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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삶 - 제100회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현재도 재밌게 읽었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50대에나 그 쯤에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이것도 또 하나의 인생 교본이구나! 하면서 크게 감응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엔 보통 사람이 겪는 일상의 문제들이 다 불거져 나오니까.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 말이다. 이를테면, 남녀의 사랑, 자기 정체성의 위기, 노동을 제대로 한다는 것, 늙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 잃어버린 환상 등등
주인공의 인생이 꼭 프랑스의 국가적인 풍토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삶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한 개인으로서 겪게 되는 50여년과 그 50년간의 다섯 번 정권 교체 - 정치인의 집권 흥망과 부침을 교묘하게 섞어 짠 재주가 돋보이기는 하나, 언급한 정치인 중에 드골과 미테랑, 시라크만 누군지 들어는 봤고 나머지 인물들은 당최 모르겠다 하더라도 감동이 줄어들 이유는 없을 것이다.
-드골 장군의 집권기
아주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다 해도, 부적과도 같은 신기한 장난감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명성이 자자했을 아름답고 늠름하고 인내심 있던 10살짜리 형은 갑작스러운 급성 맹장염의 합병증으로 죽게 된다. 형의 빈 자리가 너무나도 컸던 가족. 소년의 어린 시절은 우울했다.
형이 없어서 어떤 성경험이나 지식을 들을 수 없었던 데다가 형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움에 짓눌려 말하기를 거부하는 부모와 함께 살던 주인공은 제법 논다는 동급생 날라리를 통해 최소의 지식을 얻는다. 그 친구는 다비드. 비뚤어진 성격에 상상력도 풍부했고,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나 억제하려는 심리도 전혀 없고, 대단히 건강하기까지 한 대부분의 사람보다는 조숙한 삶을 사는 아이였다.
동급생 친구의 명언들
“제기랄 엄마라도 예뻤으면 어떻게 했을 텐데.”
“먼저 냉장고에서 한두 시간 전에 그걸 꺼내. 정상 온도에 맞추기 위해서 말이야. 그 다음에, 아주 넓은 칼을 들고 구멍을 만들어 고기 한 가운데에. 중앙에 딱 맞게. 너무 커서도 안돼. 아주 정확하게 말야. 그 다음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바지를 내리고 파티를 시작할 수 있어. 빌어먹을 엄마가 가끔 고기를 마늘에 재워놓거든. 어쩌다 마늘 조각이 있는데, 집어넣고 그 위에서 한참 비비고 나면 성기에서 이틀 동안 냄새가 나는 거야.”
-퐁피두 대통령 집권기
치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연상녀와의 연애. 커다란 다리와 풍만한 가슴 아래에서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가 유모의 가슴에서 노는 서투른 소년 같은 기분이 되고 마는, 성욕 분출의 시기이다. 이 때, 3개월 동안 임시직으로 건축 현장의 유급 휴가 창구에서 일한다. 첫 달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 눈의 피로, 꼼짝 않고 일해서 생긴 어깨 통증에 대해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말한다.
“자, 오늘 오후에 철학자 알랭이 쓴 글을 읽었단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네 생각이 났다. ‘식욕은 가고 세탁은 다 되었다. 인생은 좋은 냄새가 난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기
그의 아내 안나는 재력가 출신의 자제이다. 욕조회사와 스포츠 신문사의 사장인 아버지, 몸치장이 화려한 의사 어머니.
그의 아내는 아버지의 욕조 회사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새로운 미션도 받는다. 이를테면 이미 번창하는 회사를 해마다 10퍼센트씩 성장시키는 것, 그녀가 첫발을 잘못 내딛기를 숨어 기다리는 사원과 50여명의 간부들과 맞서는 것,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지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스파와 저쿠지 식의 제품을 내놓기 위해 카탈로그를 샐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그는 곧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위해 내 시간을 바치기로 하였다. 조용히 아이들을 키우는 데 몰두하기로 했다. 예전에 그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내도 즉각 젖먹이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남을 느꼈다.
“넌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게 네 판단과 상식을 망쳤어.”
그의 어머니의 말이다.
그의 인생이 순탄한 것. 그게 뭐가 문제냐고? 그가 나무 사진들을 찍어 편집한 책 두 권이 미친듯이 팔려 나가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될까?
-책 두 권이 기적적으로 팔린 덕분에 나는 세상살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 있었다. 내 가족과, 때로는 나 자신과도 나는 그 무엇에도 연루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과 어떤 계획도 함께 하지 않았다. 이따금 내 자신이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고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는 특별한 계급을 대표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떤 인간도 내 작업의 범주 안에 결코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하면서 말없이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찍는 것이 내 인생이었던가? 내 사진들은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그제야 나는 뱅상과 마리(자식들)의 사진을 찍은 적이 한번도 없으며, 더구나 안나와 어머니 사진도 찍은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나무껍질을 찾아 지구를 누비고 다녔지만 정작 내 주변과, 나와 같은 문지방을 넘는 각종의 삶에는 소홀했다.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나의 감정은 여전히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와 다름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거의 못 봤는데 아들은 벌써 치수가 39나 되는 신을 신었다. 나는 한 번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궁핍을 모르고 살았다. 원한 것도 아니었으며 의도한 바도 아니었지만, 나는 가차 없이 기회주의적인 한 시대의 순수한 산물이었다. 노동이 용기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치가 있을 뿐인 그런 시대의 산물이었다.
나도 길게 산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은 공평하다고나 할까?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