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생물학 -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에 생물학이 대답합니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짧은 문답식으로 엮었지만 훌륭한 책들도 많다. 그 중 개인적으로 제일 추천하는 책은 하리하라 시리즈.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물론이고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문적인 핵심을 얼마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모범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이전에 쓴 <생물과 무생물 사이>와 <모자란 남자들>을 감탄하며 읽었다. 이번에 나온 <친절한 생물학>은 책의 구성이 앞의 두권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자에 대한 기대감때문에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평소에 생길 수 있는 의문중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AERA>라는 주간지에 '돌리틀 선생의 우울'이라는 연재칼럼으로 써올린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돌리틀 선생은 저자가 어릴 때 읽고서 동경해오는 인물 이름이고 생물학자가 되기로 하는데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연재칼럼도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마흔 아홉가지의 짧은 문답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표지에 있는대로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들인지 한번 둘러보니 보는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Q1이라고 붙은 첫글 제목은 제목치고 긴데, '남자 친구를 처음으로 집에 초대했는데 바퀴벌레가 나타나네요. 바퀴벌레들은 멸종돼버렸으면 좋겠어요. 이거, 잘못된 생각일까요?' 이다. 생물의 다양성과 동적 평형에 대한 이야기인데 만약 제목을 그렇게 붙였으면 아마도 읽어보려는 마음이 싹 달아날지도 모른다. 주제어보다는 어떤 일상속의 상황을 차라리 제목으로 삼아 읽는 사람의 흥미를 돋군다는 의도이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시작은 그렇게 했어도 읽은 후엔 이것이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다는 것이 전달되어야 한다.

피부를 매끈하게 하기 위해 콜라겐 성분이 풍부한 돼지 껍질을 많이 먹는 것은 도움이 될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이것에 대한 글의 제목은 '자라탕을 먹고 나니 피부가 매끈매끈해진 기분입니다. 콜라겐은 정말 미용에 좋은가 봐요.'이다. 자라탕이 좀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요리였다면 더 흥미를 끌었을텐데 일본에서는 자라탕을 많이 먹나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버섯이 채소인가? 비슷한 질문을 나도 한적 있다. 밥상에 버섯 반찬이 있는 것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초등학생 조카에게 버섯이 식물일까 라고 물어본 것이다. 답은,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사실 버섯이 식물이 아니라는것 보다는 왜 식물이 아니라고 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내가 딸을 너무 떠받듭니다. 자식을 과보호하며 키우고 싶지 않군요.' 이 제목을 보면 이것이 생물학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읽어보니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글루티코르티코이드 수용체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 몸의 기관중 여과 기능을 하는 신장. 그 신장이 필터나 활성탄 같은 것으로 물을 여과하는 정수기와 다른점은? 정수기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거름망이 막히기 때문에 거름망을 정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하지만 우리 몸의 신장은 이런 교환이 필요 없다. 혈액이 통과하면서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모두 통과시켜버린 후 필요한 것은 다시 재흡수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억 년쯤 전에 생명의 진화에 아주 커다란 도약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 인간도 존재하게 되었죠. 생명의 다세포화가 그것입니다. 그때까지 단세포 생물은 분열하면 두 개로 갈라져 '안녕'하며 각자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분열해도 서로 붙어 있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세포는 증식함에 따라 2,4,8,16,32로 수가 불어납니다. 그대로 붙어 있기만 해서는 단세포 생물이 군체를 형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다세포 생물에서는 여기에서 세포의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즉 전문화 분업입니다. 현재 우리 몸은 이런 분화에 의해 피부 세포, 소화관 세포, 근육 세포, 내장 세포라는 식으로 각 세포가 역할을 분담합니다. 이렇게 역할을 잘 분담할 수 있는 것은 세포들이 원활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76-177쪽)

세포 분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문화'와 '분업'이라고. 기억해놓았다가 인용해야겠다. 세포들의 대화라는 말은 또 얼마나 적절하고도 마음에 와닿는 표현인지.

 

겉표지의 문구처럼 '생물학은 모든 답을 알고 있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동의하겠다.

재미있는 주제들을 선정하여 문답식으로 구성한 것은 좋았으나 흥미를 끌도록 붙인 제목만큼 그 속에 담긴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며 마무리 짓기에는 글이 너무 짧았던 것일 수도 있고, 배경 설명에 많이 할애하느라 촛점이 흐려지기 쉬운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래서 별점을 넷만 준 이유이다.

 

 

나비들은 금욕적이다 싶을 만큼 식초를 한정합니다. 이렇게 한정된 자우너을 분배함으로써 지구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니치'입니다. 이 말의 참된 의미는 서로 영역을 나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릭 칼의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처럼 뭐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에릭 칼이 벌레를 잘 몰랐거나 인간을 희화한 것이겠지요.

인간만이 공유가 아니라 독점을 추구합니다. (227쪽)

 

마지막 문장이 여운을 남긴다.

생물학은, 감동적인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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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2-25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덕분에 과학상식도 늘려가고 있어요,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 그렇군요!^^
님이 추천하신 책을 몇 권 장만했는데~ 아직 등록을 못해서 서가에 꽂지도 못했네요.
날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짬이 안나서... 이번 목요일이면 모든 프로그램이 끝납니다.
그래도 새해가 돼야 등록작업을 할 수 있고, 1.2월은 프로그램에 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책 읽을 수 있겠지요.^^

hnine 2013-12-25 06:46   좋아요 0 | URL
이정도 과학 상식책을 쓸 수 있으면서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를 인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그림책에 대한 관심도 있는 남자 어른이란 멋있지요~ ^^
늘 바쁘게 사시는 순오기님, 취업서류 내신 곳에서도 좋은 소식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