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구판절판


"어느 날, 여자 대학 동기한테서 전화가 왔어. 그 친구가 ‘다다, 네 와이프가 바람피우고 다녀’라고 하더군. 나는 웃어넘겼어. 우리 부부와 잘 아는 친구여서 농담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정말 바람을 핀 거군."
"그래. 내가 가벼운 기분으로 ‘너 바람피운다며?’ 하고 넘겨짚었더니 아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어."
아내를 믿고 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친구가 농담한 것이라 흘려듣고, 그 이야기는 가슴 속에 묻어 두는 편이 나았다. 다다는 마음속에 싹튼 의심에 굴복했다.
(중략) 물론 다다는 충격을 받았고, 화도 냈다. 하지만 화를 낸 진짜 이유는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그녀는 그러게 순순히 바람 핑누 걸 인정하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다다는 알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정말로 다다를 사랑한다면, 필사적으로 부정해 주기를 바랐다. 아내가 부정했다면, 다다는 믿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사건 직후에 아내가 임신한 걸 알았어. (중략) 아내는 ‘당신 아이야. 믿어 줘.’라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믿었어. 어리석다고 생각하냐?"
-324쪽

"그렇게 즐겁게 뭔가를 기다린 적이 없었어. 아기가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지. 그런데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는 내 얼굴을 보는 순간 그렇게 말하는 거야. DNA 감정을 하자고."
그때 비로소 다다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녀는 진실을 밝혀서 다다의 의심을 완전히 없애고 싶은 마음에서 제안했겠지만, 다다에게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모두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필요없다고, 당신이 내 아이라고 했잖냐고 난 거절했어. 아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그 제안은 들어줄 수 없었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두어서 아내를 괴롭히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냐. 그래서 사실을 밝혀내려는 아내를 만류했는지도 몰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내의 배신에 대한 다른 방식의 복수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다는 그때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325쪽

"파국은 바로 찾아왔어. 생후 한 달 만에 갑자기 아기가 죽은 거야. 아기가 열이 잇는 것 같다고 한밤중에 아내가 날 깨웠어. 내가 아기를 돌볼 테니 쉬라고 했지. 아침이 돼서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병원에 데리고 가자고. 아내를 걱정이 되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아기는 젖을 먹자마자 쌔근쌔근 잠들었어. 난 자장가를 불렸지. 아내를 위해.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 아기는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았어."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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