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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 of a Death Foretold (Paperback) -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영문판
Vintage Books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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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처음 만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즈. 그의 작품을 읽어봤다는 경험이 그의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도록 이끌기보다 더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일 정도로 백년 동안의 고독은 소화가 잘 되는 소설이 아니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지 이미 꽤 된 이 책 <Chronicle of a death foretold>는 그나마 두께가 별로 되지 않고 평도 좋기에 드디어 읽을 용기를 내보았다. 스페인어로 쓰여진 것을 영어로 번역해놓은 책이다. 우리 나라 말 번역본은 2008년에 민음사에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라는 제목으로 나와있다.

 

안젤라 비카리오 (Angela Vicario, 이 이름의 정확한 스페인어 발음은 모르겠다) 라는 여자가 결혼식을 올린 날,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음을 알게된 신랑은 그녀를 곧바로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가족들로부터 신랑 이전의 그 상대가 누구였냐는 질문의 압박에 못이겨 안젤라는 한 마을 청년인 산티아고 나사르 (Santiago Nasar)라고 대답한다. 이런 불명예를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안젤라의 쌍둥이 형제들은 치욕감을 참을 수 없어하며 산티아고 나사르를 죽이기로 하고 그를 찾아나선다. 산티아고 나사르는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청년. 아랍에서 건너온 이민자인 아버지 이브라힘 나사르 (Ibrahim Nasar)가 몇해 전 죽자 그 일을 물려받아 농장주가 되었고, 호탕하고 여자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사람들에게 원한 살 일도 하지 않는 동네 청년이다. 여동생을 욕보인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비카리오 형제는 칼을 품고 집을 나서서 산티아고를 죽이겠다고 만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말하고 돌아다녔기에 이미 많은 동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게 되었지만 설마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그들이 산티아고를 죽일 리가 있겠나, 농담일거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비카리오 형제는 가지고 간 칼로 산티아고를 잔인한 방법으로 여러 차례 찔러 죽임으로써 명예회복 목적을 달성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27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때 산티아고의 친구였던 화자는 사건의 진실을 다시 밝히고자 이 마을을 방문해 그 사건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 그때 상황에 대해 조사한다.  

 

 

 

 

 

 

 

 

 

 

 

 

 

결혼 첫날 밤을 치르고서 신부의 순결에 대한 증표로서 자고난 침대 시트를 공개해야하는 관습, 신부가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곧 가문의 불명예가 되어 명예회복을 위한 복수극을 벌이게 되는 것등,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느껴졌던 남성우월주의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건 주제가 아니라 소재라고 믿고 계속 읽어나갔다.

늘 그렇듯이 한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산티아고가 살해를 당하던 그 시간, 교황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사람들의 정신을 더 분산시켰다는 설정은 우연한 설정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안젤라와 그 가족의 명예를 박탈시킨 그 남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끝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죽음을 당한 산티아고가 그 상대는 아닐거라는 암시만 여러번 던지고 있을 뿐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안젤라는 산티아고라고 말을 한 것인지.

등장하는 인물 모두에게서 인간의 속물근성, 이중성, 비겁함을 본다. 안젤라에게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일사천리로 호화로운 결혼식을 진행시키며 아내를 잃은 Xius 노인으로부터 억지로 저택을 사들여 미래의 결혼생활을 과시하고 싶어했던 안젤라의 신랑 바야르도 산 로만 (Bayardo San Roman)은 허욕에 찬 인간의 모습이며, 누이의 불명예를 알고 산티아고를 죽임으로써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칼을 들고 나선 비카리오 형제에게 진정한 살해 동기가 있기는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동네 이사람 저사람에게 살인 계획을 말하고 다닌 것이 의미하는 것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과정일수도 있지만 산티아고를 죽여야 하는 것이 꼭 그들의 의지는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동정을 받아야할까. 하지만 판사 앞에서 그들은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같은 행동을 했을것이라고 선언한다. 관습과 편견에 의해 살고 죽는 우매한 인간들.

밀크샵 주인 클로틸드 (Clotilde Armenta)는 유일하게 마을 사람들 이사람 저사람을 붙잡고 산티아고의 죽음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해야한다고 재촉한 사람이었고, 산티아고의 절친이자 의대생이었던  크리스토 베도야 (Cristo Bedoya)만이 그 사실을 산티아고 본인에게 알리고 피하게 하려고 그를 찾아 이리 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산티아고를 봤냐고 물어보지만 모두들 못봤다거나 방금 어디로 갔다거나 하는 식으로만 대답하는 바람에 살인을 막을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살인이 일어날거라는 것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으로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 앞에서 누군가 막아야 할 일임을 명확함에도 굳이 나서지 않고 싶어하는 인간의 부끄러운 바탕을 본다. 지금의 우리는 크게 다른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산티아고의 엄마는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자식이 위험에 처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산티아고의 엄마 플라치다 리네로 (Placida Linero)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행동은 결국 간만의 차이로 오히려 산티아고로 하여금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리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죽은 산티아고의 친구였던 화자가 사건이 일어나고 27년이나 지난 후 다시 그 현장을 방문하여 가족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을 만나 그 당시 사건을 회고하게 만들고 다시 정리하는 구성을 작가가 굳이 택한 이유는, 작가 자신의 오래 전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도 있겠고, 시간에 따라 달라졌을 수도 있는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 관점, 해석을 위해서일수도 있다.

 

이 소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즈의 다음 작품으로 진행하는데 주저함이 아닌, 그 반대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끝까지 긴장감을 풀지 못하게 하는 매력, 여기 저기 지뢰처럼 깔려있는 상징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가 그렇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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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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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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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ple Tart of Hope (Hardcover)
Sarah Moore Fitzgerald / Holiday House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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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트를 다 먹고 나면 타르트는 사라졌어도 바닥에 타르트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듯이, 모든게 다 끝난 것 같은 상황에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메시지가 책 표지에 드러나있다.

 

 

 

 

 

 

아일랜드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아일랜드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살고 있는 저자 Sarah Moore Fitzgerald의 세번째 소설이다.

아일랜드의 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오스카 (Oscar) 라는 남자 아이와 절친 메그 (Meg)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열네살 이 둘은 훨씬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이 둘이 처음 친구가 되는 장면을 읽는 동안엔 저절로 웃음이 얼굴에 번지게 만들 정도로 달콤하고 따뜻했다. 막 구워낸 타르트를 맛볼 때 처럼.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겠지만 한번 옮겨 적어본다.

 

오스카가 처음 우리 이웃으로 이사오던 날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때 우린 둘다 꼬맹이였다. 큰 이사 트럭이 가까이 와서 우리 집 부엌엔 그늘이 드리워졌고 나는 무슨 일인가 하여 현관 너머로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게되었다. 키 크고 잘 생기고 침착해 보이는 모습. 그 아이의 동생인 스티비를 보던 순간도 기억한다. 조그맣고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재잘재잘대던 아이. 얘들의 아빠는 짐을 옮겨 앞마당에 쌓아놓고 있었다. 아무 말이나 표정 없이.

이 날 이후로 오스카를 발견한 곳은 내 방에서였다. 그 아이는 자기 방 창문에 앉아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짓고 팔에 뺨을 얹은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아주 큰 망원경이 놓여 있었다. 처음에 난 그 아이를 못본 척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과 그 아이 집 사이엔 체리 나무가 있었는데 오스카는 그 나무의 죽은 가지를 쳐내고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내가 창문을 열자 그 아이가 창문 너머로 내게 "안녕!" 하고 인사하며 웃어보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22, 23쪽)

 

오스카는 성격도 좋지만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애플 타르트를 만들 줄 아는 것이다. 그 애플 타르트는 보통의 애플 타르트가 아니라 희망의 애플 타르트. 한 입 먹는 순간 세상이 지금까지 보던 것과 완전히 달라보이게 만드는 타르트이다.

누구도 미워할 리 없고 누구를 미워할 줄도 모르는 오스카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닷가에서 오스카가 타던 자전거만 발견되었을 뿐 수색 작업에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자 사람들은 오스카가 바닷가에 빠져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진행한다. 가족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받아들이며 학교에서는 오스카를 위한 추모 미사까지 진행되는 가운데 딱 두 사람, 오스카의 절친 메그와 오스카의 동생 스티브만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사고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한다.

이야기는 첫번째 조각, 두번째 조각 하는 식의 소제목을 달고 스무 조각 까지, 오스카와 메그의 교차 서술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스카와 메그, 오스카의 동생 스티비 외에 이야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두 인물이 더 나오는데 그 한 사람은 바닷가에서 오스카에게 발견되어 애플 타르트와 함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바니라는 남자이고, 또 한 사람은 오스카와 메그의 클라스 메이트로서 새로 이사온 팔로마라는 여아자이이다. 팔로마는 메그가 1년 동안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사가 있는 동안 메그가 살던 집으로 이사해왔고, 자기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아야 하고 자지가 이 세상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이다. 팔로마는 오스카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고 싶어 접근하지만 오스카는 팔로마가 원하는 만큼 자기에게만 올인해주지 않는다. 이런 불만족과 질투, 앙심은 결국 예상치 못한 큰 결과를 낳게 된다.

메그와 팔로마. 동갑의 두 여자 아이 캐릭터가 극과 극인 것 같으면서도,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어쩌면 두 성향이 다 내포되어 있다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복잡하지 않은 구성이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다음 페이지로 저절로 넘어가게 한다.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목적의 책이 아닌 이상, 소설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다른 백 사람의 말 보다도 그 사람의 말과 입장을 믿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거짓을 바탕으로 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는 것. 우정은 친구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착하고 재미있는 청소년 주인공 소설이다.

아마존 분류 기준으로 12+ 로 되어 있는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 12살을 의미할테니 우리 나라 12살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니 참작하여 읽으면 될 것 같다. 우리 나라에 아직 번역본은 안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제목때문인지 오래 전에 읽은 <레몬케이크 껍질의 특별한 슬픔> 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음식과 마음을 연결시킨 이야기라는 점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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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ms, Girls, and Dangerous Pie (Paperback)
Jordan Sonnenblick / Scholastic Paperbacks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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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학년 열세살 남자아이 Steven에게는 이제 다섯살된 유치원생 남동생이 있다. 이름은 Jeffrey.
Jeffrey에게 형 Steven은 거의 우상이지만 Steven에게 동생 Jeffrey는 챙겨줘야할것만 많고 이 핑계 저 핑계 대어 쫓아버리지 않으면 계속 따라다니려고 하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Steven은 이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일은 남동생을 가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Steven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은 드럼을 치는 일이다.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 하고 싶어하기에 아침 일찍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지하실에 내려가 드럼 연습을 하던 어느날, 그 이른 시간 거기까지 쫓아와 아침 식사로 오트밀을 만들어달라고 조르는 동생 Jeffrey.
귀찮아하면서도 Steven은 다른 식구들을 깨우지 않게 하려고 Jeffrey를 부엌으로 데려와 식탁의자에 앉혀 기다리게 하고 오트밀을 만들던중 Jeffrey가 식탁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실 이것은 이후로 밝혀지는 일에 비하면 사고 축에도 못끼는 일이다. 상처 치료차 병원에 갔다가 Jeffrey에게 급성백혈병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로 Steven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일련의 과정들은 Jeffrey는 물론이고 Steven에게, 가족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안긴다. 이제 열세살 Steven은 이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 그리고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병과 싸우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직장마저 제대로 다닐 수 없게 된 부모는.
 
미국의 교사 출신 작가 Jordan Sonnenblick의 2005년 작.
우울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남자 아이가 주인공인 것 답게 기본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명랑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제목의  Drum, Girls, Dangerous Pie 는 당시 Steven에게 소중하게 생각되던 세가지 대표 아이템이라고 할수 있어 붙인 제목이다. Dangerous pie는 동생 Jeffrey 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Jeffrey가 네살때 레서피도 없이 혼자서 커피가루, 날달걀, 조개껍질, 베이컨 등을 섞어서 자기 멋대로 파이를 만들던 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때 Jeffrey가 파이재료를 섞는다고 쓰고 있던 것은 Steven이 아끼고 아끼는 드럼 스틱. 마침 드럼 스틱이 눈에 띄지않아 찾고 있던 Steven은 이것을 보고 분노로 거의 뒤집어진다.

 

골치덩이 이상 아무것도 아니던 동생의 백혈병 소식으로 가족 모두 겪어야 했던 일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고,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회계원으로서 보통의 가장이었던 아빠에게 병원치료비 부담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동생의 백혈병 치료에 올인하느라 엄마로부터 어떤 보살핌도 받을 수 없게 된 Steven은 학교 수업도, 드럼 연습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큰 변화를 겪는다. 가족 중 한 사람의 투병은 그 사람뿐 아니라 온 가족의 경험이기도 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가족인 것이니까.

 

학교에서  Steven에게 닥친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알고 선생님들과 친구들 모두 그를 도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읽으면서 울뻔했던 대목은 마지막 두 페이지. 그동안도 재미있게 글을 써나갔지만 마지막 마무리는 작가가 앞부분보다 다섯배는 더 잘 썼다고 생각된다.

 

It's funny. I used to think that having a brother was the worst thing in the world. But now I know that not having him would be worse. (p.273, 마지막 페이지)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이 책의 표지는 위와 같지만 내가 읽은 우리 집에 있는 책 표지는 아래와 같다.

 

 

 

 

  # 읽기에 추천할 대상층:

  • 드럼에 관심있고, 관심끌고 싶은 여자애가 있고, 귀찮은 동생을 가지고 있는 남학생 (츤데레 스타일이면 더 좋고)
  • 그런 아들을 둔 부모
  • 평소에 아옹다옹하는 형제, 자매를 둔 부모님, 또는 그 당사자들
  • 투병중인 가족이나 친지를 두고 있는 분 (특히 어린이 환자) 

 

물론 나처럼 어디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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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20-02-0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아픈 가족이 있으면 이런 책 손에 잡기 쉽지 않아요. 제 경험상....

hnine 2020-02-05 04:42   좋아요 0 | URL
네, 공감은 잘 되겠지만 책 읽을 시간과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겠지요.
 
엄마의 자존감 공부 - 천 번을 미안해도 나는 엄마다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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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강사인만큼 안티 층이 많은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이 내는 책은 거의 다 읽어오고 있다. 어찌되었든 읽어서 내게 득이 된다는 뜻이다. 대중 앞에서 말로 내용을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만큼 책도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이 책 역시 반나절 만에 다 읽었는데 그만큼 쉽게 쓰여지기도 했고 빨려드는 내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리뷰 제목으로도 썼지만 이보다 더 쉽게, 이보다 더 피부에 와닿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전달력은 대단하다. 그 내용이 자식 교육에 관한 것이든, 여성의 꿈의 실현에 관한 것이든, 이 사람은 적어도 열번 쓰러져도 일어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 쓰러져도 일어날 사람. 그런 자생 능력이 있는 사람. 어떻게 말하면 독한 사람.

 

'너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얘기는 너 혼자 온 가족의 꿈을 짊어지라는 얘기다. 그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절대 실패해서도, 비뚤어져서도 안 되며, 엄마가 정해준 길만 가라는 얘기다. (82)

 

"엄마, 밀라노 꼭 가. 내가 보기엔 50대가 꿈꾸기에 제일 좋은 나이야. 나 봐봐. 20대 청춘이면 뭘 하냐고. 돈도 없지, 결정권도 없지, 경험도 없지. 근데 엄마 봐봐. 벌어놓은 돈도 있지, 공부하겠다면 말릴 사람도 없지, 꿈꾸기 좋은 환경을 다 만들어놨잖아. 늦었다는 생각만 안 하면 다 할 수 있는데 왜 안해?" (109)

 

10을 바라면 당연힌 아이가 변한 게 안 보인다. 그런데 0.1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아이도 내 부모가 0.1에 감사한다는 걸 느끼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에 대한 계산법은 달라야 한다. 0.1씩 모아서 100을 만들기. (120)

 

"웬 트라우마? 엄마는 네가 그 말을 안썼으면 좋겠어."

"왜?"

"실패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말이니까. 엄마는 실패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 10에서 2모자란 성공. 실패했다는 건 8까지는 노력해서 왔다는거야. 그러니까 거기까지 온 너 자신이 얼마나 대견하니. 그리고 그 8은 어디 없어지는게 아냐. 네 몸에 그대로 저장돼 있어." (170)

 

"원래 꿈은 노동인거야." (188)

 

자신의 꿈에 허술한 청춘 (209)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건 힘든 일이긴 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라는 명령이자,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세상에서 나를 사람 만들어준 역할, 나를 성장시켜준 최고의 기회였던 엄마. 나는 오늘도 내가 엄마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245)

 

나 자신을 아이들의 '24시 편의점'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 더 이상 시간 없다는 핑계로 내 자신감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49)

 

계획된 일정만 있어도 사람은 성장한답니다. (260)

 

인생의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건 정해져 있지 않다. 마침내 이 일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279)

 

살다 보면 순간의 성취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삶의 근원을 위해 멈춰야 할 때가 온다. 그런데 거기에 굳이 '포기'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불러야지. (294)

 

내가 자식을 키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자식으로 인하여 내가 자란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이다. 내 기준으로 내 자식을 내맘에 드는 인간으로 만들고자, 그것이 최고의 부모 역할이라고 믿는 부모들이 많다. 그것이 자식의 인생 뿐 아니라 부모의 인생에도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첫번째 자각이자 마지막 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본이고,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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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12-2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시 편의점... 기발하네요.
이제 뭐하고 살까. 고민중입니다.
직장은 계속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제가 좀 소심해요^^

hnine 2017-12-25 22:29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하실 일이 너무나 많을 것 같은데요? ^^
저는 전공과 상관없이 그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 하나하나 배워보려고요.
저 책의 저자는 지금도 강의 준비하는 것 외에 운동과 어학 공부를 매일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 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
이수련 지음 / 위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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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이다.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다니? 그렇다. 전폭적으로 쏟아붓던 자식에 대한 애정은 어느 시기가 되면 멈춰져야 한다. 아니, 멈춘다는 말은 틀리다. 엄마가 어떻게 자식에 대한 애정을 멈출 수 있겠는가. 애정이라기 보다 '애착'을 멈춰야 한다는 말이다. 자녀의 독립은 비로소 그때 이루어진다. '사랑' 또는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에 대한 애착을 계속 쥐고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성인으로 자라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평소에 머리속에서나마 알고 있던 상식이라면 상식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학 전공자인 저자가 왜 그래야하는지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어느 한 시기 엄마와 아이의 애착관계는 아이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었다. 엄마의 보살핌, 관심, 반응을 통해 아이는 정상적으로 커나가고, 나아가 엄마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정말 중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주고 받은 애정은 아이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으로 저축이 되어 장차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끊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주어 일정시기가 되면 아이는 엄마와의 이런 관계로부터 벗어나가는 단계에 들어가는데 이제 문제는아이가 아니라 엄마된 사람이다.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속에 갇혀 있다는 건 다른 어떤 관계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의미.

엄마의 사랑은 아이에게 힘과 자신감을 줍니다. 엄마를 바라보며 도움을 청하던 아이가 엄마를 떠올리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게 되는 순간, 엄마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 사랑이 그렇게 튼튼한 울타리가 되는 것은 아이가 엄마의 품을 떠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29)

 

여동생의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때 학교에서 단체로 수련을 떠났는데 가서는 전화도 없고 막상 엄마가 먼저 전화를 했는데도 별로 엄마를 보고싶어하지 않더라고, 동생이 무척 서운해한적이 있다. 그건 지금까지 아이가 충분히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그런 사랑이 아이로 하여금 집을 떠나서도 엄마를 보고 싶어하지 않고 안심하고 그 환경에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게 하는게 아니겠냐고 얘기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솔직한 내 생각이었다.

 

애착의 관계를 잘 마무리할수 없는데는 엄마된 사람으로써 자식에게 필요한 만큼 (또는 엄마를 스스로 만족시킬만큼) 충분히 주지 못한것 같다는 자책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사랑을 잘 잃을 수 있으려면 그만큼 견고한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29)

어른이 되는 것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은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아낌없이 듬뿍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사랑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요컨대 애착관계는 그것이 반드시 끝나고 깨진다는 목표를 이루었을때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30)

하지만 엄마로서 자식에게 그동안 충분한 사랑을 주었다고 자신할 엄마 별로 없을 것이고, 그렇다 한들 애착관계 끊기가 수월한 엄마 없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엄마의 삶에 다른 여지가 생겨야 합니다. 즉, 엄마의 사랑이 온전히 아이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60)

 

더불어, 아이에게 너무 바라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유는, 부모의 바람은 아이의 자리를 잡아주고 안내자가 되어주며, 그 자리를 시작으로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가고 싶은, 갈수 있는 또 다른 자리를 만들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은 아이를 후퇴시키거나 아이가 아무 변화도 시도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것으로 아이는 자신의 존재가 부모에게 해줄 역할이 있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77)

 

엄마의 애착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엄마의 역할과 분명히 구분되는 아빠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엄마가 아빠를 어떻게 소개하고 얘기하는가에 따라 아이는 아빠를 받아들이며, 점차 엄마가 바라는 것이 되는 자리에서 아빠가 가지고 있는 것을 물려받는 자리로 이동해간다는 것이다. 엄마와의 관계에 비해 아빠는 일종의 롤모델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빠는 '사회의 법과 질서 아래 있는 자'로서 아이를 만나야 합니다. 아빠의 것을 물려받는 일이 아빠의 세계에 갇히는 일이 아니라, 사회의 틀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117)

아빠가 사회적인 틀 속에 있는 법이 아니라 아빠 개인에게 속한 독재적인 법을 행사하고 그 위에 군림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한다. 친구 같은 아빠가 자칫 독이 될수 있는 이유는 아이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일 중하나인 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적절한 때가 있다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서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것 같다. 잃는 것이 때로는 얻는 것, 완성을 위한 단계임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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