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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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어떤 관계의 어려움을 앓고 있다. 부디 이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그런 곤란한 느낌을 떨쳐버리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오늘도 내일도 눈 뜨고 있는  삼 분의 이의 시간을 보내는 그 사람에 대한 이 애매하고 찝찝한 느낌을 어떻게 단박에 떨구나.

그런 애매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떤 공식의 단계처럼 그 다음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대인 관계에서 ‘나’에게 어떤 결함이 있길래. 하는 그런 여러 복잡다단한 느낌을 안고 맞이하는 주말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을 읽었다.

하루키, 하면 장편이 좋지! 라고 생각했는데..
단편도 참 좋구나! 했던 책이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을 참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란 사람도 무척 외로운 사람이야! 하는 생각도 한다.
표제작 <렉싱턴의 유령>도, <토니 타키타니>도 좋았지만, <침묵>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번 심각해져버렸다.
화자인 오사와 씨에게는 딱 한 번 사람을 때린 일이 있다. 그것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가 때린 남자는 중학교 2학년 때의 같은 반 학생 아오키였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남자가 싫어서 견딜 수 없었던... (오사와 씨는 본래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도 그런 상대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오키는 반에서도 눈에 띄었고,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았고 성적이 좋은데 우쭐거리지도 않고, 성품도 시원스럽고 부담없는 농담도 잘 하는 그런 남자였지만, 그 남자의 배후에 보이는 잔꾀와 본능적인 계산벽이 오사와 씨는 못마땅해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좋은 아오키 쪽도 그런 오사와의 심리를 암암리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오사와 씨가 모함을 당하는 것이다.
  
아오키는 “기회가 올 때까지 잠자코 끈질기게 기다리는 사람,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 사람의 마음을 실로 교묘하게 선동하는 사람.”이다. 사실 무서운 쪽은 아오키가 아니다. 아오키 같은 사람은 어디 어떤 집단에 가든지 한둘 쯤 만날 수 있으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아오키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어버린는 사람들이다. 말주변이 좋고 받아들이기 쉬운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면서 집단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니까.

아마, 나도 본의 아니게 백에 한 번쯤?? 아오키처럼 얍실하게 행동했을 때가 있을 것이고, 싫어했던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피치 못해 걸려든 오사와 같은 입장에 처한 적도 있을 것이고, 말주변 좋은 다른 사람말만 믿고 생각 없이 쉽게 남을 판단해버린 적도 있겠지.
 
그리고 오사와가 당한 이런 일들은 사람을 좋은 쪽과 나쁜 쪽 둘 모두로 인도하는 것 같다. 좋은 방향은 참을성이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일테고... 나쁜 쪽은 사람을 끝까지 신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신 같은 게 아니고, 뭐랄까. 지금은 내 옆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위안을 주는 남편이 언제까지나 평화로운 나의 사랑으로 남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고, 언제 무슨 흉폭한 일을 계기로 바라지 않던 나쁜일이 급기야 일어날, 그럴 가망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서 잊지 않고 기억해 두는 것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생략....

생각보면, 그의 작품엔 뭐 중뿔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누구 앞에서 줄거리를 얘기할 수준의 것들이 분명 아니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는 2년전 <화요일의 여자들>라는 단편집에서 읽었던 것을 또 읽는데도... 읽었었다는 느낌만 날뿐 세세한 것이 하나두 기억이 안 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커피 잔은 한참 전에 치워졌는데 향은 그 자리에 남은 듯, 여운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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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5-2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질하게 하지 마옵소서;;ㅠㅠ

2006-05-20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5-2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커피 잔은 한참 전에 치워졌는데 향은 그 자리에 남은듯 여운만... 공감해요. 이런 느낌은 자주 느끼는건데 문장으로 쓰지 못했었어요. 훗~ 너무 좋아요.
렉싱턴의 유령, 저도 무척 좋아하는 소설집이에요.
고단백 영양과 감동의 소설집!

히피드림~ 2006-05-2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렉싱턴의 유령이 품절되었다고 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문학사상사에서 다시 나왔나 보네요. 정말 아오키같은 사람도 밉지만 그런 사람의 얕은 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답답하죠. 사람은 겉모양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한 법인데,,, 요즘 책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 부러워요.저도 많이 읽어야 할텐데,,,^^;;

icaru 2006-05-2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아! 반딧불 님께 붙어라~!!!

속삭 님.. 요즘 님의 글이 무르익으셨어요~ 재밌게 읽고 있어요. 결의에 찬 뭔가가 느껴지는... !! 힘찬 출발하시길 바랄께요~ 연수도 잘 받으시고요..

플레져 님.. 그러게.. 작년 가을 쯤에였나요.. 님께서 강추하셔서..비로소 나에게 존재감이 느껴지던 책인걸요..

펑크 님. 작년에 구하려고 할 때는 품절이었는데.. 서점서 사고... 리뷰쓸려고 보니.. 다시 나왔네요.. 표지만 바꿔서.. 전엣것은 하루키 옐로사전이랑 표지가 똑같은 하루키 얼굴이 나와 있었죠...
요즘~ 책 많이 읽는다구요? 아휴~ 그냥 말랑말랑한 책들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안 그래도.. 요즘 너무 멍~해서...저에 대해 불만여요... 건망증도 심해지고.. 이것도 예비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일까요?

2006-05-2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