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구역
이영수(듀나) 지음 / 국민서관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배명훈, 김보영 등의 작가들을 알게 되면서 한국SF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영수라는 이 작가의 이름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금방 알기 어려운 두리뭉실한 이름, 책의 어디를 봐도 작가 소개따위는 없다.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작품의 성격을 더 강조하는 효과를 의도해서인지. 한가지 확실한 건, 그녀 (이제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은 안다)의 이름과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을 기회를 차단시킨 결과에 한몫 하지 않았나 생각되어 안타깝다.

이 책을 구입하려고 봤더니 '절판'이란다. 물론 다른 책들도 있고, 최근 작품으론 2008년에 나온 <브로콜리 평원의 결투>라는 중편집도 있지만 웬지 꼭 이 책 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낭패였다. 중고책으로도 나와있는 것이 없다니. 그러다 지난 주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어찌나 반갑던지.

'면세구역'을 첫 단편으로 시작해서 이 책에는 모두 열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 끝에는 기존의 어느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고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차별화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짧은 노트가 달려있다. 예를 들어 <면세구역>이라는 작품은 G.K. 체스터튼과 H.G.웰즈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도깨비 같은 장소들의 존재를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전에 이런 짧은 해설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재미있다.

작가가 자기 글에 해설을 붙이는 건 꼴사나운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표절범으로 몰리기 전에 자기 패를 미리 펴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독자들의 시선이 아이디어의 신빙성과 독창성에 가장 먼저 떨어지는 우리 장르에서는 그렇다. (21쪽)

이 작가에 대해 점점 더 궁금해진다.

<스핑크스 아래서>라는 단편은 작가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해설이 달려있는가 하면,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나는 너의 엄마와 결혼하지 않읐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나비전쟁>은 가볍지만 기발하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던 '그녀'가 어느 부분에서 '나'가 되는 작품 <낡은 꿈의 잔해들>은 오싹하기까지 하다.

<펜타곤>같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그렇다고 다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시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이해 못했다는 것이 별로 기분이 안 좋아서.

<그 크고 검은 눈>, <비잔티움>, <숲의 제단>, <로렐라이> 등의 작품에서는 이제 무대는 지구가 아니라 우주, 혹은 그 이상의 세계이다. 특히 주목해서 읽은 것은 <비잔티움>이라는 작품인데 여기에 창조론과 진화론 외에 제3의 가설, 지적 조절자의 개념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더구나 이 작품에서 이 지적 존재는 '지적 생물들'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우주를 돌아다니며 적절한 행성을 발견하면 그곳에 생명을 심는다. 제국주의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창조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도 그럴 것이 이 창조자들은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진화 초기의 생물을을 더럽고 추잡한 동물들이라고 표현한 것도 독특하고.

마지막 작품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는 그중 제목이 비교적 편안해 보이지만 결코 받아들이기 편안한 내용이 아니다. 고치를 남기고 사라진 아이들의 정체를 생각하면 끔찍하기조차 하다.

작가는 상당히 예리하고 기발하며, 일단 누군가의 입이나 글을 통해 나와있는 이야기는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비숫해지기를 혐오하고 있지 않을까 혼자 추측해본다. 그래서 더 다른 작품들의 바다를 열심히 헤엄치고 다니고 있다면 아이러니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 자체가 마치 현재 한국 문단에서 <면세구역>같은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음의 대사를 보면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가? 선택받은 사람들의 눈에만 들어오는 작품.

"...... 그러니까 면세구역의 존재는 일정 수준으로 커진 도시에서는 자연발생적이지요. 그 곳을 선택받은 사람들이 발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요. 어떤 사람들이 선택받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유전적인 요소를 고려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20쪽)

 

언젠가 어린이용으로 미래 생명공학 관련 이야기를 재미로 써본 적이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읽어본 모든 어른들은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해서 절망했던 경험이...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또 읽게 될까?

나도 모르겠다.

 

 

 

▶ 다음은 내가 즐겨 보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The Science Times 사이트에 실려있는 이영수 작가 작품에 대한 기사이다.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6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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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2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오래된 책인데(아무 절판되었을 겁니다),다행히 도서관에 있었네요.듀나는 정말 얼마 안되는 국내 SF작가지요.근데 듀나는 해품달의 작가처럼 남자인지 여자인지 개인인지 집단인지 정체가 불분명 하다네요.읽어보시니 hnine님은 어떤 작가 같으세용^^

hnine 2012-06-22 05:38   좋아요 0 | URL
예, 보시다시피 절판되었더라고요. 위에 링크 걸어놓은 기사에 보니 작가는 여자분이신 것 같아요.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앞에 나서고 싶지 않게 했을까 궁금해요. 훨씬 더 빛을 볼수도 있을 작가이고 작품이지 않나 해서요.
 

'공식'이라고 까지 한 것은 과장이다.

어린이, 청소년 대상의 외국 작품과 우리 나라 작품들을 함께 읽어보면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눈으로 볼때 외국 작품들에 기본적으로 흐르는 그 긍정, 낙관적인 삶의 태도이다. 아무리 비참하고 밑바닥 같은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의 그 낙천성,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적인 태도는 어른이 배우고 싶을 정도이다. 그건 작가들이 일부러 그렇게 묘사한다고만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네들의 가치관, 사고방식의 차이가 반영되는 거라고 보여지는데 반해 우리 나라 작품들은 문학적, 서정적, 감성적인 느낌에 호소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이분법적인 정리가 될까봐 조심스럽긴 하다.

 

최근에 읽은 두 작가의 작품이다.

 

1.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1, 2

 

 

 

 

 

 

 

 

 

 

 

 

 

 

 

네덜란드 태생 휘스 카위어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틈틈이 글을 쓰다가 청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전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책의 시작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담임이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
제목도 그렇듯이 첫문장부터 독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긴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담임선생님이 엄마와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도 열한 살 소녀 폴트케는 아빠에 대한 동정과 애정을 멈추지 않는다. 보아하니 당장 생활도 어려워보이는 아빠에게 끊임없이 아빠의 꿈, 즉 시를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권유한다. 폴트케 본인은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한  열한 살 짜리 아이라고 말하지만 읽는 사람이 보기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과연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라고 했다.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지? 하긴 뭘 해? 그냥 걸어 다니고, 놀고, 공부하고, 웃고 그러면 되지. 진짜 문제는 이 세상에서 뭘 할지가 아니라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다. (88쪽)

열한 살 아이의 때묻지 않은 진심이라고 보기엔 내가 너무 때가 묻었는지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걸 어쩔까. 차라리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아이라고 불평하는 아이가 더 아이답고 공감이 간다. 외국의 어린이, 청소년 대상 작품을 읽어보면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우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긍정적일 수가 없다. 작가들에게 어떤 공식처럼 작용하나? 한때 우리 나라에서 동심천사주의가 공식처럼 작용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심리 묘사는 확실히 돋보인다.

할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네 머리에는 뭐가 참 많이 들어있구나."

내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건 사실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가 있었다. ...눈을 감으면 별의별 것들이 다 보였다. 내 머리는 꼭 쓰레기통 같았다. (116쪽)

열한 살, 감성이 풍부한 아이의 그런 심리 묘사 뒤에 바로 따라 나오는 할아버지의 대사를 보자.

"내 머릿속에는 무엇보다도 고요함이 들어 있단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고나 할까?... 내 머릿속은 조용하니 얼마나 멋진지 몰라. 생각이니 뭐니 하는 일은 피곤하고 힘들어서 싫어." (117쪽)

작가는 이렇게 열한 살 아이의 마음속에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고 노인의 마음 속에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나보다.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이겠다.

 

 

2.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연상할까?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 <시녀들>을 보며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비례가 맞지 않는 인물들.  오른 쪽 아래 엎드려 있는 개 한마리의 존재감이란 적어도 내게는 눈에 띄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이 책의 작가 라헐 판 코에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 존재감 없는 개. 그것도 무릎을 치겠는데, 그건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이 책의 이야기를 꾸려간 작가의 상상력이란!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서부터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이 개의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아직 어린 자식을 개로 만든건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외면을 당한 상황에서 이 소년 바르톨로메가 대처해나가는 모습을 본다. 슬퍼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는 결과를 부르는 바르톨로메.

그래, 이쯤이면 희망과 긍정이 공식이라 할지라도 그건 흠이 아니라 덕이겠다.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과 상상력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감동때문에, 또, 읽고 나서 생겨나는 그놈의 희망과 꿈, 격려라는 것 때문에, 그누구에게든 읽어보라고 권유할 수 있을 책이다. 그런 책이 많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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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6-1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었어요 :)

제가 생각하기에도 외국 작품에는 그런 공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단편소설을 읽을 때면 종종 '왜 이렇게 공통된 우울한 정서가 흐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하는데, 그러고 보면 한국이란 나라와 낙관주의는 어째 좀 어색한 사이처럼 느껴져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줄거리를 읽으니까 문득 <제인 에어>가 생각나네요. 제인처럼 고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인간상은 일찍이 본 적이 없어요. 내일 도서관 가는데 <제인 에어>를 빌려서 다시 읽어야겠어요!

hnine 2012-06-18 08:41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하니 외국의 문학 작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네들과 우리의 어떤 기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가 겪은 역사도 다를 것이고요. 그러니, 문학 작품에서도 다른 것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건가요? ^^
제인에어를 지금 다시 읽으면 분명히 처음에 읽었을 때와 다른 무엇인가를 전해받을 것 같아요. 중학교때 읽을 때는 완전 연애 소설로 초점을 맞춰 읽었었는데 지금 읽으면 말없는 수다쟁이님 말씀대로 강인한 인간상이 눈에 들어오겠지요. 제인에어를 다시 읽으시겠다는 수다쟁이님, 멋져요 ^^

... 2012-06-18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레케 이야기는 네꼬님 페이퍼에서도 본 것 같은데 역시...흐음.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저 책을 클릭 해서 보고 있는데 책 설명보다 미역을 준다는 이벤트가 화악~ 눈에 들어오네요 ㅋㅋ 담아가요!

hnine 2012-06-18 08:44   좋아요 0 | URL
저도 네꼬님 페이퍼에서 보고 구매했어요 ^^ 재미있답니다. 캐릭터도, 이야기도. 그런데 어른들에게 없는 것을 열한 살 어린 아이가, 그것도 자기처럼 불행한 아이는 없을 거라고 스스로 말하는 아이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더 잘 견뎌나가는 것을 보고 제가 심통이 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바르톨로메와 미역이라...ㅋㅋ 우리는 참 재미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

파란놀 2012-06-18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하는 사람들 환경이나,
문학을 읽을 사람들 환경이,
한국과 다른 나라는
참 많이 다르기에
여러모로 이분법이 되겠다 싶도록
느낌이 갈라질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hnine 2012-06-18 08:47   좋아요 0 | URL
다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라고 받아들이고 비교하며 읽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생생하고 톡톡 튀는 이야기 진행, 밝고 긍정적인 결말...요즘 엄마나 학교에서 일부러 권하지 않는한 아이들이 외국 작품 읽기를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이유가 뭘까 저도 생각하며 읽게 되더군요.

책읽는나무 2012-06-18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아이가 어리다보니 딱 그수준에 맞는 책만 읽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한 번씩 청소년책도 읽고 싶은 충동이 일던데(쌓아둔 내책은 안읽구요.ㅋ)
아이가 좀 더 크면 나도 막 읽고 있겠구나~ 란 상상을 해요.

우리네 정서와 외국의 정서가 다르다는 것은 아이들의 책을 읽어도 확연히 표가 나긴해요.그래서 때론 이질감이 느껴져 전 좀 멀리하게 되곤 하던데,
아들녀석은 또 그것(?)이 맘에 든다네요.
어른인 '나'는 이미 그렇게 한국 문학에 이미 길들여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요즘 신간 어린이책들은 예전보다는 좀 더 많이 밝아진 듯 하더라구요.
한 번씩 외국동화를 읽는지? 한국동화를 읽는지? 헷갈릴정도에요.^^
암튼. 청소년 소설책엔 좀 문외한이라 많이 배우고 가네요.
일단 보관함에 슝~ 넣고 봅니다.^^

hnine 2012-06-18 08:50   좋아요 0 | URL
아이 따라 그 연령대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좋은 기회 같아요. 아이가 없다면 제가 이 나이에 그런 책을 이렇게 관심있기 읽을 것 같지 않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아이들 책을 보며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도 많고요.
제 경우엔 아이와 상관없이 예전부터 이상하게 청소년소설을 좋아했는데요 ,음...뭐랄까, 제가 자라온 성장 배경과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바르톨로메는 청소년소설이라고 굳이 할것 없이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랍니다.

프레이야 2012-06-18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이네요.
상상력이 무시무시했고 아팠던 기억이...
문장은 빌려오거나 인용이라도 할 수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훔쳐올 수도 없는, 그만의 값진 재산인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즐거운 한 주 시작해요, 우리^^

hnine 2012-06-18 12:16   좋아요 0 | URL
저도 귀에 익숙해서 읽은 줄 착각할 뻔 했지요. 진주귀거리소녀와 또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네요. 정말 무시무시한 상상력이라고 밖에...작가가 특수교육분야에서 일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 쪽으로 상상을 했는가봐요.
부모에게도 자랑스런 자식만 자식일까, 무조건적 사랑이라는게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잠깐 해보았고요.
더위를 심하게 타는 저는, 올여름은 또 어떻게 보내게 될까, 벌써부터 흥미진진(!)해진답니다 ^^

순오기 2012-06-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르톨로메는 정말 굉장한 작품이죠.
2006년 어머니독서회 두번재 토론도서로 추천했었는데 모두들 감동받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뜨겁게 토론했던 기억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돈키호테를 다시 읽고 싶어지죠.^^

hnine 2012-06-21 12:35   좋아요 0 | URL
바르톨로메에 대해서는 열이면 열, 이견(異見)이 없을 듯해요. 저도 몇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옥의 티를 골라내시는 분도 계시긴 헀지만 그건 그야말로 옥의 '티'였고요 ^^

Jeanne_Hebuterne 2012-06-2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속 치맛자락이 꼭 만져질 것 같았어요. 저 때만 해도 공주의 턱이 합스부르크가 특유의 사각턱으로 자라나기 전이었나 봐요. 눈매가 동그랗고 입술이 고집스럽습니다. 자랑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벨라스케스의 표정보다도 더.오랜만에 이 그림을 hnine님 덕분에 보게 되었어요 :)

hnine 2012-06-25 20:49   좋아요 0 | URL
이 그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전 이 책 읽으면서 비로소 자세히 보게 되었어요. 유명한 그림이니 언젠가 또 마주치게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이 책을 같이 떠올리게 되겠지요. 그리고 슬픔이 느껴지겠지요...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며

 

 

다린아,

 

아침 잘 챙겨먹고,

할 일 다 해놓아야 해.

중국어 숙제도 다 해놓고.

컴퓨터는 엄마 있을 때만 켜야하는거 알지?

시간되면 강아지 밥도 챙겨주는거 잊지 마라.

 

엄마가

 

이렇게 하다가,

 

 

 

다린아,

 

 

 

다린이는 엄마 없을 때 알아서 더 잘 하더라.

오늘도 스스로에게 자랑스런 하루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엄마도 그러도록 노력할거야.

 

있다가 보자~

 

 

엄마가

 

 

이렇게 쓰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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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06-1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하셨어요~~~
근데 남자애들은 콕 짚어주긴 해야 하던데.....규환이만 그런걸까요? ㅎ

hnine 2012-06-15 18: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그런데 요즘 제가 하도 잔소리를 했더니 효과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카스피 2012-06-1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참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글입니다.근데 다린이는 몇학년인데 벌써 중국어 공부를 하남요?

hnine 2012-06-15 18:10   좋아요 0 | URL
다린이 5학년인데 중국어 배운지 1년 반 쯤 되었어요.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중국 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그 친구 엄마가 중국 교포이셨거든요. 그러고서 나중에 그 친구랑 계속 얘기를 해야하니까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배우게 되었답니다.

파란놀 2012-06-15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마실은 잘 즐기고 돌아가셨겠지요~

hnine 2012-06-16 04:39   좋아요 0 | URL
예, '일마실'이었지만 마실은 마실이지요 ^^
그런데 저는 좀 멀리 다녀오는 날엔 뒤통수에 끈이 집과 연결되어 있는지, 여유있게 다녀오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늘 종종걸음으로 다녀온답니다.

프레이야 2012-06-15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잘하셨어요, 나인님, 박수!!!

hnine 2012-06-16 04:39   좋아요 0 | URL
이제 좀 컸다고 잔소리를 하면 내용 불문, 잔소리 그 자체를 듣기 싫어하더라고요 ㅠㅠ

달사르 2012-06-1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후자가 확실히! 더 멋져요. ^^

hnine 2012-06-16 04:40   좋아요 0 | URL
'널 믿는다'는 마음을 표현한건데 그마저도 '지시'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자식 키우는거, 하나도 '쉽지' 않아요~~~ ㅋㅋ

책읽는나무 2012-06-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넘 멋진 엄마!
속마음을 잘 숨기는 엄마가 가장 센스있는 엄마 같아요.
그래서 님은 센스쟁이에요.^^

중국어도 친구를 위해 시작하는 동기도 멋지군요.
아드님도 대견해요.
보아하니 혼자서 잘 알아서 하겠어요.^^

hnine 2012-06-17 05:19   좋아요 0 | URL
잔소리는, 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아이에게도 아무 효과 없다고 책에는 써있지만 아이를 키워보면 어디 잔소리 없이 키울수 있나요. 그 자리에서 듣지는 않는다 하더라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감은 가지게 되는 것 같아서 저는 어느 정도 잔소리는 필요하다고 보는 편인데요. 그게 수위 조절을 잘 해야겠더라고요. 너무 잔소리만 해도, 너무 풀어줘도 안되니 참 어렵지요. 책읽는나무님께서는 아이 셋을 키우시니 저보다 고수이시겠지요 ^^

울보 2012-06-1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엄마시네요,,전 언제쯤 이런 멋진 엄마가 될까요,

hnine 2012-06-17 05:21   좋아요 0 | URL
아이쿠, 저 하나도 멋진 엄마 아닙니다. 야단도 잘 치고 화도 잘 내고 소리도 지르고, 오히려 수준 미달일 때 많아요. 열번 중 아홉 번은 아래 쪽지가 아니라 위의 쪽지 처럼 말하고요. 그러니 어쩌다가 아래 쪽지 처럼 말하고서 스스로도 이게 낫다 싶은지 이렇게 페이퍼로 남긴거지요 ^^

상미 2012-06-18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
애들이 초등학교 때,녀석들 방학인데 난 출근 하는게 제일 싫었어.
애들만 두고서 나가는게...
방학 때 편지 쓰고 출근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이제 애들이 더 바빠서 별로 미안하지도 않고,
난 바쁜데 늬이들은 노는구나 싶단다.

경은이는 아래 글로 편지를 써도 다 이해 하고, 나중엔 아무것도 안써놓아도 했는데,
병규는 윗처럼 써놓아도 안했었다는 .....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줘도 안하는 넘 있었어.
둘 밖에 안되는데도 참 아롱이 다롱이다.
내가 공부만 잘하는 딸과 공부만 못하는 아들 키우는 엄마다 .

hnine 2012-06-18 08:37   좋아요 0 | URL
경은이가 왜 공부'만' 잘하는 딸이야?? 음~ 경은이가 들으면 서운하겠다^^
사실 나는 뭘 그렇게 잘 하는 엄마인가 따져보면 아이에게 큰소리칠 일이 훨씬 줄어들텐데 말이야.
새벽에 블로그 잠깐 들렀었는데 이사가는 모양이더라? 먼데로 가는거 아니지?
 

 

오늘 오후 4시쯤, 동네 산책을 나섰다. 햇빛이 바로 눈 앞으로 쏟아지는데 용감한 아줌마, 모자도 없이 맨 얼굴로 돌아다녔는데, 그야 뭐 오늘만 그런 것 아니고 난 원래 그러니까 ^^

 

이사온지 이제 여섯 달. 우리 아파트가 있는 이 동네는 아직도 여기 저기 공사판이다.

아파트 단지 뒷쪽을 빙 돌아가니 언덕에 꽃이 만발. 하늘 향해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그동안 여기 이렇게 꽃이 만발한지도 모르고 살고 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또...

남이 보든 안보든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꽃과 나무들이 대견, 기특하기도 하고.

이 복잡한 인간은 꽃 보고도 그냥 예쁘다 하면 될걸 별 별 생각을 다 엮는구나.

 

 

 

 

 

 

 

 

 

 

 

 

 

 

 

 

이건 명아주.

"육이오땐 이걸 다 뜯어 먹었다."

어릴 때 엄마로부터 여러 번 들어 알고 있는 식물이다. 초록색 꽃도 있다는 걸 덕분에 좀 일찍 알았다.

 

 

 

사마귀 찾으셨나요? ^^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사진 찍느라고 꽃을 손으로 살짝 쥐고 있었다.

 

 

 

 

 

 

 

 

 

 

 

 

 

 

 

쇠라의 점묘화가 연상되지 않나요? ^^

 

 

 

 

 

 

 

무슨 열매인지. 꽃 다 지고 벌써 저렇게 열매를 맺고 있다. 가시도 있답니다.

 

 

 

 

 

 

 

 

 

 

 

 

 

 

 

밤꽃으로 생각되는데 벌써?? 저렇게 하얗게 피어있었다.

 

 

 

 

 

아파트 입구까지 다 와서 본 주목. 갈색으로 변한 애들은 죽은 건가?

서로 다른 색깔의 애들끼리 잘도 섞여 있다.

내가 진짜라고, 너희들은 다투지 않아?

 

한바퀴 돌고 들어오니 땀이 제법 났다.

아줌마 답게, 돌아오는 길 머리속은 오늘 저녁 밥상엔 무엇을 올리나, 그 생각뿐.

 

아파트 입구 마트에 들러, 두부랑 참외 사가지고 들어왔다.

 

 

 

 

 

위의 사진중 쇠라의 점묘화를 연상시켰던 풍경은 찾아보니 모네의 이 그림과 더 비슷하다 ^^ 양귀비가 핀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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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1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하고 꽃의 조화보다는,
바위하고 꽃의 조화가 더욱 아름다워요.
바위의 묵묵함과 꽃의 화려함이 만나니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동이 전해져요.
사진 화질도 좋으셔라 ㅠㅠ
참외 요즘 제철이죠! 아닌가,

hnine 2012-06-13 05:12   좋아요 0 | URL
사진 속의 바위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바위가 아니라 공사하면서 옮겨온 바위들이 대부분이랍니다. 그래도 바위는 바위, 그 틈 속에서 자라는 식물들. 잘 어울리지요 ^^
참외가 요즘 한창이지요. 그런데 요즘 참외는 다 성주 참외라고 딱지를 달고 있더군요. 참외는 성주에서만 재배되는건지...

파란놀 2012-06-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꽃은 밤꽃 맞아요.
어느덧 온 고장에 밤꽃 내음 가득해요.

꽃양귀비는 참말 '양귀비' 이름과 '꽃'이 더해진 이름 그대로
아주 어여쁘네요 @.@

'아줌마'가 아니더라도
그냥 모자 없이 다니며
좋은 햇살 마음껏 누리셔요~ ^^

hnine 2012-06-13 05:15   좋아요 0 | URL
저도 밤꽃이 저렇게 피었다면 냄새가 많이 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잘 못 느끼겠기에 밤꽃 맞는건가 했답니다.
꽃양귀비! 맞아요 꽃양귀비. 어제 꽃이름을 적으려다가 그냥 양귀비는 아니고 뭐였더라?? 생각이 안나서 못적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꾳양귀비가 부쩍 눈에 많이 띄더군요.

비로그인 2012-06-1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너무 이뻐요. 나인님. 여름의 청명함이 느껴지는 사진들입니다.
들꽃들의 아름다움이 하나 가득인 계절이네요..
우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생명들이 너무나 소중하구요.. ^^

hnine 2012-06-13 05:19   좋아요 0 | URL
아이쿠, 현대인들님 사진들 보면서는 저는 아예 말을 잃는걸요. 예전엔 그냥 디카로 찍는다고 하셨었는데 요즘 올리시는 사진도 그런가요? 사진기술만 말씀드리는건 아니고, 장면을 담는 시선이나 글도, 거의 전문가세요.
어제는 오후에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길래 그냥 동네나 한바퀴 돌자고 나간건데 전화기도 안가져가면서 어떻게 카메라를 들고 나갔네요. 사진을 찍든 안찍든, 들고 나가면 풍경을 더 유심히 보게 되더라고요.
정말 꽃 만발 계절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그들을 보아주면 되는거죠.

프레이야 2012-06-1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 마음도 순간 화사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첫번째 사진이요. 아주 맘에 들어요. 색색으로 하늘하늘 어여뻐라~~
나인님의 마음이 담겼어요, 사진 속에.^^

hnine 2012-06-13 07:28   좋아요 0 | URL
첫번째 사진은 제가 지금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깔아놓고 흐뭇해하고 있답니다 ㅋㅋ
어제 오후 한 시간을, 혼자 카메라 하나 들고 나가서 아주 행복하게 보내고 왔답니다. 눈만 화사하게 해주어도 고마운데 마음까지 화사하게 해주니 '따블'로 고마왔어요 ^^

2012-06-13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6-13 07:30   좋아요 0 | URL
흑흑...몰라요. 안그래도 찾아보려고요. 사진이 잘 안나와서 제가 다 올리지 못했지만 다른 예쁜 꽃들도 많았답니다. 아카시아는 아직 활짝 안폈더군요. 비슷한 싸리꽃은 피었던데...

2012-06-13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6-13 07:30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시간 보고 아니 이 시간에! 했답니다. 잠을 잘 주무셔야 하는데...

뭉클 2012-06-1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반짝반짝 빛이 나네요^^
너무 이뻐용
울동네는 요즘 빨간 산딸기가 쫘악~
늘 똑같은거 같지만
유심히 보면
꽃들도 차례지켜 피어나더군요 ㅎㅎ

hnine 2012-06-14 18:41   좋아요 0 | URL
아,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힙니다. 꽃들도 차례를 지키며 피어난다는...
산딸기 사진 보여주세요. 저날 산책길에 산딸기는 못봤거든요 가슴뭉클님~ ^^

상미 2012-06-1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꽃들 다 이쁘다.
무슨 열매인지라고 쓴 그건 왠지, 나쁜 종류의 외래종이 아닐까 싶어.
모양도 특이하고 생긴게 ㅎㅎㅎ
보통 관상용 양귀비라 부르는데, 꽃 양귀비가 더 이쁘다.

hnine 2012-06-15 17:38   좋아요 0 | URL
나쁜 종류의 외래종...ㅋㅋ
'나쁜' 종류란 독성이 있는 걸 말하나?
찾아본다고 하고 잊고 있었네.
찾으면 알려줄께.
우리 집 마루에서 꿩도 보인다고 말했던가?

순오기 2012-06-16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열매냐고 물으신 건 '며느리배꼽'이라고 불러요.^^
어릴 때 시골에서 저 열매를 따서 껍질을 문질러 벗겨 하나하나 바늘로 꿰어 반지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고 그랬어요. 그땐 '며느리배꼽'이라 부르지 않고 우리는 '구슬풀'이라고 불렀어요.^^

hnine 2012-06-16 04:42   좋아요 0 | URL
우하하...이름 참 재미있어요 며느리 배꼽. 정말 가운데 '배꼽'처럼 생겼잖아요. 그러고 보니 식물 이름에 '며느리' 들어가는 것들이 꽤 있네요. 위의 제 친구에게도 알려줘야겠어요 며느리배꼽.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이 바닥의 달콤함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1
앨런 브래들리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530여쪽 되는 분량을 이틀에 끝냈다. 나름 재미있었다는 얘기이다. 일단 제목으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였고, 표지도 깔끔. 내용을 살펴보니 주인공이 직업 형사나 탐정이 아니라 겨우 열한살 소녀이다. 게다가 이 아이 캐릭터 또한 매력적인 것이, 열한 살 여자 아이의 취미가 화학 실험, 특히 독성 식물 실험이란다. 그래서 독극물에 대한 지식이 이미 아이 수준이 아니다. 아니, 웬만한 어른 이상이다. 또한가지 이 책의 매력이라면 작가 특유의 유머감이다. 작가 이력을 보니 캐나다 태생이라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영국인 것도 그렇고, 이 사람의 유머 감각에서도 어딘지 영국식 유머의 느낌이 든다. 살짝 비꼬는 식, 얼른 드러내지 않고 웃기는 방식.

"아버지는 어디 계셔?" 내가 물었다.

대피(주인공의 언니)는 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듯 태연히 책장을 넘기며 계속 책만 읽었다.

"대피?"

내 안의 가마솥이 끓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투명인간 플라비아(주인공 여자 아이 이름)를 너무도 빠르게 작은 악마 플라비아로 변신시키는 오컬트의 약이 부글거리는 그 솥이. (191쪽)

그런데 이것이 열한 살 여자 아이의 생각이고 표현 방식이라고 보기가 힘들다는 아이러니는 어쩔까.

이야기의 구성을 상당히 촘촘하게 잘 짠 것 같은데 이것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도 좀 아쉽다. 책의 중반 쯤, 주인공 아버지가 학생일 때 자기 친구와 얽힌 일에 대해 그것이 이 작품의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주인공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어보는 대목이 나오는데, 의외로 아버지 입에서 그 내막이 술술 나오는 것이다. 사건 해결에 실마리가 되는 짧고 중요한 말만 던지는 것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읽는 사람이 조금 지루해질 정도로 자세하게 다 풀어서 딸에게 털어놓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사건의 많은 부분이 단순히 아버지의 설명으로 전달되는 동안 이 똘똘한 주인공은 그저 '경청'한다. 이런 아쉬움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반복되는데 범인과 주인공 플라비아의 대결 과정이 너무 길고 지루한 경향이 있었다. 읽다가 꼬인 나는 '누가 이거 꼭 500쪽 넘겨야 한다고 단서라도 달았나? 이렇게 쭉쭉 늘여 쓰게...'이런 생각도 잠깐 했으니까.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때의 독특한 맛이 바닥으로 갈수록 그저 그런, 흔한 맛으로 전락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는 것이 아쉽다. 파이 필링에 비해 파이 바닥은 거의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진, 비슷한  맛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글에서 간간이 느껴지는 주인공과 아버지의 거리감은, 엄마의 시공간적 부재에 아버지의 정신적 부재, 거기다가 세 자매들 사이의 공감 부재라는 상황까지 더해져 주인공의 독특한 취향과 개성을 형성하는데 아주 좋은 배경을 제공한다. 그런 멋진 배경과 인물을 좀 더 잘 살아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갔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될뻔 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나온 것이 2009년인데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소개된 것은 2011년), 작품 속의 배경은 1950년대. 그렇게 시대적 배경을 잡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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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6-1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을 '어설픈 예전'으로 잡는 일은, 한국이나 서양이나 좀 '겉멋'이나 '겉치레'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제대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굳이, 미래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 이야기를 쓰거든요...

hnine 2012-06-11 20:56   좋아요 0 | URL
꼭 겉멋이나 겉치레 효과면 그렇게 느껴졌을텐데 그건 아니었거든요. 제가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나, 놓치고 있나 궁금했어요. 독성 식물이라든가 독극물 같은 화학실험을 집에 실험실을 차려 놓고 해본다는 것이 아무래도 요즘의 이야기로는 적합하지 않았겠지요. 제 짐작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