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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이든 분석하고 정의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학자?)은 사랑이란 감정 또한 두뇌의 ‘화학적 작용의 결과’라고 인식한다. 요는 그거다. 사람이 사랑하면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지만 길어야 30개월 정도만 지나면 대뇌에 이런 종류의 물질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고.
동물은 일정 기간 동안 사랑을 나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서로에게 그야말로 의미와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유일하게 평생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존재이다.
리뷰를 쓰자, 말자, 여러번 생각을 거듭한다. 사랑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과 책임에 대해서 말을 꺼내면 두서가 없어지고 말을 바꾸게 된다. 이런 책은 나의 애정 전선이 잘 풀려 가고 있을 때는 시아버지와 그가 사랑했던 멀리 있는 여자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내 사랑이 삐걱거릴 때는 시어머니와 주인공인 며느리에게 마음이 가 있게 한다.
참 잘 읽히게 쓴 글이다. 뭔가 일상 생활 속에서의 평범하지만 신뢰가 가고 편안함을 주는 글쓰기를 하고 있달까,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제2의 연인 위해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모두의 입장에서 아우르는 자칫 공정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좀 미진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이혼하자는 남편을 가타부타 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떠나보내 일. 그리고 자기 가치를 찾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일이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차라리, 이 책 속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처럼 사는 것이 쿨하지는 않지만... 더 그럴법 하다.
시어머니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자녀들, 주택, 이웃)에 만족하고 행복해했으나, 시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일 중독자가 되었고,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근엄하고 벽이 있는 존재였다. 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울타리 같은 느낌이 한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갈 수 없는 족쇄 같은 것이 될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
이 책의 시어머니를 보면서 모 생명보험의 광고 하나가 생각났다.
아내의 인생은 깁니다. 아내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아내가 생리대를 사서 아무스럽지 않게 카트에 휙 던져 넣는다. 그러자 남편 내레이션... “처녀 때는 조금만 부끄러워도 얼굴이 빨개졌는데....왠지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라고.
참... 이상한 광고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생리대를 부끄러워 숨기듯 구매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에 왜 남편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남편은 아내의 본성이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천상 소녀의 그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아내를 생활고에 내몰아 본성을 깨뜨리게 했다고 여기고 있는가보다. 아니면, 남편은 아내가 그저 천상 소녀에만 머물러 있기를 바랬던 것일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생리대를 부끄러움 없이 구매하는 당참도 그녀의 숨겨진 본성이었다고 본다. 아내가 천상 소녀의 이미지를 깨고 타락(?)한 것이 아니다.
시아버지 로맨스(바람)을 알고 속앓이를 하다가 이혼만은 안 하기로 혼자 결심했다는 그녀에게 이다지도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