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 of a Death Foretold (Paperback) -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영문판
Vintage Books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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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처음 만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즈. 그의 작품을 읽어봤다는 경험이 그의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도록 이끌기보다 더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일 정도로 백년 동안의 고독은 소화가 잘 되는 소설이 아니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지 이미 꽤 된 이 책 <Chronicle of a death foretold>는 그나마 두께가 별로 되지 않고 평도 좋기에 드디어 읽을 용기를 내보았다. 스페인어로 쓰여진 것을 영어로 번역해놓은 책이다. 우리 나라 말 번역본은 2008년에 민음사에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라는 제목으로 나와있다.

 

안젤라 비카리오 (Angela Vicario, 이 이름의 정확한 스페인어 발음은 모르겠다) 라는 여자가 결혼식을 올린 날,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음을 알게된 신랑은 그녀를 곧바로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가족들로부터 신랑 이전의 그 상대가 누구였냐는 질문의 압박에 못이겨 안젤라는 한 마을 청년인 산티아고 나사르 (Santiago Nasar)라고 대답한다. 이런 불명예를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안젤라의 쌍둥이 형제들은 치욕감을 참을 수 없어하며 산티아고 나사르를 죽이기로 하고 그를 찾아나선다. 산티아고 나사르는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청년. 아랍에서 건너온 이민자인 아버지 이브라힘 나사르 (Ibrahim Nasar)가 몇해 전 죽자 그 일을 물려받아 농장주가 되었고, 호탕하고 여자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사람들에게 원한 살 일도 하지 않는 동네 청년이다. 여동생을 욕보인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비카리오 형제는 칼을 품고 집을 나서서 산티아고를 죽이겠다고 만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말하고 돌아다녔기에 이미 많은 동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게 되었지만 설마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그들이 산티아고를 죽일 리가 있겠나, 농담일거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비카리오 형제는 가지고 간 칼로 산티아고를 잔인한 방법으로 여러 차례 찔러 죽임으로써 명예회복 목적을 달성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27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때 산티아고의 친구였던 화자는 사건의 진실을 다시 밝히고자 이 마을을 방문해 그 사건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 그때 상황에 대해 조사한다.  

 

 

 

 

 

 

 

 

 

 

 

 

 

결혼 첫날 밤을 치르고서 신부의 순결에 대한 증표로서 자고난 침대 시트를 공개해야하는 관습, 신부가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곧 가문의 불명예가 되어 명예회복을 위한 복수극을 벌이게 되는 것등,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느껴졌던 남성우월주의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건 주제가 아니라 소재라고 믿고 계속 읽어나갔다.

늘 그렇듯이 한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산티아고가 살해를 당하던 그 시간, 교황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사람들의 정신을 더 분산시켰다는 설정은 우연한 설정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안젤라와 그 가족의 명예를 박탈시킨 그 남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끝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죽음을 당한 산티아고가 그 상대는 아닐거라는 암시만 여러번 던지고 있을 뿐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안젤라는 산티아고라고 말을 한 것인지.

등장하는 인물 모두에게서 인간의 속물근성, 이중성, 비겁함을 본다. 안젤라에게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일사천리로 호화로운 결혼식을 진행시키며 아내를 잃은 Xius 노인으로부터 억지로 저택을 사들여 미래의 결혼생활을 과시하고 싶어했던 안젤라의 신랑 바야르도 산 로만 (Bayardo San Roman)은 허욕에 찬 인간의 모습이며, 누이의 불명예를 알고 산티아고를 죽임으로써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칼을 들고 나선 비카리오 형제에게 진정한 살해 동기가 있기는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동네 이사람 저사람에게 살인 계획을 말하고 다닌 것이 의미하는 것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과정일수도 있지만 산티아고를 죽여야 하는 것이 꼭 그들의 의지는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동정을 받아야할까. 하지만 판사 앞에서 그들은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같은 행동을 했을것이라고 선언한다. 관습과 편견에 의해 살고 죽는 우매한 인간들.

밀크샵 주인 클로틸드 (Clotilde Armenta)는 유일하게 마을 사람들 이사람 저사람을 붙잡고 산티아고의 죽음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해야한다고 재촉한 사람이었고, 산티아고의 절친이자 의대생이었던  크리스토 베도야 (Cristo Bedoya)만이 그 사실을 산티아고 본인에게 알리고 피하게 하려고 그를 찾아 이리 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산티아고를 봤냐고 물어보지만 모두들 못봤다거나 방금 어디로 갔다거나 하는 식으로만 대답하는 바람에 살인을 막을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살인이 일어날거라는 것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으로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 앞에서 누군가 막아야 할 일임을 명확함에도 굳이 나서지 않고 싶어하는 인간의 부끄러운 바탕을 본다. 지금의 우리는 크게 다른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산티아고의 엄마는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자식이 위험에 처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산티아고의 엄마 플라치다 리네로 (Placida Linero)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행동은 결국 간만의 차이로 오히려 산티아고로 하여금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리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죽은 산티아고의 친구였던 화자가 사건이 일어나고 27년이나 지난 후 다시 그 현장을 방문하여 가족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을 만나 그 당시 사건을 회고하게 만들고 다시 정리하는 구성을 작가가 굳이 택한 이유는, 작가 자신의 오래 전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도 있겠고, 시간에 따라 달라졌을 수도 있는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 관점, 해석을 위해서일수도 있다.

 

이 소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즈의 다음 작품으로 진행하는데 주저함이 아닌, 그 반대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끝까지 긴장감을 풀지 못하게 하는 매력, 여기 저기 지뢰처럼 깔려있는 상징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가 그렇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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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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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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