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를 살린 건
앞서 길 잃은 다른 낙타의 발자국

방향 없는 세월에 같이 헤매자는 연대감이었다

별도 뜨지 않는 세월에 같이 헤맨다는 물적 증거였다

헤매며, 건너야 하는 것을 사막이라 하므로 낙타는
모래 속에 처박은 코를 꺼내 황혼 쪽으로 킁킁거린다 침을 탁탁 뱉아낸다

서늘한 얼굴로

영하 사십 도의 오밤중에 체중 실어 걷는다

깊은 족적을 남기려고

산발적인 일렬 종대의 낙타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자기 살과 피를 빨아먹으며

별 없는 하늘의 무게까지 실은 채 걷는다

걸을수록

그렇다

낙타를 두 번 죽인 건 같이 헤매자는 연대감이었다

 

너무 꼬이고 허무주의 일색이라서

나도 외면하고 싶던 중이었다.

포기, 파기 (破棄), 음습함, 어두움,

그러나 여전히 꿈틀거리는 욕망은 살아있는.

완전히 포기하고 내어주는 달관의 경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로 몸을 대신하려는 퇴행으로 해석되려 한다.

 

그런데 끝내 내치지 못하겠는 시들, 일색이다 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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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1-12-30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농도의 시집이었죠.
다시 이렇게 읽어보니
명궁의 화살처럼 심장에 팍팍 꽂히네요.

hnine 2011-12-30 16:44   좋아요 0 | URL
고농도 ^^ 거의 결정이 생기려고 해요.
위의 시에서 '같이 헤매자는 연대감'을 원망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고마와 하는 것을까, 한두번 읽어서는 잘 파악이 안되더라고요.
싯구가 화살이 되어 심장에 팍 꽂히는 기분! ^^
 

하나.

 

내가 한참 바쁠 때 아이는 방학을 했다.

"너는 걷는 방법은 잊어버렸니?" 하고 내가 물을 정도로 걷지 않고 뛰는, 활동적인 아이에게 하루 종일 집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 하고 있기를 기대하기란, 아이가 어디 아프지 않고는 기대하는 내가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잠깐씩 나가서 영화라도 보고 들어오려고 짬을 내었다.

그러다 하루 맘 먹고 나선 길.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하는 투탄카멘 파라오전이다.

 

 

 

   -www.tutkorea.com에서 퍼온 이미지-

   공식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tutkorea.com

 

시작한지 꽤 되었는데 방학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이만할 때 소년중앙이라는 잡지에서 처음 투탄카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호기심이 바짝 일었던 기억이 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국립과천과학관.

좀 비싸긴 하지만 오디오대여까지 포함한 입장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각자 관람 시작.

로제타 스톤부터 시작한다. 로제타 스톤,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그 내용이 문자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내용이라는 것. 그 암호같은 문자를 풀어낸 프랑스인 쟝 어쩌구 하는 사람.

다 둘러보고 서로 문제를 내서 맞추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더니, 다 보고 나면 문제가 생각 안날지 모른다며 생각났을 때 바로 문제를 낸다고 종이와 연필을 들고다니며 관람한다.

 세문제씩 내서 더 많이 맞춘 사람에게 책이나 기념품 사주기 내기.

 

다음은 내가 낸 문제.

1. 투탄카멘왕은 부인이 없었다. (참, 거짓)

2. 투탄카멘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 아닌 것은?

   ① 지팡이

   ② 샌들

   ③ 보드게임

   ④ 파피루스

3. 투탄카멘왕의 미이라는 발굴 당시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참, 거짓)

 

 

접힌 부분 펼치기 ▼

 

1. 거짓

2. ④

3. 참

 

펼친 부분 접기 ▲

 

다음은 아이가 낸 문제.

1. 이집트에 '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인가?

   ① 군인

   ② 포도주 관리자, 보관자

   ③ 파라오의 하인

   ④ 파라오가 타던 카누의 노 젓는 사람

2. 우샤브티는 무엇인가?

   ① 카누의 노 젓는 사람

   ② 하인

   ③ 농부

   ④ 평민

3. 이집트 배에는 화물 몇 톤을 담을 수 있었나?

접힌 부분 펼치기 ▼

1. ②

2. ②

3. 벌써 잊어버렸다 ㅠㅠ 그날도 이 문제를 못 맞췄는데... 

 

펼친 부분 접기 ▲

    

"야, 문제가 이게 뭐야?"

아이가 낸 문제를 본 나의 말이다. 내기에서 이기려고 별로 중요해보이지도 않은 문제를 만들어낸 것 같은 출제자의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내가 낸 문제 세개를 다 맞추었고, 나는 아이가 낸 문제 중 3번 문제를 틀려서 승리는 아이에게 돌아가고, 철 없는 이 엄마는 또 잠시 삐지기도 했지만 약속은 약속. 집에 오는 길에 버스 터미널에 있는 영풍문고에서 아이가 사달라는 책을 한권 사주어야 했다.

 

 

 

 

 

 

 

 

 

 

 

 

 

 

 

 

 

 

 

이 전시는 내년 2월 말까지라고 하는데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이제 전시품의 해외 전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집트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더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한다.

 

둘.

 

손으로 카드를 만들고 보내는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고맙고 인사건네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언제 이렇게 게으르고 뻔뻔해졌는지.

올해 내가 받은 유일한 카드는 이것 한장.

 

 

 

 

 

 


 바로 내 옆에서 이렇게 배깔고 엎드려 만들었는데 10분이나 걸렸나?

 

 

 

너무나 열두살이 되고 싶다는 아이 ㅋㅋ

 

셋.

 

바로 몇 시간 전에 다녀온 곳이다.

 

 

 

 

 

 

 

Good bye라는 글자가, 알록달록 색깔에 둘러싸여 별로 슬퍼보이지가 않는다.

대전예술회관이라는곳은 어제 처음 가봤는데, 소위 대전 원도심에 위치한 곳.

원도심이란 '원래의 도시 중심 지역'이란 뜻으로 예전의 대전 시내를 말한다. 새로 개발된 도심지에 비해 건물들도, 분위기도 오래된 지역이다.

음악 공연도 보고, 저녁까지 다 해결하고 왔다.

 

 

 

 

 

이곳에 가기 전에 꽃집에서 꽃다발을 맞추면서 하이드님 생각을 했고,
공연의  첫 순서였던 북, 장구, 태평소 연주를 보면서는 울보님 댁 류를 생각했다.

나, 알라디너 맞다.

 

내일은 또 새로 개봉한 영화 '프렌즈'를 보러간다. 물론 아이와 함께.
토요일엔 동학사에 다녀올까 하고,

일요일, 새해 첫날엔 부모님께 다녀올 계획이다.

 

2011년 겨울. 이사와서 보내는 첫겨울. 춥지 않아 좋다.
집 안에서 어그 부츠 신고 있던 지난 겨울에 비하면. 전기 난로 켜놓고 끌어안고 잠들어 큰일 날뻔 했던 그 겨울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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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30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색연필이 저렇게 많아요!@@
다린이는 좋겠다~ 너무나 되고 싶은 12살이 되니까.^^
지난 겨울엔 많이 추웠군요. 올해는 따뜻하게 지내신다니 좋군요.
우린 아직 커튼을 안 달아서 컴퓨터 선 들어온 곳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요.
그래서 털슬리퍼 신고 이불로 발을 감싸고 컴터 앞에 앉아있어요.ㅋㅋ
빨리 커튼을 달아야 하는데...겨울이 가기 전에.

hnine 2011-12-30 05:23   좋아요 0 | URL
저 색연필, 우리 집 재산이랍니다 ㅋㅋ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황소바람 맞아요. 커튼 달면 훨씬 덜 추우실거예요.
올 한해 저에게 제일 많이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린 아침형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

순오기 2011-12-31 22:41   좋아요 0 | URL
아~ 제가 Hnine님 서재에서도 댓글을 제일 많이 달았나요.
글은 꼬박꼬박 읽어도 댓글을 뜸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랬군요.^^

hnine 2012-01-01 05:37   좋아요 0 | URL
전 순오기님일줄 알았는데요? ^^
새해엔 건강 조심하시고요. 안그래도 바쁘신 분이, 도서관때문에 결코 심심할 새가 없으실 것 같아요. 언젠가 꼭 다린이 손 잡고 가보고 싶습니다.

조선인 2011-12-3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홍홍 그래요. 우리는 알라디너. 히히히. 좋은 꿈으로 새해 여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1-12-30 16:46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그리고 마로, 해람이.
남이 아니지요^^
내년 한 해는 또 어떻게 엮어갈지, '두근두근 내인생'정도는 아니지만 각오는 단단히 하렵니다.
조선인님 댁에도 따뜻한 기운이 늘 차고 넘치기를 바래요.

하늘바람 2011-12-3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 크리스마스 카드 너무 이쁘네요.
단순하면서도 멋진
다린이는 정말 감각이 있어요. 글씨만으로도 저리 멋을 내다니.

색연필은 태은양 보면 난리 나겠군요.
ㅎㅎㅎ
진짜 많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1-12-30 16:49   좋아요 0 | URL
제 기준에서는 색연필 종류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림 좋아하는 아이들은 안그런가봐요. 좁은 공간에서는 다 펴놓지도 못한답니다 ㅋㅋ
하늘바람님 닉네임이 전 참 좋아요. 하늘하늘한 바람이 은근히 강단있고 끈기있잖아요? ^^ 여리고 약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요. 내년 한해 우리 또 열심히 걸어보아요.

무스탕 2011-12-3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상 2cm쯤 떠서 다니다 나인님 서재에만 들어오면 차분해 지는 느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에요. 늘 제게 안정을 주시지요 :)
그야말로 내일모레면 다린이는 12살이 되는군요. 12살이 되어도 저 멋진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알라딘 이모들을 즐겁게 해 주리라 믿습니다 ^^

hnine 2011-12-30 16:51   좋아요 0 | URL
ㅠㅠ 저의 컴플렉스라면 컴플렉스인데...분위기 확~ 가라앉히는거요.
그런데 나이 들어가면서 컴플렉스라기보다 그냥 이렇게 생긴대로 살을래~ 그러고 있답니다 ^^
무스탕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요. 지성 정성 얘기 많이 들려주시고요.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미리 예습이라고나 할까요 ^^

파란놀 2011-12-3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깔 있는 연필은 저렇게 가득인데
성탄절 카드는
몇 가지만 쓰네요 ㅋㅋㅋ

우리 집 아이라면 아마 하나씩 다 써 보겠지요 @.@

곧 새해가 밝겠군요!
아니, 섣달 그믐이 먼저네요 ^^;;

hnine 2011-12-31 04:59   좋아요 0 | URL
저 많은 색 중에 두 가지 색을 고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ㅋㅋ
된장님도 그러시지만 저도 올해 '이사'가 제일 큰 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사는 하루에 일어났지만 그러기까지 얽힌 여러 가지 과정들이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고, 그러네요.
새해에는 더 많이 감사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글 지금처럼 계속 많이 쓰시고, 두 아이들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래요.

마녀고양이 2011-12-3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알라랑, 연극을 봤어요. 커튼콜의 유령.
코알라는 연극을 처음보고 저 역시 몇년만에 보았는데, 얼마나 코알라가 들떴는지.
굉장히 재미있었나봐요. 10분동안 공들여 만든 카드는 그 정성만으로도,,, ^^

나인언니, 내년에 즐거운 일 가득하시고, 건강하세요.

hnine 2011-12-31 05:04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 흥미진진하네요.커튼콜의 유령이라니.
저는 어제 영화'프렌즈' 조조로 보려고 아침부터 부지런 떨었는데 도착해보니 좌석이 한자리 밖에 안 남은거 있죠. 다른 영화 '라이온 킹'보면 어떨까 아이에게 물었더니 그건 유치해서 싫대요 ㅋㅋ( 프렌즈나 라이온 킹이나 ^^) 할 수 없이 표 하나만 사서 아이 들여보내고 저는 밖에서 책 읽었는데, 1시간 30분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연극 좋아하면 코알라랑 많이 보러 다니시면 좋겠어요. 영화와 다르게 연극 관람은,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바로 앞에서 전달 받는 것 같아서 색다른 매력이 있지요.
마녀고양이님, 우리 내년에도 여기서 많이, 자주 만나요. 함께 울고 웃고 떠들고...^^
 

 

 

 

 

 

 

 

 

 

 

 

 

 

 

 

 

겨우 구해서 듣고 있는 CD.

영화  The Hours 의 OST인데 언젠가 라디오에서 듣고 잊혀지지 않았다.

차분하게 일할 때 들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구입했는데, 세상에.

 

'피아노 선율이 이렇게까지 우울할 수도 있구나'

확실하게 알려준다.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우울한 인물을 묘사할때 이 CD 음악을 틀어놓고 쓰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나 저나 이 영화 음악은 이렇게 나와 며칠을 함께 하고 있는데, 정작 이 영화는 아직 못 봤다.

음악만큼, 아니 음악보다 더 우울할까?

 

 

올해를 며칠 남겨두지 않고,
그전에 마칠 일에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그 내용을 읽기도 전에 마음이 철렁했던 이유는, 그 말에 당시 나의 마음 상태가 다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 아직도 사랑을 꿈꾸고 있는가, 그대 아직도 성공을 꿈꾸고 있는가, 그대 아직도 보랏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그대 아직도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꿈꾸고 있는가, 그대 아직도 명예를 꿈꾸고 있는가.

즉, 인간이 꿈꾸고 있는 모든 것은 부질없다는 말 아니겠는가?

 

나는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꿈꾸는 대신, 그냥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한다. 마음에 들거나, 또는 그렇지 않을 때라도. 포기하지 않고 잘 부둥켜 안고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꿈꾸며 살때보다 특별히 더 허무하거나 맹숭맹숭하지도 않다. 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니, 오히려 가끔 그 쓸쓸함에서 벗어날 때를 예외의 경우로 생각하고 기뻐할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고 사과를 찾아 냉장고 문을 열며 생각했다.
또 하루가 주어졌구나. 선물같이 주어졌구나.

불평하지 말고 무던하게, 꿋꿋하게 살아내야지.

"12시까지는 엄마 일하게 방해하지 말으렴."

아침상 설겆이를 마친 후 남편 배웅을 하고, 아이에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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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8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8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디 2011-12-2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제게 하는 말로 들려서 철렁했다죠--;;
거의 다운 직전인 심리상태 인지라 너무 와닿습니다.
또다시 잠수 타기 직전이거덩요ㅠㅠ
누군가 힘내라고 괜찮다고 한마디 건네줬음 싶은 그런 날이녜요..

hnine 2011-12-28 14:11   좋아요 0 | URL
반디님, 힘내세요. 괜찮아요.
잠수 타고 싶으시면 잠시 쉬고 돌아와도 좋지요. 뭐 어때요.

2011-12-2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0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0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0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서전

 

 

 

 

 

움직이는 모든 것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자전거 경주도 그랬다.

누가 빨리 타나 해볼까?

네가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

내 가슴은 쿵쾅거렸지만

기특하게도 나는

피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홉 살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리 없다.

아니, 나라면 그럴 수 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손은

출발하기도 전에 파열해버릴 것 같았다.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의 아찔함, 아득함은

나를 구름 위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인간은 살면서 얼마나 자주 이런 순간을 견뎌야 하는거지?

그 생각이 더 나를 아득하게 하는데

자전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 빨리 달릴 수도 없었다

더 천천히 달릴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멈추고
자전거에 몸을 맡기는 것
자전거야
나를 너무 무섭게 하지마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것
나는 그날 자전거 시합에서 이겼던가

아니, 졌던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긴 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을 수 밖에

자전거 경주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걸

자전거야
나를 너무 무섭게 하지마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것
손잡이 잡은 손에
한번 더 힘을 꽉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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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2-2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 타고 달려라와 좀 비슷한 내용인데요. 물론 의미는 다르겠지만요

hnine 2011-12-26 11:3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서재에서 본 책이네요? 임정자 작가의.
위의 시는 혼자 꽤 심각한 내용을 담아서 썼답니다 ㅋㅋ

마녀고양이 2011-12-2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너무 꽉 잡지 마시기를,,,
지난번 양철나무꾼 양처럼 꽈당 자전거 넘어집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은, 언니도 잘 아시겠지만,
적당하게 잡고 적당하게 풀어주며 즐기는 거랍니다. 저는 그 연습 중이예요! ^^

hnine 2011-12-26 13:07   좋아요 0 | URL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재치있게 풀어주시는 마녀고양이님 ^^
적당하게 잡고 적당하게 풀어주는것, 삶의 지혜이겠지요.
저도 여러번 넘어지고 깨지면서 연습 중이네요.

달사르 2011-12-2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제목을 까먹었더랬어요. 자전거 배우는 누군가야, 힘내! 아자아자! 말을 건네느라 말이죠.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더랬지, 생각에 젖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다시 올라가서 제목을 보면서 무릎을 탁, 하고 쳤답니다. 제목이 참 근사해요!

hnine 2011-12-27 14:23   좋아요 0 | URL
저 정말 자전거 힘들게 배웠어요. 서른 다 되어서, 하마터면 옆의 강물로 빠질 뻔 했다지요. 어깨, 얼굴 다 깨지고...ㅋㅋ
피할수만은 없다! 이런 비장한 각오 아니었다면 아마 아직도 자전거 탈 줄 몰랐을거예요. 살다보면 이렇게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들이 계속 나오더군요.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아주 단순하게 구분해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스위치''다이얼'입니다. 먼저 스위치 방식은 'On-Off' 두가지 모드밖에 없습니다. 아주 잘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에는 중간이나 다양한 눈금이 없고 인간관계 역시 '적 아니면 동지'이기 쉽습니다. 결국 이들의 최상을 추구하려는 의도와는 반대로 삶은 점점 Off 모드로 치닫게 됩니다.

 

이에 비해 다이얼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숫자와 눈금으로 된 다이얼이 있어 자신의 상황과 능력에 맞게 눈금을 조절합니다. '모 아니면 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에 초첨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관계에서도 다양한 관계가 있고 상대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줄 압니다.

 

미친 듯이 공부하다가 장시간 슬럼프에 빠지는 스위치 타입의 수헙생이 상담을 계속 받더니 하루는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요. 그래도 작년보다는 더 많이 공부하는 거니까요."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은 스위치식인가요? 다이얼식인가요?

(문요한의 '마음을 여는 지혜' 36쪽)

 

 

나, 전형적인 스위치식 인간.

지각할 것 같으면 아예 안간다.

잘 할 자신 없으면 아예 시작도 안한다.

예고편부터 다 못 볼 것 같으면 영화를 안본다.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은 포기한다.

잘 대접할 자신 없으면 놀러오란 소리도 못한다.

나의 이런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마음에 들어온 글.

 

오늘의 밥이다.

스위치를 꺼버리기 전에 다이얼을 돌려서 조절할 수 있는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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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2-24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래서 지혜가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
『나를 아는 지혜』어제 장바구니에 담아놨어요. ^^

hnine님 서재는 항상 차분함이 느껴져요. 항상 들떠서 사는 저이기에 hnine님 서재는 분위기만으로도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지요. 한해를 보내며 새삼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따뜻한 사랑 넘치는 복된 새해 맞이하시기를 바래요.
아프지 마시구요. 몸 튼튼 마음 튼튼!!!
^^

hnine 2011-12-25 05:39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저 알고보면 그렇게 차분한 사람 아니랍니다. 오히려 흥분 잘하고 감정적이고, 포르르 화도 잘 내고요. 그래서 늘 이런 책을 보면 손이 가고 마음이 가요. 어제만 해도 점심 제가 쏘기로 해놓고 그 전에 끝내려고 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와서 자꾸 말 시키고 방해한다고 "나 안가!" 아이처럼 이랬답니다 제가.저 이런 사람이라고요 ㅠㅠ
메리포핀스님도 여기 오래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요.

하늘바람 2011-12-25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이얼 인간 같아요, 허지만 언제너 스위치 인간이 멋있고 부럽고 그렇게 되려고 해요. 맺고 끝는게 없고 잘 컷트도 못하고 어느 날 문특 스위치 흉내를 내 보면 엄청 욕만 먹고.
아마도 흉내는 그런듯해요.
진짜가 아니라서.
전 님이 엄청 부러워요

hnine 2011-12-25 05:41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스위치 인간인 저에게는 스위치 아예 꺼버리기 전에 다이얼을 돌려 조절하려는 시도가 매우 필요하답니다.
사진으로 보는 태은이, 아주 예뻐요. 심상치 않은 미모랄까~ ^^
맘 조급하게 먹지 말고 우리 천천히, 쉬지 말고 가요.
건강하시고요.

무스탕 2011-12-25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 참 너그러워, 라는 칭찬과 그 사람 참 똑 부러져, 라는 두 가지의 칭찬중 어느것을 더 듣기 좋다고 생각하세요?
360도 다이얼이었으면 참 완벽할텐데 저 처럼 30도 안팍의 좁은 폭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어쩌면 옛날 형광등처럼 둔한 스위치일지도 모르겠어요.
켜 져서 좀 익숙해 질만하면 꺼버리는데 완전히 꺼지는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이라서 어쩌면 다이얼식하게 보이는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결론은 미적지근한 인간이라는 말이지요 ^^;;

크리스마스 즐겁게 지내고 계십니까? :)

hnine 2011-12-25 18:05   좋아요 1 | URL
저는 너그럽다는 칭찬도, 똑부러진다는 칭찬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ㅠㅠ 뭘 맡기면 열심히 한다는 칭찬은 간혹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요.
저 혼자의 안달복달이지요. 하려면 잘 해야하고, 그런데 그런 능력이 없으니 갈수록 좀처럼 시도조차 안하게 되고요. 생각만큼 안되면 막 속상해하고 절망하고요.
댓글을 읽으며 위의 글을 한번씩 더 읽어봐요.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는데 다 저녁때 되서야 친정 부모님 두분이 하루 종일 뭐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안좋네요.

마녀고양이 2011-12-26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위치와 다이얼....
너무 적절한 이유인지라, 저도 다른 곳에서 써먹어야겠어요.
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구요.

오늘 큰맘먹고 머리하러 갑니다, 왜이리 미장원 가기 귀찮은지 몰라요, 헤헤.

hnine 2011-12-26 13:09   좋아요 1 | URL
나도 머리해야하는데...
이사온 이후로 미용실을 어디로 가야할지 못 정하고 있어요.
예쁘게 하고 오세요.
`스위치와 다이얼`은 저 같이 융통성 없고 꽉 막힌 사람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