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없이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세상에서 쬐금 더 가벼운 걸 추구하여 무거움을 덜어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해 봄직한 소설이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이 소설 얼마나 사뿐사뿐 하길래 하며 경박한 것을 상상하시면 또 아니된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극심할 뿐 아니라 학력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본 사회(비단 일본 사회 뿐이겠냐만...)에서 삼류 학생들이 우리의 주인공이기 때문. 왜 삼류인가? 단순히 공부를 못해서? 재일 한국인이고 혼혈이기에.

그렇지만 무엇에 굴하지 않고, 쿨하게 살아간다는 것. 까짓것....

늘 다수측이 이기게 돼 있는 세상... 앞으로 살면서 무수한 날 쓴 패배를 맛보겠지... 하지만 그게 싫다면! 계속 달리는 거다. 간단하다. 그들의 시스템에서 빠져 나와 이렇게 초등 학교 1학년생들처럼 계속 달리는 것!

패배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류의 변명조 소설이 아니다. 그들은 나를 두고 패배자라고 할지도 모르고, 앞으로 고된 인생을 살게 될지도,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 보겠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운 표현 한 가지.

화려한 말발로 당신을 제압하려는 사람 앞에서 반론을 찾지 못해 어쩔바를 모를 때, 옳고 그름은 구별할 줄 알아, 상대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는 판단은 드는데, 언어가 모자라서 그럴싸하게 말을 늘어놓는 상대에게 휘말리려 할 때, 딱 이렇게 말하고 튀어 버리자....

“당신이 하는 말은 텔레비전에 잘 나오는 뇌경색에 걸린 정치가나 평론가 급이로군!”

 

이들이 더 좀비스...인 이유는...빌린 장켈레비치의 <죽음> 속... "죽지 않는 것은 살아 있지도 않다"의 글귀에서 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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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1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소설이 그의 데뷔작이더라고요...~ 님은 그럼 데뷔작 빼고 다 읽으신 거네요..
저도 이 소설에서 노골적으로 삼류!삼류! 그러고.. 자신들이 뇌사 상태에 빠진 것 같다며 스스로를 더 좀비스라고 하고... 그래서 좀 당황한 감도 없잖거든요~ 흐흐..님의 반신반의 충분히 이해한다니까요...! ㅋ
패배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는... 결혼은 했지만 유부남은 아닙니다 에서 왔어요~ ^^
그나저나 그만 속삭이시고 모습을 보여 주셈!! ㅋ

히피드림~ 2005-11-0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재일교포군여. 이 책 보관함에 넣어두었어요. 요즘 보기드물게 책값이 싸서 깜짝 놀랐다는,,,,^^;;

비로그인 2005-11-0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거 읽으셨어요? 흐흐..아, 전 반론을 해야 하는데 콱 막혀버리면 기냥 토껴버릴랍니다! 알았어요, 꿋꿋하게 달릴게요! 근데 오..마지막 문장, 그럴 듯 하네요..

icaru 2005-11-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흣...펑크 님 가격 부담도 그렇지만~ 내용 부담도 덜한 편이죠~!!!
복돌언냐... 더 좀비스의 수칙을 에저녁에 고수하고 계셨던~ 님이네요!!

2005-11-02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옷가게처럼 보이는데... 뭔가 짠~ 하는 게 있어서 찍었을 텐데...기억이 안 난다.



미용실인가 노래방인가...




이 건물은 무엇에 쓰는 장소였더라~




10월 마지막 주... 홍대 근처에서 흔들지 좀 말자 하면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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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1-0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비록, 기억 못하는 삶의 단편을 이어나갈지라도
님은 한 순간이라도 흔들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카루님, 늘 행복하세요...)

icaru 2005-11-0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손만 엄청 떱니다... 다른데는 안 떨거든요...
목소리도 잘 안 떨고, 다리도 잘 안 흔들고...
근데 손은 마구 떱니다...미세하게..

icaru 2005-1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들기 시작하니까...별 오두까지껄로 다 만들구 있어요... 나 좀 말려 주세요~ 복순아 드라이기 갖구와!!!

비로그인 2005-1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아래 사진을 보니까, 흐흐..갑자기 '배트맨'의 캣우먼이 생각나네요.

icaru 2005-1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사라졌다

물만두 2005-1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림이 좋은 떨림이기를...

icaru 2005-1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타났다..!

icaru 2005-1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넹~

2005-11-01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0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전증은 항상 술 술 술이 웬수... 혹 ???
세번째 사진을 보고 앗! 홍대 근처다! 떠올렸는데, 근데 정말 뭘 하는 곳인지...
전 가슴이 떨렸으면 좋겠네요.

파란여우 2005-11-0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하고 친하시므로 그 양반의 따뜻한 손 한 번 잡아보면
흔들림이 고쳐질 듯 하외다
-책임질 수 없는 뻥쟁이 파란여우-

히피드림~ 2005-11-0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맨 마지막 사진 그림자가 이카루님이시군여... ^^

superfrog 2005-11-0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사진 북카페 골목의 골뱅이집 아닌가요..? (오만년 전이라..;;;)

perky 2005-11-02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경우는, 숨을 잠시 멈추면 손 떨림이 살짝 가라앉던데..그때 찍어보심은..? ^^ 그나저나 우리나라 모습 담긴 사진들은 다 좋아요. 왠지 향수에 젖게되는..

humpty 2005-11-0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 어딘지 알 것 같음. 홍대 근처 노래방 입구!!

icaru 2005-11-0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살이 님 귀신입니다.... 삼겹살에 쇠주 몇 잔 하고...카메라를 들이댔더니만... 하루살이 님 가슴떨리게 설레는 일 많았음 좋겠어요.... 진짜로..

파란여우 님... 플레져 님도 알고 보면... 손이 차다는 이야기가 나돌대요... 따뜻한 손은 일종의 희망사항인거죠~ 그죠? 플레져 님?

펑크 님... 옙!! 접니다.. .어떻슴까? 괜찮게 나왔나요? 헤헤..

오!! 금붕어 님... 그렇답말입니까... 어느 짝에 있는 건지는 알 것 같은데... 뭐하는 곳인지는 몰겠더만... 골뱅이집! 이라...

차우차우 님~ 태교 잘 하구 계신거죠? 잠시 숨을 멈추라! 오호... 그나저나... 차우차우 님을 위해 아름다운 고국산천을 많이 찍어 올려야 게쏘요...!

험프티! 우리 같이 갔지 아마!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이든 분석하고 정의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학자?)은 사랑이란 감정 또한 두뇌의 ‘화학적 작용의 결과’라고 인식한다. 요는 그거다. 사람이 사랑하면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지만 길어야 30개월 정도만 지나면 대뇌에 이런 종류의 물질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고.
동물은 일정 기간 동안 사랑을 나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서로에게 그야말로 의미와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유일하게 평생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존재이다.


리뷰를 쓰자, 말자, 여러번 생각을 거듭한다. 사랑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과 책임에 대해서 말을 꺼내면 두서가 없어지고 말을 바꾸게 된다. 이런 책은 나의 애정 전선이 잘 풀려 가고 있을 때는 시아버지와 그가 사랑했던 멀리 있는 여자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내 사랑이 삐걱거릴 때는 시어머니와 주인공인 며느리에게 마음이 가 있게 한다.
참 잘 읽히게 쓴 글이다. 뭔가 일상 생활 속에서의 평범하지만 신뢰가 가고 편안함을 주는 글쓰기를 하고 있달까,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제2의 연인 위해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모두의 입장에서 아우르는 자칫 공정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좀 미진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이혼하자는 남편을 가타부타 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떠나보내 일. 그리고 자기 가치를 찾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일이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차라리, 이 책 속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처럼 사는 것이 쿨하지는 않지만... 더 그럴법 하다.
 시어머니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자녀들, 주택, 이웃)에 만족하고 행복해했으나, 시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일 중독자가 되었고,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근엄하고 벽이 있는 존재였다. 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울타리 같은 느낌이 한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갈 수 없는 족쇄 같은 것이 될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 
 

이 책의 시어머니를 보면서 모 생명보험의 광고 하나가 생각났다.
 
아내의 인생은 깁니다.  아내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아내가 생리대를 사서 아무스럽지 않게 카트에 휙 던져 넣는다. 그러자 남편 내레이션... “처녀 때는 조금만 부끄러워도 얼굴이 빨개졌는데....왠지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라고.
참... 이상한 광고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생리대를 부끄러워 숨기듯 구매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에 왜 남편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남편은 아내의 본성이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천상 소녀의 그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아내를 생활고에 내몰아 본성을 깨뜨리게 했다고 여기고 있는가보다. 아니면, 남편은 아내가 그저 천상 소녀에만 머물러 있기를 바랬던 것일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생리대를 부끄러움 없이 구매하는 당참도 그녀의 숨겨진 본성이었다고 본다. 아내가 천상 소녀의 이미지를 깨고 타락(?)한 것이 아니다.

 시아버지 로맨스(바람)을 알고 속앓이를 하다가 이혼만은 안 하기로 혼자 결심했다는 그녀에게 이다지도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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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러게요. 저번에 어떤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가족의 이상적인 모델,이랄까요. 그런 환상을 부셔야 한답니다. 저두 -답게, 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생각해보니 왜 -다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어머니다운, 시아버지다운, 며느리다운, 사위다운..숨막혀요.

비로그인 2005-11-0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자의 외도! 혹시나 그 배우자가 가정에 성실한 사람이고, 그(그녀)의 인격을 신뢰했다면 더욱 배신감이 클 거 같아요. 전 어쩌면..

icaru 2005-11-0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어머니는 남편의 외도 사실은 알았지만... 이혼을 하자고 먼저 말하지는 않거든요. 남편에겐 배신감이 들지만... 그것 때문에 가정을 버릴 수가 없었던 뭐 그런....
가족의 이상적인 모델,이랄까요. 그런 환상을 부셔야 한다는 복돌언냐의 옮긴 말에 저도 동감여요...!!!

panda78 2005-11-0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저 광고 볼 때마다 은근히 기분 상했더랬어요.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아내에게서 매력을 전혀 못 느끼겠다. 그렇게 만든 게 나라고 생각하니 미안해 죽겠다? 뭐 이런 뉘앙스도...
외도와 이혼이라... 으으음...

2005-11-0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 님...핫...고런 해석도 가능하군요... 아줌마 같은 아내에게 매력을 못 느끼고...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나니깐 미안해 죽겠다!! 썩을...남푠..
으으음...그죠...외도와 이혼... 어려워요...

속삭님.. 그러고보니..제가 뭘 안다고..."덫"이라고 단정을 내려버렸던지...
작가가 이혼 한번 잘했다 하는 생각을 ㅋㅋ 사랑과 전쟁이라는 금요일밤 드라마가 생각나네요.. 거기서 시청자들이... 전 주 방영내용에 대해 이혼 몇 프로, 찬성 몇 프로 할 때, 이혼이 늘상 과반수잖아요~ 드라마는 그렇다치고... 이 작가나 해리포터 아줌마나 그녀들의 인생에 있어...이혼은 기폭제였던듯.. ^^

kleinsusun 2005-11-22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오랜만이예요. 저도 오늘 아침에 이 책 다 읽었어요.
참.....잘 읽혀지네요.재미있고.
"아내의 인생은 깁니다" 이 광고는 저도 불쾌하고 엽기적으로 생각하는 광고예요.
아주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글쿠...생리대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는건 아주 당연한 거쟎아요.그죠? ㅎㅎ

전 감정이입이 마틸드한테 되던데요.
그 사랑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humpty 2005-12-0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나게 읽었다길래 뭔 책인가 싶어 다시 찾아 봤어요.^^
근데 책 얘기보다 광고 얘기에 공감. ㅎㅎㅎ
'젊고 예쁜 여자'만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돌아볼 생각은 않고, 고작 자기 기준에서 아내가 아줌마가 되었다는 것-여성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에 실망감을...(미안하다고 했지만 가증스런 죄책감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실망으로 비춰지는 거 보면, 내가 너무 심사가 꼬였나?) 하여간, 뭔 광고인지 기억은 못 하지만, 생리대를 자연스럽게 카트에 넣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에 그렇게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가공할 상상력이며 동시에 무서운 표현법이었어요.
 

내가 리뷰를 쓸 자신은 없고, 좋은 리뷰 퍼 나르기~

 

웃기는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씨네21 2005-08-23 09:00] 메일로 보내기  |  프린트

아름답고 푸른 지구가 어느 날 외계인들의 일방적인 계획에 의해 파괴된다면? 오싹하겠지만, 쫄지는 마라(Don’t Panic)! 지구가 터질 때 지구와 같이 터져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 지구에 파견 조사 나와 있는 외계인 친구를 미리 사귀어두는 것이다. 물론 당신도 지구가 터질 줄은 미처 몰랐겠고 그 외계인이 (보나마나 지구인처럼 위장하고 살았을 테니) 외계인일 줄도 몰랐겠지만 어쩌다 그 외계인과 당신이 친구여서 우정과 신뢰를 서로 쌓아왔다면 지구가 폭파하기 직전 당신의 친구는 특별히 당신에게만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며 “친구, 넌 나와 함께 탈출하자꾸나”라는 인정넘치는 제안을 베풀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런 식의 조언은,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하인라인 또는 아서 클라크처럼 SF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하고 진지한 작가들은 해준 적이 없다.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할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조언, 아니 농담이다. 병원 청소부, 닭장 청소부, 보디가드 등 SF소설과는 전혀 무관한 일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 쓴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아시모프와 하인라인과 클라크가 바라본 거대하고 심오한 우주를 상대로 황당무계하고 썰렁한 상상력을 만담가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겁없이 이어가는 블록버스터급 조크다.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다섯권짜리 소설 가운데 1권 <안내서에 대한 안내서>를 각색했다. 아서 덴트(마틴 프리먼)는 영국 웨스트컨트리에 사는 평범한 남자다. 그는 평범한 목요일 아침, 철거작업을 하는 노란 불도저가 제 집 앞에 버티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광경을 본다. 그날, 15년을 알고 지낸 친구 포드 프리펙트(모스 데프)가 “지금 동네 우회로 건설에 너희 집이 철거당하는 게 문제가 아니란다. 은하계 초공간 우회로 건설에 지구가 철거당할 판국이다”라는 평범하지 않은 뉴스를 전하며 “나는 베텔게우스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알파 켄타우리 행성에서 온 보고인들이 철거 광선을 작동하기 직전에 극적으로 지구를 탈출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낯선 우주선을 얻어타게 된다. 우주선의 이름은 ‘순수한 마음’. 그 안에는 은하제국 정부의 대통령 자포드 비블브락스(샘 록웰)와 여자 지구인 트릴리언(주이 디샤넬), 그리고 로봇 마빈(워윅 데이비스)이 승선해 있다. 성질 급한 자아도취형 캐릭터 비블브락스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가운데 다섯 멤버는 은하계 히치하이킹을 시작한다.


SF코미디라는 장르명이 붙을 정도로 <히치하이커>는 웃기는 SF다.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에게 가장 유용한 도구는 타월이라는 설정이나, 은하계 대통령은 진정한 은하계의 권력으로부터 은하계인들의 관심을 따돌리기 위해 세워지는 쇼맨이라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관객이 따라웃기 쉬운 가장 자극적인 농담에 속한다. 좀더 심오하고 심각한 농담은 불가능 확률 혹은 희박 확률이라는 우주의 원리다. ‘정말 일어날까?’ 싶은 일을 ‘뭐 일어나지 않을까’ 싶도록 속이는 것이 SF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원작자 더글러스 애덤스는 우아하고 매너있는 SF들이 그 양자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관습, 즉 독자를 꼼짝없이 주눅들게 만드는 유식한 과학적 설명의 고리를 무시한 채 상상의 나래만 퍼덕거린다. 아서 일행이 탄 ‘순수한 마음’호에는 불가능 확률 방지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아서와 포드가 드넓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그들의 현 위치로부터 50만 광년 떨어져 날아가고 있는 ‘순수한 마음’호에 덥석 탈 수 있었던 까닭은 어떤 전화번호(276709) 때문인데 그 전화번호는 아서가 예전에 지구에서 살 때 참석했던 파티가 열린 집의 번호이며 그 파티에서 아서는 비블브락스와 트릴리언을 만난 적이 있고 ‘순수한 마음’호에는 비블브락스와 트릴리언이 이미 타고 있었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해 아서와 포드는 1/276709이라는 확률로 ‘순수한 마음’호에 들어와 있게 됐다. <히치하이커>는 이렇게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러다보니 애덤스의 원작은 뚜렷한 기승전결식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입담과 상상력으로 꽉 찬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치킨 런>의 작가 캐리 커크패트릭은 드라마에 굴곡을 만들었다. 키스신으로 마무리되는 아서 덴트와 트릴리언의 로맨스, 사이비 교주를 연상시키는 캐릭터 허마 카불라(존 말코비치), 트릴리언이 보고인들에게 납치당해 사형위기에 처하는 설정 등은 영화에만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영화 <히치하이커>는 원작보다 덜 과감하고 더 평범해지기는 했지만 “우리의 바이블은 원작”이었다는 감독 가스 제닝스와 제작자 닉 골드스미스의 말은 어느 정도 믿어도 좋다. 제닝스 감독은 애덤스의 문체가 지닌 재기와 유연함을 소박하고 따뜻한 특수효과로 살려내고 있다. 원작이 말장난만으로 은하계의 끝에서 끝을 종횡무진하는 ‘뻥’이라면 영화는 벽돌 몇개가 움직이는 광경만 보여주며 저게 거대한 우주전함의 외관이라고 우기는 ‘뻥’이다.

막나가는 뻥의 본질을 원작과 공유하고 만들어진 <히치하이커>는 꽤나 낯선 SF영화다. 이 영화는 은하계 행성간을 질주하지만 거대한 은하계 전쟁과 몇 억년의 은하계 역사를 요약해주는 <스타워즈>류의 대서사극도 아니고, 인간인 양 고뇌하는 로봇이 나오지만 <아이, 로봇> <A.I.>처럼 정체성의 정의 운운하는 철학 강의도 아니다. <히치하이커>는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 설계된 슈퍼컴퓨터 지구가 로키산맥을 칠하는 페인트공과 대서양에 물을 채워넣는 인부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는 영화다. 쇼맨십에 능한 은하계 대통령, 행성 크기만한 두뇌 용량을 갖고도 문이나 열어주는 잡무에 시달리다 인생을 비관하게 된 우울한 로봇 캐릭터는 광선검을 들고 은하계를 누비는 영웅보다 친근하고 사랑스럽다.


<히치하이커>는 유쾌한 성격의 소년이 키득거리며 써내려간 일기장 같다. 숭고한 목표라곤 생각해본 적 없는 게 분명한 소시민적인 캐릭터들, <모여라 꿈동산>에서 만날 법한 튀는 특수분장, 따지고보면 우스갯소리라서 금세 까먹어버려도 지장없는 소소하고 황당한 에피소드들로 어느 순간 아득한 우주를 품어버린 SF코미디다. 확률상 불가능한 것들을 방지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한, 그리고 그 컴퓨터가 마빈의 우울한 넋두리에 질린 나머지 ‘저걸 듣느니 죽고 말지’ 하며 자살해버리지 않는 한, 아서 일행의 여행길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어느 외계 행성이 쏘아올린 유도탄 두개가 하나는 고래로 또 하나는 패튜니아 화분으로 변해 땅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일이다. 가능한 모든 상상이 우리가 보지 못한 우주 안에서는 끝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을 가진 <히치하이커>는 만인의 지지를 받을 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몬티 파이튼이나 로완 앳킨슨의 코미디 같은 영국식 유머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취향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절대불가능의 프로젝트

<히치하이커>는 더글러스 애덤스가 (본인 말에 의하면) 20년 동안 영화화를 추진했던 프로젝트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실제로 그의 소설이 영화화되기까지는 근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78년 영국 BBC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해 청취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책으로, 게임으로, 심지어 타월 제작으로까지 이어졌던 <히치하이커>의 영화화는 1996년 시작됐다.

제작사는 스파이글라스, 투자·배급사는 월트 디즈니로 정해졌다. 애덤스는 각본만 다듬으면서 감독이 누가 될까를 기다렸다. 성과없이 허무한 5년이 흐르고 애덤스는 2001년 LA의 한 헬스클럽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영국, 독일, 브라질 등에 애덤스의 기념비가 세워지고, 우주의 하늘 끝 두개의 행성에는 ‘아서 덴트’와 ‘아스테로이드 더글러스 애덤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파이글라스와 월트 디즈니만 당황했다. 애덤스가 없으니 영화도 엎어지겠군, 이라는 세간의 눈초리를 의식한 관계자들은 서둘러 <치킨 런>의 작가에게 애덤스가 남긴 미완성 각본을 맡겼다. <오스틴 파워> 1편을 끝낸 뒤 합류하기로 예정돼 있던 제이 로치가 “전 프로듀서만 할게요”라며 스파이크 존즈에게 짐을 넘기고, “저도 못하겠어요”라며 존즈 역시 고개를 내저은 뒤 가스 제닝스라는 신인에게 메가폰을 쥐어주었다. 그는 블러, 펄프, R.E.M., 팻보이 슬림 등의 재기넘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감독이었다. 제닝스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도맡아온 닉 골드스미스가 프로듀서로 붙었다.

오랜 파트너 제닝스와 골드스미스는 두려움보다 자신감을 크게 가졌다. 원작 팬들은 “영국영화에 웬 미국 배우를!”이라며 원통해했으나 샘 록웰과 래퍼 출신의 모스 데프를 여유있게 캐스팅하고 휴 그랜트가 아서 덴트 역이란다, 하는 흉흉한 소문이 곳곳에 퍼질 무렵 영국 시트콤 <오피스>로 안방의 인기를 독차지해온 배우 마틴 프리먼에게 주연을 맡겼다. “우린 크고 비싸고 CG로 도배한 SF는 만들지 않을 거예요. 원작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할 거예요”라는 다짐을 확신에 넘쳐 하고 다녔다는 제닝스와 골드스미스는 영화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그린 콘티가 진짜 멋있거든요? 영화에 안 들어간 장면 중에 죽이는 게 더 많아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어떤 이들은, 하긴 ‘영화화 절대 불가능’이란 딱지가 붙을 만큼 까다로운 원작에 저 둘이 괜히 덤볐겠느냐, 다 배짱 아니겠느냐, 라며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글) 박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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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까...모랄까... 글도 까다롭지만...영화 자체도 좀 범상치는 않죠... 쉽게 쓸려면 필력이 음청나게 좋아얄거란 생각도 들어요...

히-- .. 졸린 오훕니다~

humpty 2005-11-0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터 빈이랑은 또 다른 것 같은데, 통하는 게 있나봐요? 아득한 옛날에 미스터 빈 보면서 동생이랑 뒤집어졌었던 기억이...(아저씨가 샌드위치를 만드는데,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서 거기다 재료를 막 넣어서 섞는데 ㅋㅋ)
얼마 전에 '스타워즈' 보면서 이거랑 차이점 하나 발견. '스타워즈'에서는 모두 영어로 말함, 여기서는 통역하는 물고기를 귀에 집어넣음. ㅋㅋ

icaru 2005-11-0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미스터 빈!! 짱이야!!
통역 물고기도 정말 기발했어!!
 
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책의 시작 부분에는 아키유키의 가계도가 나온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 이후 이런 가계도 얼마만인지. 일본의 순수문학은 얼마나 순수한가(?) 라고 덮어놓고 무심하게 달겨든 독자가 주춤 부담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카가미는 한국과 퍽 인연이 깊은 작가였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판소리에 심취하여 전라북도 전주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일본 좌익으로부터 비난와 오해를 무릅쓰고도 여의도에서 육개월간 머물면서 김지하, 윤흥길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고.

그는 산뜻한 문장에 도회적인 테마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소설의 정서와는 대척점에 위치하여 자신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토대로 하는 소설을 쓴 순수문학 계열의 작가이다.

<고목탄>의 주인공 아키유키처럼 작가도 다섯 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어머니가 재혼하자, 어머니 측에서 보면 셋째 아들이니만 의붓아버지 측에서 보면 장남이고, 자신을 키워준 집에서는 차남이라는 복잡한 가족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키유키를 통해 청춘 시절 특유의 고뇌를 엿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가족 관계의 붕괴 속에서도 피로 맺어진 일족의 끈끈한 정을 볼 수 있고, 아키유키의 친아버지인 류조를 핏줄찾기 과정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수한(복잡한) 환경에서 비범한 생활 방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복잡한 가족사의 운명에 사로잡힌 한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숙명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

특히 근친상간과 가까운 혈족 끼리 서로 할퀴고 피를 보며 싸우는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점이 일본 신화의 세계와 유사하다고 후기에 번역자는 말한다. 일본 신화는 단군 신화(환웅의 아들인 단군이 천부인 세 개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웅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로 우리는 신화의 세계에서조차 배우자를 먼 곳에서 구하는 전통을 보여 준 반면)와 달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두 신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들은 남매간으로 근친혼을 통하여 일본 열도와 산천초목을 낳은 것으로 시작된다. <고목탄>도 그렇다. 자살한 형 이쿠오는 자신의 여동생 미에와 묘한 관계에 있고, 주인공 아키유키는 이복동생 사토코와 관계를 갖는다.

이 소설을 두고 번역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나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과연, 거칠고 억세며 고집스러운 이 작품에도 폭넓은 독자층의 확보가 가능할 것인지 조심스러운 저울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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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0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팬층이 형성되겠어요?

icaru 2005-11-0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루 낙관적이진 않어요... !
아...리뷰 쓰는 거 쉽덜 않네요... ^^;;

히피드림~ 2005-11-0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잘 써놓으시고 무슨 말씀을,,,^^ 리뷰 재밌게 잘 읽었어요.

2005-11-0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