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동네 한바퀴 돌자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선글래스, 저 그런거 안키워요.

선크림, 그런 것도 답답해서 안 발라요.

양산, 모자, 물론 안 들고 나갔지요.

비타민D를 대량 합성할거라고 휴대폰과 카메라만 손에 들고 나가면서 그것도 거추장스러워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동네인데 그동안 한번도 안가본 길이었어요. 남편은 자전거 타고 가봤다네요. 저 길이 자전거 길이래요.

 

 

 

 

 

 

 

 

 

 

 

걷는 내내 길 옆에서 우리를 호위해주던 꽃입니다.

꽃 가운데 색이 진해진 건 햇빛에 타들어갔기 때문인가요. 

 

 

 

무당벌레는 몸은 작지만 어디있든지 아무튼 눈에 참 잘 띕니다.

 

 

 

 

햇빛 쨍쨍한데 이 달팽이 언제 걸어서 집까지 가나...

 

 

 

 

흑돼지 키우는 곳이 다 있네요. 더우니까 저렇게 땅을 파고 거기에 들어가있더라고요.

누가 돼지보고 머리 나쁘다고 했어!

 

 

 

 

대추나무라고 하는데 꽃이 피었습니다. 

 

 

 

 

 

 

풋복숭아.

초등학교때 이맘때면 학교 앞에서 아주머니가 이 풋복숭아를 잔뜩 담아놓고 팔곤 했는데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절대 사먹으면 안된다고 다짐을 받았었지요. 덜 익어서 먹으면 배탈난다는 이유였어요.

 

 

 

이게 나중엔 갈색의 솔방울이 되겠지요. 지금은 여름. 초록의 계절.

 

 

 

 

거두지 않은 파가 이렇게 꺽다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현수의 단편 소설 <파꽃>이 생각납니다. <토란>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어요.

 

 

 

 

 

 

 

멀리 산도 보이고 완전 시골 풍경인데 저 너머엔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집도 저 근처 어디쯤.

 

 

 

 

Human monkey, 라고 남편이 그랬습니다. 무례하게.

열심히 무슨 열매를 따고 계신 듯 했습니다.

 

 

 

 

 

 

 

 

 

 

 

 

 

생긴 것은 분명히 명아주 같은데 키가 너무 커서 명아주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나팔꽃이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연지를 비롯해서 비슷한 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물이 있으니 다리도 있고요.

 

 

 

 

하늘은 푸르고

 

 

 

 

길은 어디론가 계속 이어집니다.

 

 

 

 

 

씨마저 다 떠내보내고 씨가 있던 자리만 남았습니다.

저 자리도 언젠가 사라지겠지요.

 

 

 

이곳에 무슨 공원을 만든다고 기획 중이라는데,

부디 이대로 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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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9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6-1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다 좋지만 제가 하나 뽑는다면?
˝햇빛 쨍쨍한데 이 달팽이 언제 걸어서 집까지 가나...˝

ㅋㅋ 재밌어요.

사진 보는 재미에다 글 읽는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갑니다. ^^

hnine 2016-06-19 14:09   좋아요 1 | URL
저 달팽이가 매달려있는 곳이 밭 울타리로 쳐놓은 망사 천이거든요.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왔는지 모르겠어요.
걷는데 정신 팔려 가다 정신 차리고 보면 ˝여기가 어디지?˝ 이럴 때가 있고 그럴때 순간 암담함을 느낄 때가 우리 사람들도 있잖아요. 달팽이는 그런 생각을 안하니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으려나요? ^^ 제가 달팽이 걱정까지 해주느라...
사진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는 저렇게 걷고나서 집에 와서 1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축 늘어져있었답니다 ㅋㅋ
사진찍는 건 제가 좋아하긴 하는데 따로 배워볼 기회는 없었어요. 일단 배우면 자꾸 더 잘 찍으려는 욕심이 생길까봐 그냥 제 멋에 찍고 다니며 만족하고 있네요.

stella.K 2016-06-19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아~! 잘 찍으셨네요. 저는 썬그라스는 껴줍니다. 멋으로는 아니고 눈 보호를 위해 10년쯤 된 거.ㅋ 선크림은 끈적여서 싫어하구요. 여름 낮엔 나갈 일이 별로 없어서...^^

hnine 2016-06-20 05:05   좋아요 1 | URL
썬그라스가 원래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눈 보호를 위한 것 맞는 것이, 외국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야외에서 썬그라스 하고 있는 것 많이 봐요. 저는 순전히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용감하게 맨얼굴로 햇빛에 나가고 있는거죠. 저도 더위, 땀, 여름, 모두 기피대상이어서 햇빛 쨍쨍할땐 잘 안나가는데 어제는 집에만 계속 있으니 너무 갑갑하기도 하고 해서 나갔었는데, 허걱...정말 허걱이었어요 ㅠㅠ

oren 2016-06-1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마득한 옛날에 시골에서 학교 다닐 때, 바로 이맘때쯤 제 고향 동네에서 봤던 풍경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그런데, `명아주`는 저도 숱하게 봤지만 저런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던 듯해요. 아무튼 저 풀도 제가 어릴 때 자주 봤던 모습인데 이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통 모르겠네요. 이 사진들을 보니 문득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말했던 ˝올바른 관찰 태도는 몸을 수그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절로 떠오릅니다.
* * *
˝자연의 구석진 곳 어디에서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것을 찬찬히 보는 데 필요한 한적하고 고요한 기분에 젖어 한 생명체가 지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비밀이 떠오른다. 그것이 얼마나 소박하고 내밀한지를 말이다. 이끼 속에 깃든 아름다움은 가장 신성하고 조용한 구석에서 음미해야만 한다.˝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중에서

hnine 2016-06-20 05:11   좋아요 1 | URL
oren님, 저도 풀 이름 잘 모르는데 명아주는 어머니께서 6.25땐 저 명아주도 뜯어서 먹었다고 하시며 여러번 말씀하셔서 그나마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제 저것은 키가 너무 커서 저도 명아주라고 자신있게 말 못하겠어요. 몽글몽글한 꽃과 잎은 따로보면 명아주 같긴 했는데 말이죠.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아무래도 주위를 더 잘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풀이나 열매를 보기 위해선 눈을 아래로, 몸을 수그리게 되고, 요즘은 새에도 관심이 조금씩 가게 되서 하늘도 쳐다보게 되고 소리에도 귀기울이게 되고 그러네요. 말씀하신것처럼 사실 옆에 동행이 있는 것보다 혼자 걸으며 발견하고 느끼고 배우는데 더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qualia 2016-06-20 20:28   좋아요 0 | URL
저 풀이 명아주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명아주 잎은 저 풀의 풀잎같이 길쭉한 모양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명아주는 꽃 혹은 열매 혹은 씨앗들이 저렇게 대규모(?)로 다닥다닥 피거나 열리지는 않지요. 저 풀과 명아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선 집들 앞마당 한켠에 명아주들이 아주 크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죠. 작은 명아주 잎은 뜯어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답니다. 맛이 괜찮았어요.

근데 저 풀 역시 종종 눈에 띄는 풀인데, 저도 이름은 모르겠네요. 어릴 적부터 모습만 알았지 이름은 몰랐던 수많은 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럴 때 사진 이미지를 입력하면 사진 속 풀/나무/동물/물건/사람 등등에 대한 정확하고도 자세한 정보가 좌르륵 뜨는 검색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외국 회사가 이런 검색 방법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오래 전에 본 것도 같은데요. 구글 이미지 검색에 이런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hnine 2016-06-21 14:58   좋아요 1 | URL
아~ qualia님은 명아주 나물도 드셔보았군요. 제가 아는 명아주도 절대 저렇게 키가 크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개 숙여 봐야 하는, 키 작은 풀이었는데...저건 뭘까요? ˝넌 이름이 모니~˝ 물어볼수도 없고 말입니다 ^^

oren 2016-06-21 00:25   좋아요 1 | URL
그런데요, 명아주도 더러 크게 자라면 아주 쓸모가 있답니다. 지팡이로 만드는 거죠. 작년에 도산서원에 두 번째로 갔을 때도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가 생각나 찾아봤고,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또다시 놀랐답니다. 지금 검색해 보니 길이가 무려 140cm라고 하네요.
* * *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를‘청려장’이라고 하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장수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청려장(靑藜杖)을 하사한 전통이 내려와서 조선시대에는 나이 70세와 80세를 맞는 노인에게 각각 국장(國杖)과 조장(朝杖)이라 하여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청려장은 문경시 호계면 일대에서 지역특산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울퉁불퉁한 표면이 손바닥을 자극하는 효과와 함께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운 장점이 있다.대표적인 청려장으로는 안동 도산서원에 퇴계 이황 선생이 짚고 다니던 길이 140cm의 청려장이 있다.
(인용문 출처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8818&yy=2015)

hnine 2016-06-21 14:58   좋아요 1 | URL
명아주가 그렇게 크게도 자라는군요. 예, 제가 본 저 풀도 족히 1m는 넘어보였어요.
지금 우연히 TV를 보고 있는데 ˝소루쟁이˝라는 풀을 소개하는데 비슷해요. 딱 키 큰 명아주처럼 생겼어요.

qualia 2016-06-2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위 길 사진은 하나의 전형적인 작품 같다는 느낌이 딱 들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마음 속에 딱 들어와 박히더군요.
어떤 동경, 설레임, 호기심, 상상력을 보자마자 호출합니다.
제 마음 속 아이가 저 길을 끝까지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뛰어내려오고 다시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뛰어내려오고... ^^

hnine 2016-06-20 21:45   좋아요 1 | URL
길은 호기심과 설레임과 동시에 제 경우엔 어떤 두려움도 함께 불러일으켜요. 안가본 길을 가본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니까요.
그런데 저 길 따라 끝까지 더 갔더라면 아마 저날 저는 일사병 걸렸을지도 몰라요 ㅠㅠ 뭘 믿고 모자 하나 안쓰고 길을 나섰다가 설마 6월 햇빛이 그렇게 강할 줄 몰랐던거죠.
알고보면 사진들이 너무나 다 전형적인 사진들인데, 잘 봐주셔서 고마와요. 이렇게 함께 봐주는 분들이 안계시면 제가 무슨 재미로 사진을 올리겠어요 ^^

낭만인생 2016-06-20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갑니다.

hnine 2016-06-21 00:56   좋아요 1 | URL
낭만인생님, 여길 다 와주시고...감사합니다.
요즘 부쩍 풀과 새와 꽃, 나무에 관심이 많이 가네요.
 

 

 

 

 

 

 

 

 

 

= 우리집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감자 =

 

찌그러져가는 감자를 남편이 베란다에 있는 빈 화분 속 흙에 쿡 찔러놓았던 모양이다.

왜 무슨 일은 꼭 기대 안하고 있을 때 일어날까? 계획하여 진행하고 기다리고 있을 땐 안 일어나고.

감자 싹에서 잎이 나고 쑥쑥 자라더니 이렇게 감자꽃이 피었다.

하얀 감자 심었으니 하얀 꽃.

자주 감자 심었더라면 자주꽃이 피었겠지?

저렇게 피었다가 며칠 안되어 지고, 또 다른 자리에서 꽃이 피는데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안보는 척 하면서 꼭 들여다고 있다.

 

 

 

 

 

= 동네 뒷산 =

 

주말에 아파트 뒷산을 산책삼아 걸을 때 들리는 소리만 듣고 싶어 귀에는 아무 것도 꽂지 않고 간다.

그래도 혹시 못보던 뭐가 있나 하고 눈은 바쁜데 바닥에 누가 휴지를 떨어뜨렸는지 알고 들여다봤더니 세상에, 버섯이다. 지름이 10 cm정도 되는 거대 버섯.

 

 

 

 

 

 

 

 

 

 

 

 

 

 

 

 

 

 

 

 

못보던 식물이 있으면 덮어놓고 사진을 찍어놓는 버릇 ^^

 

 

 

 

 

이건 이름 알았었는데 또 잊어버렸다. 그래서 이름 찾아놓았는데 지금, 또 잊어버렸다 ㅠㅠ

또 찾아야지 흥!

 

 

 

 

 

 

 

 

 

 

= 우리 아파트 단지 =

 

산딸 나무 현재 상태. 하얀 꽃잎은 다 떨어졌다.

 

 

 

 

 

잎 속에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낸 초록사과.

 

 

 

 

 

 

지난 주에 찍어 놓은 사진인데 이때만해도 1시간 여 걷는 동안 별로 더운지 몰랐다.

어제, 비슷한 시간에 동네 한바퀴 돌았는데 기진맥진. 집에 돌아와 쉰다고 누웠다가 내 사전에 없는 낮잠을 그것도 1시간씩이이나! 일어나서는 물을 1리터도 더 마신 것 같다. 그리고 저녁도 못 먹었으니.

여름 예고편 제대로 맛봤다. 그래도 억울하지 않은게 어제 처음 가본 길이 정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예쁘면 다 용서가 된다고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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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06-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잠을 즐기지 않으시군요. 저도 그래요.^^

hnine 2016-06-19 11:21   좋아요 0 | URL
밤잠, 낮잠, 저는 자는 만큼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안자고 버티다 버티다 자는 주의랍니다. (그래서 키가 안자랐나봐요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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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서재에서 회자되던 소설 중 하나 스토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에 찜 해 놓고 기다리던 중 마침내 인연이 닿았다.

국내에 알려진 게 최근으로 알고 있는데 자그마치 1965년 작이란다. 번역되기 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나 싶어 알아보았더니 미국에서부터 사람들 주목을 받는데 오래 걸렸더라. 1994년 결국 작가 존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도 10여년이 지난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판으로 다시 한번 출간됨으로써 전기를 맞게 된 것. 그럼 2006년 다시 출간되게 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기에 더 오래 묻힐 수도 있었을 책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스토너라는 인물은 분명히 허구의 인물이라고 작가가 밝혔다는 것은 그만큼 책 속의 인물이 마치 작가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거나 나아가 본인의 얘기가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일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책 속의 스토너는 작가인 존 윌리엄스보다 더 일찍인 1891년에 태어나 195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직업이 교수이든, 농부이든, 상인이든, 한 사람의 일생은 모두 같기도 하고 모두 다르기도 하다. 똑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는, 그 틀을 벗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순서를 거꾸로 산다든지 하는 획기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비슷한 일로 기뻐하고 비슷한 일로 슬퍼하고 노여워하니까.

스토너의 일생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풍족하지 않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고 대학 교수까지 지내며 살다 갔으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자신의 목표나 꿈이 먼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순서가 아니라 늘 상황이 먼저 마련해놓거나 누구에겐가 제안을 받은 후 순종적으로, 그러나 충실하게 밟아가는 삶은 어딘지 전체적으로 볼 때 밋밋하고 평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토너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하는 문장을 30쪽에서 처음 만났다. 스토너가 대학생일때 슬론 교수와 주고받는 대화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스토너는 침묵했다. 이것은 그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던 문제였다. 마침내 그가 약간 분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 대목, 부인인 이디스가 아버지 장례식을 위해 집을 떠나있는 동안 집에는 스토너와 딸 그레이스만 남아 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집이 텅 빈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서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는 이디스를 생각할 때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조용한 후회가 느껴졌다 (156쪽).

드디어 후회의 시작인가? 스토너답게 조용히.

이름처럼 돌 같고 바위 같기만 한 남편에게서 이디스가 만족을 느낄리가 없다. 안치던 피아노에 매달리는가 하면 연극 연습에 몰두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모임을 갖기도 하다가, 스토너에게 찾아온 학생들이 있는 서재에 자리잡고 앉아 자기 얘기들 떠들기도 한다. 그런 아내의 행동에 스토너의 반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디스의 심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묵인한다.

그는 이디스의 새로운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활동은 그에게 아주 조금 성가실 뿐이었고, 그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필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따라서 그녀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그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167쪽).

마지막 몇 페이지에 걸친, 죽어가는 스토너의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고 뛰어나서, 그동안 혹시 작가는 의도적이었으나 독자는 놓쳤을지 모르는 스토너라는 인물에 대한 것을 여기서 맘껏 느껴보시라 하는 피날레 같았다. 죽음의 피날레라니.

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세계,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

이 책이 뒤늦게나마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주인공의 일생 하나만을 놓고 볼때는 굴곡도 있고 이야깃 거리도 되지만, 이 세상 살다가는 모든 인생들 중 하나라고 볼때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의 확인, 그런 굴곡과 사연과 경험들을 우리 모두, 먼저 살다간 모두, 끌어안고 있다는 데서 오는 동질감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일생이 특별히 더 쓸쓸할 것도 없다. 사람의 일생이 원래 쓸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던 사람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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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6-1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놓쳤습니다. 여러 리뷰를 읽는 걸로 대신했지요.

일생의 쓸쓸함... 저는 장례식장에 갔다오면 좀 마음이 가라앉더군요. 허망함 같은 게 느껴져요.


hnine 2016-06-13 06: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보관함에 담아놓고만 있었는데 우연찮게 인연이 닿았네요.
일생의 쓸쓸함. 전 이제 그냥 받아들여요. 전 그게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더라고요. 이 책을 읽으니 얼마전에 읽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도 생각이 나고,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생각도 났답니다. 그러고보니 이 세 작품 속 인물의 직업이 모두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몬스터 2016-06-1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나절 꼬박 읽고 며칠 동안 마음이 쓸쓸했던 책이었습니다. 슬펐어요. 사람의 인생이 원래 쓸쓸하다는 말씀 ,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많은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하는 사람이거든요. ( 으...싫은 제 모습입니다만 ㅎㅎ ) , 그래서 가끔 지나치게 밝은 사람들을 보면 , 어찌 저리 삶이 즐거울까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가면을 쓰고 사는 건 아닐까 의심하는 (ㅎㅎㅎ )

나의 죽음은 나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지만 , 타인의 죽음은 내 삶에서 한 조각 떨어져 나가는 것 다름 아니니..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라는 말씀 , 맞는 말씀이세요.

아...이래도 저래도 주말이 끝나가는 건 싫습니다. ㅎㅎㅎ

hnine 2016-06-13 06:40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도 읽으셨군요. 쓸쓸하고 슬픈 느낌, 사실 저도 그랬어요. 다 읽은 후 이건 스토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삶에 공통적인 본질이라고, 그러니 특별히 슬퍼하지 말자고, 슬픔을 잠재우기 위해 내린 일종의 처방전인 셈이지요. 저도 어두운 면을 먼저 보고 부정적인 생각과 반응을 먼저 하는 성격, 그걸 또 부정적으로 보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성격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안하기로 해버렸어요.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에도 나름 강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고, 또 나를 내가 맘에 안들어 한다는 건 아무래도 너무한 것 같다는 자기 연민이 발동하기도 했고요.
주말 끝나가지만 다음 주말이 금방 또 돌아오니 우리 웃어요~ ^^
 
맛 보장 가정식 레시피 - 욕쟁이 요리 블로거, 당근정말시러의 ㅣ 맛보장 레시피
당근정말시러 지음 / 빛날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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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 구입은 간간히 했으면서 리뷰를 올리긴 이 책이 처음이다.

요리 블로그를 그렇게 드나들면서도 이 분 블로그는 오히려 다른 단골 블로그에 비해 알게 된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자주 방문하지도 않았다. 따라하기 만만치 않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요리책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초보자가 겁먹지 않고 쉽게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책 (이런 책으로는 아마 나물이 요리책이 그 효시가 아닐까), 테마로 묶어 놓은 요리책 (한식, 일식, 한그릇 요리, 저칼로리 요리, 집밥 요리, 이유식, 등등), 선택할 꺼리가 많도록 종류를 망라하여 많은 요리가 수록되어 있는 두툼한 요리책 등, 그야말로 죽이든 밥이든 매일 상을 차려내야 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요리책도 골고루 구입해본 것 같다.

당근정말시러 닉네임을 쓰는 이 요리 블로거의 요리를 따라하기 만만치 않았다고 한 이유는, 첫째, 서너 단계만 거치면 근사한 요리가 짠 하고 완성되는 그런 요리가 아니고, 둘째, 간편한 시판 소스 사용이 거의 없는 대신 그녀만의 양념장을 미리 준비해놓아야 비로소 요리를 시작할 수 있으며 (물론 대안을 제시해놓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셋째, 이것도 되고 없으면 저것도 되요 식이 아니라 꼭 이거야만 합니다, 다른 것으로 쓰면 이 맛이 안나요 식으로 방법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음식을 몇가지 만들어보고 맛을 보니 이런 거추장스러울지 모르는 점들이 슬며시 이 책의 미덕으로 자리잡는다.

대부분 요리책들을 보면 수록되어 있는 요리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여기엔 나도 처음 보는, 그러나 그게 꼭 무슨 잔치 요리는 아닌, 있는 재료의 배합인데 한번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해본 적 없는 구성의 음식, 이 책에서 처음 구경하는 음식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요리가 블로그에서 책으로까지 나올 때는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해본 것만 예를 들어보자.

처음 해본 것이 소고기 가지국. 소고기 뭇국, 소고기 배추국,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 넣고 끓이는 국이라면 이 정도가 다 였는데 소고기 가지국이라니. 도대체 맛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막상 끓여보니 식구들 반응이 좋다. 이 책의 다른 요리들도 그렇지만 결코 입에 넣는 순간 감칠 맛이 확 돌아 단번에 입맛을 사로잡는, 그런 요리가 아니다. 대신, 뭉근히 그 깊은 맛이 느껴지는, 진국의 맛이랄까. 제일 처음 만들어본 음식이 이러하니 신뢰가 가서 다른 음식으로 넘어가보았다.

경상도식콩나물뭇국. 무를 채썰어 콩나물과 함께 끓이는 국. 그게 전부. 다른 특별한 재료가 더 들어가지 않는데 이것도 괜찮다. 입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편안하게 해주는 맛이랄까.

부추대패삼겹살말이. 고기를 좋아하는,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아들과 고기를 안먹는 엄마. 바로 우리 집이다. 그래서 고기 들어가는 음식을 할때 순전히 레시피에 의존하거나 냄새로 맛을 대신 하고 있는데 이 책에는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많다. 저자가 주로 많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대패삼겹살. 그냥 불에 구워만 먹는 대신 다용도로 이 대패삽겹살을 사용하고 있었다. 때로는 구이용으로, 때로는 베이컨 대용으로, 때로는 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로, 때로는 부침개에. 베이컨으로 아스파라거스 등을 돌돌말아 구워내는 요리만 봤지 잘 안먹는 채소를 대패삼겹살에 돌돌 말아 구워먹는 방법은 왜 생각을 못했을까. 역시, 군소리 없이 속에 들어있는 부추까지 잘도 먹는다.

레몬소금닭날개조림. 우유에 재어놓기, 밑간 미리 해놓기 등, 냄새와 불순물 제거를 위한 전 단계가 있어야 하고, 익히는데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또 제대로 잘 익혀야하는게 닭요리. 튀기면 빠르지만 별로 선호하진 않아 물에 일단 삶아내어 요리하는 때가 많은데 그러다보면 고기의 맛이 삶는 동안 다 빠져나오는 것 같아서, 하면서도 찜찜한데 여기서는 물에 직접 넣어 익히는 대신 끓는 물에 4-5분 담가 두어 해결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양배추를 한켠에서 함께 조리는 방법은 왜 생각을 못했담. 이것도 성공.

비빔국수는 따라해보려다가 첫 단계부터 간장물 만드는데 메밀차 이용하라는데서 막혀 포기. 하지만 이유는 짐작이 간다. 메밀차의 구수한 맛을 넣어주라는 것이겠지. 이런 요령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게 아니다.

감자달걀국. 감자국은 늘 양파넣고만 끓였는데 달걀이 들어가니 부담없이 단백질 보충도 되고 좋다. 아침국으로 제격.

가지나물. 고춧가루 없이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충분한 맛을 내는 걸 난 왜 그동안 이것 저것 넣어 무치고도 결국은 남은 반찬으로 나 혼자 처치해야 했는지.

유자청멸치볶음. 아무도 안먹어 고민이던 선물 받은 유자청을 멸치 볶는데 넣으니 제격. 나는 젓가락 아니라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

오징어폭탄볶음. 이것도 이 사람의 인기 레시피 중 한가지인가본데 호일에 싸서 익히는 대목만 빼놓고 따라했다.

바로 어제 저녁에 한 이북식닭고기초무침, 지금 냉장고에서 숙성중인 오징어젓까지, 겨우 2주 동안인데 따라해본 것을 다 적을 순 없다. 저염간장, 마늘기름은 이미 냉장고에 넣어놓고 잘 이용하고 있는 중이고.

시험 삼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오늘이 반납일.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구입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내가 따라하지 않은 점 두가지:

1. 가지나물할때 가지를 랩에 씌워 렌지에 돌려 익히는 것 (랩은 음식과 직접 닿은 상태에서 렌지에 돌리지 않는다)

2. 오징어폭탄볶음 할때 호일에 싸서 익히는 것 (알미늄 호일 역시 음식과 닿게 조리하지 않는다)

 

 

(닉네임에도 불구하고 당근 들어가는 레시피가 있긴 있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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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6-06-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시도할 엄두가 안 났었어요.
그러면서도 2탄인 김치책까지 샀으니...
좋아보이는 요리책을 사재는 습성,아직 다 못 고쳤나봐요.
하지는 않더라도 사두면 언젠가는...요러고 있네요.

hnine 2016-06-07 17:54   좋아요 0 | URL
hanicare님도 가지고 계시다니 갑자기 더 이 책에 대한 호감도가 팍! 하고 올라가네요 ^^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제가 해본 것들의 특징은 맛을 보았을때 심심하다, 그렇지만 맛없지 않다, 이렇게 표현해야할까요? 심심하다는건 간이 그렇게 세거나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없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사람의 비장의 무기인 것 같아요.
우왕~ 김치책도 사셨구나~ 김치책이야말로 저는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그 책 보고 해보고 싶어지면 어떡하나, 쓸데 없는 걱정부터 하고 있답니다.

hellas 2016-06-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레시피는 정말 믿음주는 맛을 내요. 김치도 수고스럽지만 해보면 반하게 됩니다 :)

hnine 2016-06-07 18:01   좋아요 0 | URL
hellas님께서 서재에 이 책 좋다고 쓰신 글을 읽었었지요 ^^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치책, 우후~!
 

 

 

 

 

 

 

 

 

 

 

 

 

 

 

 

 

 

 

 

 

 

 

 

 

 

 

 

 

 

산딸나무 꽃

지휘자

수녀 모자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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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6-06-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이름 알아내기 전까지는 저 혼자 종이꽃 나무라고 불렀어요.
흰 종이를 오려낸 듯 납작한 꽃이 싱그러운 나무죠^^

hnine 2016-06-07 17: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름 모르고 사진 올렸더니 서재 친구분께서 이름을 알려주셔서 그담부턴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어요. 저 사진만 해도 2-3주 전에 찍었는데 어제 보니 저 종이장 같은 꽃잎은 떨어지고 가운데 동그란 열매만 남아있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더라고요. 이제 그게 빨간 색으로 변해가겠지요.

qualia 2016-06-1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ㅎ ^^

hnine 2016-06-15 21:39   좋아요 1 | URL
그래보이나요? 연상하길 좋아해서 머리에 늘 딴생각이 많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