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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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서 표지의 작가 인터뷰 글을 읽었다.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책상 앞에 앉아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어느 정도 길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반년 가깝게 이 이야기를 묵묵히 써 왔습니다.

처음에 제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다자키 쓰쿠루라는 한 청년의 눈에 비친 한정된 세계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매일 조금씩 변모하여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간다는 것은 제게 굉장히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독자에게 무엇이 전달되기를 바랐을까. 내가 소설을 읽으며 주로 집중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어느 날 문득 어떤 한 인물상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대부분의 소설에는 일상에서 보기 힘든 개성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극적인 사건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반해, 뚜렷한 개성이 있는 인물이라기 보다 오히려 뚜렷한 개성이 없는 인물, 그래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알고 보면 평범하지만은 않은, 자기 소신에 따라 살고 있는 인물. 이 사람은 어디에 절망하고 어떻게 다시 자기를 재구성해나가는지 보여준다. 한꺼번에 갑작스런 변화가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다 읽고나서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의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주인공 쓰쿠루는 눈에 드러나는 개성은 없어보이지만, 쓰쿠루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의 컴플렉스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게 된데는 고등학교부터 친하게 지내온 네명의 친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절교를 당하고 부터이다. 이유를 알수 없는 일을 당하고 나서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생각하게 되고 생각의 정도는 거의 집착의 수준에까지 간 상태에서 사라라는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쓰쿠루의 문제를 듣고 난 사라의 조언에 따라 쓰쿠루는 자기를 거부한 예전의 친구들을 찾아나선다. 이것이 책 제목에 '순례'라고 표현된 것이다. 그러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과거의 끈 속에 현재가 묶여 있던 생활을 정리하고 여자친구 사라와의 관계를 새로이 하는 것으로 현재의 쓰쿠루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품 역시 하루키가 처음부터 치밀한 구도를 잡고 써나갔다기 보다 어떤 인물을 설정하고 그때 그때 직관, 즉흥에 의존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하루키이니까 이것이 가능하고, 치밀하게 구성를 계획하고 쓰는 것 못지 않은 가독성을 주는 것이 아닐까. 아무나 따라하지 못할 영역이라고 할까.

과연 쓰쿠루는 그의 생각처럼 색채가 없는 인물이었을까. 드러나지 않는 색도 색은 색이다. 오히려 한가지 색이 아니라 여러가지 색이 합쳐지면 검정, 빛의 경우엔 흰색이 되는 것처럼, 뚜렷한 색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많은 색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소설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단순해보이는 것이 사실은 복잡한 배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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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2-2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올해의 책, 투표중인데 하루키의 이 책이 순위안에 드는 건 뻔한 결과겠지요?
전 아직 안(못)읽었어요. 일단 제목이 너무 긴 탓인가, 도무지 끌리는 구석도 없고 표지도 맘에 안들고ㅠㅠ
유명세를 떠나 나중에라도 읽을 날이 오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저만치 밀쳐둔 책이예요.

그래도 언젠가 이 책 읽게 되면, 언급하신 나인님 관점에 맞춰서 한번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hnine 2013-12-27 06:10   좋아요 0 | URL
제가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게 지난 여름인데 도착하자마자 계속 대출중이다가 이제서야 제 손에 들어와 읽게 되었답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요. 기회되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루키가 어떤 큰 의미와 깊이를 담아 썼다는 생각이 제 경우엔 별로 안들어서 그건 읽는 사람 몫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섬사이 2013-12-2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늘 대출중인 이 책이 언젠가 제 손 안으로 들어올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


hnine 2013-12-28 07:45   좋아요 0 | URL
하루키의 인기를 느끼는 순간이 바로 그런 경우이지요. 이 책 나온지 이제 꽤 되었는데도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늘 대출중이라는거요 ^^ 저도 한참 기다려서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