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이라고 까지 한 것은 과장이다.

어린이, 청소년 대상의 외국 작품과 우리 나라 작품들을 함께 읽어보면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눈으로 볼때 외국 작품들에 기본적으로 흐르는 그 긍정, 낙관적인 삶의 태도이다. 아무리 비참하고 밑바닥 같은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의 그 낙천성,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적인 태도는 어른이 배우고 싶을 정도이다. 그건 작가들이 일부러 그렇게 묘사한다고만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네들의 가치관, 사고방식의 차이가 반영되는 거라고 보여지는데 반해 우리 나라 작품들은 문학적, 서정적, 감성적인 느낌에 호소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이분법적인 정리가 될까봐 조심스럽긴 하다.

 

최근에 읽은 두 작가의 작품이다.

 

1.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1, 2

 

 

 

 

 

 

 

 

 

 

 

 

 

 

 

네덜란드 태생 휘스 카위어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틈틈이 글을 쓰다가 청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전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책의 시작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담임이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
제목도 그렇듯이 첫문장부터 독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긴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담임선생님이 엄마와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도 열한 살 소녀 폴트케는 아빠에 대한 동정과 애정을 멈추지 않는다. 보아하니 당장 생활도 어려워보이는 아빠에게 끊임없이 아빠의 꿈, 즉 시를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권유한다. 폴트케 본인은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한  열한 살 짜리 아이라고 말하지만 읽는 사람이 보기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과연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라고 했다.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지? 하긴 뭘 해? 그냥 걸어 다니고, 놀고, 공부하고, 웃고 그러면 되지. 진짜 문제는 이 세상에서 뭘 할지가 아니라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다. (88쪽)

열한 살 아이의 때묻지 않은 진심이라고 보기엔 내가 너무 때가 묻었는지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걸 어쩔까. 차라리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아이라고 불평하는 아이가 더 아이답고 공감이 간다. 외국의 어린이, 청소년 대상 작품을 읽어보면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우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긍정적일 수가 없다. 작가들에게 어떤 공식처럼 작용하나? 한때 우리 나라에서 동심천사주의가 공식처럼 작용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심리 묘사는 확실히 돋보인다.

할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네 머리에는 뭐가 참 많이 들어있구나."

내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건 사실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가 있었다. ...눈을 감으면 별의별 것들이 다 보였다. 내 머리는 꼭 쓰레기통 같았다. (116쪽)

열한 살, 감성이 풍부한 아이의 그런 심리 묘사 뒤에 바로 따라 나오는 할아버지의 대사를 보자.

"내 머릿속에는 무엇보다도 고요함이 들어 있단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고나 할까?... 내 머릿속은 조용하니 얼마나 멋진지 몰라. 생각이니 뭐니 하는 일은 피곤하고 힘들어서 싫어." (117쪽)

작가는 이렇게 열한 살 아이의 마음속에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고 노인의 마음 속에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나보다.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이겠다.

 

 

2.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연상할까?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 <시녀들>을 보며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비례가 맞지 않는 인물들.  오른 쪽 아래 엎드려 있는 개 한마리의 존재감이란 적어도 내게는 눈에 띄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이 책의 작가 라헐 판 코에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 존재감 없는 개. 그것도 무릎을 치겠는데, 그건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이 책의 이야기를 꾸려간 작가의 상상력이란!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서부터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이 개의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아직 어린 자식을 개로 만든건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외면을 당한 상황에서 이 소년 바르톨로메가 대처해나가는 모습을 본다. 슬퍼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는 결과를 부르는 바르톨로메.

그래, 이쯤이면 희망과 긍정이 공식이라 할지라도 그건 흠이 아니라 덕이겠다.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과 상상력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감동때문에, 또, 읽고 나서 생겨나는 그놈의 희망과 꿈, 격려라는 것 때문에, 그누구에게든 읽어보라고 권유할 수 있을 책이다. 그런 책이 많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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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6-1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었어요 :)

제가 생각하기에도 외국 작품에는 그런 공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단편소설을 읽을 때면 종종 '왜 이렇게 공통된 우울한 정서가 흐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하는데, 그러고 보면 한국이란 나라와 낙관주의는 어째 좀 어색한 사이처럼 느껴져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줄거리를 읽으니까 문득 <제인 에어>가 생각나네요. 제인처럼 고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인간상은 일찍이 본 적이 없어요. 내일 도서관 가는데 <제인 에어>를 빌려서 다시 읽어야겠어요!

hnine 2012-06-18 08:41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하니 외국의 문학 작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네들과 우리의 어떤 기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가 겪은 역사도 다를 것이고요. 그러니, 문학 작품에서도 다른 것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건가요? ^^
제인에어를 지금 다시 읽으면 분명히 처음에 읽었을 때와 다른 무엇인가를 전해받을 것 같아요. 중학교때 읽을 때는 완전 연애 소설로 초점을 맞춰 읽었었는데 지금 읽으면 말없는 수다쟁이님 말씀대로 강인한 인간상이 눈에 들어오겠지요. 제인에어를 다시 읽으시겠다는 수다쟁이님, 멋져요 ^^

... 2012-06-18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레케 이야기는 네꼬님 페이퍼에서도 본 것 같은데 역시...흐음.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저 책을 클릭 해서 보고 있는데 책 설명보다 미역을 준다는 이벤트가 화악~ 눈에 들어오네요 ㅋㅋ 담아가요!

hnine 2012-06-18 08:44   좋아요 0 | URL
저도 네꼬님 페이퍼에서 보고 구매했어요 ^^ 재미있답니다. 캐릭터도, 이야기도. 그런데 어른들에게 없는 것을 열한 살 어린 아이가, 그것도 자기처럼 불행한 아이는 없을 거라고 스스로 말하는 아이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더 잘 견뎌나가는 것을 보고 제가 심통이 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바르톨로메와 미역이라...ㅋㅋ 우리는 참 재미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

파란놀 2012-06-18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하는 사람들 환경이나,
문학을 읽을 사람들 환경이,
한국과 다른 나라는
참 많이 다르기에
여러모로 이분법이 되겠다 싶도록
느낌이 갈라질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hnine 2012-06-18 08:47   좋아요 0 | URL
다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라고 받아들이고 비교하며 읽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생생하고 톡톡 튀는 이야기 진행, 밝고 긍정적인 결말...요즘 엄마나 학교에서 일부러 권하지 않는한 아이들이 외국 작품 읽기를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이유가 뭘까 저도 생각하며 읽게 되더군요.

책읽는나무 2012-06-18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아이가 어리다보니 딱 그수준에 맞는 책만 읽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한 번씩 청소년책도 읽고 싶은 충동이 일던데(쌓아둔 내책은 안읽구요.ㅋ)
아이가 좀 더 크면 나도 막 읽고 있겠구나~ 란 상상을 해요.

우리네 정서와 외국의 정서가 다르다는 것은 아이들의 책을 읽어도 확연히 표가 나긴해요.그래서 때론 이질감이 느껴져 전 좀 멀리하게 되곤 하던데,
아들녀석은 또 그것(?)이 맘에 든다네요.
어른인 '나'는 이미 그렇게 한국 문학에 이미 길들여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요즘 신간 어린이책들은 예전보다는 좀 더 많이 밝아진 듯 하더라구요.
한 번씩 외국동화를 읽는지? 한국동화를 읽는지? 헷갈릴정도에요.^^
암튼. 청소년 소설책엔 좀 문외한이라 많이 배우고 가네요.
일단 보관함에 슝~ 넣고 봅니다.^^

hnine 2012-06-18 08:50   좋아요 0 | URL
아이 따라 그 연령대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좋은 기회 같아요. 아이가 없다면 제가 이 나이에 그런 책을 이렇게 관심있기 읽을 것 같지 않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아이들 책을 보며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도 많고요.
제 경우엔 아이와 상관없이 예전부터 이상하게 청소년소설을 좋아했는데요 ,음...뭐랄까, 제가 자라온 성장 배경과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바르톨로메는 청소년소설이라고 굳이 할것 없이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랍니다.

프레이야 2012-06-18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이네요.
상상력이 무시무시했고 아팠던 기억이...
문장은 빌려오거나 인용이라도 할 수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훔쳐올 수도 없는, 그만의 값진 재산인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즐거운 한 주 시작해요, 우리^^

hnine 2012-06-18 12:16   좋아요 0 | URL
저도 귀에 익숙해서 읽은 줄 착각할 뻔 했지요. 진주귀거리소녀와 또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네요. 정말 무시무시한 상상력이라고 밖에...작가가 특수교육분야에서 일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 쪽으로 상상을 했는가봐요.
부모에게도 자랑스런 자식만 자식일까, 무조건적 사랑이라는게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잠깐 해보았고요.
더위를 심하게 타는 저는, 올여름은 또 어떻게 보내게 될까, 벌써부터 흥미진진(!)해진답니다 ^^

순오기 2012-06-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르톨로메는 정말 굉장한 작품이죠.
2006년 어머니독서회 두번재 토론도서로 추천했었는데 모두들 감동받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뜨겁게 토론했던 기억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돈키호테를 다시 읽고 싶어지죠.^^

hnine 2012-06-21 12:35   좋아요 0 | URL
바르톨로메에 대해서는 열이면 열, 이견(異見)이 없을 듯해요. 저도 몇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옥의 티를 골라내시는 분도 계시긴 헀지만 그건 그야말로 옥의 '티'였고요 ^^

Jeanne_Hebuterne 2012-06-2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속 치맛자락이 꼭 만져질 것 같았어요. 저 때만 해도 공주의 턱이 합스부르크가 특유의 사각턱으로 자라나기 전이었나 봐요. 눈매가 동그랗고 입술이 고집스럽습니다. 자랑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벨라스케스의 표정보다도 더.오랜만에 이 그림을 hnine님 덕분에 보게 되었어요 :)

hnine 2012-06-25 20:49   좋아요 0 | URL
이 그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전 이 책 읽으면서 비로소 자세히 보게 되었어요. 유명한 그림이니 언젠가 또 마주치게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이 책을 같이 떠올리게 되겠지요. 그리고 슬픔이 느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