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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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서 표지의 작가 인터뷰 글을 읽었다.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책상 앞에 앉아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어느 정도 길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반년 가깝게 이 이야기를 묵묵히 써 왔습니다.

처음에 제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다자키 쓰쿠루라는 한 청년의 눈에 비친 한정된 세계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매일 조금씩 변모하여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간다는 것은 제게 굉장히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독자에게 무엇이 전달되기를 바랐을까. 내가 소설을 읽으며 주로 집중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어느 날 문득 어떤 한 인물상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대부분의 소설에는 일상에서 보기 힘든 개성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극적인 사건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반해, 뚜렷한 개성이 있는 인물이라기 보다 오히려 뚜렷한 개성이 없는 인물, 그래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알고 보면 평범하지만은 않은, 자기 소신에 따라 살고 있는 인물. 이 사람은 어디에 절망하고 어떻게 다시 자기를 재구성해나가는지 보여준다. 한꺼번에 갑작스런 변화가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다 읽고나서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의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주인공 쓰쿠루는 눈에 드러나는 개성은 없어보이지만, 쓰쿠루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의 컴플렉스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게 된데는 고등학교부터 친하게 지내온 네명의 친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절교를 당하고 부터이다. 이유를 알수 없는 일을 당하고 나서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생각하게 되고 생각의 정도는 거의 집착의 수준에까지 간 상태에서 사라라는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쓰쿠루의 문제를 듣고 난 사라의 조언에 따라 쓰쿠루는 자기를 거부한 예전의 친구들을 찾아나선다. 이것이 책 제목에 '순례'라고 표현된 것이다. 그러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과거의 끈 속에 현재가 묶여 있던 생활을 정리하고 여자친구 사라와의 관계를 새로이 하는 것으로 현재의 쓰쿠루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품 역시 하루키가 처음부터 치밀한 구도를 잡고 써나갔다기 보다 어떤 인물을 설정하고 그때 그때 직관, 즉흥에 의존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하루키이니까 이것이 가능하고, 치밀하게 구성를 계획하고 쓰는 것 못지 않은 가독성을 주는 것이 아닐까. 아무나 따라하지 못할 영역이라고 할까.

과연 쓰쿠루는 그의 생각처럼 색채가 없는 인물이었을까. 드러나지 않는 색도 색은 색이다. 오히려 한가지 색이 아니라 여러가지 색이 합쳐지면 검정, 빛의 경우엔 흰색이 되는 것처럼, 뚜렷한 색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많은 색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소설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단순해보이는 것이 사실은 복잡한 배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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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2-2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올해의 책, 투표중인데 하루키의 이 책이 순위안에 드는 건 뻔한 결과겠지요?
전 아직 안(못)읽었어요. 일단 제목이 너무 긴 탓인가, 도무지 끌리는 구석도 없고 표지도 맘에 안들고ㅠㅠ
유명세를 떠나 나중에라도 읽을 날이 오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저만치 밀쳐둔 책이예요.

그래도 언젠가 이 책 읽게 되면, 언급하신 나인님 관점에 맞춰서 한번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hnine 2013-12-27 06:10   좋아요 0 | URL
제가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게 지난 여름인데 도착하자마자 계속 대출중이다가 이제서야 제 손에 들어와 읽게 되었답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요. 기회되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루키가 어떤 큰 의미와 깊이를 담아 썼다는 생각이 제 경우엔 별로 안들어서 그건 읽는 사람 몫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섬사이 2013-12-2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늘 대출중인 이 책이 언젠가 제 손 안으로 들어올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


hnine 2013-12-28 07:45   좋아요 0 | URL
하루키의 인기를 느끼는 순간이 바로 그런 경우이지요. 이 책 나온지 이제 꽤 되었는데도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늘 대출중이라는거요 ^^ 저도 한참 기다려서 읽었어요.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 엄마와 남자아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관계의 심리학
루신다 닐 지음, 우진하 옮김 / 카시오페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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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번역본 나올 때 제목 만드는 실력은 갈수록 원본 제목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원제는 About our boys. 번역본 제목에 비해 매우 평범하다. 이것에 비해 얼마나 눈길을 끄는 제목인지.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라니.

널리 알려진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통해 생물학적인 차이 말고도 남자 여자가 이렇게 다르구나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그 차이는 꼭 어른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남자 아이를 키우며 알아가는 중이다. 아들과 딸을 함께 키워보는 부모들에게 들어보면 이들은 확실히 다르다. 물론 아들 딸 상관없이 공통인 부분이 더 많겠지만 아들의 경우 엄마와 성이 다르다보니 엄마 어릴 때 기억을 바탕으로 아이를 대하다 보면 절대 이해못할 일이 발생한다.

남자아이는 어른의 혈압이 솟구치는 걸 보고 정말로 좋아한답니다. (5쪽)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한다는 말을 종종 아이에게 한다. 하지말라고 하는 순간 멈추는게 아니라 더 하는 것이다. 그게 아이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더 하는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녀석이 나를 갖고 노는건가 생각이 들면 더 화가 난다. 그런데 그건 아이에게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라기 보다 원래 그런 성향이 남자 아이에겐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 알아도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 남자아이는 무조건 '재미있는 일'을 좋아한다.
  • 농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약 올리고 싶어한다.
  • '하지 마!' 라고 하는 순간 남자아이는 하고 싶어진다.
  • 과도한 걱정은 금물. 다만 항상 눈과 귀를 열어놓고 소통의 채널을 열어두면 된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그 생각을 이해해주는 게 중요하다. 비록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 아이를 꾸중한 뒤에는 이렇게 물어보자 "지금 내가 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하니?"
  • 계속해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에게, "혹시 이 규칙이 이해가 안 가니?"
  • 남자아이는 남자 어른의 인정이 필요하다.
  • 아이에게서 칭찬할만한 자질을 찾아낸다.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할 때만 주목한다면 결국 그 아이는 주의를 끌려고 나쁜 행동만 하게 될 것이다. 아이에게는 규칙을 지키는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 아이를 존중한다는 건 불량스러운 태도를 참고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예의를 지키며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는 것이다.
  • 아이에게 육체적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를 주라.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안전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라.
  • 텔레비전이나 게임의 폭력성에 대하여, 부모는 아이가 자기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일정 시간 동안 가정에서 '폭력물'의 시청이나 게임을 허락한다는 것은 집안의 어른도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야 한다는 (함께 시청) 의미이다.
  • 장난이 심하고 집중을 잘 못하는 아이에게 항상 도전할 거리를 준다. 목표가 있는 아이는 장난치는 일도 다 잊어버린다.
  • 경계선을 지켜서 그 안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을 돌파하는게 남자아이에겐 놀이이다. (여자아이와 차이점)
  • 예의바르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예의 바르게 군다면 엄마도 네 말에 귀 기울여 줄거라 약속할게."
  • 규칙과 제재방법을 아이와 함께 의논한다. 종종 아이는 어른의 예상보다 더 가혹한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행동이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고쳤으면 하는 구체적인 부분을 알려준다.
  •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 "네게 좋은 해결책이 있으리라 믿어. 이리 와서 네 생각을 한번 이야기해보렴."
  • 금지하지 말고 원하는 바를 말하라. "복도에서 뛰어다니지 마!" 라는 말에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많은 교사들이 걷는 것보다는 뛰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대답했다. 금지 사항을 말하기보다는 바라는 바를 말하라.
  • 모든 감정은 다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행동은 제한이 필요하다. 아이가 바른 행동을 하면 확인해준다.
  • 남자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자 아이가 감정을 쉽게 드러내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본다.
  • 10대는 토론이 중요한 시기이다. 토론의 핵심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 남자아이는 누군가가 가르치듯이 말하는 걸 싫어한다. 가르치려 들면 아이는 무뚝뚝하게 반응하고, 가르치려는 내용은 아이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비공식적이고 질책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어른이 하는 말을 잘 받아들인다. 바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말이다. 자동차 여행을 같이 가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은 대화를 위한 좋은 기회이다.
  •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는 무시한다. 말을 줄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대하라. 말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대라.
    • 아이가 옷이 더러워져 들어오면 옷을 가리키며 얼굴을 조금 찡그린다.
    • 아이가 식탁 위에 앉아있다면 거기서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 아이가 규칙을 어기면 규칙이 적혀있는 곳을 가리킨다.
  • 한마디로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중요시하고 불필요한 세부사항을 성가시게 생각한다.짧게 이야기하고 핵심만 지적하자.
  • 아빠는 아이의 첫 번째 역할모델이다.

 

모든 남자 아이에게 모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이를 대하는 것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같은 잔소리를 계속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나름대로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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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3-12-2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아이에 대한 설명에 구구절절 공감이 가네요. '짧게 이야기하고 핵심만 지적하'는데 하나 더 추가한다면 얼굴에 힘을 주고 강력하게 말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특히 중학생이라면 그래요, 경험상.
재미있는 설명입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더라구요.

hnine 2013-12-21 10:03   좋아요 0 | URL
옮겨놓진 않았지만 말씀하신 부분이 책에도 나오더군요. 얼굴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낮춰서 힘있게 말하는거요. 이건 제 아이도 말한 적 있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자기 의견을 말할때 목소리를 높이고, 속도는 빨라지고, 소리는 더 커지는데 외국 사람들은 오히려 말 속도를 늦추어 또박또박, 힘주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고요. 그게 더 효과가 있다는 말이지요.
이 책 읽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서니데이 2013-12-2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자아이'가 아닌데도, 리뷰쓰신 내용중에 약간 비슷한 부분도 있어서 ... 읽어보면서 이럴 경우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읽었어요. 남자아이는 어른의 혈압이 솟구치는 걸 보고 정말로 좋아한답니다. 라고 강조하신 부분, 처음 봤을 땐 그냥 웃었는데, 진짜 그 순간에 어른입장이 된다면 무척 난처할 수도 있겠더라구요. (그렇지만 비슷한 점이 있긴 해도, 다행히 그것만큼은 정말로 좋아하지 않아서... ^^:)

덧붙여, 오늘 알라딘 서재의 달인 페이지 보고 왔는데, 나인님도 계시더라구요.
서재의 달인 되신 거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자주 올게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hnine 2013-12-21 23:01   좋아요 0 | URL
오늘도 남편과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제 남편은 책은 책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라고 믿는 편이어서 저 만큼 공감을 안하네요 ㅠㅠ 하루도 아이에 대해서 얘기 안하는 날이 없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책 내용이 머리에, 아니 가슴에 쏙쏙 들어와요.
알라딘 서재의 달인은 알라딘에서 그렇게 이름 붙여주시니 고맙긴 한데, 뭐가 '달인'이라는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엠블럼도 조용히 내렸는데 ^^ 그래도 축하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래동안 여기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 전 그것뿐이랍니다. 내일도 춥다던데 서니데이님도 잘 보내세요. 전 오랜만에 친구만나러 서울가요~

2013-12-24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12-25 00:34   좋아요 0 | URL
네, 이제 크리스마스날이 되었네요. 날은 아직 안밝았지만요.
올 한해 차근차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해 그렇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던 한해였으니까요.
늘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무지개모모 2013-12-2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덕분에 달인 엠블럼 내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좋아하며 정보 수정했는데
체크 풀었는데도 이상하게 안 내려가네요ㅠㅠ

hnine 2013-12-25 00:34   좋아요 0 | URL
혹시 체크 풀고나서 저장 버튼 안누른거 아닌가요?

순오기 2013-12-2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남자는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다른 별에서 온 게 맞는 듯해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기를...

hnine 2013-12-25 06:4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딸, 아들 다 키워보셨으니 이런 책 쓸만한 노우하우가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으시겠어요 ^^
기쁜 소식 안겨준 자녀들과 함께 포근한 성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nama 2013-12-2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인 엠블럼...웃기는 장난이지요. 잘 내리셨어요.
그것보다 저 위의 그림, 참 좋습니다. 분명하고 투명한 앞부분보다 왼쪽 뒷부분의 뭉친 듯한 부분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어떤 먼 지역을 떠도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어요.

hnine 2013-12-25 17:52   좋아요 0 | URL
서재 지붕 그림은 세잔느의 그림인데 제목은 모르겠어요. 전 그냥 전체적인 구도와 밑그림 드러나는 색채만 봤었는데 nama님 말씀에 왼쪽 뒷부분을 자세히 보았네요. 갑자기 그림 제목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들었습니다 ^^
 
친절한 생물학 -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에 생물학이 대답합니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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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답식으로 엮었지만 훌륭한 책들도 많다. 그 중 개인적으로 제일 추천하는 책은 하리하라 시리즈.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물론이고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문적인 핵심을 얼마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모범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이전에 쓴 <생물과 무생물 사이>와 <모자란 남자들>을 감탄하며 읽었다. 이번에 나온 <친절한 생물학>은 책의 구성이 앞의 두권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자에 대한 기대감때문에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평소에 생길 수 있는 의문중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AERA>라는 주간지에 '돌리틀 선생의 우울'이라는 연재칼럼으로 써올린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돌리틀 선생은 저자가 어릴 때 읽고서 동경해오는 인물 이름이고 생물학자가 되기로 하는데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연재칼럼도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마흔 아홉가지의 짧은 문답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표지에 있는대로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들인지 한번 둘러보니 보는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Q1이라고 붙은 첫글 제목은 제목치고 긴데, '남자 친구를 처음으로 집에 초대했는데 바퀴벌레가 나타나네요. 바퀴벌레들은 멸종돼버렸으면 좋겠어요. 이거, 잘못된 생각일까요?' 이다. 생물의 다양성과 동적 평형에 대한 이야기인데 만약 제목을 그렇게 붙였으면 아마도 읽어보려는 마음이 싹 달아날지도 모른다. 주제어보다는 어떤 일상속의 상황을 차라리 제목으로 삼아 읽는 사람의 흥미를 돋군다는 의도이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시작은 그렇게 했어도 읽은 후엔 이것이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다는 것이 전달되어야 한다.

피부를 매끈하게 하기 위해 콜라겐 성분이 풍부한 돼지 껍질을 많이 먹는 것은 도움이 될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이것에 대한 글의 제목은 '자라탕을 먹고 나니 피부가 매끈매끈해진 기분입니다. 콜라겐은 정말 미용에 좋은가 봐요.'이다. 자라탕이 좀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요리였다면 더 흥미를 끌었을텐데 일본에서는 자라탕을 많이 먹나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버섯이 채소인가? 비슷한 질문을 나도 한적 있다. 밥상에 버섯 반찬이 있는 것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초등학생 조카에게 버섯이 식물일까 라고 물어본 것이다. 답은,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사실 버섯이 식물이 아니라는것 보다는 왜 식물이 아니라고 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내가 딸을 너무 떠받듭니다. 자식을 과보호하며 키우고 싶지 않군요.' 이 제목을 보면 이것이 생물학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읽어보니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글루티코르티코이드 수용체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 몸의 기관중 여과 기능을 하는 신장. 그 신장이 필터나 활성탄 같은 것으로 물을 여과하는 정수기와 다른점은? 정수기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거름망이 막히기 때문에 거름망을 정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하지만 우리 몸의 신장은 이런 교환이 필요 없다. 혈액이 통과하면서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모두 통과시켜버린 후 필요한 것은 다시 재흡수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억 년쯤 전에 생명의 진화에 아주 커다란 도약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 인간도 존재하게 되었죠. 생명의 다세포화가 그것입니다. 그때까지 단세포 생물은 분열하면 두 개로 갈라져 '안녕'하며 각자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분열해도 서로 붙어 있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세포는 증식함에 따라 2,4,8,16,32로 수가 불어납니다. 그대로 붙어 있기만 해서는 단세포 생물이 군체를 형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다세포 생물에서는 여기에서 세포의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즉 전문화 분업입니다. 현재 우리 몸은 이런 분화에 의해 피부 세포, 소화관 세포, 근육 세포, 내장 세포라는 식으로 각 세포가 역할을 분담합니다. 이렇게 역할을 잘 분담할 수 있는 것은 세포들이 원활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76-177쪽)

세포 분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문화'와 '분업'이라고. 기억해놓았다가 인용해야겠다. 세포들의 대화라는 말은 또 얼마나 적절하고도 마음에 와닿는 표현인지.

 

겉표지의 문구처럼 '생물학은 모든 답을 알고 있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동의하겠다.

재미있는 주제들을 선정하여 문답식으로 구성한 것은 좋았으나 흥미를 끌도록 붙인 제목만큼 그 속에 담긴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며 마무리 짓기에는 글이 너무 짧았던 것일 수도 있고, 배경 설명에 많이 할애하느라 촛점이 흐려지기 쉬운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래서 별점을 넷만 준 이유이다.

 

 

나비들은 금욕적이다 싶을 만큼 식초를 한정합니다. 이렇게 한정된 자우너을 분배함으로써 지구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니치'입니다. 이 말의 참된 의미는 서로 영역을 나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릭 칼의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처럼 뭐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에릭 칼이 벌레를 잘 몰랐거나 인간을 희화한 것이겠지요.

인간만이 공유가 아니라 독점을 추구합니다. (227쪽)

 

마지막 문장이 여운을 남긴다.

생물학은, 감동적인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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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2-25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덕분에 과학상식도 늘려가고 있어요,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 그렇군요!^^
님이 추천하신 책을 몇 권 장만했는데~ 아직 등록을 못해서 서가에 꽂지도 못했네요.
날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짬이 안나서... 이번 목요일이면 모든 프로그램이 끝납니다.
그래도 새해가 돼야 등록작업을 할 수 있고, 1.2월은 프로그램에 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책 읽을 수 있겠지요.^^

hnine 2013-12-25 06:46   좋아요 0 | URL
이정도 과학 상식책을 쓸 수 있으면서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를 인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그림책에 대한 관심도 있는 남자 어른이란 멋있지요~ ^^
늘 바쁘게 사시는 순오기님, 취업서류 내신 곳에서도 좋은 소식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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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를 이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다 있을거라 생각된다. 내 경우엔 두가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과 어릴 때 어디든 여행을 많이 해보게 하자는 것이었다.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이에게 책을 많이 사준 것도 아니다. 내가 읽을 책도 필요하고 또 아이 데리고 먼데 갈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여 아이 데리고 도서관에 자주 갔다. 나는 내 책을 고르고 아이는 자기 읽고 싶은 책을 맘껏 뽑아 읽도록 했다. 아이가 무슨 책을 골라 읽는지 흘끔 넘겨 보고 나도 아는 책이면 책 내용에 대해 아이와 얘기도 나누고, 그 일은 아이가 열 세살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한 일은 거기까지가 전부이고 한번도 독후감을 써보라고 해본 적이 없다.지금 아이들의 엄청난 독서량에 못미쳐서 그랬는지 어릴 때 난 한권 읽으면 반드시 독후감 노트에 기록을 하여야 했는데 책 한권 읽고 나면 숙제가 하나씩 늘어나는게 싫었었다. 독후감을 써서 좋은 점은 잘 알고 있는데도 빨리 다음 책 읽고 싶은데 그거 쓰느라 머리를 써야하는게 귀찮았고 어떤 때는 독후감을 쓰는 동안 책 읽은 후의 그 생생한 감동이 한풀 꺾이기도 했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주시면 해야겠지만 내가 집에서 따로 독후감 쓰도록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 학교에서도 지금까지 독후감 쓰라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대신 책 읽고 난 후 그 내용에 대한 퀴즈를 풀게 하는데 퀴즈를 푸는 동안 책 내용이 한번 정리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지금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의 필요성을 안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리 귀찮거나 싫지 않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해도 그럴까?

이 책의 제목만 보면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수도 있는데 제목을 풀어서 얘기하자면 소설은 그냥 소설로 읽게 하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 책으로 <까모와 나>, <늑대의 눈> 등의 어린이책으로 우리 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다니엘 페낙이다. 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의 책 읽기 교육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는데  책의 첫장에 다음과 같은 말에 저자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부디 이 책을 강압적인 교육의 방편으로 삼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우리는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61쪽)

 

우리는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맙소사, 불과 열댓 줄 남짓한 글의 내용을 내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다니!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가 무슨 바닷물을 통째로 삼키라는 건가, 읽어봤자 기껏 열댓 줄일 뿐인데. 이야기꾼이었던 우리는 이제 몇 줄, 몇 장까지도 꼬장꼬장 챙기는 회계 감사원이 되어버렸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텔레비전 볼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마!"

그렇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텔레비전이 보상이라는 지위로 격상됨에 따라, 당연히 독서가 억지로 해야 할 고역으로 전락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에게서 나온 우리 스스로의 발상이었다는 사실을. (65쪽)

 

어른들은 읽기를 익히게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그럴듯한 공부방을 꾸며주고, 독서 카드 만들고, 출판사를 무색케 할 만큼 온갖 전집류로 도배를 한다.

조급하게 얻으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곧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얻는 길이다. (67쪽)

이 모든 것이 다 아이를 위해서 그런거라는 말은 제일 하기 쉬운 변명이다.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일까,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는지.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과 바쁜데도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저자는 책 읽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연애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들에서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독서란 효율적인 시간 운용이라는 사회적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161쪽)

알만한 사람은 공감할 구절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읽기에 길들게 하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읽고 또 읽어주면서, 아이들의 눈이 열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차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163쪽)

청소년들에게 서로 책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을 갖게하는 것도 좋은 일이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유익할 수 있는 과정이긴하나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토론, 혹은 이야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작품이다. 또한 독서를 하면서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아이에게 따로 독서지도라는 것을 해오지 않은 것에 대한 구실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충분한 변명거리를 이 책에서 찾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책읽기에 대한 그 어떠한 효율적인 방법도 책읽기에 대한 흥미를 앞지르게 하면 안될거라는 것, 그것은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제, 이 책과 반대 입장에서 쓴 책도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한쪽으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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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1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즐겁게 읽는 아이한테
이제 어느 만큼 나이가 되었으니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네가 읽은 책에서 꼭 한 줄만 뽑아서
종이에 정갈한 글씨로 옮겨 적은 뒤에
벽에다 붙여 보렴." 하고요.

또는, "책에서 한 줄만 뽑아서 어머니한테 읽어 주렴." 하고
이야기해 볼 수도 있겠지요~

hnine 2013-12-18 16:09   좋아요 0 | URL
그런 말 안해도 대개 아이가 먼저 조잘조잘 얘기를 하더군요. 전 그럴때 그냥 열심히 들어줘요.

서니데이 2013-12-1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과 다른 생각을 가진 책을 읽게 되면, 그 때도 페이퍼 써주세요. ^^

hnine 2013-12-19 00:25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겠습니다. 읽은 책인 일단 다 리뷰를 쓰니까요.
오늘도 역시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페크pek0501 2013-12-1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습관이네요. 일단 읽으면 리뷰를 쓴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어떤 책에선 몇 개의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얻는가 하면
어떤 책은 소재도 얻지 못할 뿐더러 리뷰조차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물론 제 능력 부족이겠지만요.ㅋ
저도 이 책 내용에 동감합니다. 우선 책이 재밌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게 가장 중요할 듯해요.
그러면 교육의 반 이상은 된 게 아닐까요.

hnine 2013-12-19 12:25   좋아요 0 | URL
읽은 책은 일단 다 리뷰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리뷰를 별로 정성들여 쓰지 않기 때문일거예요. 대부분 빌려 읽고 반납해야하는 책들이었기 때문에 반납하기 전에 어딘가에 기록을 남긴다는 차원이지요.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었네요. pek 님을 비롯해서 정말 리뷰 잘 쓰시는 분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그냥 저 나름의 방법이어요 ^^

sangmee 2013-12-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다른것 보다
외국도 비슷하다는게 더 신기하다.
너 예전에 쓰던 일기 묶음은 어떻고....

hnine 2013-12-19 22:54   좋아요 0 | URL
내 일기 묶음을 기억하는구나.
난 내가 싫었던것에 대해선 철저하게 아이에게 반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수퍼남매맘 2013-12-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아서 두 번 정독하고 있는데 님 서재에 올라와 있어서 반갑네요.
부모라면 꼭 읽어보라고 강추하고 싶은 책이에요.

hnine 2013-12-25 00:35   좋아요 0 | URL
이책 수퍼남매님 덕분에 알고 읽게 된 책이랍니다. 말씀대로 기회되면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더군요.
좋은 책 알게 해주셔서 제가 감사드리고 싶어요.
 
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화요일에 갈까?"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특별휴가가 있을거야."

이번에는 아내한테 말했다.

"그럼 월요일에 있군요."

"응."

"이번엔 누군데요?"

"누군가야." (51쪽)

아내는 남편에게 왜 물었을까. 이번엔 누구냐고.

주인공 남자의 직업은 형무소 간수. 사형 집행이 있은 다음날 집행관에겐 특별 휴가가 주어진다.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덧붙였다.

"형태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이지. 아무리 우수한 기계라도 많이 만들다 보면, 반드시 불량품이 나오지 않는가.  그 불량품을 어떻게 하겠어? 버릴 수밖에 없지. 사람도 이렇게 많이 있다 보면 마찬가지라고. 불량품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거지." (68쪽)

1966년, 스무살 갓 넘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소설가라는 이름을 처음 달아준 작품인 <여름의 흐름>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잘릴 것 같아 썼다는 소설이다. 이 작품이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고 이어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의 영예까지 안겨주었으니, 이후의 어떤 작품보다 의미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무소 간수의 심리가, 제한된 대사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낚시라는 취미를 도입하여 집행과정과 낚시를 대비시킨 묘사가 눈에 띄었고, 이것은 남자의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설정에서도 마찬가지 효과를 주고 있다. 신참 간수를 등장시켜 차츰 적응해가는 기성 간수와 신참간수의 갈등을 대비시켰다. 중편 정도의 분량 속에 강렬한 인상을 주기 충분하게 마무리하였다.

또 한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좁은 방의 영혼>

병원 2인실에 입원한 주인공은 생명의 기한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침대에 누워 머리속으로 공간이동, 시간이동을 하여 다른 상황 속에 살아보는 것이다. 좁은 방의 영혼이 시간을 버텨내는 방법이다. 평소에 말 시키기 좋아하고 참견하기 좋아하여 주인공이 귀찮아하던 옆침대의 남자가 생의 마지막을 끔찍하게 맞이하는 것을 옆에서 다 지켜본 주인공은 다시 시작된 다음날 아침을 무심하고 공허하게 맞으며 일상을 시작한다.

뒤에는 단편소설 네 편이 실려있다.

<만월의 시> 이 사람의 작품엔 '달'이 참 자주 등장한다. 실험적이고, 문장력과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긴 하지만, 읽는 사람보다는 쓰는 사람에게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일 듯. 좀 지루했다.

다음 작품 <바다> 역시 소설이라고 하기보다 한편의 에세이의 느낌을 준 이유는 이야기의 구성때문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들다리를 건너다>를 읽기도 전에 '흔들다리라니, 무엇을 상징한다고 끌어다붙여도 다 말이 되겠군, 인생'을 포함해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문장이 늘어지는 느낌, 반복과 군더더기의 느낌도 들었다.

'달에 울다'라는 소설에서 달과 함께 중요한 소재로 도입되었던 새가 제목부터 나오는 <한낮의 피리새>가 마지막 단편이다.

이 작가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혼자이다. 외롭다. 그것이 작품의 소재이면서 주제이다. 인물이 혼자이다보니 달, 새, 개, 나무, 숲, 환상속의 기사 등을 주인공의 의식 속으로 끌어들인다. 간혹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출중으로 설정해놓는다. 그의 인터뷰 제목 '고독과의 대치'는 그의 이런 성향을 짧지만 잘 표현해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과 대치로 이어지는 생이란 참, 말만으로도 쓸쓸하고 외롭다. 고독에 항복하고 사는 것보다 덜 외로울까?

 

마루야마 겐지 책으로 읽은 세번째 책인데 아직은 <달에 울다>를 넘어서는 것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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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16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세 번째 작품을 읽으신다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작품도 읽으시겠군요.
차근차근 즐겁게 누리셔요~

hnine 2013-12-16 12:29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그러겠지요 ^^

꼼쥐 2013-12-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리뷰를 보니 관심이 가는 작가네요.

hnine 2013-12-17 16:23   좋아요 0 | URL
지금 막 <그리고 산이 울렸다> 리뷰 올리신 것 읽고 왔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거든요.
꼼쥐님도 마루야마 겐지의 책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