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맨홀 뚜껑 

금요일 아침이었다. 왼팔에 아기를안고 분유병이 든 어린이집가방과 기저귀꾸러미를 들었다. 제법 무거웠다. 하필 기저귀가 다 떨어져서 갖다줘야 하는날 아침부터 비가오다니! 오른손에 우산을 들었다. 큰애를 비교적 가까운 어린이집 근처까지 보내놓고 돌아섰다. 작은애 어린이집을 향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참 걷는데 갑자기 발이 미끄러졌다! 순간적으로 이대로 넘어지면 큰일이다! 아이랑 함께 빗물 고인 땅바닥에 널부러지면 뒷수습이 안된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발에 힘을 주었다. 발목이 기이하게 뒤틀리고, 무릎이 땅에 닿았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기를 안은 팔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엄청 들어가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아기를 고쳐 안고, 우산도 고쳐 쓴다. 바닥을 보니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졌다. 마치 얼음을 위를 걸었던 것처럼 미끄러졌다. 넘어지는 순간 날이 추워서 얼음이 얼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 맨홀 뚜껑을 밟으면 굉장히 미끄럽다. 그런데 골목길을 걷다보면 맨홀 뚜껑을 굉장히 자주 만난다. 작년에는 눈 오는 날 큰애가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이후로 큰애는 맨홀만 보면 멀리서부터 경계하고 있다가 크게 돌아서 가곤 한다. 평소라면 몰라도 오늘처럼 양 손을 다 쓸 수 없는 상태에, 앞을 제대로 살피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수도 있다. 어쨋거나 아기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오래전에 아주 많이 울게 만들었던, 그 영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 얘기다. 아내가 일주일간 집을 떠나 있었다. 멀리 해외출장을 갔다. 그동안 아이들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내의 해외 출장은 1년마다 한번씩 돌아온다. 작년 가을에만 둘째가 너무 어려서 한 해를 쉬었고, 그 외에는 계속 다녀왔다. 맨처음 아내의 출장때는 나도 걱정이 좀 되었다. 아직 큰애가 어렸기 때문에 오랫동안 엄마랑 떨어져 지내도 괜찮은지 몰랐다. 그런데 의외로 큰 애는 엄마를 별로 찾지 않았다. 특히 밤에 잘 때 엄마를 찾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큰애는 난지 백일즈음부터 6개월간 내가 육아휴직을 받아서 키웠다. 그 기억 덕분에 엄마 없이도 잘 지냈던 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두번째, 세번째 해가 바뀌면서 반복되는 출장에 점점 큰애는 힘들어했다. 엄마를 찾으며 서럽게 울어댔고, 전화를 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엄마가 있는 곳은 지금은 밤이라고 전화가 안된다고 얘길해도 통 듣지 않았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힘들어도 안아주고 달래주면 괜찮아져서 잠들었는데, 아침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머리 묶어주고, 옷입혀서 어린이집 보내놓고, 출근하기에도 바쁜 아침시간에 아이가 엄마를 찾아 울어대면 대책이 없었다. 얼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억지로 씻기고 어린이집메 밀어넣고 나면 늘 일터에는 지각이었다. 

올해는 엄마없이 지낼 아이가 둘이 되었다. 솔직히 둘째는 아직 어리긴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늘 보채고 우는 게 일인 녀석이니까, 엄마가 있든 없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큰애였다. 이 녀석이 이번에도 엄마를 찾아댈 게 뻔하단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아내가 떠난 첫날 밤은 둘 다 별 문제없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큰녀석이 깨자마다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애기 젖병을 챙기고, 큰애 준비물을 챙기다가 급히 달래보려고 애를 쓰는데, 이번에는 둘째녀석이 언니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울음으로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한 팔에 하나씩 안아들고 간신히 달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억지로 애들 준비를 시키고 출발했는데, 앞으로 이 짓을 며칠 더 반복할 생각을 하니 정말 머리가 아팠다. 셋째날 아침에는 둘째녀석이 코를 심하게 훌쩍거렸다. 아무래도 병원을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오전에 바쁜 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오후에 시간을 빼서 병원을 가야했다.  

그래도 둘째녀석은 아픈 와중에도 씩씩하게 잘 지냈다. 잘 먹고, 잘 놀고 늘 그렇듯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고 온 집안을 왈칵 뒤집어 놓았다. 큰녀석도 평소에는 말을 잘 듣고, 언니 노릇을 잘 했다. 다만 아침에 깨울 때 엄마를 찾는 게 문제였다. 토요일은 출근을 안하니까, 금요일까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요일 오후에는 아내가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을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지나갔다. 금요일 밤에는 완전 녹초가 되어서, 설겆이도 안하고, 젖병 소독도 안해놓고 애들을 재우면서 그냥 뻗어버렸다. 

일요일 오후 아내가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주 방방 뛰면서 기뻐했다. 큰애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아내는 시차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고 저녁나절부터 계속 잠을 잤다. 애들은 오랫만에 만난 엄마가 안놀아준다고 자꾸 옆에 가서 칭얼거렸다. 아내는 계속 자다가 애들을 씻길 때에 좀 도와주고 다시 잠들었다.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을 얼른 씻기고 재우고 싶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안 불을 다 끄고 누웠다. 큰애는 자꾸 엄마에게 말을 시키고 아내는 비몽사몽간에 가끔 대답을 했다. 둘째녀석은 불을 다 껐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집안을 다 돌아다니며 혼자 놀았다. 아마 아내가 제일 먼저 잠들었고, 나도 곧 뒤따라 잠들었다. 애들은 뭐 알아서 놀다가 잠들었을 것이다. 엄마없는 하늘아래 보낸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댓글(20) 먼댓글(1)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엄마없는 하늘 아래
    from Oh~ Beautiful Love 2011-10-18 11:36 
    같은 제목 다른 내용... 많이 다른 내용이긴 하다.며칠 전 중3 큰아이가 (그냥 고맙고, 그냥 사랑하고, 그냥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새아빠와 엄마와 셋이서 살던 그 친구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들었단다.처음엔 그냥 눈물만 흘리다가... 가방을 사다가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더란다.언니도 없고 동생도 없고, 달랑 엄마 하나 믿고 살았을텐데... 그 처지
 
 
잘잘라 2011-10-1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특히 마지막 단 '..아내가 돌아왔다' 이후 모습이 아주 실감나게 생생하게 잘 그려져서 재미있어요. 님에게는 엄청 힘든 일주일이셨겠지만..^^; 아빠 일기 책 내셔도 좋겠어요. 제가 꼭 사서 읽을께요. 정말요.

감은빛 2011-10-18 14:24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빠가 쓴 육아 일기 같은거 출간된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 비해서 저는 아직 너무 부족하죠.
그래도 메리포핀스님 칭찬 덕분에 힘이납니다! 아자! ^^

hnine 2011-10-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엄마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그래도 엄마가 '잠시' 없는 며칠을 보냈으니 다행이지만 정말 엄마 없이 커가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휴~ 마음이 짠...합니다.
반가와서 엄마한테 자꾸 말시키는 큰 아이 모습이 눈에 막 그려져요.
저 초등학생때 실제로 그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책 읽으면서 찔끔찔끔 울던 생각도 나고요.

감은빛 2011-10-18 14:2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엄마와 아빠중에 아이들은 엄마를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점점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구요.
아빠는 아무리 잘해줘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구요.

읽어주시고, 말씀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1-10-1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어쩌다 한 번이라 더 힘든가봐요. 우리 애들은 엄마나 아빠가 집 비우는 거에 너무 익숙해서... 심지어 둘다 출장이 겹쳐 외가나 친가에 하루 맡길 때면 사촌들과 노는 게 즐거워 저희들이 하루 더 묵겠다고 자청하는 지경인지라... 오히려 서운해요. -.-;;

감은빛 2011-10-18 15:33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것처럼 1년에 한번이라 그런가봐요.
자주 그런 일이 생기면 오히려 괜찮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아직 어려서 그렇겠거니 싶어요.
좀 더 자라면 괜찮아질 날이 오겠죠.

MoonGun 2011-10-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횽... 일하면서 보험관련 서핑하다가

http://blog.aladin.co.kr/biometrics/4557189

요기서 낯익은 필명 발견해서 블로그 함 들어와봤네요ㅋ



감은빛 2011-10-18 15:34   좋아요 0 | URL
어! 아는 사람이 우연히 들어오다니!
신기한 일이네. 잘 지내지? ^^

비로그인 2011-10-1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좀 웃기도 하다가, 한편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일주일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거군요 ^^

감은빛 2011-10-18 15:3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말씀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아이들은 그만큼 또 자라겠지요. ^^

blanca 2011-10-1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고생하셨어요. 이제 엄마랑 마음껏 안고 즐거워할 일만 남은 거군요.

감은빛 2011-10-18 15:3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고맙습니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엄마가 돌아온 이후,
아빠는 완전 찬밥 신세입니다.
(큰애한테요. 다행히 둘째는 아빠를 더 찾네요.)

순오기 2011-10-1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산다는 건 정말 큰 일이네요~ 일주일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고생하셨어요~~~~ 내년에는 더 자라서 좀 더 수월하겠지요.^^

감은빛 2011-10-18 15:39   좋아요 0 | URL
지나고보니 금방 지난 것 같기도 한데,
그때는 참 길게 느껴졌어요.
내년에는 좀 더 수월하려나요? 글쎄요. ^^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책가방 2011-10-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빠이신 것 같아요..^^
아이들 챙겨서 유치원 보내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감은빛 2011-10-18 15:41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 저는 매일 하는 일인걸요.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매일아침 데려다주고 출근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pjy 2011-10-1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아빠의 부재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_- 어휴~ 애쓰셨네요^^; 그래도 역시 엄마는 위대해요! 그쵸^^?

감은빛 2011-10-18 15:41   좋아요 0 | URL
네, 엄마는 위대해요!
아빠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루쉰P 2011-10-1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결혼하면 아이들과 저렇게 신나게 살아야 되겠죠. ^^ 전 절대 부인이 어디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겠어요.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감당이 안 됩니다. 전 이 글에서 감은빛님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를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그 일념으로 맨홀 뚜껑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꿇는 그 모습!! 진짜 대단한 모습입니다. 그 부성애 정말 감탄합니다. 일주일 동안 고생하셨어요. ㅋㅋㅋ

감은빛 2011-10-18 15:44   좋아요 0 | URL
아! 루쉰님이다! ^^
또 이렇게 열심히 저를 띄워주시는군요!
루쉰님 덕분에 웃어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