길 권한다. 

방폐장 방사능 유출 예상 동영상 보러가기 

  

 

아래는 프란츠 알트씨의 책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1-10-1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으시겠어요. 감은빛님도 들어가실 건가요?
감은빛님의 활약상 기대해도 좋을런지...?^^

감은빛 2011-10-20 10:55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녹색당 창당 멤버로 참여합니다.
뭐 제가 활약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직업 정치인이 아닌 평당원일 뿐이니까요.

서형원 2011-10-2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이 너무 반갑네요.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페이스북 녹색당 그룹에 링크할게요~!

감은빛 2011-10-21 11:23   좋아요 0 | URL
서형원 의원님, 안녕하세요.
초록정치연대 시절부터 활동하시는 모습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yamoo 2011-10-2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녹색당 창당 멤버시라니, 대단한데요~ 평당원이라도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감은빛님의 건투를 빕니다~!^^

감은빛 2011-10-24 15:30   좋아요 0 | URL
야무님, 고맙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라서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뭐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제가 뭔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  맨홀 뚜껑 

금요일 아침이었다. 왼팔에 아기를안고 분유병이 든 어린이집가방과 기저귀꾸러미를 들었다. 제법 무거웠다. 하필 기저귀가 다 떨어져서 갖다줘야 하는날 아침부터 비가오다니! 오른손에 우산을 들었다. 큰애를 비교적 가까운 어린이집 근처까지 보내놓고 돌아섰다. 작은애 어린이집을 향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참 걷는데 갑자기 발이 미끄러졌다! 순간적으로 이대로 넘어지면 큰일이다! 아이랑 함께 빗물 고인 땅바닥에 널부러지면 뒷수습이 안된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발에 힘을 주었다. 발목이 기이하게 뒤틀리고, 무릎이 땅에 닿았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기를 안은 팔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엄청 들어가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아기를 고쳐 안고, 우산도 고쳐 쓴다. 바닥을 보니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졌다. 마치 얼음을 위를 걸었던 것처럼 미끄러졌다. 넘어지는 순간 날이 추워서 얼음이 얼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 맨홀 뚜껑을 밟으면 굉장히 미끄럽다. 그런데 골목길을 걷다보면 맨홀 뚜껑을 굉장히 자주 만난다. 작년에는 눈 오는 날 큰애가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이후로 큰애는 맨홀만 보면 멀리서부터 경계하고 있다가 크게 돌아서 가곤 한다. 평소라면 몰라도 오늘처럼 양 손을 다 쓸 수 없는 상태에, 앞을 제대로 살피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수도 있다. 어쨋거나 아기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오래전에 아주 많이 울게 만들었던, 그 영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 얘기다. 아내가 일주일간 집을 떠나 있었다. 멀리 해외출장을 갔다. 그동안 아이들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내의 해외 출장은 1년마다 한번씩 돌아온다. 작년 가을에만 둘째가 너무 어려서 한 해를 쉬었고, 그 외에는 계속 다녀왔다. 맨처음 아내의 출장때는 나도 걱정이 좀 되었다. 아직 큰애가 어렸기 때문에 오랫동안 엄마랑 떨어져 지내도 괜찮은지 몰랐다. 그런데 의외로 큰 애는 엄마를 별로 찾지 않았다. 특히 밤에 잘 때 엄마를 찾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큰애는 난지 백일즈음부터 6개월간 내가 육아휴직을 받아서 키웠다. 그 기억 덕분에 엄마 없이도 잘 지냈던 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두번째, 세번째 해가 바뀌면서 반복되는 출장에 점점 큰애는 힘들어했다. 엄마를 찾으며 서럽게 울어댔고, 전화를 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엄마가 있는 곳은 지금은 밤이라고 전화가 안된다고 얘길해도 통 듣지 않았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힘들어도 안아주고 달래주면 괜찮아져서 잠들었는데, 아침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머리 묶어주고, 옷입혀서 어린이집 보내놓고, 출근하기에도 바쁜 아침시간에 아이가 엄마를 찾아 울어대면 대책이 없었다. 얼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억지로 씻기고 어린이집메 밀어넣고 나면 늘 일터에는 지각이었다. 

올해는 엄마없이 지낼 아이가 둘이 되었다. 솔직히 둘째는 아직 어리긴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늘 보채고 우는 게 일인 녀석이니까, 엄마가 있든 없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큰애였다. 이 녀석이 이번에도 엄마를 찾아댈 게 뻔하단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아내가 떠난 첫날 밤은 둘 다 별 문제없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큰녀석이 깨자마다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애기 젖병을 챙기고, 큰애 준비물을 챙기다가 급히 달래보려고 애를 쓰는데, 이번에는 둘째녀석이 언니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울음으로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한 팔에 하나씩 안아들고 간신히 달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억지로 애들 준비를 시키고 출발했는데, 앞으로 이 짓을 며칠 더 반복할 생각을 하니 정말 머리가 아팠다. 셋째날 아침에는 둘째녀석이 코를 심하게 훌쩍거렸다. 아무래도 병원을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오전에 바쁜 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오후에 시간을 빼서 병원을 가야했다.  

그래도 둘째녀석은 아픈 와중에도 씩씩하게 잘 지냈다. 잘 먹고, 잘 놀고 늘 그렇듯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고 온 집안을 왈칵 뒤집어 놓았다. 큰녀석도 평소에는 말을 잘 듣고, 언니 노릇을 잘 했다. 다만 아침에 깨울 때 엄마를 찾는 게 문제였다. 토요일은 출근을 안하니까, 금요일까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요일 오후에는 아내가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을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지나갔다. 금요일 밤에는 완전 녹초가 되어서, 설겆이도 안하고, 젖병 소독도 안해놓고 애들을 재우면서 그냥 뻗어버렸다. 

일요일 오후 아내가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주 방방 뛰면서 기뻐했다. 큰애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아내는 시차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고 저녁나절부터 계속 잠을 잤다. 애들은 오랫만에 만난 엄마가 안놀아준다고 자꾸 옆에 가서 칭얼거렸다. 아내는 계속 자다가 애들을 씻길 때에 좀 도와주고 다시 잠들었다.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을 얼른 씻기고 재우고 싶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안 불을 다 끄고 누웠다. 큰애는 자꾸 엄마에게 말을 시키고 아내는 비몽사몽간에 가끔 대답을 했다. 둘째녀석은 불을 다 껐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집안을 다 돌아다니며 혼자 놀았다. 아마 아내가 제일 먼저 잠들었고, 나도 곧 뒤따라 잠들었다. 애들은 뭐 알아서 놀다가 잠들었을 것이다. 엄마없는 하늘아래 보낸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댓글(20) 먼댓글(1)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엄마없는 하늘 아래
    from Oh~ Beautiful Love 2011-10-18 11:36 
    같은 제목 다른 내용... 많이 다른 내용이긴 하다.며칠 전 중3 큰아이가 (그냥 고맙고, 그냥 사랑하고, 그냥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새아빠와 엄마와 셋이서 살던 그 친구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들었단다.처음엔 그냥 눈물만 흘리다가... 가방을 사다가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더란다.언니도 없고 동생도 없고, 달랑 엄마 하나 믿고 살았을텐데... 그 처지
 
 
잘잘라 2011-10-1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특히 마지막 단 '..아내가 돌아왔다' 이후 모습이 아주 실감나게 생생하게 잘 그려져서 재미있어요. 님에게는 엄청 힘든 일주일이셨겠지만..^^; 아빠 일기 책 내셔도 좋겠어요. 제가 꼭 사서 읽을께요. 정말요.

감은빛 2011-10-18 14:24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빠가 쓴 육아 일기 같은거 출간된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 비해서 저는 아직 너무 부족하죠.
그래도 메리포핀스님 칭찬 덕분에 힘이납니다! 아자! ^^

hnine 2011-10-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엄마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그래도 엄마가 '잠시' 없는 며칠을 보냈으니 다행이지만 정말 엄마 없이 커가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휴~ 마음이 짠...합니다.
반가와서 엄마한테 자꾸 말시키는 큰 아이 모습이 눈에 막 그려져요.
저 초등학생때 실제로 그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책 읽으면서 찔끔찔끔 울던 생각도 나고요.

감은빛 2011-10-18 14:2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엄마와 아빠중에 아이들은 엄마를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점점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구요.
아빠는 아무리 잘해줘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구요.

읽어주시고, 말씀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1-10-1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어쩌다 한 번이라 더 힘든가봐요. 우리 애들은 엄마나 아빠가 집 비우는 거에 너무 익숙해서... 심지어 둘다 출장이 겹쳐 외가나 친가에 하루 맡길 때면 사촌들과 노는 게 즐거워 저희들이 하루 더 묵겠다고 자청하는 지경인지라... 오히려 서운해요. -.-;;

감은빛 2011-10-18 15:33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것처럼 1년에 한번이라 그런가봐요.
자주 그런 일이 생기면 오히려 괜찮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아직 어려서 그렇겠거니 싶어요.
좀 더 자라면 괜찮아질 날이 오겠죠.

MoonGun 2011-10-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횽... 일하면서 보험관련 서핑하다가

http://blog.aladin.co.kr/biometrics/4557189

요기서 낯익은 필명 발견해서 블로그 함 들어와봤네요ㅋ



감은빛 2011-10-18 15:34   좋아요 0 | URL
어! 아는 사람이 우연히 들어오다니!
신기한 일이네. 잘 지내지? ^^

비로그인 2011-10-1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좀 웃기도 하다가, 한편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일주일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거군요 ^^

감은빛 2011-10-18 15:3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말씀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아이들은 그만큼 또 자라겠지요. ^^

blanca 2011-10-1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고생하셨어요. 이제 엄마랑 마음껏 안고 즐거워할 일만 남은 거군요.

감은빛 2011-10-18 15:3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고맙습니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엄마가 돌아온 이후,
아빠는 완전 찬밥 신세입니다.
(큰애한테요. 다행히 둘째는 아빠를 더 찾네요.)

순오기 2011-10-1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산다는 건 정말 큰 일이네요~ 일주일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고생하셨어요~~~~ 내년에는 더 자라서 좀 더 수월하겠지요.^^

감은빛 2011-10-18 15:39   좋아요 0 | URL
지나고보니 금방 지난 것 같기도 한데,
그때는 참 길게 느껴졌어요.
내년에는 좀 더 수월하려나요? 글쎄요. ^^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책가방 2011-10-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빠이신 것 같아요..^^
아이들 챙겨서 유치원 보내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감은빛 2011-10-18 15:41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 저는 매일 하는 일인걸요.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매일아침 데려다주고 출근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pjy 2011-10-1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아빠의 부재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_- 어휴~ 애쓰셨네요^^; 그래도 역시 엄마는 위대해요! 그쵸^^?

감은빛 2011-10-18 15:41   좋아요 0 | URL
네, 엄마는 위대해요!
아빠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루쉰P 2011-10-1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결혼하면 아이들과 저렇게 신나게 살아야 되겠죠. ^^ 전 절대 부인이 어디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겠어요.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감당이 안 됩니다. 전 이 글에서 감은빛님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를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그 일념으로 맨홀 뚜껑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꿇는 그 모습!! 진짜 대단한 모습입니다. 그 부성애 정말 감탄합니다. 일주일 동안 고생하셨어요. ㅋㅋㅋ

감은빛 2011-10-18 15:44   좋아요 0 | URL
아! 루쉰님이다! ^^
또 이렇게 열심히 저를 띄워주시는군요!
루쉰님 덕분에 웃어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