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바닥의 달콤함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1
앨런 브래들리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530여쪽 되는 분량을 이틀에 끝냈다. 나름 재미있었다는 얘기이다. 일단 제목으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였고, 표지도 깔끔. 내용을 살펴보니 주인공이 직업 형사나 탐정이 아니라 겨우 열한살 소녀이다. 게다가 이 아이 캐릭터 또한 매력적인 것이, 열한 살 여자 아이의 취미가 화학 실험, 특히 독성 식물 실험이란다. 그래서 독극물에 대한 지식이 이미 아이 수준이 아니다. 아니, 웬만한 어른 이상이다. 또한가지 이 책의 매력이라면 작가 특유의 유머감이다. 작가 이력을 보니 캐나다 태생이라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영국인 것도 그렇고, 이 사람의 유머 감각에서도 어딘지 영국식 유머의 느낌이 든다. 살짝 비꼬는 식, 얼른 드러내지 않고 웃기는 방식.

"아버지는 어디 계셔?" 내가 물었다.

대피(주인공의 언니)는 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듯 태연히 책장을 넘기며 계속 책만 읽었다.

"대피?"

내 안의 가마솥이 끓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투명인간 플라비아(주인공 여자 아이 이름)를 너무도 빠르게 작은 악마 플라비아로 변신시키는 오컬트의 약이 부글거리는 그 솥이. (191쪽)

그런데 이것이 열한 살 여자 아이의 생각이고 표현 방식이라고 보기가 힘들다는 아이러니는 어쩔까.

이야기의 구성을 상당히 촘촘하게 잘 짠 것 같은데 이것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도 좀 아쉽다. 책의 중반 쯤, 주인공 아버지가 학생일 때 자기 친구와 얽힌 일에 대해 그것이 이 작품의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주인공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어보는 대목이 나오는데, 의외로 아버지 입에서 그 내막이 술술 나오는 것이다. 사건 해결에 실마리가 되는 짧고 중요한 말만 던지는 것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읽는 사람이 조금 지루해질 정도로 자세하게 다 풀어서 딸에게 털어놓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사건의 많은 부분이 단순히 아버지의 설명으로 전달되는 동안 이 똘똘한 주인공은 그저 '경청'한다. 이런 아쉬움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반복되는데 범인과 주인공 플라비아의 대결 과정이 너무 길고 지루한 경향이 있었다. 읽다가 꼬인 나는 '누가 이거 꼭 500쪽 넘겨야 한다고 단서라도 달았나? 이렇게 쭉쭉 늘여 쓰게...'이런 생각도 잠깐 했으니까.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때의 독특한 맛이 바닥으로 갈수록 그저 그런, 흔한 맛으로 전락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는 것이 아쉽다. 파이 필링에 비해 파이 바닥은 거의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진, 비슷한  맛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글에서 간간이 느껴지는 주인공과 아버지의 거리감은, 엄마의 시공간적 부재에 아버지의 정신적 부재, 거기다가 세 자매들 사이의 공감 부재라는 상황까지 더해져 주인공의 독특한 취향과 개성을 형성하는데 아주 좋은 배경을 제공한다. 그런 멋진 배경과 인물을 좀 더 잘 살아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갔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될뻔 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나온 것이 2009년인데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소개된 것은 2011년), 작품 속의 배경은 1950년대. 그렇게 시대적 배경을 잡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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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6-1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을 '어설픈 예전'으로 잡는 일은, 한국이나 서양이나 좀 '겉멋'이나 '겉치레'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제대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굳이, 미래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 이야기를 쓰거든요...

hnine 2012-06-11 20:56   좋아요 0 | URL
꼭 겉멋이나 겉치레 효과면 그렇게 느껴졌을텐데 그건 아니었거든요. 제가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나, 놓치고 있나 궁금했어요. 독성 식물이라든가 독극물 같은 화학실험을 집에 실험실을 차려 놓고 해본다는 것이 아무래도 요즘의 이야기로는 적합하지 않았겠지요. 제 짐작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