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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아프다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에 대한 친밀한 관찰
G. A. 브래드쇼 지음, 구계원 옮김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왜 코끼리가 아픈 걸까? 궁금했다. 육중한 몸과 두터워보이는 피부 덕분에 코끼리와 아프다는 단어는 쉽게 연결 되지 않는 이미지다. 제일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는 책의 제목이 <코끼리는 슬프다>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이 제목이 기획과 편집과정 내내 불린 제목이고, 마지막에 제목을 바꾼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책의 원제는 무얼까 궁금했다. 찾아보니 <Elephants on the edge>라고 되어있다. ‘on the edge’를 뭐라고 해석해야 매끄러울지 잘 모르겠지만, ‘위기의 코끼리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코끼리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몇 번쯤 동물원이란 곳을 가본 적이 있다. 호랑이나 악어를 본 기억은 선명하게 난다. 아마 거기에 코끼리도 있었을 법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끼리를 실제로 본 유일한 기억은 신혼여행에서였다. 아내와 나는 제주도에서 버스관광을 했는데, 이 버스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만 데려가는 게 아니라 종종 무슨 공연장이나 쇼핑시설 같은 곳으로도 데려갔다. 그 중 한 곳에서 코끼리 쇼를 보여줬다. 그때는 거대한 덩치의 코끼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묘기에 눈이 팔려 웃고 즐겼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코끼리들이 무대 밖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진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도시와 관광지에서 코끼리들은 감금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코끼리도 인간처럼 자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간의 폭력에 노출되었던 코끼리들이 보이는 다양한 이상행동을 모두 정신질환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코끼리들은 자연 상태에서 가족과 무리와 함께 작은 사회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들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이유 없이 다른 동물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코뿔소들이 젊은 수코끼리들에게 공격당해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단다. 왜 코끼리가 코뿔소를 공격해서 죽였을까? 한편 한 중년의 암코끼리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될 자해행위를 반복하고 다양한 이상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한다.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를 피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해행위를 지속하는 코끼리라니!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 설명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말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 이번에 찾아봤다. 말그대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후에 받게된 스트레스 덕분에 다양한 정신적 장애가 생기는 증상이었다. 그럼 코끼리들은 어떤 심각한 외상을 입었을까? 이 책의 5장에는 다른 책에서 인용한 코끼리 도태작업(코끼리의 수를 일정하게 조절하기 위해 죽이는 작업)모습이 아주 끔찍할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들은 3명이 1분 안에 98마리의 코끼리를 죽인다고 한다. 이런 학살의 과정에서 어른 코끼리들은 모두 죽고, 겨우 살아남은 어린 코끼리들은 다른 동물원이나 다른 나라로 팔린다. 여기서 살아남은 어린 코끼리들은 평생 그 상처와 충격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제나'라는 이름의 중년 암코끼리의 증상을 'E. M.'이라는 가명으로(코끼리라는 사실을 숨기고) 5명의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의뢰했다. 그 결과 5명 모두 'E. M.'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했으며, 치료계획도 비슷했다고 한다. 놀랍다! 인간만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고 사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도 역시 그런 정신질환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디 코끼리뿐이겠는가? 동물원에 갇힌 다양한 동물들. 자신의 고향에서 강제로 옮겨진 수많은 동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코끼리는 아프다. 바로 인간이 저지른 무자비한 폭력과 감금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바쁜 맞벌이 부부에게 동물원 나들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걸까? 만약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갈 일이 생긴다면 저 동물들이 저기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꼭 설명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