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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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는 글들이 넘쳐난다. 우리가 아무리 읽는 일을 좋아해도 아무거나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나름대로 넘쳐나는 글들 중에 그 옥석을 가리게 되는 기준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일단은 내 느낌으로 그럭저럭 잘 읽히는 글이 좋다. 써놓고 보니, 잘 읽히는 글이 좋다는 것도 무슨 기준이랄 수 있을까 싶긴하다. 아무튼...그렇게 해서 한번 신임을 얻은 (내게 읽히는 글을 쓰는) 필자의 것은, 무조건 읽는다 라는 게 나름의 내 기준이다.

이 책 뒷면에 추천 글을 써놓은 세 여자(조선희, 최보은, 한비야)에 대한 믿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예전에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와 <세월>을 읽기도 했었지만, 요즘 들어 한국 소설을 잘 못 읽어내고 있는 내가 작가에 대한 예전과 같은 믿음으로 김형경의 책을 다시 읽기란 쉽지 않은 일.

특히, 최보은은 이 책에 대해 이런 표현을 했다. “이 책은 여자로 사느라고 골병이 든 우리들을 위한 원고지 2천6백 매짜리 처방전”이라고.


페르소나 라는 게 있다. 페르소나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로 페르소나는 인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과 타인들의 요구에 맞추어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현대 생활의 복잡한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페르소나가 유용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위선 같은 게 아니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매우 해로울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그 역할자 자체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는 오직 페르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면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결국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팽창한 페르소나와 축소된 다른 성격의 국면들 사이에서 긴장을 초래하게 된다. 이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고.


이 책은 이렇게 자신의 자아를 페르소나와 동일시 하다가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몸의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한 한 여인이 주인공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도 대입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하고 있는 모든 역할이 다 속임수이다. 그럼에도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는 데 반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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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0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독서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김형경의 새책 <성에>는 사 두고 아직 읽지 않았어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말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님의 글 예전부터 읽었지만 차분하면서도 핵심이 있는 글이네요. 전 항상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리뷰 글쓰기를 눌러서 정리가 안 된 글도 많네요. 5월에도 행복한 책읽기 하시고, 좋은 서재 만들어 가세요.

icaru 2004-05-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정말 힘든 일 아닙니까....!! 김형경은 이 책에서 스스로에게 사기치지 않기 위해 응어리를 항상 풀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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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집에 있는 오래 된 책들을 하나 둘 읽고 있는 중이다. 맨 처음에는 “오만과 편견”을 펼쳐들었으나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지 않겠어요.” 투의 대화체 번역에 인내심이 바닥나고, 다른 책을 고르던 중 발견한 이 책. <앵무새 죽이기>를 훌훌 넘겨보다가 다음과 같은 단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 여사가 식료품 가게에서 생쥐를 넣은 초콜릿을 주문하려는 대목에 이러자, 반아이들이 한 양동이의 누에처럼 꼼지락대기 시작했다.”라는 구절이다. 너무나 재치있고 참신한 표현이다. 산만한 초등학교 1학년 꼬마들이 지루해서 몸을 움찔대는 표현을 양동이 안에 담긴 살아있는 누에로 표현하다니!

이 책에는 감동과 교훈이 있었다.
스카웃의 아버지가 흑인 톰의 변호를 맡게 된 일을 어린 딸 스카웃에게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잘 살 수 있기 전에 자기 자신과 잘 살아야 한다. 다수의 원칙에 지속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의 의식이라는 거지”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차이와 관용의 문제를 나긋나긋한 자애로운 아버지의 음성으로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다.
그래서 나에게는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가 톰을 변호하는 공판이 나오는 중간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서점가의 스테디 셀러 코너에는 꼭 이 책이 있다. 문학 수업의 교과서로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고, 영어를 쓰는 어느 나라의 책방에서나 이 책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요는 이 책이 문학성과 보편성을 두루 겸비했다는 얘기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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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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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책의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보자, 폴 오스터라는 영문 철자 아래 이런 관용구가 있다. hand to mouth 이 책의 원제이겠지. 얼씨구 책 제목이 딱 내꼬라지로구나. ( 자기 연민은 여기까지.) 어찌되었건 두툼한 빵 한 토막처럼 생긴 이 책hand to mouth을 한국어로 ‘빵굽는 타자기’라고 번역하여 제목을 붙인 것은 참 기가 막히게 잘 한 것 같다.

이 책은 폴 오스터와 그의 작품 세계로 가는 관문처럼 보인다.

삼 년 전쯤 이 책을 읽었던 건 폴 오스터라는 인간을 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소설도 아니고 일종의 자서전이랄까, 폴 오스터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의 기록이므로.
그리고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은 건 백수의 자기 위안 주는 심정에서였다. 버는 족족 써야 했고, 하는 것마다 망하는 그를 보면서 힘 좀 얻고 싶어서....

빵굽는 타자기를 다시 읽으면서 3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의 소설 <뉴욕 삼 부작>, <거대한 괴물> 등등에 나왔던 인물들을 다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 속에 인물들은 대개가 그가 젊은 날 실제로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이나 인물됨을 모델로 했다는 것.

글쟁이를 꿈꾸는 그가 '액션 베이스볼' 카드 게임을 발명해서 장난감 회사에 아이디어를 팔아보려고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부분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로하여금 동병상련같은 그런 연민어린 쓴 웃음을 자아낸다. 그 기분 안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싶은 것, 게다가 금전적으로 상당히 궁하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그는 게임 사업에서의 처참한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그는 다시 옛날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전보다 사정은 더 나빠졌고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난데없이 뉴욕 주 예술협회에서 3천 5백달러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깃점으로 상황이 점차 달라진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포기할까 말까 고민할 때, 그 순간 난데없이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의 앞자락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조물주가 우리를 길들이는 방식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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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3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전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보질 못 해서요.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하루키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오스터가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그의 몇몇 작품들을 읽어 봤다죠. <달의 궁전>, <뉴욕 삼부작>, <공중 곡예사>...
그런데 이상하더라구요. 전 오스터의 소설이 썩 맘에 와닿지 않았는데도, 그의 신간이나 그의 책에 관한 리뷰가 보이면 꼭꼭 챙겨 읽게 되니....
<빵 굽는 타자기>라~ ^^

icaru 2004-04-0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랄까요,..하루키는 잘 모르겠고.. 폴 오스터의 스타일이 참 좋더라구요...헤헤..그의 작품을 다 찾아 읽은 건 아니구요,,,아니..부러 그렇게는 안 하고 있습니다...그에 대해.그의 작품에 대해..빠삭해지면...정말 재미없을 거 같아서요...실은 아껴 읽고 있어요...님이 말씀 하신 책 중엔 공중 곡예사...는 아직입니다...ㅋㅋ
 
호프만의 허기
레온 드 빈터 지음, 유혜자 옮김 / 디자인하우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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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허하다'과 '허무하다'는 흔히 같은 의미로 쓴다. 그렇다면 공허하다는 것을 허기(몹시 배고픈 상태)진다고도 아니면, 허무한 것을 허기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어보니, 항상 몹시 배가 고픈 상태에 있는 것은 공허하고 허무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보인다.

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헛구역질이 날 만큼 배고픈 그런 상태에 빠진 주인공의 좌충우돌한 그럭저럭 읽을 만한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확실히 이 작품을 과소 평가한 것이었나 보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처럼 작가 또한 유태인으로 소년 시절 나치 치하에서 부모님과 함께 시골의 지인들 집에 숨어다니며 지냈다. 그리고 성인되어서는 주로 여행을 다니며 집필을 했다고 한다.

'난 이방인이 되어야 합니다. 집필을 하고 있는 책에서만 고향의 채취를 느껴야 되지요. ' 그래서일까 책 속의 주인공 호프만도 곳곳에서 '영원한 도망자이자, 조국이 없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보여 준다.

지금부터 호프만이 느꼈던 인생의 몹시 배고픈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태인 소년이었던 호프만은 나치 치하 시절 부모님을 잃고, 그후 어린 호프만은 친구의 집에서 살아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대사관이 된다. 그리고 지적인 미모의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한다. 그들 사이에는 쌍둥이 두 딸이 태어난다. 호프만은 이 모든 행운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여덟살이 된 딸 애스터가 백혈병으로 죽고, 하나 남은 딸 미리암은 마약 중독에 빠지고 방황을 하다가 포르노 영화의 주연을 한 필름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호프만의 허기는 딸들의 죽음 이후부터 심각해진다.

그는 자식들의 죽음이 신이 그에게 내린 천벌일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책을 정독하여 읽기 시작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책에 나오는 신은, 이렇게 가혹하게 처벌하거나 상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호프만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한 신은 풍요롭고 진취적이지만, 호프만의 고통과 공허함마저 물리쳐 주는 신은 아니었다. 스피노자의 신은 출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신에게 용서와 구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릴 수는 없었다. 그러던 60세의 호프만은 체코의 여자 첩보원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깃점으로 호프만 대사는 완전히 파탄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아내 마리안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에서도 벗어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호프만은 다가오는 21세기가 망하는 꼴을 눈으로 꼭 보고야 말겠다는 아이러니한 표현을 통해서, 새로운 2000년을 희망하며 소설은 끝난다.

아마도 인생의 모든 공허한 꼴을 모두 맛본 호프만은 그 이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줄 만한 것들은 거부하면서, 평안한 나날을 보내며 21세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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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스 1
존 파울즈 지음, 현준만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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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태생 작가인 존 파울즈는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에서 영어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63년 <콜렉터>로 데뷔한다. <콜렉터>는 우리 나라에서도 소개가 되고, 연극 무대에도 자주 올려지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수년 전 '미란다'라는 이름으로 공연되어 연극계에 외설 논쟁을 휘말리게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번역자 현준만은 머리말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벗기기 연극의 저본으로 탈바꿈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설은 출판과 함께 찬반 양론이 분분했다고 한다. 불분명한 결말로 끝나는 순전한 허구 놀음, 또는 지적 유희라는 비판도 있었고, D.H. 로렌스의 전통을 잇는 위대한 영국 소설을 향한 흥미 있는 시도라고 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론계의 견해이고, 독자가 본 이 소설은 그저 흥미롭고, 기이하다.
상식만이 통하는 평균적인 지성만이 엄존하는 영국의 생활을 접고, 그리스의 외딴 섬의 영어 교사로 주인공 우르페는 자원을 한다. 그러나 막연히 동경을 품고 간 그리스 외딴 섬에서의 교사 생활도 권태롭기 그지없을 뿐이다. 그러다가 부라니곶을 방문하게 된다. 드디어 주인공이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이 섬에는 불가사의한 인물, 콘치스가 산다. 그리고 그가 펼쳐보이는 신비의 영역으로 주인공과 독자들은 끌려 들어가게 된다. 주인공 우르페는 이 섬의 부라니곶에서 지금껏 확실하다고 믿어온 모든 관념과 지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우르페를 포함한 등장 인물들로부터 속임을 당한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내내 혼란스러운 모험을 겪는 장본인은 바로 주인공 우르페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하고 그 속에 번번히 빠지고 하는 것은 우르페 본인이 의도하지 않게 스스로 곳곳에 파놓은 함정, 즉 사건이 일어날 만한 여지와 꼬투리잡힐 단서를 곳곳에 심어 두고 다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가 주인공의 20대다운 지적 호기심도 한몫을 했을테고 말이다.

줄거리를 요약해서 정리하는 짓은 하지 않을란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혹시나 있을 수도 있는데,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이 줄거리를 듣게 된다면 정말 김샐 것이다. 아무튼 전복할만한 이야기는 책이 1권에서 2권으로 갈수록 2권에서 3권으로 갈수록 가관이 되어 가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고, 아, 한마디로 이중으로 된 사기극에 말려든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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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12-12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참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마구스에 대한 홍보는 전무한 듯합니다.... 일례로 얼마전에 읽었던 열린책들에서 나온 프랑스중위의 여자 책 날개의 작가 주요 작품 소개하는 부분에도... 마구스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혹시 마구스 아닌 다른 제목으로 우리 나라에 알려진 건가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