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2001년 6월에 초판 발행된 책이다. 인문학 자연과학을 망라, 지난 20세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니까, 지금 읽기엔 뒤늦은 감은 없는 것인지 약간의 우려를 하였다. 그러나 그런 거 없었다.

퍽 재미나게 읽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딱이 구성이 안 잡힌다. 대담자를 쌍쌍이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러면서 쌍쌍이 늘어놓기 시작하고 있는 나.

이윤기와 그의 딸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맨 앞에 나온다. 딸이 그에게 왜 신화를 연구하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대답한다. 사람의 현상에 관심이 있는 내가 여기 안 빠지겠니? 그리고 또 말한다. 예술은, 가늘디 가늘면서도 한없이 절실한 떨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최창조와 탁석산이 만나서 풍수 이야기로 물고를 튼다. 그런데 풍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둘을 한 쌍의 대담자로 정한 편집자의 의도가 하 수상타. 최창조와 탁석산은 사람의 기질상 서로 많이 다른 거 같다. 최창조는 자신의 실력과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에 비해 무척 조용한 기질의 사람이고, 탁석산은 자기 고집과 자기 주장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인 듯하다. (그 만큼 확고한 지식 기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는 잘 모르겠공.) 그래서 대화가 주로 탁석산이 최창조에게 “최 선생님 좀 강하게 나가십시오” 하는 식으로 발언하고, 그럼 최창조는 웃으면서 “ 제가 싸움을 견디질 못해서.... 탁 선생님이 풍수하셨으면 제가 좋은 동지를 얻는건데” 하는 식이다. 재밌다.

상도 저자 최인호와 연봉 24억원 받는 CEO 윤윤수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라나 뭐라나.... 그래서일까. 박진감 있는 갑논을박의 논의는 없고, 서로의 이야기에 살을 보태고 부족한 걸 매꿔 주는 등 사이좋으면서도 격의없는 대화를 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김화영과 이문열의 대담이 아닌가 한다. 이 대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김미현의 공로도 조금 있고 말이다. 김화영은 이문열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교훈주의를 제대로 꼬집어 들고 있다. ‘제 돈 주고 책 사서 읽으면서 꾸중 듣고 싶어하는 독자가 어딨겠어요?’ 라는 요지가 김화영이 날린 비수다.   

함인희와 이숙경의 대화도 귀기울여 들어볼 만했다. 재미도 있었고. 이 세상의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어머니와 자식,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조명하고 있는 글이다.

다음 꼭지인 알라딘 서점의 주인 조유식과 헌책방 서점의 주인 노동환의 대화는 헌책을 좋아하고, 새책은 주로 알라딘 서점에서 산다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더더욱 흥미로운 장이었다.  

이 대화를 읽으면 대략의 알라딘 서점의 역사를 알 수 있고, 헌책방의 시스템도 주어 들을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서점과 헌책 서점이 서로 등진 적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운명이 함께 굴러간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한번 더 되풀이하여 꼼꼼히 읽을 가치가  있는 꼭지는 김우창과 김상환의 대담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우창은 6.25 전후에 대학을 다녔고, 자연 여건이 열악하여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렇게 김우창 세대가 번역해 들여온 서양 학문을 바탕으로 후학들이 비교적 쉽게 학업을 이뤘을 거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고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둘 것인가 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김우창은 이 시점에서 등소평이 얘기를 인용한다. 흰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나 쥐 잡는 것이 고양이지 그게 어디서 온 고양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서양의 것 그만두고 우리 것으로 자생해야 한다는 자생 담론에 대한 개인적 소견일거다. 우리 현실을 움직이고 있는 세력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이해도 없이 동양의 것만을 강조하기란 적절치 않기에.  

마지막으로 강유원과 최장집의 대담이 나온다. 씨네21에서 회사원이라는 직함으로 글을 쓰고 있는 강유원이라, 그가 얼마나 재치 있는 질문들과 멘트들을 할지가 궁금해서 또 귀기울여 들었다. 이 대화는 주로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고,  정치가 문학과 어떻게 공유될 수 있을까 하는 여지를 엿보게 하는 꼭지이기도 했다. 


이렇게 26인의 대화를 수박 겉핡기 식으로 훑었다. 이 책의 뒷부분을 보니 이 책이 부박한 오늘의 현실을 넘어서는 지혜가 되어 주기를 희망한다고 되어 있다. 글쎄...., 이념 과잉의 욕망 과잉의 이 시대를 지혜롭게 건너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이들의 입을 통해 즐겁고 따뜻하면서도 깊이를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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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2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벌써 몇년 전부터 읽는다 읽는다 해 놓고 못 읽고 있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것 같군요.^^

icaru 2004-05-3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에...다방면으로 시야를 넓혀 주는 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