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만의 허기
레온 드 빈터 지음, 유혜자 옮김 / 디자인하우스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공허하다'과 '허무하다'는 흔히 같은 의미로 쓴다. 그렇다면 공허하다는 것을 허기(몹시 배고픈 상태)진다고도 아니면, 허무한 것을 허기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어보니, 항상 몹시 배가 고픈 상태에 있는 것은 공허하고 허무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보인다.

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헛구역질이 날 만큼 배고픈 그런 상태에 빠진 주인공의 좌충우돌한 그럭저럭 읽을 만한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확실히 이 작품을 과소 평가한 것이었나 보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처럼 작가 또한 유태인으로 소년 시절 나치 치하에서 부모님과 함께 시골의 지인들 집에 숨어다니며 지냈다. 그리고 성인되어서는 주로 여행을 다니며 집필을 했다고 한다.

'난 이방인이 되어야 합니다. 집필을 하고 있는 책에서만 고향의 채취를 느껴야 되지요. ' 그래서일까 책 속의 주인공 호프만도 곳곳에서 '영원한 도망자이자, 조국이 없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보여 준다.

지금부터 호프만이 느꼈던 인생의 몹시 배고픈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태인 소년이었던 호프만은 나치 치하 시절 부모님을 잃고, 그후 어린 호프만은 친구의 집에서 살아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대사관이 된다. 그리고 지적인 미모의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한다. 그들 사이에는 쌍둥이 두 딸이 태어난다. 호프만은 이 모든 행운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여덟살이 된 딸 애스터가 백혈병으로 죽고, 하나 남은 딸 미리암은 마약 중독에 빠지고 방황을 하다가 포르노 영화의 주연을 한 필름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호프만의 허기는 딸들의 죽음 이후부터 심각해진다.

그는 자식들의 죽음이 신이 그에게 내린 천벌일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책을 정독하여 읽기 시작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책에 나오는 신은, 이렇게 가혹하게 처벌하거나 상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호프만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한 신은 풍요롭고 진취적이지만, 호프만의 고통과 공허함마저 물리쳐 주는 신은 아니었다. 스피노자의 신은 출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신에게 용서와 구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릴 수는 없었다. 그러던 60세의 호프만은 체코의 여자 첩보원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깃점으로 호프만 대사는 완전히 파탄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아내 마리안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에서도 벗어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호프만은 다가오는 21세기가 망하는 꼴을 눈으로 꼭 보고야 말겠다는 아이러니한 표현을 통해서, 새로운 2000년을 희망하며 소설은 끝난다.

아마도 인생의 모든 공허한 꼴을 모두 맛본 호프만은 그 이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줄 만한 것들은 거부하면서, 평안한 나날을 보내며 21세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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