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자 신입생이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던 책 중 하나가 이 문열의 <사람의 아들>이었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젊은 날의 초상>. 그 다음 <사람의 아들>로 이어져서 이후로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소설들은 아마 거의 다 찾아서 읽고, 없는 것은 사서도 읽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읽은 적이 없었다. 이 목록을 만들면서 보니, 지금도 기억이 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어떤 내용이었더라 가물가물하니, 세월이 참 많이 흐르긴 흘렀다.
나에게 그는 여전히 문학적으로 진지하고 자기 세계가 있는, 좋은 '작가'인데, 작가로서가 아닌 다른 면으로 더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다.


1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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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이 책을 읽고서 이 작가에게 꽂히기 시작.
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9년 5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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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을 읽고서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동에 휩싸였었다.
새하곡
이문열 지음 / 문이당 / 2006년 4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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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문열 지음 / 나남출판 / 1986년 8월
5,500원 → 5,500원(0%할인) / 마일리지 16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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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4-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우리 20대 때 이 사람 소설 한 권쯤 안 읽은 사람이 있었나요?
대단했죠.^^

hnine 2010-04-06 17:25   좋아요 1 | URL
제 친구 하나는 '젊은 날의 초상'인지 '사람의 아들'인지를 다 읽더니 소문에 비해서 너무 별로라고 하는 것을 듣고서 겉으로 표시는 안 했지만 저 혼자 그 친구에 대한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데 시간 좀 걸렸지요 ㅋㅋ

stella.K 2010-04-06 22:0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사실 이문열이 지금이야 그럴수도 있다지만
그 시절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그 친구분이 문학을 보는 눈이 좀 앞섰을까요?
하긴, 남들은 다 좋다는데 나 혼자만 별로라고 부득부득 우기고 싶은 사람
꼭 하나쯤은 있어요. 그죠? 나는 누가 있었더라...?ㅋ

hnine 2010-04-07 00:18   좋아요 1 | URL
글쎄요, 저와 지금까지도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문학을 보는 눈이 앞서서라기 보다, 한마디로 지루했대요 ㅋㅋ

춤추는인생. 2010-04-06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요 나인님 요즘 이문열을 좋아한다고 하면,편견에 치우쳐 보는 시각이 부담스러워요.. 그의 책임도 없진 않지요. 작가는 작가로서 그자리를 지켜야 한다는것이 독자에 대한 책임 아닌가 싶어요. 전 젊은날의 초상. 참 좋아했어요.^^

hnine 2010-04-06 20:09   좋아요 1 | URL
본인은 아마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작가이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젊은 날의 초상>을 생각하면, 젊음의 한때가 누구에겐가는 특권이라기 보다는 힘겹게 넘어야 할 고비가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순오기 2010-04-06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한때 좋아했죠. 황제를 위하여 2도 있는데 목록에 빠졌어요.^^
일곱 권 읽었네요~ 40이 넘어서 초등동창회를 시작하고 일게 된 '아가'는 우리들 이야기처럼 찡하게 울렸어요. 옛날엔 마을마다 그런 반편이가 있었거든요.

hnine 2010-04-07 00:17   좋아요 1 | URL
황제를 위하여 2, 귀찮아서 그냥 생략했어요 ㅋㅋ
최근에 '불멸'이라는 소설을 낸 것으로 들었는데 아마 전집류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엄두를 못내고 있지요 ^^

같은하늘 2010-04-08 0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멸 출간과 함께 싸인회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결국 못가서 아쉬워 했더랬죠. 그런데 댓글들을 보니 안좋은 말을 쓰신 분들도 많더라구요.

hnine 2010-04-08 05:28   좋아요 1 | URL
그에 대해 쏟아지는 혹평들을 작가는 어떤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해요. 좋은 작품으로, 문학으로 그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을 뿐. 불멸을 제가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뢰제의 나라 푸른도서관 1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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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타지 동화를 몇 권 골라서 읽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에 리뷰를 올린 <신기한 시간표>, <두로크 강을 건너서>에 이어 현재 국내에서 대표적인 역사 동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강 숙인 작가의 2003년 작 <뢰제의 나라>를 읽었다. <아, 호동 왕자> 이후로 그녀의 작품은 이것이 두번 째인 셈. 책의 제목을 보고 누구나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 했을 것이다. '뢰제'라는 이름때문인데 여기서 '뢰'는 우뢰 뢰(雷), '제'는 임금 제 (帝)로서 우뢰의 황제를 뜻하는, 작가가 어느 문헌에서 본 후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어 등장시킨 인물이다.
다섯 살때 사고로 아빠를, 1년 전엔 병고로 엄마를 여의고 경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다함이와 다예 남매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열두 번째 생일날, 다함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동생 다예의 축하를 받지만 일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울적해하며 엄마를 그리워 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러고 며칠 후 다함이가 우연히 동네에 나타난 문화재 도굴꾼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뒤를 쫓다가 발각되어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갑자기 가게 된 세계, 즉 저승 세계에 도착해보니, 다른 사람과 착각에 의해 잘못 불려들여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이야기는 흔히 들어오던 얘기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관심과 지식, 상상력이 총망라하여 실로 흥미 진진하게 펼쳐 진다.  
역사적 기록에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보태어 구상되어진 이 책의 저승 세계는 뢰제의 나라로서, 동, 서, 남, 북으로 위치한 궁에 각각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네 신이 거주하며 뢰제를 비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뢰제의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이 생겨나고, 그 질서를 다시 되돌려놓기 위해 뢰제의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매년 뢰제가 잠들어있다는 궁으로 들어가는 도전을 하게 된다. 느닷없이 이 뢰제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게 된 다함이가, 그 젊은이 중의 한 사람과 함께 그 도전의 행로에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열흘 동안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저승 세계라면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그 또한 나름대로의 질서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영위되어 나가는 하나의 세계로 그려지고 있으며, 인간이 아닌 신이 다스리고 있는 이 나라에서 힘과 권세가 신민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 없는 기(氣)가 작용하여야 해결되는 일들이 있고,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정은 저승 세계에 대한 신비함을 그대로 지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미래에 뢰제의 아들이 나타나서 뢰제의 나라의 무너진 질서를 다시 잡아주리라는 설정은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보여지는 전형적인 패턴인 것 같기는 하다. 한번 가진 신념을 굳게 지켜나가는 것, 섣불리 나서기 보다는 적절한 때가 되기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친구, 동료 사이의 신의를 중요시하는 모습 등은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읽는 사람에게 조용하고도 확실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물질적인 부나 무기,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확고한 신념과 질서, 믿음, 정신력(氣)이 강조되는 세계인 뢰제의 나라는 저승 세계이지만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향으로도 보여져서 사후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가 얼마나 큰 애정과 노력으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엮어냈을지 짐작이 가며,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이렇게 훌륭한 환타지 동화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도 될 것 같아서 다 읽고 난 느낌이 무척 뿌듯한 책이었다. 

 

* 참고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블로그가 있어 소개해놓고자 한다.
-->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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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05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숙인 작가 역사 동화, 소설 많이 썼지요.^^
개인적으론 '초원의 별'이 제일 좋았어요. 영화를 만들어도 스케일 방대한 작품이 될 거 같은... 전엔 이분 블로그에도 갔는데 오랫동안 글이 안 올라와서... 오늘 간만에 님 덕분에 가봤어요.^^

hnine 2010-04-05 11:40   좋아요 0 | URL
제가 만약 영화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런 책 읽을 때마다 영화로 만들고 싶어할 것 같아요. 작가 블로그에 가보니 역사 동화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단 데뷰도 환타지 동화로 했다고 하시더군요. 이 책은 역사와 환타지가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지요. '초원의 별'도 읽어봐야겠어요.

bookJourney 2010-04-05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희 첫째 아이가 흥미있어할 것 같은 책이에요. 우선 찜해둡니다. ^^

hnine 2010-04-05 11:40   좋아요 0 | URL
용이에게 이 책이 재미있었다면 아마 이분의 책들을 다 찾아서 읽으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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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나쁜 피'를 읽고서 이 현수 작가의 '토란'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리뷰에 썼던 기억이 있다. 한 대에서 끝나지 않는 여인의 비극적 삶의 퍼레이드 라는 점에서일 것이다. 이번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으면서 그 느낌이 계속되는 것을 보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냥 '느낌'은 아니었나보다. 그때 리뷰의 제목을 '보지 말았어야 할 인생의 비밀'이라고 붙였었는데 이 책의 제목과 어딘지 일맥상통하는 것도 같고.
 
1. 우리가 아는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삶은 아니다.
구걸하는 엄마와 함께 노숙생활을 하는 소녀, 그녀의 미래 역시 엄마의 삶에서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으며 ('열세 살'), 가족의 빚을 떠안고 법대생이면서 대리모인 그녀, 그녀의 의뢰인, 그녀의 엄마, ('엄마들'), 어릴 때 엄마로부터 버려지고 아빠 아닌 아빠로부터의 끈 역시 놓아지려하자 그 상상만으로도 깊은 상처를 견뎌낼 엄두를 못내는 여자 ('순애보'), 결혼 후 자궁경부암 선고를 받은 여자의 병수발을 들어주던 엄마가 자궁암말기 판정을 받게 되고, 남편에게 이혼 요구를 하는 그녀에게 이제 더 이상 보낼 무엇이 남았는가 ('환상통'). 어린 것을 안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던 해내야 했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해낸 일은 남자를 죽여서 고깃간의 냉동고에 가둬버린 것 ('오늘처럼 고요히'). 온라인을 통한 세계에 의지하며 사는 그에게 문득 모르는 사람의 손에 애착이 생기게 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손'). 무대에 서서 관객을 기쁘게 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외로운 남자들을 위로해주는 무명 여배우의 삶은 또 어떻고 ('막'), 아무리 매일 얼굴을 보는 이웃에게도 좀처럼 보여질 수 없는 사람의 깊은 내면과 상처는 또 어쩌란 말인가 ('하루').
그래, 이런 삶이 여전히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어. 너는 너의 고민에 묻혀 너를 중심으로만 이 세계를 보고 있지만, 네가 모르는 가운데 존재하는 이런 세상도 있단 말이야,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줄곧 내 자신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2. 그럼에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는다
벙어리 흉내를 낼 것을 지시받은 열세 살의 여자 아이가 지하철 계단에서 엄마가 구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낡은 옷차림을 제외하면 길에서 보는 내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데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들은 거울 앞에 있는 나를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거울 앞에서 표정 바꾸기 놀이를 했다. 착한 어린이 표정, 나쁜 어린이 표정, 불쌍한 어린이, 우는 어린이, 싸가지 없는 어린이, 섹시한 어린이. 씨발, 자꾸 쳐다보지 말라니까! (21,22쪽)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런 거부감은 곧 자신을 따돌리려는 이 세상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열세 살 소녀도 반짝이 스타킹을 가지고 싶어 했으며 '혹시 신발을 잃어버리면 왕자가 나타날까 (11쪽)'  하는, 막연하지만 엄연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내고 있었다. 대리모 그녀가 시간 있을 때마다 맞추던 퍼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없어진 조각 하나는 불구가 된 미완성의 예고임에도, 그 한조각의 틈새가 숨통처럼 보였다는 것은 틈새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희망을 의미한다고 보여졌다. '순애보'에 등장하는 꿩은 열세 살 소녀의 반짝이 스타킹, 대리모 여대생의 퍼즐 한 조각과 같은 역할로 삽입되지 않았을까? '오늘처럼 고요히'에서 여자가 자신의 삶과 연관지어 생각했던 것은 남편인지, 아니면 혜경 엄마인지는 아직도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아가야, 일어나, 밥 먹자, 혜경이가 말간 얼굴로 일어났다. 나는 새 내복으로 갈아입혔다.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혜경이는 찬물을 한 대접 마신 뒤에 숟가락을 들었다. 혜경이와 나는 이마를 맞대고 미역국을 마셨다 (162쪽).  
   

작가의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는 따뜻한 밥상으로써 이 이야기 역시 맺음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밥상을 차리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이 밥상.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생선을 구워 밥상을 차리고, 꿋꿋하게 앉아 끝까지 다 먹어내는 모습은 곧 살아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읽혀서 늘 가슴이 메였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 중 단연 돋보였던 것은 '손'이었데,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온라인으로 여자를 부르고, 온라인으로 나의 시간을 채우며 살아가는 남자가 어느 날 새벽 현관 문 아래 통로로 우유를 집어 넣는 손을 보게 되고, 살아있는, 살아서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의 손은 남자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유발시켰던가.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모든 하드웨어를 온라인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실체와의 교감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억울한 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88쪽).  
   

새벽 4시가 좀 넘으면 신문 넣는 소리가 들리고, 이 시각에 나만 홀로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체 모를 그 소리를 반가와했던 나의 오랜 기억이 이 작품을 읽으며 다시 소집되었고, 이 소재로 이런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끄덕여지게 했다.

우리는 흔히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말을 한다. 현실 같지 않은 일을 얘기할 때 하는 말이다.
나는 왜 소설을 읽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소설 같다는 그것 역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삶의 한 모습인 것이다. 우리의 가슴과 머리가 아직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삶들을 통해, 타인의 눈에는 소용 없어 보이고 처절해 보일지 몰라도 끝까지 그 삶을 부둥켜 안고 피 흘리며 걷고 있는 모습은 종교만큼 숭고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곁들여, 얼마나 많은 경우의, 가지 각색의 삶을 보고난 후에야 나는 삶을 조건없이 끌어 안을 수 있게 될까, 삶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소설은 나로 하여금 그런 단계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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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맘이랑 참 비슷한 생각 하셨네요.
이런 삶이 주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겠죠. 삶을 안다고 하기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보듬어 안아야 할까요?

hnine 2010-04-02 22:01   좋아요 0 | URL
아, 세실님도 그러셨군요. 읽는 내내 말씀하신대로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랬어요. 우울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는 요즘, 삶의 의욕도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꿋꿋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금요일 밤이네요. 이번 주는 지난 주보다 기운이 좀 나셨었는지요?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편히 주무시고요.

... 2010-04-0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서 "손"을 읽어봐야 겠군요.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hnine 2010-04-03 05:34   좋아요 0 | URL
우유를 배달하는 손은 아니었지만 위에 썼듯이 저도 식구들이 아직 모두 잠자는 조용한 새벽 매일 같은 시각에 엘리베이터가 끽 멈추는 소리, 신문이 현관 밖에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 단편을 더 흥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브론테님은 어떤 느낌으로 읽으실지 궁금해지네요.

2010-04-03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9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3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4 0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5 0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zydevil 2010-04-0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 대한 소설이군요. 나인님의 리뷰만 봐도 좋은 이야기들이네요.
읽어봐야 겠네요. 근데 표지그림이 너무 무서워서요...

hnine 2010-04-06 13:09   좋아요 0 | URL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 대한 소설. 아, 그래서 더 마음으로 다가왔나봐요.
남자들도 그럴까요? 여자들에게는 소설 속의 여인들의 삶이 그저 남의 얘기로만 보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표지 그림, 실제로 보면 무섭기보다는 좀 슬퍼보인답니다. 우는 모습을 연상시키거든요.
lazydevil님께서는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네요.

같은하늘 2010-04-08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구입해 놓고 아직 못보고 있어서 리뷰를 안보려 했는데 결국 보고 말았답니다.^^

hnine 2010-04-08 05:32   좋아요 0 | URL
저도 다른 분들의 리뷰 다 읽어보고서 책 읽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의 레시피 - 레벨 3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이미애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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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라는 단어보다 더 피부로 와닿는 우리 말은 한 솥밥을 먹는다는 뜻의 '식구'가 아닐지.
여름 방학을 맞아 바쁜 엄마 아빠 품을 잠시 떠나 시골 외할머니 댁에 내려가서 지내게 된 초등학교 5학년 서현이는, 방학 숙제를 안해도 된다는 것과 예쁜 블라우스 인형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 때문에 내려오긴 했지만 막상 내려오고 나니 할머니의 그 투박하고 거친 말투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집,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심심한 시골 생활로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매일 매일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는 음식으로 차려진 밥상에서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으며 조금씩 할머니와 친하지게 되고, 사먹는 음식이 아닌 손수 만들어주시는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옆에서 지켜보며 할머니와의 사이에 비로소 따뜻한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 간다.
매콤달달 양념 찜닭에서부터, 주물럭주물럭 감자떡, 약고추장, 추어탕, 상추 시루떡, 오미자편, 약과, 정구지 찌짐, 제물칼국수, 증편에 이르기까지, 실제 레시피가 할머니의 말투 그대로 책 내용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어떤 재료가 몇 그램, 몇 숟가락 식은 아니지만 그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그려지게 하는 레시피였다. 내게도 처음 보는 음식의 이름도 있었는데 정구지 찌짐의 정구지는 부추를 뜻하는 것이라고 하며, 감자떡은 먹기는 많이 먹어보았지만 감자를 가지고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오미자편은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데 아마 말랑말랑한 우리식 젤리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 되고, 국수 장국을 따로 만들지 않고 국수 삶은 물을 그대로 국물로 이용한다는 제물칼국수도 처음 들었다. 고디국의 고디를 책 속의 우리 서현이도 '고등어'로 알아듣더니 나도 그것이 '다슬기'를 뜻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상추 시루떡은 그 중에서 제일 해보고 싶은 음식. 떡을 만들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고수레'라는 것도, 어떤 과정으로 한다는 것도 처음 배웠다.
과연 우리 음식을 만들면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그 요리법이 아니라, 기다려서 얻을 수 있다는 것, 그 기다림에 대한 가르침이 아닐까. 지갑에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그 돈으로 원하는 음식을 '사'먹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기다린다는 것에서 자꾸 멀어져 간다.  
할머니와 정이 잔뜩 들었지만 방학이 끝나서 서현이는 외할머니께서 혼자 계신 집을 떠나 엄마 아빠가 계신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 방학이 될 즈음 할머니가 문풍지에 손으로 직접 쓰신 편지와 음식 만드는 방법에 대해 쓰여진 노트를 전해 받는다.

   
  서현이 니가 내보고 부뚜막 각시라 불러 줘서 참말 고맙대이. 평생 아무 것도 아니었던 촌 할마시가 우리 서현이 덕에 뭔가가 되었는 기라. ... 우리 서현이는 내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요리할 줄 알았으이끼네 진짜로 훌륭한 요리사였는기라....내하고 있어 줘서 고맙대이. 참말 고맙대이. 요리사가 되었으면 좋았을낀데 하면서 내처럼 죽기전에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가 뭐가 되어서 참 좋았다고 뿌듯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알았재? (203, 204쪽)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읽고 있었다.
실제로 어릴 때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살려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후기가 참 진솔하다. 가슴에 남아 있는 추억을 이렇게 고운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부터 나도 매일 타성에 젖어 밥상을 차리기 보다는 이렇게 새로운 의미를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할머니가 편지에 쓰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떠올려 질 것인가.

   
  특별한 맛내기가 어딨겠노? 내 생각엔 그런 게 있다 카면 그거야말로 '정성'이 아니겠나. 음식 만들 때는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라. 그라면 씻고 썰고 볶고 끓이고 버무리는 기 쪼매 귀찮고 성가셔도 대충 건너뛸 수가 없재. 그기 바로 특별한 맛내기다 아이가. (199쪽)  
   

할머니의 레시피 만큼이나 소박하고 담담하게 쓰여진 따뜻한 책 한권과 만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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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4-0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렇게 멋진 리뷰를 ^^

hnine 2010-04-02 16:32   좋아요 0 | URL
이 책 순전히 하늘바람님 리뷰 보고 읽게 된 책이랍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bookJourney 2010-04-04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을 한참 비워내야 하는데, hnine님 리뷰를 보니 다시 책 욕심이 스물스물 생겨요. --;

hnine 2010-04-04 17:20   좋아요 0 | URL
지금 '뢰제의 나라' 리뷰 쓰던 중에 책세상님 댓글을 보았네요.
저처럼 되도록 책 안사고 빌려보는 주의에, 그나마 산 책도 잘 안 쌓아두고 비워내는데 선수임에도 책이 어느새 자리를 못찾아 방바닥에 쌓이기 시작하는걸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어요.
저야말로 책세상님 서재에 가면 아이가 읽으면 좋을만한 책들이 어찌나 많은지 노트에 적어놓기 바쁘다니까요 ^^
 


마지막 한 편 남았네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낯이 익다
어디선가 읽은 글이다
아마 책으로 묶이기 전에 발표되었던 지면으로
먼저 읽었나보다
제목만으로는 몰라보았는데  

책을 덮는다

이로써 나는 또
누군가 지어놓은
세상에 들어가
실컷 구경을 하고 나오기를 마친 셈이다 

아름다웠다고 말할까
지독했다고 말할까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말할까 

리뷰를 쓰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겸
예전에 올린 페이퍼와 리뷰들을 몇 개 둘러보았다
기억이 새록새록
이런 좋은 책이 있었지
이런 뭉클한 시가 있었어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오려나보다
비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찰싹찰싹'
으로 들린다
 

비로 시작한 4月 


빗소리 듣다보니 아, 지금 시간이!

오늘 저녁으론 또 뭘 먹어야 하나
리뷰를 쓰기 전에 내가 해야할 일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구나

저쪽 세상에서 다시 내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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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 속에서 hnine님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무엇이었을까요? 전 그것도 알고 싶어요. 우리 교환해요. 그 책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의 제목을요.

hnine 2010-04-02 12:12   좋아요 0 | URL
옙! 오늘 밤에 리뷰 올리겠습니다~
전 '손'이라는 단편이 다른 작품들과 좀 차별되어 보이더라고요.
'엄마들'도 좋았어요. '순애보'도 좋았고요.

다락방 2010-04-02 13:18   좋아요 0 | URL
아 뭔가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어요, hnine님.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저는 그 단편집 중에서 [손]이 가장 좋았어요. 그 단편 때문에 그 단편집에 매기는 점수가 확 뛸 만큼 말이죠.

무스탕 2010-04-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 뭐를 해 먹긴 귀찮고 그래서 전 후딱 나가서 삼겹살 만원어치 사다가 먹었어요.
국도 없었는데 고깃집에서 준 파채를 반은 무치고 반은 계란 풀어서 계란+파국 끓여서 신랑 주고요.
애들은 엄마의 귀찮음도 모르고 잘 먹어 주더군요 ^^

hnine 2010-04-02 12:13   좋아요 0 | URL
요즘 삼겹살도 값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반찬 준비 안해도 되니 좋지요. 고깃집에서 파채도 그냥 주나봐요? 흠~ 괜찮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