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부산행

 

5,6년전 결혼기념일.

남편과 냉전중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그것을 빙자로 풀어지려나 했지만 둘다 똑같아. 일요일이었건만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어디간다는 말도 없이 나갔다.

울적한 마음을 어떡해든 해보려고,

"다린아, 우리 KTX 타고 어디 갈까?"

아이를 데리고, 아이만 데리고.

부산이 목적이라기 보다 KTX 타는게 먼저. 아이와 단둘이 부산행.

하루치기 여행으로 해운대, 아쿠아리움, 누리마루, 잘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기차 엉뚱한 것 타는 바람에 벌금 물고 좌석없이 집에까지 왔었다.

 

 

두번째 부산행

 

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모여 2박 3일 다녀온 부산행.

모두 바쁜 일정들이라 더 멀리 못가는 대신 좋은 숙박 시설에서 편하게 모시고 오자고 갔었다.

아버지께서는 앞으로 생전에 언제 이렇게 우리 가족들이 다 모일 수 있겠냐고 그러셨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다.

오늘이 아버지 첫 기일.

 

 

세번째 부산행

 

어제 밤에 더위를 피해 가서본 영화 부산행.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결코 잘 만든 영화가 아니고, 권해줄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도 빈 좌석 없이 꽉 들어찬 객석을 보면 요즘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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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라고 하면 한식보다 양식을 먼저 떠올리지만

취나물 레서피가 이 책 속에 있다.

 

저자 (정신우)도 들어가는 글에 쓰기를, 우리에게 최고의 샐러드는 예전에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배추 겉절이라고.

오늘 아침에 호박 새우젓 지짐과 함께 만들어본 취나물.

지금까지 만든 방법과 약간 다른 방법이라서 만들어보고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세실님께서 이벤트 선물로 보내주신 책. 감사히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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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7-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은 저도 나름 추억이 많네요.
아이들 어릴때 무작정 가출(?)해서 친구랑 부산행 ㅎㅎ
영화는 별로 보고싶지 않고 덕혜옹주 기다리고 있어요.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벤트ㅎ

hnine 2016-07-24 05:25   좋아요 0 | URL
기억 가물가물하실만도 해요 ^^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함께 보내주신 카드까지 책 사이에 끼워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부산은 세실님에게도 사연이 있는 곳이군요~ 영화 부산행은 큰 기대를 안하기도 했지만 기대했더라면 더 많이 실망했을 것 같아요. 덕혜옹주가 영화로도 만들어졌나요? 저도 기대되는데요!

책읽는나무 2016-07-2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어제 아이들의 성화에 부산행을 보고 왔었어요
악~~~~~~~~~~~
그자체였어요 전 좀 충격먹고(좀비 자체를 처음 보았거든요ㅜ)
보고 나오니 속도 좀 울렁거려 집에 오자마자 김치볶음밥 만들어 먹었어요
예고편에 손예진 주연의 덕혜옹주를 잠깐 보았어요 아이들도 보고 싶다는데 저도 좀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부산은 제게 있어 제2의 고향이라 수시로 드나드는 곳인데 이렇게 윗동네 사시는 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부산은 참 특별하고 사연많은 도시로 느껴지네요^^
나에게 있어 그런 특별한 도시는 어디였을까?떠올려보면 멀어서 자주 갈 수 없는 강원도가 참 아름답고 그리운 도시인데 그런 느낌인가? 비교분석 해봅니다ㅋㅋ

hnine 2016-07-25 06:27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도 영화 보셨군요.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던지요? 저는 특별히 좀비에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있었던 편이 아님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단체로 달리기 하는 장면만 보다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ㅠㅠ 어제도 더위를 피해서 또 영화를 보러갔는데 나우 앤 시미 2. 저는 이 영화 1편도 봤는데 1편에 못미친다는 느낌. 예고편으로 덕혜옹주 저도 보았는데 손예진 참 예쁘게 나오더군요. 실제로 덕혜옹주가 그렇게 미인이었을지 모르겠지만요 ^^ 재미있을 것 같아요.
부산은 갈때마다 저에게는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는 곳이라서 다시 갈땐 또 어떤 추억이 생길까 기대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순오기 2016-07-2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행~ 영화는 어제 보려다 그냥 쉬는 걸 택했고...이런 부산행 페이퍼를 쓰고 싶네요. 79년 여름 친구와 무박으로 첫 부산행 이후 꽤 많은 추억이...^^

hnine 2016-07-25 06:30   좋아요 0 | URL
79년이면 정말 오래전...가만 있자, 제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니까 순오기님은 그보다 좀 더 높은 학년이셨을텐데, 친구랑 용감하게 길을 나섰던 행선지였군요! 그때의 부산은 지금과 또 달랐을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던 때가 아니라서, 순전히 기록이나 기억에 의지해서 떠올려야하는게 아쉬워요. 그럼 기차타고 가셨었나요? 그땐 가셔서 뭐하셨을까...
그나 저나 더위에 잘 지내시나 모르겠습니다. 어제 밤은 진짜 진짜 덥던데요.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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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작가 이름이 귀에 익어, 잘하면 마치 읽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책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을 더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 읽기로 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도 다른 리뷰를 참고하지 않고 내 느낌, 내 생각 그대로 정리해보기로 한다. 작가의 생각과 다를 수 있고, 잘못 해석한 것일 가능성이 분명히 있을 거란 것을 전제한다.

 

과연 되풀이 된 것은 인물들의 이름 뿐인가

 

두 가지 경우 모두 우린 느낄 때마다 새롭다. <사람은 다 똑같다>, 혹은 <사람은 다 다르다>.

내 경우엔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보다 사람은 다 똑같구나라고 느낄 때 가슴의 울림이 더 크고 오래 간다.

아들 이름에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이름을, 딸의 이름에 고모, 할머니, 증조모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인물의 이름을 만드는 것은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인데 작가가 이것을 통해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결국 인간이 지니는 본성, 특히 이들이 공유하는 유전자를 통해 전해내려오는 기질과 본성은 달라져봤자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것 아닐까. 이건 몇개의 사건, 혹은 인생의 어느 일정 기간만 봐서는 알기 어렵고 전체적인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 알수 있기에 우리는 이런 작가의 통찰을 빌지 않으면 모르기 쉽다는 점이다.

 

벗어나려 발버둥치든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살며 웃음거리가 되든, 결국 인간이 돌아오는 지점은 처음 자리에서 그리 멀리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가. 결국 제목의 <백년의 고독>을 통해 결정체로 남겨진 사리 같은 진실이 그것이 아니라면 또 무엇일지, 인정하기 앞서 다시 생각해보지만 별 소득이 없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호세 아르까디오 두 형제 모두의 정부였던 여자, 삘라르 떼르네라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예외적으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주기까지 하는 걸.

 

그 가문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서서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해서 회전하는 하나의 바퀴라는 사실을 한 세기에 걸친 카드 점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277쪽)

 

작가의 이러한 관점은 쌍둥이 형제인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예에서도 나타난다.

둘은 아르까디오와 산따 소피아 델라 삐에닷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들의 증조모이자 이 소설에서 백년의 세월을 살아온 산 역사인 우르슬라는 쌍둥이의 아버지가 이 아이들의 이름을 역시 조상의 이름을 따서 아우렐리아와 호세 아르까디오라고 지으려고 하자 막연한 불안감을 숨길 수 없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볼때 똑같은 이름들을 되풀이해 씀으로써 거의 확실한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내성적이었지만 머리가 뛰어난 반면,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충동적이며 담이 컸으나 비극적인 운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쌍둥이들은 자라면서 생김새 뿐 아니라 행동도 습성도 너무나 똑같아 주위 사람들을 모두 헷갈리게 한다. 그러다가 더 커감에 따라 점차 다른 성격의 인간으로 변해하는데 그때까지 조상의 습성과 반대로 키와 이름과 성격이 서로 교차되어 변해가는 것이다. 이름을 지어주며 걱정했던 우르슬라 할머니는 아마도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뒤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2권에서 작가는 이 둘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체들은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관에 넣어졌는데, 그 순간 쌍둥이 형제는 소년 시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죽어서 다시 쌍둥이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장례식 마지막 순간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게 되고, 술 취한 조객들이 관을 혼동해 두 사람을 각각 다른 무덤에 묻고 만 것이다. 즉, 서로 상대방에게 지정되었던 무덤에 묻히게 된 것이다. 이름과 달리 뒤바뀐 행동과 성격을 보였던 형제들이 결국엔 죽어서라도 원래 가문에 내려져오던 본성과 이름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누구도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소설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돌아본다. 서로 사촌 지간인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가, 근친 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근친 상간의 결과에 대한 가공할 만한 공포로 인해 살인을 하게 되고, 마꼰도라는 고립된 도시를 설립하고 새로운 시작을 꾀해보면서도 근친 상간의 굴레는 영원히 바로잡지 못한다. 자매를 동시에 사랑하고, 정부를 공유하고, 이모와 조카가 서로 관계를 맺는 등.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역사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톱니 바퀴이며 순환될 뿐이었다.

 

인간은 능력 안의 일, 능력 밖의 일 관계없이 더 개선된 방향으로 올라가고자 계속해서 뭔가를 계획하고 도모하고 실행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성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 얼마나 인간을 고독하게 하는가.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고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실패의 경험에서 언제까지 당당하고 패기있고 자신감있을 수 있는 인간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개인이 아니라 백년을 넘어서 가문을 통해 전해 내려올때, 같은 이름의 고독 (Solitude)이지만 고독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게 되고, 그것이 한 나라의 역사, 대륙의 역사, 민족의 역사 속에서는 뽑힐 수 없는 뿌리로 깊어지게 된다.

 

고독과 사랑 앞에 인간은 무능하다.

나의 생이 끝남이 아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나머지 <인간 복제>라는 기술의 힘을 빌어 또 다른 나 라는 인간을 세상에 계속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들이여.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되풀이되는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에 무릎 꿇지 않으려는 인간. 이 책에서는 근친 상간으로 비유되는, "타고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이기리라는 보장 없어도 그에 대항하려는 필사의 노력, 유토피아에 대한 버릴 수 없는 미련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인간. 약자도 강자도 아닌, 그 중간에 걸쳐 있는 이 고독한 모습으로서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주제를 말하려고 쓴 이야기인지, 이 소설 어디에 노벨상의 가치가 있는건지, 한동안 오리무중으로 읽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차 안에서 남편과 인간 복제에 관한 잡담을 주고받다가 불연듯 이 책에 대한 내 나름의 힌트를 잡아내게 되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는 작품이 출판되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일단락. 나머지는 읽는 독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내 몫을 내 맘대로 꺼내다가 먹고, 씹고, 소화시켰다. 하지만 소화가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고,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필요성만 슬금슬금 느낄 뿐이다. 그래도 최소한 이 소설이 도대체 무슨 주제를 말하려고 쓰여진 것인지, 이 소설 어디에 노벨상의 가치가 있는건지, 오리무중은 아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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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7-1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되풀이되는 것이라면...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 물론 생각의 깊이는 제가 한참 모라자겠지만 )

˝넌 참 삐뚤어졌고 , 비관적이야˝ 란 날카로운 말을 들을까봐 입 밖으로는 자주 꺼내지 않는데 , 저는 가끔 생각해요.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삶이 행복해서 , 아이들도 행복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아이를 세상에 내 놓는 것일까 하는.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데 , 아이들은 끊임없이 태어나요. (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 내 색안경으로 세상을 해석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

계급이 없는 사회라지만 , 여전히 노동자는 노동자를 만들어 세상에 내 놓는 것 같고. 내 아이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고.

엄마가 저를 잘 못 키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 가슴이 그냥 찢어지는 듯 하더라구요. ( 그게 아닌데...)

마냥 행복한 사람들도 있겠죠. 내가 이렇다고 타인들고 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진 않을 테니까요.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말 늘어놓았네요. ( 일기장에 써야되는데 ㅎㅎㅎㅎ )


hnine 2016-07-12 21:21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를 낳아 키우지만 제 경우엔 제가 살아온 삶과 다르게 키워보고 싶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결코 순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네요.
저도 어릴 때부터 ˝넌 참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야˝ 소리 많이 듣고 자랐어요 ^^ 들을 땐 좀 억울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닌것 같으니 ㅠㅠ
이 책은요, 1권 까지는 별 재미 모르고 읽어가다가, 2권 읽는 중에 ˝오싹˝할 정도로 전율을 느꼈어요. 제가 문장으로 잘 표현을 못해서 못 썼는데, 작가의 통찰력의 끝자락만 겨우 맛보았다고 할까요. 그런데도 오싹했으니 몇번 더 읽어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꿰뚫게 되면 어떨지 모르지요. 대부분의 유명한 작품들중에 이 세상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본 작품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점심 먹고 동네 한바퀴 돌자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선글래스, 저 그런거 안키워요.

선크림, 그런 것도 답답해서 안 발라요.

양산, 모자, 물론 안 들고 나갔지요.

비타민D를 대량 합성할거라고 휴대폰과 카메라만 손에 들고 나가면서 그것도 거추장스러워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동네인데 그동안 한번도 안가본 길이었어요. 남편은 자전거 타고 가봤다네요. 저 길이 자전거 길이래요.

 

 

 

 

 

 

 

 

 

 

 

걷는 내내 길 옆에서 우리를 호위해주던 꽃입니다.

꽃 가운데 색이 진해진 건 햇빛에 타들어갔기 때문인가요. 

 

 

 

무당벌레는 몸은 작지만 어디있든지 아무튼 눈에 참 잘 띕니다.

 

 

 

 

햇빛 쨍쨍한데 이 달팽이 언제 걸어서 집까지 가나...

 

 

 

 

흑돼지 키우는 곳이 다 있네요. 더우니까 저렇게 땅을 파고 거기에 들어가있더라고요.

누가 돼지보고 머리 나쁘다고 했어!

 

 

 

 

대추나무라고 하는데 꽃이 피었습니다. 

 

 

 

 

 

 

풋복숭아.

초등학교때 이맘때면 학교 앞에서 아주머니가 이 풋복숭아를 잔뜩 담아놓고 팔곤 했는데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절대 사먹으면 안된다고 다짐을 받았었지요. 덜 익어서 먹으면 배탈난다는 이유였어요.

 

 

 

이게 나중엔 갈색의 솔방울이 되겠지요. 지금은 여름. 초록의 계절.

 

 

 

 

거두지 않은 파가 이렇게 꺽다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현수의 단편 소설 <파꽃>이 생각납니다. <토란>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어요.

 

 

 

 

 

 

 

멀리 산도 보이고 완전 시골 풍경인데 저 너머엔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집도 저 근처 어디쯤.

 

 

 

 

Human monkey, 라고 남편이 그랬습니다. 무례하게.

열심히 무슨 열매를 따고 계신 듯 했습니다.

 

 

 

 

 

 

 

 

 

 

 

 

 

생긴 것은 분명히 명아주 같은데 키가 너무 커서 명아주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나팔꽃이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연지를 비롯해서 비슷한 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물이 있으니 다리도 있고요.

 

 

 

 

하늘은 푸르고

 

 

 

 

길은 어디론가 계속 이어집니다.

 

 

 

 

 

씨마저 다 떠내보내고 씨가 있던 자리만 남았습니다.

저 자리도 언젠가 사라지겠지요.

 

 

 

이곳에 무슨 공원을 만든다고 기획 중이라는데,

부디 이대로 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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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9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6-1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다 좋지만 제가 하나 뽑는다면?
˝햇빛 쨍쨍한데 이 달팽이 언제 걸어서 집까지 가나...˝

ㅋㅋ 재밌어요.

사진 보는 재미에다 글 읽는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갑니다. ^^

hnine 2016-06-19 14:09   좋아요 1 | URL
저 달팽이가 매달려있는 곳이 밭 울타리로 쳐놓은 망사 천이거든요.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왔는지 모르겠어요.
걷는데 정신 팔려 가다 정신 차리고 보면 ˝여기가 어디지?˝ 이럴 때가 있고 그럴때 순간 암담함을 느낄 때가 우리 사람들도 있잖아요. 달팽이는 그런 생각을 안하니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으려나요? ^^ 제가 달팽이 걱정까지 해주느라...
사진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는 저렇게 걷고나서 집에 와서 1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축 늘어져있었답니다 ㅋㅋ
사진찍는 건 제가 좋아하긴 하는데 따로 배워볼 기회는 없었어요. 일단 배우면 자꾸 더 잘 찍으려는 욕심이 생길까봐 그냥 제 멋에 찍고 다니며 만족하고 있네요.

stella.K 2016-06-19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아~! 잘 찍으셨네요. 저는 썬그라스는 껴줍니다. 멋으로는 아니고 눈 보호를 위해 10년쯤 된 거.ㅋ 선크림은 끈적여서 싫어하구요. 여름 낮엔 나갈 일이 별로 없어서...^^

hnine 2016-06-20 05:05   좋아요 1 | URL
썬그라스가 원래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눈 보호를 위한 것 맞는 것이, 외국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야외에서 썬그라스 하고 있는 것 많이 봐요. 저는 순전히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용감하게 맨얼굴로 햇빛에 나가고 있는거죠. 저도 더위, 땀, 여름, 모두 기피대상이어서 햇빛 쨍쨍할땐 잘 안나가는데 어제는 집에만 계속 있으니 너무 갑갑하기도 하고 해서 나갔었는데, 허걱...정말 허걱이었어요 ㅠㅠ

oren 2016-06-1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마득한 옛날에 시골에서 학교 다닐 때, 바로 이맘때쯤 제 고향 동네에서 봤던 풍경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그런데, `명아주`는 저도 숱하게 봤지만 저런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던 듯해요. 아무튼 저 풀도 제가 어릴 때 자주 봤던 모습인데 이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통 모르겠네요. 이 사진들을 보니 문득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말했던 ˝올바른 관찰 태도는 몸을 수그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절로 떠오릅니다.
* * *
˝자연의 구석진 곳 어디에서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것을 찬찬히 보는 데 필요한 한적하고 고요한 기분에 젖어 한 생명체가 지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비밀이 떠오른다. 그것이 얼마나 소박하고 내밀한지를 말이다. 이끼 속에 깃든 아름다움은 가장 신성하고 조용한 구석에서 음미해야만 한다.˝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중에서

hnine 2016-06-20 05:11   좋아요 1 | URL
oren님, 저도 풀 이름 잘 모르는데 명아주는 어머니께서 6.25땐 저 명아주도 뜯어서 먹었다고 하시며 여러번 말씀하셔서 그나마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제 저것은 키가 너무 커서 저도 명아주라고 자신있게 말 못하겠어요. 몽글몽글한 꽃과 잎은 따로보면 명아주 같긴 했는데 말이죠.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아무래도 주위를 더 잘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풀이나 열매를 보기 위해선 눈을 아래로, 몸을 수그리게 되고, 요즘은 새에도 관심이 조금씩 가게 되서 하늘도 쳐다보게 되고 소리에도 귀기울이게 되고 그러네요. 말씀하신것처럼 사실 옆에 동행이 있는 것보다 혼자 걸으며 발견하고 느끼고 배우는데 더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qualia 2016-06-20 20:28   좋아요 0 | URL
저 풀이 명아주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명아주 잎은 저 풀의 풀잎같이 길쭉한 모양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명아주는 꽃 혹은 열매 혹은 씨앗들이 저렇게 대규모(?)로 다닥다닥 피거나 열리지는 않지요. 저 풀과 명아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선 집들 앞마당 한켠에 명아주들이 아주 크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죠. 작은 명아주 잎은 뜯어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답니다. 맛이 괜찮았어요.

근데 저 풀 역시 종종 눈에 띄는 풀인데, 저도 이름은 모르겠네요. 어릴 적부터 모습만 알았지 이름은 몰랐던 수많은 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럴 때 사진 이미지를 입력하면 사진 속 풀/나무/동물/물건/사람 등등에 대한 정확하고도 자세한 정보가 좌르륵 뜨는 검색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외국 회사가 이런 검색 방법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오래 전에 본 것도 같은데요. 구글 이미지 검색에 이런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hnine 2016-06-21 14:58   좋아요 1 | URL
아~ qualia님은 명아주 나물도 드셔보았군요. 제가 아는 명아주도 절대 저렇게 키가 크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개 숙여 봐야 하는, 키 작은 풀이었는데...저건 뭘까요? ˝넌 이름이 모니~˝ 물어볼수도 없고 말입니다 ^^

oren 2016-06-21 00:25   좋아요 1 | URL
그런데요, 명아주도 더러 크게 자라면 아주 쓸모가 있답니다. 지팡이로 만드는 거죠. 작년에 도산서원에 두 번째로 갔을 때도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가 생각나 찾아봤고,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또다시 놀랐답니다. 지금 검색해 보니 길이가 무려 140cm라고 하네요.
* * *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를‘청려장’이라고 하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장수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청려장(靑藜杖)을 하사한 전통이 내려와서 조선시대에는 나이 70세와 80세를 맞는 노인에게 각각 국장(國杖)과 조장(朝杖)이라 하여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청려장은 문경시 호계면 일대에서 지역특산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울퉁불퉁한 표면이 손바닥을 자극하는 효과와 함께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운 장점이 있다.대표적인 청려장으로는 안동 도산서원에 퇴계 이황 선생이 짚고 다니던 길이 140cm의 청려장이 있다.
(인용문 출처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8818&yy=2015)

hnine 2016-06-21 14:58   좋아요 1 | URL
명아주가 그렇게 크게도 자라는군요. 예, 제가 본 저 풀도 족히 1m는 넘어보였어요.
지금 우연히 TV를 보고 있는데 ˝소루쟁이˝라는 풀을 소개하는데 비슷해요. 딱 키 큰 명아주처럼 생겼어요.

qualia 2016-06-2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위 길 사진은 하나의 전형적인 작품 같다는 느낌이 딱 들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마음 속에 딱 들어와 박히더군요.
어떤 동경, 설레임, 호기심, 상상력을 보자마자 호출합니다.
제 마음 속 아이가 저 길을 끝까지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뛰어내려오고 다시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뛰어내려오고... ^^

hnine 2016-06-20 21:45   좋아요 1 | URL
길은 호기심과 설레임과 동시에 제 경우엔 어떤 두려움도 함께 불러일으켜요. 안가본 길을 가본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니까요.
그런데 저 길 따라 끝까지 더 갔더라면 아마 저날 저는 일사병 걸렸을지도 몰라요 ㅠㅠ 뭘 믿고 모자 하나 안쓰고 길을 나섰다가 설마 6월 햇빛이 그렇게 강할 줄 몰랐던거죠.
알고보면 사진들이 너무나 다 전형적인 사진들인데, 잘 봐주셔서 고마와요. 이렇게 함께 봐주는 분들이 안계시면 제가 무슨 재미로 사진을 올리겠어요 ^^

낭만인생 2016-06-20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갑니다.

hnine 2016-06-21 00:56   좋아요 1 | URL
낭만인생님, 여길 다 와주시고...감사합니다.
요즘 부쩍 풀과 새와 꽃, 나무에 관심이 많이 가네요.
 

 

 

 

 

 

 

 

 

 

= 우리집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감자 =

 

찌그러져가는 감자를 남편이 베란다에 있는 빈 화분 속 흙에 쿡 찔러놓았던 모양이다.

왜 무슨 일은 꼭 기대 안하고 있을 때 일어날까? 계획하여 진행하고 기다리고 있을 땐 안 일어나고.

감자 싹에서 잎이 나고 쑥쑥 자라더니 이렇게 감자꽃이 피었다.

하얀 감자 심었으니 하얀 꽃.

자주 감자 심었더라면 자주꽃이 피었겠지?

저렇게 피었다가 며칠 안되어 지고, 또 다른 자리에서 꽃이 피는데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안보는 척 하면서 꼭 들여다고 있다.

 

 

 

 

 

= 동네 뒷산 =

 

주말에 아파트 뒷산을 산책삼아 걸을 때 들리는 소리만 듣고 싶어 귀에는 아무 것도 꽂지 않고 간다.

그래도 혹시 못보던 뭐가 있나 하고 눈은 바쁜데 바닥에 누가 휴지를 떨어뜨렸는지 알고 들여다봤더니 세상에, 버섯이다. 지름이 10 cm정도 되는 거대 버섯.

 

 

 

 

 

 

 

 

 

 

 

 

 

 

 

 

 

 

 

 

못보던 식물이 있으면 덮어놓고 사진을 찍어놓는 버릇 ^^

 

 

 

 

 

이건 이름 알았었는데 또 잊어버렸다. 그래서 이름 찾아놓았는데 지금, 또 잊어버렸다 ㅠㅠ

또 찾아야지 흥!

 

 

 

 

 

 

 

 

 

 

= 우리 아파트 단지 =

 

산딸 나무 현재 상태. 하얀 꽃잎은 다 떨어졌다.

 

 

 

 

 

잎 속에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낸 초록사과.

 

 

 

 

 

 

지난 주에 찍어 놓은 사진인데 이때만해도 1시간 여 걷는 동안 별로 더운지 몰랐다.

어제, 비슷한 시간에 동네 한바퀴 돌았는데 기진맥진. 집에 돌아와 쉰다고 누웠다가 내 사전에 없는 낮잠을 그것도 1시간씩이이나! 일어나서는 물을 1리터도 더 마신 것 같다. 그리고 저녁도 못 먹었으니.

여름 예고편 제대로 맛봤다. 그래도 억울하지 않은게 어제 처음 가본 길이 정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예쁘면 다 용서가 된다고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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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06-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잠을 즐기지 않으시군요. 저도 그래요.^^

hnine 2016-06-19 11:21   좋아요 0 | URL
밤잠, 낮잠, 저는 자는 만큼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안자고 버티다 버티다 자는 주의랍니다. (그래서 키가 안자랐나봐요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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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서재에서 회자되던 소설 중 하나 스토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에 찜 해 놓고 기다리던 중 마침내 인연이 닿았다.

국내에 알려진 게 최근으로 알고 있는데 자그마치 1965년 작이란다. 번역되기 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나 싶어 알아보았더니 미국에서부터 사람들 주목을 받는데 오래 걸렸더라. 1994년 결국 작가 존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도 10여년이 지난 2006,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판으로 다시 한번 출간됨으로써 전기를 맞게 된 것. 그럼 2006년 다시 출간되게 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기에 더 오래 묻힐 수도 있었을 책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스토너라는 인물은 분명히 허구의 인물이라고 작가가 밝혔다는 것은 그만큼 책 속의 인물이 마치 작가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거나 나아가 본인의 얘기가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일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책 속의 스토너는 작가인 존 윌리엄스보다 더 일찍인 1891년에 태어나 195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직업이 교수이든, 농부이든, 상인이든, 한 사람의 일생은 모두 같기도 하고 모두 다르기도 하다. 똑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는, 그 틀을 벗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순서를 거꾸로 산다든지 하는 획기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비슷한 일로 기뻐하고 비슷한 일로 슬퍼하고 노여워하니까.

스토너의 일생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풍족하지 않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고 대학 교수까지 지내며 살다 갔으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자신의 목표나 꿈이 먼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순서가 아니라 늘 상황이 먼저 마련해놓거나 누구에겐가 제안을 받은 후 순종적으로, 그러나 충실하게 밟아가는 삶은 어딘지 전체적으로 볼 때 밋밋하고 평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토너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하는 문장을 30쪽에서 처음 만났다. 스토너가 대학생일때 슬론 교수와 주고받는 대화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스토너는 침묵했다. 이것은 그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던 문제였다. 마침내 그가 약간 분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 대목, 부인인 이디스가 아버지 장례식을 위해 집을 떠나있는 동안 집에는 스토너와 딸 그레이스만 남아 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집이 텅 빈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서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는 이디스를 생각할 때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조용한 후회가 느껴졌다 (156).

드디어 후회의 시작인가? 스토너답게 조용히.

이름처럼 돌 같고 바위 같기만 한 남편에게서 이디스가 만족을 느낄리가 없다. 안치던 피아노에 매달리는가 하면 연극 연습에 몰두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모임을 갖기도 하다가, 스토너에게 찾아온 학생들이 있는 서재에 자리잡고 앉아 자기 얘기들 떠들기도 한다. 그런 아내의 행동에 스토너의 반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디스의 심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묵인한다.

그는 이디스의 새로운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활동은 그에게 아주 조금 성가실 뿐이었고, 그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필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따라서 그녀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그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167).

마지막 몇 페이지에 걸친, 죽어가는 스토너의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고 뛰어나서, 그동안 혹시 작가는 의도적이었으나 독자는 놓쳤을지 모르는 스토너라는 인물에 대한 것을 여기서 맘껏 느껴보시라 하는 피날레 같았다. 죽음의 피날레라니.

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세계,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

이 책이 뒤늦게나마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주인공의 일생 하나만을 놓고 볼때는 굴곡도 있고 이야깃 거리도 되지만, 이 세상 살다가는 모든 인생들 중 하나라고 볼때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의 확인, 그런 굴곡과 사연과 경험들을 우리 모두, 먼저 살다간 모두, 끌어안고 있다는 데서 오는 동질감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일생이 특별히 더 쓸쓸할 것도 없다. 사람의 일생이 원래 쓸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던 사람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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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6-1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놓쳤습니다. 여러 리뷰를 읽는 걸로 대신했지요.

일생의 쓸쓸함... 저는 장례식장에 갔다오면 좀 마음이 가라앉더군요. 허망함 같은 게 느껴져요.


hnine 2016-06-13 06: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보관함에 담아놓고만 있었는데 우연찮게 인연이 닿았네요.
일생의 쓸쓸함. 전 이제 그냥 받아들여요. 전 그게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더라고요. 이 책을 읽으니 얼마전에 읽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도 생각이 나고,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생각도 났답니다. 그러고보니 이 세 작품 속 인물의 직업이 모두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몬스터 2016-06-1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나절 꼬박 읽고 며칠 동안 마음이 쓸쓸했던 책이었습니다. 슬펐어요. 사람의 인생이 원래 쓸쓸하다는 말씀 ,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많은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하는 사람이거든요. ( 으...싫은 제 모습입니다만 ㅎㅎ ) , 그래서 가끔 지나치게 밝은 사람들을 보면 , 어찌 저리 삶이 즐거울까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가면을 쓰고 사는 건 아닐까 의심하는 (ㅎㅎㅎ )

나의 죽음은 나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지만 , 타인의 죽음은 내 삶에서 한 조각 떨어져 나가는 것 다름 아니니..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라는 말씀 , 맞는 말씀이세요.

아...이래도 저래도 주말이 끝나가는 건 싫습니다. ㅎㅎㅎ

hnine 2016-06-13 06:40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도 읽으셨군요. 쓸쓸하고 슬픈 느낌, 사실 저도 그랬어요. 다 읽은 후 이건 스토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삶에 공통적인 본질이라고, 그러니 특별히 슬퍼하지 말자고, 슬픔을 잠재우기 위해 내린 일종의 처방전인 셈이지요. 저도 어두운 면을 먼저 보고 부정적인 생각과 반응을 먼저 하는 성격, 그걸 또 부정적으로 보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성격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안하기로 해버렸어요.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에도 나름 강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고, 또 나를 내가 맘에 안들어 한다는 건 아무래도 너무한 것 같다는 자기 연민이 발동하기도 했고요.
주말 끝나가지만 다음 주말이 금방 또 돌아오니 우리 웃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