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2001년 6월에 초판 발행된 책이다. 인문학 자연과학을 망라, 지난 20세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니까, 지금 읽기엔 뒤늦은 감은 없는 것인지 약간의 우려를 하였다. 그러나 그런 거 없었다.

퍽 재미나게 읽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딱이 구성이 안 잡힌다. 대담자를 쌍쌍이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러면서 쌍쌍이 늘어놓기 시작하고 있는 나.

이윤기와 그의 딸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맨 앞에 나온다. 딸이 그에게 왜 신화를 연구하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대답한다. 사람의 현상에 관심이 있는 내가 여기 안 빠지겠니? 그리고 또 말한다. 예술은, 가늘디 가늘면서도 한없이 절실한 떨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최창조와 탁석산이 만나서 풍수 이야기로 물고를 튼다. 그런데 풍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둘을 한 쌍의 대담자로 정한 편집자의 의도가 하 수상타. 최창조와 탁석산은 사람의 기질상 서로 많이 다른 거 같다. 최창조는 자신의 실력과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에 비해 무척 조용한 기질의 사람이고, 탁석산은 자기 고집과 자기 주장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인 듯하다. (그 만큼 확고한 지식 기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는 잘 모르겠공.) 그래서 대화가 주로 탁석산이 최창조에게 “최 선생님 좀 강하게 나가십시오” 하는 식으로 발언하고, 그럼 최창조는 웃으면서 “ 제가 싸움을 견디질 못해서.... 탁 선생님이 풍수하셨으면 제가 좋은 동지를 얻는건데” 하는 식이다. 재밌다.

상도 저자 최인호와 연봉 24억원 받는 CEO 윤윤수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라나 뭐라나.... 그래서일까. 박진감 있는 갑논을박의 논의는 없고, 서로의 이야기에 살을 보태고 부족한 걸 매꿔 주는 등 사이좋으면서도 격의없는 대화를 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김화영과 이문열의 대담이 아닌가 한다. 이 대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김미현의 공로도 조금 있고 말이다. 김화영은 이문열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교훈주의를 제대로 꼬집어 들고 있다. ‘제 돈 주고 책 사서 읽으면서 꾸중 듣고 싶어하는 독자가 어딨겠어요?’ 라는 요지가 김화영이 날린 비수다.   

함인희와 이숙경의 대화도 귀기울여 들어볼 만했다. 재미도 있었고. 이 세상의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어머니와 자식,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조명하고 있는 글이다.

다음 꼭지인 알라딘 서점의 주인 조유식과 헌책방 서점의 주인 노동환의 대화는 헌책을 좋아하고, 새책은 주로 알라딘 서점에서 산다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더더욱 흥미로운 장이었다.  

이 대화를 읽으면 대략의 알라딘 서점의 역사를 알 수 있고, 헌책방의 시스템도 주어 들을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서점과 헌책 서점이 서로 등진 적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운명이 함께 굴러간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한번 더 되풀이하여 꼼꼼히 읽을 가치가  있는 꼭지는 김우창과 김상환의 대담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우창은 6.25 전후에 대학을 다녔고, 자연 여건이 열악하여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렇게 김우창 세대가 번역해 들여온 서양 학문을 바탕으로 후학들이 비교적 쉽게 학업을 이뤘을 거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고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둘 것인가 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김우창은 이 시점에서 등소평이 얘기를 인용한다. 흰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나 쥐 잡는 것이 고양이지 그게 어디서 온 고양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서양의 것 그만두고 우리 것으로 자생해야 한다는 자생 담론에 대한 개인적 소견일거다. 우리 현실을 움직이고 있는 세력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이해도 없이 동양의 것만을 강조하기란 적절치 않기에.  

마지막으로 강유원과 최장집의 대담이 나온다. 씨네21에서 회사원이라는 직함으로 글을 쓰고 있는 강유원이라, 그가 얼마나 재치 있는 질문들과 멘트들을 할지가 궁금해서 또 귀기울여 들었다. 이 대화는 주로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고,  정치가 문학과 어떻게 공유될 수 있을까 하는 여지를 엿보게 하는 꼭지이기도 했다. 


이렇게 26인의 대화를 수박 겉핡기 식으로 훑었다. 이 책의 뒷부분을 보니 이 책이 부박한 오늘의 현실을 넘어서는 지혜가 되어 주기를 희망한다고 되어 있다. 글쎄...., 이념 과잉의 욕망 과잉의 이 시대를 지혜롭게 건너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이들의 입을 통해 즐겁고 따뜻하면서도 깊이를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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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2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벌써 몇년 전부터 읽는다 읽는다 해 놓고 못 읽고 있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것 같군요.^^

icaru 2004-05-3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에...다방면으로 시야를 넓혀 주는 책인 것 같아요....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친한 벗이 말하기를, 자신이 살아온 나날 중에서 들었던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고등 학교 다닐 적 어느 선생님의 우연한 다음과 같은 한마디였다고 한다.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되거나 그런 인부의 아내가 될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시는 인부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우직한 농사꾼이셨지만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시골에서 농사를 접고 서울로 상경하시었었다. 배움이 없고, 가진 기술이 없어 공사장 막일로 아내와 자식들을 건사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정직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사회에서 패배한 낙오자 정도로 일갈하는 선생님에게 친구는 뭔가를 보여 주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기분이 퍽 가라앉음을 느꼈다. 이 글은 전태일 자신인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에 대해 고(告)함이다. 전태일은 독자인 나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태일에게, 그리고 이 평전을 기술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 조영래의 사랑과 투쟁과 지혜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노예로서의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찬 지루한 나날을, 아무런 의의도 보람도 기쁨도 없는 껍데기의 삶을 애걸하며 또 애걸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될 수 없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쉽게 사로잡혀 있는 약한 자인 나에게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왜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는가? 왜 눌린자는 계속 눌리어 살아가는가?

 

여기 고통 받는 한 사람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고통에 찬 현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 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으로 되며,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 정신의 싹은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전태일이 위대한 것은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든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한 과거를 원망한다면 그 과거는 너의 영역에서 영원한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그들의 처지를 개선해주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장기표 씨의 후기에서 “인간이 명석하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부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태일을 보면서 민주화를 생각한다. 민주화란 무엇일까? 이 글에서 조영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흔히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줌도 못되는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본다. 영화 같은 데서 수많은 노예들이 채찍에 시달리며 묵묵히 중노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어째서 저 많은 노예들이 불과 몇몇의 감독자들에게 굴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 본다. 인간 사회가 형성된 이래 이러한 실태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사회적 민주화의 장애가 되고 있는 나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야기해야 할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노예 의식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노예 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 문제일 것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민중 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것일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재단사 일자리에서 쫓겨난 전태일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인부를 보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페되어 껍질을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일상 생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희망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미모의 이성과...... 그러나 그것들은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더욱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허구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탐욕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전태일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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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2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류의 숭고한 의미를 내포한 책들은 함부로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죠.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사회의 모든 가치관에 스스로를 기계 부속인양 맞추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의미를 주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4-05-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에...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전..이런 책의 리뷰는 밑줄긋기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네요....내내 그러네요~!

설박사 2004-05-2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태일이 20대 초반에 자살을 했지요? 저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구조적 부조리함에 대해서 많이 느끼지만... 글쎄요... 제 생각에는 전태일이 살아있었으면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hanicare 2004-05-2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태일 평전과 노자의 도덕경.두 권 모두 읽고 난 뒤의 세상이
읽기 전의 세상과 달라져 버렸던 책이었고, 뭐라 아직도 정리할 수 없는 책이군요.아마도 용기를 내어 쓰신 리뷰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icaru 2004-05-2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설박사님...음....님은 기독교인이셔서(맞죠?), 죽음이라는 수단을 택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법합니다...아..음..전태일의 죽음은 일단 개인적인 울분의 자살이 아니었구요....해도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박정희 정권을 존속시키려는 선거철을 당하여.....전태일이 제시하는 근로기준법에 맞게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고 기업주들이 거짓 약속을 했지요....그래서...전태일은 궐기를 보류하기도 했었어요...하지만..선거가 끝나고 박정희가 당선되자 언제 그런 약속이나 했냐는듯...기업주들은 돌변했죠....그래서...전태일은 목숨을 내건 시위를 했던 거지요...목숨을 내걸었기에...그나마 오늘날처럼 처우가 약간 개선되었을듯해요..

icaru 2004-05-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압니다....예...저도 충격이고 감동이었습니다...이 평전이 제 마음을 어지간히도 들쑤시더군요....님도 아직 뭐라 정리를 못하고 계시다고요....아..님의 말씀처럼...저 또한 책에서 받은 감동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도 못하네요....이 내용 정리...곧 '리뷰'라는게요...^*

2004-05-30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4-05-3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언니님, 이 책 참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전히 전 그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조정래님, 전태일님, 읽는 내내 가슴을 쥐어짜더군요. 님의 리뷰, 그리고 고등학교 적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

icaru 2004-05-3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배혜경 님께서 친히(?) 코멘트 남겨 주셔서..더없이 기쁘네요 ^^
아...저도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여 본답니다....

책읽는나무 2004-06-0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책들은 가슴이 아프고 숙연해지는 그느낌을 글로 표현한다는것이 참 어려운데...님의 리뷰 멋지군요!!.....님의 그가슴아픈 느낌이 바로 전해지는듯합니다......ㅡ.ㅡ;;
물론 전태일의 죽음을 다시 한번더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기도 하구요!!...요즘은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한순간에 해결되지 못하는것이 아주 그냥 체기가 생긴것같이 답답할따름입니다....ㅠ.ㅠ
리뷰 잘읽고 갑니다.........^^

icaru 2004-06-0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책읽는 나무 님...좋게 읽어 주시니...정말 기뻐요^^
너무 인용만 해댄 것 같아, 조금 부족한 글이지 않나 싶었지요..

설박사 2004-06-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에 당선되셨네요. ^^ 축하드립니다.

icaru 2004-06-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고마워유~! 박사님...
 
돈,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틀렸다
카렌 램시 지음, 김지현 옮김 / 창과창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모두 행복에 대해 꿈꾼다. 부자 아빠가 나온 것도 역시 최종 도착지는 인생에 있어서의 행복 실현일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특별히 결혼을 앞둔 부부가 읽으면 비교적 유익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널리 알려진 상식들에 대한 가벼운 반박 정도로 읽는 것이 좋다.


집을 사지 않고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재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집을 사는 것보다 임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적인 안정감 때문에 집을 사려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현실적인 요인 20%에 심리적인 요인 80% 때문에 집을 사려하는 것이 된다고.


집은 투자 대상 0순위다?

집 한 채를 1억 주고 사서 10년 뒤에 2억에 팔았다고 하자. 서류상으로는 큰 돈을 번 것처럼 되어 있지만, 주변의 집들도 비슷하게 시세가 올랐다면 돈을 번 것이 아니다.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더 싼 집으로 이사하거나, 임대해서 살면서 거기서 생긴 매매 차익을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넓고 좋은 집에서 살다가 그보다 못한 집에 세들어 살려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그 동안 유지해 온 생활 수준이라는 게 있기 때문일 터.


대출금은 하루라도 빨리 갚아야 한다?

여기 한 부부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부부 중 남편은 매우 분석적인 경우라고 치자. 이 부부가 주택을 융자 받아 구입을 했다고 할 때, 아내 쪽은 대출금을 다 갚기 전까지는 절대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고, 남편 쪽은 대출금을 조기 상환할 돈으로 분산 투자를 한다면 10년이나 그 이상 되는 기간 내에 적어도 7~8%가 넘는 수익을 낼 수 있음을 상기시키려 할 것이다. 저자는 항상 재무 설계의 80%는 현실적 요인에, 20%는 심리적 요인에 근거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한 것을 상기시켜 볼 때, 대출금을 하루라도 빨리 갚는 것은 심리적 안정감을 극대화시켜 줄지는 모르지만 제정적인 면에서는 그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돈 문제는 순전히 배우자 탓이다?

돈과 관련시켜 사람을 바라볼 때 대개 네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진다.

저축형 :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저축한 액수에 만족하지 못한다.

소비형 : 이들은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 항상 소비를 해야만 한다. 굳이 소비하는 돈의 액수가 많을 필요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에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필요한 것이다.

근심형 : 이들은 항상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근심한다. 돈 걱정을 하느라 한밤중에 깨어나곤 하는 유형이 바로 이들이다.

회피형 : 이들은 돈에 대한 주제를 다루거나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 자체를 꺼린다.


이렇게 네 가지 유형이라 할 때 부부가 자신들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낼 때, 한 가지 사실이 자주 수면으로 부상한다. 뭐냐 자신이 겪고 있는 재정적인 문제들이 자신의 배우자 때문이라고 믿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이렇게 자신과 배우자와의 재정적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먼저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 자신이 돈에 대해 어떤 타입인가, 둘째 배우자는 돈에 대해 어떤 타입인가.

만약 내가 배우자의 필요를 인식하고 그것을 인정한다면 상황은 쉽게 해결된다. 즉, 돈과 관계된 갈등의 벽을 허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서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일 터다. 그런데 만약 근심형의 사람과 회피형의 사람이 만났다면 정말 골때리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회피형은 회피하려고만 할테고, 근심형은 모든 것에 대해 골머리를 싸맬테니, 도무지 생산적인 것이란 만들어내지 못할 터. 이런 부부는 서로를 원망하며 탓하기 쉬운데 처방법은 배우자를 뜯어고치려 하는 일은 그만두고, 일단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재정 문제에 자문을 구할 제 3자말이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배우자의 습성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억지로 바꾸려고는 하지 말고 말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람의 행복은 꿈을 위한 돈을 투자할 때의 즐거움이라고 본다. 저축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다하지 말라고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이런 "틀렸다"라는 말을 갖다 부친 책을 썼을 것이다.

 

책의 마무리에는 노자의 도덕경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을 옮기고 있다.

 

  "명예와 자신의 생명 중 어떤 것이 중한가? 재산과 자신의 생명 중 어떤 것이 중한가? 명예와 이   익을 얻는 것과 생명을 잃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에게 해가 되는가? 지나치게 명예에 집착하면 반드시 손실이 있고, 너무 많은 재물을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는 일이 없고, 적당히 그칠 줄 알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영원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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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밌는 포즈로군요.

icaru 2004-05-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의 포즈도 한번...생각해 볼터...^^

이파리 2004-05-2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뿌리기를 하고 있는 이파리임다.(--)(__)(--) 꾸벅!
귀여운 엉덩이들입니다.~* 음훼훼훼

panda78 2004-05-2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번째 아저씨의 엉덩이가 특히 돋보이네요.. ㅋㅋㅋ ^^

ceylontea 2004-05-2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번째 ^^

호밀밭 2004-05-2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가 아닌가 싶은데. 다들 포즈 독특하네요.

책읽는나무 2004-05-2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두번째요...ㅎㅎ

비로그인 2004-05-2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처절합니다. 저도 사진이라고 찍는답시고 목 꺾고 엉덩이 쏙~빼고...그러고 있는 사진을 친구들이 몇 장 찍어준게 있는데...^^* 남 일 같지 않습니다~

icaru 2004-05-2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파리 님...반가워요~~!

투명인간 2004-06-26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기다..
가만 생각해 본다.
내가 사진 찍을 때 포즈는 어떠했는지...

icaru 2004-06-26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나도 가만 생각해 본다. 니 포즈가 어땠던지...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 산이 만든 책, 책 속에 펼쳐진 산
심산 지음 / 풀빛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산을 좋아하던 시인 고정희는 지리산에서 그만 실족사하였다. 오래 전에 읽은 성석제의 어떤 칼럼에서 지리산을 등반하던 중 추락하여 죽음의 코앞에 다가가는 아찔한 경험에 대한 술회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도 위에서 말한 인상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살까말까 망설이며 뒤적이다 발견했던 다음과 같은 구절이 더더욱 나를 부추겼을  것이다.


“떨어지면서 이제 죽는구나 하는 순간 불안이 가시고 지난날의 일들이 눈앞을 스치며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가족과 친구가 생각나며 자기가 자기의 몸에서 빠져 나와 밖에서 자기를 쳐다본다.”


“그것은 유니크하고도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7~8미터를 추락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 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추락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되짚어보고, 회한과 그리움이 담긴 짧은 인사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결국에는 죽음까지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게 되는 지극히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은 오이겐 라인홀트 메스너의 산에서 극한 체험에 대해 쓴 <죽음의 지대>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죽음 직전까지 다가간 자의 기록도 있고, 산에 미친 사람의 유쾌한 청춘 고백도 있고, 등반을 비즈니스처럼 여기며 철저한 프로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오르고 또 오르려 하는 자의 기록 또한 있다.


이들은 왜 산을 오를까. 라인홀트(최강의 클라이머이자, 최강의 산악 문학 작가)는 말한다. ‘정복을 위한 등반’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등반’이라고. 그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명징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삶을 지속시키고 싶어서 산을 찾는다고 고백한다. 죽음의 지대인 악산에서 삶의 한계에 부딪쳐 본 자만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깨달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무’ 즉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였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깨달음이 그를 자유롭게 한다. 그는 말한다.


“자기 인생이 ‘무’라는 것을 안 자만이 자기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다. 일단 죽음의 지대에 들어서면 의미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사람은 불안에서 해방되고 시간적 공간적 무한 속에서 자기를 해소시키게 된다. 이러한 체험을 겪고 나면 사람은 자기가 새로 태어난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상태는 -다시 산기슭에 내려오게 되므로-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산을 내려오면 그 깨달음의 지속이 끊긴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도달의 지속을 위해 이들은 오르고 또 오르고 ‘죽음과 대면하는 극한의 체험’에 다가가는 것 같다. 솔직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선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다가갈 경지일 것이다. 


산(뒷산을 등산하는 형태이든, 악산을 등반하든 형태이든)을 좋아하는 필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산서(山書:산에 대한 책들)에 대해 기록해 놓은 책이 이 것이다. 산에만 오르고 산서를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산행일 뿐이며, 마찬가지로 산서에만 매달릴 뿐 산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다면 그것 역시 어설픈 남독이라고 필자 심산은 말하고 있다.


산서에 빠진 필자가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는 산서(산에 대한 책)들은 시보다 시적이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며, 영화보다 드라마틱하고, 철학책보다 심오해 보인다. 그리고 주로 블루톤의 산을 담은 사진과 깔끔한 편집도 이 책의 묘미일 것이다.


삶이 너무 지지부진하다고 느끼는 나는, 심산이 소개한 산서 중에서 아무래도 라이홀트의 <죽음의 지대>를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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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실족사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라이홀트의 <죽음의 지대>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베르나르의 <타나토노트>의 영혼 여행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죠.
혼이 육과 분리되고 정신을 차릴때 다시 육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생생히 느낀 경험이 있답니다.

icaru 2004-05-1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떤 산에 오르다가...떨어질 뻔한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전...산에 많이 오르지도 않으면서...이런 책을 좋아하는 노릇이라니...이것도 남독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비로그인 2004-05-1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주 인상깊게 읽었어요. 전 사실 히말라야처럼 고산지대를 등반하려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적 공간적 무에서 자기를 해소시킨다니. 일종의 물아지경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걸까요. 그리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일단 보관함에 담습니다.

soul kitchen 2004-05-1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GEO에서 탈레이사가르를 등반하던 우리나라 젊은이들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그 대원들 중 몇 명이 실족사했어요. 기자가 동반해서 취재한 기사여서 그들의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그들이 죽어가는 상황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볼 수 있었는데, 그 전까진 저도 복돌성님처럼 목숨을 걸고 산을 타는 사람을 이해하질 못하겠더니,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는, 슬프고 안타까운 중에도..이들이 왜 이렇게 산에 미치는지 알 것도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책은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하겠구만요. 추천합니다.

stella.K 2004-05-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저자한테서 창작 수업을 들어었더랬습니다. 아, 그 선생님이 이런 책도 쓰셨네요. 하하하! 넘 반가운 거 있죠. 그 선생님 그때도 산을 너무 좋아하셔서 뻑하면 당신이 산 탄거 얘기해 주시곤 했는데, 결국 일을 내셨군요. 입담은 얼마나 좋았다구요. 술고래에...
보구싶어지네요. 꼭 오빠 같다는 느낌이에요. 얼굴은 좀 커서, 큰바위 얼굴이라고 안 듣는데서 수근거리곤 했는데. 하, 이거 옛 선생님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난 솔직히 산 보단 들이나 바다가 좋습디다. 산들을 왜 타는지...? 그래도 "산서에 빠진 필자가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는 산서(산에 대한 책)들은 시보다 시적이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며, 영화보다 드라마틱하고, 철학책보다 심오해 보인다."란 언니 말씀 새겨 볼랍니다.^^

icaru 2004-05-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언니..전 이 책을 읽으면서...내가 아무리 산을 좋아해도...저 경지엔 죽을 때가지...이를수 없을기야 하구 생각했죵...

솔키 님 ....아...제가...아는 언니의 남편도...k2 등반대를 따라 취재 갔다가...운명을 하셨죠... 5년 전이네요....아...

스텔라 님...그러게요...심산이...시나리오 작가람서요...태양은 없다와 비트의 시나리오를 쓴....전...책날개에 작가 사진 보고...이렇게 동그라니...곱상한 외모의 소유자가...그 거친 산을 탄다구..에이...모야,,,,했답니다...입담도 좋고...술도 잘하는 위인이셨군요...그 작가가...ㅋㅋㅋ

설박사 2004-05-15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서라.. 재미있네요. 그런 종류의 책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

stella.K 2004-05-1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상하다굽쇼?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고도의 포토샵'(냉열사님 표현에 의하면)에 의한 것일 겁니다. 그 선생님 나쁘게 표현하면 자유분방하고, 좋게 말하면 남자답게 생기셨죠. 어떻게 폼 잡고 찍었을지 알 것도 같습니다. 흐흐.

비로그인 2004-05-1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러네요. 惺惺寂寂이라고...
산에 올랐다고, 그리하여 다시 태어난 나를 발견했다고, 그것에서 끝을 보았다고 산에서 내처 살 순 없는 일....
그러기에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고행을, 자신을 찾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겠지요.
어쩐답니까..산에 오르지조차 못 해 본 이 몸은....
많은 걸 생각해 볼 수 시간을 선사할 것 같습니다...이 책.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님~ ^^

호밀밭 2004-05-1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은 저에게는 참 먼 곳이네요. 걷기는 좋아하지만 오르기를 좋아하지 않아 산에 안 간지 오래 되었어요. 작년부터인가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그냥 생각만 할 뿐 실천에 옮기지 못하겠더라고요.
이 책 저에게는 처음 접하는 책이네요. 뭔가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icaru 2004-05-1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박사 님 오랜만여요...^^

냉열사 님~! 아...정신의 최적인 상태가...계속 유지되는 그런 삶은 과연 인간의 삶이 아닌 모양이요....희노애락이 순서를 바꿔가며 도는군요^^

호밀밭 님...마자유...단번에 읽는 책이 아닙데다...그래서 사실...저도 뜨엄뜨엄 읽었슈..
생각해 보니...저두 산에 안 가본지...참 오래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8-05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정말 여러 분야의 책을 섭렵하시는군요. 산서라는 것도 낯선데 산서에 대한 에세이라니!
이 리뷰는 고정희 시인 이야기가 나와서 반갑게 읽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라인홀트의 죽음의 지대를 보관함에 넣었어요. 예전에 성석제의 단편 중에 떨어지는 그 순간을 소설의 처음과 끝으로 잡은 걸 읽은 적이 있거든요. 아마 성석제는 자기 경험에서 그 단편을 쓴 모양이네요...

icaru 2004-08-0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성석제의 작품 중에 그런 단편이 있군요.!! 역시 성석제를 자기 경험을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인듯해요...
그 사람의 단편들을 읽다보면...얼마 정도가 경험에서 나온 것이며 얼마 정도가 주어들은 것일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흐흐...
올초에 황만근 씨가 이렇게 말했다...맞나요? 그걸...샀는데...역시나 다른 책들에 밀려..못 읽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