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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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우울이 덮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떨쳐버리려 할 것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는 그것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이 나온다. 유럽적인 방식과 그린란드식 방법.

유럽적 방식에는 구세주 교회에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듣는 것, 마약 가루라는 형태로 된 즐거운 기분 한 가닥을 면도날 달린 손거울에 담아 빨대로 마시는 것,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라면. 그린란드식 방법은 어두운 분위기에 침잠하는 방식이다. 내 패배를 현미경 아래에 올려놓고 그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침잠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상을 꾸려야 하는 이들에겐 어쩜 치명적인 것이다. 자잘한 우울들이 팔에 돋는 소름처럼 일어설 때마다 살살 달래 주어야 할 때, 그린란드식 방식을 취하게 되면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존재가 되버릴 것이다. 이토록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그린란드식 방식이 스밀라에게는 치명적이지 않다. 그녀는 우울에 침잠할 수 있을 만큼 감성적인 반면에 합리적인 표현력을 지닌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나는 구조적으로 세상에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을 연습해왔다. 단념하는 법을. 어떤 것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자기 비하의 경험이 올림픽 경기 종목이 된다면, 나는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


썰매 여행에서 딱 하나 금지된 것이 있다면 징징대는 것이다. 징징대는 것은 바이러스로,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높아 쉽게 감염되는 질병이다.

 

"눈에서부터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는 거대한 힘과 재앙은 언제나 일상 생활의 소규모 형태에서부터 발견된다는 것이다." 라고 했다. 여기서 눈이 자연을 가리킨다면 일상 생활은 도시로 대표되는 문명이다. 그 눈은 덴마크의 도시에서 내려 아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게 하고 눈과 얼음으로 덮힌 야생의 대륙 그린란드까지 가서 응징을 받게 한다.

세상은 과학적 지식과 냉철함 혹은 돈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무장한 강자로 대표되는 퇴어크나 로옌 등과 같은 사람이 그린란드 운석 한 덩어리 마저도 모두 장악하고 차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미치는 자장 또한 미미한 것임을 알게 한다.


스밀라가 눈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 했던 것은 절대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이 절대성을 증명하는 인간의 시도는 바로 수학이었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그걸 방향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자의 직관이라고 해도 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나는 기초 위에 서 있고, 더 이상 나아가 떨어지지 않는다. )


책껍데기의 김연수의 말처럼, 나는 시종일관 스밀라가 보여주는 세계를 마음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작가가 가진 다채로운 이력만큼이나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불어넣어 스밀라라는 캐릭터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 스밀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일은 비록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꽤 해볼만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비록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여러 가지 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닐 뿐, 내 손안에 꽉 쥐어지는 것은 하나 없다. 뭔가 남겨지는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냉철함의 밑면에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는 스밀라를 앞으로 한두번은 다시 만나야 한다(재독을 해야 함...)고 생각하고 그 때는 분명 지금보다는 온전히 그녀에게 빠져 들 수 있을 만큼 집중력이 우수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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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1-0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를 다 읽고 난 지금, 가끔씩 작가의 생활방식이 떠올라요. 자동차와 전화가 없다는...^^ 스밀라의 강을 건너셨군요. 축하드려요. 짝짝~
이카루님은 이성과 감성을 똑같이 나눠서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하나 치우치지 않는...혹시 별자리가 저울(천칭) 자리에요? 헤헤~ ^^

물만두 2005-11-0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으실 날을 기대합니다^^

야클 2005-11-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다시 봐야되는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 ^^

반딧불,, 2005-11-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스밀라에 동화하지 않고는 도저히 읽히질 않더군요.
간략하면서도 참 좋군요.
야클님 영화는 또 어딨는지??

야클 2005-11-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몇년전에 비됴로 나온게 있지요. <센스 오브 스노우>라구요.



비로그인 2005-11-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엉~ 어렵삼!!

sayonara 2005-11-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ㅅ! 영화도 있었군요. 부디 진한 감흥의 소설 속 이야기를 섬세하게 표현했기를...

인터라겐 2005-11-0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저도 앞부분 보다가 덮었어요.. 일단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가시면 다시 들춰보려구요..

2005-11-08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08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정말 말그대로 지난한 스밀라의 강을 건넜어요...야호!!!  이젠 강이 두려워요~
천칭자리요? 캬... 하루 차이로 처녀좌랍니다!!!

물만두 님 옙... 무쟈 한가해지면 말이죠...스밀라부터!!

야클 님... 저도 영화로 보려고 동네 대여점을 찾았었는데요.... 센스 오브 스노우가 있길래... 껍덕을 자세히 읽어보니......다른 영화 같던데요?  그게 스밀라 맞아요?
 
반딧불,, 님... 좀 많이 힘들더라고요..일단 잡기 시작했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 이 많이 앞섰습니다!

이런 비됴 꽉대기도 있었어요..



 복돌언냐... 어렵게 읽은 책은 리뷰도 도통 뭔소린지 모를 것을 쓰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래도 읽을 가치는 있당게요~

사요나라 님 영화 보시면 리뷰 좀 올려 주시죠!!

인터라겐 님 정말정말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속삭 님도요 읽을 것이 많은 세상...이 책은 조금 미뤘다 나중에 천천히 씹어 드시면!!!  섭생에 좋을 듯 합니다...

속삭 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 되려 .... 이 사람의 다른 책... 여자와 원숭이는 함 읽었봤음 좋겠다 했거든요... 존재에 관한 세 가지 거짓말도.... 좀 엄청난 강(?)을 건너야 한다고 들었던 거 같네요..


 


2005-11-08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실은 쓰지 않고 넘어가려다가... 읽느라고 들인 공이 아까워서...ㅠ,.ㅜ
빅슬립 봐야겠어요... 빅슬립 번역한 사람이...꽤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아요... !

icaru 2005-11-0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싸 그러고 보니... 이 책과 빅 슬립과 번역한 사람이 같네요...!

하루살이 2005-11-0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에 반해 여자와 원숭이도 읽어봤는데...
글쎄요, 여자와 원숭이는 문명비판에 너무 촛점을 마추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
캐릭터들에 동화되기도 힘들고,
그래서 리뷰도 못쓰고, 절절...
스밀라의 기저에 깔린 우울모드가 정말 저에게는 딱이어서,
생각보단 쉽고 재미있게 읽던 기억이 납니다.

히피드림~ 2005-11-0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많아서 전 지각한 느낌이 드네요.^^;; 인용하신 책 속의 구절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요즘 알라딘마을에서 이 책이 많이 회자되는 것 같아요. ^^

humpty 2005-11-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역시 나한테는 어려운 책이었음...^^;;

비연 2005-11-0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었지요. 우울에 가까운.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난해하게 왔다갔다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괜히 나의 바닥을 보게 하는 것 같은...그런 느낌.
근데...비됴 표지는 별로 맘에 안드네요...영화는 괜챦았을려나.

icaru 2005-11-1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은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여자와 원숭이는 문명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반면에 또...기존 문명비판서와는 다르게... 결국엔 문명이 패배한다...류는 아니다 라는 말도 들은 거 같은데...
더 잘알려면 읽어봐야겠군요...! 하루살이 님의 리뷰 기억해요.... ! 기상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여셨잖아요!!

펑크 님...정말 알라딘마을에서는 유난히 회자되는 책임이 분명합니다 ^^ 말들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읽는 것도 좋을 것 같고... ^^
험프티 !! 나도 그랬어요... 그럼에도 리뷰를 쓰다니...나 용하죠?
비연 님...비됴 표지..ㅋ 저 두꺼운 책을 영화로는 어떻게 소화했을까...너무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