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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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 부분에는 아키유키의 가계도가 나온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 이후 이런 가계도 얼마만인지. 일본의 순수문학은 얼마나 순수한가(?) 라고 덮어놓고 무심하게 달겨든 독자가 주춤 부담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카가미는 한국과 퍽 인연이 깊은 작가였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판소리에 심취하여 전라북도 전주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일본 좌익으로부터 비난와 오해를 무릅쓰고도 여의도에서 육개월간 머물면서 김지하, 윤흥길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고.

그는 산뜻한 문장에 도회적인 테마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소설의 정서와는 대척점에 위치하여 자신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토대로 하는 소설을 쓴 순수문학 계열의 작가이다.

<고목탄>의 주인공 아키유키처럼 작가도 다섯 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어머니가 재혼하자, 어머니 측에서 보면 셋째 아들이니만 의붓아버지 측에서 보면 장남이고, 자신을 키워준 집에서는 차남이라는 복잡한 가족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키유키를 통해 청춘 시절 특유의 고뇌를 엿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가족 관계의 붕괴 속에서도 피로 맺어진 일족의 끈끈한 정을 볼 수 있고, 아키유키의 친아버지인 류조를 핏줄찾기 과정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수한(복잡한) 환경에서 비범한 생활 방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복잡한 가족사의 운명에 사로잡힌 한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숙명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

특히 근친상간과 가까운 혈족 끼리 서로 할퀴고 피를 보며 싸우는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점이 일본 신화의 세계와 유사하다고 후기에 번역자는 말한다. 일본 신화는 단군 신화(환웅의 아들인 단군이 천부인 세 개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웅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로 우리는 신화의 세계에서조차 배우자를 먼 곳에서 구하는 전통을 보여 준 반면)와 달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두 신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들은 남매간으로 근친혼을 통하여 일본 열도와 산천초목을 낳은 것으로 시작된다. <고목탄>도 그렇다. 자살한 형 이쿠오는 자신의 여동생 미에와 묘한 관계에 있고, 주인공 아키유키는 이복동생 사토코와 관계를 갖는다.

이 소설을 두고 번역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나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과연, 거칠고 억세며 고집스러운 이 작품에도 폭넓은 독자층의 확보가 가능할 것인지 조심스러운 저울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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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0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팬층이 형성되겠어요?

icaru 2005-11-0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루 낙관적이진 않어요... !
아...리뷰 쓰는 거 쉽덜 않네요... ^^;;

히피드림~ 2005-11-0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잘 써놓으시고 무슨 말씀을,,,^^ 리뷰 재밌게 잘 읽었어요.

2005-11-0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