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삼인 / 2006년 1월
구판절판


자립이나 사회 복귀는 대부분 이른바 정상인이 주창하고 계획하며 추진하는 것이 아닐까? (...) 조금이라도 정상인에게 다가가는 것, 병을 치료하는 것, 환각이나 망상을 없애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의젓하게 제 몫을 하는 것, 그런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한 모든 것은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질리도록 발산하는 것이 아닐까? (...)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병을 고치라, 정상인이 되라,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금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든 없든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도 있지 않을까?

-p.80쪽

충돌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거기에는 어느새 느릿하고 불확실하며 변덕스럽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결코 강고한 연대로 지탱된 장도, 명석한 이념으로 지탱된 장도 아니었다. 그저 약한 사람이 그 약함을 유대로 연결된 장이었다. (...)
하지만 거기에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니고 또 목표로 한 것도 아닌, 처음부터 변함없이 관통해온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결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뒤처진 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생활 방식이다. 애당초 그들 안에는 배제라는 말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겹으로, 그리고 몇 번이고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 밀려난 사람들이었으니까. 서로가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가 약함을 유대로 연결되어 결코 배제하지 않고 또 배제당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만들어왔을 때, 거기서 나타난 것은 한없는 평등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관계였다.


-p.86~ p.87쪽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내버려둔다거나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한 그 사람의 문제나 말썽거리, 사귀기 힘든 그 사람의 성격 등을 남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것은 실로 성가신 일이다. 품이 드는 일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사회는, 문제를 막고 말썽의 싹을 잘라버리며 불거져나온 부분을 억누르는 등 모든 것을 관리하기 쉽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궁리해 쌓아올린다.

-p.226쪽


정신장애인이란 누구보다도 정밀도가 높은 센서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한편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은 그 센서의 감도가 낮은 것일까? 그 때문에 분발하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감도가 낮아 인간관계를 애매하게 하고 얼버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에 걸릴 수 없는 사람들은, 겉과 속마음을 약삭빠르게 구분해서 대응하고 타인에 대해 가면을 쓰며 어느새 갑옷을 걸치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그런 요령 좋은 생활 방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위로 오르고 성공하고 계속 상승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 사회에서 그것을 할 수 없어 뒤처지고 밑바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p.265~266쪽

거기서 살아가는 것은 항상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다.
어떤 부조리로 자신은 정신병이라는 병에 걸렸고, 절망 속에서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하는가. 병을 안고 사는 인생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
"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이 인생이 자신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p. 281쪽

만약 베델의 집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길은 전혀 다른 길이 되었을 것이다. 구성원은 내일을 믿고 서로를 격려하며 병을 치료하고 생활을 제대로 갖춰 기술을 익혀 일에 도전하고,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 상승하여 사회 복귀를 이뤄내는 일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에서 시작된 접근을 정반대 길을 걸으려고 한다. 거기서는 최후에는 죽어야 할 존재인 인간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고생하고 고민할 것을 요구받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을 살지 않으면 안 되며, 약함을 유대로 해 서로 관계를 맺고, 한없이 내려가 넓은 대지에 내려서려고 한다.
절망에서 시작해 깊은 환멸을 빠져나가 오로지 내려가기만 하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베델의 집에서는 고생이 주어지고 고민이 권유된다. 절망하는 것이 원조를 받고, 병이라는 것이 긍정되며,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 또는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활 방식이 제창된다. 신기하게 아니면 당연하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p. 28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5-23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6-05-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달리 교정쟁이 인가요? ㅎㅎ
단순한 게 가장 어려운 거 같아요...
이 책을 읽고, 아주 조금은... 옹졸해지려는 마음이...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을 받았고, 또 그것이 좋았답니다.
 
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나는 어떤 관계의 어려움을 앓고 있다. 부디 이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그런 곤란한 느낌을 떨쳐버리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오늘도 내일도 눈 뜨고 있는  삼 분의 이의 시간을 보내는 그 사람에 대한 이 애매하고 찝찝한 느낌을 어떻게 단박에 떨구나.

그런 애매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떤 공식의 단계처럼 그 다음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대인 관계에서 ‘나’에게 어떤 결함이 있길래. 하는 그런 여러 복잡다단한 느낌을 안고 맞이하는 주말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을 읽었다.

하루키, 하면 장편이 좋지! 라고 생각했는데..
단편도 참 좋구나! 했던 책이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을 참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란 사람도 무척 외로운 사람이야! 하는 생각도 한다.
표제작 <렉싱턴의 유령>도, <토니 타키타니>도 좋았지만, <침묵>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번 심각해져버렸다.
화자인 오사와 씨에게는 딱 한 번 사람을 때린 일이 있다. 그것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가 때린 남자는 중학교 2학년 때의 같은 반 학생 아오키였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남자가 싫어서 견딜 수 없었던... (오사와 씨는 본래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도 그런 상대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오키는 반에서도 눈에 띄었고,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았고 성적이 좋은데 우쭐거리지도 않고, 성품도 시원스럽고 부담없는 농담도 잘 하는 그런 남자였지만, 그 남자의 배후에 보이는 잔꾀와 본능적인 계산벽이 오사와 씨는 못마땅해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좋은 아오키 쪽도 그런 오사와의 심리를 암암리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오사와 씨가 모함을 당하는 것이다.
  
아오키는 “기회가 올 때까지 잠자코 끈질기게 기다리는 사람,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 사람의 마음을 실로 교묘하게 선동하는 사람.”이다. 사실 무서운 쪽은 아오키가 아니다. 아오키 같은 사람은 어디 어떤 집단에 가든지 한둘 쯤 만날 수 있으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아오키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어버린는 사람들이다. 말주변이 좋고 받아들이기 쉬운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면서 집단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니까.

아마, 나도 본의 아니게 백에 한 번쯤?? 아오키처럼 얍실하게 행동했을 때가 있을 것이고, 싫어했던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피치 못해 걸려든 오사와 같은 입장에 처한 적도 있을 것이고, 말주변 좋은 다른 사람말만 믿고 생각 없이 쉽게 남을 판단해버린 적도 있겠지.
 
그리고 오사와가 당한 이런 일들은 사람을 좋은 쪽과 나쁜 쪽 둘 모두로 인도하는 것 같다. 좋은 방향은 참을성이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일테고... 나쁜 쪽은 사람을 끝까지 신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신 같은 게 아니고, 뭐랄까. 지금은 내 옆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위안을 주는 남편이 언제까지나 평화로운 나의 사랑으로 남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고, 언제 무슨 흉폭한 일을 계기로 바라지 않던 나쁜일이 급기야 일어날, 그럴 가망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서 잊지 않고 기억해 두는 것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생략....

생각보면, 그의 작품엔 뭐 중뿔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누구 앞에서 줄거리를 얘기할 수준의 것들이 분명 아니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는 2년전 <화요일의 여자들>라는 단편집에서 읽었던 것을 또 읽는데도... 읽었었다는 느낌만 날뿐 세세한 것이 하나두 기억이 안 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커피 잔은 한참 전에 치워졌는데 향은 그 자리에 남은 듯, 여운만 남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2006-05-2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질하게 하지 마옵소서;;ㅠㅠ

2006-05-20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5-2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커피 잔은 한참 전에 치워졌는데 향은 그 자리에 남은듯 여운만... 공감해요. 이런 느낌은 자주 느끼는건데 문장으로 쓰지 못했었어요. 훗~ 너무 좋아요.
렉싱턴의 유령, 저도 무척 좋아하는 소설집이에요.
고단백 영양과 감동의 소설집!

히피드림~ 2006-05-2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렉싱턴의 유령이 품절되었다고 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문학사상사에서 다시 나왔나 보네요. 정말 아오키같은 사람도 밉지만 그런 사람의 얕은 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답답하죠. 사람은 겉모양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한 법인데,,, 요즘 책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 부러워요.저도 많이 읽어야 할텐데,,,^^;;

icaru 2006-05-2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아! 반딧불 님께 붙어라~!!!

속삭 님.. 요즘 님의 글이 무르익으셨어요~ 재밌게 읽고 있어요. 결의에 찬 뭔가가 느껴지는... !! 힘찬 출발하시길 바랄께요~ 연수도 잘 받으시고요..

플레져 님.. 그러게.. 작년 가을 쯤에였나요.. 님께서 강추하셔서..비로소 나에게 존재감이 느껴지던 책인걸요..

펑크 님. 작년에 구하려고 할 때는 품절이었는데.. 서점서 사고... 리뷰쓸려고 보니.. 다시 나왔네요.. 표지만 바꿔서.. 전엣것은 하루키 옐로사전이랑 표지가 똑같은 하루키 얼굴이 나와 있었죠...
요즘~ 책 많이 읽는다구요? 아휴~ 그냥 말랑말랑한 책들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안 그래도.. 요즘 너무 멍~해서...저에 대해 불만여요... 건망증도 심해지고.. 이것도 예비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일까요?

2006-05-2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트레버 VivaVivo (비바비보) 21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뜨인돌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토리 전개로 보자면 영화로 나왔을 법하게(실제로 캐빈 스페이시가 출연한 영화로 나왔다고.), 진부하다. 그냥 에누리 없이 말해서 그렇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다음 장면에서는 이 인물이 사고를 치겠지 하면, 여지없이 그렇고, 이쯤에서 둘 사이(루벤 선생과 트레버 엄마) 로맨스에 위기가 닥치려나 싶으면 또 그렇고...
대략 줄거리만 보고 가볍게 생각하면, 여기서 끝날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런데 또 그렇지가 않은 것이....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런 대가도 필요치 않는 친절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짧은 인연, 상대방이 잘된들 내게는 아무런 대가가 없는 인연에도 지극히 마음을 쏟아주는.. 천국이 있다면 혹 이런 느낌은 아닐까.

열두 살난 트레버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고 낸 아이디어는 이렇다. 내가 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해 주는 거다. 다음 사람들이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아픔을 덜어 주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힘겹게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쉽게 척척 바뀔 리는 없다. 그러나 큰 희생을 치른 후에야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5-1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룬 -- 치른
눈에 띄 오타 신고!^^

icaru 2006-05-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잽싸게 수정해요!! 고마심다~

2006-05-19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6-05-2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잘 하신 거예요~ 말해서 털어야 해요!!! ^^
자극적인 것은 피하고~ 감동적인 것만 보라는 말씀... 제 뇌리에 오래 남네요...
마음은 그래야지 하는데... 사실~ 그게 잘 안되나니...ㅎ,ㅎ
오! 근데 이 책 .. 영화로 보셨구나! 와-

sayonara 2006-05-2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집에 있는데...
아직 못읽은 책 (대략) 60권에 포함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 리뷰 덕분에 영영 내 기억 속에서도 잊혀질듯... ㅋㄷ -ㅗ-

icaru 2006-05-2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의 하루키 옐로사전 리뷰 먼저 보고 책을 구입했더라면... 책값 굳었을 건데... 당장 가서 헌책방에 팔았지요..(실은 그 책 구입한 출처도 헌책방이었고..)
 
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직설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게 편할 때가 있고, 좀 완곡하게 말해 주는 게 듣기 좋을 때가 있다.

“아 난,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날 지경이에요. 난 쓰레기인가봐!” 라는 말에,  ‘분노하는 쓰레기는 본 적 없으니 쓰레기는 아닌 것 같다.’ 라고 서두를 열며 직설 화법으로 쫘라락!!! 후벼파는 충고 세례.

마치, 어디서 충고가 너무 약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잔뜩 얻어먹고, 충고발을 세우기 위해 독설도 서슴치 않으려는 듯 보이는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뜨끔하고 또 한편으로는 구두 속의 가려운 발등을 제대로 긁어 주는 것처럼 시원했다.

이 책에서는 존경하는 인물이 없고, 동경하는 삶이 없어서 꿈이 없어서 탄식하는 아이들로 젊은이들을 만든 것은 장사꾼과 정치인들이라고 말한다.

지구촌 생존 레이스에서 탈락 위기. 지독한 불경기와 실업률, 심각한 빈부 격차, 고단하고 천박한 삶의 질. 총체적 난국....

이 총체적 난국의 원인이 국민의 우민화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에 있다고... 오늘도 말 못하는 붕어빵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이 붕어빵들은 그 존재의 최대 목표인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할 줄 아는 게 없다나...

비단 그런 이유들 때문에 20대가 힘든 것은 아닐 거다. 젊다는 것은 원래 그렇게 힘든 거다. 나의 20대 초반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쉽게 ‘젊은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앞날은 마냥 밝수다’ 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은 만만치가 않아서...

그래, 나 역시 ‘다시 스무 살 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가끔은 하기도 하지.) 젊다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형벌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현실에서 우리가 택할 길은 몇 개 안 되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모든 인간은 그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일지도.

미대에 들어왔고, 작가가 되고 싶지만 생계 걱정에 기업체에 들어가 산업디자인의 감각을 살릴까 고민하고 있다는 상담자에게 김형태 씨는 “그 젊디젊은 가슴 속에 모든 일에 대해서 사회적 성공부터 가늠하고 경제적 성취부터 보장되어야 안심하고 만족하는 심리는 누가 심어주었나....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은 누가 가르쳐 주었나. 직업적으로 성공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하지 말라고 누가 가르쳐 주었나.” 하고 호되게 나무란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형태 님 왈 젊은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좀더 예술적인 사람이 되자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나라들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열심히 교양 공부를 해서 멋진 사람부터 되고 보자는 것이 요지로 보여진다.

부모님 세대에게도 충고 한 말씀 드리기를 잊지 않는데.... 물론 부모님 세대의 경험을 자식들에게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은 정말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먹고살기에 급급한 직업관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한 인생 불변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목은 왜 “너, 외롭구나” 일까.
이 제목은 마지막 부분의 상담자들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다. 친구나 동기들 사이에서 부쩍 외로움을 느끼는 남학생 상담자, 점점 히기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는 어떤 여학생의 상담 내용에 대한 답글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사람들은 점점 다양해지고, 세상은 점점 거대해지고 복잡해지고...

그러나 외로움은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꿈이 있는 젊은이라면 기꺼이 외로워져야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집요한 에너지는 다름 아닌 외로움이며, 희망과 욕망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외로움이라고... 외로움은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데 필요한 필수 자양분이라는 것. 외로움을 자존심 상하는 구질구질한 감정 따위로 생각하며 숨기고 외면하거나 털고 닦아내려고만 애쓴다. 외로울 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깊이 생각하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라. 

책을 읽으면서 나는 행복할까, 내가 사는 의미는 무얼까를 생각해 봤다. 우리는 그저 삶의 행복을 누리고 삶의 환희를 느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어찌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한 단위의 삶은 할당된 행복과 불행의 양이 있고, 그걸 다 경험한 후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면 될까. 그렇게 삶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다음 단계의 세대에게 전달되고,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 갈테지...

삶에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은 역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일 것이다. 삶의 의미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의미를 잃어버린들 아무런 의미가 없을테니.

더 고민하고, 더 방황해야겠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5-1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반 읽고 덮어뒀는데 다시 펼치기는 쉽지 않네요.
재밌게 읽었으면서도.
내가 청소년이 아니어서 그럴까?^^

2006-05-19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9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6-05-1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오래 전에 (그래봐야 한 일 년 되었을까요?) 꽤 재미있게 읽었더랬죠. 근데 며칠 전에 우리 반 녀석이 재밌는 책 좀 달래서 아무 생각 없이(?) 건네줬다가 오늘 돌려받았어요~! 그런데 다시 또 icaru님의 리뷰를 읽게 되네요. 님의 리뷰는 언제나 재밌어요.

icaru 2006-05-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재밌게 읽었으면서도 도중 덮어놓았을 때 다시 손이 가지 않는 책이라 하면... 아마 님은 김형태 님의 충고가 필요 없는 사람이기에... 그럴 거라 생각됩니다. 되려, 김형태 님은 할 수 없는 또다른 형식의 코치를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icaru 2006-05-2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님... 가는 날이 책 받는 날.. ^^ 우연히도 이 날 책을 돌려 받으셨네요.

친애하는 속삭이신 님..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내셨군요.
힘든 일이 있을 땐, 수다를 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은 그런데, 실제로 전 힘들면 그냥 푹 꺼집니다...
하루가 지났으니 오늘은 좀 수월해졌을거라고 생각해요~ 부디...

2006-05-20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5-2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의 세 문단, 너무 철학적인것 아닙니까^^
삶에 할당된 행복과 불행의 양을 다 맛보았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어찌 매냥 제자리 걸음일까 몰라요.
"삶에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은 역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일 것이다." 이 말 한마디가 참 힘이 되는 하루입니다.^^

icaru 2006-05-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 운운은... 공지영의 책에서 따다가 좀 바꾸었는데 ^^
잉과장님께 힘이 되는 말이라니.. 참 좋네요~
 
사랑의 모든 것
벨 훅스 지음, 윤길순 옮김 / 동녘 / 2004년 7월
절판


우리 중 대부분은 아주 일찍부터 사랑이 느낌이라고 생각하도록 배웠다. 어떤 사람에게 깊이 끌리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심리적 에너지를 집중한다. 즉 그들에게 감정을 투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중요해지는 이런 투자 과정을 '카텍시스'라고 부르는데, 펙은 그의 책에서 우리가 대부분 '카텍시스를 사랑과 혼동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런 카텍시스 과정을 통해 어떤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정작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시를 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우기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안다. 그들의 느낌이 카텍시스의 느낌이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는 게 사랑이라고 우긴다.



-p.30~31쪽



우리 문화에서 가족이 사는 사적인 공간은 쉽게 독재와 파쇼가 판칠 수 있는, 제도화된 권력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대개 집안을 다스리는 절대적 지배자인 부모가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게 뭔지 결정할 수 있다.

-p.42쪽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는 소통하고 싶은 열정의 자리를 소유하고 싶은 열정이 차지해 버린다. 감정적인 욕구는 충족하기 어렵거나 대개는 불가능하지만, 물질적인 욕망은 훨씬 쉽게 충족할 수 있다.

-p.122쪽


사람들은 공적인 세계에서 정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사적인 삶으로 고개를 돌려 거기서 위안과 도피처를 찾았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기 위해 가족과 관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가정에도 사랑이 없는 황폐한 현실을 접하자 사람들은 엄청난 문화적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직면해, 어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얼마나 많은 걸 살 수 있을지로 측정될 거라고 확신하고 새로운 프로테스탄트의 노동 윤리를 받아들였다. 좋은 삶이 이제는 공동체와 맺는 관계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축적과 쾌락을 좇는 물질주의적 욕망의 충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 지향적인 사회에서 물질 지향적인 사회로 가치가 변한 것에 발맞추어,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 특히 영화배우와 가수들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에서 윤리적인 차원을 묻는 게 갑자기 중요해지지 않게 되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버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부패를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고...

탐욕의 문화가 가진 역설 가운데 하나는 일하지 않고 얻은 이익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 계층은 열심히 일해서 얻은 물질 자원에만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것이다.

-p. 124~126쪽


혼자 있는 것도 사랑하는 기술에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혼자 있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살아 있는 동안 늘 혼자 있는 것의 가치를 강조했다 (...)

(...) "외로움은 고통스럽지만, 고독은 평화롭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하지만, 고독은 다른 사람의 독특함을 존중해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다 "


-p.155쪽


인기 있는 자기계발서 중 상당수가 성차별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 이런 책들은 흔히 선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의 습관들을 남성 지배를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든다. 존 그레이는 이것에 대해 '남성은 자기 굴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남자가 혼자 있고 싶을 때 방해하는 여자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레이는 변화가 필요한 것은 여성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랑을 알려면,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형태의 성차별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집착을 단호히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김없이 성별 갈등으로,

-p.169~170쪽

사랑을 하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사랑을 하면 늘 기쁨과 행복 속에 있을 거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랑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다. 사랑을 시작해도 고통과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려면 이런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폭로해야 한다. (...) 사랑을 실천하려면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건설적인 고통과 막무가내로 상처를 입는 것을 구별할 수 있다.




-p.174~175쪽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그녀의 첫 번째 책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에서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사상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것이 파괴적인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의지나 선택할 능력이 없어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망상 때문이다. 수많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탓에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이런 환상은 우리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사랑을 로맨스로 대체한다.
로맨스가 프로젝트로 그려질 때, 또는 대중 매체, 특히 영화가 우리에게 그렇게 믿도록 하려 할 때, 기획을 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은 여성이다.


-p.183쪽

사랑은 의지의 행위이다. 즉 의지이며 행동인 것이다. 의지에는 선택이 따른다. "우리가 반드시 사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이며,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우려는 의지라고 말한다.

-p.185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5-1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우려는 의지.. 새기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6-05-1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느끼고 깨닫고 끄덕거리다 갑니다.^^

2006-05-14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5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